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달과 침묵의 11월




바람이나 돌덩이도 이즈음이면 묵상에 잠긴다. 낮달이 걸린 나뭇가지나 엽차가 조금 담긴 찻잔이라면 또 어떨까. 이것이 내가 느끼는 11월의 이미지이다. 돌이켜 보면 나는 주로 이 달에 감기에 걸려 이불을 뒤집어썼다. 곁에는 누군가의 손길이 있었고, 가끔은 외로이 앓기도 했다. 이제는 단풍마저 빛이 바래서 이런가. 누가 서럽다며 과음을 해도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면서 나는 많은 것들을 잊는다.

얼마 전에 처방전을 들고 약국에 간 적이 있다. 이십대 처녀로 보이는 약사가 내게 약의 복용법을 하나하나 설명했다.

“요건 식전에 드시고요, 이건 식후에 드세요…….”

기침이 나서 조금 전에 병원에 다녀온 터였다. 그런데도 약사의 지시에 잘 따라야 하는 내가 정작 중요한 건 다 잊고 속으로는 이랬다.

‘거참, 야무진 처녀구나!’

하마터면 내가 약사한테 엉뚱한 질문을 할 뻔 했다.

‘처자는 올해 나이가…….'

이러다가 문득 깨달았다.

‘이게 바로 예전 어르신들 정서로구나!’

그랬다. 그 시절에 나는 이 분들의 언행에 아연실색했다. 올해 나이가 몇 살인지, 양친은 다 계시는지, 안항은 또 어떻게 되는지를 왜 묻나? 그런 사생활은 알아서 뭘 하자는 걸까? 이내 다 잊어버릴 그것들을 어른들이 감탄까지 하면서 묻고 또 물었다. 그래서 낯선 젊은이의 성씨는 물론 관향마저 캐묻고는 돌아서서 나를 보며 아까 그가 당신에게 뭘 어떻게 하라고 하더냐 했다.

‘이러던 분들이 이제는 다 이승을 떠났구나.’

너도 나도 늙는다. 이러다가 다 사라진다. 이건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내가 벌써 이 나이에 그 어르신들의 태도를 닮을 건 없잖아. 더더구나 시절이 요즘은 그때와 달라서 나이가 곧바로 존엄으로 이어지지도 않는다. 아내도 곁에서 내게 핀잔을 줬다. 그럴 때도 아니면서 영감님 행세는 그만 삼가시라! 지당한 말씀이다. 몸보다 마음이 먼저 늙는 건 나도 싫다. 그럴 이유도 없다.

따지고 보면 과거 그 어르신들도 훌륭하지는 못했다. 저 젊은이가 뭘 고민하나 궁금해서 한 질문은 아니었으니까. 그 질문의 바탕이 그 어른들의 완고한 관습에 맞춰졌다. 그래서 그 관심사도 그렇게 된 것이다. 하기야 사회변동이 미미하다면 그래도 좋다. 그 문답 자체가 우리들 모두의 현재이며 미래이니까.

사람들한테는 종종 경험도 독이 된다. 과거 내게 합당했던 것들이 현재 남들한테 통하지 않는다. 이걸 인정하기 어렵다. 성공이 도리어 눈을 멀게 한다. 이게 장삼이사들의 항다반사이다. 이러니까 질문도 바로 하기 어렵다. 당장 고정관념이 장벽인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누가 내게 이렇게 묻는다면, 나는 우선 덤덤히 이 늦가을의 풍정을 알려줄 것이다. 망치나 끌을 들고 성화를 부리며 덤비는 자들한테는 일단 찬물이나 한 잔 마시라 권해야지. 사태를 파악하지도 못하고서 뭘 쪼아댈 수는 없지 않으랴. 많은 지식을 빨리 축적하자면 누구라도 촌음을 아끼며 바지런을 떨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혜는 고요한 가운데 자란다.

‘그러면 그 고요는 어디에서 오는가?’

‘바로 단순성에서 온다.’

11월이면 활엽수들이 옷을 다 벗는다. 사람들도 뭔가를 털어내려고 한다. 또 마땅히 그래야 한다. 11월은 공기마저 다르다. 3월이나 4월 또는 7월이나 8월을 상기해 보라. 아무래도 11월은 바람마저도 소슬하다. 이때 듣는 음악이나 읽는 글마저도 깊은 슬픔이 묻어나는데, 이건 한때의 열정과 사랑이 남긴 잔상이기도 하다.

나는 문득 궁금하다.

‘인생에도 이런 가을이 있어서 사람들이 자꾸 낯선 이들한테 엉뚱한 소리를 하려는 걸까?’

그렇다면 나도 자신을 진작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이렇게 자신을 가만히 돌아보는 날들이 있어야 그나마 주책바가지는 면할 게 아니냐 싶기도 하다. 이리하여 이즈음에 나는 누구한테라도 이렇게 말한다.

“웬만하면…….”

그래, 웬만하면 설레발을 치지 말고 그냥 그대로 지내시라. 그러면 아주 소중하나 그간 지나친 것들이 보일 것이다. 가족들과 나뭇가지 사이에 걸린 낮달을 보는 게 그리 어렵지는 않다. 근래에는 시내 구석구석에 커피전문점이 생겼다. 여기에서 그간 격조했던 몇몇 사람들을 만나 생소한 이름의 커피라도 한 잔 마시면 어떨까. 말이야 하지 않아도 좋다.



경상북도 영천 출생(1962).

《월간에세이》로 등단(1991)

수필집『함께 가는 우리들』(1999),『참 좋은 날』(2006).

대구경북작가회의, 대구수필가협회 회원.

전자우편: gagozig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