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꽃도 어느 잎도

 


아무렇게나 피는 것처럼 보이는 꽃도

꽃이 필 때는 생각하고 생각해서 피고

아무렇게나 피는 것처럼 보이는 잎도

잎이 필 때는 생각하고 생각해서 핀다

무엇을 보일지 생각하면서 피고

어떻게 보일지 생각하면서 핀다

어느 꽃도 아무렇게 피는 꽃이 없고

어느 잎도 아무렇게 피는 잎이 없다

아무렇게나 지는 것처럼 보이는 꽃도

꽃이 질 때는 생각하고 생각해서 지고

아무렇게나 지는 것처럼 보이는 잎도

잎이 질 때는 생각하고 생각해서 진다

무엇을 보였는지 생각하면서 지고

어떻게 보였는지 생각하면서 진다

어느 꽃도 아무렇게 지는 꽃이 없고

어느 잎도 아무렇게 지는 잎이 없다

 



지구는 둥글까


지구는 둥글어서

그 끝이 없다고들 말하지만

끝에서 추락하는 일이 없다고들 말하지만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어느 날 갑자기 소식이 끊긴 사람들

소식을 끊고 사는 사람들

어쩌면 이 지구에

우리가 모르는 막다른 곳이 있어서

천 길 절벽 아래로 밀려난 것이 아닐까

아니면 그 반대로

막다른 곳에서 나도 모르게 밀려나

그들과 소식 끊긴 것은 아닐까

꿈에서 둥근 지구본 굴리다가

꿈을 깨면서 잠까지 깨어

기분 뒤숭숭한 새벽

 


동길산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89년 무크지 ‘지평’으로 등단했으며 시집 ‘무화과 한 그루’ 등 다섯 권과 산문집 ‘포구를 걷다’ 등 다섯 권을 펴냈다. ‘포구를 걷다’는 2015년 세종도서와 부산문화재단 우수도서로 선정됐다. dgs1116@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