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함(Buruham)*)공원에서 점을 보다




휴일 번함공원의 호수에선 사람들 배를 타고

호수 주위엔 늙은 여자 몇이 점을 치고 있네요

그들은 한국 여느 점쟁이같이 출생일과 손금으로

점괘를 진지하게 알려주고 사람들은 듣고 있네요


지천명을 바라보며 미래나 운명이라는 낱말과

한참 멀어진 나도 장난삼아 점을 봤지요

한국과 떠 있는 해와 달, 별의 위치가 다르고

점쟁이와 내가 가진 정서와 문화가 다른데

점쟁이가 어떤 점괘를 말해줄지 궁금해지는 시간,


우주가 생성되고 지구에 땅이 만들어진 후

점쟁이와 나는 다른 문화와 자연에서 살며

산과 들판, 바다와 관계 맺으며 살아 왔지요

다만 그녀가 전생에 한번쯤 한국인으로 살았거나

내가 전생에 필리핀인으로 살았던 적 있다면

점괘는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겠지요


그날 내가 해발 천오백미터에 있는 바기오시에 갔고

번함공원에서 점을 볼 수밖에 없었던 내 운명은

죽을 때까지 공원 호수에서 머무는 것인가

이국의 산속 도시에서 펼쳐진 내 운명,


수많은 내가 살아 온 수천년의 세월이 스쳐갔네


*) 필리핀 루손섬 북부 바기오시 도심에 있는 공원



타잔이 왔다



타잔이 필리핀의 밀림에 왔다 밀림 안에는 타잔의 친구인 치타도 있고 악어며 긴 방울뱀들이 모여 살았다 다만 사자와 얼룩말, 기린같은 동물은 살지 않았다 필리핀인들은 일년내내 크는 나무와 가지식물로 울창해지고 목숨을 해칠 수도 있는 사나운 짐승 때문에 밀림 안에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날도 타잔이 큰 소리로 포효하자 밀림의 온갖 짐승들 모여들어 밀림의 평화를 지켜냈으며 밀림은 변함없이 날로 울창해져갔다

 

우기엔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가 많아 하루에도 몇 번씩 비가 내렸다 타잔은 갑자기 내리는 비에 상관없이 코키리와 원숭이를 데리고 다녔으며 그들이 있다면 해결할 수 없는 것은 없었다. 타잔도 나약한 하나의 사람일 뿐이었다


필리핀 밀림에 매일 타잔이 왔다 타잔이 포효했다 매일 밀림 안에 내가 있다 방울뱀이 미끄러지며 나를 향해 왔으며 악어도 나를 삼키려 오고 있다


나는 매일 밤 타잔을 찾아 밤새도록 꿈속을 헤맸다




충남 서천 출생, 2001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내 몸

속의 지구』『세온도를 그리다』가 있으며, 시집 『세온도를

그리다』(2015년 세종우수도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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