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학생이 되셨다




기다란 장삼 자락 가다듬으며 스님께서
가르쳐주신 이름 석 자
절 마당에 비질로 그려보던 어린 불목하니
자라서, 설법전 기둥 우뚝 세우고
한짐 지고도 묵묵히
노음산 꼭대기 중궁암까지 올랐다
국민학교 문턱만 넘었어도 원이 없었겠다는 아버지
지난 부처님 오신날, 기어이 학생(學生)*이 되셨다
부처님은 오셨다가 내년을 기약하고 가셨는데
아직 돌아오지 않으신다
저 하늘에 반짝이는 별은 
우리 아버지 오토바이 불빛인가,
글자 다 배워 아버지가 내게
처음 쓰신 편지인가, 그렁그렁한 별빛
별과 별 사이를 이어 나도 답장을 쓴다
거기, 잘 있어요? 여기도 잘 있어요

*學生
1. 배우는 사람 2.배우는 신분에 있는 사람을 부르는 말 
3.생전에 벼슬 없이 죽은 사람의 명정(銘旌), 지방(紙榜), 신주(神主) 따위에 쓰는 존칭

 





안아 주는 베개

여덟 살 아들에게는
안아 주는 베개가 있다

안아 주는 베개가 아니라
네가 안는 베개 아냐, 해도
한사코 안아 주는 베개란다

곤한 하루를 안아 주고
받아쓰기 팔십 점 맞은,
아이의 눈물을 안아 주는 베개

가끔 삶으로 흐느끼는 나에게도
안아 주는 베개가 있다
괜찮아. 내가 있잖아, 하며

그 자그마한 품으로 나를 
안아 일으켜 주는
안아 주는 베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