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웹진]문학마실~...115호...
   2020년 01월

  1. 내일을 여는 창
  2. 소설
  3. 수필
  4. 권서각의 변방서사
  5. 이달의 작가
  6. 동인지를 엿보다
  7. 작품집에 스며들다
  8. 시와 거닐다
  9. 사진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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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2014년 1월 41호부터 2014년 10월 53호까지...
편집자
86073 2014-11-03
532 숭어 외 1편 / 손창기 file
편집자
1941 2017-01-31
17.02월 81호 시 숭어 우수와 경칩 사이, 백태가 낀다 숭어도 내외간이 있는데 봉사가 되고 보니 수컷이 마누라를, 마누라도 수컷을 몰라 본다 서투름을 벗어나려고 공모(共謀)와 순수 사이, 어슬렁거릴 때 잡다한 생각의 아가미마저 삼켜 버리는 백태 수놈이 알에다 마음껏 정자를 뿌린다 고기 조상을 모르게 한다, 암컷이 바짝 마른다 배가 붉그스럼하다 전부를 볼 수 없는데 전부가 보이는, 마지막 꿈틀거림이 봄 바다에 있다 지루한 눈짓이 싫어, 차라리 눈 떨다가 멀겠다 겨우내 숭어가 몸에다 지방을 쌓듯 바라봄과 눈멂 사이, 불륜을 저장해 왔는지 모른다 수컷은 봄에 죽어도 모른다 눈꺼풀 벗겨질 때, 당신 눈빛에 데일까봐 뻘에다 머리를 들이밀고 파고 들어간다 숭어 눈 맑아질 때 청갈바람* 다시 불고 바다 속이 확 뒤집어진다, 봄 바다의 밑바닥까지 하얘진다 *청갈바람 : 봄에 부는 세찬 남서풍으로, 물고기가 있다가 사라짐. 개복치 죽도시장 어물전 입구 보름달과 닮은 물고기 몇 마리 누워 있다 하도 이름을 묻는 이가 많아 내 이름은 개복치라고 미리 써 놓았다 그는 최후까지 눈동자가 착하다 조물주가 눈에 흰점을 찍은 그대로 개광(開光), 혹은 뇌를 넓히지 않아 바보끼리 보는 눈망울은 참 애틋하다 파리들은 죽은 이의 얼굴을 파먹고 있다 표독스런 상어의 검은 눈동자이든, 몸에 따듯한 피가 흐르는 개복치든 죽음의 좌판 위에선 매 한가지다. 몸통은 사라지고 머리와 작은 눈만 살아 있다 개복치는 지상에서 자신의 상(像)마저 지운다 약력> 손창기 - 경북 군위 출생. 2003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으며, 시집 『달팽이 성자』가 있음. jangoyes@hanmail.net  
531 꽃은 냉장고에 외1편/김미지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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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6 2017-01-31
17.02월 81호 시 꽃은 냉장고에 꽃집을 지나다가 꽃은 냉장고에 있습니다 란 표지가 붙은 유리창 안을 기웃거리다가 여기가 육소간인가, 고기는 냉장고에 와 뭐가 다르담 꽃과 고기라, 상하기 쉬운 것들 부패하기 시작하는 어느 시점의 연장에나 쓰일 냉장고가 너무 많은 게지 냉동칸에서 추억을 끄집어내는 사람은 쓸쓸해 숙성된 고기 한 점을 욕망이라 규정한다면 냉장실에서 냉동칸까지의 사잇길을 어슬렁거리는 고양이의 시절 귀 기울여 봐, 한밤중의 냉장고엔 고양이들이 살 거든 떨고 있는 고깃덩일 생각해 봐 갸르릉거리는 꽃들을, 그리고, 그래서, 그런데, ― 이적행위야, 그건 ― 패닉의 이적 말이야? ― 가수 말고, 가, 강박의…… 12월의 숲을 펼쳐 봐, 낙엽의 길이 깔리지, 바스락 바스락 발바닥에 훈기가 느껴지지 미사여구 없는 간결과 거침없는 드러냄으로 아름다운 나목들을 이제 비디오를 거꾸로 돌려 볼래? 마구마구 푸르러지고 어려져서 새로 새로 돋아나는 잎들, 오, 싱싱한 꽃들! 항해 아이의 방은 그리 크진 않지만 바다도 있고 별도 있습니다 푸른 줄무늬 벽지 위에 배들이 늘어서 있고 천정엔 야광 별들 별만큼 박혀 있습니다 불을 끈 하늘엔 형광빛 별들 밤새 반짝이고 아이는 별꿈을 꿉니다 아이가 학교 간 사이 바다는 썰물로 얕아졌다가 아이가 돌아올 때쯤 찰랑찰랑 수위를 높입니다 아이는 바지를 걷고 물 속에 하루를 씻고는 의자에 가만히 몸을 기댑니다. 책상 위에 어지러이 놓인 책들, 대양 속으로 떠나는 배 한 척 긴 고동 울리며 서 있습니다 아이의 방은 지금 만조입니다 1960년 대구 출생 1996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문』 miji3406@hanmail.net  
530 복현동 명자 외1편/권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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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 2017-01-31
17.02월 81호 시 복현동 명자 '미스매화 선발대회' 경축 현수막 흔들리는 그녀 집앞은 정류장이다 버스가 툴툴 부려놓은 먼지 작달막한 여자가 운영하는 구멍가게는 올라타거나 내려서는 사람들 발치에 있다 이정표 대신 세워둔 명자꽃을 덜컹이는 버스가 잠시 비틀어 스치는 창 안 사람들 눈에는 먼지털이 들고 서성이는 명자가 보였을 뿐 그녀가 씰룩이는 입술이 명자꽃 닮았다는 것을 누구도 알아보지 못한다 미스명자 선발 대회는 언제 열리나! 쑥 일월산 총각 도사 점 집 간판 앞에서 햇쑥으로 탑을 쌓은 좌판은 몸빼바지 쭈그린 그녀를 앉혀 두었다 삼십 여 년 전 친구가 거기 있었다 한때는 별이 될 수 있을 것 같았고 지구의 불빛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매연 뒤집어 쓴 도로에서 그녀가 들려주는 점 쾌는 쑥 냄새다 우연히 점집을 찾다 나와 마주친 그녀도 나도 이젠 눈이 흐린건지 길조심 하고 즐거운 날 되라 한다 꿈은 이루어질까 궁금해 찾은 절 집 쑥스러움을 내민 그녀 앞에서 부풀린 비닐 안쪽엔 갓 돋은 쑥들이 겨울에 맞장 뜨는 여자 같았다 밟힐수록 단단해지는 어떤 힘이 봄비에 너와 나 다 희미해져도 선명해지는 쑥빛 간판 앞에서 바람과 또 악다구니다 청송 진보 출생 월간문학 등단 이조년 백일장 장원 매일신문 최종결선(2명)진출 저서- 너는 시원하지만 나는 불쾌해  
529 포커페이스 외1편/권혁재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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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 2016-12-31
17. 01월 80호 시 포커페이스 이제 더 이상 기사들은 여왕을 위해 성전聖戰을 하지 않았다 호밀밭을 가꾸던 농기구들을 내려놓고 여왕의 부름에도 시큰둥했다 엉겅퀴가 뒤덮인 클로버 숲에는 숙련된 첨병들이 포진하였고 해자를 덮은 성곽 위로는 하트 문양의 불덩이들이 날아다녔다 성문을 열라는 성난 군중들의 함성이 화살같이 치닫는 여왕의 침실 다이아몬드 방패로 무장한 근위병은 여왕의 눈치만 보다 안절부절하는 무능력한 킹의 조급한 그림자를 쫓아 검은 눈동자만 의미 없이 굴려댔다 군중들이 성으로 진입해 들어가 여왕을 상징하는 깃발을 불태워도 여왕은 마지막 카드조차 내어놓지 않았다 기사들의 갑작스런 변심만 탓할 뿐 여왕 자신의 감추지 못한 포커페이스로 실없는 변명만 하였다 이제 더 이상 기사들은 여왕을 위해 성전을 하지 않았다 군중에게 패를 읽혀 표정관리가 되지 않는 여왕의 추잡한 포커페이스. 붉은 립스틱 믿어 달라고 한번만 더 믿어 달라고 흙바닥에 엎드려 더럽게 애원하는 정치인의 말을 믿지 않는다 유세가 끝나고 투표가 끝나면 다시 상전으로 모시고 사는 게 끔찍하고 또 끔찍하다 상전이 되었다가 하루아침에 노비로 전락하는 대한민국의 주권 하늘같이 믿고 싶어도 미개인 취급하는 꾼들의 능수능란한 재주를 당할 재간이 없어 정작 미개인 같은 미개인이 되어서 정치인의 말에 귀신이 든다 정치인의 혓바닥에 발린 달달한 허세를 이상처럼 좇는 좆도 없는 사람들, 한번만 믿어 달라고 더럽게 애원할 때 좆 빠지지 않게 미리 채비를 잘 하세나. 권혁재 경기도 평택 출생 200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집 『투명인간』『고흐의 사람들』 외 다수  
528 먼 땅에서 오고 있는, 외1편/김길녀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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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1 2016-12-31
17. 01월 80호 시 먼 땅에서 오고 있는,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겨울이 있는 도시 흰 눈의 계절을 살아보지 않은 나무의 생애는 외롭지 않고 명랑하다 사계가 없는 푸름 속에서 자란 나무들 성장촉진제를 맞은 키 큰 꽃과 같이 짧은 시간 안으로 긴 삶을 펼쳐놓는다 겨울 한가운데 일월과 이월 사이 식물원 제3산책로 초입에서 만난 늙은 아소카나무 한그루 죽은 이들이 잠들고 싶어 하는 나무의 지붕은 둥글고 따뜻하다 주먹만한 주황 램프꽃 조등처럼 주렁주렁 피어 빗속에서도 환하다 이파리 무성한 나뭇가지엔 공원지킴이 구렁이가족도 함께 지낸다 생애 처음 맞이하는 따뜻한 겨울 속 이국여자 창고 방에 쌓아둔 하양을 찾는 일에 열중이다 우기의 한 낮, 대서양을 넘어서 적도로 숨 가쁘게 달려온 귀한 햇살 지칠 줄 모르고 피고 지는 꽃잎들 족적을 환하게 비춘다 멀리 오면서 두고 온 먼 땅 얼음골의 함박눈 안부 폭설 같은 폭우 속 빗방울에 숨어서 이륙중이다 외투 안 깊이 겨울이야기 한아름 품은 채 오고 있는 당신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탈고 안 된 왕궁의 비밀 뭉치뭉치 쌓여서 떠날 수 없는 두꺼운 바람 청록색 이끼 키우는 흩어진 돌무더기 사이에서 옛 전사들의 발과 손 여전히 자라고 있다 거짓된 희망과 무늬뿐인 혁명을 앞세우고 비탈길을 넘고 넘어 비밀로 채워진 긴 밤을 끌고 온 그 날, 짧은 아우성만 남긴 채 성벽은 쉽사리 무너졌다 하늘이 지붕이 된 돌로 지은 목욕탕 밤마다 별이 된 공주들의 노랫소리 들려온다 달빛 없는 그믐밤에는 왼쪽 돌 목욕탕에서 왕자들의 웃음소리도 크게 들린다 가끔은 돌 목욕탕으로 사라지는 사람이 있다는 소문이 마른 꽃씨처럼 퍼지기도 한다 함께 하는 이의 친절한 설명에 살짝, 꽃무늬 우산이 흔들렸던가 신들의 기도조차 멈추어버린 궁터의 나날 정적만이 황금 촛대 위에서 자주 서성인다 담장 아래 흙더미에서 뒹구는 어린 병사 가죽신발 안으로 충성을 잊어버린 벌레들 흔들리는 시간을 천천히 낳는다 성벽을 쌓던 노예들의 손톱에서 흘러나온 무거운 용서는 봉분 없는 무덤에 하양 꽃을 피웠다 생과 사를 풀어내는 방식이 종교에 따라 다른 나라 힌두교식 삶의 환희와 이슬람교식 죽음 하양 깜보자꽃을 해석하는 인니 방식이다 이국 사람들 지나간 발자국마다 하양 꽃잎들 함박눈처럼 무덤을 덮는다 꽃무늬 우산 속 이국 남자와 여자 비 내리는 돌담에 나란히 걸터앉아 오랫동안 염소들의 풀밭 식사를 지켜본다 쪽배를 타고 산책하던 돌계단 아래 연못 주인 잃은 황금신과 꽃신 몇 켤레 둥 둥 둥 따뜻한 비에 젖고 있다 염소들이 떠난 우기의 저녁이 빠르게 풀밭 위에 내린다 문없는 돌기둥에 기대어서서 깊은 잠에 빠진 태양은 아침을 잊은 지 오래라는 빗방울 전언을 듣는다 그 시절 공주와 왕자의 이름으로 잠시 환생한 이국 남자와 여자 이천십삼 년 십이월 포근한 겨울 안에서 다시, 전생을 호명한다 강원도 삼척 출생 1990년《시와 비평》등단 시집『푸른 징조』등 '작은 詩앗·채송화' 동인  
527 無題 외1편/오형근 file
편집자
2591 2016-12-31
17. 01월 80호 시 無題 도선사 지장보살상에 웬 까마귀 세 마리 불안하게 왔다갔다 한다 어머니 계신 곳에서 까만 소식 물고 왔는가 미처 무슨 생각을 하기 전에 까악, 하고 울고는 서둘러 날아간다 궁지에 몰린 염소처럼 -김삿갓이라고 불린 사내, 김병연 씨 1863년 3월 29일, 전라도 화순군 동복면 귀암리에서 죽다 김삿갓이라고 불린 사내, 김병연 씨가 세상을 등진 그해 그날은 바람이 몹시 불고, 비가 왔어야 했다 천둥소리는 산야를 부들부들 떨게 했어야 했다 분명, 그날 비가 왔었다 궁지에 몰린 염소처럼 세상 울타리를 들이받으면서* 산 김병연 씨의 깊게 팬 손금 모양의 물줄기는 금방 도랑이 되었다 김병연 씨의 시詩들은, 주인의 죽음을 어떻게 알고 달려왔는지 도랑 위에서 소리소리 지르면서 방울방울 물방울로 흐르다가 곧 터져 버리고 말았다 하늘이 있어서 더 부끄러웠고 이름이 있어서 더 치욕스러운 삶을 살았지만, 하루도 낯선 땅을 밟지 않은 날이 없었다 만나는 나무조차 돌멩이조차 먼저 알은체하였다 김삿갓이라고 불린 사내, 김병연 씨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까지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다 죽음조차 앗아가지 못한, 김병연 씨의 세상과 자신에게 치솟은 울분을 씻어 주기 위해서라도 그해 그날은, 정녕 바람이 몹시 불고, 비가 왔어야 했다 *김병연의 시 「난고, 살아온 길을 돌아보다」에서 빌려옴. 오형근 1955년 서울 출생. 1978년 《시문학》 주최 전국대학문예 시 당선, 1988년《불교문학》과 《불교문예》로 등단. 시집 『나무껍질 속은 따뜻하다』, 『환한 빈자리』, 『소가 간다』 등이 있음.  
526 당신을 만나 행복한 시간들 외1편/이영옥 file
편집자
1851 2016-12-31
17. 01월 80호 시 당신을 만나 행복한 시간들 당신을 만난 시간들 나의 삶 속의 기쁨임을 지금 와 보니 크나큰 행복입니다 내가 숨쉴 때마다 새긴 당신의 흔적들 반추하며 행복하오 당신과의 시간들은 내가 갖은 가장 아름다운 붉은 그리움 당신이 머물던 따뜻한 공간 이 마음의 고항 이라오 당신이 멀리 있다 해도 당신을 만나 행복한 시간은 향기 가득한 기쁨입니다. 미 소 고운 인연 서로 마주하며 보내는 아름다운 미소 우리는 모두의 기쁜 삶에게 정성 담긴 미소.보내며 사랑은 사랑만으로 사랑 할수 있다 하기에 사랑으로 함께 이어온세월에게 미소 현존의 삶이 향기로운 보람 이기에 새롭게 미소 지으며 ‥ 따뜻한 당신에게 산소 닮은 미소를 보내오  
525 하늘 비행기 외1편 / 권형하 file
편집자
2256 2016-12-31
17. 01월 80호 시 하늘 비행기 땅에서는 나무가 하늘인줄 알았는데 하늘에서는 구름도 땅이라네. 밝아도 밝아가도 한 곳에 머문 계절이 세월의 신발을 벗어놓고 바람을 타고 구름 위로 건너서가면 시간을 차려놓고 밥을 먹는 집이 있는 듯 구름을 꿈으로 찍어서 파는 가게가 있는 듯 그 사람이 있는 듯 그 옛날이 있는 듯. 궁궐 한 채 달을 보고 <궁궐>하고 소리쳤더니 희고 은은한 드레스를 입은 농익은 여자가 나를 맞이했다. 사르르 고개숙여 눈 감은 듯 인사를 하는데 내 생애를 걸고 안아볼 만 하였다. 푸른 하늘도 낳은 여자였다. 그 눈빛 속에는 술잔이 솟고 호수도 보이고 내가 가보지 못한 꽃 속 꽃물 속으로 시를 쓰던 연꽃이 핀 집도 보였다. 세상의 밑바닥에서도 박꽃이 피어 익은 달이 떠올랐고 꽃길이 번져서 온 마을을 감싸고 돌다가 돌아눕고 몸을 뒤척일 때마다 달빛이 번지고 마을에서는 밤에도 꽃등을 단 달이 십 리 길도 버선 발로 뛰어가는 여자였다. 푸른 하늘도 낳은 여자였다. 악력 경북 상주 사벌 출생 매일신문 중앙일보 당선 <꿈꾸는 산> 발간 E 메일 - badaro7 hanmail.net  
524 묘사2016 외1편/나병서 file
편집자
2312 2016-12-31
17. 01월 80호 시 묘사2016 생황소리에는 눈물이 묻어 있었다 눈물이 말라버린 마른 울음이 앉아 있었다 문경새재는 웬 고갠가 구부야 구부구부가 눈물이로구나 진도에서 걸어온 북소리는 지나버린 시간의 부피만큼 무거웠다 청천하늘엔 잔 별도 많고 우리네 가슴 속엔 사연도 많다 말이 없는 뒷모습에서는 그믐달이 막 떠오르고 있었다 노다 가세 노다나 가세 저 달이 떳다 지도록 노다나 가세 가야금 소리에는 세월이 묻어 있었다 가끔씩 세월의 조각들이 줄위를 튀어 올랐다 달이 뜬다 달이 뜬다 이제는 가버린 그 달이 뜬다 백발에 붉은 립스틱 정지된 청춘의 갈망이 앉아 있었다 아리랑 동동 쓰리랑 동동 달 보는 아리랑 님보는 아리랑 세월의 잔해는 앉아 있었다 잔해 속에는 여전히 세월이 숨어있었다 정든 님이 오셨는데 인사를 못해 행주치마 입에 물고 입만 뻥긋 바람이 조용히 걷고 있었고 눈물은 바람에게 스미고 있었다 애모곡 세상만큼 커다란 돌판 두개를 눈빛으로 슬픈 눈빛으로 문질러 닳아 없어지는 동안 모든 것이 나고 죽는 것을 보고 있었어요 쉬고 싶어요 편안해 지고 싶어요 오늘은 구름에 가려 달이 보이지 않았어요 아주 희미하게 멀리 숨어 있었어요 늙은 짐승이 되어가요 젊고 고운 엄마는 작은 아이를 가슴에 안고 있었어요 엄마의 손가락은 가늘고 희게 보였어요 엄마는 어디에 계실까요 토요일 늦은 오후 늘 계시던 자리 둘이 비어있어요 자리를 찿아서 자주 가는 사잇길을 어슬렁거리며 올라갔지요 얼굴이 창백한 아버지는 걷기 힘들어하는 엄마의 팔을 조심스레 붙들고 걷고 계셨어요 솔방울이 예쁘구나 떨어져 속이 빈 솔방울들은 엄마를 미소짓게 했어요 어쩌면 이렇게 만들어 졌을까 아야 지는 해가 참 이쁘구나 하나님이 만드신 것 맞지 아야 저녁에 기도하면서 예수님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한단다 엄마는 오랜만에 활짝 웃으셨지요 눈빛으로 슬픈 눈빛으로 세월이 닳아 없어지는 동안 모든 것이 나고 죽고 있었어요 1960년생 2014년 8월 한국문인협회 시분과 2015년 2월 2015년 동경미술대전 한일문화교류축제 초대작 참가 *상수리 나무의 노래(일본 나가노시) 2016년 1월 한국.프랑스 수교 130주년기념 파리시화전 초대작 참가 *능소화 애가  
523 쓸쓸한 날들의 기록22 외 1편 /김진희 file
편집자
2234 2016-12-31
17. 01월 80호 시 쓸쓸한 날들의 기록22 -4월의 강가 해는 자신의 빛을 균등하게 나누지 못한다 한낮에 몰린 햇빛은 내 몸에 빨판을 대고 수분을 쪽쪽 빨아댄다 한나절 강가에 서있으면 광합성작용으로 짙푸르게 물이 들 것 같다 그래도 좋겠지 뒤늦게 말을 배운 아이처럼 나이 들어 말이 무성해졌다 입 쪽에서 새잎이 나려는지 입이 근질근질하다 그 잎들은 둥글둥글한 활엽수의 이파리 상대방을 자극하거나 공격하는 일은 절대 없다 불화의 상태를 견디지 못하는 편벽한 나무 4월의 강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푸르른 산빛과 내 몸의 궁색한 빛이 섞인다 그 일이 꿈속까지 따라와 산고도 없이 푸른 침엽수 같은 아이를 낳는다 그 아이를 배 위에 올리고 어르다 잠이 깼다 흡족했지만 쓸쓸한 꿈이었다 추석 무렵 지진이 일어났다 땅 속 깊숙이 자고 있던 지진파가 부스럭대며 몸을 일으켰다 그 때 우리는 족발집에서 인간관계의 균열에 대하여 심각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존재의 흔들림에 대하여, 그 흔들림으로 조직이 어떻게 뒤틀리는지 어떻게 혼란에 빠지는지 침을 튀기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사람들은 가게 밖으로 나와 전화기를 들고 불안에 떨었다 멀지 않은 원전을 우려하는 소리도 있었다 중력보다 묵직하게 몸을 끌어당기는 취기를 밀어내려고 나는 눈을 크게 껌벅이는 것이지만 여기, 소주 한 병 더! 족발접시는 비어가고 소주잔은 차올랐다 우리 믿음의 접시는 바닥을 드러내고 울분과 분노와 공포가 코 밑까지 차올랐다 자꾸 누군가를 원망하고 싶은 밤이었다 남은 지진이 간 밤 우리의 침대를 몇 번 흔들었으나 아침이면 선물세트 든 손이 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무겁게 택시문을 열고 나왔다 *1969년 부산 출생. 2006년 제1회 경남작가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굿바이, 겨울』. 한국작가회의, 경남작가회의 회원.  
522 강사 포구 외1편/김만수 file
편집자
2186 2016-12-01
16. 12월 79호 시 강사 포구 지독한 결핍에서 돌아서지 않는 형 그가 만지는 오래된 연모와 쓸쓸한 그의 기지(基地)와 덧꿰맨 부표를 흔들며 여밭을 뒤지는 그의 낡은 아내가 절골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저것들이 다 닳아 쓸모가 없어지면 결핍마저 없어질거라는 형의 취기는 막차가 떠날 때까지 대책없이 바다로 흘러갔다 해마다 그랬다 가만히 왔다가는 해국(海菊)비탈에 내리는 별싸라기 기다려 하얗게 영혼들이 떠나는 물결 위로 쳐진 노을이 함께 흐르고 어린 해병들이 탄통을 흔들며 지나고 있다 형의 부표들이 붉은 바다를 흔들고 있는 강사포구 족장 케이 바람의 언덕이 흔들리고 겨울 벼랑에서 화살 나는 소리가 났다 몇 사람이 차창을 따라오다 멀어지고 다시 몇 사람이 젖혀진 하얀 내 깃털을 보고 웃고 있다 나는 바람을 따라 날아오를 수 없음을 안다 왼쪽 무릎 아래로 주저앉을 수밖에 없음도 안다 가슴 속 화살나무가 물에 잠기고 미늘이 무너져 녹슬고 있다 내 화살이 뚫지 못하는 밀랍의 세상이 걸어다니고 있다 흔들리고 반짝이는 스크린들이 교차되고 그 끈의 끝에 매달린 붉은 부적(符籍)이 팔랑거리고 있다 족장은 멀리 가지 못하고 하얗게 마르는 길을 거둬들이며 돌아왔다 화살도 날지 않고 바람의 언덕은 하얗게 지워지고 있었다 이 화려한 계엄을 벗어나면 너의 영지(領地)에 이를 수 있을까 쳐지고 꺾인 날개를 일으켜 세워 거기까지 갈 수 있을까 꿈길인 듯 날아오를 수 있을까 1987년 <실천문학> 등단. 한국작가회의회원. 포항문학회원. 해양문학상 . 장시 <송정리의 봄> 시집<소리내기>.<햇빛은 굴절되어도 따뜻하다>.<오래 휘어진 기억>. <종이눈썹>.<산내통신>.<메아리 학교>.<바닷가 부족들>.  
521 알 수 있어요외1편/김산 file
편집자
2117 2016-12-01
16. 12월 79호 시 알 수 있어요 - 만해 한용운 선생의 ‘알 수 없어요’의 가락을 빌려 삼산이수 아름다운 고장을, 전쟁의 공포로 몰아넣으며 신냉전 시대를 열어, 김천 사람들의 가슴팍을 짓밟는 싸드는 누구의 군홧발입니까? 수백 개의 북한 스커드미사일, 노동미사일, 무수단미사일을 단 48개의 싸드미사일로 막아낼 수 있다고 장담하면서 선제공격론을 주장하는 전쟁 미치광이는 누구의 얼굴입니까?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도 잡고, 대륙간탄도유도탄(ICBM)도 잡고 북한에서 날아오는 모든 미사일을 잡을 수 있다고, (잘 알면서!) 새빨간 거짓으로 국민을 기만하는 것은 누구의 입김입니까? 만의 하나, 북한핵미사일이 우리들의 머리 위에서 폭발하면, 초토화된 한반도, 미사일방어체계(MD)의 폐허를 헤매는 핵전쟁 실험실의 마루타(maruta)는 누구의 그림자입니까?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제국이 어떻게, 그 비싼 싸드 미사일로, 우리를 위하여 (정말) 공짜로 북한 핵미사일을 막아주는 진정한 수호천사입니까? 오늘도 촛불은 스스로를 태워 어둠을 밝힙니다. 평화의 광장에는 우리들의 자존심, 우리들의 자부심이 타오르고 있습니다. 수백 개의 촛불이 모여 수천 개의 촛불, 수만 개의 촛불로 번져 가면 적들의 가슴도 서늘해지겠지요. 그러니 우리는 스스로 촛불이 되어 타올라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촛불은 누구를 태우려고 하는 거대한 들불입니까? 실(蟋)이야, 그네를 밀어라 - 미당의 추천사(鞦韆詞) 곡조를 빌려 실(蟋)이야, 그네를 밀어라. 저 푸른 하늘로 싸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처럼 밀어 올려다오 실(蟋)이야. 메르스 사태와 세월호 대참사, 위안부 합의와 물대포 사망, 개나 돼지 같은 민중들이 우글거리는 지상의 검은 물로부터 밀어 올려다오 버시바우의 말처럼 요승 라스푸틴의 사술이라도 좋아 몸과 마음(body and soul)을 완전히 통제해도 좋아 푸른 한반도, 평화광장의 백만 함성으로부터, 실(蟋)이야. 발끝부터 올림머리까지 꼭두각시 공주라도 좋아, 특혜와 전횡, 정경유착과 방산비리는 알아서 하고 개성공단 폐쇄, 성과퇴출제, 국사교과서 국정화, 블랙리스트와 검열, 그까짓 싸드쯤이야, 중국이 반대하건 말건 로키드 마틴과 로비스트와 영원한 우방에게 맡기고 정치, 경제, 문화, 체육, 국방, 외교, 인사, 국정농단도 좋아 팔선녀, 십상시(十常侍), 문고리 삼인방에게 맡기고 고집과 불통과 수첩과 무능이 최선의 무기이니 프로포폴(Propofol)이라도 좋아, 저 하늘로 붕붕, 밀어 올려다오. 오방색 구름 같이만 밀어 올려다오. 실(蟋)이야. 그네는 아무리 땅을 박차고 올라도 결국은 내려 와야 하는 숙명인가 바람에 흔들리다가 소낙비 같이 떨어져야 하는가 아무래도 벼랑의 폭포 같이는 떨어질 수 없구나 탄핵이나 하야, 함께 가는 감옥밖에 없는가 마지막으로 불타는 붉은 저녁노을같이, 오방색 애기구름같이 아름다운 신천지에, 사뿐히 내려올 수 없는가 구중궁궐, 들보에 목을 맨 형상으로 덩그러니 매달린 그네가 있다 아무나 탈 수 없는 그네가 있다 이제, 아무도 타지 않는 그네가 있다. 실(蟋)이야. 1954년 경북 김천 초실생, 1983년『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별』,『나무들의 사랑』,『내 마음의 수평선』등 『분단시대』동인, 한국작가회의 회원.  
520 낙엽 외1편/최순섭 file
편집자
1963 2016-12-01
16. 12월 79호 시 낙엽 초겨울, 부음을 받고 잠시 후 영구차가 지나갔다. 한 때 푸르렀던 이파리들의 시신이 이리저리 뒹굴고 강렬한 키스의 밤, 한적한 골목 가로등 빛에 서있던 여인의 혀는 송곳이 되어 살을 후비고, 붉은 빛깔의 황홀한 벌독이 번져온다. 한 사내가 흔들리는 아주 좁은 공간에서 낙엽을 쓸며 한 잎 한 잎 젖은 속옷을 들춰본다. 언제부터 여인의 자궁 속에서 우윳빛 향기가 난 걸까. 탯줄이 끊어지고 비로소 행성은 궤도를 이탈한다. 시신을 끌어안고 숨이 뜨거운 나무들은 아궁이가 벌겋다. 젖은 장작이 불붙는 소리에 세상은 요동치고 거친 숨소리에 푸른 생명이 눈 뜨고 있다. 푸르게 붉게 노랗게…, 빛을 잃고 사라져 가는 건 모두 뜨겁다. 컵라면 낚시질하던 청년이 컵 속에 빠졌다 실비 내리는 오후 우북이 쌓인 슬리퍼가 하품을 시작할 즘 수레 위를 힐긋 바라보던 행인들이 잰걸음에 사라지고 유리창 너머 벽에 걸린 시곗바늘이 삐걱거릴 때 청년은 약국 계단에 앉아 로봇이 되었다 짝짝이 나무젓가락에 늘어진 면발을 들고 고개가 중심을 벗어나자 벌떡 일어나 보이지 않는 컵 속을 다시 휘휘 저어 퉁퉁 불어 풀죽이 된 오후를 빈속에 꾹꾹 눌러 담아보지만 식은 면발은 찰기가 없어 잘근잘근 씹지 않아도 잘 넘어갔다 바닥이 없는 하루하루가 1978년<시밭>동인으로 작품활동 시작. 에코데일리 문화부장, 한국가톨릭독서아카데미 상임위원, 서울특별시교육청근무. 시집 『말똥,말똥』 등이 있다. Email: css03@naver.com  
519 어머니의 나라 외1편/김성찬 file
편집자
2036 2016-12-01
16. 12월 79호 시 이땅의 모든 어머니들깨 바칩니다 어머니의 나라 하루를 솎아내던 해도 지쳤습니다 지평선 끝 하늘까지 흙발로 걸어가 붉은 노을 속 구름에 고단한 몸 뉘입니다 평생을 아무개 엄마라고 불려지며 살았습니다 남루한 살림의 한 축이 되어 맵찬 바람 다 막아낸 자식들 비받이였습니다 작지만 맵고 깡아리 있는 조선의 여인이였습니다 언제올래 수화기 너머 들려오던 갈라진 목소리 그 이틑날 어머니 이름 천상에 올려질 줄은 미쳐 몰랐습니다 계절의 문이 수없이 열렸다가 닫혀도 꽃들이 지지 않는다는 어머니의 나라 별들이 총총이 박힌 쪽문 열고 얘야 부르는 소리 바람에 잠시 끊겼다가 싱싱한 하늘에 메아리로 맴돌고 있습니다 내 마음 속에 판화로 영원토록 새겨진 어머니 그리운 이름 나즈막이 불러 봅니다 어머니--이-이-- 이-- 어느 날의 기록 퍼붓는 함박눈 하늘도 온통눈밭이다 숨비소리 뿜어내며 테왁에 매달려 올려다 본 하늘 뒤란 감나무에 목을 맨 청춘이 홀로 눈밭을 걷고 있다 자맥질로 낚아 올린 가난의 부스러기들 생활의 망사리에 우겨넣고 흥정해서 올릴 제사상은 슬픔의 저울추를 밀고 있다 눈발 그치자 급하게 불려나온 해가 셔터를 열고 시장 끄트머리 사진관 물먹은 유리창을 찍어대자 추억처럼 청춘 남녀가 걸려 있다 맑게 웃는 아기까지 판화처럼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바람도 발목 삔 걸음으로 더디 걷던 쌓인 눈 얼어붙은 밤길 절름거리며 먼 길을 걸어온 청춘이 젯밥 한 술 뜨고 있을 때 홀시어미 흐느낌 속에 스물한 살 청상이 절 하고 있다 혼불 나불나불 타올라 잘근잘근 어둠 잘라먹던 방 한 켠 잠깬 아기를 고요가 구덕을 흔들어 다시 재우고 있다  
518 외 침 외1편/허남기 file
편집자
1764 2016-12-01
16. 12월 79호 시 외 침 ㅡ세월호를 생각하며ㅡ 그들의 소리는 어둠속의 울부짖음이다 흘수선이 오뚜기가 될때부터 갈매기의 요란한 신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바닷물이 턱에 차오를 때까지 태연히 아무것도 모른 채 발끝에 물이 흥건히 젖고서야 비로소 파도소리에 꺽인 침몰의 수마는 꽃같은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세상의 손길이 닿지않은 허우적의 외침들이 어른들과 신의 무관심속에서 이미 흘러내린 통한의 눈물로 짜디짠 바다의 농도를 더하여 내 영혼의 뺨을 때리고 귀 멀고 눈 먼 세상을 몰아 붙였다 침묵은 이제야 번쩍이며 저 아득한 곳 외침들을 깨운다 그들은 오늘밤도 혜성이되어 어제 처럼 지상을 오르내린다 가 을 계절의 간사함이 출렁이고 감동의 물결이 풋풋함을 길 들이는 동안 신선한 바람이 가을의 속내를 탐독하고 있다 새벽부터 내린 비로 가슴을 풀어 헤친 가을의 속살들이 바람몰이를 하고 있다 축 늘어진 가지나 결실들이 낮게 나르는 잠자리의 호외소리에 제자리를 찾아 뜨거운 햇살로 몸을 익히며 부풀리고 있다 목 놓아 소리치던 매미의 허물은 허공의 북망으로 떠나고 갸날픈 귀뚤이의 울음만이 들녘의 고요를 메우며 여전히 따가운 시선으로 풍요로운 노제를 올리고 있다 그해 길들여진 추색의 몸살만이 다가올 삭풍에 귀를 쫑긋 세운다 허남기:경북 영천 출생ᆞ2014《문장21》등단 《문학광장》신인상. 한국문협 경북지회 회원 ᆞ영천문협회원  
517 십자가의 고백 외1편/정숙정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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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4 2016-12-01
16. 12월 79호 시 십자가의 고백 -어머니께 올리는- 광기 어린 눈동자 사이 그만 저절로 굽신거리며 매질 당한 등 위에 매달렸습니다 요동치는 심장소리 차오르는 숨소리 차마 포근히 느끼며 골고타 언덕을 올랐습니다 꾸역꾸역 자라온 생명이 한없이 무겁습니다 당신의 기도소리가 한없이 슬픕니다 천사들이 당신을 데려갈 때 나는 왜 당신의 십자가여야 했는지 이 불운을 따지고야 말겠습니다 당신의 마지막 기도대로 부디 용서하소서 자신이 하는 일을 몰랐습니다 혼자 남다 땀나는 발다닥을 이고 종일 뛰어야 했던 그것이 행복이었다 하늘이 청명한데 갈 곳을 잃고 짝은 어디로 갔을까 수많은 인연이 스쳐도 머무는 이 없이 가장 버려진 모습으로 처분만 기다리는 고속도로 가드레일 옆 운동화 한 짝 숲문학 회원  
516 나도 모르는,/고창근 fil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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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6 2016-12-01
16. 12월 79호 소설 나도 모르는, 내가 여기 왜 왔지? 춘식은 자리에 앉으며 당황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치 누군가 자신이 잠 잘 때 번쩍 들어 이곳에 데려다 놓은 것 같았다. 올 생각도 오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런데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이 식당에 있었다. 주방 쪽으로 눈길이 슬며시 돌아갔다.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춘식은 두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벽에 걸린 텔레비전을 보았다. 아니 보았다기보다는 생각을 하기 위해 고개를 들었는데 맞은편에 있는 텔레비전이 보는 사람이 없는데도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가야 한다는 생각과 달리 엉덩이가 떨어지지 않았다. 무슨 용건이 있다고. 춘식은 텔레비전에 머문 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미 옛날이었는데. 이제 와서 무슨 할 말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믿는 자 나와 함께 할 것이요 구원될 것이니 항상 하느님을 믿고 따라야 우리는 영원히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곳 천당에 갈 수 있습니다. 춘식은 천당이라는 말에 눈을 크게 떴다. 계속 시선을 두었지만 사실 텔레비전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던 터였다. 하얀 가운에 보라색 비로드를 부착한 목사가 설교를 하고 있었다. 목사 뒤에는 삐쩍 마른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있는 형상이 보였다. 영원히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천당이라. 춘식은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어 고개를 숙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가야지, 아무도 없을 때 가야지. 춘식은 또다시 슬그머니 주방 쪽으로 눈길을 돌리려다 큰 결심이라도 한 듯 입을 굳게 다물며 일어서려는데 한 사내가 물컵을 들고 앞에 서있는 게 보였다. 갑자기 하늘에서 사내가 뚝 떨어진 것 같았다. 사내는 물컵을 탁자에 놓았다. “요 앞에 쓰레기 버리려 가느라 자리를 비웠네요. 뭘 드릴까요?” 50대를 갓 넘겼을까, 머리숱이 별로 없고 그나마 대머리인 사내가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 그러니까.” 춘식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애초부터 오려고 마음먹은 것도 아니고 또한 나가려던 참인지라 말까지 더듬었다. “그럼 천천히 주문하세요.” 사내는 공손히 말하곤 홀 중앙에 있는 난로가로 갔다. 그제야 춘식은 식당 내부를 둘러보았다. 허름하지만 꽤나 깨끗한 인상을 주었다. 탁자는 여섯 개가 있었고 벽에 걸린 메뉴판에는 씨레기 해장국부터 순대국까지 열 가지가 넘는 메뉴가 적혀 있었다. 메뉴판 옆에는 속옷만 입은 여자가 소주병을 들고 있는 달력이 바람이 없는 데도 가늘게 펄럭이는 것 같았다. 바닥은 시멘트 바닥인데 깨끗하게 물청소되어 있었다. 손님은 하나도 없었다. 저녁 시간이면 손님이 있을 법도 한데 하나도 없으니 오히려 춘식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지랄. 자신의 그런 생각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제는 다 지난 간 일이다. 춘식은 신발로 바닥에다 가로로 세로로 줄을 그었다. 어쩌자고 왔는가. 생각할수록 기이했고 울화통이 올랐다. 형님, 어제 형수님 봤습니데이. 한 달 전 아니, 두 달 전인가 직장 동료이자 고향 후배인 박씨가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다가와 속삭이듯 한 말이었다. 그때 춘식은 아침부터 무슨 지랄 같은 말이라는 듯 박씨를 바라보았다. 분명하다카께요.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카께요. 박씨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긍께 어제 야근하고 집에 가다 해장이나 한잔할까 싶어 두리번거리는데 씨레기 해장국 판다는 가게가 있질 않겠소. 그래 들어갔더니 글쎄, 분명하다카께요. 20년도 더 지난 여편네였다. 춘식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나마 죽지 않고, 식당이라도 하니 병들지도 않고 살아있는 것으로 되었다. 하지만 박씨가 그곳이 어디라고 뒤따라오며 말했을 때에도 귓전으로 흘러들었다. 당연히 다 잊었다. 아니다. 다 잊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술만 들어가면 박씨가 가르쳐준 식당이 마치 단골집이라도 되는 듯 눈에 선하게 들어왔다. 자신이 사는 곳과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그 앞으로 몇 번 지나가기도 했었다. 식당 옆 전파사가 있고 그 옆에 미장원이 있고 그 옆엔 철물점이 있고⋯⋯ 환장할 일이었다. 가보지도 않았는데 그 주위의 풍경이 눈에 자세히 그려졌다. 야당은 유례없는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양산 그리고 많은 자영업자들의 몰락 노인들과 빈곤층의 자살 증가 등 민생을 파탄시키고 경제도 파탄시킨 책임을 묻는 선거가 ⋯⋯ 여당은 이번 선거에서 청년들의 일자리 창출, 노인들의 기초연금 확대 등을 공약으로 내세우기로 했습니다. 갑자기 텔레비전에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주인 사내가 텔레비전 채널을 돌린 모양이었다. 선거철이라 그런지 텔레비전만 켜면 정치 얘기였다. 춘식은 메뉴판으로 눈길을 돌렸다. 마땅히 먹고 싶은 게 없었다. 그렇다고 소주만 마실 수는 없었다. “여기 소주 하나 하고 술국 하나 주세요.” 춘식의 말에 사내는 주방을 향해 말했다. “술국 하나.” 그러자 문 여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수돗물 소리가 났다. 주방 옆에 골방이라도 있는 것 같았다. “우선 드시고 계시면 빨리 가져오겠습니다.” 사내는 소주와 잔 깍두기를 내놓았다. 춘식은 아무 말 없이 잔에 소주를 따라 단숨에 입에 털어넣었다. 주방으로 고개를 돌리고 싶은 마음과 나가고 싶은 마음이 갈등을 일으켰다. 허! 두 잔을 연거푸 입에 털어넣고나니 갑자기 헛웃음이 나왔다. 20여 년 전에 집을 나간 마누라년이 보고 싶었단 말인가. 죽음을 앞두니까 마음이 약해졌다는 말인가. 허! 또다시 헛웃음이 터져나와 황급히 잔에 술을 따라 입에 털어넣었다. 반은 흘러 소매를 적시고 가슴께로 흘러내렸다. 내가 죽고나면 사람들은 무어라 말할까. 죽기 전에 누구나 죽음을 암시하는 행동이나 글을 남긴다는데. 춘식이라는 사람은 죽기 하루 전 어느 식당에 들렸는데 그 이유를 파악 중입니다. 이렇게 떠들까. 그러면 후배 박씨가 나서서 그 식당 여주인이 전처였다고, 매일이다시피 개 패듯 마누라를 팼다고, 그래서 이혼 당했다고, 그렇게 말할까. “이것 좀 드세요.” 주인 사내가 오이무침을 담은 접시를 탁자에 내려놓았다. 아마도 안주는 먹지 않고 술만 마시고 있는 걸 지켜본 것 같았다. “행복하시오?” 춘식은 말을 해놓고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런 말을 할 작정이 아니었다. 아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소주 한 병만 마시고 나갈 참이었다. 그런데 행복하다고 묻다니. 술기운일까. 춘식은 스스로 민망함에 다시 술을 따라 단번에 입에 털어넣었다. “사는 게 뭐 그렇지요.” 사내는 두 손을 만지며 머뭇거리다 말했다. “아니, 그러니까, 지금 사는 게 행복하냐구요.” 술기운일까. 자꾸만 말이 의도와 다르게 나왔다. “그냥 뭐. 사는 거지요.” 사내는 제대로 답을 못해 송구스럽다는 표정으로 엉거주춤 서 있었다. 술국 나왔어요. 주방에서 가늘면서도 약간 쉰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춘식은 자기도 모르게 주방으로 고개를 돌리려다 다시 애꿎은 소주병을 들었다. 맞다. 저 놈의 목소리. 쉰 듯한. 살아오면서 한 번도 큰소리를 내지 않았던 것 같은 목소리. 사내는 주방으로 가서 김이 솟아오르는 뚝배기를 들고 왔다. “우선 안주 좀 드시면서.” 주인 사내는 여전히 송구스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술국은 양이 많았다. 순대국에 머리고기를 많이 넣었다. “한 잔 하시겠소?” 춘식은 주인 사내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러시지요, 손님도 없는데.” 사내는 주방으로 가서 소주 한 병과 소주잔을 들고 왔다. 주방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제가 한 잔 따라드리겠습니다.” 사내는 자리에 앉자마자 두 손으로 춘식의 잔에 술을 따랐다. 자신의 잔에도 따려는 걸 춘식은 소주병을 재빨리 낚아채어 사내의 잔에 따랐다. “안주 좀 드시고.” 사내는 술국에 청량고추와 새우젓 다재기를 넣고 숟가락으로 휘저었다. 우유 같은 국이 뻘겋게 물들어갔다. 사내는 숟가락을 춘식 쪽으로 놓았다. “한 잔 합시다.” 춘식이 잔을 들자 사내도 덩달아 두 손으로 술잔을 들었다. 춘식은 단숨에 마셨고 사내는 반만 마시고 잔을 내려놓았다. “안주 좀 드시고. 빈속에 마시면 속 베릴 텐데요.” 안주를 먹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말했다. 허, 또다시 춘식의 입에서 가벼운 헛웃음이 나왔다. 길어도 하루, 짧으면 몇 시간 후 자신의 몸은 주검으로 발견될 터였다. 그런데 빈속에 술을 마시면 속 버린다고 걱정하다니. 허, 또다시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사내는 그런 춘식의 모습을 보며 자신이 말을 잘못했나 싶어 손을 잡고 사과라도 할 듯한 표정을 지었다. 춘식은 사내의 그런 표정에 아랑곳 않고 사내의 잔에 술을 따르고 자신의 잔에도 술을 따랐다. “행복하시오?” 춘식은 또다시 불쑥 튀어나온 자신의 말에 놀랐고 사내는 말없이 자신의 잔을 들었다. “누군들 행복하겠냐마는요. 그래도 삼시세끼 먹고 사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지요.” 사내의 말에 춘식은 질문도 그렇지만 답 또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듣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행복하다는 말? 살기 힘들다는 말? 여편네는? 그러니까 당신 말고 여편네가 행복하냐고 물었던가. “그렇지요. 삼시세끼 밥 먹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지요.” 춘식의 체념한 듯한 말투에 사내가 물었다. “퇴근하시는 중인가 보죠? 일성 반도체?” 춘식의 놀라는 표정에 사내는 처음으로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저도 한 20여 년 물장사 밥장사하다보니 대충 사람 볼 줄 압니다. 허허.” 사내의 말에 춘식은 대꾸도 않고 술을 들었다. 술국은 식어서 위에 기름기가 끼기 시작했다. “아직 원인을 모르지요?” 춘식은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회사 내 사람들보다 바깥사람들이 언론이나 소문을 통해 더 많이 알 터였다. “내일은 누가 죽으려나.” 사내는 한숨 섞인 말을 하곤 술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나요. 나라면 믿을 수 있겠소? 춘식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자 양쪽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이제는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관심이 집중된 일이었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반도체의 한 회사의 사원들이 매일 한 사람씩 죽어 가는데. 사원이 수만 명이 된다해도 매일 사원이 원인도 다양하게 죽어 가는데 대해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보건기구와 UN에서도 전문가가 파견되어 조사를 벌이는 중이었다. 죽은 사람을 보면 직업병이랄 수도 없었다. 교통사고를 당한 사람, 산에 가다 추락사한 사람, 잠자다 죽은 사람, 평소에 질병을 앓던 사람⋯⋯. 하지만 한두 명도 아니고 가족도 아니고 같은 반도체 회사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매일 한 명씩 죽으니 이상한 소문만 돌 뿐 대책도 없었다. “근데 죽는 사람은 안다면서요?” 사내가 무심히 물었다. 이미 몇 년 동안 계속 죽어왔고 이젠 텔레비전에서도 거의 다루지 않으니 오히려 별 얘깃거리가 되지 못했다. 차라리 키우던 개를 학대해 구속된 사람이 화제가 되었다. “이유 없는 무덤이 어디 있겠소.” 춘식은 말해 놓고 자신의 말에 놀랐다. 이렇게 멋있는 말을 하다니. 사실 그 문제에 대해선 이미 일반 사람들처럼 회사 내에서도 별 얘깃거리가 되지 못했다. 명확하게 백혈병처럼 겉으로 회사의 문제가 드러났다면 모르지만 표면상으론 회사와 아무런 관련 없는 죽음이었다. “그래도 죽은 사람은 꼭 흔적을 남기니 말이요.” 사내의 말에 춘식은 대꾸를 않고 술을 입에 털어넣었다. 그랬다. 죽은 사람은 예감을 했는지 평소에 하지 않은 행동을 했다. 특별한 날이 아닌데도 부모의 집을 찾는다든지, 평소엔 자식에게 데면하게 굴던 사람이 갑자기 전화를 걸어 건강하라든지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데 취직하라든지, 몇 년째 연락을 안 하던 친구한테 전화를 한다든지. 며칠 전 춘식이 아는 사람은 죽기 하루 전 키우던 개의 목사리를 풀어주었다. 춘식과 자주 술을 마시던 사이였는데 죽기 전까지는 어떠한 징후도 없었다. 쾌활했고 회사에서도 평소와 같이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퇴근해 저녁을 먹고 난 뒤 바람 좀 쐬고 온다더니 집 앞 길에서 뺑소니차에 치였다. 나중에 조사를 해보니 산책을 하기 전 키우던 개의 목사리를 풀어주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사실 별게 아닌데도 죽고 나니 그것이 마치 죽음의 징후가 되었다. 맞는 말이다. 춘식은 사내가 따라놓은 잔을 들어 입에 털어넣었다. 죽는 사람은 예감이 온다고 소문만 무성하더니 맞았다. 자신이 그랬다. 내가 죽는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죽다니. 며칠 전 처음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땐 핏, 웃어 넘겼지만 이상하게 시간이 지날수록 죽는다는 것이 자명하게 느껴졌다. 결국 내 차례구나. 마치 운명처럼 느껴졌다. 처음엔 억울했고 그래서 부정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자신이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죽음을 이렇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다니. 물론 억울하기도 하고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야 아직 남아있지만 처음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와 비교해 그렇다는 얘기다. “허, 국이 식었네요. 데워오겠습니다.” 사내는 뚝배기를 들고 주방으로 갔다. 춘식은 자신도 모르게 주방으로 고개를 돌렸다.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고 가슴 한 켠에 서늘한 바람 한 점이 들이닥쳤다. 대통령께서는 경제를 살리려고 얼마나 걱정을 하시는데 야당이 발목을 잡아서 그런 거 아닙니까. 이번 선거에서 야당을 심판해야 합니다. 야당은 노동법을 통과시키지 말자는 입장이 아닙니다. 독소조항인 해고를 쉽게 하는 법과 파견법을 개선하면 충분히 통과시킬 수 있는 입장입니다. 텔레비전에서는 여당과 야당 국회의원 두 명이 나와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아이고 늦었네요.” 사내는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종종 걸어와 뚝배기를 탁자에 놓았다. 뜨거운 김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춘식은 숟가락으로 국물을 조금 떠서 입으로 가져갔다. 식당에서 직접 꼬았는지 국물이 진하게 우러났다. “고기 좀 드시고.” 처음엔 먹을 마음이 없었는데 막상 국물을 떠먹고 보니 맛이 입에 감겼다. 그러다보니 자꾸 국물만 떠먹는 형국이 되었다. 역시 음식 솜씨는 좋은 여편네였다. 그렇게 자신한테 맞고도 아침이면 시원하고 얼큰한 해장국을 끓여놓았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런 해장국을 먹어보지 못했다. 춘식은 사내 앞으로 뚝배기를 밀었다. “같이 좀 드시지요.” 춘식은 사내 쪽으로 밀어놓고 머리고기를 숟가락으로 떠서 입으로 가져갔다. 고기도 알맞게 익어 쫄깃했다. 처음엔 시장기를 느끼지 못했는데 막상 국물이랑 고기를 떠먹다 보니 오히려 시장기를 느꼈다. 몇 번 떠먹는 동안 사내는 춘식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순식간에 술국이 절반이하로 줄었다. 후. 춘식은 입김을 길게 내뿜으며 상체를 들어올렸다.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훔쳤다. 속에 뜨거운 것이 들어가니 한결 정신이 맑아지는 것 같았다. “손님도 없는데 담배 피우셔도 됩니다.” 춘식이 주머니에 손을 넣고 만지작거리자 사내가 재빨리 말했다. “아, 아닙니다.” 춘식은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갔다. 마침 오줌도 마려운 터였다. 허! 화장실에 들어오자마자 담배에 불을 붙이고 연기를 들이마셨다. 또다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몇 시간 후면 죽을 몸이 따끈한 술국 한 그릇에 이렇게 황홀해하는 것이 가소로웠다. 바지를 내리고 쪼그라든 성기를 꺼내 변기를 향했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오줌이 잘 나오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 담배를 연거푸 빨았다. 순간 20여 년 전 여편네지만 얼굴이라도 봐야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술기운인가. 죽기 전 무슨 말인가 해야 할 것 같았다. 무슨 말? 없었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얼굴도 안 보고 말도 붙여보지 못하고 그냥 나가면, 죽어버리면 저승에 가서도 후회될 것 같았다. 근데 어떻게 말을 붙여? 혹 나를 보자마자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지는 않을까. 20여 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춘식은 한 손은 쪼그라든 성기를 잡고 한 손으로 담배를 든 채 생각했다. 담배를 한 대 다 피울 동안 오줌은 나올 기미가 없었다. 춘식은 피우던 담배를 변기에 던졌다. 픽, 소리가 나더니 담배는 불빛을 잃고 오줌에 젖어갔다. 성기를 잡은 손으로 담배를 꺼내니 성기는 팬티 속으로 들어갔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다시 성기를 꺼내 변기를 향해 정조준했다. 힘을 주었지만 여전히 오줌은 나올 생각을 안 했다. 담배연기를 길게 들이마셨다가 길게 내뿜었다. 남편이란 작자가 없으면 주방으로 가면 될 텐데 남편이 있으니 그렇게는 못할 것 같았다. 남편에게 모든 것을 털어놔? 내가 저 년의 옛 남편이었다고. 죽을 때가 되었는지 나도 모르게 왔다고. 그렇다고 보고 싶어서 온 건 아니라고. 나도 모르게 왔다고. 몸은 흔들거렸고 중심을 잡으며 연거푸 담배를 빨았다. 허! 생각을 할수록 자신의 행동이 어이가 없었다. 필터까지 타 들어온 담배를 변기에 던졌다. 다시 한 번 아랫도리에 힘을 주었지만 오줌은 나올 기미가 없었다. 성기를 안으로 집어넣고 팬티와 바지를 올렸다. 변기에 침을 찍, 뱉었다. 화장실에서 나온 춘식은 주방으로 눈길을 주지 않은 채 곧장 자리로 왔다. 사내는 왜이리 늦었느냐는 듯 걱정스런 표정으로 춘식을 바라보았다. “자, 한잔 하시오.” 춘식은 사내의 잔에 술을 따랐다. 사내 또한 춘식에게서 소주병을 빼앗아 잔에 두 손으로 술을 따랐다. “건배!” 춘식은 사내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쳤고 사내 또한 건배, 를 외쳤다. “근데 평소에도 이렇게 손님이 없는 거요?” 춘식은 빈 잔을 내려놓으며 물었고 사내는 춘식의 잔에 술을 따랐다. “있을 땐 있고 없을 땐 통 없는데 요즘엔 더 그러네요. 경기가 나쁘다카더니만.” “그래도 이렇게 손님이 없어서야.” 춘식은 자신이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의도와 다르게 말은 거미줄처럼 술술 풀려나왔다. “그래도 밥 먹고 사는 것만 해도 얼마입니까. 마누라가 몸이 좀 안 좋아서 그렇지.” 사내는 술잔을 입을 가져가 반만 마시곤 잔을 내려놓았다. “국을 좀 데워와야겠네요.” 사내는 취기가 오르는지 약간 비틀거렸다. 춘식은 두 손으로 뚝배기를 들고 가는 사내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사내는 다리를 많이 절었다. 그동안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처음엔 술에 취해서 그런가 싶었지만 자세히 보니 오른쪽으로 다리를 많이 절었다. 바보 같은 년. 제대로 고르든지. 춘식은 자신도 모르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술을 입에 털어넣었다. 어떻게 해서 저런 놈을 만났을까. 나하고 헤어지고 곧장 만났을까. 행복하기는 하는 걸까. 아까 아프다고 그랬는데. 춘식은 주방으로 곁눈길을 했지만 여편네는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숙였다. 취기가 올랐다. 오늘만은 술을 마시지 않으려 했는데. 저승길만은 술에 취하지 않고 제대로 가려고 했는데. 따지고 보면 하루라도 술에 취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어떻게 죽게 될까. 아는 동료처럼 뺑소니한테 치여 죽을까. 아니면 술에 취해 길을 가다 쓰러져 그대로 죽을까. 그렇지 길에서 죽는 게 그나마 폼이 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가진 것도 없고 마누라도 자식도 없는데 뭐가 아쉬우랴. 춘식은 고개를 숙인 채 잠깐 졸았다. “이것 좀 드셔 보세요.” 사내의 말에 춘식은 눈을 떴다. 계란찜이 춘식 앞에 놓여 있었다. 순간 입에 침이 고였다. 계란찜은 춘식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여편네와 살 때 한 끼라도 계란찜이 없을 때가 없었다. “드셔보세요. 집사람이 건강이 안 좋아 이것저것 못해서리.” 사내는 또다시 송구스런 표정을 지었다. 춘식은 숟가락으로 계란찜을 떠서 입으로 가져갔다. 역시 그 맛이었다. 매콤하면서도 비릿한 맛. 청량 고추와 파를 총총 썰어 넣은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맵습니까? 나한테 줄 땐 청량고추를 안 넣는데 손님 드실 거라고 넣었나?” 사내는 숟가락으로 떠서 입으로 가져갔다. “앗따 시기 맵네요.” 사내는 입을 오므리고 호호 숨을 토해냈다. 춘식은 그런 사내의 모습에 아랑곳 않고 연거푸 숟가락으로 떠서 먹었다. 목구멍이 뜨거워오면서 얼굴 전체가 화끈거렸다. 그러면서 정신은 명징해졌다. 예전에도 그랬다. 기분이 안 좋은 일이 있을 때 청량고추를 듬뿍 넣어 계란찜을 해 먹으면 얼굴이 땀으로 범벅이 되고 그러고 나면 기분이 개운해졌다. 꼭 그때의 맛이었다. 몇 번 떠먹지 않았는데도 이마에서 땀이 볼로 흘러내렸다. “참, 아까 어디 아프다고 하더니만요.” 춘식은 손등으로 이마와 볼의 땀을 닦으며 주방을 흘깃거렸다. “옛날부터 아프던 것이라. 나이가 들수록 더 심한가봐요.” “어디 다치기라도 했는가요?” 휴지로 코를 풀면서 춘식이 물었다. “허 참, 이거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사내는 술잔을 들어 한 입에 다 털어넣더니 스스로 빈 잔에 술을 따랐다. 춘식은 아무 말도 없이 그런 사내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옛날에 말이요. 그러니까 나를 만나기 전이니까 20년 저쪽 이쪽쯤 될 거 같은데. 어떤 나쁜 놈을 만났는가 봅니다. 남편이란 작자가 자기 마누라를 얼마나 팼는지 지금도 몸이 성한 데가 없다오.” 사내는 또다시 술잔을 들어 단숨에 마셨다. 춘식은 아무 말도 않고 술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그 나쁜 놈이 누구겠는가. 간신히 속으로 자신에게 물었다. “그, 그래서 지금도 몸이 안 좋다는 말인지.” “그때 속병 겉병 다 들었는가 봅니다. 한때는 우울증에 걸려 물에도 뛰어들었고. 왼쪽 팔은 지금도 잘 못 쓰고. 아마도 천벌을 받을 게요, 천벌을.” 그때 춘식의 다리가 덜덜 떨렸다. 긴장하거나 화나는 일이 있으면 다리가 덜덜 떨렸다. 가만히 있으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었다. 이제는 좀 많이 나았나 싶었는데 그 증상이 또 나타났다. 춘식은 고개를 숙이고 떠는 다리를 바라보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기이한 일이었다. 때리는 게 일이었다. 이유라면 회사에서 동료나 상사에게 기분 나쁜 소리를 들었거나 하다못해 퇴근하다 기분 나쁜 일이 일이 있었다거나. 이유는 무한정 많았다. 퇴근하면 우선 여편네를 두들겨패곤 옷을 갈아입었다. 마치 여편네를 때리기 위해 하루를 산 것처럼 말이다. 하얀 방진복을 입고 클린룸에 들어가 꼼짝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부품을 만지노라면 자신이 사람이 아닌 회사의 기계부품인 것처럼 느껴졌다. 주위를 돌아보면 수백 명의 방진복을 입은 사람들이 가만히 서서 손만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정도 적응이 되면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휴식 시간을 알리는 벨소리를 못 들을 때도 있었다. 씨발 닭이 된 기분이야 언젠가 휴게실에서 믹스 커피를 마시며 동료가 말했다. 양계장의 닭들이 꼼짝 않고 알만 낳듯이 자신들도 매일 선 채로 부품을 낳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이 느껴졌다. 그 왜 있잖아. 알도 낳지 못하고 빌빌거리면 주인이 와서 냉큼 집어내 손수레에 싣고 가 개장수한테 팔아버리잖아. 개장수는 산 채로 개집에 던져주고. 우리가 그 꼴이 아닐까. 몇 년째 매일 직원들이 죽어나가니까 휴게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농담반 진담반으로 나눈 얘기였다. 양계장의 닭이 된 느낌. 그러니까 여편네를 두들겨 패는 이유가 하루 종일 말도 없이 서서 부품만 만지다 집에 와서 근질거리는 몸을 푸는 식이었다. 근데 이상한 것은 여편네가 반항을 안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처음엔 반항도 하고 집을 나가기도 했지만 경제적 능력이 없는 여편네가 도망가 보았자 옆 동네 찜질방이었다. 나중엔 아예 반항도 가출도 하지 않았다. 때리면 때리는 대로 눈을 감고 가만히 있었다. 때리고 나서 옷을 갈아입고 주방으로 가면 정갈하게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춘식이 좋아하는 청량고추가 듬뿍 들어간 계란찜이 있었고 씨레기 무침이 있었다. 한 끼도 고기가 없는 날이 없었다. 하다못해 생선토막이라도 올려져 있었다. 다리가 부러지고 갈비뼈가 부러져도 밥상을 차려놓았다. 병원을 갈 때는 잠자리에 들 무렵이었다. 이렇게 미련스런 사람이 다 있나 싶게 팔이 부러졌는데도 그때까지 참았다. 지금 팔을 잘 못쓴다는 게 아마도 그 때의 구타 때문인 것 같았다. 춘식 자신도 자신의 행동을 이해 못해 직장을 옮길까 생각했지만 중졸 학력에 기술도 없는 자신이 갈만 한 데는 없었다. 국내의 최고 기업인 일성기업의 반도체 공장에 들어간 것도 먼 친척의 도움 때문이었다. “왜요? 다리가 안 좋은 가요?” 춘식이 다리를 계속 떨자 사내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보죠.” 춘식은 술잔을 입으로 가져가며 말했다. “직업병 아닌가요? 반도체에서 일하는 사람들 매일 서서 하느라 다리나 허리 안 좋은 사람들 많던데요.” “뭘, 이 정도로.” 춘식이 자신의 잔에 술을 따르려 하자 사내가 재빨리 병을 빼앗아 춘식의 잔에 따랐다. “언제부터 식당을 했소?” 춘식의 말에 사내는 30여 년이 다 되어간다고 했다. “그럼⋯⋯.” 춘식이 주방을 바라보며 말을 하자 사내는 잠시 춘식의 얼굴과 주방을 번갈아 보았다. “아, 저 혼자 하다가. 제 마누라가 암에 걸려 죽는 바람에 혼자 하다가 지금 마누라를 만났지요. 음식 솜씨가 좋아 주방일 맡기다보니 정이 들어서. 허허.” 사내는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한 잔 하슈.” 춘식은 사내의 잔에 술잔을 부딪쳤다.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름 밥 먹고 사는 걸 보니 더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죽을 때 땅을 치며 후회해도 할 수 없었다. 지금 가는 게 그나마 여편네에게 도리인 것 같았다. 만약에 자신에게 도리란 게 있다면 말이다. 다행이라면 자신에게 자식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이를 가졌으나 춘식의 폭행으로 유산이 되었을 때 이혼을 했다. 그 뒤로 춘식은 혼자 살아왔다. “여기 얼마요?” 춘식이 일어서는데 몸이 휘청거렸다. 사내가 팔을 내밀어 춘식의 팔을 잡았다. “괜찮소.” 사내의 말에 춘식은 바지 주머니에서 오만 원을 꺼내 탁자에 놓고 출입문 쪽으로 걸어갔다. 자꾸만 주방 쪽으로 돌아가는 얼굴을 주먹으로 치고 싶은 걸 참으며 겨우 출입문을 열었다. “잔돈 여기 있습니다.” 사내가 뒤따라와 바지 주머니에 잔돈을 넣었다. “뭘, 안 줘도 되는데.” 춘식은 말을 하면서 흘끗 출입문에 붙인 선팅 너머로 눈길을 돌렸다. 보였는가. 주방 쪽에서 희미하게 어른거리던 것이 여편네였나. 갑자기 가슴 중앙이 아려왔다. 언뜻 여편네를 본 듯했기에 그것이면 됐다 싶었다. “조심해서 가시오.” 사내의 말에 춘식은 비틀거리는 몸을 다잡다 어? 하며 식당 쪽을 바라보았다. “이게 똑바로 서 있어야 손님이 오지.” 춘식은 식당 앞으로 걸어가 각종 메뉴판이 적힌 입간판이 넘어진 것을 똑바로 세웠다. “아이고, 제가 하면 되는데요.” 사내는 춘식에게 다가오더니 손바닥을 비비며 말했다. “하, 됐네. 이제 손님들 많이 올 거요.” 춘식은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입을 벌려 우물거리다 한 마디 했다. “그 머시야, 행, 행복하시오.” 뒤돌아섰다. 천 길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느낌이 와락 몰려 왔다. 다음날 주인 사내는 텔레비전을 보다 어? 어? 하며 신음소리를 냈다. 주방에 있던 여자가 홀로 걸어 나와 텔레비전 앞으로 갔다. 텔레비전 화면에는 야산의 한 산소에 있는 하얀 천을 비춰주고 있었다. 화면 오른쪽 아래에는 원 안에 흰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늙은이의 얼굴이 자리 잡고 있었다. 여자의 몸이 움찔거렸다. 오늘 저녁 일성 반도체의 이천오백일흔두 번째 사망자가 발견되었습니다. 오십 오세 지모씨로 자신의 어머니 산소 앞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저, 저 양반 어제 저녁 그 손님 아냐?” 사내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고 여자는 잠자코 텔레비전에 눈길을 박고 있었다. 사인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나 옆에 소주 한 병이 있고 외상이 없는 것으로 보아 술에 취해 잠들었다가 저체온증으로 사망한 것으로 경찰은 추정하고 있으며 곧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부검을 의뢰해 정확한 사인을 밝힐 예정이라고 합니다. 참고로 지모씨가 사망한 산소는 친어머니가 묻힌 곳으로 지모씨가 어릴 때 바람이 나 집을 나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지모씨는 어린 시절 술주정이 심한 아버지와 단 둘이 살며 불우한 생활을 했다고 주변 사람들은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지모씨는 술만 취하면 친어머니를 찾아 죽이겠다고 행패를 부린 것으로도 알려지고 있습니다⋯⋯. “맞지? 당신 못 봤어? 우째 이런 일이.” 사내는 거듭 여자에게 물으며 탄식했고 여자는 말없이 주방으로 걸어갔다. 이날 따라 더욱 심하게 왼쪽 팔이 흔들거렸다. 고창근/경북 상주 출생 소설집『소도(蘇塗)』『아버지의 알리바이』『나는 날마다 칼을 품고 산다』장편소설『누드모델』『존재의 이유』『신윤복, 욕망을 욕망하다』  
515 나는 괜찮은데/손달호 file
편집자
1721 2016-12-01
16. 12월 79호 수필 나는 괜찮은데 씨줄과 날줄로 결어진 피는 그 성질이 끈끈하고 진하다. 천륜이 지중한 것은 피로 맺어진 숭고한 관계에서 저절로 우러나는 본능이기 때문이다. 절대적인 인연이랄 천륜지정엔 어떠한 조건도 개입될 수 없다. 피를 수수(收受)한 사이에서 분출되는 사랑에는 호리의 이해관계도 끼어들 수 없는 강력한 보호막이 있다. 어머니는 치매로 수년 동안 병마에 시달리는데 문밖출입을 거의 못하고 방안에서만 보내니 그 고충인들 오죽할까. 몇 년을 한결같이 병 수발을 드는 아내의 수고며, 아이들의 고충 역시 만만치가 않다. 치매 환자를 둔 가정치고 많은 인내와 이해를 필요로 하지 않은 집은 아마 없을 것이다. 손으로 방바닥을 치며 방안을 빙빙 돌아다니는 것이 어머니의 치매 증상이다. 주무실 때만 빼고 밤낮으로 ‘찰싹’, ‘찰싹’ 온 종일 들리는 손바닥과 방바닥의 마찰음은 가족들의 귀에 적잖이 거슬림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자체가 병이니 어쩔 것인가. 내심 나도 듣기 거북하지만 추호도 내색할 수 없음은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가장인 나는 식구들의 불평이 안 나오도록 쓰다듬기도 하고 아이들에게는 적절하게 교육도 시킨다. 특히 아내의 귀를 누그러뜨리는 데는 무척 신경을 쓴다. 어쩌다 아이들이 불평이라도 할라치면 엄중히 꾸중한다. 아내도 살림에만 충실히 열중해온 전업 주부라면 지금쯤은 음식 한 접실 들고 이웃집 문을 자신 있게 두드릴 수 있을만한 연력이다. 그러나 화실을 하고 있는 아내의 요리 솜씬 좀 딸리는 편이다. 어느 일요일 저녁 때로 기억된다. 이 날은 아내가 요리책까지 펴놓고 이것저것 뒤적거리며 요리할 종목을 찾고 있었다. 그 옆에 나는 팔베개 한 채로 누워 신문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요리 책에 눈길을 쏟고 있는 아내의 모습을 유심히 바라봤다. 몸과 마음이 늘 그림 속에 있다 보니 아직 얼굴이 천진해 보였다. 내 마음 귀퉁이에 지금도 사랑스런 구석이 남아 있음이다. 엄지손톱에 덜 지워진 물감 자국은 하는 일이 뭔지를 금방 알게 해 준다. 방 한 켠에는 초등학교 4학년인 둘째 녀석이 학원에서 배운 한자 쓰기 연습 중이다. 나는 아내가 식구들의 식단을 위해 열중하는 얼굴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해 “당신 왜 그리 못생겼쑤?” 하고 너스레를 떨고는 겸연쩍어 누운 채로 아내의 무릎을 발로 슬쩍 건드렸다. 그러자 아내의 반응이 있기 전에 쓰던 한문을 지우개로 지우던 둘째 녀석이 “뭐라, 나는 괜찮은데” 하고 얼른 되받았다. 걸림 없이 금방 튀어나온 이 말을 한, 녀석의 까만 눈동자가 나를 빤히 응시했다. ‘나는 괜찮은데’ 하기야 저를 낳아준 제 어민데 잘생기고 못생긴 것이 무슨 상관있으랴. 내가 다니는 테니스장에는 삽사리와 고양이가 있다. 고양이는 살이 통통하게 쪄서 ‘살진이’라고 불렀는데 아직 어리지만 꾀도 있는 편이다. 삽사리에겐 두 마리의 새끼가 있으며, 그 이름은 둔치와 둘리다. 둔치는 살이 찐데다 몸이 둔해서 ‘둔치’라고 부르지만 곰살갑고 영리한 데도 있다. 둔치처럼 몸이 둔하지 않은 둘리는 내가 산을 내려오면 주차장까지 따라와서 꼬리를 흔들며 배웅해 준다. 호젓한 산 속이라서 고양이와 개들은 한 식구처럼 지낸다. 살진인 가끔 약삭빠르게 굴다가 둘리 형제로부터 따돌릴 때도 있다. 둘리와 살진이, 둔치는 만나기만 하면 서로 핥고 뒹굴고 야단스럽게 장난이다. 살이 통통한 둔치는 살진이에게 잘 덤벼들지만 뒤가 무거워 제풀에 넘어지곤 하는데 이럴 때 삽사리는 뒤에서 점잖게 구경을 한다. 둔치가 갈개 옆으로 가더니 다리를 살짝 벌리고 뒤를 낮춘다. 오줌을 누다가 둔한 것이 힘을 너무 준 탓인지 도랑으로 조르르 미끄러져 아랫도리가 축축하게 적셔졌다. 둔치의 털에 묻은 물기가 살진이 몸에 닿자 고양이인 살진이는 얼굴을 찡그리며 구석으로 얼른 피했다. 그리고는 옹그리고 앉아 둔치를 째려보는 것이 자신을 방어하고자 하는 경계 심리가 발동했기 때문인가 보다. 형제 개들은 퀴퀴한 하수구 냄새도 아랑곳하지 않고 얼굴에 입 맞추고 서로의 앞발을 들어 올리며 연해 장난이다. 뒤에서는 어미 삽사리가 둔치의 꼬리를 이따금 핥고 있었다. 공연히 속만 드러낸 살진인 심술이 났는지 뾰로통해져 있다. 어미 삽사리와 둘리는 이구동성으로 “나는 괜찮은데” “나도 괜찮은데” 하는 것 같다. 한집에 살아도 피는 역시 물보다 진한 것, 고양이와 개는 물 위의 기름이었다. 직장에서 귀가했더니 어머니는 여전히 방바닥을 치고 계셨다. 오늘은 뭔가 마음이 더 불편하신 모양이다. ‘찰싹’하는 소리가 유난히 세차고 날카롭게 들렸다. 내가 듣기에도 평소보다 좀 더한 것 같았다. “여보, 당신은 저 소리가 싫지 않나요?” 내 표정에서도 그런 기색이 보였던지, 아내는 내 얼굴에 눈길을 멈추며 다음에 나올 내 말을 기다렸다. 난 생각할 것도 없이 아들이 말한 대로 “나는 괜찮은데.” 해 놓고는 참 그 자리에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금 아내가 묻는 것에 대한 대답으로는 이보다 더한 명답이 어디 있겠는가! 천륜의 정은 무조건적이고 본능적이며, 거룩한 애정임에 틀림없다. 교원문학상(2011.1.1) 수필집《소쇄원》 포항이동중학교 교사  
514 낮달과 침묵의 11월/김인기 file
편집자
1878 2016-11-01
16.11월 78호 수필 낮달과 침묵의 11월 바람이나 돌덩이도 이즈음이면 묵상에 잠긴다. 낮달이 걸린 나뭇가지나 엽차가 조금 담긴 찻잔이라면 또 어떨까. 이것이 내가 느끼는 11월의 이미지이다. 돌이켜 보면 나는 주로 이 달에 감기에 걸려 이불을 뒤집어썼다. 곁에는 누군가의 손길이 있었고, 가끔은 외로이 앓기도 했다. 이제는 단풍마저 빛이 바래서 이런가. 누가 서럽다며 과음을 해도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면서 나는 많은 것들을 잊는다. 얼마 전에 처방전을 들고 약국에 간 적이 있다. 이십대 처녀로 보이는 약사가 내게 약의 복용법을 하나하나 설명했다. “요건 식전에 드시고요, 이건 식후에 드세요…….” 기침이 나서 조금 전에 병원에 다녀온 터였다. 그런데도 약사의 지시에 잘 따라야 하는 내가 정작 중요한 건 다 잊고 속으로는 이랬다. ‘거참, 야무진 처녀구나!’ 하마터면 내가 약사한테 엉뚱한 질문을 할 뻔 했다. ‘처자는 올해 나이가…….' 이러다가 문득 깨달았다. ‘이게 바로 예전 어르신들 정서로구나!’ 그랬다. 그 시절에 나는 이 분들의 언행에 아연실색했다. 올해 나이가 몇 살인지, 양친은 다 계시는지, 안항은 또 어떻게 되는지를 왜 묻나? 그런 사생활은 알아서 뭘 하자는 걸까? 이내 다 잊어버릴 그것들을 어른들이 감탄까지 하면서 묻고 또 물었다. 그래서 낯선 젊은이의 성씨는 물론 관향마저 캐묻고는 돌아서서 나를 보며 아까 그가 당신에게 뭘 어떻게 하라고 하더냐 했다. ‘이러던 분들이 이제는 다 이승을 떠났구나.’ 너도 나도 늙는다. 이러다가 다 사라진다. 이건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내가 벌써 이 나이에 그 어르신들의 태도를 닮을 건 없잖아. 더더구나 시절이 요즘은 그때와 달라서 나이가 곧바로 존엄으로 이어지지도 않는다. 아내도 곁에서 내게 핀잔을 줬다. 그럴 때도 아니면서 영감님 행세는 그만 삼가시라! 지당한 말씀이다. 몸보다 마음이 먼저 늙는 건 나도 싫다. 그럴 이유도 없다. 따지고 보면 과거 그 어르신들도 훌륭하지는 못했다. 저 젊은이가 뭘 고민하나 궁금해서 한 질문은 아니었으니까. 그 질문의 바탕이 그 어른들의 완고한 관습에 맞춰졌다. 그래서 그 관심사도 그렇게 된 것이다. 하기야 사회변동이 미미하다면 그래도 좋다. 그 문답 자체가 우리들 모두의 현재이며 미래이니까. 사람들한테는 종종 경험도 독이 된다. 과거 내게 합당했던 것들이 현재 남들한테 통하지 않는다. 이걸 인정하기 어렵다. 성공이 도리어 눈을 멀게 한다. 이게 장삼이사들의 항다반사이다. 이러니까 질문도 바로 하기 어렵다. 당장 고정관념이 장벽인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누가 내게 이렇게 묻는다면, 나는 우선 덤덤히 이 늦가을의 풍정을 알려줄 것이다. 망치나 끌을 들고 성화를 부리며 덤비는 자들한테는 일단 찬물이나 한 잔 마시라 권해야지. 사태를 파악하지도 못하고서 뭘 쪼아댈 수는 없지 않으랴. 많은 지식을 빨리 축적하자면 누구라도 촌음을 아끼며 바지런을 떨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혜는 고요한 가운데 자란다. ‘그러면 그 고요는 어디에서 오는가?’ ‘바로 단순성에서 온다.’ 11월이면 활엽수들이 옷을 다 벗는다. 사람들도 뭔가를 털어내려고 한다. 또 마땅히 그래야 한다. 11월은 공기마저 다르다. 3월이나 4월 또는 7월이나 8월을 상기해 보라. 아무래도 11월은 바람마저도 소슬하다. 이때 듣는 음악이나 읽는 글마저도 깊은 슬픔이 묻어나는데, 이건 한때의 열정과 사랑이 남긴 잔상이기도 하다. 나는 문득 궁금하다. ‘인생에도 이런 가을이 있어서 사람들이 자꾸 낯선 이들한테 엉뚱한 소리를 하려는 걸까?’ 그렇다면 나도 자신을 진작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이렇게 자신을 가만히 돌아보는 날들이 있어야 그나마 주책바가지는 면할 게 아니냐 싶기도 하다. 이리하여 이즈음에 나는 누구한테라도 이렇게 말한다. “웬만하면…….” 그래, 웬만하면 설레발을 치지 말고 그냥 그대로 지내시라. 그러면 아주 소중하나 그간 지나친 것들이 보일 것이다. 가족들과 나뭇가지 사이에 걸린 낮달을 보는 게 그리 어렵지는 않다. 근래에는 시내 구석구석에 커피전문점이 생겼다. 여기에서 그간 격조했던 몇몇 사람들을 만나 생소한 이름의 커피라도 한 잔 마시면 어떨까. 말이야 하지 않아도 좋다. 경상북도 영천 출생(1962). 《월간에세이》로 등단(1991) 수필집『함께 가는 우리들』(1999),『참 좋은 날』(2006). 대구경북작가회의, 대구수필가협회 회원. 전자우편: gagozigo@hanmail.net  
513 누명 외1편/김은령 file
편집자
2143 2016-10-31
16.11월 78호 시 누명 무슨 말을 할려고? 채독든 손가락 사이사이의 가려움을 촛농으로 눌러 죽인 밤이 있었다고 법당 안 마룻짱에 숨은 무늬를 죽으라, 죽으라, 마른걸레질로 살려내던 날들이었다고 겨울밤, 쩡,쩡,쩡 남장지 제 몸 깨는 소리 하현달 싸늘하게 와서 문살에 기대 엿만 보고 가는 소리 붕긋하게 젖가슴 커지는 소리 두고 온 그리움 부스럭 부스럭 몸 비트는 소리 소리, 들에 눌려 관절마다 물주머니 하나씩 달았었다고 병명에도 없는 '동물성 단백질 결핍'에 목덜미 잡혀 절뚝이며 내려 올 수밖에 없었다고 하여, 지금 너를 가둔 감옥 한 채의 비밀이 다 그것들의 음모였었다고, 그렇다고? 저것 봐라, 파초! 남국의 햇빛과 바람과 바다와 모래의 결핍을 몸속 깊이 눌러 죽이고 갓 스물의 사미니 하나를 기억하는 남장마을 그 흰 길을 꾸역꾸역 삼키며 버티는 저 푸른 오기 네가 버린 남장사 관음선원 절집 한 채를 통째로 삼키고도 끄떡없는 저 이국종의 푸른 독기를 파초는 알고 있다! 어디다 대고 감히, 지금에 와서 누구에게? 무늬 도배를 하면서 문설주 옆 꺾어진 부분에 사방연속무늬의 귀를 맞추다가 잔뜩 풀먹어 처진 벽지를 떼었다 붙였다가를 몇 번이고 반복하다가 문득, 이방 너머 세상의 벽, 그 무늬 궁금한거라 하여, 슬핏 들여다 본 그곳 현란하네 색 확 두드러지기 상하 좌우 무시하고 뒤섞이기 돌출되기, 또는 함몰되기 자기의 무늬만을 고집하는 수천만, 수억의 내가 그리고 네가 잔뜩 풀 먹힌 채로 악착같이 달라붙고 있는 벽 잘 꾸며진 하나의 방을 만들려면 벽지의 무늬부터 맞추어야 한다는 거 각진 부분에선 무늬의 반을 잘라낼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인데 저 벽, 저 완벽한 치졸미를 이루고 있는 세상의 벽 무늬들 속 어디 끼여 있을 나의 무늬는 알기는 할랑가 몰라 경북 고령생 1998년 『불교문예』등단 시집으로『통조림』,『차경』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