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한 날들의 기록22

-4월의 강가



해는 자신의 빛을 균등하게 나누지 못한다

한낮에 몰린 햇빛은 내 몸에 빨판을 대고

수분을 쪽쪽 빨아댄다 한나절

강가에 서있으면 광합성작용으로

짙푸르게 물이 들 것 같다

그래도 좋겠지

뒤늦게 말을 배운 아이처럼 나이 들어

말이 무성해졌다 입 쪽에서

새잎이 나려는지 입이 근질근질하다

그 잎들은 둥글둥글한 활엽수의 이파리

상대방을 자극하거나 공격하는 일은 절대 없다

불화의 상태를 견디지 못하는

편벽한 나무


4월의 강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푸르른 산빛과 내 몸의 궁색한 빛이 섞인다

그 일이 꿈속까지 따라와

산고도 없이 푸른 침엽수 같은 아이를 낳는다

그 아이를 배 위에 올리고 어르다

잠이 깼다 흡족했지만 쓸쓸한 꿈이었다



추석 무렵



지진이 일어났다

땅 속 깊숙이 자고 있던 지진파가

부스럭대며 몸을 일으켰다 그 때 우리는

족발집에서 인간관계의 균열에 대하여

심각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존재의 흔들림에 대하여, 그 흔들림으로

조직이 어떻게 뒤틀리는지 어떻게

혼란에 빠지는지 침을 튀기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사람들은 가게 밖으로 나와 전화기를 들고

불안에 떨었다 멀지 않은 원전을 우려하는

소리도 있었다 중력보다 묵직하게

몸을 끌어당기는 취기를 밀어내려고

나는 눈을 크게 껌벅이는 것이지만

여기, 소주 한 병 더!

족발접시는 비어가고 소주잔은 차올랐다

우리 믿음의 접시는 바닥을 드러내고

울분과 분노와 공포가 코 밑까지 차올랐다

자꾸 누군가를 원망하고 싶은 밤이었다


남은 지진이 간 밤 우리의 침대를 몇 번 흔들었으나

아침이면

선물세트 든 손이 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무겁게 택시문을 열고 나왔다


*1969년 부산 출생. 2006년 제1회 경남작가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굿바이, 겨울』. 한국작가회의, 경남작가회의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