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쩍새 제대로 울었다

 

Q가 깨어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창밖 생태공원 산책로 사람의 물결과 엇갈려 걷던 A 때문이다. 함께 나란히 하면 거치적거린다고 판단해서였을까.

사실 처음에는 산책로가 좁게 보였다. 다른 용도였는데 발길이 닿자 만들어진 길이 아닐지 잠깐 상상했다. 루쉰의 말대로 원래 이 땅에는 길이 없었지만 누군가 먼저 가고 뒤따르는 자들이 늘어나 생긴 것이라고.

막상 그곳에 가보니 어른 두셋이 손잡고 지나도 좋을 공간이다. 누군가 개척한 길 같지는 않다.

사람들은 한 방향으로만 걸었다. 동네에서 생태공원으로 연결된 길목은 두 군데다. 약수터로 이어진 왕래가 잦은 오솔길 쪽이 입구, 벤치가 있는 한적한 쪽이 출구가 돼버렸다. Q가 서성이는 창에서 보자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흐른다.

A의 출현으로 암묵적인 질서가 흔들렸다. 그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지난 것이다. 익숙함에 젖어있던 공중의 정서는 그를 장애물로 여겼다. 행여 해코지로 달려들까 흡흡 놀라기도 한다. 그는 개의치 않고 물살 가르며 씩씩 간다. 다만 활갯짓의 다른 사람들과 달리 겨드랑이에 양손을 파묻은 채다. 약수터 품은 산 뒷덜미쯤에서 소쩍새가 “엇쭈!” “엇쭈!” 울었다. 그렇게 들렸다.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A를 아웃사이더 취급했다. 두툼한 뱃살 돌려 막 지나친 뒤통수에 손가락을 꽂는다. 서로 부딪쳐 시비 붙는 일은 없어도 창가에서 바라볼 때 이질감은 또렷하다. 당사자들과 달리 광경이 한눈에 들어와서다.

몇몇이 A와 같이 역행하기 시작한 것은 얼마 후다. 처음에는 에멜무지로 따라했으리라 봤는데 하루하루 그 수가 늘어갔다. 그의 모습이 뜸하다 이사 갔는지 영구 삭제됐어도 마찬가지다. 나름대로 재미든 효과든 있었으리라. 물론 끝내 전향하지 않는 쪽도 있어 결과적으로 반반이다.

A의 저의는 알아낼 수 없었지만 달라진 것은 있다. 얼굴 마주하는 일이 잦아져 이른 아침부터 주고받는 안부의 말소리들이 Q의 귀를 두드린다. 창문을 열면 기다리는 햇살이 바글바글하다. 산새들이 밑줄처럼 날았다. 그렇게 보였다.

새로운 한 방향이 되어 흐르다 다시 침묵할지 몰라도 일단 분분하다. 그 덕분이다. 대부분 뒤끝이 뭉툭한 늦잠에 묶여 간밤에 연연하거나 끊어진 필름인 낮잠과 뒹구는 일이 사라졌다.

Q는 변화된 자신의 모습에 반감은 없다. 이따금 새로운 노선의 그들과 걸으며 평범한 일상으로 받아들인다.

깨어있는 시간, Q는 오랜 만에 메모를 한다.

 

그가 벗어놓은 그림자로 다가가자 내 몸이 얼추 들어맞는다.

날개의 싹이 있을지 몰라 팔짱을 끼고 더듬는 일이 즐겁다.

 

 

     

 

 

 

 

 

이원준

서울 출생. 1991년 《현대시세계》로 등단한 시인, 소설가.

저서 《흔들림 또한 우리가 살아가는 한 모습이다》, 《권정생》, 《김오랑》, 《이상》, 《김구》, 《노먼 베순》, 《넬슨 만델라》, 《정약용의 편지》, 조선왕들의 속마음》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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