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폐소생술

김진희

 

 

바닥에 무릎 꿇고 몇 번 가슴을 꾹꾹 누르다

나는 그만둔다 옆에 서있는 젊은 소방관은

환자가 죽는다며 재촉한다

나는 얼굴이 붉어지며 다시

두 손을 겹쳐 깍지를 끼고 힘을 준다

그러다 또 슬그머니 손을 푼다

상체만 덩그러니 놓인 마네킹을 대하니 아무래도

싱거운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건 사람이 아니다, 라고 내 머리가 자꾸 말한다

죽어가는 이는 이렇게 조용하지 않다, 라고도 말한다

바다에 묻힌 수 백 어린 목숨들 때문에

우리는 이 교육을 받게 되었지만

죽어가는 아이들을 한 명도 살리지 못했다는

무력감만 학습될 뿐.

이것은 살아있는 자들의 위선의 제스처

마네킹은 말이 없다

꼬집어도 꿈쩍 않는다

그 무덤덤한 마네킹이 나인 듯도 하고

우리인 듯도 하고 우리가 미워하는 권력자인 듯도 하다

도무지 그 여린 목숨들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 아이들은 마지막까지 조잘대고 깔깔대고 사랑의 문자를 타전했으니

그 누구보다 생생하게 반짝반짝 살아있었으니

 

그리하여

나는 이 실감나지 않는 응급상황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정작 죽은 것들은, 죽어가는 것들은 따로 있으니.

 

 

 

 

 

 

 

 

 

 

 

쓸쓸한 날들의 기록5

 

 

*

 오뎅사케 활짝 열린 자바라문에 기대서서 여자는 실내를 바라본다 흔들리는 눈빛 자그마한 키에 동글한 얼굴, 핀으로 모아 올린 뒷머리 평범하기 그지없는 모습 하지만 여자는 이제 평범하지 않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조금 전 품에 안겼던 남자를 바라보는 여자 얼굴이 불어터진 오뎅처럼 물컹하다 주인은 여자를 쫓아내고 혀를 끌끌 찬다 밤만 되면 아무 남자한테나 잠자리를 구걸하는 여자, 택시기사들이 바로 물금파출소에 내려주는 여자

 

 

*

방학식을 맞아 우리는

벌집노래방에서 거대한 벌들처럼

앵앵거리며 놀았다 탁자에 맨발로 올라가

천장을 잡고 몸을 흔들며 환호했다

허술한 아크릴판이 어긋나 그 틈으로 핏줄처럼 얽힌

나약한 전선들이 보였지만 다시 암호같은

번호들을 누르고 스피커 위에 올라앉아

세상의 노래들과 격렬하게 접선했다

아이들은 잘 자랐고 아니, 잘 자라고 있다고 믿었으며

그것은 우리의 자부심이지만 얄팍한

자부심이 삐끗하면서 그 틈으로 드러날

불확실과 막연함의 피복전선들

그것을 잊기 위하여 더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흘러넘치는 잔을 요란하게 부딪쳤다

우리의 노래가 우리들만의 노래로 그칠까 두려워서

아이들이 맞이할 거대한 벌집이

달콤한 꿀이 흐르는 세계가 아니라는

자명한 사실이 무서워서

 

 

*

울산횟집에서 서빙하던 여자를 나는 잘 알고 있다

이모, 매운탕이요 하면 순하게 대답하며

친절하게 밥상에 놓아주던 여자다

초장그릇처럼 당연하고 예측가능한 모습

이제 당연하지 않기로 작정한 여자는,

어디로 갔을까

졸아붙은 욕망에 물을 부어 펄펄 끓이고

끈적한 여름밤의 자바라문을 스르르 접으며

덩어리째 불쑥 치미는 관능을 끌어안은 채

여자는 어디로 갔을까

어느 거리 모퉁이에 흔들리며 서있을까

 

*

자정 지난 여름밤

그 내밀하고 서늘한 공기 속으로

또렷이 퍼져나가는

우리의 낮고 낯선 목소리

불 꺼진 범어탕을 지나 이미 잠겨버린 탑마트 주차장 앞에 서서

우리는 오래

택시를 기다렸다

 

 

 

 

 부산 출생. 시집 <굿바이, 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