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는,

                                                                 

내가 여기 왜 왔지?

춘식은 자리에 앉으며 당황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치 누군가 자신이 잠 잘 때 번쩍 들어 이곳에 데려다 놓은 것 같았다. 올 생각도 오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런데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이 식당에 있었다. 주방 쪽으로 눈길이 슬며시 돌아갔다.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춘식은 두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벽에 걸린 텔레비전을 보았다. 아니 보았다기보다는 생각을 하기 위해 고개를 들었는데 맞은편에 있는 텔레비전이 보는 사람이 없는데도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가야 한다는 생각과 달리 엉덩이가 떨어지지 않았다. 무슨 용건이 있다고. 춘식은 텔레비전에 머문 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미 옛날이었는데. 이제 와서 무슨 할 말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믿는 자 나와 함께 할 것이요 구원될 것이니 항상 하느님을 믿고 따라야 우리는 영원히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곳 천당에 갈 수 있습니다.

춘식은 천당이라는 말에 눈을 크게 떴다. 계속 시선을 두었지만 사실 텔레비전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던 터였다. 하얀 가운에 보라색 비로드를 부착한 목사가 설교를 하고 있었다. 목사 뒤에는 삐쩍 마른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있는 형상이 보였다.

영원히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천당이라.

춘식은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어 고개를 숙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가야지, 아무도 없을 때 가야지. 춘식은 또다시 슬그머니 주방 쪽으로 눈길을 돌리려다 큰 결심이라도 한 듯 입을 굳게 다물며 일어서려는데 한 사내가 물컵을 들고 앞에 서있는 게 보였다. 갑자기 하늘에서 사내가 뚝 떨어진 것 같았다. 사내는 물컵을 탁자에 놓았다.

“요 앞에 쓰레기 버리려 가느라 자리를 비웠네요. 뭘 드릴까요?”

50대를 갓 넘겼을까, 머리숱이 별로 없고 그나마 대머리인 사내가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 그러니까.”

춘식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애초부터 오려고 마음먹은 것도 아니고 또한 나가려던 참인지라 말까지 더듬었다.

“그럼 천천히 주문하세요.”

사내는 공손히 말하곤 홀 중앙에 있는 난로가로 갔다. 그제야 춘식은 식당 내부를 둘러보았다. 허름하지만 꽤나 깨끗한 인상을 주었다. 탁자는 여섯 개가 있었고 벽에 걸린 메뉴판에는 씨레기 해장국부터 순대국까지 열 가지가 넘는 메뉴가 적혀 있었다. 메뉴판 옆에는 속옷만 입은 여자가 소주병을 들고 있는 달력이 바람이 없는 데도 가늘게 펄럭이는 것 같았다. 바닥은 시멘트 바닥인데 깨끗하게 물청소되어 있었다. 손님은 하나도 없었다. 저녁 시간이면 손님이 있을 법도 한데 하나도 없으니 오히려 춘식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지랄.

자신의 그런 생각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제는 다 지난 간 일이다. 춘식은 신발로 바닥에다 가로로 세로로 줄을 그었다. 어쩌자고 왔는가. 생각할수록 기이했고 울화통이 올랐다.

형님, 어제 형수님 봤습니데이.

한 달 전 아니, 두 달 전인가 직장 동료이자 고향 후배인 박씨가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다가와 속삭이듯 한 말이었다. 그때 춘식은 아침부터 무슨 지랄 같은 말이라는 듯 박씨를 바라보았다.

분명하다카께요.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카께요.

박씨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긍께 어제 야근하고 집에 가다 해장이나 한잔할까 싶어 두리번거리는데 씨레기 해장국 판다는 가게가 있질 않겠소. 그래 들어갔더니 글쎄, 분명하다카께요.

20년도 더 지난 여편네였다. 춘식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나마 죽지 않고, 식당이라도 하니 병들지도 않고 살아있는 것으로 되었다. 하지만 박씨가 그곳이 어디라고 뒤따라오며 말했을 때에도 귓전으로 흘러들었다. 당연히 다 잊었다. 아니다. 다 잊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술만 들어가면 박씨가 가르쳐준 식당이 마치 단골집이라도 되는 듯 눈에 선하게 들어왔다. 자신이 사는 곳과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그 앞으로 몇 번 지나가기도 했었다. 식당 옆 전파사가 있고 그 옆에 미장원이 있고 그 옆엔 철물점이 있고⋯⋯ 환장할 일이었다. 가보지도 않았는데 그 주위의 풍경이 눈에 자세히 그려졌다.

야당은 유례없는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양산 그리고 많은 자영업자들의 몰락 노인들과 빈곤층의 자살 증가 등 민생을 파탄시키고 경제도 파탄시킨 책임을 묻는 선거가 ⋯⋯

여당은 이번 선거에서 청년들의 일자리 창출, 노인들의 기초연금 확대 등을 공약으로 내세우기로 했습니다.

갑자기 텔레비전에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주인 사내가 텔레비전 채널을 돌린 모양이었다. 선거철이라 그런지 텔레비전만 켜면 정치 얘기였다. 춘식은 메뉴판으로 눈길을 돌렸다. 마땅히 먹고 싶은 게 없었다. 그렇다고 소주만 마실 수는 없었다.

“여기 소주 하나 하고 술국 하나 주세요.”

춘식의 말에 사내는 주방을 향해 말했다.

“술국 하나.”

그러자 문 여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수돗물 소리가 났다. 주방 옆에 골방이라도 있는 것 같았다.

“우선 드시고 계시면 빨리 가져오겠습니다.”

사내는 소주와 잔 깍두기를 내놓았다. 춘식은 아무 말 없이 잔에 소주를 따라 단숨에 입에 털어넣었다. 주방으로 고개를 돌리고 싶은 마음과 나가고 싶은 마음이 갈등을 일으켰다.

허!

두 잔을 연거푸 입에 털어넣고나니 갑자기 헛웃음이 나왔다. 20여 년 전에 집을 나간 마누라년이 보고 싶었단 말인가. 죽음을 앞두니까 마음이 약해졌다는 말인가.

허!

또다시 헛웃음이 터져나와 황급히 잔에 술을 따라 입에 털어넣었다. 반은 흘러 소매를 적시고 가슴께로 흘러내렸다. 내가 죽고나면 사람들은 무어라 말할까. 죽기 전에 누구나 죽음을 암시하는 행동이나 글을 남긴다는데. 춘식이라는 사람은 죽기 하루 전 어느 식당에 들렸는데 그 이유를 파악 중입니다. 이렇게 떠들까. 그러면 후배 박씨가 나서서 그 식당 여주인이 전처였다고, 매일이다시피 개 패듯 마누라를 팼다고, 그래서 이혼 당했다고, 그렇게 말할까.

“이것 좀 드세요.”

주인 사내가 오이무침을 담은 접시를 탁자에 내려놓았다. 아마도 안주는 먹지 않고 술만 마시고 있는 걸 지켜본 것 같았다.

“행복하시오?”

춘식은 말을 해놓고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런 말을 할 작정이 아니었다. 아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소주 한 병만 마시고 나갈 참이었다. 그런데 행복하다고 묻다니. 술기운일까. 춘식은 스스로 민망함에 다시 술을 따라 단번에 입에 털어넣었다.

“사는 게 뭐 그렇지요.”

사내는 두 손을 만지며 머뭇거리다 말했다.

“아니, 그러니까, 지금 사는 게 행복하냐구요.”

술기운일까. 자꾸만 말이 의도와 다르게 나왔다.

“그냥 뭐. 사는 거지요.”

사내는 제대로 답을 못해 송구스럽다는 표정으로 엉거주춤 서 있었다. 술국 나왔어요. 주방에서 가늘면서도 약간 쉰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춘식은 자기도 모르게 주방으로 고개를 돌리려다 다시 애꿎은 소주병을 들었다. 맞다. 저 놈의 목소리. 쉰 듯한. 살아오면서 한 번도 큰소리를 내지 않았던 것 같은 목소리. 사내는 주방으로 가서 김이 솟아오르는 뚝배기를 들고 왔다.

“우선 안주 좀 드시면서.”

주인 사내는 여전히 송구스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술국은 양이 많았다. 순대국에 머리고기를 많이 넣었다.

“한 잔 하시겠소?”

춘식은 주인 사내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러시지요, 손님도 없는데.”

사내는 주방으로 가서 소주 한 병과 소주잔을 들고 왔다. 주방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제가 한 잔 따라드리겠습니다.”

사내는 자리에 앉자마자 두 손으로 춘식의 잔에 술을 따랐다. 자신의 잔에도 따려는 걸 춘식은 소주병을 재빨리 낚아채어 사내의 잔에 따랐다.

“안주 좀 드시고.”

사내는 술국에 청량고추와 새우젓 다재기를 넣고 숟가락으로 휘저었다. 우유 같은 국이 뻘겋게 물들어갔다. 사내는 숟가락을 춘식 쪽으로 놓았다.

“한 잔 합시다.”

춘식이 잔을 들자 사내도 덩달아 두 손으로 술잔을 들었다. 춘식은 단숨에 마셨고 사내는 반만 마시고 잔을 내려놓았다.

“안주 좀 드시고. 빈속에 마시면 속 베릴 텐데요.”

안주를 먹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말했다. 허, 또다시 춘식의 입에서 가벼운 헛웃음이 나왔다. 길어도 하루, 짧으면 몇 시간 후 자신의 몸은 주검으로 발견될 터였다. 그런데 빈속에 술을 마시면 속 버린다고 걱정하다니. 허, 또다시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사내는 그런 춘식의 모습을 보며 자신이 말을 잘못했나 싶어 손을 잡고 사과라도 할 듯한 표정을 지었다. 춘식은 사내의 그런 표정에 아랑곳 않고 사내의 잔에 술을 따르고 자신의 잔에도 술을 따랐다.

“행복하시오?”

춘식은 또다시 불쑥 튀어나온 자신의 말에 놀랐고 사내는 말없이 자신의 잔을 들었다.

“누군들 행복하겠냐마는요. 그래도 삼시세끼 먹고 사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지요.”

사내의 말에 춘식은 질문도 그렇지만 답 또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듣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행복하다는 말? 살기 힘들다는 말? 여편네는? 그러니까 당신 말고 여편네가 행복하냐고 물었던가.

“그렇지요. 삼시세끼 밥 먹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지요.”

춘식의 체념한 듯한 말투에 사내가 물었다.

“퇴근하시는 중인가 보죠? 일성 반도체?”

춘식의 놀라는 표정에 사내는 처음으로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저도 한 20여 년 물장사 밥장사하다보니 대충 사람 볼 줄 압니다. 허허.”

사내의 말에 춘식은 대꾸도 않고 술을 들었다. 술국은 식어서 위에 기름기가 끼기 시작했다.

“아직 원인을 모르지요?”

춘식은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회사 내 사람들보다 바깥사람들이 언론이나 소문을 통해 더 많이 알 터였다.

“내일은 누가 죽으려나.”

사내는 한숨 섞인 말을 하곤 술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나요. 나라면 믿을 수 있겠소? 춘식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자 양쪽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이제는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관심이 집중된 일이었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반도체의 한 회사의 사원들이 매일 한 사람씩 죽어 가는데. 사원이 수만 명이 된다해도 매일 사원이 원인도 다양하게 죽어 가는데 대해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보건기구와 UN에서도 전문가가 파견되어 조사를 벌이는 중이었다. 죽은 사람을 보면 직업병이랄 수도 없었다. 교통사고를 당한 사람, 산에 가다 추락사한 사람, 잠자다 죽은 사람, 평소에 질병을 앓던 사람⋯⋯. 하지만 한두 명도 아니고 가족도 아니고 같은 반도체 회사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매일 한 명씩 죽으니 이상한 소문만 돌 뿐 대책도 없었다.

“근데 죽는 사람은 안다면서요?”

사내가 무심히 물었다. 이미 몇 년 동안 계속 죽어왔고 이젠 텔레비전에서도 거의 다루지 않으니 오히려 별 얘깃거리가 되지 못했다. 차라리 키우던 개를 학대해 구속된 사람이 화제가 되었다.

“이유 없는 무덤이 어디 있겠소.”

춘식은 말해 놓고 자신의 말에 놀랐다. 이렇게 멋있는 말을 하다니. 사실 그 문제에 대해선 이미 일반 사람들처럼 회사 내에서도 별 얘깃거리가 되지 못했다. 명확하게 백혈병처럼 겉으로 회사의 문제가 드러났다면 모르지만 표면상으론 회사와 아무런 관련 없는 죽음이었다.

“그래도 죽은 사람은 꼭 흔적을 남기니 말이요.”

사내의 말에 춘식은 대꾸를 않고 술을 입에 털어넣었다. 그랬다. 죽은 사람은 예감을 했는지 평소에 하지 않은 행동을 했다. 특별한 날이 아닌데도 부모의 집을 찾는다든지, 평소엔 자식에게 데면하게 굴던 사람이 갑자기 전화를 걸어 건강하라든지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데 취직하라든지, 몇 년째 연락을 안 하던 친구한테 전화를 한다든지. 며칠 전 춘식이 아는 사람은 죽기 하루 전 키우던 개의 목사리를 풀어주었다. 춘식과 자주 술을 마시던 사이였는데 죽기 전까지는 어떠한 징후도 없었다. 쾌활했고 회사에서도 평소와 같이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퇴근해 저녁을 먹고 난 뒤 바람 좀 쐬고 온다더니 집 앞 길에서 뺑소니차에 치였다. 나중에 조사를 해보니 산책을 하기 전 키우던 개의 목사리를 풀어주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사실 별게 아닌데도 죽고 나니 그것이 마치 죽음의 징후가 되었다.

맞는 말이다.

춘식은 사내가 따라놓은 잔을 들어 입에 털어넣었다. 죽는 사람은 예감이 온다고 소문만 무성하더니 맞았다. 자신이 그랬다. 내가 죽는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죽다니. 며칠 전 처음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땐 핏, 웃어 넘겼지만 이상하게 시간이 지날수록 죽는다는 것이 자명하게 느껴졌다. 결국 내 차례구나. 마치 운명처럼 느껴졌다. 처음엔 억울했고 그래서 부정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자신이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죽음을 이렇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다니. 물론 억울하기도 하고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야 아직 남아있지만 처음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와 비교해 그렇다는 얘기다.

“허, 국이 식었네요. 데워오겠습니다.”

사내는 뚝배기를 들고 주방으로 갔다. 춘식은 자신도 모르게 주방으로 고개를 돌렸다.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고 가슴 한 켠에 서늘한 바람 한 점이 들이닥쳤다.

대통령께서는 경제를 살리려고 얼마나 걱정을 하시는데 야당이 발목을 잡아서 그런 거 아닙니까. 이번 선거에서 야당을 심판해야 합니다.

야당은 노동법을 통과시키지 말자는 입장이 아닙니다. 독소조항인 해고를 쉽게 하는 법과 파견법을 개선하면 충분히 통과시킬 수 있는 입장입니다.

텔레비전에서는 여당과 야당 국회의원 두 명이 나와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아이고 늦었네요.”

사내는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종종 걸어와 뚝배기를 탁자에 놓았다. 뜨거운 김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춘식은 숟가락으로 국물을 조금 떠서 입으로 가져갔다. 식당에서 직접 꼬았는지 국물이 진하게 우러났다.

“고기 좀 드시고.”

처음엔 먹을 마음이 없었는데 막상 국물을 떠먹고 보니 맛이 입에 감겼다. 그러다보니 자꾸 국물만 떠먹는 형국이 되었다. 역시 음식 솜씨는 좋은 여편네였다. 그렇게 자신한테 맞고도 아침이면 시원하고 얼큰한 해장국을 끓여놓았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런 해장국을 먹어보지 못했다.

춘식은 사내 앞으로 뚝배기를 밀었다.

“같이 좀 드시지요.”

춘식은 사내 쪽으로 밀어놓고 머리고기를 숟가락으로 떠서 입으로 가져갔다. 고기도 알맞게 익어 쫄깃했다. 처음엔 시장기를 느끼지 못했는데 막상 국물이랑 고기를 떠먹다 보니 오히려 시장기를 느꼈다. 몇 번 떠먹는 동안 사내는 춘식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순식간에 술국이 절반이하로 줄었다. 후. 춘식은 입김을 길게 내뿜으며 상체를 들어올렸다.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훔쳤다. 속에 뜨거운 것이 들어가니 한결 정신이 맑아지는 것 같았다.

“손님도 없는데 담배 피우셔도 됩니다.”

춘식이 주머니에 손을 넣고 만지작거리자 사내가 재빨리 말했다.

“아, 아닙니다.”

춘식은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갔다. 마침 오줌도 마려운 터였다.

허!

화장실에 들어오자마자 담배에 불을 붙이고 연기를 들이마셨다. 또다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몇 시간 후면 죽을 몸이 따끈한 술국 한 그릇에 이렇게 황홀해하는 것이 가소로웠다. 바지를 내리고 쪼그라든 성기를 꺼내 변기를 향했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오줌이 잘 나오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 담배를 연거푸 빨았다. 순간 20여 년 전 여편네지만 얼굴이라도 봐야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술기운인가. 죽기 전 무슨 말인가 해야 할 것 같았다. 무슨 말? 없었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얼굴도 안 보고 말도 붙여보지 못하고 그냥 나가면, 죽어버리면 저승에 가서도 후회될 것 같았다. 근데 어떻게 말을 붙여? 혹 나를 보자마자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지는 않을까. 20여 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춘식은 한 손은 쪼그라든 성기를 잡고 한 손으로 담배를 든 채 생각했다. 담배를 한 대 다 피울 동안 오줌은 나올 기미가 없었다. 춘식은 피우던 담배를 변기에 던졌다. 픽, 소리가 나더니 담배는 불빛을 잃고 오줌에 젖어갔다. 성기를 잡은 손으로 담배를 꺼내니 성기는 팬티 속으로 들어갔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다시 성기를 꺼내 변기를 향해 정조준했다. 힘을 주었지만 여전히 오줌은 나올 생각을 안 했다. 담배연기를 길게 들이마셨다가 길게 내뿜었다. 남편이란 작자가 없으면 주방으로 가면 될 텐데 남편이 있으니 그렇게는 못할 것 같았다. 남편에게 모든 것을 털어놔? 내가 저 년의 옛 남편이었다고. 죽을 때가 되었는지 나도 모르게 왔다고. 그렇다고 보고 싶어서 온 건 아니라고. 나도 모르게 왔다고. 몸은 흔들거렸고 중심을 잡으며 연거푸 담배를 빨았다. 허! 생각을 할수록 자신의 행동이 어이가 없었다. 필터까지 타 들어온 담배를 변기에 던졌다. 다시 한 번 아랫도리에 힘을 주었지만 오줌은 나올 기미가 없었다. 성기를 안으로 집어넣고 팬티와 바지를 올렸다. 변기에 침을 찍, 뱉었다.

화장실에서 나온 춘식은 주방으로 눈길을 주지 않은 채 곧장 자리로 왔다. 사내는 왜이리 늦었느냐는 듯 걱정스런 표정으로 춘식을 바라보았다.

“자, 한잔 하시오.”

춘식은 사내의 잔에 술을 따랐다. 사내 또한 춘식에게서 소주병을 빼앗아 잔에 두 손으로 술을 따랐다.

“건배!”

춘식은 사내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쳤고 사내 또한 건배, 를 외쳤다.

“근데 평소에도 이렇게 손님이 없는 거요?”

춘식은 빈 잔을 내려놓으며 물었고 사내는 춘식의 잔에 술을 따랐다.

“있을 땐 있고 없을 땐 통 없는데 요즘엔 더 그러네요. 경기가 나쁘다카더니만.”

“그래도 이렇게 손님이 없어서야.”

춘식은 자신이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의도와 다르게 말은 거미줄처럼 술술 풀려나왔다.

“그래도 밥 먹고 사는 것만 해도 얼마입니까. 마누라가 몸이 좀 안 좋아서 그렇지.”

사내는 술잔을 입을 가져가 반만 마시곤 잔을 내려놓았다.

“국을 좀 데워와야겠네요.”

사내는 취기가 오르는지 약간 비틀거렸다. 춘식은 두 손으로 뚝배기를 들고 가는 사내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사내는 다리를 많이 절었다. 그동안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처음엔 술에 취해서 그런가 싶었지만 자세히 보니 오른쪽으로 다리를 많이 절었다. 바보 같은 년. 제대로 고르든지. 춘식은 자신도 모르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술을 입에 털어넣었다. 어떻게 해서 저런 놈을 만났을까. 나하고 헤어지고 곧장 만났을까. 행복하기는 하는 걸까. 아까 아프다고 그랬는데. 춘식은 주방으로 곁눈길을 했지만 여편네는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숙였다. 취기가 올랐다. 오늘만은 술을 마시지 않으려 했는데. 저승길만은 술에 취하지 않고 제대로 가려고 했는데. 따지고 보면 하루라도 술에 취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어떻게 죽게 될까. 아는 동료처럼 뺑소니한테 치여 죽을까. 아니면 술에 취해 길을 가다 쓰러져 그대로 죽을까. 그렇지 길에서 죽는 게 그나마 폼이 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가진 것도 없고 마누라도 자식도 없는데 뭐가 아쉬우랴. 춘식은 고개를 숙인 채 잠깐 졸았다.

“이것 좀 드셔 보세요.”

사내의 말에 춘식은 눈을 떴다. 계란찜이 춘식 앞에 놓여 있었다. 순간 입에 침이 고였다. 계란찜은 춘식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여편네와 살 때 한 끼라도 계란찜이 없을 때가 없었다.

“드셔보세요. 집사람이 건강이 안 좋아 이것저것 못해서리.”

사내는 또다시 송구스런 표정을 지었다. 춘식은 숟가락으로 계란찜을 떠서 입으로 가져갔다. 역시 그 맛이었다. 매콤하면서도 비릿한 맛. 청량 고추와 파를 총총 썰어 넣은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맵습니까? 나한테 줄 땐 청량고추를 안 넣는데 손님 드실 거라고 넣었나?”

사내는 숟가락으로 떠서 입으로 가져갔다.

“앗따 시기 맵네요.”

사내는 입을 오므리고 호호 숨을 토해냈다. 춘식은 그런 사내의 모습에 아랑곳 않고 연거푸 숟가락으로 떠서 먹었다. 목구멍이 뜨거워오면서 얼굴 전체가 화끈거렸다. 그러면서 정신은 명징해졌다. 예전에도 그랬다. 기분이 안 좋은 일이 있을 때 청량고추를 듬뿍 넣어 계란찜을 해 먹으면 얼굴이 땀으로 범벅이 되고 그러고 나면 기분이 개운해졌다. 꼭 그때의 맛이었다.

몇 번 떠먹지 않았는데도 이마에서 땀이 볼로 흘러내렸다.

“참, 아까 어디 아프다고 하더니만요.”

춘식은 손등으로 이마와 볼의 땀을 닦으며 주방을 흘깃거렸다.

“옛날부터 아프던 것이라. 나이가 들수록 더 심한가봐요.”

“어디 다치기라도 했는가요?”

휴지로 코를 풀면서 춘식이 물었다.

“허 참, 이거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사내는 술잔을 들어 한 입에 다 털어넣더니 스스로 빈 잔에 술을 따랐다. 춘식은 아무 말도 없이 그런 사내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옛날에 말이요. 그러니까 나를 만나기 전이니까 20년 저쪽 이쪽쯤 될 거 같은데. 어떤 나쁜 놈을 만났는가 봅니다. 남편이란 작자가 자기 마누라를 얼마나 팼는지 지금도 몸이 성한 데가 없다오.”

사내는 또다시 술잔을 들어 단숨에 마셨다. 춘식은 아무 말도 않고 술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그 나쁜 놈이 누구겠는가. 간신히 속으로 자신에게 물었다.

“그, 그래서 지금도 몸이 안 좋다는 말인지.”

“그때 속병 겉병 다 들었는가 봅니다. 한때는 우울증에 걸려 물에도 뛰어들었고. 왼쪽 팔은 지금도 잘 못 쓰고. 아마도 천벌을 받을 게요, 천벌을.”

그때 춘식의 다리가 덜덜 떨렸다. 긴장하거나 화나는 일이 있으면 다리가 덜덜 떨렸다. 가만히 있으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었다. 이제는 좀 많이 나았나 싶었는데 그 증상이 또 나타났다. 춘식은 고개를 숙이고 떠는 다리를 바라보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기이한 일이었다. 때리는 게 일이었다. 이유라면 회사에서 동료나 상사에게 기분 나쁜 소리를 들었거나 하다못해 퇴근하다 기분 나쁜 일이 일이 있었다거나. 이유는 무한정 많았다. 퇴근하면 우선 여편네를 두들겨패곤 옷을 갈아입었다. 마치 여편네를 때리기 위해 하루를 산 것처럼 말이다. 하얀 방진복을 입고 클린룸에 들어가 꼼짝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부품을 만지노라면 자신이 사람이 아닌 회사의 기계부품인 것처럼 느껴졌다. 주위를 돌아보면 수백 명의 방진복을 입은 사람들이 가만히 서서 손만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정도 적응이 되면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휴식 시간을 알리는 벨소리를 못 들을 때도 있었다.

씨발 닭이 된 기분이야

언젠가 휴게실에서 믹스 커피를 마시며 동료가 말했다. 양계장의 닭들이 꼼짝 않고 알만 낳듯이 자신들도 매일 선 채로 부품을 낳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이 느껴졌다.

그 왜 있잖아. 알도 낳지 못하고 빌빌거리면 주인이 와서 냉큼 집어내 손수레에 싣고 가 개장수한테 팔아버리잖아. 개장수는 산 채로 개집에 던져주고. 우리가 그 꼴이 아닐까.

몇 년째 매일 직원들이 죽어나가니까 휴게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농담반 진담반으로 나눈 얘기였다. 양계장의 닭이 된 느낌.

그러니까 여편네를 두들겨 패는 이유가 하루 종일 말도 없이 서서 부품만 만지다 집에 와서 근질거리는 몸을 푸는 식이었다. 근데 이상한 것은 여편네가 반항을 안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처음엔 반항도 하고 집을 나가기도 했지만 경제적 능력이 없는 여편네가 도망가 보았자 옆 동네 찜질방이었다. 나중엔 아예 반항도 가출도 하지 않았다. 때리면 때리는 대로 눈을 감고 가만히 있었다. 때리고 나서 옷을 갈아입고 주방으로 가면 정갈하게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춘식이 좋아하는 청량고추가 듬뿍 들어간 계란찜이 있었고 씨레기 무침이 있었다. 한 끼도 고기가 없는 날이 없었다. 하다못해 생선토막이라도 올려져 있었다. 다리가 부러지고 갈비뼈가 부러져도 밥상을 차려놓았다. 병원을 갈 때는 잠자리에 들 무렵이었다. 이렇게 미련스런 사람이 다 있나 싶게 팔이 부러졌는데도 그때까지 참았다. 지금 팔을 잘 못쓴다는 게 아마도 그 때의 구타 때문인 것 같았다. 춘식 자신도 자신의 행동을 이해 못해 직장을 옮길까 생각했지만 중졸 학력에 기술도 없는 자신이 갈만 한 데는 없었다. 국내의 최고 기업인 일성기업의 반도체 공장에 들어간 것도 먼 친척의 도움 때문이었다.

“왜요? 다리가 안 좋은 가요?”

춘식이 다리를 계속 떨자 사내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보죠.”

춘식은 술잔을 입으로 가져가며 말했다.

“직업병 아닌가요? 반도체에서 일하는 사람들 매일 서서 하느라 다리나 허리 안 좋은 사람들 많던데요.”

“뭘, 이 정도로.”

춘식이 자신의 잔에 술을 따르려 하자 사내가 재빨리 병을 빼앗아 춘식의 잔에 따랐다.

“언제부터 식당을 했소?”

춘식의 말에 사내는 30여 년이 다 되어간다고 했다.

“그럼⋯⋯.”

춘식이 주방을 바라보며 말을 하자 사내는 잠시 춘식의 얼굴과 주방을 번갈아 보았다.

“아, 저 혼자 하다가. 제 마누라가 암에 걸려 죽는 바람에 혼자 하다가 지금 마누라를 만났지요. 음식 솜씨가 좋아 주방일 맡기다보니 정이 들어서. 허허.”

사내는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한 잔 하슈.”

춘식은 사내의 잔에 술잔을 부딪쳤다.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름 밥 먹고 사는 걸 보니 더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죽을 때 땅을 치며 후회해도 할 수 없었다. 지금 가는 게 그나마 여편네에게 도리인 것 같았다. 만약에 자신에게 도리란 게 있다면 말이다. 다행이라면 자신에게 자식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이를 가졌으나 춘식의 폭행으로 유산이 되었을 때 이혼을 했다. 그 뒤로 춘식은 혼자 살아왔다.

“여기 얼마요?”

춘식이 일어서는데 몸이 휘청거렸다. 사내가 팔을 내밀어 춘식의 팔을 잡았다.

“괜찮소.”

사내의 말에 춘식은 바지 주머니에서 오만 원을 꺼내 탁자에 놓고 출입문 쪽으로 걸어갔다. 자꾸만 주방 쪽으로 돌아가는 얼굴을 주먹으로 치고 싶은 걸 참으며 겨우 출입문을 열었다.

“잔돈 여기 있습니다.”

사내가 뒤따라와 바지 주머니에 잔돈을 넣었다.

“뭘, 안 줘도 되는데.”

춘식은 말을 하면서 흘끗 출입문에 붙인 선팅 너머로 눈길을 돌렸다. 보였는가. 주방 쪽에서 희미하게 어른거리던 것이 여편네였나. 갑자기 가슴 중앙이 아려왔다. 언뜻 여편네를 본 듯했기에 그것이면 됐다 싶었다.

“조심해서 가시오.”

사내의 말에 춘식은 비틀거리는 몸을 다잡다 어? 하며 식당 쪽을 바라보았다.

“이게 똑바로 서 있어야 손님이 오지.”

춘식은 식당 앞으로 걸어가 각종 메뉴판이 적힌 입간판이 넘어진 것을 똑바로 세웠다.

“아이고, 제가 하면 되는데요.”

사내는 춘식에게 다가오더니 손바닥을 비비며 말했다.

“하, 됐네. 이제 손님들 많이 올 거요.”

춘식은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입을 벌려 우물거리다 한 마디 했다.

“그 머시야, 행, 행복하시오.”

뒤돌아섰다. 천 길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느낌이 와락 몰려 왔다.

다음날 주인 사내는 텔레비전을 보다 어? 어? 하며 신음소리를 냈다. 주방에 있던 여자가 홀로 걸어 나와 텔레비전 앞으로 갔다. 텔레비전 화면에는 야산의 한 산소에 있는 하얀 천을 비춰주고 있었다. 화면 오른쪽 아래에는 원 안에 흰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늙은이의 얼굴이 자리 잡고 있었다. 여자의 몸이 움찔거렸다.

오늘 저녁 일성 반도체의 이천오백일흔두 번째 사망자가 발견되었습니다. 오십 오세 지모씨로 자신의 어머니 산소 앞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저, 저 양반 어제 저녁 그 손님 아냐?”

사내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고 여자는 잠자코 텔레비전에 눈길을 박고 있었다.

사인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나 옆에 소주 한 병이 있고 외상이 없는 것으로 보아 술에 취해 잠들었다가 저체온증으로 사망한 것으로 경찰은 추정하고 있으며 곧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부검을 의뢰해 정확한 사인을 밝힐 예정이라고 합니다. 참고로 지모씨가 사망한 산소는 친어머니가 묻힌 곳으로 지모씨가 어릴 때 바람이 나 집을 나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지모씨는 어린 시절 술주정이 심한 아버지와 단 둘이 살며 불우한 생활을 했다고 주변 사람들은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지모씨는 술만 취하면 친어머니를 찾아 죽이겠다고 행패를 부린 것으로도 알려지고 있습니다⋯⋯.

“맞지? 당신 못 봤어? 우째 이런 일이.”

사내는 거듭 여자에게 물으며 탄식했고 여자는 말없이 주방으로 걸어갔다. 이날 따라 더욱 심하게 왼쪽 팔이 흔들거렸다.


고창근/경북 상주 출생 소설집『소도(蘇塗)』『아버지의 알리바이』『나는 날마다 칼을 품고 산다』장편소설『누드모델』『존재의 이유』『신윤복, 욕망을 욕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