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웹진]문학마실~...113호...
   2019년 11월

  1. 내일을 여는 창
  2. 소설
  3. 수필
  4. 권서각의 변방서사
  5. 이달의 작가
  6. 동인지를 엿보다
  7. 작품집에 스며들다
  8. 시와 거닐다
  9. 사진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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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2014년 1월 41호부터 2014년 10월 53호까지...
편집자
81900 2014-11-03
539 말무덤 외1편/권현옥 file
편집자
1688 2017-03-01
17.03월 82호 시 말무덤 예천 대죽리에 가면 덥풀덥풀 자란 풀이 소리를 빨아들인다 찧고 까불고 물어뜯는 말 말 말 이 소리 저 소리 꾹꾹 눌러 담은 사발 하나 조용히 잠재웠다는데 쉴 새 없이 자라는 풀들이 무섭다 말 뒤에 말이 있다* 아직 매장되지 못한 목소리 *말무덤(言塚) 주변 비석에 새겨진 말 가족사진 엄마 꿈을 꾸었다 독감 때문에 열이 올랐다 내렸다 온몸 끙끙 벌써 며칠째 꼼짝 못한다 했는데 이제야 전화 버튼 꾹꾹 누른다 니가 웬일이고 아픈 데는 없나 밥은 잘 먹고 댕기나 내가 미처 말할 틈도 주지 않은 채 쏟아지는 걱정들 아그들은, 아그들도 다 잘 있재? 육 남매에 손자손녀들 앞에 두고 한가운데 앉아계신 엄마 멀리서도 온 힘 다해 새끼들 끌어안고 계시다 권현옥 경북 문경 출생. ‘느티나무 시’동인으로 활동. kho-gn@hanmail.net  
538 부끄러워서요/정경해 file
편집자
1521 2017-01-31
17.02월 81호 수필 부끄러워서요 방과후학교 문집이 나왔다. 지난 한 해 공부한 결과물이다. 표지를 살펴보고 책장을 차례로 넘긴다. 그동안 애쓴 보람이 느껴져서 뿌듯하다. ‘나의 생각 글쓰기’부 수업장면과 활동 모습이 담긴 사진을 한 장 한 장 바라본다. 그중 유독 눈길을 끄는 사진이 있었다. 일학년 가영이의 독사진이다. 사진 속 가영이의 눈은 미소를 띠며 살짝 감겨 있다. 가지런한 치아는 발그레한 잇몸까지 드러낸 채 활짝 웃고 있다. 그 모습을 보자 사진을 찍는 나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던 가영이가 떠오른다. 그 아이가 이렇게 웃기까지 꼬박 일 년이 걸렸다. 가영이는 지난해 초 내가 지도하는 생각글쓰기부에 들어왔다. 육 학년인 언니를 따라 왔다가 수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가영이는 수업 분위기가 많이 낯설었을 텐데 자신의 생각을 비교적 솔직하게 드러내는 글을 썼다. 일 학년답게 삐뚤빼뚤한 글씨에다 맞춤법도 맞지 않았다. 하지만 공책 한 쪽을 빼곡히 채웠다. 놀라웠다. 나는 마음속으로 가영이가 계속 오기를 바랐다. 나의 마음이 전해진 것일까. 가영이는 그 다음 주에도 언니와 함께 왔다. 와서는 말 한 마디 않고 글만 썼다. 가영이의 글은 그 또래가 겪을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는 이야기여서 아이들에게 읽어주면서도 재미가 났다. 자신의 생각을 그렇게 잘 풀어내는 것이 대견했다. 나는 가영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나의 칭찬에 힘을 얻어서일까. 가영이는 생각 글쓰기에 흥미를 느끼며 즐겁게 글을 썼다. 그렇게 두 달쯤 지났을까. 가영이가 변했다. 처음과는 달리 미적거리기만 하고 글을 쓰지 않았다. 교실로 들어설 때는 반가워하며 나의 품속을 파고들었지만 막상 동시를 읽을 때나 느낌을 쓰기 시작하면 딴청을 피웠다. 수업 중에도 수시로 나에게 왔고, 내 팔을 끌어당겨 자신의 얼굴에 비볐다. 가영이는 툭하면 나를 불렀다. 내가 다른 아이들 대하느라 지체되면 여지없이 나에게로 왔다. 글 쓴 것을 봐달라는 줄 알고 서둘러 가보면 꼭 그렇지도 않았다. 그저 한손으로는 연필을 쥐고 다른 손은 나를 꼭 잡은 채 놓아주지 않았다. 가영이가 나를 좋아해서 그러는 것이라고 여겼지만 아이들을 두루 아우르며 수업을 진행해야 하는 나로서는 난감했다. 나는 고민했다. 고민 끝에 가영이를 편안하게 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하려고 애를 썼다. 가영이의 머리를 쓰다듬거나 안아주며 관심을 주었지만 그 외에는 무심히 대했다. 수업과 관련된 내용이라도 그 아이가 원하지 않는 것 같으면 그대로 두었다. 가영이는 동시를 읽는 것도, 느낌을 적는 것도, 글감을 정해 한 편의 글을 쓰는 것도 하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래도 다그치지 않았다. 가영이가 마음의 문을 서서히 열 수 있도록 기다렸다. 그렇게 한 해가 가고 겨울방학이 되었다. 가영이가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표정도 전에 없이 밝았다. 그런 가영이가 기특했다. 나는 그간의 궁금증을 토로했다. 글을 열심히 쓰다가 한동안은 왜 그렇게 안 썼던 것이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가영이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부끄러워서요.” 나는 깜짝 놀랐다. 가영이의 행동은 은근했지만 거칠 것이 없었기에 부끄러워서 그럴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동안 읽지도, 쓰지도 않은 것은 오로지 부끄럽기 때문이었다니 아차 싶었다. 나도 그럴 때가 있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유독 부끄러움이 많았다. 가족이 아닌 사람 앞에서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한다는 것이 몹시 부끄러웠다. 내 집에 누군가 찾아오면 목례만 하고 내 방으로 쏙 들어가기 예사였다. 길을 가다가도 저만치서 누가 오고 있으면 마주칠세라 얼른 옆길로 방향을 틀었다. 누군가 나에게 관심을 갖는 것도, 말을 건네는 것도 왠지 쑥스럽고 부끄러웠다. 초등학교 때 겪은 일이다. 미술 시간이 되어 도화지와 크레파스를 펼쳐놓고도 선생님이 내 곁에 오시면 얼어붙듯 두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선생님이 아무 말씀 않고 지나가기를 간절하게 기도했다. “경해야, 너는 왜 그림 안 그리고 가만히 있니?” 영락없이 건네는 선생님의 한 마디는 나를 더 움츠러들게 했다. 나의 부끄러움은 사춘기 시절도 마찬가지였다. 친구들과 노는 것보다 책이 좋았던 나는 쉬는 시간이면 늘 책을 읽었다. 문학에 조예가 깊었던 담임 선생님은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겉표지를 들춰서 어떤 책인가를 확인하고, 나의 양 어깨를 지그시 누르며 꼭 한 마디를 덧붙였다. “경해는 문학소녀야!” 나는 그런 말조차도 부끄러워서 몸 둘 바를 몰랐다. 나의 어린 시절 모습과 가영이의 모습이 겹친다. 가영이는 부끄러워서 소리 내어 읽지 못했다. 글 쓸 것이 생각나도 공책에 쓰지 않았다. 그 심정이 지금은 이해가 된다. 한편으로는 가영이에게 미안한 마음도 든다. 나 자신도 그랬으면서 글을 왜 안 쓰는지 궁금해 하고, 지나치게 관심을 가졌다. 그것이 오히려 가영이를 더 움츠러들게 했을 것이라는 생각에 얼굴이 붉어진다. 나의 부끄러움은 성인이 되면서 점차 사라졌다. 있는 듯, 없는 듯 자리만 지키던 모습은 옛날얘기다. 사람들 앞에 일부러 나서지는 않아도 기회가 주어지면 당당히 선다. 노래를 좋아해 가끔씩 가는 노래방에서도 가만히 앉아있지는 않는다. 같이 간 사람들이 춤을 추면 그들처럼 몸을 흔들지는 못해도 그 곁에 서서 신나게 박수를 친다. 목석처럼 서 있지만은 않는다. 지난 날 부끄러워서 머뭇거렸던 기억은 추억이 되었다. 지금 나의 모습이 보인다. 주변 사람들은 나를 활달한 성격이라 여긴다. 나도 나 자신을 소심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부끄러워서 무엇인가를 하지 못하는 일은 더더욱 없다. 어느 자리에서건 움츠러들지는 않는다. 이런 행동은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오랜 시간 끊임없이 글을 읽고 쓰며 다져진 덕분이리라. 나는 어린 시절부터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보다 글과 함께 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 끊임없이 글을 읽고 썼다. 오른손 가운뎃손가락 첫마디에 두툼한 펜혹이 생길 정도로 늘 무엇인가를 썼다. 그것은 일기가 되고, 편지가 되고, 한편의 수필이 되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나의 마음은 시나브로 여물었을 것이다. 부끄러움도 그렇게 서서히 사그라졌을 것이다. 예쁜 가영이도 지난날 부끄러웠던 기억을 디딤돌로 삼았으면 좋겠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가영이의 내면이 더욱 단단해지면 좋겠다. 그리하여 부끄러워서 망설이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에 당당해 질 수 있기를 소망한다. 문집 속 가영이는 여전히 두 눈을 살짝 감고 환하게 웃고 있다. 순진무구한 얼굴이다. 그 모습이 참 사랑스럽다. 지금은 그 학교를 떠나왔기에 직접 마주할 수는 없지만 가영이는 나의 마음 한 편에 곱게 자리하고 있다. *경기 안성 출생 *월간 <순수문학>으로 등단 *수필집 『같은 빛깔로 물들어 간다는 것은』2008 『까치발 딛고』2011 『내 마음의 덧신』2016 *계간문예 『상상탐구』우수 작품상 수상 -수필 <빈 의자>-2015 *경상북도문예기금선정 수혜 - 2016 *이메일 주소 : jeang120@hanmail.net  
537 황씨의 겨울 /이원준 file
편집자
1594 2017-01-31
17.02월 81호 소설 황씨의 겨울 “혹시 잘못 찾아오신 거 아녜요? 전 주인요? 잘 몰라요.” 황씨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십여 년 동안 대여섯 번 발길이 전부였어도 집을 못 찾을 정도는 아니었다. 더군다나 하나밖에 남지 않은 막내딸과 이어진 길인데 어찌 잊겠는가. 주소까지 다시 확인한 황씨는 막내딸이 살지 않는다는 집 앞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를 못했다. 막막함이 그를 대문 앞에 주저앉혔다. 어제 여러 번 전화를 했을 때 없는 번호라는 안내에 갑갑궁금했는데 조바심마저 들었다. 머츰하던 눈발이 다시금 흐린 하늘을 채워갔다. 황씨는 진저리를 치며 양손을 주머니에 더 깊이 쑤셔 넣었다. 사위집에 온답시고 모처럼 차려입은 입성인데 영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일 년에 몇 번 경조사 때나 꺼내놓던 양복을 입고 온 것이 불찰이었다. 매섭게 자락마다 파고드는 찬바람에 온몸은 얼음장이 되어갔다. 걸친 외투가 무색하게 잔뜩 웅크리며 자라목을 만들 뿐이었다. 당장 시장바구니를 든 막내딸이 나타날 것만 같았다. “고것마저 이민을 갔는감?” 이제 남은 것은 자신 혼자뿐이라는 생각에 가슴 한쪽이 휑하니 떨어져 나가는 심정이었다. “어떻게 키운 자식들인데 죄다···.” 황씨는 상을 만드는 기술자였다. 열일곱 살 무렵부터 나무를 만져왔으니 육십 년 가까이 한길을 걸어온 셈이었다. 죽상과 장국상이나 다과상처럼 소형에서부터 제사와 잔치 때 쓰이는 대형 교자상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뤄본 그였다. 지금은 기계시설이 잘 갖춰진 목공소에서 대량 생산되고 있지만 그는 혼자서 수작업만을 고집해왔다. 상 제작기술에 있어 남다른 재능까지 보탠 황씨는 적지 않은 재산을 모을 수 있었다. 특히 응접실 탁자용으로도 쓰였던 교자상은 그의 전문분야로 차츰 상품가치가 높아졌다. 그 당시만 해도 웬만한 집이 아니면 구입조차 쉽지 않을 정도로 고가였다. 비상하듯 꿈틀대는 용과 사군자의 기품을 목상감으로 몸체에 입혔고 더러 온갖 성스러운 동물들을 새겼다. 그의 상이 입소문 날 무렵에는 상판 밑면에 ‘黃’이라는 자신의 성을 독특한 필체로 그려넣게 되었다. 그것으로 사람들이 진품을 구별한다는 말이 들려오자 더없이 뿌듯했다. 다섯이나 되는 자식들 공부도 남부럽지 않게 시켰다. 네 명의 아들딸이 이민을 갔어도 지금껏 어려움 없이 지내왔다. 다만 아직 가슴에 남아있는 것은 아들 가운데 하나쯤은 뒤를 이어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었다. 팔 년 전 큰아들이 이민 가겠다는 말을 꺼냈을 때 애써 서운한 척하지 않았다. 그 훨씬 전 상 만드는 일을 가업으로 삼아보지 않겠느냐는 말을 단박에 자를 때 역시 마찬가지였다. 죄지은 사람처럼 자식들에게 그 어떤 손짓조차 내보이지 못했다. 둘째와 셋째아들은 일찌감치 제 갈 길을 정해놓고 일방적인 통보만 알려왔다. 애당초 황씨의 바람은 어느 자식에게도 스며들지 않는 고리타분한 것으로 전락돼버린 상태였다. 더는 ‘黃’이 새겨진 자긍심을 대물림 못 하게 되었지만 아무도 탓할 수가 없었다. 자신 역시 부친의 뜻을 물리친 채 이 길로 걸어온 몸이었다. 이제는 천직이라 여겼던 일을 더 이상 이어갈 수가 없게 되었다. 대부분 수작업이라 대규모 목공소에서 쏟아져 나오는 수효와 다양한 모양새를 따라가지 못했다. 오랜 기간 들인 공만큼 제 값을 받다보니 사치품처럼 돼버린 탓에 찾는 이마저 줄어들었다. 가격을 내려 보기도 했는데 식탁에 밀리고 쓰임새가 줄어들어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전과 같지 않은 건강이 더 큰 장애였다. 어느덧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인데다 하루라도 일손을 놓지 않고 지내온 터라 몸 이곳저곳 탈이 나고 있었다. 사실 작업실을 겸하고 있는 집과 얼마 되지 않는 근처 밭을 처분해 막내사위 사업에 투자할 요량이었다. 언젠가 막내딸이 먼저 말머리만 꺼내놓고 만 일이 있었다. “모든 걸 정리하고 저희와 함께 사시는 게 어떠세요?” 늘 마음에서 떠나지 않던 그 목소리에 확답을 주고자 온 길이었다. 눈발이 다시 가랑눈으로 바뀌면서 주춤하고 있지만 갈 곳이 얼른 떠오르지 않았다. 뜨악하게 하늘을 올려다보던 황씨는 머릿살만 어지러워 눈을 질끈 감았다. 기차와 버스에 시달리고 빈속이라 더욱 고단했다. 배부르게 먹고 따뜻한 아랫목에 편히 눕고 싶었다. 그곳이 어딘지 생각나지 않았다. 골목 끝에서 왜자기는 소리가 쏟아져 돌아보니 아이들이 뛰놀고 있었다. 눈 위에 뒹굴고 눈싸움을 하는 아이들 가운데 키가 큰 한 녀석이 대장인 듯 보였다. “지금부터 썰매 시합이다!” 아이들이 미리 준비해놓았는지 각자 물건 하나씩을 집어 들었다. 썰매인 모양인데 주인들 생김새처럼 제멋대로였다. 비닐 장판에서부터 나무상자, 널빤지 심지어 마땅한 것이 없었는지 납작하게 누른 종이상자를 들고 비탈길로 오르는 아이도 눈에 띄었다. 경사가 제법 있는 비탈 중간쯤에 모이자 곧 한 명씩 미끄러져 내려왔다. 황씨는 아이들 놀이에 넋을 놓고 있었다. 뱃속에서 자꾸만 싱거운 소리가 나고 손발은 더 얼어가도 표정만큼은 나들이에 데리고 나온 손자를 지켜보는 그것이었다.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쏜살같이 내려와서는 다시 잰걸음으로 뛰어올라갔다. 벌써 몇 번이나 되풀이하고 있는데도 몸놀림은 튀는 공처럼 가볍게만 보였다. 몸집이 작고 어려보이는 한 아이가 널빤지 썰매를 질질 끌며 열심히 올라가고 있는 모습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오늘 보고 싶었던 손자와 닮아서 처음부터 눈길이 가던 터라 황씨의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보란 듯 양팔로 크게 V자를 만들어보이던 아이가 썰매에 앉자마자 미끄러져 내렸다. 올라오던 아이들이 옆으로 물러서자 아이의 썰매는 점점 빨라졌다. “작은 눔이 당차구먼.” 황씨에게서 흐뭇한 미소가 떠나지 않는 사이 아이의 썰매는 평지로 내려왔다. 그때 위에 있던 아이들이 뭐라고 소리를 질러댔다. 썰매가 황씨를 향해 정면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놀란 황씨가 엉거주춤 몸을 일으켜 세웠다. “어이쿠!” 엉덩방아를 찧은 황씨 주변으로 어느새 아이들 그림자가 하나둘 모여들었다. 간신히 몸을 추스른 황씨가 울고 있는 아이를 불렀다. “이리 온. 워디 다치지는 않았남?” 황씨가 아이의 옷에 묻은 눈을 털어주었다. “울지 마. 니가 제일이여.” 황씨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 아이와 함께 널브러졌던 널빤지 썰매, 저승꽃처럼 군데군데 옻칠이 벗겨진 그곳에는 분명 글자‘黃’이 남아있었다. 네 다리와 몸체는 사라지고 쪼개진 상판 일부였지만 그 글자만은 선명하게 품은 채였다. “이거··· 워디서 났는감?” 황씨의 물음에 아이가 한 이층집을 가리켰다. “우리 집 지하실.” 황씨는 언제 새겼는지 기억나지 않는‘黃’을 손바닥으로 천천히 쓰다듬었다. 참았던 눈물이 솟구쳤다. 아이들이 다른 놀이를 찾기 위해 골목 저쪽으로 몰려갔다. 멀뚱하게 바라보던 아이가 썰매를 내버려둔 채 휙 돌아서 아이들 꽁무니 따라 달려가기 시작했다. * 이원준 서울 출생.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1991년 《현대시세계》로 등단한 시인, 소설가 《흔들림 또한 우리가 살아가는 한 모습이다》 《행복한 씨앗》 《김오랑》 《권정생》 《이상》 《김구》 《노먼 베순》 《넬슨 만델라》 《정약용의 편지》 《조선왕들의 속마음》 외 010-2630-8461 jjun63@naver.com  
536 촛불나무 외1편/ 하재영 file
편집자
1890 2017-01-31
17.02월 81호 시 촛불나무 촛불을 밝히던 나무들이 잠시 눈물을 흘린다. 어느 날 너와 내가 세상을 떠나는 순간 네가 갖고 있는 책을 넌 다 읽지 못하고 내가 가고 싶은 곳을 난 다 못 가고 소비가 미덕(美德)이라 배우고 익힌 자본주의의 덕(德)을 쌓고 쌓아 그리하여 큰 것이 된 풍선들이 허무하여 먼 하늘 한쪽 빈 곳을 바라보게 할 때 품속에 쌓아두어 쓰지 못한 사랑의 날은 아침이슬에 빛나고 빛나 채우지 못한 작은 부분을 채우고 있다. 우리가 사는 곳곳 펼쳐진 힘의 허수아비들이 부정과 불신으로 검은 망치가 되어 백성을 알지 못하는 정권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기술한 역사책 속의 지침이 선명하게 밝은 광화문 앞 모인 백성들의 촛불 운해를 읽고 읽는 오늘 너는 아직도 읽어야 할 것이 많고 나 또한 가야 할 곳 아직도 많아 소소하여 또 다른 덕을 쌓아야 함을 바람 불어 촛불 꺼져도 꺼져도 꺼져도 촛불은 어둠을 밀어내는 힘이었음을 다시 환하게 세상 불 켜는 등불임을 눈물을 흘리는 촛불나무는 외치며 밝힌다. 겨울 산책 시린 바람 부는 날 겨울나무는 빈 가지를 붙잡아주노라 흔들리고 흔들렸다. 녹색으로 꿈틀거리던 색색깔이던 새떼처럼 날개를 퍼득이던 이파리들 지금 멀리 떠났다. 낮은 촉수로 땅속 수액을 끌어올려 하늘을 꿰매고 꿰맨 겨울나무는 먼 우주와 소통했다. 가지 위 하얀 눈 답장처럼 쌓여 있다. 별들도 걸려 빛났다. * 하재영 - 1990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 1992년 계몽사아동문학상 장편소년소설 당선 - 작품집 『별빛의 길을 닦는 나무들』, 『할아버지의 비밀』등 - 현) 지역무크 『포항문학』발행인  
535 촛불 외1편/임영석 file
편집자
1999 2017-01-31
17.02월 81호 시 촛불 일생, 누굴 위해서 촛불을 켜고 기도를 한 적이 없다 일생, 어떤 눈물을 닦고자 염원을 빈 적도 없다 그런 내가 촛불을 들고 군중 속에 함께 했다 막막한 어둠 속에서 내 몸 하나 허공의 벽이 되고 싶었다 달빛소리 대금을 배워 대금을 불기 위해 시골로 이사를 간 사람이 있다 밤마다 대금을 불면서 달빛 소리를 듣는다고 한다 달빛 없는 어두운 밤 대금을 불면 귀신 불러내는 소리 같고 달빛이 환한 밤 대금을 불면 천사들 춤사위에 흥을 더하는 소리 같단다 그래서 요즘 달빛소리 가장 크게 들리는 그런 날에만 대금을 불고 있다고 한다 귀신과 노느니 천사들과 함께 놀겠다고 한다 임영석 1961년 충남 금산 출생, 1985년 『현대시조』에 2회 천료 등단, 시집 『고래 발자국』,『받아쓰기』, 시조집으로 『배경』, 『초승달을 보며』등이 있고, 시론집으로 『미래를 개척하는 시인』이 있다. 계간 스토리문학 부주간, imim0123@naver.com 010 2364 1694  
534 행복론 외1편/이민숙 file
편집자
1953 2017-01-31
17.02월 81호 시 행복론 -지금 외 1편 태어나서 처음 피고 있는 ‘나’라는 꽃 태어나서 처음 딛고 있는 ‘여기’라는 발걸음 태어나서 처음 부르는 그대 향한 노래 태어난 곳은 사막, 수탉 우는 첫새벽, 태어나서 처음 첫샘물 떠올리는 두레박 오아시스 태어나서 처음 콩닥콩닥 두근두근 쓰고 있는 ‘하화도 봄 파도’라는 시 태어나서 처음 만난 그대가 타고 온 마지막 기차가 떠나가는 시각! 핸드폰 족의 하루 -스티브 잡스에게 내 코는 핸드폰 코 오늘 아침은 그대가 보내준 김치찌개 사진으로 한 끼의 밥을 먹는다 사진에서 나는 냄새가 코를 간지럽힌다 킁킁 내 귀는 핸드폰 귀 모든 음악은 핸드폰으로 듣고 핸드폰 목소리로 사랑을 나눈다 먼 그대는 핸드폰 속에서 핸드폰 손을 흔들며 오늘 아침에도 꿀모닝! 사랑 노래가 백만 곡이나 흘러넘치며 골라 달라 아우성이다 오늘은 이 노래를, 내일은 저 노래를, 줄 세워 놓고 불러주는 그대는 핸드폰 연인! 귀 멀어버린 베토벤의 월광소나타 핸드폰 속에서 그믐달빛 가련하다! 핸드폰 귀는 우주의 귀란다 북두칠성으로 날아가는 우주선의 날개음 안에서 감미롭게 끄덕끄덕! 내 눈은 핸드폰 눈 천만 년 피고 지는 꽃들이 계절마다 시간마다 햇볕 아래 현현묘묘(玄玄妙妙) 저 햇볕은 가짜인가 진짜인가 핸드폰 망상 속 천지 가득 망상 아닌 게 있을랑가? 핸드폰 코나 맡을 향기가 허공을 가득 채우고 핸드폰 눈이나 볼 수 있는 꽃차례가 아침을 열어젖힌다 핸드폰 귀나 들을 수 있는 그대의 핸드폰 목소리가 이쁘다 이쁘다 핸드폰 콧노래를 부르며 내 노래 좋아 좋아?! 나는 핸드폰 족들의 왕 핸드폰만 쥐어주면 만사 오케이! 밥도 핸드폰으로, 옷도 핸드폰으로 사랑도 핸드폰으로, 이별도 핸드폰으로 핸드폰 가슴 속에서 핸드폰 고통이 꿈틀꿈틀거린다 전쟁은 어떨까? 오늘도 지구별에선 수십만 목숨이 핸드폰 미사일에 맞아 죽어간다 아 맞아! 평화도 핸드폰 평화일지니...... 징글징글 핸드폰 나라의 솟대 끝에선 아기도 핸드폰 아기가 태어나서, 핸드폰 솟대가 한 마리 여러 탯줄 핸드폰 머리카락이 핸드폰 바람에 날리고 있다 이제 그만 자자 핸드폰 침대로 가거라 엄마! 엄마나 핸드폰 잠 속에서 핸드폰 꿈이나 꾸시지 그래! 핸드폰 아빠가 저기 기다리고 있단다 내 귀여운 핸드폰 자식들아 잘 자거라!  
533 까치집 외1편/서하 file
편집자
1503 2017-01-31
17.02월 81호 시 까치집 흘림체로 내리던 비 그치고 햇살이 이토록 고운 걸 보니 가깝고도 먼 거기서는 잘 지내는지 내 숨소리와 체온을 아직도 기억하는지 집 밖은 푸른 절벽 손닿지 않는 외진 곳 까치발로 올려다보는데 문패 한 번 달지 못한 까막눈의 늙은 집 맨발의 달을 꿀꺽 삼킨다 멀어져간 너의 까치걸음 혼자 먹는 밥그릇에 소복한데 두근두근 숨 쉬는 저 집, 하늘의 허파 솔밭 길 핀, 핀, 핀, 화장대 서랍 정리를 했습니다 올림머리 할 때 꽂았던 머리핀, 소복한데요 서랍은 아직도 스물 넷, 나보다 훨씬 젊습니다 솔밭 길 함께 걷다가 사내가 계집의 등 뒤에서 껴안아주던 두 팔도 알고 보면 계집이 달아날 수 없게 한 하나의 핀이었을 터 손 놓지 않겠다는 언약 돌돌 말아 덜컥 머리부터 올렸던 핀, 핀, 핀, 계곡 물소리가 계곡 붙잡고 있듯 불룩한 올림머리 뒤에는 아직도 팔 뽑지 않은 당신이 있습니다 “아니요” 라고 말하고 싶은데 “예”라고 말할 때 있듯이 나무가 그 산을 떠나지 못하는 정말 떠나고 싶지 않아서일까요 물소리, 새소리 베고 누운 저 길 위 소나무 작심한 듯 또 핀, 핀, 핀, 쏟아내는데요 손닿지 않는 나무위에서도 메마른 땅위에서도 일심으로 피어줄 수 있을까요 핀, 핀, 핀, 솔밭 길 두 팔 뻗어 소나무를 쓰윽 껴안네요 그 날의 당신처럼 *1999년 『시안 』등단 *시집 발간: 2010년『아주 작은 아침』, 2015년『저 환한 어둠』 *2015년 『대구문학상』수상  
532 숭어 외 1편 / 손창기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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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4 2017-01-31
17.02월 81호 시 숭어 우수와 경칩 사이, 백태가 낀다 숭어도 내외간이 있는데 봉사가 되고 보니 수컷이 마누라를, 마누라도 수컷을 몰라 본다 서투름을 벗어나려고 공모(共謀)와 순수 사이, 어슬렁거릴 때 잡다한 생각의 아가미마저 삼켜 버리는 백태 수놈이 알에다 마음껏 정자를 뿌린다 고기 조상을 모르게 한다, 암컷이 바짝 마른다 배가 붉그스럼하다 전부를 볼 수 없는데 전부가 보이는, 마지막 꿈틀거림이 봄 바다에 있다 지루한 눈짓이 싫어, 차라리 눈 떨다가 멀겠다 겨우내 숭어가 몸에다 지방을 쌓듯 바라봄과 눈멂 사이, 불륜을 저장해 왔는지 모른다 수컷은 봄에 죽어도 모른다 눈꺼풀 벗겨질 때, 당신 눈빛에 데일까봐 뻘에다 머리를 들이밀고 파고 들어간다 숭어 눈 맑아질 때 청갈바람* 다시 불고 바다 속이 확 뒤집어진다, 봄 바다의 밑바닥까지 하얘진다 *청갈바람 : 봄에 부는 세찬 남서풍으로, 물고기가 있다가 사라짐. 개복치 죽도시장 어물전 입구 보름달과 닮은 물고기 몇 마리 누워 있다 하도 이름을 묻는 이가 많아 내 이름은 개복치라고 미리 써 놓았다 그는 최후까지 눈동자가 착하다 조물주가 눈에 흰점을 찍은 그대로 개광(開光), 혹은 뇌를 넓히지 않아 바보끼리 보는 눈망울은 참 애틋하다 파리들은 죽은 이의 얼굴을 파먹고 있다 표독스런 상어의 검은 눈동자이든, 몸에 따듯한 피가 흐르는 개복치든 죽음의 좌판 위에선 매 한가지다. 몸통은 사라지고 머리와 작은 눈만 살아 있다 개복치는 지상에서 자신의 상(像)마저 지운다 약력> 손창기 - 경북 군위 출생. 2003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으며, 시집 『달팽이 성자』가 있음. jangoyes@hanmail.net  
531 꽃은 냉장고에 외1편/김미지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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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8 2017-01-31
17.02월 81호 시 꽃은 냉장고에 꽃집을 지나다가 꽃은 냉장고에 있습니다 란 표지가 붙은 유리창 안을 기웃거리다가 여기가 육소간인가, 고기는 냉장고에 와 뭐가 다르담 꽃과 고기라, 상하기 쉬운 것들 부패하기 시작하는 어느 시점의 연장에나 쓰일 냉장고가 너무 많은 게지 냉동칸에서 추억을 끄집어내는 사람은 쓸쓸해 숙성된 고기 한 점을 욕망이라 규정한다면 냉장실에서 냉동칸까지의 사잇길을 어슬렁거리는 고양이의 시절 귀 기울여 봐, 한밤중의 냉장고엔 고양이들이 살 거든 떨고 있는 고깃덩일 생각해 봐 갸르릉거리는 꽃들을, 그리고, 그래서, 그런데, ― 이적행위야, 그건 ― 패닉의 이적 말이야? ― 가수 말고, 가, 강박의…… 12월의 숲을 펼쳐 봐, 낙엽의 길이 깔리지, 바스락 바스락 발바닥에 훈기가 느껴지지 미사여구 없는 간결과 거침없는 드러냄으로 아름다운 나목들을 이제 비디오를 거꾸로 돌려 볼래? 마구마구 푸르러지고 어려져서 새로 새로 돋아나는 잎들, 오, 싱싱한 꽃들! 항해 아이의 방은 그리 크진 않지만 바다도 있고 별도 있습니다 푸른 줄무늬 벽지 위에 배들이 늘어서 있고 천정엔 야광 별들 별만큼 박혀 있습니다 불을 끈 하늘엔 형광빛 별들 밤새 반짝이고 아이는 별꿈을 꿉니다 아이가 학교 간 사이 바다는 썰물로 얕아졌다가 아이가 돌아올 때쯤 찰랑찰랑 수위를 높입니다 아이는 바지를 걷고 물 속에 하루를 씻고는 의자에 가만히 몸을 기댑니다. 책상 위에 어지러이 놓인 책들, 대양 속으로 떠나는 배 한 척 긴 고동 울리며 서 있습니다 아이의 방은 지금 만조입니다 1960년 대구 출생 1996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문』 miji3406@hanmail.net  
530 복현동 명자 외1편/권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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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7 2017-01-31
17.02월 81호 시 복현동 명자 '미스매화 선발대회' 경축 현수막 흔들리는 그녀 집앞은 정류장이다 버스가 툴툴 부려놓은 먼지 작달막한 여자가 운영하는 구멍가게는 올라타거나 내려서는 사람들 발치에 있다 이정표 대신 세워둔 명자꽃을 덜컹이는 버스가 잠시 비틀어 스치는 창 안 사람들 눈에는 먼지털이 들고 서성이는 명자가 보였을 뿐 그녀가 씰룩이는 입술이 명자꽃 닮았다는 것을 누구도 알아보지 못한다 미스명자 선발 대회는 언제 열리나! 쑥 일월산 총각 도사 점 집 간판 앞에서 햇쑥으로 탑을 쌓은 좌판은 몸빼바지 쭈그린 그녀를 앉혀 두었다 삼십 여 년 전 친구가 거기 있었다 한때는 별이 될 수 있을 것 같았고 지구의 불빛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매연 뒤집어 쓴 도로에서 그녀가 들려주는 점 쾌는 쑥 냄새다 우연히 점집을 찾다 나와 마주친 그녀도 나도 이젠 눈이 흐린건지 길조심 하고 즐거운 날 되라 한다 꿈은 이루어질까 궁금해 찾은 절 집 쑥스러움을 내민 그녀 앞에서 부풀린 비닐 안쪽엔 갓 돋은 쑥들이 겨울에 맞장 뜨는 여자 같았다 밟힐수록 단단해지는 어떤 힘이 봄비에 너와 나 다 희미해져도 선명해지는 쑥빛 간판 앞에서 바람과 또 악다구니다 청송 진보 출생 월간문학 등단 이조년 백일장 장원 매일신문 최종결선(2명)진출 저서- 너는 시원하지만 나는 불쾌해  
529 포커페이스 외1편/권혁재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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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 2016-12-31
17. 01월 80호 시 포커페이스 이제 더 이상 기사들은 여왕을 위해 성전聖戰을 하지 않았다 호밀밭을 가꾸던 농기구들을 내려놓고 여왕의 부름에도 시큰둥했다 엉겅퀴가 뒤덮인 클로버 숲에는 숙련된 첨병들이 포진하였고 해자를 덮은 성곽 위로는 하트 문양의 불덩이들이 날아다녔다 성문을 열라는 성난 군중들의 함성이 화살같이 치닫는 여왕의 침실 다이아몬드 방패로 무장한 근위병은 여왕의 눈치만 보다 안절부절하는 무능력한 킹의 조급한 그림자를 쫓아 검은 눈동자만 의미 없이 굴려댔다 군중들이 성으로 진입해 들어가 여왕을 상징하는 깃발을 불태워도 여왕은 마지막 카드조차 내어놓지 않았다 기사들의 갑작스런 변심만 탓할 뿐 여왕 자신의 감추지 못한 포커페이스로 실없는 변명만 하였다 이제 더 이상 기사들은 여왕을 위해 성전을 하지 않았다 군중에게 패를 읽혀 표정관리가 되지 않는 여왕의 추잡한 포커페이스. 붉은 립스틱 믿어 달라고 한번만 더 믿어 달라고 흙바닥에 엎드려 더럽게 애원하는 정치인의 말을 믿지 않는다 유세가 끝나고 투표가 끝나면 다시 상전으로 모시고 사는 게 끔찍하고 또 끔찍하다 상전이 되었다가 하루아침에 노비로 전락하는 대한민국의 주권 하늘같이 믿고 싶어도 미개인 취급하는 꾼들의 능수능란한 재주를 당할 재간이 없어 정작 미개인 같은 미개인이 되어서 정치인의 말에 귀신이 든다 정치인의 혓바닥에 발린 달달한 허세를 이상처럼 좇는 좆도 없는 사람들, 한번만 믿어 달라고 더럽게 애원할 때 좆 빠지지 않게 미리 채비를 잘 하세나. 권혁재 경기도 평택 출생 200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집 『투명인간』『고흐의 사람들』 외 다수  
528 먼 땅에서 오고 있는, 외1편/김길녀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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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 2016-12-31
17. 01월 80호 시 먼 땅에서 오고 있는,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겨울이 있는 도시 흰 눈의 계절을 살아보지 않은 나무의 생애는 외롭지 않고 명랑하다 사계가 없는 푸름 속에서 자란 나무들 성장촉진제를 맞은 키 큰 꽃과 같이 짧은 시간 안으로 긴 삶을 펼쳐놓는다 겨울 한가운데 일월과 이월 사이 식물원 제3산책로 초입에서 만난 늙은 아소카나무 한그루 죽은 이들이 잠들고 싶어 하는 나무의 지붕은 둥글고 따뜻하다 주먹만한 주황 램프꽃 조등처럼 주렁주렁 피어 빗속에서도 환하다 이파리 무성한 나뭇가지엔 공원지킴이 구렁이가족도 함께 지낸다 생애 처음 맞이하는 따뜻한 겨울 속 이국여자 창고 방에 쌓아둔 하양을 찾는 일에 열중이다 우기의 한 낮, 대서양을 넘어서 적도로 숨 가쁘게 달려온 귀한 햇살 지칠 줄 모르고 피고 지는 꽃잎들 족적을 환하게 비춘다 멀리 오면서 두고 온 먼 땅 얼음골의 함박눈 안부 폭설 같은 폭우 속 빗방울에 숨어서 이륙중이다 외투 안 깊이 겨울이야기 한아름 품은 채 오고 있는 당신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탈고 안 된 왕궁의 비밀 뭉치뭉치 쌓여서 떠날 수 없는 두꺼운 바람 청록색 이끼 키우는 흩어진 돌무더기 사이에서 옛 전사들의 발과 손 여전히 자라고 있다 거짓된 희망과 무늬뿐인 혁명을 앞세우고 비탈길을 넘고 넘어 비밀로 채워진 긴 밤을 끌고 온 그 날, 짧은 아우성만 남긴 채 성벽은 쉽사리 무너졌다 하늘이 지붕이 된 돌로 지은 목욕탕 밤마다 별이 된 공주들의 노랫소리 들려온다 달빛 없는 그믐밤에는 왼쪽 돌 목욕탕에서 왕자들의 웃음소리도 크게 들린다 가끔은 돌 목욕탕으로 사라지는 사람이 있다는 소문이 마른 꽃씨처럼 퍼지기도 한다 함께 하는 이의 친절한 설명에 살짝, 꽃무늬 우산이 흔들렸던가 신들의 기도조차 멈추어버린 궁터의 나날 정적만이 황금 촛대 위에서 자주 서성인다 담장 아래 흙더미에서 뒹구는 어린 병사 가죽신발 안으로 충성을 잊어버린 벌레들 흔들리는 시간을 천천히 낳는다 성벽을 쌓던 노예들의 손톱에서 흘러나온 무거운 용서는 봉분 없는 무덤에 하양 꽃을 피웠다 생과 사를 풀어내는 방식이 종교에 따라 다른 나라 힌두교식 삶의 환희와 이슬람교식 죽음 하양 깜보자꽃을 해석하는 인니 방식이다 이국 사람들 지나간 발자국마다 하양 꽃잎들 함박눈처럼 무덤을 덮는다 꽃무늬 우산 속 이국 남자와 여자 비 내리는 돌담에 나란히 걸터앉아 오랫동안 염소들의 풀밭 식사를 지켜본다 쪽배를 타고 산책하던 돌계단 아래 연못 주인 잃은 황금신과 꽃신 몇 켤레 둥 둥 둥 따뜻한 비에 젖고 있다 염소들이 떠난 우기의 저녁이 빠르게 풀밭 위에 내린다 문없는 돌기둥에 기대어서서 깊은 잠에 빠진 태양은 아침을 잊은 지 오래라는 빗방울 전언을 듣는다 그 시절 공주와 왕자의 이름으로 잠시 환생한 이국 남자와 여자 이천십삼 년 십이월 포근한 겨울 안에서 다시, 전생을 호명한다 강원도 삼척 출생 1990년《시와 비평》등단 시집『푸른 징조』등 '작은 詩앗·채송화' 동인  
527 無題 외1편/오형근 file
편집자
2481 2016-12-31
17. 01월 80호 시 無題 도선사 지장보살상에 웬 까마귀 세 마리 불안하게 왔다갔다 한다 어머니 계신 곳에서 까만 소식 물고 왔는가 미처 무슨 생각을 하기 전에 까악, 하고 울고는 서둘러 날아간다 궁지에 몰린 염소처럼 -김삿갓이라고 불린 사내, 김병연 씨 1863년 3월 29일, 전라도 화순군 동복면 귀암리에서 죽다 김삿갓이라고 불린 사내, 김병연 씨가 세상을 등진 그해 그날은 바람이 몹시 불고, 비가 왔어야 했다 천둥소리는 산야를 부들부들 떨게 했어야 했다 분명, 그날 비가 왔었다 궁지에 몰린 염소처럼 세상 울타리를 들이받으면서* 산 김병연 씨의 깊게 팬 손금 모양의 물줄기는 금방 도랑이 되었다 김병연 씨의 시詩들은, 주인의 죽음을 어떻게 알고 달려왔는지 도랑 위에서 소리소리 지르면서 방울방울 물방울로 흐르다가 곧 터져 버리고 말았다 하늘이 있어서 더 부끄러웠고 이름이 있어서 더 치욕스러운 삶을 살았지만, 하루도 낯선 땅을 밟지 않은 날이 없었다 만나는 나무조차 돌멩이조차 먼저 알은체하였다 김삿갓이라고 불린 사내, 김병연 씨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까지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다 죽음조차 앗아가지 못한, 김병연 씨의 세상과 자신에게 치솟은 울분을 씻어 주기 위해서라도 그해 그날은, 정녕 바람이 몹시 불고, 비가 왔어야 했다 *김병연의 시 「난고, 살아온 길을 돌아보다」에서 빌려옴. 오형근 1955년 서울 출생. 1978년 《시문학》 주최 전국대학문예 시 당선, 1988년《불교문학》과 《불교문예》로 등단. 시집 『나무껍질 속은 따뜻하다』, 『환한 빈자리』, 『소가 간다』 등이 있음.  
526 당신을 만나 행복한 시간들 외1편/이영옥 file
편집자
1739 2016-12-31
17. 01월 80호 시 당신을 만나 행복한 시간들 당신을 만난 시간들 나의 삶 속의 기쁨임을 지금 와 보니 크나큰 행복입니다 내가 숨쉴 때마다 새긴 당신의 흔적들 반추하며 행복하오 당신과의 시간들은 내가 갖은 가장 아름다운 붉은 그리움 당신이 머물던 따뜻한 공간 이 마음의 고항 이라오 당신이 멀리 있다 해도 당신을 만나 행복한 시간은 향기 가득한 기쁨입니다. 미 소 고운 인연 서로 마주하며 보내는 아름다운 미소 우리는 모두의 기쁜 삶에게 정성 담긴 미소.보내며 사랑은 사랑만으로 사랑 할수 있다 하기에 사랑으로 함께 이어온세월에게 미소 현존의 삶이 향기로운 보람 이기에 새롭게 미소 지으며 ‥ 따뜻한 당신에게 산소 닮은 미소를 보내오  
525 하늘 비행기 외1편 / 권형하 file
편집자
2159 2016-12-31
17. 01월 80호 시 하늘 비행기 땅에서는 나무가 하늘인줄 알았는데 하늘에서는 구름도 땅이라네. 밝아도 밝아가도 한 곳에 머문 계절이 세월의 신발을 벗어놓고 바람을 타고 구름 위로 건너서가면 시간을 차려놓고 밥을 먹는 집이 있는 듯 구름을 꿈으로 찍어서 파는 가게가 있는 듯 그 사람이 있는 듯 그 옛날이 있는 듯. 궁궐 한 채 달을 보고 <궁궐>하고 소리쳤더니 희고 은은한 드레스를 입은 농익은 여자가 나를 맞이했다. 사르르 고개숙여 눈 감은 듯 인사를 하는데 내 생애를 걸고 안아볼 만 하였다. 푸른 하늘도 낳은 여자였다. 그 눈빛 속에는 술잔이 솟고 호수도 보이고 내가 가보지 못한 꽃 속 꽃물 속으로 시를 쓰던 연꽃이 핀 집도 보였다. 세상의 밑바닥에서도 박꽃이 피어 익은 달이 떠올랐고 꽃길이 번져서 온 마을을 감싸고 돌다가 돌아눕고 몸을 뒤척일 때마다 달빛이 번지고 마을에서는 밤에도 꽃등을 단 달이 십 리 길도 버선 발로 뛰어가는 여자였다. 푸른 하늘도 낳은 여자였다. 악력 경북 상주 사벌 출생 매일신문 중앙일보 당선 <꿈꾸는 산> 발간 E 메일 - badaro7 hanmail.net  
524 묘사2016 외1편/나병서 file
편집자
2200 2016-12-31
17. 01월 80호 시 묘사2016 생황소리에는 눈물이 묻어 있었다 눈물이 말라버린 마른 울음이 앉아 있었다 문경새재는 웬 고갠가 구부야 구부구부가 눈물이로구나 진도에서 걸어온 북소리는 지나버린 시간의 부피만큼 무거웠다 청천하늘엔 잔 별도 많고 우리네 가슴 속엔 사연도 많다 말이 없는 뒷모습에서는 그믐달이 막 떠오르고 있었다 노다 가세 노다나 가세 저 달이 떳다 지도록 노다나 가세 가야금 소리에는 세월이 묻어 있었다 가끔씩 세월의 조각들이 줄위를 튀어 올랐다 달이 뜬다 달이 뜬다 이제는 가버린 그 달이 뜬다 백발에 붉은 립스틱 정지된 청춘의 갈망이 앉아 있었다 아리랑 동동 쓰리랑 동동 달 보는 아리랑 님보는 아리랑 세월의 잔해는 앉아 있었다 잔해 속에는 여전히 세월이 숨어있었다 정든 님이 오셨는데 인사를 못해 행주치마 입에 물고 입만 뻥긋 바람이 조용히 걷고 있었고 눈물은 바람에게 스미고 있었다 애모곡 세상만큼 커다란 돌판 두개를 눈빛으로 슬픈 눈빛으로 문질러 닳아 없어지는 동안 모든 것이 나고 죽는 것을 보고 있었어요 쉬고 싶어요 편안해 지고 싶어요 오늘은 구름에 가려 달이 보이지 않았어요 아주 희미하게 멀리 숨어 있었어요 늙은 짐승이 되어가요 젊고 고운 엄마는 작은 아이를 가슴에 안고 있었어요 엄마의 손가락은 가늘고 희게 보였어요 엄마는 어디에 계실까요 토요일 늦은 오후 늘 계시던 자리 둘이 비어있어요 자리를 찿아서 자주 가는 사잇길을 어슬렁거리며 올라갔지요 얼굴이 창백한 아버지는 걷기 힘들어하는 엄마의 팔을 조심스레 붙들고 걷고 계셨어요 솔방울이 예쁘구나 떨어져 속이 빈 솔방울들은 엄마를 미소짓게 했어요 어쩌면 이렇게 만들어 졌을까 아야 지는 해가 참 이쁘구나 하나님이 만드신 것 맞지 아야 저녁에 기도하면서 예수님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한단다 엄마는 오랜만에 활짝 웃으셨지요 눈빛으로 슬픈 눈빛으로 세월이 닳아 없어지는 동안 모든 것이 나고 죽고 있었어요 1960년생 2014년 8월 한국문인협회 시분과 2015년 2월 2015년 동경미술대전 한일문화교류축제 초대작 참가 *상수리 나무의 노래(일본 나가노시) 2016년 1월 한국.프랑스 수교 130주년기념 파리시화전 초대작 참가 *능소화 애가  
523 쓸쓸한 날들의 기록22 외 1편 /김진희 file
편집자
2129 2016-12-31
17. 01월 80호 시 쓸쓸한 날들의 기록22 -4월의 강가 해는 자신의 빛을 균등하게 나누지 못한다 한낮에 몰린 햇빛은 내 몸에 빨판을 대고 수분을 쪽쪽 빨아댄다 한나절 강가에 서있으면 광합성작용으로 짙푸르게 물이 들 것 같다 그래도 좋겠지 뒤늦게 말을 배운 아이처럼 나이 들어 말이 무성해졌다 입 쪽에서 새잎이 나려는지 입이 근질근질하다 그 잎들은 둥글둥글한 활엽수의 이파리 상대방을 자극하거나 공격하는 일은 절대 없다 불화의 상태를 견디지 못하는 편벽한 나무 4월의 강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푸르른 산빛과 내 몸의 궁색한 빛이 섞인다 그 일이 꿈속까지 따라와 산고도 없이 푸른 침엽수 같은 아이를 낳는다 그 아이를 배 위에 올리고 어르다 잠이 깼다 흡족했지만 쓸쓸한 꿈이었다 추석 무렵 지진이 일어났다 땅 속 깊숙이 자고 있던 지진파가 부스럭대며 몸을 일으켰다 그 때 우리는 족발집에서 인간관계의 균열에 대하여 심각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존재의 흔들림에 대하여, 그 흔들림으로 조직이 어떻게 뒤틀리는지 어떻게 혼란에 빠지는지 침을 튀기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사람들은 가게 밖으로 나와 전화기를 들고 불안에 떨었다 멀지 않은 원전을 우려하는 소리도 있었다 중력보다 묵직하게 몸을 끌어당기는 취기를 밀어내려고 나는 눈을 크게 껌벅이는 것이지만 여기, 소주 한 병 더! 족발접시는 비어가고 소주잔은 차올랐다 우리 믿음의 접시는 바닥을 드러내고 울분과 분노와 공포가 코 밑까지 차올랐다 자꾸 누군가를 원망하고 싶은 밤이었다 남은 지진이 간 밤 우리의 침대를 몇 번 흔들었으나 아침이면 선물세트 든 손이 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무겁게 택시문을 열고 나왔다 *1969년 부산 출생. 2006년 제1회 경남작가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굿바이, 겨울』. 한국작가회의, 경남작가회의 회원.  
522 강사 포구 외1편/김만수 file
편집자
2073 2016-12-01
16. 12월 79호 시 강사 포구 지독한 결핍에서 돌아서지 않는 형 그가 만지는 오래된 연모와 쓸쓸한 그의 기지(基地)와 덧꿰맨 부표를 흔들며 여밭을 뒤지는 그의 낡은 아내가 절골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저것들이 다 닳아 쓸모가 없어지면 결핍마저 없어질거라는 형의 취기는 막차가 떠날 때까지 대책없이 바다로 흘러갔다 해마다 그랬다 가만히 왔다가는 해국(海菊)비탈에 내리는 별싸라기 기다려 하얗게 영혼들이 떠나는 물결 위로 쳐진 노을이 함께 흐르고 어린 해병들이 탄통을 흔들며 지나고 있다 형의 부표들이 붉은 바다를 흔들고 있는 강사포구 족장 케이 바람의 언덕이 흔들리고 겨울 벼랑에서 화살 나는 소리가 났다 몇 사람이 차창을 따라오다 멀어지고 다시 몇 사람이 젖혀진 하얀 내 깃털을 보고 웃고 있다 나는 바람을 따라 날아오를 수 없음을 안다 왼쪽 무릎 아래로 주저앉을 수밖에 없음도 안다 가슴 속 화살나무가 물에 잠기고 미늘이 무너져 녹슬고 있다 내 화살이 뚫지 못하는 밀랍의 세상이 걸어다니고 있다 흔들리고 반짝이는 스크린들이 교차되고 그 끈의 끝에 매달린 붉은 부적(符籍)이 팔랑거리고 있다 족장은 멀리 가지 못하고 하얗게 마르는 길을 거둬들이며 돌아왔다 화살도 날지 않고 바람의 언덕은 하얗게 지워지고 있었다 이 화려한 계엄을 벗어나면 너의 영지(領地)에 이를 수 있을까 쳐지고 꺾인 날개를 일으켜 세워 거기까지 갈 수 있을까 꿈길인 듯 날아오를 수 있을까 1987년 <실천문학> 등단. 한국작가회의회원. 포항문학회원. 해양문학상 . 장시 <송정리의 봄> 시집<소리내기>.<햇빛은 굴절되어도 따뜻하다>.<오래 휘어진 기억>. <종이눈썹>.<산내통신>.<메아리 학교>.<바닷가 부족들>.  
521 알 수 있어요외1편/김산 file
편집자
2008 2016-12-01
16. 12월 79호 시 알 수 있어요 - 만해 한용운 선생의 ‘알 수 없어요’의 가락을 빌려 삼산이수 아름다운 고장을, 전쟁의 공포로 몰아넣으며 신냉전 시대를 열어, 김천 사람들의 가슴팍을 짓밟는 싸드는 누구의 군홧발입니까? 수백 개의 북한 스커드미사일, 노동미사일, 무수단미사일을 단 48개의 싸드미사일로 막아낼 수 있다고 장담하면서 선제공격론을 주장하는 전쟁 미치광이는 누구의 얼굴입니까?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도 잡고, 대륙간탄도유도탄(ICBM)도 잡고 북한에서 날아오는 모든 미사일을 잡을 수 있다고, (잘 알면서!) 새빨간 거짓으로 국민을 기만하는 것은 누구의 입김입니까? 만의 하나, 북한핵미사일이 우리들의 머리 위에서 폭발하면, 초토화된 한반도, 미사일방어체계(MD)의 폐허를 헤매는 핵전쟁 실험실의 마루타(maruta)는 누구의 그림자입니까?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제국이 어떻게, 그 비싼 싸드 미사일로, 우리를 위하여 (정말) 공짜로 북한 핵미사일을 막아주는 진정한 수호천사입니까? 오늘도 촛불은 스스로를 태워 어둠을 밝힙니다. 평화의 광장에는 우리들의 자존심, 우리들의 자부심이 타오르고 있습니다. 수백 개의 촛불이 모여 수천 개의 촛불, 수만 개의 촛불로 번져 가면 적들의 가슴도 서늘해지겠지요. 그러니 우리는 스스로 촛불이 되어 타올라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촛불은 누구를 태우려고 하는 거대한 들불입니까? 실(蟋)이야, 그네를 밀어라 - 미당의 추천사(鞦韆詞) 곡조를 빌려 실(蟋)이야, 그네를 밀어라. 저 푸른 하늘로 싸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처럼 밀어 올려다오 실(蟋)이야. 메르스 사태와 세월호 대참사, 위안부 합의와 물대포 사망, 개나 돼지 같은 민중들이 우글거리는 지상의 검은 물로부터 밀어 올려다오 버시바우의 말처럼 요승 라스푸틴의 사술이라도 좋아 몸과 마음(body and soul)을 완전히 통제해도 좋아 푸른 한반도, 평화광장의 백만 함성으로부터, 실(蟋)이야. 발끝부터 올림머리까지 꼭두각시 공주라도 좋아, 특혜와 전횡, 정경유착과 방산비리는 알아서 하고 개성공단 폐쇄, 성과퇴출제, 국사교과서 국정화, 블랙리스트와 검열, 그까짓 싸드쯤이야, 중국이 반대하건 말건 로키드 마틴과 로비스트와 영원한 우방에게 맡기고 정치, 경제, 문화, 체육, 국방, 외교, 인사, 국정농단도 좋아 팔선녀, 십상시(十常侍), 문고리 삼인방에게 맡기고 고집과 불통과 수첩과 무능이 최선의 무기이니 프로포폴(Propofol)이라도 좋아, 저 하늘로 붕붕, 밀어 올려다오. 오방색 구름 같이만 밀어 올려다오. 실(蟋)이야. 그네는 아무리 땅을 박차고 올라도 결국은 내려 와야 하는 숙명인가 바람에 흔들리다가 소낙비 같이 떨어져야 하는가 아무래도 벼랑의 폭포 같이는 떨어질 수 없구나 탄핵이나 하야, 함께 가는 감옥밖에 없는가 마지막으로 불타는 붉은 저녁노을같이, 오방색 애기구름같이 아름다운 신천지에, 사뿐히 내려올 수 없는가 구중궁궐, 들보에 목을 맨 형상으로 덩그러니 매달린 그네가 있다 아무나 탈 수 없는 그네가 있다 이제, 아무도 타지 않는 그네가 있다. 실(蟋)이야. 1954년 경북 김천 초실생, 1983년『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별』,『나무들의 사랑』,『내 마음의 수평선』등 『분단시대』동인, 한국작가회의 회원.  
520 낙엽 외1편/최순섭 file
편집자
1860 2016-12-01
16. 12월 79호 시 낙엽 초겨울, 부음을 받고 잠시 후 영구차가 지나갔다. 한 때 푸르렀던 이파리들의 시신이 이리저리 뒹굴고 강렬한 키스의 밤, 한적한 골목 가로등 빛에 서있던 여인의 혀는 송곳이 되어 살을 후비고, 붉은 빛깔의 황홀한 벌독이 번져온다. 한 사내가 흔들리는 아주 좁은 공간에서 낙엽을 쓸며 한 잎 한 잎 젖은 속옷을 들춰본다. 언제부터 여인의 자궁 속에서 우윳빛 향기가 난 걸까. 탯줄이 끊어지고 비로소 행성은 궤도를 이탈한다. 시신을 끌어안고 숨이 뜨거운 나무들은 아궁이가 벌겋다. 젖은 장작이 불붙는 소리에 세상은 요동치고 거친 숨소리에 푸른 생명이 눈 뜨고 있다. 푸르게 붉게 노랗게…, 빛을 잃고 사라져 가는 건 모두 뜨겁다. 컵라면 낚시질하던 청년이 컵 속에 빠졌다 실비 내리는 오후 우북이 쌓인 슬리퍼가 하품을 시작할 즘 수레 위를 힐긋 바라보던 행인들이 잰걸음에 사라지고 유리창 너머 벽에 걸린 시곗바늘이 삐걱거릴 때 청년은 약국 계단에 앉아 로봇이 되었다 짝짝이 나무젓가락에 늘어진 면발을 들고 고개가 중심을 벗어나자 벌떡 일어나 보이지 않는 컵 속을 다시 휘휘 저어 퉁퉁 불어 풀죽이 된 오후를 빈속에 꾹꾹 눌러 담아보지만 식은 면발은 찰기가 없어 잘근잘근 씹지 않아도 잘 넘어갔다 바닥이 없는 하루하루가 1978년<시밭>동인으로 작품활동 시작. 에코데일리 문화부장, 한국가톨릭독서아카데미 상임위원, 서울특별시교육청근무. 시집 『말똥,말똥』 등이 있다. Email: css0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