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웹진]문학마실~...115호...
   2020년 01월

  1. 내일을 여는 창
  2. 소설
  3. 수필
  4. 권서각의 변방서사
  5. 이달의 작가
  6. 동인지를 엿보다
  7. 작품집에 스며들다
  8. 시와 거닐다
  9. 사진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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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2014년 1월 41호부터 2014년 10월 53호까지...
편집자
86549 2014-11-03
552 2016년 12월 외1편/최기종 file
편집자
2132 2017-03-31
17.04월 83호 시 2016년 12월 광화문 광장에서 파도가 되다. 내 작은 물방울 하나 얼마나 절실했으면 스스로 돕는 하늘이 되었을까 내 작은 촛불 하나 얼마나 분노했으면 꺾이지 않는 갈기가 되었을까 광화문 광장에서 노도가 되다. 이건 나라도 아니라고 손 한 번 들었을 뿐인데 그게 민심이 되고 천심이 되고 하야 하라고 적폐 청산하라고 소리 한 번 질렀을 뿐인데 그게 함성이 되고 뇌성벽력이 되고 광화문 광장에서 대도가 되다. 남에서 북에서 지하에서 좀비처럼 모여들었다. 죽어도 좋다고 모여들었다. 성주사람 내 집에 저런 먹구름 들이지 마라. 내 가슴에 유기질 단내 나는 내 가슴에 저런 두려운 것 심지 마라. 내 곧은 눈 화톳불 이글거리는 두 눈에 저런 고약한 사술 피우지 마라. 내 가는 길 닿는 대로 평화이고 푸르던 내 길에 저런 철조망 치지 마라. 내 기침소리 벌겋게 각혈하는 내 기침소리 저런 불구덩이 외세는 OUT아웃 최기종 1992년 교육문예창작회지로 작품 활동. 시집 『나무 위의 여자』, 『나쁜 사과』, 『학교에는 고래가 산다』외. 포엠만경 동인, 목포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장, 전남민예총 이사장 메일 ; jogi-choi@hanmail.net  
551 당신이라는 이름 외1편/윤임수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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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2017-03-31
17.04월 83호 시 당신이라는 이름 강원도 고성 땅 금강산 화암사 일주문 지나 신선봉에 오르다가 만난 수바위 그 커다란 바위틈에 뿌리 내린 채 이슬과 햇살과 바람을 먹고 자랐다는 마디마디 굽은 소나무 두 그루 저 나무를 살게 하는 것은 제 의지일까 바위의 힘일까 곰곰 생각하다가 나를 살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하는데 당연하다는 듯 떠오르는 당신 커다란 바위처럼 두 눈 가득 들어오는 당신 나는 당신이라는 이름 앞에 잠시 마음 모아 깊이 고개를 숙였습니다. 조남희 여사 경기도 의왕시 부곡도깨비시장 개성 있게 살고 싶은 남편이 이름 붙인 개성왕족발 안주인 조남희 여사 언제나 환하게 웃는 모습 참 보기 좋은데 전통시장 명품가게로 인증되어 더 기분 좋게 콩나물국 끓이고 마늘을 써는 조남희 여사 오늘도 별 소득 없이 하루를 마쳤지만 그럭저럭 수고했다고 매운 족발에 소주를 치는 우리들 말 안주에 기꺼이 끼어 사람들이 존함을 물어보면 아직도 어색해요 존함이 뭐예요 물으면 당연히 조남희요 하는데 자꾸 장난한다고 뭐라고들 하니까요 하면서 스스럼없이 키득거리는데 족발도 좋지만 정 가득한 그 웃음이 더 좋아 홀짝, 소주를 한 잔 더 들이켜게 되는데 세상사 근심 걱정일랑 온데간데없어라 술잔을 가득가득 또 채우게 되는 것이니 그리하여 이 저녁도 제법 좋아졌으니 오, 고마워라, 개성 만점 조남희 여사 ●충남 부여 출생, 1998년 실천문학 신인상 당선, 시집 『상처의 집』  
550 성주의 생명 문화유적 기행 외1편/권오윤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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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 2017-03-31
17.04월 83호 시 성주의 생명 문화유적 기행 월항면 인조리에 세종은 태어난 아기들의 태를 묻고 왕자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돌에 새겼다지만 다섯 왕자는 죽임을 당하고 돌마저 깎였더군요. 초전면 소성리 성자가 태를 묻은 산에 철망치고 대포 심어 돌 대신 총칼에 평화를 새긴다는데 성주읍 경산리 성 밖에는 죽어가는 아이를 살리려고 왕버들 심어 지킨 지 오백 년에 쉰 아홉 그루 늙은 나무가 돌보다 평화롭더군요. 봄 한 번 보고 알면 좋겠지만 쉰 번을 넘게 봐도 모르겠다니 예순 번이라도 보여주마. 눈을 가진 자들이라고 다 보는 것은 아니라며 백주 대낮에 그녀가 온 몸을 내보이고 있다. 안동출신 oyoon@hanmail.net  
549 열쇠고리 외 1편/김이숙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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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 2017-03-31
17.04월 83호 시 열쇠고리 칠십 평생 뭔들 맘대로 해본 적 없는 엄마에게 물고기 한 마리 보냈다 뱃속 깊이 감춰둔 둥근 굴레 가두고 싶은 것 다, 철겅 열어젖히고 싶은 것 다, 철겅 겁먹지 말고 위로 아래로 자신있게 가슴지느러미 균형 잡아 헤엄치면 된다 꼬리지느러미 살살 빠르게 살살 느리게 그렇게 속도 조절하면 된다 그러면 된다 물이 흐려도 파문 거세도 괜찮다 괜찮다고 눈만 뜨고 있으라고 한 땀 한 땀 간절함으로 물고기 한 마리, 내게 왔다 웃는다 마흔 살이 웃는다 거울을 보다 문득 문득 일흔 살을 마주칠 때마다 움찔 찬장 구석 단단히 자리 잡은 가스 활명수 찌든 때 가득 가스렌지 위 멀건 흰죽 볼 때마다 덜컥 자꾸만 짓무르는 눈 당기는 대로 늘어나는 검붉은 살가죽이 서러워 못내 나이 듦에 대해 생각하다가 노란 고무줄 땡땡 묶어 고추장 된장 건네주는 일흔 살을 보며 마흔 살이 웃는다 마주 보고 웃는다 경북 상주 출생. 2014년 시집 『밥줄』로 등단. ‘느티나무시’ 동인. 전자주소: hosoo71@hanmail.net  
548 괜찮아 외1편/신구자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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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 2017-03-31
17.04월 83호 시 괜찮아 봄이 와도 오금을 펴지못한 채 옹송거리고 있는 꿈, 고향의 안방처럼 포근하게 품어주는 말, 괜찮아 그 누구에게 든든한 언덕이 되려고 노력했는데도 어긋난 돼지발톱처럼 상처를 주고 누를 끼치게 했을 때도 괜찮아, 뜨거운 사막 맨발로 걸어온 길들이 한갓 물거품이 되어 고개 꺽었을 때도 안개꽃 같이 둘러리가 되어 위로해 주는 말, 괜찮아 모든 걸 다 품어주는 어머니 품속 같은 말랑말랑한 말의 씨앗 괜찮아, 괜찮아, 어깨 다둑여 주는 말, 정말 괜찮아 선비고을 나들이 가다가 도로변에 흐드러지게 흰 쌀밥 한 소쿠리씩 퍼 담고 서 있는 이팝나무를 보다 늘 배가 고파 이슬방울 같은 눈물방울 대롱대롱 매 단 채 노랗게 외꽃 피우던, 베베꼬인 대추나무 한 그루 담벼락에 박혀있던 점쟁이 논실댁 끝분이를 생각하다, 찰랑찰랑 물을 채워놓은 논을 보다 천봉답 논뀌 물싸움으로 꼭두새벽부터 고성이 오가던 욕심쟁이 혹부리 영감님을 생각하다, 나무지개 위에 참꽃을 꺽어 수북이 지고와 쑥스러운 듯 고개 외로 꼬은 채 슬며시 마루에 내려놓던, 상주에서 머슴살러 왔던 고봉밥에 부지런했던 박서방을 생각하다, 삭발당한 등피 두꺼운 능금나무 곁을 지나다 삼대독자 외며느리 입덧에 하회탈 웃음 귀에 건 채, 겨우 꽃 떨어진 콩알만한 풋살구나무 밑을 맴돌던 등이 굽은 등개할매를 생각하다, 검은 히잡을 쓴 채 변신의 날 참고 견디는 인삼밭 보다 봄을 타는 나에게 최고의 명약이라며 사오던 6년근 풍기인삼, 백년해로 약속 어긴 채 푸른 산천 혼자 선경에 던 그를 생각하다, 간밤 내린비에 황사먼지 깨끗이 씻은, 푸른 하늘 두둥실 흘러가는 흰 구름 따라가다 산절로 물절로 속절없이 흘러가는 봄날을 생각하다 경북 약목 출생. 1994년【대구문학】과 1999년 【 불교문예】신인상 시 당선으로 등단 대구문잉협회. 대구시인협회. 불교문인협회. 대구여성문인협회 '솔뫼동인'. 반짇고리문학회 회장 역임. 시집 【 낫골 가는 길]. [ 지금도 능소화는 피고있을까] sgj1918@hanmail.net  
547 그 샘가의 풍개나무/박래녀 image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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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3 2017-03-01
17.03월 82호 소설 그 샘가의 풍개나무 1. 우리 집 장독간 옆에는 깊은 우물이 있다. 우물가에는 두충나무 한 그루 서 있다. 두충나무를 처음 봤을 때는 처녀 팔목만 하던 둥치가 이십여 년이 흐른 지금은 아이 한 둘 낳고 두루뭉술해진 아낙네 허리통만큼 굵어졌다. 나뭇가지는 쫙 벌어져 우물가를 시원한 그늘로 만든다. 나는 가끔 우물가에서 푸성귀를 씻거나 빨래를 하다가 두충나무를 올려다보곤 한다. 두충나무를 보면 그 집 뒤란에 있던 풍개나무가 생각난다. 두충나무와 풍개나무는 전혀 닮지 않았다. 나무 겉피나 나뭇잎 생김새도 영 딴판이고 두충나무는 열매도 없지만 내 눈에는 저것이 풍개나무 아닐까 착각할 때가 있다. 내 기억속의 풍개나무는 둥치가 굉장히 컸고 가지도 무성했다. 풍개도 오지게 달리곤 했다. 겉이 매끈한 녹색일 때는 보이지 않던 풍개가 여름부터 가을 즈음까지 검붉게 익어갈 때면 저절로 손이 갈 만큼 탐났고 새콤달콤한 향기가 온 동네를 감쌌다. 그 집은 친정 이웃에 있었다. 동네 아이들은 그 집 울타리 새에 개구멍을 만들어 놓고 드나들었다. 심술궂게 생긴 인산 아재는 아이들을 몹시 싫어했다. 아이들만 보면 마당 빗자루를 들고 후려치며 풍개나무를 넘보지 못하게 했지만 아이들은 용케 주인 눈을 피해 풍개를 훔쳐 오곤 했다. 나도 몇 번이나 아이들과 어울려 그 집 개구멍을 드나들다가 어머니께 덜미를 잡혔다. 어머니는 내 앞섶에 불룩하게 주워 온 풍개를 압수해서 돼지 막에 던져 버렸다. 돼지들이 살판났다고 달려들어 풍개를 주워 먹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던 나는 급기야 울음을 터뜨렸다. “왜 저걸 못 먹게 하는데? 내가 주운 건데. 옴마가 왜 못 먹게 하는데.” 훌쩍거리며 어머니께 항의를 하자 어머니는 매정하게 “인산 띠 집 새미 가에 한 분만 더 갔다가는 다리 몽디가 뿌러질 줄 알아라. 그 집 풍개는 못 먹는 풍개라니까 말만한 가스나가 왜 이리 말귀가 어둡노 이? 몇 분을 말해야 알아 듣것노. 인산양반한테 붙잡히서 도독년 소리 듣고 볼기 맞아야 정신 차리 것나.” “다른 애들도 다 따 묵는데. 암시랑토 안더라.” 그렇게 어머니께 혼이 나면서도 번번이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개구멍을 드나들었다. 그 집 뒤란은 널찍한 공터여서 아이들이 놀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뒤란이라고는 하나 본채와 사랑채에서도 한참 떨어져 있었다. 원래 그 집에 딸린 텃밭이었던 것을 밭으로 이용하지 않고 뒷마당으로 사용했다. 낮에는 마구간에 있던 소를 끌어내다 말뚝에 매 놓는 자리고 솔가리나 장작 등 나뭇단을 해다가 집채만큼 재 놓는 곳이고 가을이면 짚동을 재 놓는 곳이기도 했다. 그 곳은 우리들이 숨바꼭질 하고 놀기에도 제격이었다. 인산아재만 없으면 그 집 뒤란은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더구나 굵은 풍개나무 아래는 사철 마르지 않는 샘물이 있었다. 아이들은 그 샘가에서 소꿉장난도 하고, 빨래를 하기도 했다. 나는 매번 남쪽으로 뻗어 굵게 자란 우리 집 두충나무 가지에 새끼를 굵게 꼬아 그네를 맸으면 딱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네를 타고 노는 나를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네 하면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그 집의 풍개나무에 걸렸던 그네와 그네를 타는 아이의 모습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내 기억 창고를 뒤집어보면 늘 그 집 뒤란의 풍개나무 가지에는 그네가 매달려 있었다. 그네에는 서너 살짜리 아이가 앉아 있고 누군가 그네를 밀었다. 그네가 마당 쪽으로 휘익 날아오르면 아이가 까르르 웃으며 하늘로 고개를 잔뜩 젖힌다. 아이 얼굴은 보이지 않고 맨살의 다리만 하늘로 솟구친다. 아이는 두 다리를 하늘에 대고 버둥거리며 까르르 까르르 웃는다. 누구일까. 그네를 미는 아이도, 그네를 타는 아이도 기억나지 않는다. 생각날 듯 말 듯 희미한 기억만 간간히 나를 짓누른다. 뭔가 있긴 있는데. 그게 무엇인지 모르겠다. 어릴 적 친구인 순이도 아니고 영희도 아니다. 누굴까. 나는 가끔 그 아이가 누군지 참 많이 궁금하다. 아니, 아이만 궁금한 것이 아니라 새미다. 그 집 뒤란의 샘이 우리 집 장독간 앞의 깊은 우물 같은 그런 깊은 우물로 내 기억창고 깊숙한 곳에 아련하게 자리 잡고 있다. 처녀시절 어쩌다 고향 집에 갔을 때였다. 그 집에 들렀었다. 빈집이었다. 장독간도 세간도 그대로 있었지만 마루에는 먼지가 뽀얗게 앉아 있었다. 집 뒤란을 바라봤다. 뒤란의 풍개나무는 여전히 건재했다. 고목이 된 풍개나무는 볼품이 없었다. 가지를 베어낸 자리마다 굵은 옹이가 박히고 시커먼 구멍이 뚫려 있고 울퉁불퉁하게 변해 있었지만 몸통만은 여전히 실했다. 풍개나무 아래 새미에서 흘러나오는 물도 여전히 맑았다. 풍개나무 가지에 굵은 풍개가 매달려 발그레하게 익어가고 있었다. 군침이 돌았다. 풍개를 따고 싶어 새미가로 다가가던 나는 돌마다 이끼가 파랗게 돋은 새미가 보이자 그 자리에서 멈추어 섰다. 아니 꼼짝도 할 수 없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오금이 저렸다.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왜 그랬을까. 나무에 잔뜩 달린 풍개를 보다가 그 아래 새미에서 도랑으로 졸졸 물을 흘러 보내는 물을 보다가 그냥 돌아 나왔다. “엄마, 그 집이 비었데. 인산아재 죽었다는 것은 알지만 아지매는 어떻게 됐어?” 어머니께 여쭤 봤다. “인산 띠 말이가? 인산양반 죽고 얼매 안 있어 대군가 오데 사는 딸한테 갔제. 가끔 댕기 가기는 한다마는 딸네 집 얹히 사는 기 심든 갑더라.” “인산아재가 험하게 죽었다며? 어떻게 죽었는데?” “풍개나무 가지를 베삤다 아이가. 점쟁이가 그 가지를 베모 죽는다 캤다는데. 풍개나무 가지가 축 늘어져서 새미 속에 뿌리를 박는 기라. 하루는 술이 망깡이 돼 온 인산양반이 ‘이 놈의 벼락 맞을 풍개낭구 땜새 집안에 망쪼 들었다 아이가. 진작 베삐는 걸 놔 돗더니 인자 새미에까지 발을 뻗어’ 함서 벴단다.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고 죽었다 아이가. 인산양반 죽고 인산 띠가 귀신 붙은 풍개낭구라꼬 싹 베삐고 집도 새로 질라 카더마 거기 안 쉬운 기라. 저 풍개낭구 벨 사람이 있어야제. 모다 지 목숨 뺐길까 무서버서 손을 몬 대는 기라.” “진짜 귀신 붙은 풍개나무 맞는 갑네. 굿이라도 해야겠네. 난 이상하게 그 집 풍개나무와 새미만 보면 무서워. 근데도 이상하게 뭐가 자꾸 끌리는 것 같애. 왜 그렇지? 엄마, 혹시 나 어려서 그 집 풍개나무와 그 아래 새미에서 무슨 일 있었나? 인산 아지매한테 맞은 적 있나?” “뭔 소리고? 그래, 맞은 적은 있을 끼다. 밤에 자다 옷에 오좀 쌌다고 아침에 챙이 씌고 소금 얻으로 보냈제. 인산 띠가 주걱으로 빰을 때맀다 카더마. 인산 띠한테 뺨맞고 대성통곡을 함서 왔던 적이 있제. 올매나 무안했는지 그 담부터 인산 띠만 보모 도망 댕깄제.” “아니야, 그것 말고 뭔가 있어. 엄마, 난 물은 안 무서운데 그 새미는 겁나서 옆에 갈 수가 없는 걸. 물귀신이 빨아 댕기는 것 같아서.” “다 큰 아가 별소리 다 한다. 새삼시레 구전재전 이약 꺼낼 일 없다. 그 집은 이자삐고 살아도 탈 없다.” 어머니는 더 이상 그 집 이야기는 하기 싫다는 듯이 등을 돌렸었다. 아침 일찍 우리 집 우물가에 앉았다. 김장을 하려고 배추 100포기를 잘 다듬어 배추 한 포기를 반 토막 내고 반 토막의 중간에 칼질을 했다. 큰 고무 통 세 개를 우물가에 놓고 큰 양은 다래기에 소금을 풀었다. 노란 속살을 드러낸 배추를 담갔다가 건져 고무 통에 차곡차곡 담았다. 속이 꽉 찬 배추 속을 뒤적거리며 굵은 소금도 슬슬 뿌렸다. 소금에 너무 짜게 절여도 배추가 질기고, 너무 싱거워도 김치 맛이 안 난다. 배추 숨을 고루 죽여야 김치가 맛있다. 물론 온갖 양념이 얼버무려져 맛을 내지만 일단은 배추 숨이 알맞게 죽어야 한다. 배추 절이는 일은 계속 구부려서 하는 일이라 허리가 아팠다. 허리를 쭉 펴고 두충나무를 올려다봤다. 나뭇잎 하나 팔랑팔랑 떨어져 우물을 덮은 나무뚜껑 위에 사뿐히 앉는다. 나뭇잎을 쫓던 내 눈이 뚜껑 아래 우물 속으로 빠진다. 우물 속에는 두충나무 가지가 들어가 있을 것이다. 우물 속에는 하늘이 있고, 구름이 있고, 방금 빠진 나뭇잎이 떠 있을 것이다. 둥근 화판에 수묵화 한 점 그려졌겠지. 언뜻 한 아이 얼굴이 떠오른다. 아이가 싱긋 웃는다. 누굴까. ‘너 누구니?’ 아이에게 말을 건다. 우렁우렁 우물 속에 둥근 파문이 이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가 웃는 소리일까. 그 집 뒤란의 새미 속에 빠졌던 하늘이 우리 집 우물 속에도 있을 것이다. 나는 백일몽을 꾼다. 단발머리 여자애가 샘가에 앉아 뭔가를 찧고 있다. 자세히 봐도 쑥인지 풀인지 잘 모르겠다. 납작한 빨래 돌에 풀을 놓고 몽돌로 콩콩 찧었다. 조막손으로 짓뭉개진 풀을 두 손으로 감싸서 이가 빠진 사발에 대고 짰다. 짙은 녹색 물이 뚝뚝 떨어졌다. 물방울이 안 떨어질 때까지 꼭꼭 눌러 짰다. 아이는 그 물을 손가락으로 찍어 혀에 댔다. 인상을 쓰면서 손등으로 입을 닦았다. 그것을 납작한 쑥색 깡통에 담았다. 알맹이는 까먹고 버린 깡통이다. 아이는 풀물이 담긴 깡통을 물 퍼는 박 바가지에 담더니 머리에 이는 시늉을 한다. 바가지에 담긴 깡통이 흔들리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한 아이가 바가지를 이고 샘가를 나와 마당으로 나갔다. 마당가의 울타리 앞에는 멍석이 깔려 있고, 그 위에 머리를 양 갈래로 땋아 늘어뜨린 또 한 아이가 누워 있다. 멍석 한 쪽에는 납작한 돌이 놓여 있고, 돌 위에는 살림살이가 차려져 있다. 뚝배기와 장독 뚜껑, 사발이나 접시, 항아리, 아주 작은 단지 등 질그릇 깨어진 조각이다. 모서리를 돌로 톡톡 깨어 동글납작하게 만든 크고 작은 그릇과 바가지 깨어진 것 등이다. 부엌 살강에 어머니가 그릇을 씻어 엎어 놓았듯이 가지런하다. 단발머니 여자애가 쑥물이 담긴 깡통을 누워 있는 갈래머리 여자애 앞에 놓고 쭈그리고 앉았다. “어무이 약 자실소.” “치아라 고마, 내가 지금 약 물 처지가? 계집년 잘 못 들어와 대 끊어지게 생겼는데. 넘들은 머스마만 쑥쑥 잘도 놓더마. 논 머스마도 몬 키우는 년이 낯데기는 빤빤해 가지고 나가라 고마 딱 뵈기 싫다. 니만 보모 엊지녁에 묵은 밥도 올라 올라쿤다. 구엑질이 난다. 썩 꺼지라는데도” 병자 흉내를 내는 여자애가 윗몸을 발딱 일으켰다. 쑥물이 든 깡통을 마당으로 휙 던져버린다. 도끼눈으로 며느리 흉내를 내는 여자애를 잡아먹을 듯이 째려본다. 참 표독스러운 눈빛이다. 그러더니 ‘아이고 머리야 내 죽것네.’ 하면서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풀썩 드러눕는 시늉을 하다가 다시 벌떡 일어나 삿대질을 하면서 “내가 니 년 땜에 내 명 대로 몬 살끼다. 뵈기도 싫으니 썩 나가래두” 고함을 치다가 다시 머리를 두 손으로 가리고 죽는 시늉을 한다. 시어머니 흉내를 내던 여자애가 다시 발딱 일어나 도끼눈을 뜬다. 며느리 흉내를 내는 여자애를 째려본다. 며느리 여자애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쪼그리고 앉아 훌쩍훌쩍 우는 시늉을 한다. “니 진짜 우는 기가?” 표독스럽게 몰아치던 갈래머리 여자애가 놀라서 우는 아이의 손을 잡았다. “아이다. 내가 진짜 우는 줄 알았더나?” 두 아이가 마주보며 깔깔깔 웃는다. 백일몽에서 깨어보니 배추 백포기는 말끔히 소금물에 절여져 통에 담겨 있었다. 처음 시집 왔을 때 우리 집 우물은 펌프질로 물을 퍼 올려야 했다. 마중물을 부어 힘차게 손으로 펌프를 저어야 물이 펑펑 쏟아졌다. 팔 힘이 약한 나는 늘 물 길어 올리는 것이 너무 힘들어 비지땀을 흘렸다. 펌프질이 맘대로 안 되면 우물의 나무뚜껑을 열고 두레박으로 퍼 올려 써야 했지만 나는 우물의 나무뚜껑을 열지 못했다. 무서웠다. 우물 속을 들여다보는 게 정말 무서웠다. 설령 우물을 덮었던 뚜껑이 열려 있어도, 긴 두레박줄이 우물 속으로 드리워져 있어도 두레박질은 꿈도 못 꾸었다. 허둥지둥 남편을 찾거나 시어른께 도움을 청했다. “얼라도 아니고 번번이 왜 그러냐? 두레박질 못한다는 게 말이 되냐?” 시어른과 남편의 퉁을 먹으면서도 그 버릇은 여전히 고칠 수가 없었다. 대신 얼마 후, 수도꼭지만 틀면 콸콸 쏟아지는 물을 받아 마음껏 쓸 수 있었다. 그가 도시 생활에 길든 아내가 안쓰러워 거금을 투자했던 것이다. 수중 모터를 사서 우물 속에 넣었다. 그 뒤 우물의 뚜껑을 열어젖히거나 우물 속을 들여다 볼 일은 없었다. 가끔 우물 벽도 말리고 우물 속에도 바람 좀 들락거리게 해야 한다고 우물을 덮었던 뚜껑을 열어놓기도 하지만 그 때는 나 스스로 우물을 외면했다. 뚜껑이 덮일 때까지 우물가 쪽으로 눈을 안 돌렸다. 우물과 눈이 마주치면 나도 모르게 그 쪽으로 빨려들 것 같은 위기감을 벗어버릴 수가 없었다. 이십 년을 살면서 익숙해질 때도 됐건만 아직 나는 우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무심히 지나치다가도 은연중에 기피하는 현상을 무어라 말해야 할까. 우물은 내게 늘 풀리지 않는 숙제 같다. 이젠 어떤 이야기든지 털어놔도 될 것 같은데 나는 여전히 털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저녁나절 배추를 씻기 시작했다. 100포기의 절임 배추를 맑게 씻어내려면 물이 한정 없이 필요했다. 수도꼭지를 있는 대로 틀어놓고 철철 흐르는 물에 배추를 씻어 헹구는데 갑자기 수도꼭지에서 물줄기가 가늘어진다 싶더니 뚝 끊어졌다. 수중 모터는 계속 도는데 물이 안 나왔다. 겨우 재벌 씻기에 돌입했을 뿐인데 우물 바닥이 드러났다는 것은 심각했다. 물이 찰 때까지 기다리든가 개울에 가지고 나가서 씻든가 결정을 내려야 할 사항이 된 것이다. “어머니! 어머니!” 나는 새된 소리로 어머니를 불렀다. 방에 계시던 어머니가 놀라 마루로 나왔다. “와 그라노?” “새미 뚜껑을 열어봐야 하는데 예” “와? 새미 뚜껑만 열모 걸음아 날 살려라 캄서 도망치던 아가 우짠 일이고?” “물이 바닥났어 예. 모다는 잘 도는 것 같은데. 새미에 물이 없나봐 예.” “야가 시방 뭔 소리 하는 기고? 새미에 물이 없다니? 올매나 짚은 새민데.” 어머님이 슬리퍼를 찔찔 끌고 우물가로 오셨다. “띠비 함 열어봐라.” “어머님이 열어 보세요. 저는 싫어 예.” “니 참말로 오데가 이상한 거 아이가. 새미 띠비만 열모 난리니 말이다. 그라지 말고 일로 와서 새미 속이나 딜다 봐라. 저 새미 판다고 너거 시아베랑 이웃 아재 몇이서 몇날 며칠을 올매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그래도 무서워서 들어다보는 것은 싫어 예. 물이 있습니꺼?” “니 나가 올해 몇이고? 우리 집에 시집 온지 올매나 됐노? 인자 철 날 때도 됐건만 하는 기 와 그 모양이고. 서너 살짜리 얼나도 아니고.” 나는 얼굴이 벌개져서 어머님의 꾸지람을 고스란히 듣고 있었다. 나는 아직도 우물이라면 진저리부터 친다. 철철 흐르는 개울에 가서는 빨래도 하고, 수영도 하고 잘도 노는데 동네 우물이건, 동네 샘이건 깊은 곳을 내려다보는 것에는 자신 없다. 꼭 누군가 내 머리채를 잡아끌고 들어갈 것 같다. 그 아이만이 아닌 듯한 느낌만으로도 오싹하다. 마흔여섯이라는 나이가 무색하다. 언제까지 어린애처럼 기억창고에 매달려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두려움은 자기 자신 속에서 생기고, 소멸하는 것이라 하지 않던가. 내 속에 있는 두려움은 내가 만든 허상일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장골 서너 질은 족히 될 깊은 우물인데 몇 달 동안 아무리 가물었기로서니 벌써 바닥이 날 리 없다고 하셨다. 수도꼭지를 잠그고 전기 코드를 뺐다. 어머님이 우물을 덮었던 나무뚜껑을 열고 속을 들여다봤다. “니 눈으로 직접 봐라. 나는 눈이 침침해서 안 보인다.” 끝내 나는 우물 속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우물 속을 들여다보는 대신 우물가에 쭈그리고 앉아 눈을 꼭 감고 있었다. 고집이라면 한 고집 하는 줄 익히 아는 시어머니는 더 이상 채근하지 않았다. 얼마나 오래 그러고 있었을까. 발이 저려왔다. “야가, 쪼그리고 앉아 잠이 들었나. 참 별스런 아도 다 보것다. 인자 물 찼을 끼다. 꼭지 틀어봐라. 배추를 어서 씨꺼 놔야 물이 빠지제. 올 가실에는 하도 가물어서 새미 물이 많이 줄었던 기라. 배추 몇 피 씻고 바닥을 드러내는 걸 보니 엔간히 가물긴 했는 갑다. 우리 집 새미는 하도 짚어서 아무리 가물어도 물 떨어진 일은 없다. 쪼매 줄다가 다시 항그석 차 오리니라.” 시어머님이 집안으로 들어가는 발자국소리를 듣고서야 부스스 일어났다. 수도꼭지를 틀었다. 맑고 하얀 물줄기가 거침없이 콸콸 쏟아졌다. 헐렁헐렁 배추를 씻어 소쿠리에 건지며 생각했다. 아무래도 김장 해 놓고 김장김치 몇 포기 담아 친정에 다녀와야겠다고. 가는 길에 이번에는 확실하게 그 집 뒤란에 들려봐야겠다고. 2. 심호흡을 했다. 주춤주춤 새미 곁으로 다가갔다. 고목이 된 풍개나무는 잔등이 뚝 부러진 채 볼품이라곤 없었지만 여전히 새미 가에 건재했고, 샘에는 여전히 물이 넘쳤다. 새미 안에는 가랑잎이 소복이 쌓였고, 붉은 배에 검은 반점을 가진 비단개구리의 서식지로 바뀌었지만 맑은 물은 도랑을 타고 동네 가운데로 여전히 흐르고 있었다. 새미 곁에 바짝 다가섰다. 다리가 달달 떨렸다. 무릎을 꿇고 앉았다. 눈을 감고 손을 뻗쳤다. 물에 손이 닿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나도 모르게 엉덩방아를 찧으며 뒤로 벌렁 넘어졌다. 두 손을 등 뒤의 땅을 짚은 자세로 가랑이를 벌린 꼴이 꼭 그네를 타는 그 아이가 하늘을 향해 다리를 버둥거리며 까르르 웃던 풍경이다. 몸을 젖힌 상태로 하늘을 봤다. 풍개나무 가지 하나가 하늘을 가로질렀다. 나뭇잎 하나 하늘하늘 날아와 내 얼굴에 앉는다. 거기 심장 모양의 검붉은 풍개 하나 대롱대롱 매달려 햇살에 반짝거렸다. 서쪽 하늘로 기울기 시작한 햇살이 내 얼굴을 따갑게 비췄다. “야가, 오데 갔나 했더이 여게 와 있었나?” 순간 친정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윗몸을 일으키고 안자 뒤를 돌아봤다. 어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내 뒤에 와 서 있었다. “청개구리 삼시랑을 타고 났는지. 인산양반이 아무리 호통을 쳐도 그 때 뿌인 기라. 너거들은 꼭 어른들 눈을 피해서 이 새미 가에 와서 놀았니라. 반주깨미도 살고, 술래잡기도 함서. 니 에릴 때 말이다.” “내가 그 일 쳤을 때가 몇 살 때였어?” “그 일? 죽은 니 동상 말이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렴푸시 떠오르는 것은 저 풍개나무가 그 때는 억수로 컸던 것 같은데. 지금은 아무리 봐도 둥치만 컸제 그네를 맬만한 가지가 안 보이네. 어째서 내 기억에는 저 풍개나무에 그네가 매달려 있을까?” “풍개낭구에 그네가 매어 있기는 했제. 그네 맸던 가지는 그 때 끊어 불 땠다. 쪼무래기들이 뒷마당에 나와 놀고로 해 논기 탈이었어. 어른들 잘못이 더 컸던 기라. 인산양반이 험상궂게 생겼어도 아~들 한테는 자상한 아부지였던 기라. 우에 가스나들이 자꾸 그네 타령을 하자 저 낭구 가지에다 새끼를 꼬아 맸제. 앉아서만 노라꼬. 널빤지도 넙직한 걸 대 놨던 기라. 그 풍개낭구 가지는 새미랑 반대쪽으로 뻗은 데다 거기는 편편했거든. 아~들이 놀기에는 안성맞춤이라 별 걱정 안 한 기라. 그 뒤에 저 풍개낭구 그네 맸던 가지 베고 인산양반이 시름시름 앓다 갔제. 인산양반 그리 가고 저 낭구도 시나브로 말라 가더마. 아직 안 죽고 살아 있네.” 여름방학 때면 동네 조무래기들은 늘 그 집 뒤란의 울타리에 개구멍을 냈다. 주인이 없을 때는 그 개구멍으로 들어가 샘가에서 놀았다. 샘은 맑았고 그다지 깊어 보이지 않았지만 물은 늘 철철 넘쳐나 도랑으로 이어졌다. 도랑은 제법 너르게 반석이 깔려 있었다. 도랑 역시 깊지 않아서 아이들이 물장구치고 놀기에도 제격이었고, 풍개나무 가지에 매달렸다가 도랑으로 뛰어내리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덜 익은 시큼한 풍개를 따 먹으며 배고픔을 삭이는 것도 좋았다. 하지만 나는 거기 끼일 수 없었다. 언제부턴지 모르지만 풍개나무와 새미가 내겐 사천왕처럼 무서웠다. 보리타작을 할 즈음이었다. 초여름이라 덥고 후덥지근한 날이었나 보다. 학교를 파하고 집에 오자 집이 텅 비어 있었다. 배가 고파 밥솥을 열어봤지만 고구마도 감자도 없었다. 그 순간 그 집 뒤란의 풍개가 떠올랐다. 꿀꺽 군침을 삼켰다. 아직 단맛이 덜 들었지만 그게 대순가. 시큼한 것이 더 입맛을 돋울 나이였다. 하지만 나는 외면했다. 책 보따리를 마루에 던져놓고 찬물 한 바가지로 헛헛한 뱃속을 채우고 마루에 앉아 무료하게 햇살바라기를 하는데 삽짝에서 친구들이 불렀다. 아랫마을에 사는 영이와 숙이었다. “우리 그 집에 풍개 따 무로 가자. 아까 살짝 가 봤는데 아무도 없더라.” 숙이는 싫다는 나를 끌고 그 집의 뒤란으로 달려갔다. 울타리에 개구멍을 내고 그 집 뒤란으로 숨어들었다. 나는 풍개나무와 샘에서 멀찍이 떨어진 사랑채 처마 밑에서 망을 보고 친구들은 풍개나무 둥치에 올라가 가지를 잡고 발로 쿵쿵 굴렀다. 풍개가 밤송이처럼 후드득 떨어졌다. 밑에 떨어진 것은 나중에 주워 먹어도 된다면서 그 애들은 나무둥치에 올라앉아 손에 잡히는 것을 따서 먹었다. 두 아이는 굵은 나뭇가지에 걸터앉아 다리를 대롱대롱 흔들며 깔깔댔다. 나는 불안해 죽겠는데. 아니나 다를까. 숙이가 휘청거리는 나뭇가지를 타고 미끄러졌는데 하필이면 새미 속으로 첨벙 쳐 박혔던 것이다. 하필이면 그 순간, 들에 나갔다 들어오던 인산 아주머니가 그 광경을 목격했다. “아이고, 우짜꼬, 저 일을 우짜고.” 하면서 달려오던 아주머니 얼굴이 백납처럼 하얗게 질려 샘가에 퍼질러 앉는 것을 봤다. 순간 내 입이 딱 벌어졌다. 다리는 자석에 붙은 쇠붙이가 되었다. 일은 순식간에 벌어졌고, 나는 그 자리에 서서 달달 떨었다. 새미에 떨어진 숙이는 흙탕물을 뒤집어쓰고 벌떡 일어났다. 물은 숙이의 허벅지밖에 안 닿았다. 숙이는 아무 상처 없이 물만 뒤집어쓰고 새미에서 제 발로 나왔다. 그 때였다. 샘가에 퍼질러 앉았던 아주머니가 벌떡 일어나더니 내게 달려왔다. “대번에 이것을 그냥” 하면서 내 팔을 휙 낚아채더니 사정없이 등짝을 후려쳤다. 숙이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을 본 순간 나도 넋이 반쯤 빠져있었다. 정신을 수습하지 못한 멍한 상태에서 아주머니께 호된 등짝 세례를 받자 앞으로 푹 꼬꾸라졌다. 아주머니는 그래도 성에 차지 않는지, 처마 밑에 재인 나뭇단에서 회초리 감을 빼내 나를 사정없이 때리시며 이렇게 사설을 읊었다. “아이구 이년아, 내가 니 때매 몬 산다. 내캉 무슨 원수가 졌기에 또 이라노. 니만 보모 내가 소름이 끼친다. 저 풍개낭구가 귀신 붙은 기 아이고, 니가 귀신 붙은 년이다.” 영문도 모르고 매 타작을 당하는 나를 보자 숙이랑 영희는 내 뺐다. “아, 고마 잡아라. 너머 아 잡것다.” 험상궂게 생긴 인산아재가 나타났다. 아주머니는 슬그머니 내 팔을 놓았고, 나는 손살 같이 달려 우리 집으로 줄행랑을 쳤다. 달려가는 내 등 뒤에 사정없이 날아와 꽂히는 화살이 있었다. “저걸 그냥! 당신이 저 가스나 역성을 든께 저기 버르장머리가 없이 또 우리 집에 들락날락 안 하요. 아를 우찌 키우길래 저 모양인지. 우리 아를 자가 밀었다는 거 당신 잊었소. 내가 저 가스나만 보모 가심이 갈갈이 찢어지는데. 차라리 이사를 나가든지 풍개낭구를 베삐든지 해야지. 이라다가 나도 내 명대로 몬 살고 죽것소. 내 자슥 생각하면 지금도 간이 벌렁벌렁한데. 저 가스나 커는 거 보모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나는데.” “됐다 고마. 저 집도 마찬가지다. 함부레 씰데없는 말 하지 마라. 저 아가 미는 거 본 사람 없다 캐도. 별일 없시모 됐제. 저 낭구가 문제다. 내가 저 낭구를 베삐야 탈이 없제.” “아이가, 저 낭구 베모 클 난다는 말 못 들었소. 함부레 벨 생각 마소. 목신이 또 한 번 더 노하모 우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일이요. 올 가실에는 푸닥거리를 좀 크게 해야겠소.” 나는 눈물 자국을 없애고 집으로 갔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오후 내내 만화책을 보며 방안에 있었다. 저녁에 집에 오신 어머니께서 나를 불렀다. “아까 올매나 놀랬노. 인산 띠도 성이 많이 났는 갑다. 매 맞을 짓 했다. 새미가 안 짚어서 다행이지 전에 맹키로 짚었시모 우짤뿐 했노. 거게는 가지마라 쿵께 말라 갔더노?” “숙이랑 영이가 와서 자꾸 가자캐서 예.” “그 아아들이 가자캐도 니는 절대로 가서는 안 되는 기다. 알것제?” 어머니는 내 이마를 짚어보고, 내 다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인산아주머니께 맞은 자리가 아렸지만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다. 밤에 작은 방에서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도란도란 주고받는 소리를 들었다. “내사 마 그 때 생각하모 또옥 인산 띠 보기 미안해서. 그란데 또 이런 일이 벌어질 뿐 했으니 인산 띠도 많이 놀랬을 끼요. 얼라가 올매나 놀랬는지 얼굴이 잘 익은 탱자 같소. 너머 귀한 가스나를 그래 패모 우짤끼고.” “괘한타. 이웃 간에 그만한 일로 다툴 거 없다.” “인산 띠는 저 풍개낭구를 베삐든지 새미를 메카든지 하제 와 저대로 두고 속을 써카꼬. 저 풍개낭구 볼 때마다 소름이 돋는데. 이라다가 또 생떼 겉은 아 잡을까 겁납니더. 저거 아만 빠져 죽은 기 아니지만도 우리 선이 볼 때마다 내 가심도 먹먹한데. 선이를 보는 인산 띠 맘도 내 모를 바는 아니지만 내가 또옥 인산 띠만 보모 죄인이 되는데. 아무리 우리 아 잘못이 아니라지만 사람 맘이 그런 기 아인기라 예.” “우리한테 맺힌 기 많다는 뜻이제. 그 맴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맞십니더. 4대 독자였는데.” 그날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서럽게, 서럽게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그 집의 새미 바닥은 더 얕아졌다. 동네 장정 서넛이 힘을 모아 황토와 잔돌을 져다 섞어 매웠다고 했다. 서너 살짜리 아이가 들어가 놀아도 될 만큼, 도랑과 비슷하게 반반하게 만들어졌다고 했다. 바가지로 살살 물을 퍼내야 흙탕물이 안 일어날 정도로 그렇게 메워버렸던 것이다. 그것보다 더 확실한 것은 그 뒤로는 아이들은 물론 나도 그 집 뒤란의 새미에 가서 노는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낮에도 그 집 근처에도 안 갔지만 밤에는 마당에 나와도 그 집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대나무 숲이 바람에 우우 흔들리는 소리가 꼭 새미에 빠져 죽었다는 아이의 흑흑 우는 울음소리 같았고, 하얀 소복을 입고 머리를 푼 여자가 내게 오라고 손짓하는 것 같아서 후닥닥 방으로 뛰어들곤 했다. 밤마다 가위 눌림에 놀라 식은땀을 흘리며 깨어나기도 했었다. 나는 초등학교를 마치자마자 언니를 따라 도시로 나가 살면서 어른이 되었다. 어른이 되어도 그 집 뒤란의 풍개나무와 샘을 생각하면 얼굴 윤곽 밖에 떠오르지 않는 한 아이의 희미한 모습이 기억나고 온 몸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가끔 고향에 가면 그 집과 풍개나무와 샘의 안부가 궁금했다. “옴마, 인산아지매는 아직 거기 사시는가예?” “이사 간 지가 오래 됐제. 한분 씩 댕기로 온다. 조만간 여게 와 살것다더라. 저거 사우가 집 지어 준다 캤단다.” “옴마, 그 때 죽은 아이 이름이 뭐지? 인산아지매 집 아들 말이야. 아직 궁금한 것은 왜 내가 그 애의 죽음과 얽혀 있는지 이해가 안 돼. 나도 어렸다는데. 내가 우물과 샘을 무서워하는 것과 연관이 있다는 것은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정확한 이야기는 아무도 해 주지 않아서 몰라.” “모르것제. 모두 쉬쉬 했으니. 머 좋은 일이라꼬 미주알고주알 말하것노. 모를수록 좋은 긴데. 그 아 이름이 석이였제. 4대 독자였어. 니보다 두 살이 아래였다. 니 동생하고 동갑이었제. 인물이 참 좋았니라. 대장부 감이었제. 인산양반이랑 너거 아부지랑 우스갯말로 사돈 사돈 함서 친했던 기라. 머스마가 또옥 쌀강아지 같앴건마. 아가 너무 잘생겨도 귀신이 시샘을 한다더니 그랬는지도 모르제. 그래서 애기들 보고 ‘허 고놈 밉상이네.’이래야 귀신이 안 잡아 간다 안하나. 니가 대엿 살 때제. 인산 띠가 좀 모진 데가 있니라. 그날이 오일장이었단다. 장에 간다고 니 불러서 석이 좀 데리고 놀아라 캤다더마. 그 아는 울고불고함서 지 에미 따라갈라 쿠다가 골목에서 매차리로 맞고 집으로 돌아왔제. 그 아가 울면서 우리 집에 온 기라. 니는 석이를 달래서 니 동생 경자랑 셋이서 손잡고 석이 저거 집에 간기라. 나도 등 너머 밭에 갔었제. 너거 엉가 핵교 파하고 올 때가 되서 탐탐 믿었던 기 화근이었제. 그 집 뒤란이 따시거든. 새미에 물도 있으니 반주깨미 살기도 좋고.......” 어머니는 그 대목에서 긴 한숨을 쉬었다. 수십 년이 흘러도 엊그제 일처럼 선명한지 흐릿한 눈자위가 불그스름하게 변하는 것이 보였다. 나는 괜한 말을 꺼냈다 싶어 후회하면서도 겉으로는 멀쩡한 척, 너스레를 풀었다. “언제부턴지 모르지만 나도 알았어. 나 때문이란 거. 할매가 썽만 나모 나를 꾸짖으면서 그랬던 거. ‘니가 너머 집 대 끊었다.’고. 인산 아지매는 내가 참 미웠을 기라. 그 집 할매 무섭었잖아. 인산아지매가 그 할매한테 오지게 구박 받고 살았잖아. 동네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이었는데....... 그게 다 나 때문이었다니. 인산아지매는 내가 얼마나 미웠을까.” “그랬것제. 너거 아부지가 그러데. 죽은 자슥보다 산 자슥이 낫다고. 니랑 경자가 둘 다 새미에 빠져 죽었다모 우리 심정이 우떻것느냐고. 니 많이 예뻐하라 쿠데. 너거 아부지가 니를 애지중지 한 것도 다 그런 깊은 뜻이 있었던 기 아닌가 싶다.” 울컥 목젖이 아파왔다. 그랬었구나. 행여나 내가 어린 기억에 상처받을까봐 그렇게 애지중지 하셨구나. 아버지의 너른 가슴을 진작 느낄 수 없었던 게 한스러웠다. 더구나 석이를 잃고 혼절했다 일어난 인산아주머니는 오래오래 병상에 계셨다. 그리고 아주머니는 다시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석녀가 되었다. 나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지도 못한 채 우물과 풍개나무와 아이 사이에는 뭔가 있는 것 같은 흐릿한 안개 속을 헤매면서 어른이 되었다. 그렇다면 우물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그 아이의 얼굴이 인산 아주머니 아들이었단 말인가. 내 동생이 아니라. 우물과 풍개나무를 떠올리면 오금이 저렸던 것도 두 어머니의 고통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내 어린 가슴 깊숙이 난 상흔 자국이 아팠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근데 엄마, 정말 어쩌다 그렇게 됐다는 거 아는 사람 있어?” 어머니는 고개를 저었다. 나를 아무리 다그쳐도 경자를 그네 태워줬다는 말만 했단다. 다만 추론을 했을 뿐이다. 석이가 풍개를 따 먹으려다 물에 빠지게 되었고, 경자를 그네에 앉히고 밀어주던 내가 석이를 건지러 간다고 그네를 놓치는 바람에 경자가 그네에서 떨어져 새미에 빠졌고 두 아이가 허우적거리자 무서워진 내가 어른들을 부르러 뛰어갔을 것이라고. “왜냐면 말이다. 니가 얼굴이 파랗게 질려서 밭으로 달려온 거야. ‘옴마 경자가, 석이가 새미에 빠졌어. 새미에 빠졌어.’ 하더니 그 자리에 픽 자빠졌제. 나는 부랴부랴 니를 업고 달려왔지만 내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두 아이는 가 삤더라. 나들이 갔던 인산양반이 돌아와 발견한 모양이야. 인산양반이 건져놓고 넋이 빠져 있더마.” 3. 얼마 전, 친정어머니가 아파 간병을 하러 친정에 갔을 때였다. 그 집이 사라져버렸다. 그 집 뒤란에 있던 풍개나무도, 샘도 사라져버렸다. 움푹 꺼져서 굼티 집이라 불리던 집터가 쑥 올라와 그 집 뒤란은 공터와 같이 반반하게 바뀌어버렸다. 더구나 그 옆에는 낡은 재래식 집이 아니라 현대식으로 아담하게 꾸민 양옥 한 채가 아늑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엄마, 그 집이 없어졌네. 새 집이 들어섰는데. 누가 들어와 살아?” “인산 띠가 도로 왔단다.” “그 귀신 붙은 풍개나무랑 새미는 어떻게 치우고?” “시님을 모시다가 굿을 크게 했니라. 그라고 굴착기로 풍개낭구는 뿌리째 빼 삐고 새미는 큰 관을 땅 밑으로 짚이 묻어서 집 밖으로 빼 내고, 그 위에 흙과 돌을 몇 차 갖다 붓다. 그라고 공골을 뚜껍고로 쳤다. 인산 띠도 인자 편할 끼다.” “진작 저리 만들지. 흉가로 있어 늘 찝찝했는데. 내 속도 후련하네.” 한참 어머니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점심 준비를 하는데 손님이 오셨다. “나도 밥 한 숟가락 주나. 혼자 밥 묵기 싫어서 밥내 맡고 왔다. 밥 있나?” 하면서 들어서는 사람이 있었다. 인산아주머니였다. 이십 수 년 만에 처음 보는데도 늙지도 않으셨다. 여든 여섯이라는데 너무 정정하셔서 놀랐다. 친정어머니보다 대여섯 살은 많으셨지만 어머니보다 훨씬 젊어보였다. 잘 오셨다고, 어머니와 함께 겸상을 봐 드렸다. 그 뒤부터 밥 때만 되면 찾아오셨다. 밥 잘 드시고 돌아가면서 하는 말은 늘 이랬다. “사돈, 너거 선이 덕분에 한 끼 잘 묵고 간다. 내가 안 죽고 이리 오래 정정하게 사는 것도 알고보모 다 업인기라. 선이 니는 내한테 밥 좀 해 조도 된다. 내가 니 커는 거 봄서 참 많이 아팠니라. 인자 니도 늙는 갑다. 머리가 하얀 것을 보니. 너거 옴마한테 잘 해려이. 너거 옴마가 내한테 참 잘했니라. 그 속 우찌 모르 것노. 그렇제 사둔.” “하모, 선아, 우리 사돈 맺은 거 니는 모르끼다만 우리는 사돈이다. 니도 인자 아지매라 쿠지 말고 사돈어른이라 캐라. 뭔 말인고 하니 석이랑 경자를 영가 혼례 치라 준 지도 꽤 오래 됐다. 우리 둘이서 그렇게 해 준 기라. 인산양반 가고 나서.” 이젠 나도 털어버리고 살아도 좋을 것 같다. 우물 속의 아이도 내 마음에서 보내버리자. 그 아이가 석이든 경자든 아이에게서 가벼워지는 길이 남은 내 인생을 편하게 해 주는 길이리라. 집에 돌아오는 즉시 눈 딱 감고 우물의 뚜껑을 열었다. 우물 속을 들여다봤다. 우물 속에는 여전히 두 아이가 웃고 있었다. 두충나무 잎 하나 떨어진다. 두충나무 잎은 작은 주낙배로 변해 두 아이를 태우고 하늘로 오른다. 나는 손을 흔들었다. 아이도 손을 흔들었다. ‘잘 가라. 다음 생에 우리 더 좋은 인연으로 만날 수 있을 거야.’  
546 108과 33이라는 숫자의 비밀/김우출 file
편집자
1671 2017-03-01
17.03월 82호 수필 108과 33이라는 숫자의 비밀 사찰에서는 종을 왜 백 여덟 번 칠까? 종은 장중하면서도 맑은 소리가 나는 까닭에 예부터 사찰의 중요 법기(法器) 중의 하나로 여겼다.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종을 치는 전통은 502년~549년 중국남조 양무제(梁武帝) 때부터 시작되었다. 양나라 초대 황제였던 무제는 불교를 장려하여 문화를 발전시켰다. 양무제는 죄를 짓고 깨우침도 없이 죽음에 이르는 백성들을 보며 그들의 사후가 걱정되었다. 어느 날 양무제는 고승 보지(寶志)화상을 찾아가 가르침을 청했다. “어떻게 해야만 지옥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이에 화상은 “업보(業報)의 고통은 일시에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그러나 만약 종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잠시나마 고통을 멈출 수는 있을 겁니다” 라고 답했다. 양무제는 즉시 조서를 내려 사찰에서 매일 종을 치도록 했다고 한다. 사찰에서 사용하는 종은 아침저녁 시간을 알릴 때와 사람들을 소집할 때 치는 범종과 법회나 경축행사에서 불사의 시작을 알리는 환종이 있지만 이외에도 기상, 식사, 예불, 취침 등 명령을 전달할 때에도 종을 쳐서 그 소리를 사용했다. 당나라 회해선사(懷海禪師)는 백장청규(百丈淸規)에서 “총림의 호령은 큰 종소리로 시작된다” 라고 했을 정도로 승려들은 종소리를 경계로 삼아 수련을 했다고 한다. 이 책에는 “새벽종은 긴 밤을 열고 잠에서 깨어나게 하는 것이고 저녁 종은 어두운 미혹에서 깨어나게 하는 것이다. 종은 청성한 마음으로 쳐야 소리가 맑게 울려 퍼지며, 무릇 36번씩 3차례 종을 치는데 총 108번을 친다.” 라는 말이 나온다. 그럼 왜 하필 108번일까? 여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주역(周易)으로는 9는 상서로운 숫자로서 9의 배수인 108을 지고무상(至高無上)을 상징하는 의미로 보았으며, 불교(佛敎)에서는 사람의 번뇌가 연중 108가지라 종을 108번을 쳐서 인간의 모든 번뇌를 제거하는 의미로 삼았다고 한다. 또 다른 설에 의하면 1년 12달 24절기 5일이 1후인 72후를 합한 숫자가 108이며 이는 매년 끊임없이 순환하는 것을 상징한다고 한다. 신년을 알리는 제야의 종을 우리나라에서는 33번을 치지만 중국에서는 아직도 108번을 친다고 한다. 108번뇌와 108염주에서 108이라는 수(數)는 우연히 나온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각가지 경계에 부딪치는 입구를 보통 ‘안(眼)·이(耳)·비(卑)·설(舌)·신(身)·의(意)’라고 말한다. 즉 눈과 귀, 코, 혀, 몸, 생각이 있어서 받아들이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오감(五感)에 생각을 보태서 육근(六根)이라고 한다. 이렇게 감각기관으로 잘못 받아들여서 나타나는 여섯 가지 경계가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색깔과 소리와 향기와 맛, 그리고 감촉과 느낌인 것이다. 이것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경계를 말하는데 육경(六境)이라고 한다. 이 6경에 대하여 보고 듣고 맡고 맛보고 닿고 알고 하는 인식 작용. 곧 안식(眼識)ㆍ이식(耳識)ㆍ비식(鼻識)ㆍ설식(舌識)ㆍ신식(身識)ㆍ의식(意識)을 육식(六識)이라고 한다. 살아있는 존재는 누구나 이것과 마주치게 되어 피할 수가 없다. 육근(六根)과 육경(六境)이 만났을 때 반응하는 것을 육적(六賊)이라고 표현한다. 이것은 여섯 가지 도둑을 일컫는 말인데 눈으로 보면 탐심(貪心)이 생기고 좋은 소리만 듣고 싶고 좋은 냄새, 맛있는 음식, 부드러운 감촉을 탐하는 마음이 바로 도적과 같다는 것이다. 108이라는 숫자의 계산 방법은 몇 가지가 있다. 그 첫 번째, 육근이 육경을 일으키는 경우의 수는 6×6=36가지로 나타나는데, 이것이 전생, 금생, 내생의 3생에 걸쳐 나타나니, 36×3=108이라고 한다. 두 번째, 안 · 이 · 비 · 설 · 신 · 의의 6근(六根)이 색 · 성 · 향 · 미 · 촉 · 법의 6진(六塵)을 대할 때 호(好: 좋아함) · 오(惡: 싫어함) · 평(平: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음)의 3가지로 분별하기 때문에 총 18가지의 번뇌가 있다. (6 × 3 = 18) 이 18가지 번뇌의 각각이 다시 염(染) · 정(淨)의 2가지로 나뉘기 때문에 총 36가지의 번뇌가 있다. (6 × 3 × 2 = 36) 이 36가지 번뇌가 다시 과거 · 현재 · 미래의 3세(三世)로 나타나기 때문에 총 108가지의 번뇌가 있다. (6 × 3 × 2 × 3 = 108) 세 번째, 6근(六根)이 6진(六塵)을 대할 때 고수(苦受) · 낙수(樂受) · 사수(捨受)의 3수(三受)로 분별하기 때문에 총 18가지의 번뇌가 있다. (6 × 3 = 18) 또한 6근(六根)이 6진(六塵)을 대할 때 호(好: 좋아함) · 오(惡: 싫어함) · 평(平: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음)의 3가지로 분별하기 때문에 총 18가지의 번뇌가 있다. (6 × 3 = 18) 따라서 이 둘을 합하여 6근이 6진을 대할 때 총 36가지의 번뇌가 있다. ((6 × 3) + (6 × 3)) = 36) 이 36가지 번뇌가 다시 과거 · 현재 · 미래의 3세(三世)로 나타나기 때문에 총 108가지의 번뇌가 있다. (((6 × 3) + (6 × 3)) × 3 = 108) 이런 경계에 휘말리다 보면 내가 나임을 잊고 도둑이 내안에 들어와 활개를 친다는 말과도 같은 상황이 된다. 내 안에 내가 너무 많다는 뜻도 될 것이다. 이런 도둑들은 과거에도 있었고 앞으로 올 미래에도 있을 것이다. 결국 내가 아닌 무수히 많은 다른 나의 서식처가 내 몸인 것이다. 여섯 가지 도둑으로부터 내 몸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여섯 가지 입구를 차단하면 된다. 그러나 보고 싶은 것을 보지 않고 듣고 싶은 것을 듣지 않기 위해 눈 감고 귀 막고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살면서 보고 싶지 않은 것도 보아야 하고 듣고 싶지 않은 것도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가(佛家)에서는 항상 부처님의 형상을 보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부처님의 향내를 맡고 부처님께 향배(向拜)하고 항상 부처님만 생각하면서 살아가라는 것이다. 새해 첫날 자정, 보신각에서는 제야의 종을 왜 33번 울리는 것일까? 옛날 지금과 같은 시계가 없던 시대에 선인들은 해를 보고 시간의 흐름을 짐작했겠지만 밤에는 시간을 알기 힘들었다. 그래서 나라에서 백성들에게 밤 시간을 알려줬는데, 12시간 중 밤에 해당하는 5시간(술시~인시)을 초경∼오경으로 나누어 각 경마다 북을 쳤다. 또 한 각 경은 다시 5점으로 나누어 각 점마다 징이나 꽹과리를 쳤다. 한 경은 오늘날 시간으로 따지면 2시간이고, 한 점은 24분에 해당한다. 그러나 모든 백성들이 이 소리를 다 들을 수는 없었다. 이에 통행금지가 시작되는 이경(밤 10시경)과 통행금지가 해제되는 오경(새벽 4시경)만큼은 종로 보신각에 있는 대종을 쳐서 널리 알린 것이다. 이는 조선 초기인 태조5년(1396년)부터 시행되었는데, 도성의 4대문(숭례문, 흥인지문, 숙정문, 돈의문)과 4소문(혜화문, 소덕문, 광희문, 창의문)을 일제히 여닫을 때 종을 쳤다고 한다. 보신각이라는 오늘의 명칭은 고종 32년(1895년)부터 사용했으며 당시에는 종루(鐘樓)로 불렸다. 밤 10시경 28번의 종을 쳤는데 이를 ‘인정(人定)’이라 했고, 새벽 4시경 33번의 종을 치는 것을 ‘파루(罷漏)’라고 했다. 즉 인정에 치는 종은 통행금지를 알리면서 도성의 문을 일제히 닫았고, 파루에는 통금을 해제하고 도성 8문을 열어 그날의 활동을 시작하는 종을 친 것이다. 또 28번의 종을 친 것은 우주의 일월성신 28별자리에 밤의 안녕을 기원한 것이고, 33번의 종을 친 것은 제석천(불교의 수호신)이 이끄는 하늘의 33천(天)에게 그날의 국태민안을 기원한 것이라고 한다. 이 같은 연유로 제야의 타종은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시민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를 지닌다. 반고(班固)는 백호통의(白虎通義)에서 “움직이는 것으로 종을 치면 양기가 지하에서 나와 만물을 기를 수 있다”고 했다. 제야에 치는 종소리는 인생의 108번뇌가 제야와 함께 모두 사라지고 새해 첫새벽을 연다는 의미가 있다. “달 지고 까마귀 울어 하늘엔 서리 가득한데 강가 단풍나무, 고깃배 등불 마주하고 시름 속에 졸고 있네 소주성 밖 한산사(寒山寺) 깊은 밤, 종소리가 객선까지 닿는구나.“ 이 시는 「풍교야박(楓橋夜泊)」이란 시인데 당나라 시인 장계(張繼)는 이 시 한 수로 자신의 이름과 한 산사의 아름다운 종소리를 천하에 알렸다고 한다.  
545 Y 외1편/차영호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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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 2017-03-01
17.03월 82호 시 Y 내가 사는 길목마다 니 몸내 나지 않는 곳 있을까 마음 속 체 눈을 더 성긴 것으로 바꾸어도 헛일 얼기미에조차 얼금 얼금 걸리니…… 상괭이*도 너끈히 삐져나갈 만큼 코가 큰 그물로 교체하여야겠다 물밑바닥 암초에 걸려 추 다 떨어지고 찢어진 그물이 풍력발전기 날개처럼 너풀거리는데 속살 속살 걸려 올라오는 목소리 목성 골짜기 깊숙하게 말을 숨겨도 저만치 안개 낀 성간星間에서 하늘 하늘 훌라후프 돌리는 허리 사랑의 흔적은 푸른 바다에서 작살에 찔린 물고기의 피같이 붉게 번지니 아직은 가본 적 없는 우주모퉁이 어디쯤 니 그림자 어룽이지 않는 곳 없을까 * 쇠돌고래 명命 해삼이 지 먹을 게 없으면 먼저 내장을 버리고 몸무게 줄여 버틴다하네 그런 줄도 모르고 나는 해삼을 썰다가 후루룩 문어는 먹을 게 없으면 지 다리를 뜯어먹으며 새 다리가 돋을 때까지 기다린다네 그런 줄도 모르고 나는 삶은 문어다리를 질겅질겅 온갖 것들로 채워진 나의 장기臟器여 우리도 열흘쯤 굶게 되면 베갯잇이라도 뜯어먹고 웅크리겠지 그런 줄도 모르고 누군가 확인해 볼 거야 발길로 툭툭 1986년 《내륙문학》으로 작품 활동. (사)한국작가회의 회원, (사)우리시 회원. 시집 『어제 내린 비를 오늘 맞는다』, 『애기앉은부채』, 『바람과 똥』 등 youngghc@hanmail.net  
544 폐허 외1편/정훈교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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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0 2017-03-01
17.03월 82호 시 폐허 바람이 드나들던 그곳에 몇 개의 못 자국만 한 때, 이승의 이빨자국인 것처럼 웅성거리고 있다 당신이라는 문장을 읽다, 골반을 드러낸 채로 저녁이 온다 하얀 눈밭을 지나 산 하나를 지우며 당신이 온다 며칠 내내 입으로만 전해지던 소문이 마침내 발 앞에 내려앉는다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당신이 어제 문을 닫았다는, 당신의 빈자리가 늘수록 골목의 그림자는 더 짙게 눕는다 점멸등처럼 말을 더듬거리던 당신이 오늘은 아예 문을 닫는다 못 볼 걸 많이 봤다며 결국엔 말을 닫은 것이다 아파트는 그대로고 골목만 낡아가는, 저녁은 그대로고 당신만 낡아가는, 아주 오래 된 저녁을 열고, 눈발이 날린다 나무로 된 절름발이 의자 위로 당신의 눈동자가 자꾸만 쌓인다. 정훈교 2010년 『사람의문학』 등단, 시집 『또 하나의 입술』과 시에세이집 『당신의 감성일기』가 있음. 시집서점 겸 출판사 <시인보호구역> 대표. 메일 : poetry2000@daum.net 주소 :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 시인보호구역  
543 말의 씨앗 외1편/조재학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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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4 2017-03-01
17.03월 82호 시 말의 씨앗 기저귀 가는 데 다리를 들어서 몸을 뒤집는다 “아이고 요놈 봐라”하며 다시 뒤집어 허벅지 가만 눌러 잡으니 입술을 오므리고 뿌― 한다 소리들이 작은 구슬처럼 튀어나간다 바운서에 뉘어놓으면 몸을 비틀고 다리를 바둥거리다가 또 입술을 오므리고 뿌― 한다 저것이 말의 씨앗일까 무궁화가 하얗게 필 때 말이 세상에 없는 색깔로 피어나고 말이 누구도 그려내지 못할 모양으로 피어나고 천상의 목소리로 피어나고 말이 ‘음마-’ 라는 말이 연두 빛으로 피어나는 것을 본 적 있다 침이 꽃처럼 흘렀다 앙증맞은 손가락으로 눈을 비벼대는 아기의 울음 밖에서 누군가의 말씀처럼 눈이 나린다 발가락 하나를 그림 밖으로 내놓고 - 최돈정 화백 초대전에 와서 녹색 녹색이 모여 녹색의 세상을 이룬 화폭에서 붉은 점 같은 것은 화석 속 이파리였다가 깃털 다 뜯긴 큰 부리 새였다가 거꾸로 선 화살촉이었다가 뼈만 남은 물고기였다가 빙글빙글 도는 무희였다가 잡은 손을 놓치는 연인이었다가 수백 년 달려와서는 없는 강물에 빠지는 붉은 별이 되었소 별을 생각하다가 커다랗고 네모진 소리 앞에 서오 소리는 검은 직선이고 소리는 붉은 곡선이고 구멍 뚫리고 절룩거리고 소리는 소리 속에 갇혀 까무러치고 악쓰고 고요하고 비틀거리고 하얗게 녹슬고 뿌리도 없고 우듬지도 없는 나무에 동글동글 매달리고 달려가고 뛰어오르고 흘러내리고 소리는 듣지 못하는 나는 우두커니가 되었소 우두커니는 강물인 듯 꿈결인 듯 어른거리는 것 앞으로 왔소 어른거리는 것은 네모네모네모로 쪼개지고 흩어지고 모이고 가라앉으면서 빛을 만지고 있소 슬그머니 우두커니를 만지오 긴 부리를 가진 대머리 둘이서 등을 맞대고 섰소 서로 반대 방향을 보면서 동행이라오 다가가 자세히 보오 팔 하나를 뒤로 내밀어 서로 손을 꼬옥 붙잡고 있소 (소리 없는 웃음이 전시장을 뛰어다니오) 내부를 술병으로 가득 채운 집이 있소 집이 왼손으로 맥주잔을 잡고 있소 맥주병에선 붉고 파란 거품이 솟아오르고 동그라미들은 뱅글뱅글 돌아가오 집은 눈동자가 빨갛소 자화상의 눈동자가 빨갛소 능소화가 노을처럼 피고 있소  
542 고립국 2 외1편/안민 file
편집자
2075 2017-03-01
17.03월 82호 시 고립국 2 - 제례의 구간 휘파람이 동굴을 인식할 수 없다 새들이 동굴을 예배할 수 없다 가을의 풀꽃도 그렇다 잘 죽고 싶은 심정은 몸 안의 대륙을 떠돌다 어떤 유전자와 결합해 발화하는 것일까 바람이 바람을 불러오듯 어둠만이 어둠의 눈동자를 인식할 수 있는 법, 아득한 묵시黙市의 세계, 자신도 모르게 유령이 되어버린, 가령 사연 많은 침묵이 그러하다 흠향하지 못한 영혼들이 나부낀다 동굴은 예전에도 많았다 바람을 맞고 화석이 되어버린 아버지도 그랬다 언어를 압류당한 아버지는 입과 눈은 물론 구멍이란 구멍은 죄다 암전 상태였다 심장을 짓누르던 좁은 방과 산허리에 걸쳐진 모든 길과 무거운 허공도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는 마침내 그 모든 것들이 뭉쳐져 거대한 동굴이 되었고 동굴 속에선 흐린 음악처럼 안개가 풀려나왔다 아버지는 동굴을 불러들이며 동굴을 느끼며 동굴을 인식하며 마침내 완전한 동굴이 되어 동굴 속으로 떠나갔다 딱딱하게 마비된 문양으로 쓸쓸한 어깨가 무너지며 교정 플라타너스 벤치 아래 그림자만 걸쳐두고 장기 결석한 친구 k도 그랬다 내가 그의 집에 당도했을 때 그는 죽어가는 짐승처럼 앓고 있었고 그의 아버지는 구석에서 박쥐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토굴보다 더 깊숙한 지대, 음습하고 침침한 냄새만 떠다녔다 그 밤, 허공에선 아름다운 별들이 무수히 엉켜 흘러다녔고 다시 그와 같은 기압이 흐르는 밤이다 아홉 개의 구멍에서 아홉 개의 침묵이 흘러나온다 침묵의 입자들이 공간을 빼곡히 메운다 동굴이 확장되는 지대는 늘 이러한 구간이다 후면을 드러내지 않는 등이 더욱 고적하다는 걸 나는 꽃 시들어가는 걸 보며 알았다 수분이 빠져나간 꽃잎의 날刀은 더는 예리하지 않다 꽃은 빨강과 노랑을 잃고 어두운 빛깔로 얼룩이 지고 그 황량한 빛깔 사이로 아버지들은 온다 그렇다 지금은 가장 무겁고 고요한 구간, 나는 전생도 후생도 아닌 영역에 놓여 있다 누가 내 후생을 저당 잡히고는 내 몸을 연주하고 있는 걸까 고양이는 잠들 수 있으므로 최소한 나보다 위대하다 내가 불면을 앓는 것은 잠 속에서 반복적으로 집행당하기 때문이다 집행은 유전병과 같은 것이고 현실과 꿈은 형장에서조차 단절되지 못한다 누구나 의도와 상관없이 죽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도 그렇다 그들은 나를 끌어안고 오래 흐느꼈다 하지만 나는 무엇도 느낄 수 없었다 내 영정이 희미하게 웃음을 머금은 채 물끄러미 나를 주시했다 누군가 내 안을 건너고 있었다 사진 속에선 플래시가 터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밖의 풍경보다 더 캄캄했다 빛의 알갱이들이 빠른 속도로 탈출하고 있었던가 이건 분명 악몽일 것입니다 사실 나는 집행 전인 게 분명하죠 그 착오가 꿈이란다 굳은 표정을 벗겨냈을 때 더 단단한 빛깔이 드러나게 마련이지 우린 이 모든 걸 경계해야 한단다 사방은 침침하고 분리된 손들이 너무 분주해요 손이 기도 근처에서 펄럭이는 게 보이지 않니 흐릿한 예감 몇 개가 지나간다 예감은 늘 적중한다 아버지의 아버지 그리고 그 아버지의 세계世系는 겨울 안개처럼 희미했다 오래전 내가 지은 미사곡이 공명을 일으키며 사방을 떠다닌다 나는 그 속에서 수장되는 짐승처럼 천천히 가라앉는다 제례는 내 뼈를 도굴함에 다름 아니므로 아직 비문을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꽃잎의 날刀들을 모두 절취당했습니다 동굴이 무대일까 무대가 동굴일까 누군가 무덤이 허공에서 흘러가고 있다고 적은 걸 본 적 있다 동굴은 오래전부터 허공에도 존재했다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무덤은 동굴 안에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술을 마시는 이유는 가면을 벗기 위함이라고 웅변하곤 했는데 고백하자면 외면 저편의 깊숙한 내면을 염원했기 때문이다 나는 빗물로 환생할 거라는 믿음이 있다 그러니까 어두웠던 어느 겨울 저녁, 장애 앓는 아들을 휠체어에 태운 채 빗물 위를 떠가는 노인과 조우한 적 있다 그리고 생활보호 대상자라며 축축한 등록증을 내민 손과 조우한 적도 있다 그들은 모두 눈 안쪽이 동굴처럼 막막했고 빗물이 새고 있었다 나는 자주 침수되고 길들은 허망하게 지워진다 화분에 규범적으로 물을 주듯 몸 안에 알코올을 쏟아붓는다 하지만 완전히 수몰되기 직전에도 갈증은 해소되지 않는다 사막보다 내 몸이 더 건조함을 안다면 애인은 나를 지워버릴 수 있을까, 라는 지문 위로 겨울비는 멈추지 않는다 나는 계속 묵시黙市의 상태이고 시장市場은 규칙적이다 사전을 아무리 뒤져보아도 통증은 보이지 않는다 동굴 저편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왜 연락 한 번 없었어 여기는 잠이 없는 세계고 항상 배우처럼 분주해 배가 부를 때 가장 배가 고프고 가장 주릴 때 어떤 욕구도 일어나지 않아 조만간 다시 연락할게 어떤 음성은 진부한 자막보다 더 실패일 수 있다 박약한 심장이 쿵쾅거린다 사전을 반복적으로 뒤져본다 도처에 증거와 흔적이 가득하다 이 또한 집행 후의 습성이다 나는 여전히 집행 전이거나 동굴 밖이라고 오인할 때가 많다 통증을 정의한 지문은 어디에도 없는데 눈을 감으면 수만 개의 가시가 우수수 몸을 일으킨다 입을 틀어막는 배우는 숭고하다 떠나간 여자는, 떠나간 가계는, 떠나갔지만 남겨진 장애는, 그것을 연주하는, 악보는 어디쯤에서 안녕할 것인가 마지막 풍경은 카메라 눈동자가 형상을 각인하듯 여덟 번째 동굴 속에 깊숙이 각인되어 있다 그러나 나는 나의 얼굴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집행을 당하기 전 내가 먼저 나를 집행해야 했는데 뚜껑 없는 동굴 안으로 죄가 폭우처럼 쏟아진다 아직 인간의 껍질을 버리지 못한 슬픔으로 10분에 한 장씩, 하루에 144장의 제문이 필요하다 이것이 타인과 다른 나의 영역이다 촛불은 배달되지 않는다 의자는 배달되지 않는다 현란한 몰락과 빛나는 절망만이 당도할 뿐이다 가시덤불도 그렇게 완성된다 분향은 계속되고 나는 시집을 찢어 뒷면에 삼차 함수와 도달하지 못할 변곡점과 열아홉 단계의 교차방정식을 풀어낸다 동굴 속에선 풀지 못할 함수가 구원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오래전 경험한 적 있다 풀어낸 함수 위에 축문을 써내려간다 나를 스쳐 간 이들이 동굴 속에서 변이계수를 설계하며 절벽을 구상한다 하지만 세계는 여전히 행복하고 화려하다 홀로 침묵을 팔고 홀로 침묵을 사는 구간, 내가 실수로 엎질러버린 계절은 리터 규모 6의 강진 같은 것일까 폐렴과 폐인은 어디서 어디까지 구간입니까 동굴은 어디서 어디까지 무너지고 있습니까 분노의 끝에 슬픔이 매달려 있다고 했는데 누구의 눈과 입이 슬픔을 점유하여 소멸을 매매하고 있습니까 사랑을 잃고 발이 아홉 개 달린 괴물이 절벽 아래에 있다 나를 껴안고 울던 아버지들이 이젠 괴물을 끌어안고 흐느낀다 내 그림자가 먼저 절벽 쪽에서 나를 배웅하고 있다 자정의 동굴은 가장 어두우면서 적확하다 메카는 천 년 후의 새벽처럼 아득하고 죄송합니다 심장이 칠흑보다 캄캄합니다 오늘도 셀 수 없이 어둠을 조립했습니다 내가 유치되어도 동굴의 내일은 염려하지 마시길 그러므로 지천세사祗薦歲事 상尙, 향饗 고립국 3 -沒 0015. 1100. 0023. 나는 계절 지나가는 것을 보지 못합니다 겨울 속에서 내내 펄럭이기만 할 뿐입니다 프로필 본명 안병호, 경남 김해 출생, 2010년 《불교신문》신춘문예 당선, 부산작가회의 회원 메일; dominiko8@hanmail.net  
541 유전자 검사한 독도 외1편/김숙자 file
편집자
1956 2017-03-01
17.03월 82호 시 유전자 검사한 독도 대한민국 자궁에서 태어난 막내 독도야 울지 말아라 일본이 너를 데리고 갈까봐 무서워 하지 말아라 유괴범이 얼마나 큰 죄인가를 모르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자꾸나 어미는 일본이 너를 자기자식이라고 우길까봐 유전자검사를 했단다. 검사결과 너는 나의 핏줄 한국 주권의 상징이 되어버린 섬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우리 영토 당연한 일을 논란거리가 되도록 방치한 어미의 무관심이 어처구니없는 일을 벌어지게 했구나 너 없으면 못사는 나의 자식아 속 울음일랑 긴 세월에 묻어두고 두 발 쭉 뻗고 잘 자거라 중국여자가 한국 남자와 결혼하려면 그녀는 남편과 함께 도시에서 만두 장사를 해야 한다. 만두 장사를 하다가 홀시어머니를 모시려고 시골로 내려와서 과수원 일을 하면서 남매를 낳아야한다. 시어머니의 혹독한 시집살이에 견딜 수 없어 집을 나가야한다. 남편과 아이들이 보고 싶어 다시 집으로 돌아야한다. 시머머니의 시집살이는 점점 더해야한다. 시어머니와 싸우다가 남편한테 갈비뼈가 부러지도록 맞아야한다. 남편 곁을 다시 떠나 아이들을 중국으로 보내고 위자료를 요구해야한다. 남편이 술로 나날을 보내다가 농약을 먹고 자살을 해서 한 푼도 받지 못해야한다. 아이들도 남편도 없이 혼자된 그녀는 남편의 장삿날, 집으로 들어가 남편의 시체를 붙잡고 통곡을 해야한다. 시누이들이 그녀의 입을 벌려 침을 뱉고 머리카락을 뜯고 욕설을 퍼부어야한다. 시어머니, 시누이, 시동생, 숙부 시댁식구들의 박대에 견디지 못해 남편과 살던 집에서 나와야한다. 남편이 늘 뒤에 따라다니는 것 같아야한다. 헛것이 보여 길 지나가는 남자를 붙잡고 남편인 줄 알고 팔짱을 끼어야한다. 어느 누구의 남자도 그녀를 받아 주지 않아야한다. 봄에 중국에서 온 기러기는 남편이 묻힌산을 넘어 중국으로 날아가야 한다. 기럭기럭 ... 아호:명헌(茗軒) 김숙자 저서:날고싶은제비(소설) :가족사진(시집) 문학세계 신인문학상수상 나래시조 신인문학상수상 미당 서정주 시회 문학상 수상 메일:dkll2004@hanmail.net http://cafe.daum.net/myeong2011(별빛언덕)  
540 절망의 기원 외1편/이승호 file
편집자
2148 2017-03-01
17.03월 82호 시 절망의 기원 절망은 자라난 것 출생과 함께 어머니의 대지에 버려져 이 고깃덩어리 육체 안에서 먹고 마시며 커간 것 모든 희망의 말을 달콤하게 삼키고 영원 불멸의 악귀처럼 나를 먹고 더불어 살아온 것 나의 풍부함 스스로에게 놀랐다면 그것은 절망 때문 지난 희망 목록에서 절망이 걸어 나왔기 때문 희망은 아직도 절망의 반대라고 생각하는가 세계의 가르침 낮과 밤의 콘트라스트 절망은 멀리서 느닷없이 오지 않는다. 긍정의 노래 2 다시 어떻게 시작하지 그 물음에 답하려거든 주위를 둘러보라 네가 남긴 기록과 결의는 희미해지고 절망이라도 예찬할 듯이 들떠 방황하는 청년의 시대는 사라졌으나 가난한 자들의 유랑처럼 안식도 없이 이제 남은 것은 찔끔거리는 눈물과 오그라든 육신뿐이라고 마치 도스토옙스키 소설 속에 등장하는 허풍쟁이와 주정꾼과 난폭한 자처럼 사람들이 네게 퍼붓는 욕설을 헛되이 비웃어주며 너의 운명을 사랑하는 신에게조차 가련한 자여, 탕자의 노래는 그렇게 시작했는가 그러나 오늘 새의 노래가 아름다운 이유는 충심으로 생을 소진하고 되살아오르는 늙은 나무에게 생명이 생명에게로 돌아가는 저 숭고와 명랑함이 서로를 장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낮지만 지혜로운 뱀은 알고 있으니 극복의 형상들 대지 위에 수를 놓고 죽은 자들은 다시 돌아와 고단한 자의 마른 입술에 물을 적셔준다 새는 또 아침의 기쁨 정겹게 열려 있는 대지의 품으로 걸어가리라 그때 생이란 눈에 가득 찬 것들이 가슴을 채우고 남아 어쩔 줄 모르고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없다는 슬픔에 빠질 때에도 대지는 다만 우리의 보금자리를 다시 한 번 감싸려는 것이니 죽은 자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옳다, 나는 나를 확장시킬 필요가 있다 발본색원이란 무지하고 포악한 권력자의 말 긍정의 노래는 부정의 노래와 함께 한다 이 땅에서 아아 몸을 뜨겁게 하려고 새들은 날아오른다 모든 남아 있는 자들의 봄을 위하여. 이승호 강원 춘천 출생. 2003년『창작21』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 『어느 겨울을 지나며』『행복에게 바친 숱한 거짓말』외. E-mail : nacham1@hanmail.net  
539 말무덤 외1편/권현옥 file
편집자
1810 2017-03-01
17.03월 82호 시 말무덤 예천 대죽리에 가면 덥풀덥풀 자란 풀이 소리를 빨아들인다 찧고 까불고 물어뜯는 말 말 말 이 소리 저 소리 꾹꾹 눌러 담은 사발 하나 조용히 잠재웠다는데 쉴 새 없이 자라는 풀들이 무섭다 말 뒤에 말이 있다* 아직 매장되지 못한 목소리 *말무덤(言塚) 주변 비석에 새겨진 말 가족사진 엄마 꿈을 꾸었다 독감 때문에 열이 올랐다 내렸다 온몸 끙끙 벌써 며칠째 꼼짝 못한다 했는데 이제야 전화 버튼 꾹꾹 누른다 니가 웬일이고 아픈 데는 없나 밥은 잘 먹고 댕기나 내가 미처 말할 틈도 주지 않은 채 쏟아지는 걱정들 아그들은, 아그들도 다 잘 있재? 육 남매에 손자손녀들 앞에 두고 한가운데 앉아계신 엄마 멀리서도 온 힘 다해 새끼들 끌어안고 계시다 권현옥 경북 문경 출생. ‘느티나무 시’동인으로 활동. kho-gn@hanmail.net  
538 부끄러워서요/정경해 file
편집자
1601 2017-01-31
17.02월 81호 수필 부끄러워서요 방과후학교 문집이 나왔다. 지난 한 해 공부한 결과물이다. 표지를 살펴보고 책장을 차례로 넘긴다. 그동안 애쓴 보람이 느껴져서 뿌듯하다. ‘나의 생각 글쓰기’부 수업장면과 활동 모습이 담긴 사진을 한 장 한 장 바라본다. 그중 유독 눈길을 끄는 사진이 있었다. 일학년 가영이의 독사진이다. 사진 속 가영이의 눈은 미소를 띠며 살짝 감겨 있다. 가지런한 치아는 발그레한 잇몸까지 드러낸 채 활짝 웃고 있다. 그 모습을 보자 사진을 찍는 나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던 가영이가 떠오른다. 그 아이가 이렇게 웃기까지 꼬박 일 년이 걸렸다. 가영이는 지난해 초 내가 지도하는 생각글쓰기부에 들어왔다. 육 학년인 언니를 따라 왔다가 수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가영이는 수업 분위기가 많이 낯설었을 텐데 자신의 생각을 비교적 솔직하게 드러내는 글을 썼다. 일 학년답게 삐뚤빼뚤한 글씨에다 맞춤법도 맞지 않았다. 하지만 공책 한 쪽을 빼곡히 채웠다. 놀라웠다. 나는 마음속으로 가영이가 계속 오기를 바랐다. 나의 마음이 전해진 것일까. 가영이는 그 다음 주에도 언니와 함께 왔다. 와서는 말 한 마디 않고 글만 썼다. 가영이의 글은 그 또래가 겪을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는 이야기여서 아이들에게 읽어주면서도 재미가 났다. 자신의 생각을 그렇게 잘 풀어내는 것이 대견했다. 나는 가영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나의 칭찬에 힘을 얻어서일까. 가영이는 생각 글쓰기에 흥미를 느끼며 즐겁게 글을 썼다. 그렇게 두 달쯤 지났을까. 가영이가 변했다. 처음과는 달리 미적거리기만 하고 글을 쓰지 않았다. 교실로 들어설 때는 반가워하며 나의 품속을 파고들었지만 막상 동시를 읽을 때나 느낌을 쓰기 시작하면 딴청을 피웠다. 수업 중에도 수시로 나에게 왔고, 내 팔을 끌어당겨 자신의 얼굴에 비볐다. 가영이는 툭하면 나를 불렀다. 내가 다른 아이들 대하느라 지체되면 여지없이 나에게로 왔다. 글 쓴 것을 봐달라는 줄 알고 서둘러 가보면 꼭 그렇지도 않았다. 그저 한손으로는 연필을 쥐고 다른 손은 나를 꼭 잡은 채 놓아주지 않았다. 가영이가 나를 좋아해서 그러는 것이라고 여겼지만 아이들을 두루 아우르며 수업을 진행해야 하는 나로서는 난감했다. 나는 고민했다. 고민 끝에 가영이를 편안하게 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하려고 애를 썼다. 가영이의 머리를 쓰다듬거나 안아주며 관심을 주었지만 그 외에는 무심히 대했다. 수업과 관련된 내용이라도 그 아이가 원하지 않는 것 같으면 그대로 두었다. 가영이는 동시를 읽는 것도, 느낌을 적는 것도, 글감을 정해 한 편의 글을 쓰는 것도 하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래도 다그치지 않았다. 가영이가 마음의 문을 서서히 열 수 있도록 기다렸다. 그렇게 한 해가 가고 겨울방학이 되었다. 가영이가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표정도 전에 없이 밝았다. 그런 가영이가 기특했다. 나는 그간의 궁금증을 토로했다. 글을 열심히 쓰다가 한동안은 왜 그렇게 안 썼던 것이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가영이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부끄러워서요.” 나는 깜짝 놀랐다. 가영이의 행동은 은근했지만 거칠 것이 없었기에 부끄러워서 그럴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동안 읽지도, 쓰지도 않은 것은 오로지 부끄럽기 때문이었다니 아차 싶었다. 나도 그럴 때가 있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유독 부끄러움이 많았다. 가족이 아닌 사람 앞에서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한다는 것이 몹시 부끄러웠다. 내 집에 누군가 찾아오면 목례만 하고 내 방으로 쏙 들어가기 예사였다. 길을 가다가도 저만치서 누가 오고 있으면 마주칠세라 얼른 옆길로 방향을 틀었다. 누군가 나에게 관심을 갖는 것도, 말을 건네는 것도 왠지 쑥스럽고 부끄러웠다. 초등학교 때 겪은 일이다. 미술 시간이 되어 도화지와 크레파스를 펼쳐놓고도 선생님이 내 곁에 오시면 얼어붙듯 두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선생님이 아무 말씀 않고 지나가기를 간절하게 기도했다. “경해야, 너는 왜 그림 안 그리고 가만히 있니?” 영락없이 건네는 선생님의 한 마디는 나를 더 움츠러들게 했다. 나의 부끄러움은 사춘기 시절도 마찬가지였다. 친구들과 노는 것보다 책이 좋았던 나는 쉬는 시간이면 늘 책을 읽었다. 문학에 조예가 깊었던 담임 선생님은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겉표지를 들춰서 어떤 책인가를 확인하고, 나의 양 어깨를 지그시 누르며 꼭 한 마디를 덧붙였다. “경해는 문학소녀야!” 나는 그런 말조차도 부끄러워서 몸 둘 바를 몰랐다. 나의 어린 시절 모습과 가영이의 모습이 겹친다. 가영이는 부끄러워서 소리 내어 읽지 못했다. 글 쓸 것이 생각나도 공책에 쓰지 않았다. 그 심정이 지금은 이해가 된다. 한편으로는 가영이에게 미안한 마음도 든다. 나 자신도 그랬으면서 글을 왜 안 쓰는지 궁금해 하고, 지나치게 관심을 가졌다. 그것이 오히려 가영이를 더 움츠러들게 했을 것이라는 생각에 얼굴이 붉어진다. 나의 부끄러움은 성인이 되면서 점차 사라졌다. 있는 듯, 없는 듯 자리만 지키던 모습은 옛날얘기다. 사람들 앞에 일부러 나서지는 않아도 기회가 주어지면 당당히 선다. 노래를 좋아해 가끔씩 가는 노래방에서도 가만히 앉아있지는 않는다. 같이 간 사람들이 춤을 추면 그들처럼 몸을 흔들지는 못해도 그 곁에 서서 신나게 박수를 친다. 목석처럼 서 있지만은 않는다. 지난 날 부끄러워서 머뭇거렸던 기억은 추억이 되었다. 지금 나의 모습이 보인다. 주변 사람들은 나를 활달한 성격이라 여긴다. 나도 나 자신을 소심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부끄러워서 무엇인가를 하지 못하는 일은 더더욱 없다. 어느 자리에서건 움츠러들지는 않는다. 이런 행동은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오랜 시간 끊임없이 글을 읽고 쓰며 다져진 덕분이리라. 나는 어린 시절부터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보다 글과 함께 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 끊임없이 글을 읽고 썼다. 오른손 가운뎃손가락 첫마디에 두툼한 펜혹이 생길 정도로 늘 무엇인가를 썼다. 그것은 일기가 되고, 편지가 되고, 한편의 수필이 되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나의 마음은 시나브로 여물었을 것이다. 부끄러움도 그렇게 서서히 사그라졌을 것이다. 예쁜 가영이도 지난날 부끄러웠던 기억을 디딤돌로 삼았으면 좋겠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가영이의 내면이 더욱 단단해지면 좋겠다. 그리하여 부끄러워서 망설이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에 당당해 질 수 있기를 소망한다. 문집 속 가영이는 여전히 두 눈을 살짝 감고 환하게 웃고 있다. 순진무구한 얼굴이다. 그 모습이 참 사랑스럽다. 지금은 그 학교를 떠나왔기에 직접 마주할 수는 없지만 가영이는 나의 마음 한 편에 곱게 자리하고 있다. *경기 안성 출생 *월간 <순수문학>으로 등단 *수필집 『같은 빛깔로 물들어 간다는 것은』2008 『까치발 딛고』2011 『내 마음의 덧신』2016 *계간문예 『상상탐구』우수 작품상 수상 -수필 <빈 의자>-2015 *경상북도문예기금선정 수혜 - 2016 *이메일 주소 : jeang120@hanmail.net  
537 황씨의 겨울 /이원준 file
편집자
1685 2017-01-31
17.02월 81호 소설 황씨의 겨울 “혹시 잘못 찾아오신 거 아녜요? 전 주인요? 잘 몰라요.” 황씨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십여 년 동안 대여섯 번 발길이 전부였어도 집을 못 찾을 정도는 아니었다. 더군다나 하나밖에 남지 않은 막내딸과 이어진 길인데 어찌 잊겠는가. 주소까지 다시 확인한 황씨는 막내딸이 살지 않는다는 집 앞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를 못했다. 막막함이 그를 대문 앞에 주저앉혔다. 어제 여러 번 전화를 했을 때 없는 번호라는 안내에 갑갑궁금했는데 조바심마저 들었다. 머츰하던 눈발이 다시금 흐린 하늘을 채워갔다. 황씨는 진저리를 치며 양손을 주머니에 더 깊이 쑤셔 넣었다. 사위집에 온답시고 모처럼 차려입은 입성인데 영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일 년에 몇 번 경조사 때나 꺼내놓던 양복을 입고 온 것이 불찰이었다. 매섭게 자락마다 파고드는 찬바람에 온몸은 얼음장이 되어갔다. 걸친 외투가 무색하게 잔뜩 웅크리며 자라목을 만들 뿐이었다. 당장 시장바구니를 든 막내딸이 나타날 것만 같았다. “고것마저 이민을 갔는감?” 이제 남은 것은 자신 혼자뿐이라는 생각에 가슴 한쪽이 휑하니 떨어져 나가는 심정이었다. “어떻게 키운 자식들인데 죄다···.” 황씨는 상을 만드는 기술자였다. 열일곱 살 무렵부터 나무를 만져왔으니 육십 년 가까이 한길을 걸어온 셈이었다. 죽상과 장국상이나 다과상처럼 소형에서부터 제사와 잔치 때 쓰이는 대형 교자상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뤄본 그였다. 지금은 기계시설이 잘 갖춰진 목공소에서 대량 생산되고 있지만 그는 혼자서 수작업만을 고집해왔다. 상 제작기술에 있어 남다른 재능까지 보탠 황씨는 적지 않은 재산을 모을 수 있었다. 특히 응접실 탁자용으로도 쓰였던 교자상은 그의 전문분야로 차츰 상품가치가 높아졌다. 그 당시만 해도 웬만한 집이 아니면 구입조차 쉽지 않을 정도로 고가였다. 비상하듯 꿈틀대는 용과 사군자의 기품을 목상감으로 몸체에 입혔고 더러 온갖 성스러운 동물들을 새겼다. 그의 상이 입소문 날 무렵에는 상판 밑면에 ‘黃’이라는 자신의 성을 독특한 필체로 그려넣게 되었다. 그것으로 사람들이 진품을 구별한다는 말이 들려오자 더없이 뿌듯했다. 다섯이나 되는 자식들 공부도 남부럽지 않게 시켰다. 네 명의 아들딸이 이민을 갔어도 지금껏 어려움 없이 지내왔다. 다만 아직 가슴에 남아있는 것은 아들 가운데 하나쯤은 뒤를 이어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었다. 팔 년 전 큰아들이 이민 가겠다는 말을 꺼냈을 때 애써 서운한 척하지 않았다. 그 훨씬 전 상 만드는 일을 가업으로 삼아보지 않겠느냐는 말을 단박에 자를 때 역시 마찬가지였다. 죄지은 사람처럼 자식들에게 그 어떤 손짓조차 내보이지 못했다. 둘째와 셋째아들은 일찌감치 제 갈 길을 정해놓고 일방적인 통보만 알려왔다. 애당초 황씨의 바람은 어느 자식에게도 스며들지 않는 고리타분한 것으로 전락돼버린 상태였다. 더는 ‘黃’이 새겨진 자긍심을 대물림 못 하게 되었지만 아무도 탓할 수가 없었다. 자신 역시 부친의 뜻을 물리친 채 이 길로 걸어온 몸이었다. 이제는 천직이라 여겼던 일을 더 이상 이어갈 수가 없게 되었다. 대부분 수작업이라 대규모 목공소에서 쏟아져 나오는 수효와 다양한 모양새를 따라가지 못했다. 오랜 기간 들인 공만큼 제 값을 받다보니 사치품처럼 돼버린 탓에 찾는 이마저 줄어들었다. 가격을 내려 보기도 했는데 식탁에 밀리고 쓰임새가 줄어들어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전과 같지 않은 건강이 더 큰 장애였다. 어느덧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인데다 하루라도 일손을 놓지 않고 지내온 터라 몸 이곳저곳 탈이 나고 있었다. 사실 작업실을 겸하고 있는 집과 얼마 되지 않는 근처 밭을 처분해 막내사위 사업에 투자할 요량이었다. 언젠가 막내딸이 먼저 말머리만 꺼내놓고 만 일이 있었다. “모든 걸 정리하고 저희와 함께 사시는 게 어떠세요?” 늘 마음에서 떠나지 않던 그 목소리에 확답을 주고자 온 길이었다. 눈발이 다시 가랑눈으로 바뀌면서 주춤하고 있지만 갈 곳이 얼른 떠오르지 않았다. 뜨악하게 하늘을 올려다보던 황씨는 머릿살만 어지러워 눈을 질끈 감았다. 기차와 버스에 시달리고 빈속이라 더욱 고단했다. 배부르게 먹고 따뜻한 아랫목에 편히 눕고 싶었다. 그곳이 어딘지 생각나지 않았다. 골목 끝에서 왜자기는 소리가 쏟아져 돌아보니 아이들이 뛰놀고 있었다. 눈 위에 뒹굴고 눈싸움을 하는 아이들 가운데 키가 큰 한 녀석이 대장인 듯 보였다. “지금부터 썰매 시합이다!” 아이들이 미리 준비해놓았는지 각자 물건 하나씩을 집어 들었다. 썰매인 모양인데 주인들 생김새처럼 제멋대로였다. 비닐 장판에서부터 나무상자, 널빤지 심지어 마땅한 것이 없었는지 납작하게 누른 종이상자를 들고 비탈길로 오르는 아이도 눈에 띄었다. 경사가 제법 있는 비탈 중간쯤에 모이자 곧 한 명씩 미끄러져 내려왔다. 황씨는 아이들 놀이에 넋을 놓고 있었다. 뱃속에서 자꾸만 싱거운 소리가 나고 손발은 더 얼어가도 표정만큼은 나들이에 데리고 나온 손자를 지켜보는 그것이었다.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쏜살같이 내려와서는 다시 잰걸음으로 뛰어올라갔다. 벌써 몇 번이나 되풀이하고 있는데도 몸놀림은 튀는 공처럼 가볍게만 보였다. 몸집이 작고 어려보이는 한 아이가 널빤지 썰매를 질질 끌며 열심히 올라가고 있는 모습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오늘 보고 싶었던 손자와 닮아서 처음부터 눈길이 가던 터라 황씨의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보란 듯 양팔로 크게 V자를 만들어보이던 아이가 썰매에 앉자마자 미끄러져 내렸다. 올라오던 아이들이 옆으로 물러서자 아이의 썰매는 점점 빨라졌다. “작은 눔이 당차구먼.” 황씨에게서 흐뭇한 미소가 떠나지 않는 사이 아이의 썰매는 평지로 내려왔다. 그때 위에 있던 아이들이 뭐라고 소리를 질러댔다. 썰매가 황씨를 향해 정면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놀란 황씨가 엉거주춤 몸을 일으켜 세웠다. “어이쿠!” 엉덩방아를 찧은 황씨 주변으로 어느새 아이들 그림자가 하나둘 모여들었다. 간신히 몸을 추스른 황씨가 울고 있는 아이를 불렀다. “이리 온. 워디 다치지는 않았남?” 황씨가 아이의 옷에 묻은 눈을 털어주었다. “울지 마. 니가 제일이여.” 황씨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 아이와 함께 널브러졌던 널빤지 썰매, 저승꽃처럼 군데군데 옻칠이 벗겨진 그곳에는 분명 글자‘黃’이 남아있었다. 네 다리와 몸체는 사라지고 쪼개진 상판 일부였지만 그 글자만은 선명하게 품은 채였다. “이거··· 워디서 났는감?” 황씨의 물음에 아이가 한 이층집을 가리켰다. “우리 집 지하실.” 황씨는 언제 새겼는지 기억나지 않는‘黃’을 손바닥으로 천천히 쓰다듬었다. 참았던 눈물이 솟구쳤다. 아이들이 다른 놀이를 찾기 위해 골목 저쪽으로 몰려갔다. 멀뚱하게 바라보던 아이가 썰매를 내버려둔 채 휙 돌아서 아이들 꽁무니 따라 달려가기 시작했다. * 이원준 서울 출생.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1991년 《현대시세계》로 등단한 시인, 소설가 《흔들림 또한 우리가 살아가는 한 모습이다》 《행복한 씨앗》 《김오랑》 《권정생》 《이상》 《김구》 《노먼 베순》 《넬슨 만델라》 《정약용의 편지》 《조선왕들의 속마음》 외 010-2630-8461 jjun63@naver.com  
536 촛불나무 외1편/ 하재영 file
편집자
1979 2017-01-31
17.02월 81호 시 촛불나무 촛불을 밝히던 나무들이 잠시 눈물을 흘린다. 어느 날 너와 내가 세상을 떠나는 순간 네가 갖고 있는 책을 넌 다 읽지 못하고 내가 가고 싶은 곳을 난 다 못 가고 소비가 미덕(美德)이라 배우고 익힌 자본주의의 덕(德)을 쌓고 쌓아 그리하여 큰 것이 된 풍선들이 허무하여 먼 하늘 한쪽 빈 곳을 바라보게 할 때 품속에 쌓아두어 쓰지 못한 사랑의 날은 아침이슬에 빛나고 빛나 채우지 못한 작은 부분을 채우고 있다. 우리가 사는 곳곳 펼쳐진 힘의 허수아비들이 부정과 불신으로 검은 망치가 되어 백성을 알지 못하는 정권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기술한 역사책 속의 지침이 선명하게 밝은 광화문 앞 모인 백성들의 촛불 운해를 읽고 읽는 오늘 너는 아직도 읽어야 할 것이 많고 나 또한 가야 할 곳 아직도 많아 소소하여 또 다른 덕을 쌓아야 함을 바람 불어 촛불 꺼져도 꺼져도 꺼져도 촛불은 어둠을 밀어내는 힘이었음을 다시 환하게 세상 불 켜는 등불임을 눈물을 흘리는 촛불나무는 외치며 밝힌다. 겨울 산책 시린 바람 부는 날 겨울나무는 빈 가지를 붙잡아주노라 흔들리고 흔들렸다. 녹색으로 꿈틀거리던 색색깔이던 새떼처럼 날개를 퍼득이던 이파리들 지금 멀리 떠났다. 낮은 촉수로 땅속 수액을 끌어올려 하늘을 꿰매고 꿰맨 겨울나무는 먼 우주와 소통했다. 가지 위 하얀 눈 답장처럼 쌓여 있다. 별들도 걸려 빛났다. * 하재영 - 1990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 1992년 계몽사아동문학상 장편소년소설 당선 - 작품집 『별빛의 길을 닦는 나무들』, 『할아버지의 비밀』등 - 현) 지역무크 『포항문학』발행인  
535 촛불 외1편/임영석 file
편집자
2088 2017-01-31
17.02월 81호 시 촛불 일생, 누굴 위해서 촛불을 켜고 기도를 한 적이 없다 일생, 어떤 눈물을 닦고자 염원을 빈 적도 없다 그런 내가 촛불을 들고 군중 속에 함께 했다 막막한 어둠 속에서 내 몸 하나 허공의 벽이 되고 싶었다 달빛소리 대금을 배워 대금을 불기 위해 시골로 이사를 간 사람이 있다 밤마다 대금을 불면서 달빛 소리를 듣는다고 한다 달빛 없는 어두운 밤 대금을 불면 귀신 불러내는 소리 같고 달빛이 환한 밤 대금을 불면 천사들 춤사위에 흥을 더하는 소리 같단다 그래서 요즘 달빛소리 가장 크게 들리는 그런 날에만 대금을 불고 있다고 한다 귀신과 노느니 천사들과 함께 놀겠다고 한다 임영석 1961년 충남 금산 출생, 1985년 『현대시조』에 2회 천료 등단, 시집 『고래 발자국』,『받아쓰기』, 시조집으로 『배경』, 『초승달을 보며』등이 있고, 시론집으로 『미래를 개척하는 시인』이 있다. 계간 스토리문학 부주간, imim0123@naver.com 010 2364 1694  
534 행복론 외1편/이민숙 file
편집자
2032 2017-01-31
17.02월 81호 시 행복론 -지금 외 1편 태어나서 처음 피고 있는 ‘나’라는 꽃 태어나서 처음 딛고 있는 ‘여기’라는 발걸음 태어나서 처음 부르는 그대 향한 노래 태어난 곳은 사막, 수탉 우는 첫새벽, 태어나서 처음 첫샘물 떠올리는 두레박 오아시스 태어나서 처음 콩닥콩닥 두근두근 쓰고 있는 ‘하화도 봄 파도’라는 시 태어나서 처음 만난 그대가 타고 온 마지막 기차가 떠나가는 시각! 핸드폰 족의 하루 -스티브 잡스에게 내 코는 핸드폰 코 오늘 아침은 그대가 보내준 김치찌개 사진으로 한 끼의 밥을 먹는다 사진에서 나는 냄새가 코를 간지럽힌다 킁킁 내 귀는 핸드폰 귀 모든 음악은 핸드폰으로 듣고 핸드폰 목소리로 사랑을 나눈다 먼 그대는 핸드폰 속에서 핸드폰 손을 흔들며 오늘 아침에도 꿀모닝! 사랑 노래가 백만 곡이나 흘러넘치며 골라 달라 아우성이다 오늘은 이 노래를, 내일은 저 노래를, 줄 세워 놓고 불러주는 그대는 핸드폰 연인! 귀 멀어버린 베토벤의 월광소나타 핸드폰 속에서 그믐달빛 가련하다! 핸드폰 귀는 우주의 귀란다 북두칠성으로 날아가는 우주선의 날개음 안에서 감미롭게 끄덕끄덕! 내 눈은 핸드폰 눈 천만 년 피고 지는 꽃들이 계절마다 시간마다 햇볕 아래 현현묘묘(玄玄妙妙) 저 햇볕은 가짜인가 진짜인가 핸드폰 망상 속 천지 가득 망상 아닌 게 있을랑가? 핸드폰 코나 맡을 향기가 허공을 가득 채우고 핸드폰 눈이나 볼 수 있는 꽃차례가 아침을 열어젖힌다 핸드폰 귀나 들을 수 있는 그대의 핸드폰 목소리가 이쁘다 이쁘다 핸드폰 콧노래를 부르며 내 노래 좋아 좋아?! 나는 핸드폰 족들의 왕 핸드폰만 쥐어주면 만사 오케이! 밥도 핸드폰으로, 옷도 핸드폰으로 사랑도 핸드폰으로, 이별도 핸드폰으로 핸드폰 가슴 속에서 핸드폰 고통이 꿈틀꿈틀거린다 전쟁은 어떨까? 오늘도 지구별에선 수십만 목숨이 핸드폰 미사일에 맞아 죽어간다 아 맞아! 평화도 핸드폰 평화일지니...... 징글징글 핸드폰 나라의 솟대 끝에선 아기도 핸드폰 아기가 태어나서, 핸드폰 솟대가 한 마리 여러 탯줄 핸드폰 머리카락이 핸드폰 바람에 날리고 있다 이제 그만 자자 핸드폰 침대로 가거라 엄마! 엄마나 핸드폰 잠 속에서 핸드폰 꿈이나 꾸시지 그래! 핸드폰 아빠가 저기 기다리고 있단다 내 귀여운 핸드폰 자식들아 잘 자거라!  
533 까치집 외1편/서하 file
편집자
1599 2017-01-31
17.02월 81호 시 까치집 흘림체로 내리던 비 그치고 햇살이 이토록 고운 걸 보니 가깝고도 먼 거기서는 잘 지내는지 내 숨소리와 체온을 아직도 기억하는지 집 밖은 푸른 절벽 손닿지 않는 외진 곳 까치발로 올려다보는데 문패 한 번 달지 못한 까막눈의 늙은 집 맨발의 달을 꿀꺽 삼킨다 멀어져간 너의 까치걸음 혼자 먹는 밥그릇에 소복한데 두근두근 숨 쉬는 저 집, 하늘의 허파 솔밭 길 핀, 핀, 핀, 화장대 서랍 정리를 했습니다 올림머리 할 때 꽂았던 머리핀, 소복한데요 서랍은 아직도 스물 넷, 나보다 훨씬 젊습니다 솔밭 길 함께 걷다가 사내가 계집의 등 뒤에서 껴안아주던 두 팔도 알고 보면 계집이 달아날 수 없게 한 하나의 핀이었을 터 손 놓지 않겠다는 언약 돌돌 말아 덜컥 머리부터 올렸던 핀, 핀, 핀, 계곡 물소리가 계곡 붙잡고 있듯 불룩한 올림머리 뒤에는 아직도 팔 뽑지 않은 당신이 있습니다 “아니요” 라고 말하고 싶은데 “예”라고 말할 때 있듯이 나무가 그 산을 떠나지 못하는 정말 떠나고 싶지 않아서일까요 물소리, 새소리 베고 누운 저 길 위 소나무 작심한 듯 또 핀, 핀, 핀, 쏟아내는데요 손닿지 않는 나무위에서도 메마른 땅위에서도 일심으로 피어줄 수 있을까요 핀, 핀, 핀, 솔밭 길 두 팔 뻗어 소나무를 쓰윽 껴안네요 그 날의 당신처럼 *1999년 『시안 』등단 *시집 발간: 2010년『아주 작은 아침』, 2015년『저 환한 어둠』 *2015년 『대구문학상』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