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33이라는 숫자의 비밀

 

사찰에서는 종을 왜 백 여덟 번 칠까?

  종은 장중하면서도 맑은 소리가 나는 까닭에 예부터 사찰의 중요 법기(法器) 중의 하나로 여겼다.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종을 치는 전통은 502~549년 중국남조 양무제(武帝) 때부터 시작되었다.

  양나라 초대  황제였던 무제는 불교를 장려하여 문화를 발전시켰다. 양무제는 죄를 짓고 깨우침도 없이 죽음에 이르는 백성들을 보며 그들의 사후가 걱정되었다.

  어느 날 양무제는 고승 보지(寶志)화상을 찾아가 가르침을 청했다.

“어떻게 해야만 지옥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이에 화상은

“업보(業報)의 고통은 일시에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그러나 만약 종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잠시나마 고통을 멈출 수는 있을 겁니다” 라고 답했다.  

  양무제는 즉시 조서를 내려 사찰에서 매일 종을 치도록 했다고 한다. 사찰에서 사용하는 종은 아침저녁 시간을 알릴 때와 사람들을 소집할 때 치는 범종과 법회나 경축행사에서 불사의 시작을 알리는 환종이 있지만 이외에도 기상, 식사, 예불, 취침 등 명령을 전달할 때에도 종을 쳐서 그 소리를 사용했다.

  당나라 회해선사(懷海禪師)는 백장청규(百丈淸規)에서

“총림의 호령은 큰 종소리로 시작된다” 라고 했을 정도로 승려들은 종소리를 경계로 삼아 수련을 했다고 한다. 이 책에는 “새벽종은 긴 밤을 열고 잠에서 깨어나게 하는 것이고 저녁 종은 어두운 미혹에서 깨어나게 하는 것이다. 종은 청성한 마음으로 쳐야 소리가 맑게 울려 퍼지며, 무릇 36번씩 3차례 종을 치는데 총 108번을 친다.” 라는 말이 나온다.

 

  그럼 왜 하필  108번일까? 여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주역(周易)으로는 9는 상서로운 숫자로서 9의 배수인 108을 지고무상(至高無上)을 상징하는 의미로 보았으며, 불교(佛敎)에서는 사람의 번뇌가 연중 108가지라 종을 108번을 쳐서 인간의 모든 번뇌를 제거하는 의미로 삼았다고 한다. 또 다른 설에 의하면 11224절기 5일이 1후인 72후를 합한 숫자가 108이며 이는 매년 끊임없이 순환하는 것을 상징한다고 한다.

  신년을 알리는 제야의 종을 우리나라에서는 33번을 치지만 중국에서는 아직도 108번을 친다고 한다. 108번뇌와 108염주에서 108이라는 수()는 우연히 나온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각가지 경계에 부딪치는 입구를 보통 ‘안()·이()·비()·설()·신()·의()’라고 말한다. 즉 눈과 귀, , , , 생각이 있어서 받아들이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오감(五感)에 생각을 보태서 육근()이라고 한다. 이렇게 감각기관으로 잘못 받아들여서 나타나는 여섯 가지 경계가 ‘색()·성()·향()·미()·촉()·법()’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색깔과 소리와 향기와 맛, 그리고 감촉과 느낌인 것이다.

  이것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경계를 말하는데 육경()이라고 한다. 6경에 대하여 보고 듣고 맡고 맛보고 닿고 알고 하는 인식 작용. 곧 안식(眼識)ㆍ이식(耳識)ㆍ비식(鼻識)ㆍ설식(舌識)ㆍ신식(身識)ㆍ의식(意識)을 육식()이라고 한다. 살아있는 존재는 누구나 이것과 마주치게 되어 피할 수가 없다. 육근()과 육경()이 만났을 때 반응하는 것을 육적()이라고 표현한다. 이것은 여섯 가지 도둑을 일컫는 말인데 눈으로 보면 탐심(貪心)이 생기고 좋은 소리만 듣고 싶고 좋은 냄새, 맛있는 음식, 부드러운 감촉을 탐하는 마음이 바로 도적과 같다는 것이다.

  108이라는 숫자의 계산 방법은 몇 가지가 있다. 그 첫 번째, 육근이 육경을 일으키는 경우의 수는 6×6=36가지로 나타나는데, 이것이 전생, 금생, 내생의 3생에 걸쳐 나타나니, 36×3=108이라고 한다. 두 번째, 안 · 이 · 비 · 설 · 신 · 의의 6(六根)이 색 · 성 · 향 · 미 · 촉 · 법의 6(六塵)을 대할 때 호(: 좋아함) · 오(: 싫어함) · 평(: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음)3가지로 분별하기 때문에 총 18가지의 번뇌가 있다. (6 × 3 = 18) 18가지 번뇌의 각각이 다시 염() · 정()2가지로 나뉘기 때문에 총 36가지의 번뇌가 있다. (6 × 3 × 2 = 36) 36가지 번뇌가 다시 과거 · 현재 · 미래의 3(三世)로 나타나기 때문에 총 108가지의 번뇌가 있다. (6 × 3 × 2 × 3 = 108)

  세 번째, 6(六根)6(六塵)을 대할 때 고수(苦受) · 낙수(樂受) · 사수(捨受)3(三受)로 분별하기 때문에 총 18가지의 번뇌가 있다. (6 × 3 = 18) 또한 6(六根)6(六塵)을 대할 때 호(: 좋아함) · 오(: 싫어함) · 평(: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음)3가지로 분별하기 때문에 총 18가지의 번뇌가 있다. (6 × 3 = 18) 따라서 이 둘을 합하여 6근이 6진을 대할 때 총 36가지의 번뇌가 있다. ((6 × 3) + (6 × 3)) = 36)

  이 36가지 번뇌가 다시 과거 · 현재 · 미래의 3(三世)로 나타나기 때문에 총 108가지의 번뇌가 있다. (((6 × 3) + (6 × 3)) × 3 = 108)

  이런 경계에 휘말리다 보면 내가 나임을 잊고 도둑이 내안에 들어와 활개를 친다는 말과도 같은 상황이 된다. 내 안에 내가 너무 많다는 뜻도 될 것이다. 이런 도둑들은 과거에도 있었고 앞으로 올 미래에도 있을 것이다. 결국 내가 아닌 무수히 많은 다른 나의 서식처가 내 몸인 것이다. 여섯 가지 도둑으로부터 내 몸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여섯 가지 입구를 차단하면 된다. 그러나 보고 싶은 것을 보지 않고 듣고 싶은 것을 듣지 않기 위해 눈 감고 귀 막고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살면서 보고 싶지 않은 것도 보아야 하고 듣고 싶지 않은 것도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가(佛家)에서는 항상 부처님의 형상을 보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부처님의 향내를 맡고 부처님께 향배(向拜)하고 항상 부처님만 생각하면서 살아가라는 것이다.

 

새해 첫날 자정, 보신각에서는 제야의 종을 왜 33번 울리는 것일까?

  옛날 지금과 같은 시계가 없던 시대에 선인들은 해를 보고 시간의 흐름을 짐작했겠지만 밤에는 시간을 알기 힘들었다. 그래서 나라에서 백성들에게 밤 시간을 알려줬는데, 12시간 중 밤에 해당하는 5시간(술시~인시)을 초경∼오경으로 나누어 각 경마다 북을 쳤다.

  또 한 각 경은 다시 5점으로 나누어 각 점마다 징이나 꽹과리를 쳤다. 한 경은 오늘날 시간으로 따지면 2시간이고, 한 점은 24분에 해당한다. 그러나 모든 백성들이 이 소리를 다 들을 수는 없었다. 이에 통행금지가 시작되는 이경(10시경)과 통행금지가 해제되는 오경(새벽 4시경)만큼은 종로 보신각에 있는 대종을 쳐서 널리 알린 것이다.

  이는 조선 초기인 태조5(1396)부터 시행되었는데, 도성의 4대문(숭례문, 흥인지문, 숙정문, 돈의문)4소문(혜화문, 소덕문, 광희문, 창의문)을 일제히 여닫을 때 종을 쳤다고 한다. 보신각이라는 오늘의 명칭은 고종 32(1895)부터 사용했으며 당시에는 종루(鐘樓)로 불렸다.

  밤 10시경 28번의 종을 쳤는데 이를 ‘인정(人定)’이라 했고, 새벽 4시경 33번의 종을 치는 것을 ‘파루(罷漏)’라고 했다.

  즉 인정에 치는 종은 통행금지를 알리면서 도성의 문을 일제히 닫았고, 파루에는 통금을 해제하고 도성 8문을 열어 그날의 활동을 시작하는 종을 친 것이다.

  또 28번의 종을 친 것은 우주의 일월성신 28별자리에 밤의 안녕을 기원한 것이고, 33번의 종을 친 것은 제석천(불교의 수호신)이 이끄는 하늘의 33()에게 그날의 국태민안을 기원한 것이라고 한다. 이 같은 연유로 제야의 타종은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시민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를 지닌다.  

  반고(班固)는 백호통의(白虎通義)에서

“움직이는 것으로 종을 치면 양기가 지하에서 나와 만물을 기를 수 있다”고 했다. 제야에 치는 종소리는 인생의 108번뇌가 제야와 함께 모두 사라지고 새해 첫새벽을 연다는 의미가 있다.

“달 지고 까마귀 울어 하늘엔 서리 가득한데

강가 단풍나무, 고깃배 등불 마주하고 시름 속에 졸고 있네

소주성 밖 한산사(寒山寺) 깊은 밤, 종소리가 객선까지 닿는구나.

 

  이 시는 「풍교야박(楓橋夜泊)」이란 시인데 당나라 시인 장계(張繼)는 이 시 한 수로 자신의 이름과 한 산사의 아름다운 종소리를 천하에 알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