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괜찮은데



씨줄과 날줄로 결어진 피는 그 성질이 끈끈하고 진하다. 천륜이 지중한 것은 피로 맺어진 숭고한 관계에서 저절로 우러나는 본능이기 때문이다. 절대적인 인연이랄 천륜지정엔 어떠한 조건도 개입될 수 없다. 피를 수수(收受)한 사이에서 분출되는 사랑에는 호리의 이해관계도 끼어들 수 없는 강력한 보호막이 있다.

어머니는 치매로 수년 동안 병마에 시달리는데 문밖출입을 거의 못하고 방안에서만 보내니 그 고충인들 오죽할까. 몇 년을 한결같이 병 수발을 드는 아내의 수고며, 아이들의 고충 역시 만만치가 않다.

치매 환자를 둔 가정치고 많은 인내와 이해를 필요로 하지 않은 집은 아마 없을 것이다. 손으로 방바닥을 치며 방안을 빙빙 돌아다니는 것이 어머니의 치매 증상이다. 주무실 때만 빼고 밤낮으로 ‘찰싹’, ‘찰싹’ 온 종일 들리는 손바닥과 방바닥의 마찰음은 가족들의 귀에 적잖이 거슬림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자체가 병이니 어쩔 것인가. 내심 나도 듣기 거북하지만 추호도 내색할 수 없음은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가장인 나는 식구들의 불평이 안 나오도록 쓰다듬기도 하고 아이들에게는 적절하게 교육도 시킨다. 특히 아내의 귀를 누그러뜨리는 데는 무척 신경을 쓴다. 어쩌다 아이들이 불평이라도 할라치면 엄중히 꾸중한다.

아내도 살림에만 충실히 열중해온 전업 주부라면 지금쯤은 음식 한 접실 들고 이웃집 문을 자신 있게 두드릴 수 있을만한 연력이다. 그러나 화실을 하고 있는 아내의 요리 솜씬 좀 딸리는 편이다.

어느 일요일 저녁 때로 기억된다. 이 날은 아내가 요리책까지 펴놓고 이것저것 뒤적거리며 요리할 종목을 찾고 있었다. 그 옆에 나는 팔베개 한 채로 누워 신문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요리 책에 눈길을 쏟고 있는 아내의 모습을 유심히 바라봤다. 몸과 마음이 늘 그림 속에 있다 보니 아직 얼굴이 천진해 보였다. 내 마음 귀퉁이에 지금도 사랑스런 구석이 남아 있음이다. 엄지손톱에 덜 지워진 물감 자국은 하는 일이 뭔지를 금방 알게 해 준다. 방 한 켠에는 초등학교 4학년인 둘째 녀석이 학원에서 배운 한자 쓰기 연습 중이다. 나는 아내가 식구들의 식단을 위해 열중하는 얼굴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해

“당신 왜 그리 못생겼쑤?”

하고 너스레를 떨고는 겸연쩍어 누운 채로 아내의 무릎을 발로 슬쩍 건드렸다. 그러자 아내의 반응이 있기 전에 쓰던 한문을 지우개로 지우던 둘째 녀석이

“뭐라, 나는 괜찮은데”

하고 얼른 되받았다. 걸림 없이 금방 튀어나온 이 말을 한, 녀석의 까만 눈동자가 나를 빤히 응시했다.

‘나는 괜찮은데’

하기야 저를 낳아준 제 어민데 잘생기고 못생긴 것이 무슨 상관있으랴.

내가 다니는 테니스장에는 삽사리와 고양이가 있다. 고양이는 살이 통통하게 쪄서 ‘살진이’라고 불렀는데 아직 어리지만 꾀도 있는 편이다.

삽사리에겐 두 마리의 새끼가 있으며, 그 이름은 둔치와 둘리다. 둔치는 살이 찐데다 몸이 둔해서 ‘둔치’라고 부르지만 곰살갑고 영리한 데도 있다. 둔치처럼 몸이 둔하지 않은 둘리는 내가 산을 내려오면 주차장까지 따라와서 꼬리를 흔들며 배웅해 준다. 호젓한 산 속이라서 고양이와 개들은 한 식구처럼 지낸다. 살진인 가끔 약삭빠르게 굴다가 둘리 형제로부터 따돌릴 때도 있다.

둘리와 살진이, 둔치는 만나기만 하면 서로 핥고 뒹굴고 야단스럽게 장난이다. 살이 통통한 둔치는 살진이에게 잘 덤벼들지만 뒤가 무거워 제풀에 넘어지곤 하는데 이럴 때 삽사리는 뒤에서 점잖게 구경을 한다.

둔치가 갈개 옆으로 가더니 다리를 살짝 벌리고 뒤를 낮춘다. 오줌을 누다가 둔한 것이 힘을 너무 준 탓인지 도랑으로 조르르 미끄러져 아랫도리가 축축하게 적셔졌다. 둔치의 털에 묻은 물기가 살진이 몸에 닿자 고양이인 살진이는 얼굴을 찡그리며 구석으로 얼른 피했다. 그리고는 옹그리고 앉아 둔치를 째려보는 것이 자신을 방어하고자 하는 경계 심리가 발동했기 때문인가 보다.

형제 개들은 퀴퀴한 하수구 냄새도 아랑곳하지 않고 얼굴에 입 맞추고 서로의 앞발을 들어 올리며 연해 장난이다. 뒤에서는 어미 삽사리가 둔치의 꼬리를 이따금 핥고 있었다. 공연히 속만 드러낸 살진인 심술이 났는지 뾰로통해져 있다. 어미 삽사리와 둘리는 이구동성으로

“나는 괜찮은데”

“나도 괜찮은데”

하는 것 같다. 한집에 살아도 피는 역시 물보다 진한 것, 고양이와 개는 물 위의 기름이었다.

직장에서 귀가했더니 어머니는 여전히 방바닥을 치고 계셨다. 오늘은 뭔가 마음이 더 불편하신 모양이다. ‘찰싹’하는 소리가 유난히 세차고 날카롭게 들렸다. 내가 듣기에도 평소보다 좀 더한 것 같았다.

“여보, 당신은 저 소리가 싫지 않나요?”

내 표정에서도 그런 기색이 보였던지, 아내는 내 얼굴에 눈길을 멈추며 다음에 나올 내 말을 기다렸다. 난 생각할 것도 없이 아들이 말한 대로

“나는 괜찮은데.”

해 놓고는 참 그 자리에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금 아내가 묻는 것에 대한 대답으로는 이보다 더한 명답이 어디 있겠는가!

천륜의 정은 무조건적이고 본능적이며, 거룩한 애정임에 틀림없다.


교원문학상(2011.1.1)

수필집《소쇄원》

포항이동중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