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명


           

무슨 말을 할려고?

채독든 손가락 사이사이의 가려움을

촛농으로 눌러 죽인 밤이 있었다고

법당 안 마룻짱에 숨은 무늬를

죽으라, 죽으라, 마른걸레질로

살려내던 날들이었다고

겨울밤, 쩡,쩡,쩡 남장지 제 몸 깨는 소리

하현달 싸늘하게 와서 문살에 기대 엿만 보고 가는 소리

붕긋하게 젖가슴 커지는 소리

두고 온 그리움 부스럭 부스럭 몸 비트는 소리

소리, 들에 눌려 관절마다 물주머니 하나씩 달았었다고

병명에도 없는 '동물성 단백질 결핍'에 목덜미 잡혀

절뚝이며 내려 올 수밖에 없었다고

하여, 지금 너를 가둔 감옥 한 채의 비밀이

다 그것들의 음모였었다고, 그렇다고?

저것 봐라, 파초!

남국의 햇빛과 바람과 바다와 모래의 결핍을

몸속 깊이 눌러 죽이고

갓 스물의 사미니 하나를 기억하는

남장마을 그 흰 길을 꾸역꾸역 삼키며 버티는

저 푸른 오기

네가 버린 남장사 관음선원

절집 한 채를 통째로 삼키고도 끄떡없는

저 이국종의 푸른 독기를

파초는 알고 있다!

어디다 대고 감히, 지금에 와서 누구에게?



무늬


도배를 하면서

문설주 옆 꺾어진 부분에

사방연속무늬의 귀를 맞추다가

잔뜩 풀먹어 처진 벽지를

떼었다 붙였다가를 몇 번이고 반복하다가

문득, 이방 너머

세상의 벽, 그 무늬 궁금한거라

하여, 슬핏 들여다 본 그곳 현란하네

색 확 두드러지기

상하 좌우 무시하고 뒤섞이기

돌출되기, 또는 함몰되기

자기의 무늬만을 고집하는

수천만, 수억의 내가 그리고 네가

잔뜩 풀 먹힌 채로

악착같이 달라붙고 있는 벽

잘 꾸며진 하나의 방을 만들려면

벽지의 무늬부터 맞추어야 한다는 거

각진 부분에선 무늬의 반을 잘라낼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인데

저 벽, 저 완벽한 치졸미를 이루고 있는 세상의 벽

무늬들 속 어디 끼여 있을 나의 무늬는

알기는 할랑가 몰라



경북 고령생

1998년 『불교문예』등단

시집으로『통조림』,『차경』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