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題


도선사 지장보살상에 웬 까마귀 세 마리 불안하게 왔다갔다 한다 어머니 계신 곳에서 까만 소식 물고 왔는가 미처 무슨 생각을 하기 전에 까악, 하고 울고는 서둘러 날아간다






궁지에 몰린 염소처럼

-김삿갓이라고 불린 사내, 김병연 씨

1863년

3월 29일, 전라도 화순군 동복면 귀암리에서 죽다

김삿갓이라고 불린

사내, 김병연 씨가 세상을 등진 그해

그날은

바람이 몹시 불고, 비가 왔어야 했다

천둥소리는 산야를 부들부들 떨게

했어야 했다


분명, 그날 비가 왔었다

궁지에 몰린 염소처럼 세상 울타리를

들이받으면서* 산


김병연 씨의 깊게 팬 손금 모양의

물줄기는

금방 도랑이 되었다

김병연 씨의 시詩들은,

주인의 죽음을 어떻게 알고 달려왔는지

도랑 위에서

소리소리 지르면서

방울방울 물방울로 흐르다가

곧 터져 버리고 말았다


하늘이 있어서 더 부끄러웠고

이름이 있어서 더 치욕스러운 삶을 살았지만,

하루도 낯선 땅을 밟지 않은 날이 없었다


만나는 나무조차

돌멩이조차

먼저 알은체하였다

김삿갓이라고 불린 사내, 김병연 씨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까지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다


죽음조차 앗아가지 못한,

김병연 씨의

세상과 자신에게 치솟은 울분을

씻어 주기 위해서라도

그해 그날은, 정녕

바람이 몹시 불고, 비가

왔어야 했다


*김병연의 시 「난고, 살아온 길을 돌아보다」에서 빌려옴.



오형근

1955년 서울 출생. 1978년 《시문학》 주최 전국대학문예 시 당선, 1988년《불교문학》과 《불교문예》로 등단. 시집 『나무껍질 속은 따뜻하다』, 『환한 빈자리』, 『소가 간다』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