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없는 미홍의 밝음



안지숙



정거장에서 내려 길찾기 앱을 열었다. 오늘로 이것도 끝이구나. 나는 길찾기 앱의 검색 칸에 시장 이름을 적어 넣으면서 생각했다. 서울에 있는 재래시장을 찾아다니면서 공연을 펼치는 판판프로젝트는 내가 해송문화재단에 들어와서 2년간 맡아해 온 일이었다. 계약 연장이 된다면 내년에도 재래시장을 돌아다니게 되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낮았다. 시장입구에 미홍이 목도리를 둘둘 감고 서있는 게 보였다. 미홍은 내가 걸어오는 것을 보고도 뻣뻣하게 서 있었다. 왜 그러고 있어, 준비 안 하고. 미홍은 입만 삐죽 내밀었고, 길바닥에서 햇볕을 쬐던 고양이가 배추를 실은 트럭 밑으로 들어갔다. 볕 좋은 마트 앞에 모여 있던 극단 밝음의 단원들이 나한테 인사를 하며 다가왔다. 아침 추위에 다들 코끝이 빨갰다.

“저래가지고 공연이 되겠어요?”

미홍이 시장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팔짱을 꼈다. 마트에서 시작해 고가도로 밑까지 자리를 잡은 시장은 일자형으로 길쭉했다. 연기자 네 명이 공연을 펼치기에는 공간이 협소했다. 미리 현장답사를 해야 했는데 내 실책이었다. 나는 차도 쪽으로 몇 걸음 옮겨서 시장 주변을 둘러보았다. 시장 중간에 바깥으로 나가는 통로가 있고, 바깥도로에는 가게에서 내놓은 허섭스레기들이 널려있었다. 저걸 대충 치우고 공연을 할 것인가, 잠시 궁리를 하다가 포기했다. 치우는 일도 만만찮았고, 차도와 붙어있어 교통방해 신고가 들어올 게 뻔했다.

“동작 없애고 대사로만 치고 가자. 방법이 없네.”

내 말에 미홍이 발끈했다.

“언니는, 연기까지 했던 사람이 왜 그래.”

“내가 무슨 연기를 해.”

연기를 하긴 했지만 십수 년 전 일이었다. 음, 딕션은 소영이가 최고다. 기억 안나? 미홍이 비난조로 말했다. 대학 때 연극반 지도교수는 직구를 던지듯 발성을 하라면서 내 발음을 칭찬했다. 미홍은 특히 그 교수에게 발음 지적을 많이 당했다. 그게 미홍에게 상처가 됐을 것 같지도 않은데 딕션이니 뭐니 얘기를 꺼내는 게 번잡스럽게 느껴졌다. 공연 횟수 신경 써야 하는 거 다들 알죠? 빨리 시작합시다. 내 말에 단원들이 미홍을 쳐다보았다. 아, 진짜 그림 안 나오는데……. 미홍은 시장입구를 노려보며 투덜거렸다. 나는 미홍에게 한마디 쏴주려다 입을 다물었다. 외주작업자가 뻗댈 때는 말문을 닫는 게 효과적이었다. 입을 닫고 있으면, 그들은 내 눈치를 살폈다. 현장에서는 그들에게 내가 재단이었다.

애들아, 우리 컨셉 좀 잡자. 미홍이 상처받았다는 표정을 짓고는 단원들을 데리고 마트 앞으로 몰려갔다. 여자들 다섯이 머리를 맞대고 둘러선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서 나는 입술을 깨물고 있다가 미홍을 불렀다. 고개를 삐뚜름히 돌려 쳐다보는 미홍에게 손목시계를 들어보였다. 삐쳐서 모른 척할 것 같던 미홍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미홍에게 마트 이층에 있는 카페를 가리켜 보이고는 계단을 올라갔다.

출입문을 열자 주방과 가까운 테이블에서 냅킨을 접고 있던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깨끗하게 청소가 된 카페 안에 손님이 아무도 없어 괜히 횡재한 기분이었다. 나는 드립커피를 주문하고 창가 구석자리로 갔다. 엉덩이를 들지 않아도 거리가 훤히 내다보였다. 공연 상황을 체크하면서 과제를 해치우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고깔모자를 쓰고 알록달록한 몸뻬바지를 입은 배우 넷이 생선가게로 우쭐우쭐 몰려갔다. 생선가게 아줌마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두어 차례 공연을 쳐낸 뒤로는 미홍과 배우들이 구술자 섭외도 알아서 했다.

해송문화재단이 서울시 지원금을 받아서 진행하는 판판프로젝트 공연은 백화점이나 대형할인매장으로만 몰리는 사람들을 재래시장으로 끌어들이는 게 목적이었다. 판판프로젝트의 외주업체를 선정하는 면접 자리에서 미홍은 자신의 연출 포인트가 신파와 감동이라고 밝혀 점수를 땄다. 극단 밝음의 대표이자 연출가이기도 한 미홍은 대본 없는 즉석공연을 하겠다고 기획서에 적어냈다. 작년에 했던 극단은 시장유래를 조사해서 극본을 준비해 가던데요. 팀장의 말에 미홍은 살짝 코웃음을 쳤다. 신파와 감동은 짜놓은 대본에서 나오는 게 아니거든요. 그럼 어디서 나오는데요? 팀장이 물어보자 미홍은 오른손을 가슴에 얹고 말했다. 별의별 고생을 다 했지만, 내가 이렇게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거요. 누구든 자기 인생에서는 주인공이잖아요. 주인공이 꾸려가는 가게를 무대배경으로 해서 그 사람 인생을 눈앞에서 펼쳐 보이는 겁니다. 생각해 보라고요. 자기 인생이 펼쳐지는데 감동을 하지, 안하겠어요? 주인공 스토리가 알려지면 손님도 늘 거고요. 같은 물건을 사도 이왕이면 인생내력을 알게 된 사람 가게에서 사고 싶잖아요. 인간적으로요. 스토리텔링을 이용한 마케팅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미홍의 대답은 훌륭했다.

대본이 필요 없는 극단 밝음의 공연은 섭외가 관건이었다. 시장바닥에서 살아온 이야기를 책으로 쓰면 열 권도 모자란다고 큰소리치는 상인을 두세 명 정도 확보하면 그날 공연은 성공이었다. 상인들로부터 살아온 내력을 들으면 극단 밝음 단원들은 그 이야기 속으로 자신들을 밀어 넣었다. 상인들은 자신의 이야기에 빙의한 무당처럼 설치는 연기자들을 보면서 어색하고 민망해했지만, 대부분 금세 공연에 빠져들었다. 이웃가게 주인들과 장 보러 온 손님들도 자리를 뜨지 않고 주인공의 시장인생을 지켜보았다. 미홍은 능력 있는 연출가였다.

연출로 풀리긴 했지만, 대학연극부 때 미홍은 주인공급 역할을 많이 맡았다. 선배들은 발음 지적을 받던 미홍에게 비중 있는 역할을 안기면서 내게는 중요한 배역을 맡기지 않았다. 제 아무리 딕션이 좋아도 무대욕심 없이는 인물 소화 못해. 넌 연기는 아냐. 조연출의 충고가 크게 섭섭하거나 억울하지는 않았다. 나는 무대에 서는 것보다 조명실에 앉아있는 것을 좋아했다. 여배우1이나 행인2 같은, 내가 나오는 몇 장면이 끝나면 대본을 말아 쥐고 조명실로 뛰어올라가곤 했다. 불이 꺼진 조명실에서 내려다보는 무대야말로 진짜 무대였다. 사람들이 등장하고, 움직이고, 사라지는 무대는 나의 부재로 인해 신비롭고 비밀스러운 공간으로 변모했다. 잠시 등장했다 사라지는 사람들의 기억과 부재가 고여 있는 무대는 마치 인류의 운명을 항해하는 커다란 배와 같았다. 조명실의 어둠 속에 앉아서 내가 빠져나온 배를 내려다보던 그때를 떠올리자 어떤 비애 같은 것이 밀려왔다. 나는 늙은 여자처럼 한숨을 내쉬었다. 커피를 탁자에 내려놓던 카페남자가 나를 힐끔 보았다.

시장통 카페치고는 커피 맛이 괜찮았다. 한 모금을 마시고, 또 한 모금을 더 마시고 나서 구닥다리 넷북을 켰다. 오전 중에는 오늘저녁 명리학교실에서 발표할 내 사주명식을 정리하고, 오후에는 공연보고서를 작성하기로 했다. 공연사진은 미홍이 알아서 찍어놓을 것이다. 나는 불과 흙으로 채워진 내 사주명식을 불러냈다.

을乙 병丙 경庚 기己

미未 인寅 오午 미未

내가 태어난 해는 1979년 기미년이었다. 기미년, 기미년부터 해석을 하자. 기미년을 되뇌어도, 욕설을 내뱉는 것 같은 후련함은 있는데,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강의를 들을 때는 뭔가 알 것 같더니 막상 혼자서 분석을 하려니 기본 용어조차 가물거렸다. 괜히 발표하겠다고 나섰나. 후회가 되기도 했지만, 자기 명식을 발표해야 사부가 총평 삼아 들려주는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 강의내용에 얽매이지 말고, 본인의 직관과 직감으로 정리해 오면 됩니다. 사부가 일러준 대로 눈에 들어오는 것부터 짚어가기로 하고 메모장을 열었다.

내가 명리학에 꽂힌 건 지난 여름휴가 때였다. 뤽 베송 감독이 만든 영화 ‘제5원소’를 토렌트에서 다운받아 본 뒤 5원소를 검색하다가 명리학 사이트로 들어가게 됐다. 명리학의 5원소인 오행(五行)에 대해 적어놓은 글이 눈에 띄었다. 수성, 목성, 화성, 토성, 금성이 지구에 영향을 미치고, 지구는 물(水), 나무(木), 불(火), 흙(土), 쇠(金)의 오행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내용이었다. 영화에 나오는 5원소보다 명리학의 5원소가 더 그럴싸해 보였다. 나는 선풍기를 틀어놓고 배를 깔고 엎드려 노트북을 클릭해가며 몇 시간 동안 사이트에 올라온 글을 읽었다. 근시안에 도수를 맞춘 안경 하나를 코에 걸친 느낌이었다. 나는 링크를 걸어놓은 명리학교실로 들어갔다. 명리학입문반 과정이 개설돼 있었다. 첫 강의는 이미 지나갔지만 바로 신청을 했다. 명리학이라는 게 태양계를 도는 행성들의 움직임까지 살펴서 사람의 일과 사물의 이치를 해석해주는 학문이라니,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틀어진 내 인생행로쯤 가뿐하게 짚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인생에서 운의 절정기는 대학을 졸업하던 해였다. 절정기라기보다는 결정적인 해라는 게 맞겠다. 그해 2002년은 임오년(壬午年)으로 힘이 지나치게 세서 문제가 되는 겁재의 기운이 내게 들어온 해였다. 겁재는 프로이트 식으로 말하면 무의식적인 욕구의 저장고인 이드(Id) 같은 거였다. 내 사주명식 자체에 이미 겁재가 있는데, 임오년이 되면서 겁재가 하나 더 들어왔으니 눈에 뵈는 게 없었을 것이다. 겁재의 괴력으로 기가 펄펄 살아서인지 나는 R쇼핑 취업에 성공했다. R쇼핑에서 나는 마케팅부 막내사원이었고, 홍보담당자인 정대리가 내 사수였다. 사수가 시키는 일을 하라고 있는 게 막내였으므로, 나는 찍어온 사진파일을 정리하고, 교정을 보고, 약속이 잡힌 인터뷰이에게 확인전화를 걸었다. 다음 달에도 그 일을 했고, 그 다음 달에도 그 일만 했다. 테마 잡고, 취재하고, 사진 찍고, 글 쓰는 일은 막내가 해서는 안 되는 건가, 묻고 싶었으나 참았다. 잡무만 시키는 데 대한 불만을 내색하지 않고 묵묵히 견딘 게 대기업 신입사원으로서 내가 몇 달간 해낸 일이었다. 정대리가 Y여대 언론정보학과에 응시했다가 떨어진 적이 있다는 소문을 다른 부서에 있는 입사동기에게서 들었다. 나는 Y여대의 언론정보학과를 나왔다. 그 나이에 웬 지질함이래. 빈정거리는 내 말을 입사동기는 못들은 척했다.

그날 이후 나는 할 일이 없어 남아도는 시간에 지난 호 사보를 뒤적이며 눈치 보는 짓 따위는 하지 않았다. 나는 정대리가 시키건 말건 다음호 작업에 필요하겠다 싶은 자료를 찾아서 공유폴더에 올려놓았다. 미친 거 아니냐는 눈총을 정대리가 쏘아 보냈지만 못 본 척했다. 나는 꿋꿋이 여름시즌에 어울리는 이미지를 확보했고, 신제품 홍보에 필요한 컨셉 아이디어도 생각날 때마다 올렸다. 누군가 그걸 쓰든지 버리든지 상관없었다. 애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말도 없고, 어딘지 엉큼해. 재수 없어. 휴게실에서 정대리가 다른 선배들과 쑥덕거리는 소리를 옆 테이블에 앉아서 듣기도 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힘들었다. 조직에서는 누가 옳고 그르고를 따지지 않았다. 나는 8월 초에 사직서를 냈다. 다음 인사이동을 기다려보라는 충고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더는 정대리와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지질한 인간들한테 나를 던져두는 건 자신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나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첫 직장을 때려치우고 두 달 남짓 쉬다가 작은 무역회사에 들어갔다. 간단한 서류번역을 하고 사무를 봤는데 재미가 없었다. 수틀리면 또 때려치우지 하는 생각이 불쑥불쑥 들면서 출근하기가 싫었다. 그래도 다녔다. 나는 학교 다닐 때도 그랬지만, 기본적으로 성실한 편이고 튀는 것을 싫어하는 타입이었다. 사직서를 던지는 객기는 한 번으로 족했다. 무역회사가 부도를 맞아 망한 뒤에는 영상 제작업체 몇 군데를 옮겨 다녔다. 종합복지관, 입시학원, 신문사 교열부 등에서도 일을 했다. 종합복지관에서는 11개월째 월급이 찍힌 다음날 해지통고를 받았고, 신문사에서는 정규직 전환을 코앞에 두고 잘렸다. 지금 다니는 문화재단에서도 조만간 계약해지 통고를 받게 될 터였다.

첫 직장부터 지금 다니는 재단까지, 내 사주명식의 대운과 연결시켜가며 사회생활을 징검징검 정리하고 나서 메모장을 저장했다. 그래프로 그리면 45도 기울기의 인생이었다. 뭔가 억울하다기보다 어이가 없다는 기분이었다. 재단에서 계약해지를 통고받으면, 45도 기울기의 직선 끄트머리에 점 하나 찍힐 것이고, 그 점을 뭉개면서 일직선은 아래로 내리꽂힐 것이다. 분기별 사업이 12월 중으로 마무리되니까 이번 달 말, 늦어도 12월 초까지는 해지통고가 날아올 거였다. 재계약은 대개 일회에 그쳤다. 계약직에 대한 통상적인 처리방식이 그랬다. 그것을 뻔히 알면서도 뭔가에 쫓기듯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했다. 해지통고를 받게 될까봐 그런 건 아니었다. 물론 그 이유도 없지 않았지만, 요즘 들어 딱히 근거를 알 수 없는 불안이 수시로 밀려들었다.

사람이 이유 없이 불안한 것도 사주에 들어있는지, 명리학교실에 나오는 여자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강의시간에 사부의 말을 끊고 질문을 던져 눈총을 사긴 해도 실력은 있어 보였다. 불안한 거 맞네. 겁재가 안방에 들앉았으니 힘이 오죽할까. 반말 비슷하게 던지고 난 여자가 내 사주명식을 한참 더 들여다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는 여자의 입을 쳐다보았다. 자기한테는 겁재가 불이잖아. 불이 나무를 다 태워버리니 몸도 가시방석이요, 마음도 가시방석일밖에. 어디 기댈 데가 없으니 불편하고 불안하지. 여자는 거침없이 풀이했다. 내 명식에서 나무는 문서, 엄마, 공부 같은 것을 의미했다. 나는 여자에게 물었다. 나무가 불에 타버린다는 것은, 뭔가 배우러 다니는 게 저한테 도움이 안 된다는 의미인가요. 여자는 내가 사다준 커피를 빨아먹으며 어깨를 들었다 놨다. 내가 생각해도 바보 같은 질문이었다.

“언니, 사주보는 거야?”

갑자기 미홍의 목소리가 들려 나는 고개를 들었다. 언제 들어왔는지 미홍이 내 옆에 서서 만세력을 띄워놓은 넷북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런 건 또 언제 배웠대. 하여간 부지런한 언니라며 나를 치켜세운 미홍이 카페 남자에게 라테를 주문했다.

“볼 줄 알면 내꺼도 좀 봐줘. 공연지원금 신청해놨는데 그거 안 되면 우리 극단 완전 죽음이야. 굶어죽을지도 몰라.”

미홍이 맞은편 의자에 앉으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호들갑스럽긴 해도 엄살은 아닐 거였다. 오늘만 해도 연출까지 다섯 명이 아침 아홉시 반에 나와서 오후 서너 시까지 뛰는데, 책정된 공연비는 겨우 40만 원이었다. 교통비와 점심값과 소품비가 포함된 금액이 그 정도였다. 그래도 미홍은 해송문화재단 사업은 공연비 떼일 걱정을 안 해도 된다며 판판 공연업체로 선정됐을 때 엄청 좋아했다.

“언니, 잘 먹을게.”

카페라테를 받아든 미홍이 잔을 들어 올리며 애교를 부렸다. 대학교 때는 미홍이 저러지 않았다. 몇 년간 서로 연락이 끊겼다가 재단 일을 하면서 만났는데, 미홍은 성격이 많이 변해있었다.

“애들은 잘하고 있고?”

“우리 애들이야 늘 잘하지. 내가 운영 능력이 없어 문제지. 극단도 요즘은 전문마케팅이 필요한데 언제 그런 걸 배웠어야 말이지.”

입술에 라테 거품을 묻힌 채 투덜거리던 미홍이 의자에 비스듬히 몸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입을 놀리지 않고 있으니 미홍의 얼굴이 해쓱해보였다. 그래, 쉬어라. 너도 좀 쉬어야지. 속으로 한 말인데, 미홍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나는 넷북을 덮었다. 키보드소리로 잠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미홍이 가는 한숨을 내쉬었다. 금세 잠이 들었는지 가슴이 조용히 오르내렸다.

미홍은 대학을 졸업하고 들어간 극단에서 제대로 된 배역을 따내지 못했다. 연출가로부터 발음이 부정확하고 호흡이 짧다는 지적을 받았다. 자신의 폐활량에 개선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하자 미홍은 연출로 돌아섰다. 연출, 이거 재밌어. 첫 연출작을 무대에 올렸을 때 초대장을 보낸 미홍은 볼을 발갛게 물들인 채 말했다. 그 뒤로는 내가 연극에서 관심을 거뒀으므로 만날 일이 없었다. 재단 일로 다시 만났을 때 미홍은 극단 대표가 돼있었다. 극단 밝음을 만들고 나서 사람들한테 기피 인물로 찍혔다고 미홍은 묻지도 않았는데 술술 털어놓았다. 공연이 있을 때마다 선후배와 동기들을 찾아다니며 표를 강매했고, 밥값과 사무실 운영비를 뜯었다고 했다. 덕분에 빈대라는 별명을 얻었다는 미홍이, 나는 부러웠다. 빈대라는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붙잡고 갈만한 뭔가가 있다면 막막하지 않을 것 같았다. 내게는 미홍의 밝음 같은 게 없었다.

“내 생년월일 불러줄까?”

나지막이 코를 골던 미홍이 갑자기 몸을 벌떡 일으키고 말했다.

“아니다. 4월 1일, 밝음 창단 날짜로 봐줘. 내년에 우리 극단, 운빨이 어떨 것 같아?”

“그거 알아맞힐 실력이면 자리 깔았게.”

극단 창립일과 내년 연운이 합인지 충인지 정도만 봐줄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몇 년간 열심히 극단을 이끌어 온 것 자체가 운빨이지, 머. 나는 미홍에게 고리타분한 말로 둘러댔다. 그런가. 미홍이 내 눈을 빤히 쳐다보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밥이나 먹으러 가야겠다. 아참, 이건 오늘 구술자들 섭외한 거.”

미홍이 가게 상호와 전화번호를 적은 진행기록지를 내놓고 손바닥을 내밀었다.

“뭘?”

“나 배고파. 아침에 보니까 밥통에 밥이 하나도 없더라. 누가 또 친구들을 끌고 와서 싹쓸이를 했나봐.”

아침저녁 두 끼를 고시원 밥으로 때우는 미홍은 시장공연이 있는 날 툭하면 손을 벌렸다. 공연비에 점심값이 포함돼 있다는 말은 차마 안 나왔다. 시장통이라 밥값이 싼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나는 오천 원짜리 한 장을 꺼냈다가 다시 지갑을 열고 만 원짜리 세 장을 더 꺼냈다. 미홍이 눈을 끔벅거렸다. 오늘 마지막 공연이잖아. 재단에서는 프로젝트를 끝낸 외주업체에 회식비를 주는 대신 기념품을 발송했다. 기념품이라는 게 작은 액자나 무릎담요 같은 거라서 주고도 욕을 먹었다. 언니, 맛있는 거 사먹을게. 미홍이 손에 쥔 지폐를 흔들어 보이고는 출입문을 나갔다. 카페 남자가 우리 둘이 하는 양을 쳐다보고는 실쭉 웃었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났는데 카페에는 아직 손님이 나밖에 없었다. 넷북을 다시 켜고 명식 정리를 다 끝낼 때까지도 손님이 들어오지 않았다. 남자는 남의 카페를 봐주러 온 사람처럼 태평했다. 그러니까 저 태평스러운 얼굴을 나는 전에 본 적이 있었다. 경복궁 근처 커피전문점에서 바리스타 기초과정을 배울 때였다. 무슨 제약회사에 다닌다고 했던 기억도 났다. 제약회사 영업사원에서 시장통 카페 주인으로 변모한 남자의 사주명식을 가져가면 명리학교실 사부가 좋아하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넷북을 끄고 가방을 챙겼다. 카드를 내미는 내게 남자가 눈인사를 했다. 잠깐 망설이다 귀찮아서 알은척하지 않았다.

카페 계단을 내려가자 미홍이 생선가게 앞에서 손짓을 했다. 이제 한 집만 더 하면 돼. 공연반응이 좋은지 미홍의 목소리가 통통 튀었다. 여기 생선가게 아줌마가 사람들 신상을 다 꿰고 있어. 저기 신발집 사장님은 오일장 돌던 장돌뱅이 출신인데 인생이 수목 드라마야. 나는 진행기록지에 미홍이 일러주는 내용을 메모하고 시장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를 돌면서 공연소감을 듣고, 공연장면을 액자로 만들어서 드릴 건데 특별히 넣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묻고, 사진을 몇 장 더 찍고, 재단에서 전화가 올 경우 어떻게 말하는 게 좋은지 힌트를 주었다. 마지막 가게까지 도는 데 한 시간이 걸렸다. 상인들과 주고받은 말을 탈탈 털어서 공연보고서를 채우면 오늘 업무는 끝이었다.

공연은 끝났지만, 보고서를 완성해 놓고 카톡을 보내기로 했다. 지금 공연종료를 알렸다가 사무실로 들어오라는 소리가 나오면 골치 아팠다. 명리학교실과 재단사무실은 서울의 양 끝에 있었다. 미홍이 단원 네 명과 소품들로 가득 채운 차를 몰고 돌아간 뒤 나는 편의점을 찾아 들어갔다. 편의점 탁자에 자리를 잡고 넷북을 켜고 시간을 확인했다. 네 시가 가까웠다. 미홍이 넘겨준 공연사진을 띄워가며 구술자의 스토리와 공연장면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는 식으로 보고서를 썼다. 말이 보고서지 거의 공연 팸플릿 분량이었다. 공연 틈틈이 작성했어야 할 내용을 몰아 쓰고 나자 어깨가 따끔거렸다. 양쪽 팔을 번갈아 치켜들고는 천천히 돌렸다. 계산대를 지키는 여자애가 내가 앉아 있는 쪽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나는 의자를 뒤로 물리고 일어나 진열대에서 삼각김밥과 컵라면을 집어 들었다. 라면이 붇기를 기다리며 목 운동을 하는데 뿌드득 소리가 났다. 삼각김밥을 먹고 라면국물까지 다 마시고 나서 팀장에게 카톡을 보냈다. 공연 5회 완료. 공연팀에 부과된 하루 공연 횟수는 5회 이상이었다. 읽음 표시가 뜨는데 답이 없었다. 마지막 남은 한 꼭지를 마저 작성하고 나서 다시 카톡을 날렸다. 한 건 정도 더할까 싶어 나가봤는데 섭외가 안 되네요. 보고서는 메일로 보낼게요. 즉시 답변이 왔다. 알았음. 이모티콘이나 물결표시 없이 오는 답글은 화가 났다는 표현이었다. 가끔 반말을 툭툭 날리는 팀장은 나보다 두 살 아래였다.

뜨거운 컵라면 국물을 먹고 나니 괜찮은 것 같더니 밖으로 나오자 등이 으슬으슬했다. 요즘은 조금 무리를 하면 맥이 풀리듯 몸에서 힘이 빠졌다. 직장을 다니면서 이런저런 강좌를 쫓아다니느라 내가 생각해도 바쁘게 살긴 살았는데, 그 때문에 피로가 쌓인 거라면 왠지 부끄러웠다. 지난 몇 년간 나는 한 강좌가 끝나면 또 다른 강좌를 찾아 등록을 했다. 퇴근하고 누구를 만나 저녁을 먹는다거나 술을 홀짝이는 것에 대해 거부감은 없었다. 그냥 내키지 않았다. 차라리 낯선 강사를 앞에 두고 뭔가에 집중하는 게 마음이 편했다. 배워두면 언젠가 써먹을 데가 있을 거라는 계산으로 강좌를 선택한 건 처음 한두 번이었다. 내가 새로운 강좌를 찾아 돌아다니는 동안 동기들은 고만고만한 회사의 팀장급으로 승진해 있었다. R쇼핑에 입사했을 때 나를 부러워했던 동기들이었다.

만날 뭐가 그렇게 바빠. 내게 연락을 해오던 동기들이 나중에는 화를 냈다. 내가 그들을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처음에는 나도 몰랐다. 나는 치부를 들춰내듯 내 일정을 그들에게 알렸다. 스페인어 배우러 다니느라 시간이 통 안 나네. 요즘 벨리댄스 배우고 있어. 매일 가는데 벌써 네 달째야. 나 고기 안 먹어. 얼마 전부터 몸살림운동 시작했어……. 카메라를 배우고, 비누공예를 하고, 귀농학교를 다니고, 명리학을 공부하면서 나는 실제로 늘 바빴다. 어쩌면 늘 바쁠 수 있었던 것이 그렇게 열심히 강좌를 쫓아다닌 이유였는지도 모르겠다. 뭐가 됐든 뭔가를 하려고 달려가는 길은 덜 막막했다.

문구점에서 내 명식을 풀이한 과제를 프린트로 뽑아 복사한 뒤 밖으로 나와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래도 몸살 약을 먹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문구점으로 도로 들어가 주인여자에게 약국이 어디 있는지 물었다. 주인여자가 한참 생각하더니 버스정류장 근처에 있을 거라고 했다. 나처럼 눈썰미가 어지간히 없는 여자였다. 아침에 버스에서 내렸던 정류장 건너편에 약국이 보였다. 횡단보도 앞에 서서 스마트폰을 열었다. 길찾기 앱을 열고 시장에서 명리학교실로 가는 길을 검색했다. 한 시간 거리였다. 스마트폰을 가방에 넣는데 카톡이 울렸다. 잠깐 신경이 곤두섰다. 해지통고는 아니었다.

아버지 또 시골로 잠적. 혼자 배달 뛰느라 죽을 지경임.

카톡은 남동생한테서 온 거였다. 답장을 하지 않자 전화가 걸려왔다. 횡단보도를 다 건너가서 전화를 받았다. 저녁에 와서 홀 좀 봐주라. 엄마가 닭 튀기다가 뛰어나와 맥주잔 나르고 있어. 동생이 고함을 질렀다. 갈 데 있어서 안 돼. 바빠. 바쁘지 않아도 치킨냄새 맡으면서 맥주잔 나르기는 싫었다. 아버지는 재작년에 정년퇴직을 하고, 집을 판 돈에다 미리 찾아 쓰고 조금 남아있던 퇴직금을 보태 동생한테 치킨집을 차려주었다. 온가족 생활비를 책임지겠다며 큰소리쳤던 동생은 엄마와 아버지를 종업원으로 부리고 있었다. 집을 팔고 전세로 들어가면서 동생은 방 두 개짜리를 계약했다. 거실에서 자도 된다는 동생한테 방을 내주고 나는 원룸을 얻어 나왔다. 덕분에 매달 원룸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몇 달 푹 쉬고 싶어도 쉴 수 없는 처지였다. 내 사주명식을 정리하면서 부모 형제 덕이 없다는 내용을 넣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리학교실이 있는 회관으로 들어서자 사부의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발표를 하는 날인데 삼십 분이나 늦었다. 약국에서 나와 길찾기 앱이 일러준 150번 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 가다보니 반대방향이었다. 다음 정류장에서 내려 환승해 오는데 길이 막혔다. 한두 번 겪는 일이 아니었으므로 새삼스럽지는 않았으나 부글거리며 술이 괴듯 조용히 화가 괴어올랐다. 버스 손잡이를 잡고 흔들리면서 한 시간 남짓을 서서 왔다. 오는 동안 몸에 약 기운이 퍼졌는지 으슬으슬한 느낌은 덜했다.

“외모만 성형하는 줄 알아? 아니야, 여러분. 팔자도 성형을 해요. 해마다 재기통문이 든 날에 생일잔치를 하고, 그날 태어났다고 우기는 거야. 재물이 붙을 사주라고 지한테도 우기고 남한테도 우기면서 사주 자체를 바꿔버리는 거야. 사주 바꾸기 참 쉽죠이.”

꼬리를 늘이는 사부의 말투에 수강생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웃음소리로 소란해진 틈을 타서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가방에서 수강생들에게 나눠줄 복사 뭉치를 꺼내자 U자로 배치된 자리의 건너편에 앉아있던 철학공방 남자가 손가락으로 브이자를 만들어보였다. 어색한 티가 묻어나는 포즈에 웃음이 나왔다. 그가 방장으로 있던 철학공방에 꽤 오래 참석한 적이 있었다. 무슨 유행처럼 서울 곳곳에 인문학카페가 생길 무렵이었다. 철학공방은 그런 카페에서 꾸리던 철학서 읽기 모임이었다. 카페를 찾아간 첫날 얼굴이 네모나게 각진 남자가 철학공부를 하려고 마음먹은 계기가 궁금하다고 말을 건넸다. 철학을 하면 내가 바라는 게 어떤 삶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왔다고, 나는 준비된 대답을 했다. 내 태도가 조신해 보였는지 사람들이 우호적인 미소를 지었다. 얼굴이 각진 남자가 철학공방 모임의 방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하고는 환영사를 했다.

“여긴 다들 형편껏 자신의 입장에서 공부하고 있어요. 철학공방이라는 배가 항해하고 있기 때문에 같은 배를 탄 사람들과 함께하는 행복이 있을 겁니다.”

같은 배를 타고 항해한다는 방장의 말이 이상하게 안도감을 주었다. 계속 모임에 나올지 말지 쭈뼛거리던 마음도 사라졌다. 배에 탄 사람들은 자주 바뀌었지만 철학공방 남자를 중심으로 매주 모임이 이어졌다. 나는 일 년 가까이 참석을 하다가 영상센터에서 하는 동영상 편집강좌를 듣게 되면서 빠졌다. 빠진 뒤에도 철학공방은 하나의 커다란 배처럼 내 기억 속에 남았다. 그 후 내가 참석했던 강좌나 모임에서도 나는 새로 만난 사람들과 어울려 잠시 같은 배를 타고 항해하는 거라 생각했다.

“명식 발표 합시다. 오늘 누구지?”

사부의 말에 나는 일어서서 앞으로 나갔다. 숨을 고르며 사람들을 둘러보다 철학공방 남자에게 눈을 맞췄다. 마음이 차분해졌다. 철학공방 모임 때도 그랬다. 겨우 해독한 내용을 떠듬떠듬 늘어놓으면서도 네모나게 각진 얼굴을 보고 있으면 안정감이 들었다.

“이소영 씨, 생일을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닌가요?”

발표가 끝나자 내 명식에 화(火)가 넘쳐 나무를 다 태운다고 풀이했던 여자가 질문을 했다. 질문이 아니라 추궁하는 말투여서 나는 순간적으로 기분이 나쁠 뻔했다.

“양력으로 79년 6월 28일 맞아요.”

“아까 직장을 이곳저곳 옮겨다녔다고 했는데… 명식이 안 맞아요. 느낌적 느낌으로.”

느낌적 느낌 같은 소리는 할 필요 없고 근거를 말하라고 구석에 앉아있던 사부가 참견을 했다. 사부의 퉁명스러운 말투에도 기죽지 않고 여자가 빔으로 띄워놓은 내 사주명식을 가리켰다.

“재물을 겁탈하는 겁재에다 직장 운을 망치는 상관이 저렇게 들앉았는데 직장을 그리 쉽게 찾아 들어갔다고요? 쉬지도 않고? 저 명식이면 쪽박을 차도 벌써 찼겠네. 겁재에 상관에 편인에……, 흉신이 저 정도면 정신적으로 먼저 문제가 생겼지 싶은데요.”

여자의 말은 사주에 귀격 천격이 따로 없고, 길신 흉신이 정해진 게 아니라는 사부의 강의내용을 대놓고 부정하는 것이었다. 사부는 겁재나 상관이 흉신이 아니라 낡은 판을 치우고 새로운 판을 짜는 기운이라고 가르쳤다.

“주제넘지만, 한 말씀 드리고 싶은데요.”

철학공방이 손을 들었다. 사람들 눈길이 여자한테서 철학공방으로 옮겨갔다.

“사람 한평생을 생로병사라 이르지 않습니까. 생로병사에서 좋은 게 뭐 있나요? 태어난다는 거, 이거 하나가 좋을라나. 평생 힘들게 괴롭게 살다가 좁쌀만큼 괜찮은 게 있으면 우리는 그 좁쌀 하나 갖고 죽인다느니 대박이라느니 하잖습니까. 어차피 사람 사는 게 열에 아홉 쪽박입니다. 도긴개긴 인생에 쪽박 명식이다 뭐다 겁주고 겁먹고 그럴 거 없지 싶어요. 하하하!”

살짝 험악해진 교실 분위기를 눅이려는 듯 수강생들이 철학공방을 따라 웃었다. 철학공방이 다시 말을 이었다.

“소영 씨 대운을 보니 지금은 좀 갑갑하지만 오륙년 뒤부터는 일이 풀릴 것 같습니다. 43대운부터 용신인 해수 자수가 들어오고…….”

철학공방이 주제를 대운으로 바꾸었고, 내가 살아온 내력을 바탕으로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변화에 대해 추측하는 의견들이 나왔다. 수업이 끝날 때쯤 사부가 내 명식의 특징을 짚으면서 이런저런 조언을 했다. 내용이 두루뭉술해 기대했던 것에 못 미쳤지만 역시 그러려니 했다. 나도 속으로는 명리학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고, 반쯤은 접어두었던 모양이다. 사부는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되 뭐든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는 말라고 했다. 그 말을 두 번 반복했다.

열 시에 수업이 끝나고, 나는 뒤풀이에 몰려가는 사람들 뒤로 빠졌다. 약 기운으로 찌그러져 있던 한기가 어깨를 두드렸다. 철학공방이 같이 가자고 손짓을 했다. 나는 덜덜 떨리는 이를 악물고 고개를 저었다. 철학공방은 잠시 나를 쳐다보다가 돌아섰다. 다음 달인 12월 둘째 주에 명리학교실 입문반이 끝나고, 내년 1월 심화반 과정이 시작될 터였다. 나는 심화반을 등록하게 될 것 같지 않았다. 자기 명식에 올라탄 사람은 본인이 가고 싶은 대로 죽 가면 돼. 사부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말을 밉상스럽게 해서 그렇지 여자는 내 삶의 핵심을 짚었다. 사주 때문이든 아니든, 나는 내 쪽박을 깼다.

직장을 구할 때마다 나는 일이 년 다니고 나면 해지통고를 받게 될 곳을 골라서 들어갔다. 일부러 그런 직장을 골랐던 건 아니었다. 그나마 숨쉬기가 편한 곳을 고른 게 결과적으로 그랬다. 닥치는 대로 여기저기 찾아들었던 강좌 가운데는 제목조차 기억나지 않는 게 많았다. 나오고 나서 후회했던 대기업 정규직도, 피곤을 무릅쓰고 쫓아다녔던 그 많은 강좌들도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던 거다. 정말 하고 싶은 게 뭔지 나는 알지 못했다. 어쩌면 정말 하고 싶은 게 없는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그냥저냥 살면 되지 머.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돌아서면, 바로 불안했다. 스스로 방향을 가늠하고, 낫낫이 손질을 해가며, 간절히 뭔가를 붙잡고 가는 사람의 배에 올라타는 것 말고는 도리가 없었다. 나는 스마트폰 주소록에서 미홍의 이름을 찾아 눌렀다.

내가 먼저 전화한 적이 없어서인지 미홍은 내 목소리를 바로 알아듣지 못했다. 극단 밝음에 합류할까 싶다. 나는 미홍에게 단도직입으로 말했다. 갑자기 무섭게 왜 그래. 연말 다가오니까 외로워서 그래? 미홍의 말에서 전해지는 긴장이 내 숨소리처럼 가깝게 느껴졌다. 연기 해보려고 그러지. 내가 딕션은 좋았잖아. 미홍은 전화 저편에서 잠시 말이 없었다. 미묘하게 미홍이 나하고 안 맞는 지점이었다. 일단 와서 보고 결정해. 회관 로비의 불빛 아래 서서 나는 미홍이 불러준 주소를 길찾기 앱의 검색 칸에 적어 넣었다. 나 같은 길치가 찾아가기 애매한 지점에 극단사무실이 있었다. 실핏줄처럼 사방에 퍼져있는 선은 사무실을 찾아 들어가야 하는 골목길일 것이다.

길찾기 앱이 일러준 정거장에서 내려 골목을 따라 들어갔다. 오십 미터쯤 걸어 들어가니 막다른 골목이 나왔다. 중간에 있는 옆길을 못보고 지나친 듯했다. 돌아 나오다가 목재를 쌓아둔 곳에서 옆길로 접어들었다. 걸어갈수록 점점 길이 넓어지더니 조금 전 버스에서 내린 정거장이 나왔다. 다시 원래 골목으로 들어와 미홍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있는 데가 어디냐고 미홍이 물었다. 간판이 붙은 가게도 없고 큰 건물도 없었다. 일반주택이랑 길냥이가 몇 마리 눈에 띈다고 말했다. 이 동네는 다 주택이고 길냥이들 천지야. 미홍이 키들키들 웃었다. 극단 사무실이 어떨지 안 봐도 알 것 같았다. 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 미홍이 웃음을 그치고 물었다. 요즘은 극단운영도 전문마케팅이 필요하다며? 내가 마케팅을 맡아서 극단연습실도 만들고, 조명실도 만들고 제대로 키워보려고 그런다. 그러니 날 붙잡으란 말이다. 이 말은 지원금에 목매고 삼시세끼 해결하기도 힘들다는 극단 밝음의 사무실을 본 뒤에 할 작정이었다. 내게는 여배우1이나 행인2가 되어 더듬거렸던 무대를 벗어나서 틀어박힐 수 있는 조명실이 필요했다. 밤공기가 사뭇 차가워지면서 온몸이 떨려왔다. 나는 닥닥닥 이를 부딪치면서 길냥이가 올라앉아 있는 담벼락을 지나 골목을 돌아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