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별하기 좋은 무렵의 

 

 

제리안 

 

 

 

 

빙설로 덮인 고산 지대에서 

마젤란 해협까지 뿌리를 내린다는 

선인장과 친해지려면 

물기와 결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섭씨 40도의 눈빛으로 

북위 56도에서 남위 54도의 간극을 넘는 동안 

지상에 떨어지는 물방울로 목을 축이며 

금이 오르는 표피 안에서 혀를 깨물었을 

그 시간들을 나는 모른다

다만, 모래 바람처럼 몇 번쯤 일어났을 

외로움에 관해서라면 할 말이 있다

물기와 결별해 본 적 없는 나의 뿌리는 

심해의 방향으로만 자란다

하여, 이따금 해초처럼 흔들리고 

베개는 밤마다 습기를 머금는다

비가 오면 사막도 울음을 터뜨린다지

우기는 물기와 결별하기 좋은 무렵이다

눈물을 뿌리째 쏟아내고 나면 

내 인생에도 건기가 찾아올까

수척한 얼굴로 뿌리를 움켜쥔 사람에겐 

물 한 모금이면 충분하다

자, 그럼 물기와 결별한 이후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라일락 나무가 있던 집 

 

제리안 

 

 

 

 

거기, 라일락 나무가 없었더라면 

미묘한 각도로 기울어지며 봄마다

꽃내음을 조금씩 흘려보내지 않았다면 

 

나는 그 시간들을 무어라 명명(命名)했을까 

 

담벼락 밑에서 몰래 담배를 피우거나, 

엄마 지갑에서 천 원짜리 몇 장을 빼내거나 

월담을 하다 복숭아뼈에 툭, 금이 가거나 

빨간 테이프를 보기 위해 일몰에 눈 감아버렸던 

그런 날들을 유년이라 불러도 좋은 건지 

 

작은 꽃이 모여 하나의 이름을 갖게 된 

유약한 공동체를 떠올리면 

분홍, 보라 이런 빛깔에서 퍼져 나오는 

향기의 정체를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아 

언제였더라, 어룽어룽 흔들리던 

라일락 나무가 내게 가르쳐 준 기술이 있다면 

유년을 유니언이라 읽을 수 있게 된 일 

혼자이고 싶다가 혼자이기 싫다가 

그 중간 어디쯤부터 환해지는 

 

저기, 라일락 나무 좀 봐!

 

 

 

 

 

메일주소: pinkbiru@naver.com / 

 

약력 : 2006 문학바탕 신인문학상 

    

          2010 평론가가 뽑은 100대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