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신

 

이 윤 길

 

 

 

1

폭우가 태평양 전역을 휩쓸고 있다. 비는 며칠째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선회창을 두드리는 빗방울이 굵었다. 정우는 바람과 파도가 엇섞여 만들어 내는 소용돌이의 중심에 있다. 바다는 한낮인데도 하늘과 수평선이 맞닿아 컴컴했다. 어둠은 정우의 항해와는 상관이 없다는 듯 영원의 끝처럼 회색이다. 적도에서 발생한 태풍 탓이다.

-끙.

정우는 낮게 신음소리를 흘렸다. 15노트로 북상했던 속력이 5노트로 떨어졌다. 기압이 988헥토파스칼로 낮아지고 있었다. 태풍은 세를 불리기 위해서 정체하고 있다. 태풍의 이동이 시작되기 전에 안전한 피항지로 가야했다. 이따금씩 어둠을 뚫고 크고 날카로운 섬광이 뱃머리를 강타했다. 곧이어 고막을 찢는 천둥소리도 정우의 귓바퀴를 뚫고 지나갔다. 대기의 파동으로 선체가 부르르 떨렸다. 정우는 몰려오는 두려움을 지우듯 두툼한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묵직하던 어깨가 더욱 무겁다.

정우의 황천항해에 대한 경험은 풍부했다. 게다가 태풍이 움직이는 진로예측에도 뛰어났지만 이번만큼은 예상을 벗어났다. 피항 계획을 빨리 수정해야 했다. 본래 계획이라면 피항지는 쿠릴열도에 속한 작은 섬 구나시리다. 그러나 태풍이 발달을 계속하면 위험반원에 들어갈 수 있다. 파도와 바람을 막아줄 해안지형이 든든하지 못한 곳에서는 배와 선원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었다. 정우는 혼슈우 북단 시리야사키 항을 새로운 피항지로 변경했다.

-220도.

조타륜을 잡고 있던 2항사가 항로수정을 알렸다. 배는 선미로부터 달려드는 파도에 부딪치며 심하게 좌우로 기울었다. 파도의 방향이 변침으로 뱃머리가 선외하자 바뀌었던 까닭이다. 미처 리깅하지 못한 브리지 기물들이 이리저리 나뒹굴며 큰 소리를 냈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선체에 위험한 상황이 아니라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면 그만이다. 흔들리며 살아가는 것은 뱃사람인 정우가 짊어진 삶의 굴레였다.

 

태풍이 이동할 것이다. 정우는 시간이 촉박하다는 조바심에 선속을 좀 더 높였다. 파도는 마치 날개를 펴고 둥지를 표표히 날아오르는 독수리처럼 몰려오고 몰려갔다. 2항사는 힐끔힐끔 곁눈질로 얼씬거리는 파도를 훔쳐보았다. 브리지 외벽을 흩고 가는 파도의 세력이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파도는 뱃전을 넘어와 미처 배수가 안 된 바닷물과 엇섞여 갑판을 물바다로 몰아갔다. 정우는 파도에 쫓기며 눈앞에서 하얗게 끓어오르는 바다를 망연히 바라보았다. 그때 쿵쿵 거리는 발자국소리가 브리지 계단에서 들렸다

-예상도가 나왔습니다.

어둠 속에서 창백하게 질린 얼굴이 나타났다.

-끔찍하군요.

통신장은 기상예상도를 건네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마침내 태풍이 10노트 속력으로 이동하며 북상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980헥토파스칼까지 발달한 중심파고는 12미터가 넘는다. A급으로 태풍이 커진 까닭이다. 정우의 뒷머리가 지근거렸다. 피항지를 변경한 탓에 12시간은 달려야했다. 닻을 던질 피항지는 멀고 시간은 없다. 속력과 진행방향을 다시 계산해 봐도 세력권에서 벗어나긴 틀렸다. 적어도 서너 시간은 족히 태풍의 광기 속에 휘둘려야 할 것이다. 시퍼런 물덩이에서 아우성치는 선원들 모습이 떠올랐다. 체증에 걸린 사람처럼 가슴이 답답했다. 태풍 밖의 세상에는 만선과 더불어 무사하게 돌아오길 기다리는 가족이 있었다. 피항항해는 벌써부터 끔찍했다. 정우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고래의 부상은 핵잠수함처럼 웅장하고 거대했다. 시커먼 물체는 파도를 뚫고 하늘을 향해 크게 치솟았다. 정우는 떠다니는 원목이거나 황천항해로 컨테이너선에서 떨어뜨린 컨테이너 박스인 줄 알았다. 근데 크기부터 차이가 났다. 컨테이너 박스와는 비교가 안 될 덩치다. 곧이어 에어 혼 같이 푸 하는 굉음이 들려왔다. 파도가 뱃전을 두들기는 소리와 뚜렷하게 구별이 되는 소리다. 분기음이었다. 고래였다.

-고래입니다.

황천의 날씨를 홀로 헤치는 선장이다. 그런 선장의 외로움을 알기에 브리지에서 얼쩡거렸던 통신장이였다.

-고래….

고래가 배를 따라오고 있었다. 고래가 배를 따라오다니. 지금은 황천의 바다가 아닌가. 바다에서 일생을 보낸 고래지만 사납고 거친 파도를 헤쳐가기란 힘겨울 거였다. 심해로 들어가 은신처에 몸을 숨기면 적막뿐인데 파도와 힘을 여투듯 배 주변을 벗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전속으로 항진하는 배와 바짝 붙어 치솟는가 싶더니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유영하는 고래는 손에 잡힐 듯 가깝다. 경계심이란 찾아 볼 수가 없다. 누군가가 부추기라도 하면 꼬리지느러미라도 만질 수도 있는 거리다. 고래는 파도가 몰려오면 몸을 숨겼다가 힘찬 분기음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당당한 유영모습을 지켜보던 정우는 황천이란 사실마저 잃어버렸다. 파도가 다시 몰려왔다. 고래가 잠수하기 위해 고개를 내밀었다. 정우와 고래의 눈이 마주쳤다. 찰라이다. 정우는 고래의 그윽한 눈빛에 눈이 부셨다. 그 순간 정우의 가슴은 정체모를 뜨거운 것으로 화끈거렸다.

-아.

피항으로 굳어졌던 정우의 얼굴이 밝아졌다. 정우는 그때서야 깨달았다. 아버지가 지켜주고 있다는 것을. 가슴이 먹먹한 채 몇 분이 흘렀을까? 고래는 시큼한 분기공의 냄새만 남겨 놓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2

 

아버지는 타고난 뱃사람이었다. 더불어 우리나라 마지막 포경선 동해호 선주 겸 포장이었다. 정우의 선조는 반구대 암벽화에 고래를 암각한 선사인일지도 모른다. 일가는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고래 잡는 일에 종사해왔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철들기 전부터 할아버지를 따라 고래를 쫓아 다녔다. 만약 국제포경위원회가 상업포경을 금지하지 않았더라면 지금도 고래의 분기공을 쫓아 바다를 질주하고 있을 것이다.

국제포경위원회의 조약이 발효된 날이었다. 아버지는 묶여있는 동해호를 바라보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구룡포 김 포장 말이야. 자네도 김 포장 알지? 포경허가를 넘기고 택시 사업권을 땄다고 하더군. 자네도 빨리 마음을 바꾸는 게 좋을 것 같네.

해부장 김 씨가 지나가는 말로 아버지에게 말했다.

-이젠 배를 포구에 묶어 둘 수조차 없네. 선박원부도 없어지고 선적항도 사라졌으니까. 국제기구에서 그렇게 하라고 하지 않나. 포기해야 하네.

해부장 김 씨는 아버지와 함께 고래를 쫓았다. 해부장 김 씨 라고 마음이 착잡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현실을 무시할 수 없었다. 국제기구의 의결 사항을 따르는 방침은 정해졌다. 정부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한 푼이라도 더 보상을 받으라는 충고였다.

-내가 태어난 곳이네. 내가 살아온 곳이란 말이네. 내 삶의 터전에서 내 배를 부리겠다는데 보상은 무슨 놈의 보상인가?

아버지 고집은 갓 잡아 해체한 고래의 힘줄보다 질겼다.

-내가 맹세하건데 고래잡이는 끝났네.

해부장 김 씨의 일격이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아버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손까지 부들부들 떨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배를 포기하라는 것은 아버지에게 그만 죽으라는 것과도 같았으니까. 돌아가신지 시간이 꽤 흘렀지만 동해호는 고래를 쫓아 바다로 나가지 못한 채 여전히 장생포 한편에 묶여 세월에 녹슬어 가고 있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도 국제포경회의의 상업포경금지조약은 여전히 유효하다. 고래 해체장이 있던 장생포에서도 오베기를 맛보려면 힘들었다. 고래가 좌초하기를 기다려야했기 때문이다.

-고래가 보고 싶구나.

아버지는 잠꼬대마저 그렇게 투덜거렸다. 아버지는 고래를 쫓지 못하게 되자 눈에 띠게 기력을 잃어갔었다. 그러면서 바다로부터도 멀어졌다. 상업포경금지는 아버지의 현재와 미래를 한 줌의 먼지로 날려버렸다. 아버지에 대한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아버지와 고래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었던 거였다. 고래를 잡아 귀항하던 아버지의 모습은 얼마나 싱싱했던가. 아버지가 얼마나 고래를 기다리시는지. 다시는 활기에 찬 얼굴의 아버지를 볼 수 없어 정우는 가슴이 아팠다. 아버지는 두 번 다시 동해호 포장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다.

상업포경이 금지되기 전 어느 해인가 대왕고래를 포획한 날이다. 장생포에서 작살 맞은 마지막 대왕고래이었으리라. 고래를 잡았다는 소식이 널리 알려졌다. 포구에는 많은 사람들이 들썩거렸다. 장생포라곤 하지만 대왕고래를 직접 볼 기회는 거의 없었다. 대왕고래는 잡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주민들이 모두가 바다에서 포경업에 종사하는 건 아니었다. 기껏해야 흔하게 잡혀온 밍크나 곱세기를 지나가다 보는 게 고래의 전부였다. 모두들 대왕고래란 말에 흥분했다.

 

수평선에서는 징소리부터 들려왔다. 고래잡이배 전통에 따라 고래를 잡았다는 통보였다. 천천히 동해호가 포구로 들어왔다. 노을이 풀어진 선수마스트에는 오방색 만선기가 부드럽게 휘날렸다. 붉게 빛나는 동해호 이물은 당연히 포장인 아버지 차지였다. 동해호 옆구리에 묶어 놓은 대왕고래를 제압하듯 허리에 팔을 걸치고 의기양양하게 미소 짓고 있는 아버지가 그곳에 있었다.

-아버지.

정우는 손나팔을 만들어 아버지를 불렀다. 아버지가 정우를 발견했다. 아버지는 정우를 바라보며 고래의 롭테일링처럼 손을 높이 흔들었다. 그 순간 정우는 동해호 옆구리 묶여 작은 산처럼 보이는 대왕고래보다 아버지가 더 커 보였다. 아버지가 더 대왕고래다워 보였다.

-아버지.

정우는 아버지를 향해 재차 손을 흔들었다. 그러는 한편으로 눈길은 대왕고래로 향했다. 바다의 제왕이라는 대왕고래는 동해호보다 더 크면 컸지 작지는 않았다. 정우는 그 크기에 놀랐다. 꾸경군들은 대왕고래에 대한 경외감에 젖어들며 암벽 밖으로 목을 빼어냈었다. 그리고 물 밖으로 채 나오지도 않은 위압적인 덩치에 그만 질려버렸었다. 대왕고래는 성장이 끝나면 체구는 거의 30미터에 달하고 무게는 200톤에 육박했다. 두말 할 것도 없이 지구상에서 가장 큰 포유류였다.

-와. 와.

감탄으로 가득 찬 탄성이 이곳저곳에서 쏟아졌다. 그러나 당당할 것도 같은 아버지의 이날도 포경인생에서는 아침햇살에 빛나던 윤슬의 일부분일 뿐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바람이 부나 파도가 높으나 고래를 쫓아, 고래잡이로 삶을 시간에 실려 보낸 아버지였으니까. 말하자면 이날이라고 특별할 일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물에 서있던 아버지와 동해호 옆구리에 묶여 있던 대왕고래가 주는 이미지가 같아, 그토록 자연스런 동화는 같은 것끼리의 연대만이 가능한 것이었다. 이 날의 모습은 정우에게 아버지가 대왕고래 같다는 생각으로 떠오르곤 했다.

 

3

 

시투를 하고 보름이 지나갔다. 불황은 계속되었다. 남극해로부터 냉수대인 훔볼트해류의 세력이 강해지는 시기였다. 당연히 이곳을 기점으로 합류하는 남적도해류와 크롬웰해류 그리고 멕시코난류 세력도 강해져야만 했다. 그러나 예상 밖으로 적도에서 발생한 엘니뇨가 세력을 넓히고 있었다. 때문에 훔볼트해류는 북상을 못하고 먹이사슬도 형성되지 않았다. 눈으로 확인되는 난바다곤쟁이마저 적었다.

-선장. 만선만 해줘.

정우는 까야호 항을 출항할 때의 사장이 떠올랐다. 페루 까야오항은 대서양을 무대로 어로활동을 하는 국적선의 전진기지였다. 간절한 바람으로 손을 흔들었던 사장은 퇴직공무원이다. 갈라파고스근해에 서식하는 훔볼트오징어 정보를 입수하고 그 정보로 수산회사를 설립했다. 해양수산부 고위직으로 근무했던 까닭에 시험조사 쿼타는 어렵지 않게 따올 수 있었다. 사장은 첫 선장으로 정우를 선택했다. 정우의 첫 선장 발령이다. 정우 역시 중요한 출어였다. 어획성과에 따라 선장으로서의 생명과 명예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시험조사란 것이 그렇다. 새로운 어장을 발견하는 것이다. 어장을 찾기만 하면 대박이다. 회사는 시험조사한 어장에 관한 독점권을 한동안 인정했다. 그동안 독점한 어장에서 타조업선과 경쟁하지 않고 엄청난 물고기를 잡을 수가 있다. 전재산을 투자한 사장의 미래가 정우의 어깨에 걸려 있었다.

-때가 이른 건 아닐까요?

정우의 눈치를 살피며 통신장이 말을 건넸다. 물고기가 없다고 하지만 한 마리 입질도 없는 선장의 머릿속이 불안과 초조로 복잡해보였다. 통신장으로서는 말 한마디 한 마디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도저히 끊어낼 수 없는 불황이 스며든 바다에 적당히 바람도 불어주고 파도도 쳐서 바닷물을 섞어 주면 좋으련만 날씨마저 좋았다.

-감아라.

정우는 통신장의 말을 귓등으로 흘리면서 마이크를 잡았다. 정우는 선수드럼 앞에서 대기 중인 1항사에게 씨앙카를 감아드릴 것을 지시했다. 어장을 옮겨볼 참이다. 주변에는 병코돌고래라고 부르는 돌고래가 많았다. 훔볼트오징어를 이놈들이 모두 흩트리는 통에 어황이 없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어군탐지기 탐지영역은 표층에서부터 1,000미터다. 정우는 어군탐지기에서 한시라도 벗어날 수 없었다. 정확히 작살을 던지기 위한 방편으로 고래의 숨구멍을 집요하게 노렸던 아버지처럼 절박한 만선의 낚싯줄을 당기려면 집중해야 했다.

정우가 노리는 훔볼트오징어는 체구가 크다. 동장이 2미터를 넘는 놈도 있다. 홀로 유영을 하기도 하지만 무리를 이루어 움직이기도 한다. 훔볼트오징어의 크기라면… 무리를 이뤄 떼로 움직인다면… 어군탐지기가 발견 해 낼 수 있었다.

정우의 눈이 번쩍하고 벌어졌다. 250미터 수심에 깨알 같은 점이 나타났던 것이다. 점은 시간 차이를 두고 다섯 개까지 늘어났다. 정우는 전속으로 달리던 배를 정지했다. 엔진을 정지하자 배는 관성에 따라 바다 위를 부드럽게 미끄러졌다. 정우는 수심을 조정하는 볼륨을 천천히 오른쪽으로 돌렸다. 흐릿하게 보이는 띠가 먼저 나타났다. 주간이라 부상하지 않은 동물성플랑크톤 일 것이다. 그런데 꺼림칙했다. 흐릿한 띠 주면의 점들이 수평으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대부분 두족류들은 수직이동을 한다. 훔볼트오징어라고해서 습관과 본능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을 거였다.

-데드슬로우.

어군탐지기를 바라보고 있던 2항사가 후다닥 텔레그래프 쪽으로 움직였다.

-포트.

2항사가 큰소리로 복창했다. 배는 자연스럽게 좌현으로 선회를 하며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점 기록이 나타난 주변을 더 살펴보기 위해서다. 정우는 뱃머리를 어디로 잡을까 망설였다. 불현듯 남쪽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침로를 남쪽으로 정침했다. 다시 점 기록이 나타났다. 하나 둘, 점을 세어가는 정우의 시선은 어군탐지기로 빨려들어 갈 것 같다. 긴장감으로 팽팽한 브리지엔 뱃전에서 부서져 내리는 파도소리가 고요를 밀어냈다. 정우의 온몸이 점점 바다로 변했다.

 

바다에서 물고기를 찾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사막에서 바늘 찾기랄까. 뱃사람들은 어획의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 어군탐지기라든가 소나 등 최신예 어로장비에 의탁한다. 반면에 오감에도 충실해야했다. 때때로 더 정확하게 곤두선 오감이 물고기를 찾아낼 때도 있었다. 날씨가 좋은 탓에 바다는 잔잔했고 시야는 넓었다. 정우는 어군탐지기에 의지하지만 가끔 해면을 살피는 눈탐도 병영했다. 새 떼를 찾기 위해서다. 새 떼가 날고 있는 바닷물 아래에서는 어장이 만들어질 확률이 높았다. 새가 날고 있는 바닷물 속으로 이뤄진 먹이사슬 때문이다. 새 떼는 먹이사냥을 그런 곳에서 주로 했다.

해면을 살피던 정우의 시야에 뚜렷하게 눈에 띄는 물길이 보였다. 물길은 바다와 바다를 이편과 저편으로 가르며 굽이쳐 수평선을 넘어갔다. 남적도와 남극에서 바삐 흘러온 훔볼트해류와 크롬웰해류가 맞부딪치는 접경지대였다. 흔히 수렴대라고 부르는 물길은 성질 다른 바닷물이 섞이며 수군거리듯 찰랑거렸다. 게다가 무수한 물방울에 햇살이 굴절되어 블루 다이몬드처럼 빛났다. 바람이라도 불어 바다가 거칠면 두 해류가 뒤섞어 구별되기 어렵지만 날씨가 좋은 탓에 발견하기 수월했다. 당연이 많은 바닷새들이 먹이사냥에 열중하고 있었다. 정우는 이곳을 어장으로 택할지 고민했다.

-훔볼트해류가 강해졌나?

라고 정우는 혼자 중얼거렸다. 정우는 다시 배를 정지 시키고 조업준비를 내렸다. 선원들 몸놀림이 빨라졌다. 때를 맞추어 어군탐지기에 나타났던 몇 개의 점들에게 무슨 상황이 생겼는지 흰 잔영을 끌고 수직으로 치솟았다. 흰 잔영은 수면에 가까워지자 한꺼번에 붉은 점으로 변했고 순식간에 어군탐지기에서 없어졌다. 시간차를 두고 흰 잔영마저 사라졌다. 어군탐지기에서 점들이 사라지자 불안한 조짐으로 브리지에는 막막한 적막이 찾아왔다. 그때 갑판으로부터 떠들썩한 환호성이 들렸다.

-고래다.

아버지가 그렇게 쫓고자 했던 고래다. 바다로 나갈 수 없었던 아버지는 슬퍼하고 분노하고 절망했다. 아버지는 하루하루를 강소주로 채워갔다. 정우가 바람이나 쐬자 낚시질을 권해도 거부했다. 아버지의 꿈은 오로지 고래를 향하여 작살을 날리다 죽는 거였다. 그건 아버지가 자신을 바다와 융합하는 방법이었다. 아버지에게는 잊힐 것이 있었고 절대로 잊지 못하는 것이 있었다. 아버지는 그렇게 세상 밖으로 나오길 거부한 채 자괴감 속으로 노년을 흘려보냈다. 포경이 금지되고 정우는 아버지의 세상으로 발길을 들여 놓지 못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정태는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진학을 포기하고 원양어선에 승선했다. 그리고 선장이 되었다.

-고래다.

거듭해서 선원들의 환호성이 들렸다. 검회색 구름이 낮게 깔려 있는 선회창 밖으로 정우는 목을 빼냈다. 동시에 푸 하는 소리와 함께 브리지 곁에서 고래가 숨을 몰아쉬었다. 솟아오른 고래의 물뿜기는 9미터 상공에까지 이르렀다. 잠수하는 고래의 등에는 삿갓조개가 드문드문 붙어 있었다. 고래가 솟구친 파동으로 만들어진 파도가 연거푸 뱃전을 두들겼다. 고래는 점수하기 전 정우를 응시했다. 낯설지만 맑은 눈이었다. 정우는 순간적으로 숨이 턱 막혀왔다. 얼마나 가까웠던지 내뿜는 물줄기를 뒤집어쓴 옷깃이 모두 젖었다. 반백년 바다와 섞여 살아온 정우였지만 가까이서 살아있는 고래를 본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4

 

뱃머리 앞에서 고래가 떠올랐다. 정우는 깜짝 놀랐다. 스트랜딩은 아니지만 배와 충동할 수 있는 거리다. 고래는 엄청난 크기를 자랑했다. 수면 위로 드러난 긴 가슴지느러미로 인해 앞뒤 구분조차 안됐다. 고래는 아무렇지도 않게 뱃머리를 가로 질러 잠수했다. 정우는 굵고 주름진 피부 밑에서 고래의 눈을 얼핏 보았다. 게슴츠레한 고래의 눈빛은 아버지를 떠올리게 했다. 그 눈빛은 임종 직전 정우를 지긋하게 바라보던 아버지의 것과 닮아있다. 순간적이긴 했으나 고래의 눈은 정우와 아버지를 연결하는 끈이었다. 정우의 가슴 안쪽에 해인을 받듯 고래의 눈빛이 새겨졌다. 어디선가 또 다른 고래의 물뿜기 소리가 푸 하고 들렸다. 무관심한 고래는 배가 다가옴을 벌써부터 알고 있었으며 정우의 출현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두려움이 없는 바다의 제왕다운 몸짓이었다.

-저것 좀 보십시오.

곁에서 숨을 죽이고 있던 통신장이 말했다. 배와 멀지 않는 곳에 크고 작은 고래들이 보였다. 개중에 등치가 작은 놈도 관찰되는 거로 보아 가족이 분명했다. 기이하게도 고래들은 쉬지 않고 수면 위를 엇박자로 솟구쳤다. 솟구치는 타이밍에 맞추어 작은 물고기들이 수면 위로 뛰어 올랐다. 고래 무리는 이따금씩 잠수를 멈추고 허공으로 물을 뿜어냈다. 물줄기는 하늘로 치솟았고 분수처럼 퍼져 짙은 수증기로 피어올랐다. 물보라는 바람에 실려 정우의 얼굴까지 날아와 내렸다. 물보라 속에는 퀴퀴한 냄새가 섞여 있었다. 고래 뱃속에서 먹이가 소화되며 발생한 냄새였다. 이야기로만 전해 듣던 고래의 먹이사냥 풍경이다. 훔볼트오징어 어장을 찾던 정우는 고래의 먹이사냥 터를 찾아내던 것이다. 정우가 수렴대라 생각했던 것은 포경선원들 은어로 라면 ‘맥’이다. 고래의 길이라고도 부르는 ‘맥’은 고래의 회유통로였고 먹이사냥 터이기도 했다.

-고랜가 봅니다.

통신장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군.

정우는 맥 풀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군탐지기에 나타났던 점 이야기다. 정우는 점 기록을 훔볼트오징어 라고 단정하지 못했다. 되돌아 생각해보면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하던 점들은 재빠르게 수평으로 이동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배를 정선하고 조업을 준비를 시킨 건 훔볼트오징어 라고 믿고 싶은 마음이 컸다. 오랫동안 불황에 시달렸던 탓이다. 잔뜩 걸었던 기대가 통신장의 지적으로 일순간에 무너졌다. 그렇다고 실망감에 젖을 필요는 없었다. 때로 고래는 돌고래와 달리 물고기를 한곳으로 모아주기도 했다. 훔볼트오징어 라고 다를 리 없다. 정우의 마음 속 한편에 이렇게 숨은 계산이 있었다.

 

고래는 바다에 떠다니는 모든 것을 먹는다고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식물성 플랑크톤에서부터 바다사자까지 먹이였다. 놀랍게도 동족인 고래도 공격했다. 정우가 노리는 훔볼트오징어도 고래의 먹이다. 정우는 낚시를 이용해 훔볼트오징어를 어획했다. 그러나 고래들은 버블클라우드 라는 물방울 그물을 만든다. 정우에게 어탐은 뒷전이 되었다. 고래의 사냥을 자세히 알고 싶었다. 그러자면 좀 더 고래에게 근접해야했다. 정우는 2항사에게 미속으로 전진할 것을 지시했다. 가벼운 진동이 생기면서 배는 슬금슬금 고래 쪽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고래들은 전혀 경계심을 갖지 않았다. 포경선으로부터 작살을 받고 멸종의 길에 들만도 했다.

먹이사냥에는 경험이 풍부한 고래가 리더를 맡는다고 했다. 마치 포경선에서 작살을 날리는 포장처럼 상황에 따라, 먹이에 따라 전략을 짜기 때문이다. 이번 사냥에는 뱃머리 앞에서 솟구쳤던 고래가 리더였다. 흩어졌던 고래 무리가 한 팀을 이뤄 일정한 방향을 향해 몰려들었다. 고래들은 이때에 소리를 내며 먹이를 한 곳으로 몬다고 한다. 리더인 고래가 물방울 그물을 만들기 시작했다. 바다 속으로부터 스쿠버다이버가 공기를 뱉듯 크고 작은 물방울이 솟아올랐다. 고래는 분수공의 근육을 이용해 물방울의 크기도 바꿀 수 있다 했다. 물방울 그물은 밀렵꾼이 숨겨 놓은 눈밭 속 올무 같았다.

고래 무리는 물방울 그물을 빙빙 돌았다. 이동하던 배가 물방울 그물의 범위에 들어섰다. 배 주변의 해수면이 뚜렷한 윤곽선을 만들며 끓어올랐다. 정우는 배의 정지를 지시했다. 더 다가간다면 먹이사냥을 방해할 것 같았다. 고래의 먹이로 전락한 물고기에겐 공포였겠지만 철저한 협동과 물방울 그물로 먹이를 군집시키는 두뇌가 놀라울 뿐이다. 물방울 그물에 물방을 그물이 겹쳐서 물고기의 탈출로는 없었다. 고래들은 번갈아 숨을 짧게 들이마시고 길게 내 뿜었다. 물줄기는 햇살에 무지개를 만들었다. 모두 다섯 마리였다. 고래 무리의 사냥은 성공을 예측하듯 일요일 오후에 하는 산책처럼 느긋했다. 아니 아름다웠다.

시간차를 두고 물방울 그물은 점점 좁혀졌다. 때때로 중간에서 뜨거운 물에 들어간 물고기처럼 군집된 물고기들이 퍼덕이며 뛰어 올랐다. 물고기가 뛰어 오르는 소리는 정우에게까지 들렸다. 물고기들이 생존을 다투는 처절한 율동을 둘러싸고 고래 무리는 마치 축구경기에 나선 선수들처럼 절묘하게 팀을 이루었다. 마침내 물고기들의 목숨에 종지부를 찍어야 하는 시간이 당도했다. 생명의 위엄으로 가득한 해수면이 1미터 정도 순간적으로 출렁거리며 상승했다. 수초가 지나지 않아 그 중간을 무너뜨리며 고래가 연거푸 치솟아 올랐다. 물고기들이 쏘아진 물방울 그물에 쫓겨 해수면 위에서 벚꽃처럼 흐드러질 때 정우가 발견한 건 고래의 커다란 입이다. 그리고 죽음과 신생이 공존하는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흰 뱃구레였다.

-와.

선원들로부터 동시에 환호성이 터졌다. 고래가족은 그렇게 반복해서 사냥을 계속했다. 먹이를 둘러쌓던 물방울 그물이 사라졌다. 마침내 고래가족의 먹이사냥이 끝났다. 고래의 먹이사냥을 돕던 새 때도 둥치를 찾아 돌아갔다. 배를 채운 고래 무리는 꼬리로 해수면을 찰싹찰싹 두드렸다. 소화를 시키기 위해 가볍게 운동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롭테일링이라고 부르는 고래들의 놀이다. 정우는 대왕고래를 잡아 장생포 항으로 귀항하던 아버지 모습이 떠올랐다. 한쪽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려왔다. 정우는 손으로 가슴을 누르며 심호흡을 했다. 어둠이 몰려오고 있었다. 고래가족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이곳이 어장이다. 마음을 결정한 정우는 시앙카를 던지라는 지시를 내렸다.

-고기다.

조업을 감독하고 있던 1항사가 외쳤다. 고함소리에 놀란 정우는 잠에서 깨었다. 시간을 확인하니 밤 9시다. 시앙카를 던져 놓고 선잠에 빠졌던 모양이다.

-고기다.

선원들이 외치는 소리도 따라 들렸다. 정우는 재빨리 어군탐지기에 시선을 고정했다. 어군탐지기가 온통 붉게 변해있다. 갑판은 벌써부터 훔볼트오징어가 뿜어 놓은 먹물로 먹물바다였다. 갑판이곳저곳에서 훔볼트오징어를 당겨 올리려는 선원들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정우는 훔볼트오징어를 바라보며 눈가를 훔쳤다.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그토록 애를 태웠던 어장을 찾았다.

 

5

 

결국 정우는 태풍에 휩쓸렸다. 기압은 멈출 줄 모르고 떨어졌다. 태풍은 북상을 하며 발달했다. 예상보다 이동하는 속력이 빨랐다. 브리지 유리창을 두드리는 빗줄기는 더욱더 굵었다. 간간이 우박마저 내렸다. 항로를 변경한 탓에 선미로부터 엄청난 파도가 밀려들었다. 피항항법 중 가장 위험하다는 스커딩 항해다. 선미바람이 세크퍼 30미터다. 바다는 순식간에 화이트아웃 상태가 되었다. 자동조타마저 불가능하다. 아차 하면 선원들 미래조차 보장할 수 없었다. 넘쳐 들어온 바닷물이 선내로 밀려들었다. 갑판으로 통하는 출입구를 봉쇄했다. 정우는 선원들에게 라이프자켓 착용을 지시했다. 정우의 심각함을 깨달았는가. 2항사의 얼굴이 노랗게 변했다.

흘수선에서 부서지는 파도소리가 쿵쿵 하고 들렸다. 7미터를 넘어가는 파고다. 배는 풍압 때문에 선수 방향을 잡지 못해 이리저리 흔들렸다. 끝없이 몰려오는 바람과 파도로 바다는 거칠어져 갔다. 정우는 배의 속력을 더 가속한 다음 직접 조타를 했다. 황천에는 선속과 선수방향을 적절하게 조절해야 한다. 너무 빨라도 안 되고 느려도 안 된다. 잘못해서 파도에 뱃머리가 밀리기라도 한다면 브로칭 투가 된다. 상상하기도 싫지만 브로칭 투가 되면 대부분 배가 전복된다. 당연히 많은 배가 브로칭 투로 침몰했다. 그런 까닭에 황천에는 노련한 기술과 경험이 필요했다. 바닷물을 뒤집어 쓴 탓에 습기가 차 앞이 보이지 않았다. 정우는 습기를 제거하기 위해 히터의 레벨을 강으로 올렸다. 하지만 조타륜을 붙잡고 있는 손아귀에는 식은땀이 저절로 고여 왔다.

피항의 긴장감으로 갈증이 일었다. 정우는 생수병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태풍을 몇 개나 겪었지만 이번 것은 상상 밖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마지막 SET는 포기해야했다. 그러나 SET에 30톤도 너끈한 물고기를 포기할 수 없었다. 물고기를 따라 다니는 건 뱃사람의 숙명이기도 했다. 바다가 두렵다면 애당초 배를 타지 말아야 했다. 서둘렀다. 작업은 예상하고 있던 시간을 훨씬 넘겨 끝났다. 게다가 항로마저 변경하지 않았던가.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후회였다. 태풍에서 빨리 벗어나는 것이 황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일이었다.

갈라파고스뿐만이 아니다. 황천항해중인 드레이크해협에서, 하리케인에 쫓기던 뉴펀들랜드 그랜드뱅크에서, 죽음의 암초들로 가득했던 마이크로네시아에서 고래는 어김없이 나타났다. 그리고 항로를 이끌었다. 그저 고래다. 처음엔 신기하다는 생각밖엔 들지 않았다. 자연의 섭리가 오묘하다지만 넓고 넓은 대양에서 고래를 만나기가 쉬운 건 아니다. 곤경에 빠질 때면 나타나 힘을 보태어주는 고래였다. 무언가 인연의 질긴 줄이 닿지 않고서는 어려운 일이다.

정우는 언제부터인가 뱃머리 앞에 불쑥, 불쑥 솟는 고래가 아버지라고 믿고 싶었다. 아니 믿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똑같은 일이 반복될까. 아버지는 정우가 자신 뒤를 이어주길 바랐다. 장생포를 찾을 때면 꼭 정우를 대동하곤 했다. 그런 까닭에 아직까지 동해호를 처분하지 못한 채 세월에 맡겨 놓고 있다. 아버지는 임종 직전 정우에게 고백했다. 평생을 뱃사람으로 보낸 고독함과 쓸쓸함에 대하여, 다정다감하게 자식들과 소통하지 못한 미안함에 대하여, 그리고 고래를 쫓아 내달렸던 수평선에 대하여, 그 경계에서 생겼다 사라지는 일출과 일몰에 대하여, 그리고 자신을 바다에 뿌리라고 부탁했다.

-안 된다.

어머니는 단번에 거부했다.

-마지막 말씀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우는 유골을 경해바다에 뿌렸다.

아버지 생각으로 정우가 정신을 잠시 놓고 있을 때 우지직 거리는 소리가 선미 쪽에서 들렸다. 선미를 후려친 파도였다. 상갑판에 지어진 마른 부식창고가 산산조각 났다. 배는 휘청거리며 왼쪽으로 기울었다. 정우는 충격에 의해 조타륜을 놓고 브리지 구석에 쳐 박혔다. 뒷머리가 어질어질 해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정우는 엉금엉금 기어 필사적으로 조타륜을 붙잡았다.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정우도 두려웠다. 기상상태로 보아 이대로 침몰하겠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도 배는 재빨리 복원력을 회복했다. 그리고 항로를 유지했다.

 

고래였다. 다시 고래가 보였다.

정우가 조타륜을 잡고 안간힘으로 버틸 때 뱃머리 앞의 등치는 것은 틀림없는 고래였다. 정우 앞에서 고래는 거침없이 파도를 헤치고 있었다. 하얀 포말의 파도가 뒤를 따랐다. 정우는 바다의 군주라는 듯, 내가 다 알아서 할 터이니 걱정하지 말라는 듯, 두 줄기 물줄기를 시원하게 뿜으며 로깅하는 고래가 그렇게 듬직할 수 없었다. 불안으로 가득했던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정우는 비로소 안도의 숨을 몰아쉬었다.

-등대입니다.

2항사가 가리키는 방향에서 등댓불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정우는 얼른 레이더 화면을 들여 보았다. 거리가 18마일로 고정된 레이더에는 비구름 밖에 찍히지 않았다. 기상이 엉망인 탓이다. 정우는 그제야 DGPS 프로트화면을 확인했다. 묘박지로 선정한 시리야사끼 등대와 12마일 떨어진 곳이었다. 다시 등댓불이 반짝거렸다. 정우는 마음으로 섬광 시간을 세었다. 시리야사끼 등대였다.

-기압이 멈췄습니다.

등댓불을 초인한 2항사 목소리는 활기찼다. 기압이 하강하지 않는다는 건 태풍 중심에 근접해 있고 중심을 통과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것은 바람의 세기만으로 짐작 할 수 있다. 물론 육지에 근접하면 육지가 바람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긴 했다. 바람은 세크퍼 15미터였다. 세크퍼 15미터이면 맞바람을 받고 걸어갈 수 없지만 세크퍼 30미터로 워낙 강했던 바람이라 잦아든 것처럼 느껴졌다. 드디어 6마일 거리에서 해안선이 레이더에 찍혔다. 육지가 가까워지자 대양의 공기와는 전혀 다른 풋풋한 나뭇잎 냄새도 맡아졌다. 후폭풍이 더 무섭다는 뱃사람 말이 있었다. 기압의 이동으로 인해 떨어진 기압이 원래 기압을 회복하며 부는 바람이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잠시 후면 안전한 묘박지에 닻을 내릴 것이다.

정우는 고래를 찾았다. 고래는 정우의 마음을 다 알고 있다는 듯 여전히 잠수와 부상을 거듭하며 배를 이끌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사라졌다.

-아버지.

고래 행적을 쫓아가던 정우의 눈이 붉어졌고 젖어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