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계들판


 

 

 벼들이 해가 지는 쪽으로 일제히 눈을 맞춘다          

 고개를 숙이고 숙여서 자신을 바닥의 눈금 쪽에다 눕힌다    

 수만 개의 삼베두건이 무한 경배로 일렁이는 시간

 

 살아 있는 몸들은 다 자란 후에는 어디로 가는가

 누군가를 베어 먹은 피 묻은 입조차 막판에는 또 어디로 가는가

 

 지나온 몸의 시간을 묵주처럼 한 알씩 복기하는 자

 혹은 최후를 수긍할 수 없어서 고개를 처든 자

 기어코 자신을 옭아맨 결가부좌를 끝까지 풀지 않는 저 한 톨의 외로움까지!

 

 벼들이 해가 뜨는 쪽으로 서서히 입을 맞춘다

 고개를 숙이고 숙여서 마지막 발바닥에도 조금씩 물기를 뺀다

 

 멀리서 전조등을 켠 콤바인이 어둠의 새벽을 꾹꾹 누르며 천천히 바퀴를 굴린다

 

 

 

 

 

 

 

 앙코르와트의 관음보살이 야자나무 상공에서 입술을 다복이 물고 구름웃음 삼매경이다.

 

 크메르인 소녀가 마른 뼈를 흔들며 원 달러! 원 달러! 먹지 같은 손바닥을 펴 보인다. 바닥이 생활밑천인 그 애의 흑단 눈망울이 내 주머니 속의 원 달러를 불경佛經인양 간절하게 읊고 있다. 두 손을 모은 저 애절함이 에서 불로 개종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가이드에게 물어보지 못했다. 고무나무에서 생고무 타는 냄새가 익어가는 저녁, 구부러진 뒷발 하나가 건기의 붉은 흙먼지 속을 파리처럼 날아서 또 다른 에 옮겨 붙는다.

 

 

 

 

 

박승민 경북 영주출생. 2007년 『내일을 여는 작가』로 작품 활동. 시집으로 『지붕의 등뼈』 『슬픔을 말리다』가 있음. 2<박영근작품상> 19<가톨릭문학상신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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