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봄날의 기억

 

 

 

심장이 쿵쾅대는 낯선 자본의 한복판

길게 늘어지는 그림자 끝으로

성당의 종탑이 굳건하다

 

잘 차려진 돌계단을 오르며 보았던

이식된 봄날의 평화로움

노란 간절함의 대신으로, 간혹

세월을 구걸하는 걸인의 눈빛이 멍하다

 

여린 꽃들이 매몰차게 수장된

한사코 눈 뗄 수 없었던 충혈된 그날

바람이 삼백 예순 날과 술래를 잡았지만

이미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연민이 어둠을 재촉한다

 

신을 향해 제 기도를 올리는

거룩한 이들의 눈앞으로 펼쳐진

목발과 낡은 종이박스의 실루엣, 혹은

호주머니 속으로만 만지작거려지는

몇 푼의 양심이 불편하다

 

유난히 뾰족한 첨탑 위로

오늘도 스스로 생을 내건

십자가의 잔인한 하루가

오롯한 주홍글씨로 박힌다

 

곧 거행될 미사의 깊은 침묵

초대받아야 할 당신들이 문밖에서

심장을 멈춘 채 수런거린다

 

 

 

 

삼성관 졸업기

 

 

 

짜장면이란 이름을 다시 되찾던 날

중국집 테이블에 앉아

철 지난 드라마를 젓가락으로 훔칩니다

새로 산 넥타이를 유년의 끝자락으로 젖히고

후루룩거리는 소리에 맞춰

화면엔 어느 초등학교의 졸업식 풍경이

몇 가락의 면처럼 펼쳐집니다

먼지 풀풀 날리는 운동장은

먹을 것 없는 동네를 향해 꿈 많은 소년을

대처로 내 보내었고

마악 단무지를 노랗게 씹는 동안

벌써 자란 한 사내가 나타나

다음 편 예고를 견입합니다

따뜻한 엽차를 마시며

짜장이란 말을 다시 굴려보다가

그 인물이 매번 졸업 때마다 먹었을

짬뽕과 볶음밥이 메뉴판에 있다는 것을

문득 차례대로 발견했습니다

목안엔 제법 분필가루가 쌓여 답답했지만

어머니 손에 이끌려 먹어 본 그 불맛은

영원히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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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요아킴

 

1969년 경남 마산 출생이며, 2003년《시의나라》와 2010년《문학청춘》신인상으로 등단하였다. 시집으로 『가야산 호랑이』『어느 시낭송』『왼손잡이 투수』『행복한 목욕탕』과 산문집 『야구, 21개의 생을 말하다』가 있다. 청소년 문예지《푸른글터》편집주간이며, 한국작가회의와 부산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부산 경원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