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문을 닫았다

폐업 신고가 되지 않는다

설핏 얼룩이 다녀간 공장 내부에선 아직

수명이 다하지 않은 기계 부품들이 기척을 내며

햇살의 그림자가 놓일 창틀의 오후를 필요로 한다

조금 열린 창 너머로 적당한 먼지를 품은 햇볕들은

여전히 제집처럼 공장 안을 들락거린다

쉰 소리를 내며,

신음소리를 삼키며

근근히 가동되는 낡은 기계들의 엄살이  

공장 문에 기대어 농성 중이다

뜨거운 물을 틀어본다,

흘려보내 본다,

흐르는 물소리가 희미한 기계 작동음들과 뒤섞이며

조금씩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한다

제 흔적만큼은 기억해 달라고 아니, 기억해야만 한다고

온갖 회로와 통로를 통해 저마다

육성과 주파수를 나누어 보낸다

문을 닫아도 폐업처리가 되지 않는 공장들의

낡아가는 벽돌과

연기가 끊어진 굴뚝과

쓸데없이 예민해지는 안테나는

공장 내부를 지키는 명분이다

 

숭고한 그늘 한켠이 천천히 태어나는 오후 네 시

해 넘어가는 풍광을 배경으로  또 다른 하나의

문이 열린다

낯설지 않는 문이 열린다






결혼, 매혹의 사기를 하다

 

 

 전 생애가 거짓인 나는 오늘도 해를 품는다. 달려 나오는 풍경사이로 몸을 숨기고 아그배나무 꽃술에서 열리는 만삭의 해가 지길 기다린다. 기다림 너머에 우뚝 서 있는 어둠을 눈뭉치처럼 뭉쳐 가장 우아하게 앉아있는 고양이 목에 매단다. 윤기 나는 고양이의 털끝이 밀린 기지개를 털어낸다. 키스가 달콤한 시간은 사랑하는 연인의 어깨를 넘어 목덜미를 넘어 목 넘김이 상쾌한 흑맥주 거품 같은 어둠의 결을 매만진다. 눈을 감고 나는 거짓의 실타래를 풀어 당신의 목에, 팔에, 다리에, 손가락에 깍지처럼 어둠을 건다. 허밍처럼 눈이 감기고 호객행위가 당당한 십이월 짧은 오후가 지상에 방치된다. 전 생애가 사기인 나는 어디서나 시작이고 끝이다. 푸석한 어둠에 풀어지는 농담이다. 틀어지는 반전이다. 해가 진 거리를 너덜거리는 구두 밑창에 구겨 넣고 걷는다. 고양이가 목젖을 ㅂ자처럼 떨며 운다. 온통 ㅂ자로 둔갑한 어둠으로 퍼져 나가는 고양이 울음소리

 한 생애를 살아온 내게 해는 떠오르지 않았고 어둠은 뭉쳐지지 않았다. 고양이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고 담을 뛰어 넘었고 키스는 내게 건너오기 전에 사라졌다. 팔꿈치의 통증이 온몸의 혈관을 두드려 어디에도 있지 않은 나를 증명한다. 어디에도 없는 당신의 환상을 찾아 헤매고 오지 않을 기다림을 기꺼이 기다린다. 짤랑짤랑 소리 나는 어둠을 손바닥 안에 가두고 내일을 흔든다. 전 생애가 거짓이고 사기인 나는 오늘 하루도 부드러운 무명천으로 광기 돋는 해를 닦는다. 어둠을 닦는다. 빠알갛게 접힌다 나는,

 

하늘 한가득 거짓별이 솟는다.

나는 링 없는 코너에 던져진다.

오늘은 어제다.



 

전북 남원 출생.  91년 시집 『다시 꽃으로 태어나는 너에게』로 작품활동 시작

작품집으로 『신림동 연가』 『아름다운 비밀』 『굿바이, 자화상』외 다수의 공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