폐허

 

 

바람이 드나들던 그곳에

 

몇 개의 못 자국만 한 때, 이승의 이빨자국인 것처럼 웅성거리고 있다

 


 

 

 

당신이라는 문장을 읽다,

 

 

골반을 드러낸 채로 저녁이 온다

하얀 눈밭을 지나 산 하나를 지우며 당신이 온다

 

며칠 내내 입으로만 전해지던 소문이

마침내 발 앞에 내려앉는다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당신이

어제 문을 닫았다는,

 

당신의 빈자리가 늘수록

골목의 그림자는 더 짙게 눕는다

 

점멸등처럼 말을 더듬거리던 당신이

오늘은 아예 문을 닫는다

 

못 볼 걸 많이 봤다며

결국엔 말을 닫은 것이다

 

아파트는 그대로고 골목만 낡아가는,

저녁은 그대로고 당신만 낡아가는,

 

아주 오래 된 저녁을 열고, 눈발이 날린다

 

나무로 된 절름발이 의자 위로

당신의 눈동자가 자꾸만 쌓인다.

 

 

정훈교

2010년 『사람의문학』 등단, 시집 『또 하나의 입술』과 시에세이집 『당신의 감성일기』가 있음.

시집서점 겸 출판사 <시인보호구역>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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