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웹진]문학마실~...119호...
   2020년 05월

  1. 내일을 여는 창
  2. 소설
  3. 수필
  4. 권서각의 변방서사
  5. 이달의 작가
  6. 동인지를 엿보다
  7. 작품집에 스며들다
  8. 시와 거닐다
  9. 사진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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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2014년 1월 41호부터 2014년 10월 53호까지...
편집자
92825 2014-11-03
245 작은 것 하나도 감사하자 외1편/박규해 file
편집자
2975 2012-11-01
12.11월 30호 시  작은 것 하나도 감사하자 時調 翠松 朴 圭 海 따뜻한 마음이 전해올 때 큰 기쁨 아픈 마음 달래주며 위로하여 주는 마음 그 마음 비교할 수 없이 좋은 것이 로구나 감사하는 마음이 주렁주렁 영글면 서로서로 상부상조 하는 세상 된다면 세상은 더 좋은 일이 번져가게 되겠지 나를 잊게 만든 마음 고마움이 존재하고 정으로 사는 세상 더 커지면 좋겠고 마음 속 평생 감사한 마음들이 있겠다 노인과 노을 강가에 앉은 노인 지는 해를 바라보고 시간흐름 세월흐름 가는 것을 보면서 세월이 빠져 가는 것 허허롭게 웃는다 강물이 유유히 아무 말도 없이 흐르고 노을빛에 물들었는지 강물도 붉으스레 노인의 허전한 마음 강물 따라 가고 있네 불빛들이 하나 둘 일제히 일어서니 긴 한숨 꺾어들고 지팡이에 의존하며 집으로 걸어가면서 깊은 생각 잠긴다 박 규 해 프로필 ㅇ 아호 : 취송(翠松) ㅇ 고향 : 경북 상주 ㅇ 단국대학교 국어국문과 졸 ㅇ 사랑․ 소설계사 기자 근무 ㅇ 함창중고등학교 근무 정년퇴임 ㅇ 현대시조 “바램”으로 천료(97) ㅇ 97 ~새 시대시조(계간) 출품 외 9곳 문예지 출품 ㅇ 시조집 : 희망의 횃불. 찔레꽃이 피면 ㅇ 수상 : 시와 수상문학 특별상 ㅇ 동인지: 시인파라다이스 외 50권 ㅇ 현재 : 한국 문인 협회 경북 지회 회원. 현대시조 인단 회원. 한울문학 회원. 창작과 의식동인. 만다라 문학 회원. 파라문예회원. 시와 수상문학. 국보문학 회원. 한비문학 회원. 시와 늪 문학 회원. 시와 글 사랑 회원 ㅇ 주소 : 경북 상주시 복룡동 2길 15 대신 아파트 301호 휴대011-9382-3375  
244 붉은 신호등 외 1편/고희림
편집자
2843 2012-11-01
12.11월 30호 시  붉은 신호등 \死後에도 그 존재가 확실한 용도의 돼지나 소 막창같이 질긴, 저 붉은 신호등의 붉음 앞에서 멈추고 멈추어 온 나는 지금도 멈춘다 저 붉은 신호등의 붉은 색은 다만 나를 잠깐 멈추게 하는 가식인가 내가 진짜 멈추는 이유는 신호등의 저 붉은 색이 질서를 아름답게 만든다는 환상 때문인가 그 무렵, 흙의 수염인 앞마당 잔디를 야금야금 가로질렀겠다 그 옛날 소 꼬랑지 벽을 문지르던 자리쯤 서서 팔짱을 끼자말자 눈높 이의 남산너머로 유월 석양이 한순간에 꼴까닥! 누군가 파심은 채송화와 매발톱 흰 쪽문 아래의 애기똥풀 그리고 나는 그 자리에 얼어 붙었다 석양이 우리와는 확연히 다 른 존재라는 것은 바로 이때부터다 엷은 술 냄새에 빈혈기마저 화악 끼치던 석양은 온 몸이 한 개의 등신불인 그것이 퉁 퉁 붓는다 그리고 특유의 이별식으로 우릴 새 피의 공급처 혹은 쓸쓸한 강가로 데려갔으니 꽃같이 죽은 아이 감꽃처럼 꽃 맺지 못할 송화처럼 분하고 부운 젖, 그 강에 가면 언어가 가난해지고 반대가 자유이다 기다리지 않고 기다리지 않아도 한 개도 없는 전화번호에 도시가 필요없다 너는 한 개의 강으로 누워 우리는 네 곁에서 무당꽃처럼 잠들고 준비한 한 필의 무명천같은 손길로 일상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 한 접시의 박나물처럼 남기지 않을 짧은 순간을 오래 대접하는 너는 바로 하나의 희귀한 미련이며 하나의 속속한 정 유월이 자리해* 유감없이 낮은 석양은 강물따라 살아생전 끝낼 수 없는 장편, ‘소신공양’이 되었다 토란의 넓은 귀에 고인 이슬조차 생사의 눈물 구구절절 하였다 이 무렵, 온 나라는 강을 앓고 울음소리 끊이지 않았다 *인용구  
243 창/이병순 file
편집자
2914 2012-10-02
12.11월 30호 소설  창(窓) 이 병 순 기타를 튕길 줄 알지만 걸터앉을 창턱이 없었던 내게 창은 마냥 스테인드글라스 사탕 빛 정서는 아니었다. 남녀 한 쌍이 별 박힌 하늘을 바라보며 와인 잔을 들고 있거나 누군가 열어젖힌 창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창틀에 기대선 모습들은 창 아래서 연인을 향해 세레나데를 부르는 영화 장면처럼 실감나지 않은 이미지였다. 내게 창은 알맞은 양분의 햇빛을 관통시키는 프리즘이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나 창은 프리즘도 사탕 빛 정서도 아닌 틀과 유리로 이루어진 건축구조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이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깨달았다. 오전에 우리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텅 빈 창틀을 언제 다 메울까 아득했다. 깨진 유리조각이 창틀 곳곳에 끼어 있었다. 나는 코팅장갑을 끼고 창틀이나 베란다 바닥의 유리조각부터 치웠다. 거실 베란다와 바깥 베란다 유리 모두 깨진 채 창틀이 뚫려 있어 28 층은 공중에 붕 뜬 것 같았다. 깨진 유리조각이 든 커다란 쓰레기봉투들이 베란다 한쪽 통로를 막고 있어서 작업하는데 거치적거렸다. 쓰레기봉투를 찢고나온 유리조각은 두껍고 날카로웠다. 과장을 따라다닌 지 열 달가량 동안 같은 집을 다섯 번 오기는 처음이다. A/S를 십 년 넘게 해 온 과장도 같은 집을 이렇게 자주 오기는 처음이며 새시에 묻은 가느다란 선 한 줄 갖고 보수수리를 신청하는 집도 이 집이 처음이라고 한다. 현관 입구에 있는 화장실 앞 마루판이 컵 받침 만하게 팬 것은 창틀 새시의 가느다란 줄에 비해 큰 하자인데도 집 주인 여자는 보수공사 신청을 하지 않았는지 올 때마다 마루판은 팬 채 그대로다. 과장 말 대로 여자는 창에만 붙어 있는지도 모른다. 사다리에 올라선 과장이 드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콧잔등으로 흘러내리는 안경을 밀어 올린다. 나는 잡았던 창틀을 벽에 기대세우고 과장한테 드릴을 건넨다. 치이잉. 과장이 드릴로 문고리를 겨누자 짧은 비명이 터진다. 과장이 입은 연회색 작업복의 왼쪽 가슴에는 ‘창에 대한 긴 생각’의 본사 로고가 붉게 박혀 있고 여기저기 허연 실리콘이 묻어 있다. 재바른 손놀림과 서두르지 않는 과장의 행동에서 오랫동안 현장을 누벼온 관록이 엿보인다. 과장이 문고리를 딸깍딸깍 매만지는 소리 사이로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쇼 호스트의 목소리가 들린다. 여자는 과장과 내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짜증어린 말투를 쏟아내던 때와 달리 오늘은 조용한 편이다. 이 집에 처음 불려 왔을 때는 창틀이 헐거워 유리가 흔들거렸다. 창틀을 조이고 실리콘을 먹여 틀에 유리를 고정시켜 주었다. 두 번 째 왔을 때는 문짝 손잡이 부분에 거뭇한 선이 쳐져 있어 제거해 주었다. 세 번 째 왔을 때는 베란다 맨 안쪽 새시문짝의 밑면에 못 자국 만하게 꺼진 홈이 있어 열풍기를 불어넣어 평평하게 펴주었다. 그것은 어지간한 눈썰미가 아니면 찾아내기 힘든 하자였다. 네 번 째 찾아온 그저께는 안쪽과 바깥쪽 베란다 유리문 모두 박살이 나 있었다. 관리사무실을 거치지 않고 여자 남편이 과장한테 전화를 했을 때부터 낌새를 알아차렸어야 했다. 서비스센터에 접수되지 않은 하자보수는 굳이 과장이 해주지 않아도 되지만 요즘 계속 이 단지를 돌고 있던 중이어서 우리는 지나는 길에 이 집을 들렀다. 깨진 유리는 A/S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과장의 말이 채 나가기도 전에 여자 남편은 다급하게 말을 뱉었다. 업무 중에 유리 때문에 잠시 들렀다는 그의 말투는 사정조였다. “동네에 있는 유리 집에서 맞추는 것보다 이왕이면 이 아파트 시공업체에서 담당하는 유리가 낫지 않을까 해서 전화했습니다.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여자는 그 옆에서 팔짱을 낀 채 샌들을 신은 발로 유리파편을 휘저었다. 유리조각에 여자의 발길이 닿자 짜랑짜랑 소리가 났다. 유리조각에 찍힌 거실 마루판 여기저기는 생채기처럼 긁혀 있었다. “일단 유리조각부터 다 치우시고 다시 연락하십시오.” 과장의 말투는 차분하고 단호했다. 유리 파편을 발로 살살 밀어내며 딛던 과장의 모습은 현장 감식을 끝낸 노련한 형사 같았다. 공구함을 들고 과장 뒤를 따라 나가던 나도 조심스레 바닥을 디뎠다. 아령으로 유리창을 향해 던졌다지요, 아마. 오늘 오전에 과장과 내가 유리를 맞잡고 승강기에 타는 것을 본 경비가 몸서리치는 시늉을 하며 중얼거렸다. 경비는 우리가 유리를 맞잡고 경비실 앞을 지날 때마다 한 마디씩 보탰다. 여자의 남편은 지방의 고위공무원이며 며칠에 한 번씩 집에 들렀다. 여자가 베란다에 뛰어내리려는 것을 그녀의 남편과 아들이 붙들었다는 말을 하며 경비는 마른침을 삼켰다. 아파트를 돌아다니다보면 궁금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저절로 귀에 들어왔다. 창틀에 끼운 창은 문짝끼리 딱 맞물려 있다. 과장은 사다리에 한 발을 땅에 내리고 창틀 롤러 쪽을 훑어본다. 문이 쓰륵쓰륵 열고 닫힐 때마다 우기에 젖은 텁텁한 바람이 들쳐든다. 어둑한 숲이 반사된 창유리에 드릴을 쥔 과장의 옆모습이 흐릿하게 비친다. 어디선가 창문 닫는 소리가 탁탁 들린다. 밤을 맞는 소리는 창문 닫는 소리부터 시작된다. 일곱 시가 조금 지나 있다. 여느 때 같으면 A/S를 끝내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도로 위에 있거나 사무실에서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을 시간이다. 집으로 가는 전철 안에서 수진과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다보면 어느새 내릴 때가 되곤 했다. 수진은 요즘 학습지 회원 수가 많이 늘어 집에 도착하면 거의 열 한 시라고 했다. 나는 수진을 만나기 위해 도서관에 갔지만 이제 수진은 도서관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수진은 교직 임용고시 준비 때문에 주말이면 도서관에서 시험공부를 했다. 몇 달 전부터 수진은 임용고시에 대한 불안감이나 시험을 대비하는 새로운 각오에 대한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두 번이나 연거푸 임용고시 시험에 낙방한 수진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수진의 말에 귀 기울여주는 것뿐이라 여겼었다. 수진이 학습지 지국장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서 내 문자메시지에 답하는 걸 소홀히 했고 내 전화를 잘 받지 않았다. 그것은 도서관에도 나타나지 않은 시기와 비슷했다. 나는 답답한 마음을 친구 몇에게 털어놓았다. 친구들은 오래된 연인들이 겪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수진이 제 발로 떠나는 걸 고맙게 여겨라 했다. “자, 여기.” 과장은 창의 위 칸 손잡이를 잡으며 내게 드릴을 건넨다. 텅 빈 창틀은 번들거리는 유리로 다 메워졌다. 일머리를 훤히 꿰고 있는 과장이 아니라면 하루 만에 끝내기는 힘든 작업이었다. 과장은 내가 보조를 착착 잘 맞춰줘서 일이 순조롭게 끝난다고 하지만 나는 고작 유리나 창틀을 맞잡아주거나 창틀에 매달린 과장에게 연장을 건네주는 일밖에 하지 않았다. 내가 복학을 하고 회사를 그만 두면 누가 과장보조로 나설 것인지 과장은 벌써 걱정이었다. 2학기에 복학을 하려면 여기서의 아르바이트는 보름가량이면 끝이다. 회사에 처음 올 때는 생산 현장의 바쁜 일손을 거드는 게 내 일이었다. 생산 라인뿐만 아니라 포장이나 래핑까지 각 팀마다 일손이 모자라 과장 보조로 외근 나올 만한 사람은 마땅히 없었다. 회사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여건을 가진 사람은 나뿐이었다. 낮은 임금에 비해 공단지역 주변의 집세는 비싼 편이라 일꾼 구하기는 어려웠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아니면 물량을 제대로 출하해내지 못할 만큼 일손은 귀했다. 본사에서 지시하는 주문량과 주문날짜를 맞추려면 생산 현장은 늘 밤 9 시까지 기계를 가동시켜야 했다. 나는 생산품 작업지를 뽑아 복사를 해 현장에 보내고 공문과 팩스를 챙겨 본부장한테 보고하고 남는 시간은 래핑이나 포장 실을 오가며 모자라는 일손을 거들어야 했다. 래핑실에 늘린 체리 빛이나 원목 색을 입혀놓은 창틀을 보고 있으면 창틀에 비칠 풍경들이 머리에 스쳤다. 본사 광고모델인 여배우가 창을 어루만지며 ‘창에 대한 긴 생각은 당신에 대한 긴 생각이에요’라고 속삭이는 것을 들었을 때는 군 내무반에서 잠자리에 들기 전이었다. 대기업에서 새시문짝에까지 손을 뻗치는구나 하는 생각을 잠시 했을 뿐, 창에 대한 긴 생각을 하고 있기에는 생각할 게 너무 많은 제대말년이었다. 인문학부를 졸업해서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것을 몰라서 입학한 것은 아니었지만 제대말년쯤 되니 그런 공부에 대한 회의감부터 들었다. 복학하지 않고 공무원채용시험 대비를 착실히 하는 게 실속 있겠다는 것과, 복학을 해 학교 다니면서 언론고시공채 준비를 할까하는 생각들이 오가기도 했고 무엇보다 평생 엄마 아버지가 꾸려왔던 철물점을 비워줘야 한다는 게 마음이 무거웠다. 집 주인이 집을 헐어 5 층짜리 건물을 지어 새로 임대를 하겠다고 했지만 새 건물에 철물점을 임대하는 가격은 비싸서 다른 곳을 알아봐야 했다. 제대한 지 며칠 만에 나는 고시원으로 들어갔다. 군에 가기 전에는 독서실이 내 거처였다.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밥 먹을 때 말고는 대부분을 집 근처에 있는 독서실에서 생활했다. 좀 더 빨리 독서실을 거처로 삼아야 했었다. 고등학생이면 부모가 단칸방에서 다 큰 아들과 함께 자야한다는 게 얼마나 커다란 고역인가 알 만한 때였다. 창문으로 어두운 색 도배지로 모조리 가린 독서실이었지만 그곳이 우리 집보다 편했다. 커튼을 드리워 엄마 아버지 방과 내 방을 나누었지만 커튼은 휘장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커튼의 벌어진 틈으로 보이는 거울에는 엄마 아버지가 다 보였다. 실금 같은 커튼의 틈이라도 거울로 보면 엄마 아버지 모습이 훤히 보였다. 자라면서 나는 커튼 사이로 벌어진 틈을 보지 않으려고 커튼을 등지고 벽을 향해 눕기 시작했다. 엄마 아버지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조금만 기다리면 창이 넓고 전망이 트인 곳에 내 방을 멋지게 꾸며주겠다는 말을 자주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보였다. 대형마트에서 공구나 철물을 팔기 시작하면서 철물점을 찾는 사람들은 나날이 줄었다. 겨우 세 식구 호구지책 하기에도 급급했다. 어릴 때부터 농짝에 창이 가려져있어 나는 창이라는 개념을 지니지 못했다. 다만 부모가 전망이 트인 창을 들먹일 때마다 창이 삶의 핵심 부품처럼 귀에 와 박혔다. 철물점 입구에는 개 줄이 주렴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바닥에는 똬리를 틀어 둘둘 말린 고무호스가 늘려있고 문 옆에는 삼지창처럼 마대가 버티고 있었다. 손님이 찾는 물건을 꺼내려면 선반에서 먼지가 풀풀 날렸다. 가게에 앉아 밖을 바라보면 호프집 간판 너머 역광이 비쳐 흘렀다. 역광은 우리 가게 유리문을 비추었고 그 빛은 호프집 유리에 되비쳤다. 유리끼리 반사된 빛이 우리 집에 어른거린 유일한 빛이었다. 넌 우리의 빛이다. 제대를 하던 날 아버지가 내 어깨를 두들기며 소주잔을 건네며 했던 말이다. 그것은 연기에 서툰 배우가 겨우 외워서 뱉는 대사 같았다. 빛이라는 말이 그토록 무겁게 들리기는 처음이었다. 엄마는 상추에 삼겹살을 싸서 내 입에 넣어주었다. 육십 살도 채 되지 않은 부모가 내 눈엔 노인으로 보였고 그들을 컴컴한 동굴에서 벗어나게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날 나는 삼겹살을 오래 씹었고 소주는 급하게 들이켰다. “터치펜으로 여기 좀.” 과장은 새로 끼운 문짝의 흠을 손가락으로 짚는다. 새시 문짝에 난 작은 흠집은 터치펜으로 문지르면 감쪽같다. 흰색 래핑에 얼룩을 지우는 도구가 물파스라는 걸 아는 입주민은 거의 없다. 그들은 로고가 찍힌 작업복과 덜컥거리는 공구함을 믿음직스러워 했다. “알았다니까요? 글쎄 잘 끼워졌어요. 네? 어디 걔만 고3인가? 고3, 고3 그만해요. 고3 엄마가 뭔 죄라도 지었어요? 일단 알았어요.” 여자의 목소리가 베란다로 흘러나온다. 우리가 처음 왔을 때처럼 다소 앙칼진 목소리다. G그룹이라는 대 기업에서 만든 창이 이게 뭐예요? 내가 마음만 먹으면 유리가 쑥 빠지겠어, 정말. 여자는 창틀에 벗겨진 실리콘을 손가락으로 쿡쿡 찌르며 툴툴댔다. 우리 회사는 G그룹이 아니라 G그룹의 하청업체라는 말까지 여자한테 할 필요는 없었다. 과장은 여자가 가리킨 곳 말고도 흠집을 샅샅이 찾아 실리콘을 먹였다. 나는 커팅 칼로 창틀에 묻은 실리콘을 긁어냈다. 여자가 덜 마른 실리콘을 자꾸 손가락으로 문질러대는 바람에 짧게 끝날 일을 조금 지체했던 날이었다. 과장은 주스 잔에 빠진 날벌레를 손가락으로 건져내고 주스를 꿀꺽꿀꺽 마신다. 바지 뒷 주머니에서 핸드폰 진동이 온다. 스팸이다. 핸드폰 바탕 창에 수진이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웃는 모습이 떠 있다. 제대하고 얼마 있다 수진과 함께 튤립축제에 갔다가 찍은 사진이다. 부재중 세 통 중에 두 통은 엄마한테 온 것이다. 끼니 거르지 말라는 똑 같은 말을 엄마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했다. 나는 더 이상 수진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 수진의 핸드폰에 표시된 부재중 내 이름이 문자메시라면 문자메시지일 것이다. 나는 창틀 홈에 유리 모서리를 끼우고 손바닥을 탁탁 쳐보지만 과장처럼 단박에 쏙 들어가지 않는다. 과장이 하는 게 쉬워보였던 것은 과장이 문을 어루만지는 게 아니라 문짝을 갖고 노는 것처럼 비쳤기 때문이었다. 과장이 내 반대편 문짝을 잡고 창틀을 기울여 유리를 톡톡 치니 유리는 창틀에 쏙 들어간다. 과장이 한쪽을 훌렁 들자 맞잡은 내 팔이 문짝에 딸려가는 것 같다. 창틀과 유리가 축축하다. 는개인지 안개인지 모르겠다. 아침에 출근준비를 하면서 텔레비전에서 밤부터 비가 온다는 소리를 듣고도 나는 고시원의 창을 닫지 않고 나왔다. 그것은 창이라기보다 숨구멍 같은 쪽창이었다. 그 구멍으로 거미가 기어오르거나 날벌레들이 날아 들어오곤 했지만 요즘처럼 더운 때는 늘 열어두었다. 쪽창으로 팔을 뻗으면 옆 고시원 벽이 닿기 때문에 빗발이 들이칠 틈도 없을 터였다. 싼 월세에 비해 교통이 편리하고 주위의 싼 밥집도 많아 다른 곳으로 옮길 이유는 굳이 없었다. 간혹 고시원 주변의 편의점 앞에 놓인 간이 테이블에 나와 같은 고시원에 묵는 사람들이 맥주를 들이켜며 앉아 있곤 했다. 그들 중에 어떤 사람은 나를 잡고 말을 했다. 갑갑해서 나왔슴다. 우리 고시원 말이오, 다 좋은데 창문이 좀 넓었으면 얼마나 좋겠소. 나는 쪽창이라도 좋으니 앞에 가리는 벽이 없었으면 얼마나 좋겠냐고 답해 주었다. “앞이 트였다고 모두 전망인 것은 아니라고. 김 군도 아파트를 많이 다녀봐서 알겠지만 창 앞에 볼 게 뭐 있었어? 전망, 전망들 하지만 정작 전망 좋은 곳에 사는 사람들은 그것을 전망이라 하지 않지. 요새 사람들, 세계로 어디로 다니면서 좋은 것은 다 보고 사는데 뭘 더 보고 싶겠어. 사람들이 넓은 창을 원하는 것은 뭘 보겠다는 뜻이 아니라 누가 저들을 봐주기를 바라는 거지.” 얼마 전 이 아파트 109동에서 우울증을 앓던 중년 남자가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이야기는 입주민들 사이에 쉬쉬하던 이야깃거리였다. 과장은 우울증을 앓는 사람이 베란다 창으로 뛰어내린 이야기는 또 언급하고 싶지도 않은 눈치였다. 좀 다른 방법으로 죽든가 하지, 참. 과장은 라디오볼륨을 더 높이고 가속기를 조금 더 세게 밟았다. 차창으로 바람이 펄럭펄럭 들쳐들었지만 나는 창을 쑥 내렸다. 과장의 말에 창밖이 절벽처럼 느껴져 섬쩍지근했지만 창이란 열어젖히는 맛이라는 게 창에 대한 나의 간명한 생각이었다. 제대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고속버스를 탔을 때 나는 창가에 앉아 바깥 풍경에 눈길을 주었다. 창으로 스치는 풍경에 눈길을 주고 있으니 내무반과 연병장을 누볐던 지난 시간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행군 때 발바닥이 갈라지는 듯한 고통과 특공훈련 때 무술 연습을 하던 것과 공수훈련 때 낙하하는 연습을 하던 것 등 힘들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시간만 흐르면 모든 게 끝이라는 생각으로 버텼다. 그러나 제대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자 답답했다. 창이라도 확 열어젖히고 싶었지만 내가 탄 고속버스는 창을 열 수 없게 되어있었다. 유리는 차고 단단한 벽이었다. 접촉되지 않는 바깥 공기는 풍경이 아니라 감질 나는 미끼였다. 아파트도 창 광고와 다름없이 풍경을 미끼로 삼았다. 사람들이 모두 창 앞을 서성이고 싶어 한다는 것은 아파트 분양 광고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바다가 보이는 베란다 창 앞에 선 광고 속의 여자는 펄럭이는 흰 커튼자락을 살포시 거머쥐며 속삭였다. 나는 ‘창밖은 햇살’에서 살아요. 아파트 광고인지 창 광고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다니다보면 전망이 그럴싸한 곳이 많았다. 강줄기와 억새 숲이 보이는 아파트들, 구불구불한 기찻길이 펼쳐진 산 중턱의 빌라들, 바다가 훤히 보이는 마린시티의 타워들, 벽의 디귿자가 유리로 된 전원주택에 다녀온 날이면 낮에도 불을 켜야 하는 엄마 아버지의 골방이 떠올랐다. 엄마 아버지는 이사하면서 받은 전세금으로 예전에 받은 내 학자금 대출금을 갚아버렸다. 나머지 돈으로 집을 구하려면 전보다 더 나을 수는 없었다. 옮긴 철물점은 건물이 낡아 비가 많이 오면 벽에 물이 뱄고 창 앞에는 술 상자들이 쟁여져 있었다. 주점을 하는 옆집의 자지레한 물건들은 모두 뒷마당에 널브러져 있었다. 어둡고 습진 엄마 아버지의 방을 생각하면 내 마음은 눅눅했다. 유리에 빛이 달궈진 것만 보면 마음을 그 위에 올려놓고 싶었다. 가끔 사무실에서 복사물을 복사하기 전에 네모난 유리에 나를 비춰보았다. 복사기 유리 밑에 깔린 어둠이 투명한 거울이 되어주었다. 나는 거기에 비친 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턱밑의 뾰루지도 어깨의 툭툭한 살집도 제대하고 나서 생긴 변화였다. 복사기의 검은 유리는 우물 같았다. 아무런 특징 없는 스물다섯 살의 희멀건 얼굴이 검은 우물에 풍덩 빠져 있었다. 넌 우리의 빛이다. 아버지의 그 말은 ‘우린 너의 빚이다’라는 말로 울려 퍼졌다. 우리 조금 떨어져 있어 보기로 해. 떨어져 있다 보면 뭔가 좋은 해결책이 있을 거야. 스물다섯 살의 여자에게 동갑나기 예비복학생 연인이 어떤 존재인지 떨어져 있지 않아도 나는 알고 있었다. 우리 기계공학과도 졸업해 봐야 어차피 기름밥 먹어. 기계공학과가 바로 공돌이를 배출하는 과 아니야? 너 복학하지 말고 그 회사에 말뚝 박아. 공대 다니는 친구의 말이었다. 전공을 살려 취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는 이야기부터 시작해 정상적인 월급쟁이를 해서 평균적인 생활을 누리지도 못한다는 이야기로 끝을 맺었다.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늘어놓으면 조바심이 약간 사라지곤 했다. 나는 우물을 휘젓고 싶어 복사기 전원을 켰다. 드르륵거리는 렌즈 조절기 맞물리는 소리가 났다. ‘시작’이라는 단추에 푸른 불빛이 들어오자 나는 복사기 뚜껑을 들고 유리판에 얼굴을 대고 버튼을 눌렀다. 위이잉 하고 복사기가 가동되면서 빛이 번쩍 터졌다. 눈이 부셨다. 옆모습도 찍고 손바닥도 찍었다. 용지 배출구로 빠져나온 비 포 용지는 검은 색이었다. 뭉텅 빨려 들어간 빛은 흔적도 없었다. 시커먼 용지를 꾸깃꾸깃 접어서 쓰레기통에 넣는데 본부장이 인터폰으로 나를 불렀다. “할 일이 없나? 저것 보라고, 본사에서 막 부려놓은 자재를 실장 혼자서 자재실에 옮기고 있다구. 어서 가서 자네가 맡아하게.” 본부장이 가리킨 곳은 벽 모퉁이에 달린 CC카메라였다. 거기에는 다섯 개의 CC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다. 자재실, 래핑실, 포장실, 창틀 생산 라인, 사무실 등의 모니터에 나타난 사람들의 움직임은 꿈틀거리는 아메바 같았다. 어깨에 멘 새시뭉치들을 자재실에 쟁여놓는 실장의 모습도 보였다. 자재과 박 반장이 자는 모습을 잡은 것도 CC카메라였다. 박 반장은 정상 업무를 마친 뒤 밤 열 두 시까지 경비를 서서 업무 외의 수당을 챙겨야 아이 셋 뒷바라지를 할 수 있다는 거였다. 잠이 모자라는 그는 점심을 일찍 먹고 자재실에 가서 자곤 했다. 점심시간이 끝난 줄도 모르고 계속 자던 그는 CC카메라에 잡히고 말았다. 그 뒤 회사 여기저기에는 CC카메라가 몇 대 설치되었고 본부장은 박 반장에게 경비 업무를 보지 못하게 했다. 박 반장은 얼마 있다 회사를 그만두었다. 박 반장이 그만 둔 뒤 현장의 생산량은 다른 때보다 더 많다는 말이 들렸다. “이곳에 오기 전에는 1 층에서 살았어요. 베란다에 방범창을 가린 거기는 감옥 같았어요.” 언제 왔는지 여자가 베란다 문턱 앞에 서서 중얼거린다. 여자는 거실 벽에 기대 세워진 가족사진 앞에 서 있다. 가족사진은 이 집에 올 때부터 안방 입구의 벽에 세워져 있었다. 사진 속의 여자는 웨이브 진 단발머리에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있다. 안경을 쓴 여자 남편은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있다.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아들은 여자 옆에 앉아 있다. 저때의 여자는 베란다 창가에 놓인 티 테이블에 앉아 남편과 찻잔을 기울였을지도 모른다. 계절마다 커튼을 바꿔 달고 그 앞에 예쁜 꽃병을 놓았을지도 모른다. 창 앞에 서성거리는 것만으로 행복했을 시절이 분명 여자에게도 있었을 것이다. 그 시절에는 우울증은 남 얘기인줄 알았을 것이다. “이곳으로 이사 오고부터는 덜 마른 옷을 입은 것처럼 몸에 젖은 습기가 기분 나빠. 아저씨, 다른 아파트들도 이래요?” 베란다 안쪽에 있는 과장은 여자 말을 듣지 못한 것 같다. “이 아파트는 강을 끼고 있는데다 오늘 날씨까지 이러니 더 그렇겠지요. 이 아파트 25 층 이상에 사는 입주민들 중 빨래가 잘 마르지 않는다고 하는 집이 더러 있더라고요. 안개가 걸쳐지는 지점이라서 그러던데요.” 나는 그동안 보고 들은 깜냥에서 아는 체 했다. 여자는 우리를 볼 때마다 이사 온 이곳이 싫다는 불만을 나타냈다. 변기와 세면대가 모델하우스에서 본 것과 다르다든가 지하주차장에 고인 빗물이 웅덩이 같다는 말은 그렇다 쳐도 숲에 바바리맨이 숨어있다는 말을 할 때 여자는 꼭 여중생 같았다. 저 숲에 바바리맨이 숨어 있어요. 숨어 있다가 으쓱할 무렵에 아파트 뒷길에 나타나 여자들 앞에서 바바리자락을 젖힌다더라고요. 바바리맨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내면서 호기심이 도사린 말투였다. 바바리맨이 바바리자락을 펼쳤을 때 아무도 봐주지 않는다면 그는 바바리 자락을 펼치지 않을 걸? 바바리 자락을 펼치는 순간, 괴성을 지르며 달아나는 여자가 있어야 그가 재미를 느끼겠지. 김 군은 폭우가 쏟아지는 높은 산봉우리에 홀로 서 있는 것처럼 외로울 때가 없었나? 아마 처음부터 바바리맨으로 타고난 사람은 없을 거야. 모든 것을 창과 연결 지어 이야기하는 과장의 말이 재미있었다. 그때 차창 너머로 바라보이는 아파트 창들 모두가 바바리자락처럼 보였다. “아, 연락드린다는 게 깜빡 했네요. 여기서 마치면 바로 가겠습니다. 사모님이 도착하는 시간과 비슷하게 이곳 일도 마쳐질 것 같습니다. 예, 있다 뵙죠.” 맞벌이하는 입주자들의 하자보수 수리는 어쩔 수 없이 그들이 퇴근한 뒤 찾아야 했다. 과장이 받은 전화는 며칠 전에 접수된 105동의 롤러 교환 건일 터였다. 밤 업무는 주로 과장 혼자 했다. 먼저 퇴근하는 내가 미안해하자 과장은 아무도 없는 빈집에 들어가기 싫어 일부러 밤일을 만드는 것이니 신경 쓰지 말고 나 먼저 퇴근하라고 했다. 빈집에 들어가기 싫다는 말을 할 때마다 나는 과장과 결혼할 뻔 했다는 여자가 궁금했지만 물을 용기는 없었다. 혼자 빈 집에 들어서는 마음은 과장이라고 나와 다르지는 않은 것 같았다. 두 달 전쯤 회사 회식 때 나는 술을 좀 마셨다. 여느 때는 회식자리에 끼지 않거나 끼더라도 나는 술을 마시지는 않았다. 늦게 시작한 회식자리였기 때문에 다음 날 아침 여덟 시까지 출근하려면 2차까지 갈 여유는 없었다. 더러 몇 사람은 2차를 가는 듯했지만 과장과 나는 자리를 빠져나왔다. 나는 과장이 자기 집에 가서 자고 다음날 함께 출근하자는 말에 따랐다. 과장 집은 원룸이었지만 베란다와 넓은 창도 있었다. 블라인드가 창을 가렸어도 공단지역이라 창밖 풍경은 짐작할 수 있었다. 창틀에 담배꽁초가 드문드문 끼어 있었고 베란다 한쪽에는 빈 소주병과 빈 맥주 캔이 수북했다. 입가심 해야지. 과장은 거실 바닥에 캔 맥주를 내려놓으며 텔레비전을 켰다. 우리는 텔레비전 마감뉴스에 눈길을 주면서 맥주 캔을 하나하나 비워냈다. 복학은 하라고.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학교를 다니면서 고민하고. 그날 과장도 대학교 2학년까지 마치고 군에 갔다가 제대를 한 뒤 복학하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과장이 군에 가기 전에 사귀던 여자 얘기를 하는 바람에 나도 수진 얘기를 해버렸다. 그 아가씨가 김 군이 제대할 때까지 기다린 게 실수고, 김 군이 그 아가씨와 끝내지 않고 군에 간 것도 실수고. 과장은 알아듣기 어려운 알쏭달쏭한 말을 중얼거리며 소파 밑에 있던 무협지를 당겨 베고 누웠다. 잠든 과장의 얼굴 그 어디에도 커다란 창틀을 훌쩍 들어 올리던 기운 찬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새벽 한 시가 넘어 있었다. 나는 블라인드를 걷어 올리고 어두운 창밖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오렌지 빛 가로등이 희미했다. 그 빛은 따뜻하게 느껴졌다. 창에 엉겨 붙은 날벌레들이 꼼지락거렸다. 나는 수진에게 전화를 했다. 발신음이 떨어지자 이내 끊었다. 발신버튼을 눌렀다 끊었다 서너 번을 반복한 뒤 나는 바탕 화면에서 웃고 있는 수진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그 뒤 나는 일을 마친 뒤 과장과 가끔 회사 부근의 피시방에서 'WAR ROCK'을 하며 함께 시간을 보냈다. 윈도라는 영어자막이 뜨면서 퍼런색 화면이 떴다. 피시방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컴퓨터 창에 펼쳐진 장면과 대화를 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화면을 보며 웃는 사람, 인상을 찌푸린 사람, 입술을 실그러뜨리며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사람 등 표정은 갖가지였다. 모두들 키보드를 다급하게 누르고 있었다. 나는 게임을 멈추고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나마나한 복학수속을 또 훑어보았다. 홈페이지 창 사진에는 대학생들이 책을 안고 활짝 웃으면서 본관 앞 계단을 밟고 내려오는 모습들이 실려 있었다. 사진 속의 학생들은 나보다 몇 살 적을 뿐일 텐데 나는 그들보다 열 살 이상이나 더 먹어버린 느낌이었다. 아르바이트 일거리들을 훑어보았다. 시급을 많이 주는 곳은 여전히 치킨 배달원이었다. 복학을 한다는 것은 치킨 배달원이 된다는 뜻이었다. 나는 옆자리에 앉은 과장의 창을 엿보았다. 과장의 창에는 ‘GAME OVER'라는 자막이 깜빡거렸고 과장은 의자에 기대 졸고 있었다. 컴퓨터의 알록달록한 화면은 충혈 된 눈동자 같았다. “영수증입니다.” 과장은 여자에게 창 설치대금 영수증을 내민다. "한 번 확인해 보시고 문제가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하십시오, 그럼.” 과장은 접은 사다리를 옆구리에 끼고 현관을 향해 걷는다. 여자는 아무 대꾸를 하지 않고 거실 베란다 창틀을 잡고 서서 바깥을 바라본다. 어둠이 꽉 찬 창은 맑은 거울이다. 거기에는 과장의 뒷모습과 창턱을 딛고 선 여자의 모습과 공구함을 들고 두리번거리는 내 모습이 비친다. 여자는 베란다로 내려서서 창을 손으로 쓰윽 문지른다. 여자가 창에 다가갈수록 부스스하게 흘러내린 머리카락에 싸인 여자 얼굴이 또렷하게 비친다. 여자는 창밖에 서 있는 것 같다. 여자가 달그락거리며 갈고리를 만지는 소리가 창에 노크를 하는 것처럼 들린다. 여자가 창을 열자 빗소리가 세차게 들린다. 방충망 얼개 사이로 빗물이 들쳐드는데도 여자는 창 앞에서 꼼짝 않고 그대로 서 있다. 나는 실리콘 튜브와 커팅 칼을 주워 공구함에 챙겨 넣고 여자에게 인사말을 건넨다. 여자는 내 말을 듣지 못했는지 뒤돌아보지 않는다. 바지 뒷주머니에서 핸드폰 진동이 온다. 엄마다. 전화기를 귀에 대면서 현관문을 나온다. 빗줄기는 굵다. 아파트 뒤 공터에 주차된 차는 우리 트럭뿐이다. 나는 조수석 뒷자리에 공구함을 놓고 의자 레버를 당긴다. 과장은 트럭 시동을 걸어 둔 차창 앞으로 가 와이퍼를 들고 젖은 방문차량 스티커를 걷어낸다. 차창에 흐릿하게 비치는 과장의 얼굴에 창 앞에서 꼼짝하지 않던 방금 전의 여자 모습이 겹쳐진다. 창에만 붙어있는 사람은 여자만이 아닌 것 같다. 앞이 너무 어둡다. 나는 운전석으로 몸을 기울여 쌍 라이트를 켜준다.(끝) 부산 2012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 ‘끌’로 당선  
242 꽃손/박종희 file
편집자
2865 2012-10-02
12.10월 29호 수필  꽃손 박종희 베란다에 가득 찬 볕살에 눈이 부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화분으로 꽉 차있던 자리에 햇발이 그림자놀이를 하고 있다. 생일이나 결혼기념일같이 이름 있는 날 들어온 화분과 화원을 지날 때마다 사들인 화분이 오십 개가 넘었다. 아침저녁으로 화분을 들여다볼 때면 흐뭇했다. 그러나 예쁜 꽃을 보며 호사를 누리는 만큼 관리하는 것이 일이었다. 계절이 바뀔 때면 화분을 들여놓거나 분갈이하는 일이 어려웠다. 또, 추운 겨울에는 화초가 얼어 죽는 일도 있었다. 내 생활이 나태해지면 화초도 덩달아 게을러졌다. 이파리도 시들고 꽃도 피우지 않았다. 하나, 둘 말라비틀어지는 화초를 볼 때마다 화분정리를 해야겠다고 벼르다가 작정하고 베란다로 나섰다. 우선, 화분에 꽂혀있는 꽃손을 모두 뽑았다. 기린초와 베고니아, 수선화 등, 가늘고 여린 꽃나무가 쓰러질까 봐 세워놓은 꽃손이 제법 많았다. 플라스틱이나 철사로 된 것과 다급할 때 임시로 꽂아 쓴 나무젓가락도 눈에 띄었다. 그렇게 요긴하게 쓰이던 꽃손은 묶어 따로 두었다. 몇 차례 끙끙거리며 내다 놓은 화분을 지나가던 동네 아줌마들이 한개 두개씩 들고 갔다. 어떤 이는 나한테 화분을 가져가도 되겠느냐고 하더니 아예 열댓 개를 가져가는 이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 많던 화분이 순식간에 모두 없어졌다.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풍경이 정말 신기했다. 요즘은 버리는 일이 더 큰 일이라 어떻게 처치할 것인가 고민스러웠는데, 뜻밖에도 쉽게 해결된 것이다. 옮기다 깨진 화분을 버리고 들어오며 나한테 쓸모없어진 물건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필요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화분을 없애고 나니 새로운 공간이 생겼다. 학교에서 돌아온 딸애가 집 안이 훨씬 너르고 깨끗해 보인다고 좋아했다. 화초 때문에 속 태우는 나를 못마땅해하던 남편도 아주 잘했다고 했다. 서운해할 줄 알았던 두 사람이 좋아하니 스산하던 기분이 좀 나아졌다. 어릴 때부터 유난히 화초를 좋아했다. 친정 부모님도 꽃을 좋아하셨다. 자랄 때 집 마당에 꽃이 많아 우리 집을 꽃집이라고 했었다. 그래서 인지 길을 걷다 작은 풀꽃을 봐도 그냥 지나치질 못했다. 이른 봄, 돌 틈에 피는 제비꽃을 보면 집에 데려오고 싶어 안달했다. 그런 내 성격을 아는 남편이 가끔 종이컵에 제비꽃을 심어 내밀기도 했다. 화초를 좋아하다 보니 마치 화초가 집주인 같았다. 한 개, 두 개 늘어나던 화분이 거실을 넘어 안방까지 차지했다. 여름철엔 모기가 생겨 안 좋은 점도 있었지만, 꽃이 필 때면 참 좋았다. 눈을 뜨면 콧속으로 전해오는 향기와 황홀한 자태에 시름을 덜곤 했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색색깔의 바이올렛은 한 번 피면 꽤 오래도록 지지 않았고, 까다롭게 구는 프리지어의 향기는 잠결에서도 매혹적이었다. 남편과 등산하다 가져온 야생 난도 일 년 내내 하얀 꽃을 피웠다. 아주 작고 가냘파 보기에도 안쓰러운 난이라 더 애정이 갔다. 거기에 질세라 제라늄과 시클라멘, 베고니아도 다투어 꽃을 피웠다. 어쩌다 한 번씩 물을 줘도 잘 크는 사랑 초와 기린 초, 영산홍, 공기 정화에 큰 몫을 하는 스마트 필름도 오래도록 정이 들었다. 다육 식물도 서른 개가 넘었다. 키우기 쉬워 주부들한테 인기 있는 다육선인장을 한꺼번에 서른 개나 사서 분갈이한 적이 있다. 아주 작아 앙증맞은 선인장을 화분에 옮겨 심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퇴근하고부터 시작한 분갈이가 새벽 3시가 되어서야 끝났다. 화분을 선반에 올려놓고 나니 허리가 펴지지 않았다. 덕분에 며칠을 호되게 앓았다. 딸애는 그렇게 미련스러운 엄마 때문에 화초가 보기 싫다고 했다. 화분을 정리하고 다시 며칠을 앓았다. 말이 오십 개지, 화분 오십 개 옮기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버릴 때는 몰랐는데 날이 갈수록 팔이며 어깨, 허리가 아파 꼼짝도 하지 못했다. 내 살처럼 아끼던 화초를 버려야 했던 마음마저 같이 아팠다. 여기저기 파스를 붙였더니 꽃향기 대신 집안에 온통 파스 냄새가 진동했다. 이번에도 딸애는 매련스럽게 혼자 내다 버려 병이 났다고 툴툴거렸다. 화분을 버리고 나서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이유 없이 자주 베란다를 나가보는 일이다. 물을 줄 일도, 꽃 손을 세워 줄 일도 없는 데 말이다. 아마, 10년이 넘도록 몸에 배어 있던 일이라 그런가 보다. 이제 나는 여유로워졌다. 덕분에 화분에서 늘 벌쓰던 꽃손도 한가해졌다. 요즘은 나도 꽃손도 할 일 없는 ‘우두커니’가 되어버렸다. 그렇지만, 아직도 화원을 지나는 길은 자유롭지 않다. 나도 모르게 눈길이 꽃으로 가고 자꾸 발걸음을 멈춘다. 언제쯤이면 이런 마음에서 자유로워지려는지 모르겠다.  약력 2000년 월간문학세계 수필 신인상으로 등단 제3회 서울시 음식문화개선을 위한 전국수필공모전 대상수상 제5회 올해의 여성문학상 수상 제10회 전국시흥문학상 우수상 수상 외 다수 충북여성문인협회 부회장, 충북수필가협회 회원, 한국산문작가협회 회원, 한국작가회의 회원, 한국작가회의 충북지회 사무국장 충청일보, 중부매일 수필연재, 현 충북일보 ‘에세이 뜨락’ 연재 중 저서: 나와 너의 울림, 가리개 이메일: essay0228@hanmail.net  
241 숨은 꽃 외 1편/남태식 file
편집자
2763 2012-10-02
12.10월 29호 시  숨은 꽃 어떤 이에게 사랑은 벼랑 끝에 핀 꽃이다. 굳이 숨기지 않더라도 숨은 꽃이다. 사랑의 절정! 같은 말은 어울리지 않아라. 가슴 깊숙이 감춘 손은 오래 전에 자라기를 멈추었으니. 그리하여 어떤 이에게 사랑은 손닿을 수 없는 벼랑 끝의 영원히 손닿지 않는 꽃이다. 꽃과 새가 있는 집 1. 꽃들이 창백하다. 이 집에 든 꽃들이 창백하다.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남색 보라 이름만으로도 앞뒤 어떤 꾸밈말 없이 색깔만으로도 어울림만으로도 어여쁘고 빛나는 이름들이 이 집에 들어 창백하다. 하늘의 무지개 하늘의 별도 이 집에서는 경쟁이다! 전쟁이다! 모두, 창백하다. 2. 일요일, 봄맞이 산행을 갔다. 마른 나무껍질을 비집고 틘 어린 새들을 보았다. 무엇을 버티는 것일까, 날개를 한껏 오므린 어린 새들. 내려올 때 보니 올라갈 때보다 더 날개를 말며 웅크리고 있었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 뒤집힌 계절의 깡 추위와 오랜 가뭄이 이 어린 새들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감옥이구나, 무덤이구나. 뒤이어 떠오르는 아이 생각. 0740 0730 0720 0710 0700 에서 2300 2310 2320 2330 2340 까지. 아이는 어제에 이어 오늘도 학교에 갔다. 3. 나의 꽃잎, 너의 꽃잎, 나의 깃털, 너의 깃털, 하나만이라도, 창백한 꽃잎, 오므린 깃털, 그러하더라도, 하나만이라도, 내밀어, 내밀게 바꾸면, 자꾸 내밀고 또 내밀게 바꾸면, 처음엔 한 이파리 스치듯 지나는 가벼운 바람일지라도, 내민 꽃잎 내민 깃털 함께 꼭 잡게 바꾸면, 협력의 물결 고요하게 일렁이고, 공생의 바람 반란처럼 온 이파리 흔들어, 마침내 바뀌는 집, 마침내 따라 다 바뀌는 세상. 우선 하나만이라도, 내밀어, 내밀게 바꾸면, * 남 태 식 약력 : 2003년『리토피아』 등단, 시집 『속살 드러낸 것들은 모두 아름답다』『내 슬픈 전설의 그 뱀』, 리토피아문학상 수상 주소 : 791-754 경북 포항시 북구 대안길 56, 103동 1408호(용흥동 우방타운) tsnbd@hanmail.net  
240 무화과無花果 외1편/최순섭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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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40 2012-10-02
12.10월 29호 시  무화과無花果 꽃 피울 새 없이 아이들 낳고 세월만 흘렀다. 서러워 마라 지상의 나무들아 뼈마디 꺾이고 흐느끼는 것이 어디 너뿐인가 언제 우리 환한 꽃 한 번 피워 낸 적 있더냐 피웠어도 아주 잠시 세상에 왔다가기나 한 건지 꽃 목이 떨어지고 진물 고인 잔가지에 새순이 돋자 비로소 열리는 하늘 그래서 지상의 나무들은 모두가 無花果, 크든 작든 상처 끝에는 열매가 달렸다. 훈장처럼 달랑달랑 새하얀 구름젖 물고 달달한 숨 내쉬고 있다. 드럼통 화독 어둑새벽 인력시장에 서성이는 사람들 누군가 불씨하나 들고 와서 우두커니 서있는 드럼통에 불을 사른다. 온갖 잡동사니 어둠을 쏘시개로 활활 타오르는 화통 세상 사람들은 날아가는 불티를 보며 높이 올라갈수록 재수가 좋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모닥불은 식어가며 말한다. 내 비록 재가 될지라도 불씨는 남겨야지 눈감고 하얀 재가 되기를 기도한다. 화독보다 더 뜨거운 불씨 하나 하루 일자리 찾아 떠나는 사람을 위해 얼른 자리를 떠야 할 사람을 위해 드럼통은 뜨거운 몸을 이끌고 슬금슬금 먼저 자리를 뜬다. 최순섭 : 충남 대전 출생. 1978년<시밭>동인으로 작품활동시작. 2007년 <작가연대> 등단. 고양작가회 이사. 창작21작가회, 열린시조학회 회원. 주소 : 서울 은평구 불광동 미성아파트 5동 205호 전자주소 : css03@naver.com  
239 물방울 외1편/유준화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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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8 2012-10-02
12.10월 29호 시 물방울 내가 잠시 당신의 속으로 들어갈 수 있고 당신이 잠시 나의 속으로 들어올 수도 있겠군요 당신과 내가 잠깐 동안 하나가 될 수도 있고 당신과 내가 잠깐 동안 남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겠지요 내가 흘리는 한 방울 눈물이 당신의 마음 일 수도 있고 당신을 따라가는 내 마음이 금강물이 될 수도 있겠군요 우리 서로 흐름대로 있어도 천년을 같이 한다는 말이겠지요 학춤 오백원짜리 동전 두 개가 점퍼 주머니에서 엎어지고 잦혀지며 춤을 추었다 산마루에 해가 다리를 접을 때까지 나는 혼자서 경보 마라톤 선수처럼 숨 가쁘게 돌아다녔고 학 두 마리는 내 왼쪽 유두 위에서 포개졌다 떨어졌다 살을 비비며 날갯짓을 했다 한때는 화투장 솔광의 학처럼 두 다리를 세우고 목을 길게 늘여 입신양명을 꿈꾸며 소식을 기다린 적 있으나 그것은 물 건너 간 지 이미 오래되었지 불을 끄니 방안은 온통 칠흑의 바다 이쪽에서 저쪽 끝까지 별빛도 잠들었다 들숨과 날숨들이 유빙처럼 떠도는 물결 위에서 한 평의 구명정에 올라 표류하는데 작은 불빛 하나가 멀리서 다가온다 등대 불빛인가 아니면 학의 머리인가 학은 승천 초월 장수 등을 의미한다 했는데 학의 등에 오르면 선계를 넘나든다 했는데 이 검은 속세의 바다에서 연뿌리처럼 선계의 꿈이라도 꾸는 것인가 노송처럼 늘 푸르지 못한 내 점퍼 주머니에서 학 두 마리는 내일 다시 춤판을 벌일 것이고 나는 갯벌을 돌아다니느라 바쁠 것이다 약력 -충남 공주생 -.2003 불교문예 -한국시인협회 회원 -한국문인협회공주지부장 -.시집:초저녁 빗소리 울안에 서성대는 밤. 등 공저집 다수 -주소:공주시 옥룡동 중골4길 9-1호  
238 꽃무릇 외1편/고미숙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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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61 2012-10-02
12.10월 29호 시  꽃무릇 고미숙 붉은 울음이 터져 나왔다 종기처럼 박혀 있던 가슴앓이가 긴 목을 빼들고 소슬바람에 흔들리기도 하면서 길게 한숨 내뱉었다 나는 선운사 계곡 물속에서 울고 있는 일그러진 꽃이 나인 줄 모르고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다 어둠이 몰려와 시린 몸속으로 흘러드는 물소리 노을 흠뻑 머금은 바다로 자라 파도의 손톱 날을 세우고 있는지 속이 붉게 파여 갔다 나를 만나고 있는 그도 내가 저인 줄 모르고 붉은 울음 터뜨리며 또 다른 나를 부르고 있었다 눈보라 속을 푸른 맨발로 걸으며 찾아 헤매던 이가 물거울 속에서 울고 있는 나인 줄 모르고 빨간 풍선 숨 가쁘게 날아오른 빨간 풍선이 0시의 가쁜 숨을 거두네 터지네 눈 내리네 마주 앉아 새벽을 맞자던 떡국을 먹자던 맹세가 거품의 날개를 달 줄이야! 조문객처럼 밀려드는 눈보라 가슴에 조등을 켜 달고 여자가 흰 국화꽃잎을 뜯어 하늘에 던지네 향기로워라 흩떨어지는 맹세들! 묘비명도 없이 바람의 골짝에 묻히네 전북 익산시 목천동 한스빌아파트 102동 1101호 sonagiiiii@hanmail.net  
237 가을을 팔다 외1편/이설야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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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3 2012-10-02
12.10월 29호 시  가을을 팔다 이 설 야 서경주역에서 동대구행 무궁화호 열차를 탔다 열차 카페에 앉아 나는 준비해간 캔맥주를 마시고 열차는 성숙한 들판과 산의 풍경을 바퀴에 감으며 새로운 풍경들을 천천히 풀어놓으며 달린다 열차는 운치있는 시골마다 늘어선 가을을 도매금으로 사서 도회지 역과 사람들에게 내다 파는 것이다 이문이 많던 적던 별 상관 않고 가을을 꼭 사려는 사람들에게는 값을 깎아 달라면 깎아주기도 하고 돈이 없는 사람에게는 외상도 준다 행선지인 동대구역을 빠져 나오니 역광장에 열차 두 량 분량의 벼가 줄을 맞춰 전시되어 있었다 열차가 벌써 가을을 팔아 놓은 것이다 아마, 올해는 코스모스가 제일 비쌀 것 같다 가슴통발 씨티 필름같은 가슴 뒷면을 오려내 통발 하나 만들었다 한번 들어온 것은 절대 빠져나갈 수 없다 새 통발을 감포 가을바다 파도의 경계 어디메쯤 매어놓고 전에 쳐 놓은 통발을 걷으니 등대 밤바다 수평선 뱃고동 집어등 소줏병 취기 등이 꼬리지느러미 하나씩을 달고 통발 속에서 파닥거리고 있었다 이만하면 괜찮은 수확이다 詩 두어 편 꺼리는 될 것 같다 오늘 놓은 통발에도 많은 詩語들이 잡히길 바라며 가을바다를 뒤돌아보며 또, 돌아보며 시멘트 견고한 회색 도시로 돌아와야만 했다 약력 1. 출생지: 경북 경주 출생 2. 본명: 이종문 3. 2007년 불교문예신인상 수상 4.시집: 수채화로 그린 여인 5. 현대불교문인협회 회원 나. 주소: 경주시 황성동 893 황성주공2차아파트 205동 201호 다. 전화번호: 라.메일 주소: moon2312@hanmail.net  
236 책임(責任) 외1편/김재수 file
편집자
2688 2012-08-31
12.09월 28호 수필 책임(責任) 김재수 어린 시절 할아버지는 신발을 새로 사 오시면 꼭 고무신 코에 빨간 색실로 수를 한 뜸 놓아 주셨습니다. 이런 일은 초등학교를 거의 졸업할 때까지 이어졌고 심지어 중학생이 되어 운동화에까지 가장 잘 보이는 곳에 표시를 해 주셨습니다. 새 신발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려는 할아버지의 배려였지만 난 빨갛게 수가 놓인 그 신발이 정말 싫었습니다. 우리 모두 경험이지만 그 시절엔 신발도 많이 잃어버렸지요. 학교에서 신발을 잃고 맨발로 터벅터벅 신작로를 걸어오는 날은 발바닥이 아픈 것 보다 어른들에게 들어야 할 꾸중이 무서워 가슴은 더 무거웠습니다. 이런 아픈 경험들을 가끔 생각나게 하는 곳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식당입니다. 다 그렇지는 않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식당을 들어가다 보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이런 글귀가 보입니다. ‘신발 분실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이 글귀를 보는 순간 솔직하게 그 식당을 나와 버리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하긴 장례예식장에 갈 때는 ‘헌 구두를 신고 가라’는 우스갯말도 있으니 ‘아직도 우리 사회가 신발을 훔쳐가는 사회인가’ 하고 쓴 웃음을 웃곤 합니다. ‘책임(責任)’이란 ‘맡아서 행해야 할 의무나 임무’라고 사전적 의미는 말합니다. 흔히 ‘고객은 왕’, ‘고객은 황제’라는 말을 합니다. 그렇다면 찾아오는 고객의 신발은 식당이 당연히 책임져 주는 것이 원칙입니다. ‘왕 같은 고객’을 향해 면전에서부터 ‘당신의 신발은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은 고객을 우습게 보는 처사입니다. 오늘날 대부분 회사의 경영방침은 ‘고객중심’입니다. 다시 말해 고객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생존이 가능합니다. 이 고객중심이 관공서의 민원실에도 적용되어 고객만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고객의 신발을 책임지지 않는 다는 것은 고객중심이 아니라 결국은 ‘주인중심’의 영업일뿐입니다. 물론 식당에도 할 말은 있습니다. 분실한 신발의 종류, 브랜드, 가격 등 주인으로서는 알지도 못하는 내용을 고객의 말만 듣고 보상해 주는 일도 쉽지는 않습니다. 어떤 가게는 분실한 신발을 보상했더니 이를 악용하는 고객도 있더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고객의 신발을 보상해 주었을 때 고객이 가지는 신뢰의 가치와 또한 보상으로 인한 금전적 손해 중 과연 어느 것이 유익한 것인가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입니다. 오늘도 저녁 시간에 식당엘 들렸습니다. 들어가는 정면 신발장 위에 어김없이 ‘신발 분실은 책임지지 않습니다.’라는 표어가 눈에 들어옵니다. ‘귀중한 신발은 주인에게 맡겨 주십시오. 잘 보관하겠습니다.’ 이렇게 멋진 표어가 신발장 위에 붙어있는 가게를 상상하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일까요? 허허 글쎄요. 어떤 경매(競賣) 경매란 ‘물건을 사려는 사람이 여럿일 때 가장 높은 값을 부르는 사람에게 파는 일’을 말합니다. 경매의 종류도 다양합니다. 고미술품이나 보석과 같은 고가의 물건도 있고 때로는 연예인, 스포츠 맨, 또는 사회적인 지위를 가진 이들이 평소 아끼는 물품들을 목적있는 행사에 내 놓았을 때 경매가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어느 TV 에서는 훌륭한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에게 적절한 경제적 이익을 보장 하고 기업은 아이디어를 경매를 통해 얻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매는 사고 판 사람은 기쁨으로, 미처 사지 못한 이는 아쉬움으로, 이를 지켜보는 이들은 흥미로움으로 경매장을 가득 채웁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법원이나 집달관이 주도하여 동산이나 부동산을 경쟁하여 파는 경우, 물건을 싼값에 낙찰 받은 이는 기분 좋은 일이지만 파는 이의 입장에서는 가슴 아픈 현장일 수도 있지요. 그런데 참 아름다운 경매의 현장이 있었습니다. 이웃돕기 바자회가 열렸습니다. 원래는 경품으로 나온 자전거 6대를 주최 측에서 경매에 붙인 것입니다. 입담이 좋은 아마츄어 경매사가 가격을 부르기 시작합니다. 5만원부터 출발 한 가격이 조금씩 탄력을 붙이더니 이윽고 11만 5,000원까지 올라갔습니다. 첫 번의 자전거가 11만 5,000원에 팔렸습니다. 두 번째 자전거와 세 번 째는 12만원에 팔렸습니다. 이 경매를 지켜보는 손님들의 호기심도 점점 더해 갔습니다. 이윽고 마지막 자전거가 또 12만 5,000원에 팔렸습니다. 경매사는 모든 경매가 끝났음을 알렸습니다. 그 때입니다. 관중석에 앉아 있던 한 노인이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아직 경매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제가 자전거 한 대를 가져오겠습니다.” 모두들 의아한 눈으로 그를 봐라 봤습니다. 그는 어디선가 자신이 타고 다니던 중고 자전거를 번쩍 들어 무대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비록 중고 자전거지만 좋은 일에 쓰십시오.” 어쩌면 장난 끼 있는 노인의 표정을 살피던 경매사는 호기심으로 다시 경매를 시작했습니다. “ 자, 3만원부터 시작합니다.” 이렇게 시작된 중고 자전거는 마침내 6만원에 낙찰이 되었습니다. 자전거를 구입한 청년이 훌쩍 단상으로 뛰어 올라갔습니다. 그는 자전거를 끌고 한 바퀴 무대 위를 돌더니 말했습니다. “여러분! 이 자전거를 경매로 내어 주신 분에게 박수를 보내 주십시오. 비록 중고 자전거지만 좋은 일에 사용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이 자전거는 저분의 유일한 교통수단임을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이분의 고마운 뜻은 마음으로 받고 이 자전거는 다시 그분에게 돌려 드리겠습니다.” 청년은 무대 위를 내려오더니 6만원에 구입한 자전거를 선뜻 그 어른에게 넘겨주었습니다. 여기저기서 박수소리가 터졌습니다. 가을 하늘이 놀랐는지 삽시간에 저녁놀을 비단처럼 펼쳐 내렸습니다. 이웃돕기 바자회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는 아름다운 순간임을 모두들 가슴으로 마음껏 누리고 있었습니다. 상주아동문학회장. 낙서가 있는 골몰, 겨울 일기장, 농부와 풀꽃 동시집이 있고 사랑이 꽃피는 언덕, 하느님의 나들이 동화집과 트임과 터짐 산문집이 있음 khsal1145@hanmail.net 상주시 상산로 71-20 054-533-1115  
235 상상과 비밀/고창근 fil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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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85 2012-08-31
12.09월 28호 소설  상상과 비밀 * 아내의 전화를 받았을 때, 발신자는 아내가 아니었다. 아내의 이름이 액정화면에 떴기에 그는 당연히 아내라 생각했는데 전화를 건 사람은 그가 사는 아파트 옆 동의 정미 엄마라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떨리는 목소리는 곧 울음이라도 터뜨릴 듯 했다. 그때 그는 세희와 함께 21년 된 위스키를 막 마시려던 참이었다. “어쩐 일이시죠?” 그의 건조한 말에 정미엄마는 잠시 말을 잇지 못 했다. “저, 현수 엄마가…… 우리 집에 있는데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두서없는 말이었다. 그는 위스키를 입에 털어놓고 혀로 한 바퀴 굴리다 꿀꺽 삼켰다. 식도에서 열이 확 났다. 세희는 잔에 술을 따랐다. “무슨 일이신지…….” 그는 샤워를 하고 속옷을 입지 않은 세희의 옷 밖으로 솟아오른 유두를 엄지와 검지로 만지작거렸다. “시내 공원에서…… 현수 엄마가…….” 정미 엄마는 말을 더듬거렸다. 그는 손을 세희의 남방 속으로 집어넣었다. 탱탱하고 탄력 있는 유방이 손 안 가득 들어왔다. “무슨 일인데요. 집사람 옆에 있어요?” 그는 유방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화난 일이 있거나 못마땅한 일이 있을 때 하는 버릇이었다. 세희의 몸이 움찔거렸다. “있는데…… 전화 받을 형편이…… 못 돼요. 하여튼 빨리 집에 오셨으면…….” “대체 무슨 일입니까?” 정미 엄마의 침이 넘어가는 소리가 휴대폰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러니까 공원에서…… 당했어요. 현수 엄마가.” “당하다니요?” 명확하지 않은 말투에 짜증이 났고 또다시 유방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세희는 또다시 움찔거렸다. “하여튼 빨리 집에 왔으면 해요. 1208동 1513호에요. 그럼 이만…….” 그는 어이가 없었다. 웃음이 나오려고 했다. 그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삼키며 위스키를 단숨에 들이켰다. 저녁 무렵 시장을 만나 우회도로 건설 건을 타협 짓고 오던 길이었다. H사와 D사가 함께 뛰어들었지만 그가 저번에 준 미끼는 유효했다. 타협되자마자 그는 또다시 큰 미끼를 입에 털어주었다. 시장은 현금만 고집했다. 수표도 차명통장도 싫어했다. 하지만 그는 미끼를 줄 때마다 녹음하는 걸 잊지 않았다. 아마도 교활한 시장은 그 정도는 알고 있을 터였다. “조 사장 걱정 마. 내 임기 동안만이라도 팍팍 밀어줄 테니.” 시장은 돈이 든 가방을 자신의 책상 밑으로 밀쳐놓고는 필요이상 큰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저 또한 시장님이 다음 선거 뿐 아니라 재직하시는 동안 성심성의껏 모시겠습니다.” 그 또한 필요이상으로 목청을 높였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비록 시골이라 해도 제법 규모가 큰, 아버지가 창업한 건설회사에 들어와 지금껏 고향에서 있어 왔으니 초 중 고 동창만 해도 어마어마했고 회사를 운영하면서 다진 인맥 또한 그 못지않았다. 시장은 그런 그의 위치를 잘 꿰뚫고 있었다. 그는 세희를 침대로 데리고 갔다. 평소와는 좀 이른 편이었다. 시장과 담판을 짓거나 크거나 작거나 공사가 끝나면 그는 세희에게 왔고 머리꼭지가 돌도록 술을 마셨고 미친 듯이 섹스를 했다. 그러나 지금은 술은 몇 잔 마시지 않은 상태였다. 세희는 집에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이제, 세희와 헤어질 때가 되었구나, 그는 생각했다. 그는 빨리 집에 가야 되는데, 마음이 조급해지자 세희를 침대에 거칠게 눕혔다. * 전화를 끊고 나서 정미 엄마는 안방에 귀를 기울였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현수 아빠에게 전화를 한 게 잘 한 짓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냥 이대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지 않을까. 고소를 하고 범인을 잡는다 한들 현수 엄마가 당한 상처가 치유될 것인가.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 아무도 모르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당한 사람은 결국 가정이 깨진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가정이 깨진다면 범인을 잡은 들 무슨 소용인가. 현수 엄마를 우연히 베란다 너머로 보았다. 밤 9시 뉴스가 끝나고 연속극을 하기 전 막간을 이용하여 화분에 물을 주고 있을 때였다. 흘린 물을 훔쳐내고 베란다 밖을 바라보는데, 한 여자가 비틀거리며, 신발도 신지 않은 채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오는 게 보였다. 어두컴컴한 밤인데도 흰 색 바탕에 세로 보라색 줄무늬 운동복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 헝클어진 머릿결이 나중에 들어왔다. 눈에 익었다. 아니. 그녀는 순간 현수 엄마라는 걸 알았고 직감으로 무슨 일이 생겼구나 싶었다. 걸레를 베란다에 둔 채 밖으로 나갔다. 역시였다. 비틀거리며 주차장을 가로질러 오는 사람은 현수 엄마였다. “왜 그래, 현수 엄마.” 그녀가 다가가 어깨를 잡았을 때 현수 엄마는 흠칫했다. 눈의 초점은 풀려 있었고 서 있는 것조차 힘겨워 했다. 머리는 헝클어졌고 상의와 바지에도 나뭇잎과 마른 풀이 묻어 있었다. 그녀는 직감했다. 당했구나. “공원에 갔었어? 현수 엄마?” 현수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공원은 시내에 있는 야트막한 산에 꾸며져 있는데 몇 개월 전부터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대낮에 운동을 하던 주부가 강간을 당하여 발가벗긴 채 나무에 매달려 있었다는 둥 바바리가 나타난다는 둥 하는 소문이었다. 공원에는 산 둘레를 따라 산책길이 놓여 있고 중간 중간에 운동기구도 설치되어 있어 시내 사람들이 자주 찾던 곳이었다. 그녀와 현수 엄마랑 더불어 7공주 회원들과 자주 공원에 운동하러 갔었다. “자자. 일단 들어가자.” 그녀는 현수네 집으로 가는 대신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왔다. 그리고 침대로 가 눕혔다. “어찌 된 거야? 정말 공원에서 오는 길이야?” 그녀가 재차 다그쳤을 때 그녀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그녀는 아차, 했지만 이미 나온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었다. 현수 엄마는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경찰에 신고해야지. 병원도 가고. 잠깐 우선 마음부터 안정하고.” 그녀는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허둥대었다. “참. 현수 아빠 퇴근했어? 집에 있어?” 현수 엄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를 어째. 그럼 빨리 연락해야지.” 그녀의 말에 현수 엄마는 망설이는 듯 하다가 바지에서 휴대폰을 꺼내 주었다. “몇 번?” “2번.” 그녀는 안방을 나와 2번을 누르는데 자꾸만 허공을 누르는 듯 했다. 현수 아빠는 피곤한 목소리로 딱딱하게 전화를 받았다. 당했다고 했는데도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그래도 그렇지, 괜히 전화했나. 그녀는 전화를 끊고 휴대폰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안방 문을 열어 보니 현수 엄마는 팔을 이마에 얹은 채 눈을 감고 있었다. 그녀는 조용히 문을 조금만 열어 놓고 거실에 앉았다. 밤에는 운동하러 잘 가지 않는데 웬일로 갔을까 싶다. 운동하러 가거나 여성회관이나 도서관에 문화강좌 듣는 멤버들이 있었다. 현수 엄마를 비롯해 일곱 명이 되었다. 모두들 작은애가 이제 대학생이 되어 집을 떠난 상태였다. 큰애들은 군대를 갔거나 졸업반이었다. 그래서 그녀들은 오전에는 여성회관이나 도서관에서 문화강좌 한 강좌를 듣고 점심엔 어느 한 집에 가 비빔국수를 비롯해 전을 부쳐 먹었고 새로 개업한 집에 가거나 했다. 오후엔 주로 공원에서 운동을 했다. 이제 현수 엄마는 함께 못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아내는 형사와 마주앉자 고개를 숙이고 불안해했다. 그가 옆에 앉아 어깨에 팔을 두르고 안심을 시켰으나 여전히 아내는 가늘게 떨었다. “허 참. 이런 시골에서도.” 형사는 진심으로 걱정해 주었다. 그러면서 그때 일을 자세하게 말해 주어야 한다고 했다. “여자 형사 분은 없습니까?” 그는 항의조로 말했다. 아무리 형사라지만 그때 그 상황을 남자에게 상세하게 말해야 한다는 게 그로서는 납득이 되지 않았다. “전담 형사에는 여자가 없습니다. 원하신다면 다른 과 여경을 참석시키지요.” 형사는 어떻게 하겠냐고 그를 쳐다보았다. 그가 뜸을 들이자 형사는 말을 이었다. “물론 사장님도 사모님 곁에 계셔도 좋습니다. 오히려 마음을 안정시키는데 그게 좋을 수도 있고요.” “그렇게 하지요. 되도록 빨리 끝내 줬으면 좋겠습니다. 아내가 힘들어 하니.” “예 그러지요.” 형사는 전화기를 들고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그는 심한 흡연 욕구가 일었으나 꾹 참았다. 도저히 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아내에게 닥치다니. 말로만 듣던 이야기였다. 내 아내에게, 살림밖에 모르는 순진한 내 아내에게. 처음 전화가 왔을 때 당했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 했다. 당하다니. 뭘? 누가? 아내가? 설마, 그랬다. 근데 이게 현실인가. 정말이지 옆에 범인이 있다면 갈기갈기 찢어도 속이 후련하지 않을 것 같았다. 잠시 후 30대로 보이는 제복을 입은 여경이 왔고 형사는 조사실로 가자고 했다. 그는 여전히 아내의 어깨를 팔로 두른 채 조사실로 들어갔다. 조사실은 책상과 의자 뿐 다른 사무기구는 없었다. “조사 내용은 모두 녹화가 됩니다.” 형사는 여경을 옆에 앉히고 아내에게 마음 편하게 가지라는 투로 말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불쾌한 마음은 떨쳐버릴 수 없었다. 여경이 비록 옆에 있다손 치더라도 조사하는 사람은 남자였다. “여자 분께서 조사하시면 안 됩니까?” 그는 항의 비슷하게 말했다. “그건 좀 곤란합니다. 최대한 사모님의 입장을 고려해서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여경도 그에게 이해하라고 했다. 그는 아내의 어깨를 손바닥으로 톡톡 두드렸다. 나가고 싶다. 조사고 뭐고 그냥 집으로 갔으면 싶었다. “이름은요?” “채연희.” 아내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좀 더 크게 말씀해 주시고요. 주소와 주민번호 말씀해 주세요.” 아내는 고개를 숙인 채 말을 더듬거렸다. 그는 아내의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럼. 일시와 장소 자세하게 말씀해 주시고요.” 형사는 컴퓨터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녁 아, 아홉 시경에, 시, 시민 공원에서…….” “시민 공원 어디요? 정확하게 말씀해 주시면.” “산, 산책길에요. 크, 큰 나무 있고…… 운동기구 있는데…….” “혼자 갔습니까?” “예.” “왜 갔지요?” “우, 운동하러요.” “평소에도 자주 가십니까?” “예.” “음. 범인의 얼굴은 보셨습니까?” “아뇨. 뒤, 뒤에서…….” “어떻게요. 좀 자세히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뒤에서 어떻게요. 흉기는 있었나요?” “모, 모르겠어요. 갑자기 입을 마, 막고…….”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도저히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낯선 사내에게 그런 일을 상세하게 말하다니. 그는 지금 아내가 강간을 당하고 있는 것처럼 진저리를 쳤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형사가 아무리 친절하고 상냥하게 대한다 해도 이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청사 밖으로 나와 모래가 들은 단지 곁으로 가서 담배를 빼물었다. 아직도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는 냉정하자 싶었다. 어쩌면 지금 이런 치욕보다도 더 큰 치욕이 있을 거라는 예감이 들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 범인을 잡는 게 목적이 아니었다. 일은 벌어졌고 어떻게 수습을 잘 하느냐였다. 현재까지 이번 사건을 아는 유일한 사람은 정미 엄마인데 그녀한텐 절대 비밀로 해 달라고 부탁했으나 크게 신뢰가 가지 않았다. 비록 그녀가 비밀을 지켜준다 해도 좁은 시골이라 어차피 소문은 금방 날 것이었다. 아니 어쩌면 지금쯤 소문은 빛의 속도보다도 더 빠르게 번지고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어떤 놈일까. 나이 오십이 넘은 유부녀를. 가정밖에 모르는 가정주부를. 잠자리를 즐거워하지 않는 순진한 여자를. 어떤 미친놈일까. 그렇게 성욕이 일면 돈 주고 사든지. 천지가 여자투성인데.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공원에서. 혹 본 사람은 없었을까. 봤다면 아내가 자주 공원에 운동하러 갔기에 금방 아내를 알아봤을 텐데. 언제 아내와 관계를 가졌나. 그는 기억하려고 했지만 떠오르는 게 없다. 그러고 보니 아내와 잠자리를 가진 지도 오래 되었다. 아내가 어디 여자인가. 그는 고개를 살래살래 흔든다. 자신으로서는 여자로 느껴지지 않는 50대의 아내를 누가 강제로 성폭행을 했다는 게 이해가 안 되고 불쾌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연달아 담배 두 대를 피우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하지만 조사실로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는 소파에 앉아 초조하게 기다렸다. “다 끝났습니다.” 조사실에서 먼저 여경이 아내와 함께 나오며 말했다. 아내의 얼굴은 여전히 파랗게 질려 있었다. “그럼 병원에 갑시다.” 뒤따라 나온 형사가 말했다. “병원에요?” 빨리 집으로 돌아가려던 그는 불쾌한 기색으로 물었다. “검사 하셔야지요.” 그가 아내에게 다가갔을 때 형사가 물었다. “참, 그대로 오셨지요? 검사 받고 옷은 모조리 제출해 주세요.” “옷 모두요?” 그는 의아해서 물었다. “옷 모두 국과수로 보내야합니다. 그러니 사장님은 집에 가서 갈아입을 옷 가져오시고 피해자분은 함께 병원으로 갑시다.” 그는 순간 멈칫, 했다. 병원에 형사들과 함께 가다니. 제복 입은 형사들과. 어디 광고라도 할 작정인가. 그는 형사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제가 데리고 가지요.” 형사는 순순히 물러섰다. “그러세요, 그럼. 성모병원 아시죠? 미리 전화해 놓을 테니 그리로 가시고. 겉옷과 속옷은 되도록 빨리 제출해 주세요.” 형사는 친절하게 말했지만 그는 조금이라도 경찰서에 있지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서둘러 아내를 태우고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 가는 내내 내일 아침 아내의 속옷을 들고 경찰서로 가는 자신의 모습과 그 속옷을 들춰보는 남자 형사들의 모습이 겹쳐졌다. 그는 소름이 온몸에 돋으며 갑자기 몸이 서늘해졌다. * 다음날 오후 정미 엄마가 현수네 집을 방문했을 때 현수 엄마는 다행히 문을 순순히 열어 주었다. 마음이 많이 진정 된 것 같았다. “현수 아빠는?” “아침에 나갔어. 경찰서에도 가고 회사에도 가야 한다며.” “그랬구나. 하여튼 오늘 강좌에 자기가 없어 허전했어. 빨리 나아서 또 나가야지.” 현수 엄마는 무릎을 양 팔로 껴안고 가만히 있었다. “다들 왜 현수 엄마 안 나오느냐고 그러길레 어디 아픈가 보다고 말했어. 그러니 빨리 몸 추슬러.” 그녀는 현수 엄마의 눈치를 보았다. 어떻게 위로해야 할 지. 그녀 또한 어제 밤을 새웠다. “차 한 잔 줄까.” 현수 엄마가 일어서려는데 그녀가 먼저 일어섰다. “가만히 있어. 내가 탈게.” 그녀는 일어나 주방으로 갔다. 싱크대는 물기 하나 없이 깨끗했다. 아마도 아침을 해 먹지 않은 모양이었다. “밥은? 해 주……까?” “아냐. 먹었어. 애 아빠가 죽을 시켜줬어.” 그래 어떻게든 힘을 내야지. 죽긴 왜 죽어. 살아야지. 그녀는 어젯밤 현수 엄마가 15층에서 떨어지는 상상을 했었다. “이제 맘 놓고 있어. 경찰에서 범인 잡고 하겠지.” “근데 나 다시 나갈 수 있을까. 애 아빠가 이사 얘길 하던데.” 현수 엄마는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잔을 내려놓았다. “이사 가길 왜 가. 자기가 무슨 죄 졌어? 나쁜 맘 먹지 말고 빨리 몸 추슬러 예전과 같이 우리 재미나게 지내자구. 응?” 그녀가 일부러 경쾌하게 말을 하자 현수 엄마는 예전과 같이? 할 수 있을까.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럼 할 수 있지. 못 할 게 뭐 있어. 우리 모임이름이 7공주이잖아. 벌써 잊었어? 어, 하다가 20-30대 지나갔고 아차 하다가 40대 넘어 갔잖아. 이제 어어, 하다가 환갑이야.” “…….” 현수 엄마는 고개를 끄덕끄덕거렸다. “그래. 이제는 재미나게 살자구.” 그녀는 현수 엄마의 손을 잡았다. “이제 괜찮아. 어젯밤에 수면제를 먹어서 그런지 계속 잠만 와. 오늘 정신과 치료 받으러 가야 하는데.” “같이 가자. 같이 가 줄게. 다른 데는 괜찮고? 팔에도 멍이 들었던데.” 현수 엄마는 말없이 커피를 마셨다. 그런 현수 엄마를 그녀는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찌 이런 일이. 말로만 듣던 일이었다. 왜 안 나타나지? 함께 문화강좌도 듣고 운동도 함께하는 7공주 회원인 P가 말했다. 어느 날 공원에서 운동을 마치고 막 헤어지던 참이었다. 그때 공원에서 어느 주부가 발가벗긴 채 강간을 당했다는 둥 바바리가 나타난다 둥 하는 소문이 돌 때였다. 그래서 은근히 운동할 때 신경이 쓰였던 무렵이었다. 누구? 일부는 웃고 있을 때 현수 엄마가 물었다. 정말 몰라? 자기는 은근히 안 기다려? P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놀리듯 말했다. 기다리긴 누굴 기다린다 말이야. 현수 엄마가 그런 말을 했을 때 모두들 폭소를 지르고 말았다. 엉큼하긴. 자기도 은근히 기다리면서. 설마 그 얘기? 현수 엄마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을 때 또다시 폭소가 터졌다. 그러게 말이야. 기분도 꿀꾸리한데 바바리님 좀 나타나시지. 우리 같은 할마들한테 나타나겠어. 그러게 젊은 처자들도 많은데. 깔깔깔. 깔깔깔. 그래도 운 좋은 과부는 넘어져도 가지 밭에 넘어진데. 깔깔깔 앉아도 요강 뚜껑에 앉고? 깔깔깔 7공주 회원들은 배꼽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읏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흘깃거렸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봄부터 매일 강좌를 들었다. 둘째 애들이 대도시로 대학 간다고 떠나고 나자 뭔가 허전했다. 남편들은 여전히 술에 취해 외박하거나 늦게 들어왔고 그녀들은 가끔 낮에 모여도 할 얘기가 없었다. 학원 정보도 과외 선생 정보도, 수시 정보도 공유할 게 없었다. 그때 누군가 말했다. 우리 재미나게 살자. 그래 까짓거 하고 싶은 거 하며 살자고. 남편이 어젯밤 외박했다는 누군가 말했다. 그녀들은 7공주란 이름을 짓고 여성회관과 도서관에 문화 강좌를 신청했다. 월요일엔 도예를 화요일엔 글쓰기. 수요일엔 꽃꽂이…… 하는 식었다. 강좌가 없는 토요일이나 일요일에는 영화를 보았고 산에 올랐다. 마치 전쟁을 치르듯 그렇게 매달렸다. 매달리지 않으면 왠지 초조했고 불안했다. 허전함과 외로움을 이기는 한 방식이었다. 오후에 공원에서 운동을 할 때면 그 소문이 돌고 나고부터 짜릿한 쾌감도 있었다. 강간이나 바바리가 나타난다는 소문에 온몸이 오싹했지만 공포 영화를 보는 것처럼 그런데도 자꾸 운동은 가고 싶어졌다. 어쩌면 우리들은 또 다른 감정이 있었던 지도 몰라. 그녀는 현수 엄마와 택시를 타고 가다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벼락 맞을 일인 지 모르지만 그런 맘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공원에서 산책로를 걷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강간범. 생각만 해도 무시무시하고 바바리 또한 징그러웠고 무서웠다. 솔직한 심정이었다.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스멀거려오는 짜릿한 쾌감, 또한 없었다고는 말 할 수 없었다. 운동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뭔가 뒤가 허전했고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그건 분명 또 다른 감정이었다. * 일주일쯤 뒤 그는 담당 형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다시 아내를 피해자 조사를 했으면 했다. 그는 단박에 거절했다. 아내의 속옷을 형사에게 가져다주던 날 그는 결심했다. 다시는 경찰서에 오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근데 말이죠. 이상한 점이 많아요.” 형사는 공손하게 말했지만 그는 거만하게 들렸다. “이상하다니요? 대체 뭐가 이상하다는 거지요?” 그는 따지듯 물었다. “국과수 결과가 나왔는데요.” “그래서요?” 그는 무슨 결정적 증거가 나왔으면 제대로 수사하면 될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로 말씀드리긴 그렇고. 내일쯤 사모님 모시고 한번 나오시죠.” 형사의 말에는 단호함이 배어 있었다. “죄송하지만 그럴 순 없습니다. 이제 아내가 진정되어가는 중입니다.” “예 이미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다니요?” 그럼 정신과 의사도 만났다는 말인가. 그래서 아내의 정신 상태를 다 들었단 말인가. “근데 말이지요.” 형사는 뜸을 들이다 말했다. “피해자만 있고 실체가 없단 말이지요.” “무슨 말입니까, 지금.” 그는 음성을 높였다. “어쨌든 사모님을 한번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내일 한번 나오세요.” 형사는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이만 끊지요. 아내가 좋아지고 있는데.” 그는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었다. 정신과 치료를 받은 후 아내는 많이 좋아졌는 건 사실이었다. 약 덕분인지 밤에 잠을 잘 잤다. 매일 친구가 찾아오는 눈치이고 제법 표정도 밝아졌다. 하지만 문제는 자신에게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를 생각하면 집에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매일 밤 같은 침대에서 아내와 자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비록 잠자리를 하지 않지만 아내의 몸이 닿는 것이 싫었다. 이러면 안 되지 하면서도 몸은 따라주지 않았다. 이미 수년째 부부관계가 없었기에 잠자리 부담은 없다 손치더라도 이미 난 소문도 문제였다. 이사 가는 것까지 고려했지만 현 시장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에 지역 기반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특히 건설업체는 더 했다. 아무 탈 없이 자식 키우고 살림만 하는 아내 두기가 이렇게 힘들다니. 그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형사의 말을 거절하고 나서 집에 전화를 걸었다. 아내는 집에 있었다. 형사한테 전화 온 내용을 얘기하고 혹 전화할지 모르니 경찰서에 가서 조사 받는 건 하지 말라고 일렀다. 그럼요. 저도 싫어요. 다시는. 아내는 완강하게 말했다. 그는 퇴근하고 세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집에 들어갈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세희는 음대 졸업반이었는데 스폰서를 자청했다. 대금을 전공했는데 대학원 진학에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대학원 진학을 시켜주겠다고 했다. 원룸을 얻어주고 소형차를 뽑아주었다. 그리고 매월 일정액의 용돈을 주었다. 대신 그가 찾으면 언제든 달려와야 했고 그가 원하는 건 다 들어주어야 했다. 서로의 깨끗하고 공평한 조건이라고 생각했다. 세희는 학교 연습실에 있었다. 곧 집으로 가겠다고 했다. 아내는 여자가 아니었다면 세희는 완전 여자였다. 아내는 애들을 낳고부터,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임신을 한 순간부터 이미 여자가 아니었다. 그런 면에서 세희는 이제 20대 초반의 나이에 걸맞게 탱탱한 몸을 유지했고 섹스에서는 열정적으로 대해주었다. 그러고 보니 둘째 애를 가지고부터는 거의 아내와 잠자리를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성욕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또한 실제로 아내에겐 성욕이 일지 않았다. 그냥 내 아이 엄마였다. 세희는 집에 오면서 떡볶이를 사 왔다. 세희에게서 그는 떡볶이 먹는 것을 배웠다. 애들이 어릴 때 가끔 아내가 아이들에게 해 주었지만 그는 먹지 않았다. 세희는 군것질을 좋아했기에 그 또한 세희를 만날 때마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이십 대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위스키와 떡볶이.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음식을 세희는 탁자에 놓았다. 그게 세희의 매력이었다. “사모님은 어떻게 됐어요?” 세희는 위스키는 마시지 않은 채 떡볶이를 먹으며 물었다. 그는 의아하게 세희를 보았다. “왜요? 아직 범인 못 잡았대요?” 그는 다시 위스키를 한 모금 마셨다. 세희가 떡볶이를 입에 물고 그의 입에 넣어주었다. 그는 떡볶이 받아먹으며 오늘이 세희와 마지막이구나, 다른 여자를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걱정하는 마음으로 물었을 것이었다. 그렇다 해도 묻지 말아야 할 말이었다. 그가 세희의 가족관계 등 사생활에 대해 전혀 모르듯 세희도 혹 통화하는 걸 들었다 해도 그냥 모른 척 넘어가야했다. 그는 떡볶이 먹는 세희를 바닥에 눕혔다. “이거 먹고요. 배고파요.” 그는 세희 입을 입으로 막았다. 그리고 거칠게 윗옷을 벗겼다. 옷이 부북, 찢어졌다. 세희는 벗어나려고 발버둥쳤지만 그는 바지를 찢었고, 팬티를 벗겼다. 세희가 발버둥칠수록 그는 심하게 다루었다. 다음날 점심 무렵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집으로 형사가 찾아 왔다고 했다. 그는 점심 약속이 있어 막 나가려는 참이었다. 전화가 와서 경찰서로 오라는데 안 가니까 집으로 찾아왔다고 했다. 그는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아내 혼자 있는 집에 남자가 찾아가다니. 그것도 지금 몸도 안 좋은 상태인데. “부득이 찾아 왔습니다. 서로 안 오시겠다니.” 집에 도착하니 거실 소파에 앉아 있던 형사는 일어서며 양해를 구했다. “대체 무슨 일이요. 여자가 혼자 있는 집에 이렇게 막 찾아와도 되는 거요?” 그는 화가 나서 숨을 씩씩거렸다. “어제도 말씀드렸지만 사건 해결을 위해서는 한 번 더 피해자 조사를 해야겠습니다.” 형사 또한 단단히 각오한 모양이었다. 아내는 그 옆에 서서 묵묵히 있었다. “그동안 범인 안 잡고 뭐 했습니까. 이번에 알고 보니 몇 개월 전부터 공원에서 강간을 당했다는 소문도 났고 바바리도 나타난다는군요.” 그는 따지듯 말했고 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런 소문이 돌았지요. 물론 수사했구요. 하지만 그건 헛소문으로 밝혀졌습니다. “헛소문이라뇨?” 그는 뭐 이런 놈이 다 있나 하는 표정으로 형사를 쳐다보았다. “이번 사건을 조사 중 저희들도 처음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번 사건과 연관이 있는 거 같아 조사를 했습니다만.” “그래서요?” 그가 물었고 아내 또한 형사를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형사는 아내를 바라보며 말했다. “여성분들에게만 은밀히 나도는 소문이었습니다. 그동안 탐문수사도 하고 잠복도 했지만 바바리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소문만 있었지 실제로 본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여자가 강간당해 발가벗긴 채 나무에 매달려 있었다는 말도 본 사람은 없고 당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참 묘하지요.” 아내는 형사의 말을 들으며 그의 팔을 잡았다. “당신도 분명 들었잖아. 그런 일이 있었다고.” 그는 아내를 돌아보며 말했고 아내는 한 발 뒤로 물러섰다. “그건 그 공원에 가는 사람이면 다 아는데.” “물론 소문이 많이 났지요. 하지만 희한하게도 여성분들에게만 소문이 나돌았습니다. 남자 분들은 대부분 그런 소문을 모르고 있더라고요.” 형사는 아내를 보며 말했다. “그래서요?” 그는 항의조로 물었다. “우선 앉아서 합시다. 사모님도 이리 앉으시고요.” “아냐, 당신은 방에 들어가 있어.” 그는 아내를 방으로 밀었다. 아내는 머뭇거리다 형사를 흘깃 보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가 소파에 앉자 형사는 난감한 표정을 짓다 자리에 앉았다. “근데 말이죠. 이번 국과수에서 결과가 나왔는데…… .” 형사는 잠시 쉬었다가 침을 한번 삼킨 후 말을 이었다. “범인의 것으로 보이는 증거물은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증거가 없다니요?” “그러니까 피해자의 옷에 다른 사람의 지문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정액도 발견되지 않았구요. 병원의 결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피해자의 질에서도 남자의 정액이 발견되지 않았구요.” 그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요? 그럼 사건이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일어났다고 거짓말한다는 말입니까?” 그는 형사를 향해 음성을 높였다. “물론 사건은 일어났겠지요. 근데 옷이나 몸에서 타인의 흔적이 전혀 없으니 저희로서는 수사하는데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때 일어난 정황을 다시 자세히 듣고 싶어서 이렇게 왔습니다. “그날 형사님도 이 사람 상태를 직접 봤지 않습니까.” “봤지요. 팔에 타박상도 있었고 옷도 더러워져 있었고. 그래도 사모님께 그때 상황을 다시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정신과 병원에서도 그렇고.” “정신과에서 뭐라던데요? 정신과에서는 함부로 환자에 대해 다 얘기 합니까? 환자의 사생활이 있는데. 이거 원.” 이건 또 무슨 소린가 하고 그는 불쾌한 기색을 그대로 드러냈다. “수사상 할 수 없었습니다. 정신과 의사는 환자의 말이 자꾸 달라지더랍니다. 그리고 가끔 남자들에 대한 불신이 필요이상으로 강하다가도 반대로 남자들에게 관대하기도 하고요.” “그래서요?” 그는 화가 났다. “그러니까 어떨 땐 피해자로서 불안해하거나 분노를 느끼다가도 어떨 땐 전혀 피해자의 감정이 아닐 때도 있다고. 그러니까 환자가 지금 무의식적으로 어떤 혼란을 겪고 있는 게 아닌가…….” “이보시오. 그게 무슨 소리요?” 그는 탁자를 소리 나게 쳤다. “저희로서는 다양한 방향으로 수사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지요.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시더군요. 상상속의 일이 어떤 충격을 받으면 실제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고요.” “상상이요? 참, 나. 지금 뭐 하자는 말씀입니까? 그때 아내의 옷차림이나 팔에 든 멍도 봤지 않습니까?” 그는 전투를 앞둔 군인처럼 나섰다. “아, 흥분하지 마시고요. 봤지요. 근데 그 타박상이나 옷이 더러워진 것도 남의 완력에 의해서일 수도 있지만 혼자 스스로 넘어져도 그런 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지요. 또한 저희로서는 단지 의사 말을 참조할 뿐입니다. 빨리 범인을 잡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그때 상황을 좀 자세히 말씀해 주시면 수사하는데 도움이 되겠습니다.” “안 됩니다. 이제 아내가 많이 나아지고 있는 상태에서 또다시 그때 상황을 떠올리라구요. 안 됩니다.”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남자에게 또다시 그런 일을 까발리다니. 그건 치욕이었다.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범인을 못 잡는다 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요. 사모님께서는 사장님과 성관계를 가지신 지가 꽤 오래됐다고 하시던데. 맞습니까?” “그것도 정신과에서 그럽니까? 내가 왜 그런 말을 해야 하죠?” “중요합니다. 어쨌든 정신과 소견에서는 사모님은 상당기간 정신적으로나 성적으로 상당히 욕구불만이 많았다는 겁니다.” “그럼 제 아내가 강간을 당하기를 바랬다는 겁니까?” “그럴 리가 있습니까. 피해자는 있는데 목격자는 없고 증거도 없고. 그때가 사람들이 많이 운동하는 시간이거든요. 현장에 몇 번 가봤고 또한 운동하는 사람들도 만나봤지만 그 장소는 가로등이 훤하게 켜져 있는 장소입니다. 그 위쪽이 약간 어둡긴 하지만 산책길에서 보면 다 보이는 곳이지요. 또한 그 시간대에 운동하는 사람들이 많았고요. 그래서 말씀입니다. 혹 사모님께서는 혼자 자주 넘어지거나 뭐 그런 적은 없었습니까? 또한 혼절을 했다는 적도.” “혼자 넘어지다니요. 또 혼절은 왜 합니까. 제 아내는 건강했습니다.” “건강하더라도 왜 남자도 그렇고 혼자 운동하다보면 넘어질 수도 있지 않습니까.” “어이가 없군요. 자작극이란 말 같군요.” “아닙니다, 분명 사모님은 분명 일을 당했습니다. 정신과에서도 그랬고요. 다만 그게 상상일 가능성도 있겠다는 정신과 전문의의 의견이지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상상도 실제로 일어난 것처럼 느낄 수 있다더군요. 어쨌든 이해해 주시고요. 저희로서는 여러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기에.” “상상이라면 범인이 없겠군요.” “어쨌든 가능성은 낮지만 만약 상상이라도 범인은 있지요. 그렇게 된 동기가 있으니까요.” 상상이라도 범인은 있다? 동기가 있다? 그는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어쨌든 더 이상 아내의 조사는 안 됩니다. 다시는 찾아오지 마세요. 범인 잡거든 전화로 알려 주시오.” 그는 일어섰다. 형사는 머뭇거리다 일어섰다. “물론 그때 일을 떠올린다는 게 힘들 줄은 알지만 좀 더 생각해 보시고 협조해 주십시오.” “아니외다. 앞으로 다시는 그때 일을 얘기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빨리 범인이나 잡아 여자들이 맘 놓고 공원에서 운동하도록 해 주세요. 그 공원 내가 만들었지 않습니까.” “그렇군요. 사장님이 만드셨군요.” 형사는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하여튼 협조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아쉬운 듯 안방을 흘깃거리곤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그는 형사가 나간 뒤 현관문을 잠갔다. * 현수 아빠와 시장은 구속되었다. 현수 아빠의 경쟁건설업체에서 매번 관급공사에서 제외되자 시장과 현수 아빠 뒤를 밟아 비리를 캐어 검찰에 고소하였다고 했다. 현수 엄마는 빠른 속도로 회복되었다. 1심이 끝나고 현수 아빠가 대구 교도소로 이송 되자 현수 엄마는 서울 아들한테 갔다. 집은 전세를 주고 서울에서 방을 얻어 아들 밥을 해 주고 있다고 했다. 그녀가 현수 엄마가 서울 갈 때 버스터미널까지 배웅을 했다. 현수 엄마의 표정은 밝았다. “운전 배워.” 그녀가 그렇게 말하자 “그래야지 애 아빠 차 그냥 서 있는데. 정미 엄마 그동안 고마웠어. 서울 가면 운전도 배우고 여성회관 문화센터도 더 자주 갈 거야.” 현수 엄마는 밝게 웃으며 말했다. 7공주 회원들은 여전히 오전에는 여성회관이나 도서관에서 문화 강좌를 열심히 들었고 오후엔 공원에서 운동을 했다. 여전히 누군가 강간을 당해 발가벗긴 채 나무에 매달려 있었다는 소문이 돌았고 산책로에 바바리가 나타난다고 했다. 그녀들은 소문에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공원에 갔고 운동을 할 때마다 짜릿한 그 무엇을 느꼈다. 운동이 끝나고 집에 갈 때면 뒤꽂지를 누군가 당기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뒤를 돌아보거나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현수 엄마의 일은 누구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지나가는 말로라도 누구도 꺼내지 않았다. 모두들 가슴에 비밀을 품었다. 그녀는 가끔 그 일이 가물가물 떠오를 때면 진짜로 그런 일이 있었나 싶기도 했고 혹 자신이 겪은 것 같기도 해 화들짝 놀라기도 했다. * 소설집 <소도 (蘇塗)> <아버지의 알리바이> 서양화 개인전 1회. 웹진<문학마실>편집인. 한국작가회의 회원  
234 바람의 집이 쓴 편지 외1편/김종경 file
편집자
2903 2012-08-31
12.09월 28호 시  바람의 집이 쓴 편지 김 종 경 저 멀리 바다 건너에서 갯바람이 불어올 때면, 나 홀로 텅 빈 여객선을 타러 떠나고 싶다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빠져나온 오름과 내림이 수인사하는 달동네 막차라도 좋아 폐항廢港의 포구에 처박힌 낡은 등대처럼 기꺼이 옛 사랑 찾아가 무릎 꿇고 싶다 한줌 폭풍이 날갯짓 할 때도, 내 마음은 밤새 출렁이다 쓰러지고 바람났던 유채꽃의 부음이 들려오면 뭍에서 지친 마음 꿈속이라도 일출봉에 오르는데, 가끔은 석양을 물질하던 한라의 미소가 사무치게 그리울 때 있다 성산포에 홀로 앉아 해삼 멍게에 소주를 마실 때면 푸른 파도가 달려와 함께 울어주던, 내 청춘의 서러웠던 시詩들이여 태초부터 바람의 환승역이나 종점은 아예 없었으니 이젠, 조용히 뭍에서 저물어 가는 또 다른 청춘들이여 빨간 편지함이 있는 바다 건너 올레길 옆, 어느 시인의 집을 지나거든 뒤뜰에 주저앉아 바람에게 장문의 연서를 쓰자, 하여 세상 모든 바람들이 모이는 날이면 내 첫사랑 부둥켜안고 펑펑 울고 싶은 정말, 그런 날이 있다 균형 잠자리 날자, 아팠던 마음 한쪽이 출렁거린다. 오후 6시, 저물어가던 운동장도 순간 기우뚱 흔들리고. 지친 노을, 불콰해진 어깨위로 유쾌하게 쓰러졌다. 경기 용인출생. 2008년 계간 『불교문예』등단.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신문방송학과 졸업. 단국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 현 용인신문 발행인 겸 대표 주 소: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운학동 29번지 이메일: iyongin@nate.com  
233 사랑, 죽음 외1편/안현심 file [1]
편집자
3367 2012-08-31
12.09월 28호 시  사랑, 죽음 안현심 두 눈을 꼭 감고 남근을 탐하던 암사마귀는 정수리 진액까지 뽑아낸 수놈이 혼절하면 절정의 몸부림이 가시기도 전에 왕성한 식욕으로 지아비의 몸뚱이를 머리부터 아삭아삭 먹어버린다 너와 내가 완전하게 합일하는 것 한 치의 여백 없이 일치하는 것 둘이지만 하나처럼 보이는 것 나를 통해서만 몸짓하는 것 완전한 합일은 오직 죽음뿐 황제펭귄 알 낳느라 쇠약해진 아내를 바다로 보내고 아비는 넉 달 동안 알을 품지 두 발 위에 알을 올려놓고 아랫배 가죽으로 덮어씌운 후 행여 빙판을 구를까 칼바람에 베어질까 노심초사 걷지도 못하지 폭풍이 휘몰아오면 둥글게 모여서 펭귄밀크를 저장해올 아내를 기다리지 어미아비의 몸이 반쪽이 되어갈 쯤 아기들은 빙원의 주인으로 향기롭지 눈부신 설원은 우리들의 놀이터 까꿍까꿍 퐁당퐁당 꺄르륵 꺄륵 얼음왕국 누릴 이 우리밖에 없어서 황제펭귄이지 ≪불교문예≫(2004년)에 나태주․문정희 추천으로 시인이 되었고, ≪유심≫(2010년)에 최동호 추천으로 문학평론가가 되었다.  
232 최후의 詩 외1편/권화빈 file
편집자
2802 2012-08-31
12.09월 28호 시 최후의 詩 - 故 박영근 시인에게 / 권 화 빈 가진 게 없으니 아무것도 남길 게 없네 그래 , 까짓거 잘 살았어 금계랍 같은 네 인생 그냥 이승에 나 왔다 갔다고 슬며시 詩만 한 뭉치 내려놓고 - 참 홀가분하겠네 보름달 무거운지 산등성이에 누런 엉덩이를 내려놓고 꼼짝 않는다 쉬 - 를 보려나! 누래진 마음이 보름달보다 크게 부풀어 오른다 검은 소나무 숲 사시나무 몇 그루 엉덩이를 꽉 부여잡고 도대체 놓아주질 않는다 슬렁슬렁 구름에 가려지는 달 * 권화빈 경북 안동출생 / 독서운동가 / '작가정신'으로 작품활동 /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 대표 영주시 휴천3동 660-34 / music0617@hanmail.net  
231 이모를 경배하라 외1편/이영혜 file
편집자
3062 2012-08-31
12.09월 28호 시  이모를 경배하라 이영혜 “<급구> 주방 이모 구함” 자주 가는 삼겹살집집에서 애타게 이모를 찾고 있다. 고모(姑母)는 아니라 반드시 이모(姨母)다. 언제부턴가 아줌마가 사라진 자리에 이모가 등장했다 병원에서도, 시장에서도, 음식점에서도 이모가 대세다 단군자손의 모계가 다 한 피로 섞여 외족, 처족이 되었다는 말인지. 그러고 보니 두 동생들 집 어린 조카들도 모두 늙수그레한 육아도우미의 꽁무니를 이모 이모하며 따라다닌다. 이모(姨母)란 어머니의 여자 형제를 일컫는 말인데 그렇다면 분명 이모는 난데, 이모(二母), 이모(異母), 이모(易母)? 그렇다면 신모계사회의 도래가 임박했다는 것인데? “이모, 여기 참이슬 한 병.” 왁자지껄, 연기 자욱한 삼겹살집은 원시 모계씨족사회의 한마당 축제날이다. 젖퉁 출렁이며 가위를 휘두르고 뛰어다니는 저 여전사 싱싱한 사냥감을 토기 가득 담아내올 것 같아 나도 한 번 “이모 여기요”하고 손을 들어본다. 바야흐로 여족장의 평화로운 치세가 시작되었다 이모를 경배하라! 가리마 의혹 좌심실 뜨겁게 펄떡이던 시절 급진 저항 투쟁이나 혁명 따위 꿈꾸지도 못했고 헤겔 마르크스나 체 게바라 같은 분들의 방문을 받아본 적도 없지만 운동권을 우려하는 대학생 학부모가 되어서도 아니고 온건 보수 안정 같은 단어들이 어울리는 나이나 품새 때문도 아닌데 오른손잡이로 평생 우편향 되게 살긴 했어도 생계나 입신을 위해 좌향좌 우향우 한 적 없었는데 중도나 회색분자로 분류되어도 변명할 필요성을 느끼지도 않았는데 수십 년 좌측통행에 길들여져 있다가 별안간 영문도 모른 채 우측통행을 강요당하게 된 것처럼 어느 날 갑자기 전향을 했다 “왼쪽 가리마가 너무 넓고 휑해요” 헤어디자이너 L선생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40여년 좌편향 가리마를 오른쪽으로 바꿔버렸다 졸지에 우파가 되어버린 저녁 생의 반대 방향으로 어색한 빗질을 하며 새 길을 내어보는데 거울 속에서 여전히 좌파인 그녀가 고개를 갸웃 거린다 ----------------------------------------------------- 2008 <불교문예>로 등단 hident@hanmail.net  
230 심장, 침묵, 달 외1편/ 이미상 file
편집자
2773 2012-08-31
12.09월 28호 시  심장, 침묵, 달 이미상 웅덩이 밑바닥에 파장 맨 뒤에 나뭇잎의 바탕에 열매들의 씨앗에 너는 있다 느낌보다 먼저 온 색들이 얼굴 위로 지나간다 건물들은 길을 걷는 자의 발등 위에 세워졌다 열매들은 소음 속에 아직 있다 치맛자락이 감겨오는 허벅지 아래 외등이 움켜진 어둠 속에 떠도는 것은 언제나 나 거기 그렇게 있다 허파의 공기가 깨어진 뒤에 잠들지 않는 염소의 눈동자 속에 구도1) 운명의 신은 반복과 변형과 균형을 좋아한다. 21세기가 시작될 때 서울시 강남구 한 아파트에서 아들이 엄마를 살해한다. 여자들이 연속극에 빠져 있을 때 비명소리 오전 10시를 찢는다. 아니, 내 아들, 니가 어떻게 나를! 그녀는 세상을 끝까지 깨닫지 못한 채 급 놀라며(이런 이야기는 신문에서 읽을게 아니라 직접 당해 봐야 안다) 아 아니, 허어 헉! 그녀는 죽는다. 세상에서 가장 착한 우리엄마! 신이 있다면 나를 지옥 불에 영원히 태워주세요. 어느 시인도 이 비극을 옮기지 않는다. 다만 이것은 그녀가 단순한 하나의 장면을 반복하기 위해서 죽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른 먼 나라 일이라고 믿지 않았을 뿐. 1) 그의 경악 장면이 완벽하도록, 시저는, 한 석상 밑에서, 자신의 동지들이 찔러대는 칼질에 시달리다가, 칼끝과 얼굴들 사이 한 얼굴을 발견한다. 어쩌면 자신의 친자식 같았던 부하 브루투스 얼굴. 그는 방어할 기력을 잃고 소리친다: 아니, 내 아들, 브루투스 너도! 셰익스피어와 께베도도 이 비극적 절규를 글에 옮긴다. 운명의 신은 반복과 변형과 균형을 좋아한다: 19세기가 지난 뒤, 부에노스아이레스 남부 한 시골에서 한 카우보이가 다른 카우보이들로부터 공격을 받는다. 넘어지면서 그들 중 자기 자식 같은 부하를 발견한다. 그러자 그는 세상을 다시 깨달았다는 듯 서서히, 느리게 놀라며(그런 목소리는 이렇게 글로 읽을게 아니라 실제 들어보아야 안다) 말한다: 아아니, 허어......! 그는 죽는다. 다만 이것은 그가 단순한 하나의 장면을 반복하기 위해서 죽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뿐. 보르헤스 <구도> 이미상 : 2007 <불교문예> 446-875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영덕동 흥덕마을 호반베르디움 503동 204호  
229 스쿼시 외1편/김설희
편집자
2958 2012-08-31
12.09월 28호 시  스쿼시 김설희 공을 친다 벽에 부딪혀 튕겨 나오는 공 더 세게 때린다 벽의 옆구리가 파르르 떤다 벽의 고통이 꽃으로 피어나는 순간 좌르르 땀이 흐른다 공만 한 멍 자국이 벽에 시퍼렇다 바람 부는 날 상수리나무 아래 누워 봐 하늘을 가린 이파리 사이로 하늘이 빨려 들어오는 걸 좀 봐 벌레가 낸 구멍으로 하늘을 좀 봐 잎의 톱니가 하늘을 물고 있는 걸 봐 바람이 불어 잎이 사시나무 떨듯 떨어 잎사귀는 잎사귀끼리 가지는 가지끼리 부딪히며 떨어 벌레 구멍으로 들어온 햇빛도 같이 떨어 바람 속에서 서로 거친 뒷면을 보여주는 잎들 부딪히며 견디는 것 좀 봐 잎 뒤에 붙어있는 새파랗게 움츠린 달팽이 좀 봐 뙤약볕을 가린 그늘이 그네처럼 흔들리는 것 좀 봐  
228 이지상 감독의 독립영화 <몽실언니>/한경희
편집자
3668 2012-07-31
12.08월27호 수필  이지상 감독의 독립영화 <몽실언니> 1. ‘영화의 독립’을 희망하는 감독들이 만든 작품을 우리는 독립영화라 부른다. 이때 독립은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자유롭기를 희망하는 일이다. 그런데 어렵다. 근대기술의 승리에서 영화가 탄생했는데 기술은 자본으로 성장한다. 물론 개인용 캠코더로 영화를 찍을 만큼 기술도 발전했다. 제작은 어떻게 배고픈대로 한다고 하더라도 영화 배급에서 자본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 있다. 이 현실을 그래도 작품성으로 혹은 독립의지로 돌파하겠다는 특별한 감독들의 영화판이 바로 독립영화의 세계이다. 독립영화의 렌즈로 몽실을 읽어내는 일은 너무나 잘 어울리는 일일까. 비교적 상업성을 거리두기한 시선으로 몽실을 읽는 일은 소중하다. 스펙타클한 전쟁영화가 놓치는 상처입은 개인의 실존이 자연스레 화면에 부상한다. 전쟁 상처는 위로로 완화되거나 치유될 성질이 아님을, 역사의 벽 앞에 선 나약한 개인들은 전쟁 앞에 어떤 선택도 할 수 없을 뿐임을 느낄 수 있다. 상업영화가 대중성의 기호를 피해가지 못해 놓치는 것들을 독립영화에서는 친근하게 만날 수 있는 점. 그래서 <몽실언니>의 영화시선이 더 궁금해진다. 2. 이지상 감독은 이 영화를 두고 밥 이야기를 했다. 밥 짓는 어미의 심정으로 영화를 만들었다는 감독은 귀농한 문경의 마을 사람들을 등장인물로 발탁, 연기지도까지 감당했다. 그리고 그 동네를 배경으로 영화를 찍었다. 귀농해서 직접 지은 쌀을 한 자루 들고 권정생 선생님을 찾아가 <<몽실언니>>를 영화로 만들겠다는 승낙을 얻었으니 선생님은 감독의 진정성에 반해 ‘잘 만드시소’라며 승낙을 하셨을 것 같다. 추모제 자리에서 이지상 감독은 생활한복 차림에 챙이 넓은 모자를 푹 눌러 쓰고 추모인사를 했다. 그 때 아마 권정생 선생님을 찾아뵌 이야기를 아주 간략하게 한 것 같다. 영화에 대한 설명은 관람객의 몫으로 돌리고 승낙을 받아낸 사실만 짤막하게 언급했다. 살아계실 때 권정생 선생님과 인연을 맺은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 영광의 체험을 안은 사람은 조상의 음덕으로 가능했을까. 가늠하기 어려운 고독의 깊이를 헤아리는 사람들, 말을 아끼며 삶을 실천하는 사람들, 남들이 가기 어려워하는 길을 묵묵하게 가는 사람들, 자기 보다 여러 사람살이를 걱정하며 사는 사람들 등 이들 모두에게 따뜻한 언덕이었을 권정생 선생님. 모두에게 위로가 되는 삶을 살았던 분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 법하다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이지상 감독은 어떤 생각으로 쌀을 짊어지고 일직 조탑을 찾았을까. 세상 무수한 이야기가 있고 곱고 슬픈, 그래서 아름다운 이야기가 천지일텐데. <<몽실언니>> 어디에 ‘필’을 받고, 꽂힌 것일까. 감독은 몽실의 생명성을 어떻게 풀어보려 했을까. 감독은 영화의 배경으로 굳이 일직 주변 선생님의 고향마을을 찾아 나서지 않았고 감독의 고향으로 돌아간 것도 아닌 새롭게 삶의 터전이 된 바로 그 자리. 문경에서 몽실이를 그려낸다. 한국전쟁 전후 몽실이의 삶의 애환이 문경 따로 일직 따로 일 리가 없다. 감독은 인연이나 운명으로 그 곳, 동네에서 <몽실언니>를 찍었다고 말을 줄이고 만다. 마치 대사가 별로 없는 <몽실언니>영화처럼 말은 아껴 먹는 귀한 과자가 된다. 그래서 많은 질문에 감독은 답변을 안 것과 별로 차이나지 않는 답을 했다. 질문이 너무 허접해서 그럴 수도 있고 굳이 말할 필요 없는 것을 답하라고 했을 수도 있다. 말이란 것이 풀어놓으면 보자기로 싸도싸도 풀어질 만큼 흘러 넘치지만 또 모으고 녹이고 묶어버리면 한 줌도 안 될 생리를 지닌 것을. 말을 넘어서고자 하는 감독께 말을 꺼내라고 재촉한들 말이 어찌 풀려 나올까. 깊고 무거운 침묵을 풀어내자면 진동의 시간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침묵이 깊은 사람과의 인터뷰란 느낌과 정서로 풀어내야 하는 것. 최소의 말이 주는 편안함은 말을 아낄 수 있는 애정이 있을 때 가능하지 않을까. 오래 묵고 삭힌 말을 들고 인터뷰를 준비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으로 인터뷰는 헛바퀴를 돌았다. 이 소설의 무엇이 영화를 만들도록 이끌었냐는 질문에 ‘고통’이란 짤막한 답이 왔다. 이지상 감독은 <<몽실언니>>를 읽고 몽실이의 아픔이 자신의 아픔으로 온통 전해져 영화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감독은 소설을 읽는 내내 몽실과 동화되는 체험을 한 것 같다. 대체로 소설 <<몽실언니>>를 읽은 분들은 가슴이 아파 한동안 먹먹해지는 체험을 하셨을 거다. 어린소녀에게 닥친 인생길이 어찌 그리 녹녹치 않은지 모든 사람의 희생양으로 그려져 있으니. 감독은 직접 대본을 쓰고, 촬영하면서 전방위로 영화를 만들어갔다. 감독의 <몽실언니>영화 촬영이 유독 지역적이다 싶어서 지방에서 예술활동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의견을 구했더니 이번에는 아예 답을 거절한다. 현재는 농사를 짓지 않고 지방에서 예술활동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회피성이 농후한 핑계를 댈 뿐이다. 물론 질문을 고쳐서 던질 수 있다. 문경에서 농사지으며 <몽실언니>를 찍었다는 사실에 충실하게 답해달라고. 그런데 그만뒀다. 문경에서 농사짓고 영화감독으로 살면서 영화를 찍은 일은 말 그대로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 일을 두고 이런 저런 수사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영화 <몽실언니>는 지역적인 실천의 결과물로 읽으면 된다고 혼자 정리했다. 감독의 영화작업을 보면 답이 보인다. 다른 작품을 예로 들면 <십우도>도 지역적인 실천의 연장선에 있다. 물론 언론에 소개된 내용으로 판단할 뿐이고 감독으로부터 어떤 설명을 들은 바는 없다. ‘지구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실천’하는 사람에게 내면을 드러내 달라는 요청이 무례한 것이었다. 영화로 말을 하는 감독에게 도대체 필요하지 않은 ‘말’을 하라 질문을 했으니 말이다. 지역예술활동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가 작업을 서울서 한다는 답을 받았다. 물론 영화의 특성상 기술적인 처리는 서울서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몽실언니>의 경우는 서울에서 작업했다고 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지역사람들이 등장인물이고 지역에서 촬영했던 감독이 이 질문에 답을 미룬 까닭은 아마도 단순하게 대답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일까. 설명 들으려 하지 말고 느껴라!에 방점이 있을까. 지역에서 작가로 산다는 것,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사는 것만큼 갑갑한 현실이 있다. 지역에 묶인 예술 자체를 거부하는 예술가에게 지역으로 제한한 질문 자체가 문제였음을. 이미 지나간 이야기이나, 개봉도 하지 않은 영화를 권정생 선생님 추모제 기간보다 더 오래 상영한 것은. 감독의 영화가 선생님을 추모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리라. 선생님을 향한 지극한 마음이 읽힌다. 선생님을 닮은 마음이 비친다. 3. 몽실이의 배경에서 가장 강력한 요소, 가난. 몽실이 삶을 쥐고 흔든 가난을 배경이라 감히 말할 수도 없으나. 그래도 배경으로 두고 싶다. 가난은 누구의 잘못도 아닌 불우한 시대와의 만남일 뿐일까. 혹은 그렇지는 않을까. 배가 고파서 일어나는 놀라운 이야기는 소설, 영화에서 제법 있다. 밥을 배불리 먹은 시간보다 굶은 시간이 훨씬 길고 오래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밥 굶는 일은 상상하기 어려운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진짜? 이제 굶는 사람은 더 이상 없는가. 그런데 아직도 세계 절반의 인구가(그것도 어린이) 굶고, 굶어서 죽는다니? 장 지글러가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에서 묻는 질문 가운데, 굶주리는 소는 없는데 왜 인간은 굶어죽기도 하는가를 답하라 한다면. 그 소는 인간이 맛있게 먹어야할 고기!. 세계는 넓고 넓은 만큼 굶는 사람도 많은데 이제 우리는 배고픈 체험도 하기 어렵고 주위에서 보기도 어려워졌다? 2005년도 기준이나마 5초에 10세 미만의 아이가 1명씩 굶어죽는다고 한다. 매일 10만 명이 기아와 영양실조로 죽어간다니? 이 통계를 어떻게 믿으라고요. 라고 물어야 하나. 아프리카보다 기아 인구가 많은 아시아에 살면서 이 통계에 놀란다면 무지 때문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전쟁보다 기아로 죽어가는 사람이 더 많다는 사실을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는다고 지글러는 쓰고 있다. 유엔식량특별조사관인 지글러는 미국이 생산할 수 있는 곡물 잠재량만으로 전 세계 사람들이 먹고 살 수 있고, 프랑스 곡물 생산으로 유럽 전체가 먹고 살 수 있는 전 세계적 식량 과잉의 시대에 기아를 제 정신으로 이해할 수 있는가 라고 묻는다. 식량은 넘쳐 나는데 지구 인구의 절반, 그것도 어린이가 굶어 죽어가고 있다니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토마스 맬서스는 1798년에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사회보조나 지원이 중단되어야 한다는 글을 발표했다. 맬서스는 질병과 배고픔이 가슴 아픈 일이기는 해도 이 사회에 필수적인 기능을 한다고 주장한다. 지구상의 인구를 줄여주는 자연적인 수단이라고. 또 지식인, 정치가, 국제기구 책임자들은 기근이 지구의 과잉인구를 조절하는 작용을 한다고 믿고 있다고 썼다. 그런데 저자의 말대로 뱅골, 소말리아, 수단의 엄마들이 자신의 아이들의 죽음과의 싸움이 자연이 고안해낸 지혜라는 소리를 듣는다면 어떤 반응을 보이겠는가’ “10세 미만의 아동이 5초에 1명씩 굶어 죽어가고 있으며, 비타민 A 부족으로 시력을 상실하는 사람이 3분에 1명 꼴이다. 풍요가 넘쳐나는 행성에서 날마다 10만 명이 기아나 영양실조로 인한 질병으로 죽어간다.”는 통계의 정리는 믿기 어렵지만 현실이다. 숫자로 따지면 아프리카보다 아시아에 기아 인구가 더 많다. 저자는 이런 문제의 핵심은 사회의 구조에 있다고 설명한다. 식량 자체가 풍부해도 가난한 사람들이 그것을 소유할 수 있는 경제적인 수단이 없으니 말이다. 먹는 일에서 비교적 자유로워진 세대가 몽실이의 어머니를 얼마나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을까. 영화에는 다짜고짜 몽실을 끌고 가는 생모가 첫 화면으로 등장한다. 얼마나 배가 고프면 밥을 먹으려고 개가를 할까. 그것도 이혼하지 않은 남편이 멀쩡하게 살아있는데. 지독한 가난 앞에서 윤리적인 관계는 위험해지고 생존 외에 어떤 명분도 뒤로 밀리지 않을 수 없다. 가난, 가족이산은 무슨 등식처럼 따라다니며, 그 사이사이 자식을 먹이기 위한 극단적인 선택으로 개가도 없지 않은 오래지 않은 우리들의 이야기. 이 잔인한 가난이 봄날 들판을 따라 몽실 모녀에게 가득하다. 푸른 들판에 어린 생명도 이들 가난 앞에서 어쩌지 못한다. 푸르고 싱싱한 봄날 영상과 대조적으로 주린 배를 감당하러 길 떠나는 모녀의 길은 무겁게만 읽힌다. 새아버지에게서 태어난 남동생 영득이를 업은 몽실이. 친아버지가 몽실을 찾아오면서 불안한 평화가 끝장난다. 밥술이나 얻을 요량으로 딴 남자를 얻은 아내를 용서할 수 없는 아버지의 등장은 몽실을 본격적으로 불행하게 만든다. 이때 몽실은 다리를 다치게 되어 평생 절게 된다. 고모가 몽실을 데리러 왔을 때 어머니는 몽실을 보낸다. 엄마를 따라와 다리까지 절게 되었다는 자책감 때문이었을까.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을 딸을 보내는 것으로 대신한 것일까. 새아버지 밑에서 눈칫밥을 먹는 것보다 친아버지와 사는 일이 몽실이를 더 행복하게 해 줄 거라 믿은 것일까. 문제는 어린아이가 엄마와 헤어져 무슨 행복을 느낄 수 있는가이다. 4. 전쟁이 일어났다 멈춘다고 전쟁 상흔이 금방 아무는 것이 아니다. 치명적인 상처를 집단적으로 앓아야 하고 덕분에 사회적인 병리현상까지 감당해야 하는 것이 전후에 남겨진 사람들의 몫이다. 우리의 레드콤플렉스가 바로 그 적절한 예이다. 전쟁의 계절에 태어나서 일본에서 한국에서 전쟁을 겪었던 권정생 선생님은 그 잔인함을 여러 편의 동화로 담으셨다. 그래서 다시는 전쟁없이 살아야 한다고. 우리 현대사의 풀기 어려운 많은 문제가 한국전쟁과 묶여 있다는 걸 어린이들에게 이야기 하신 거다. 그래서 어른들도 읽기 버거운 전쟁이야기를 써야만 했던 것 같다. 가난과 전쟁 중에 몽실이를 더욱 불행하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밥을 굶지 않으려고 선택한 어머니의 개가와 전쟁통에 징병으로 끌려간 아버지의 사고와 죽음은 몽실을 고아로 만들었으니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불가능한 생존조건이 놓여 있었다. 가난의 현실도 무겁고 깊어 헤어나기 어렵다. 성장과 발육은 물론이고 아이의 생명력, 의지력까지 모조리 고갈시키는 가난은 심각한 사회문제이다. 그런데 전쟁은 가난을 생산한다. 그 뿐인가. 죽은 자와 생존한 자를 나누고 깊은 슬픔을 심어서 폭력적인 인간을 만든다. 놀랍게도 폭력에 노출된 아이는 난폭한 어른으로 성장한다. 전쟁은 폭력을 키우고 혼란한 사회를 조장한다. 이렇게 겁나는 전쟁이 여전히 ‘국익’이라는 명분으로 언제든지 가능한 세상에 우리는 살아간다. 이 땅에 살았던, 여전히 살고 있을 몽실이들에게 전쟁은 어떻게 기억되는 역사일까를 우리는 진지하게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전쟁고아를 다룬 영상은 오래도록 아리다. 전쟁고아가 된 소년이 깡통을 앞에 놓고 연습하는 노래는 피눈물이 맺힌 절규다. 그 고함소리는 귀를 울리고 가슴을 찢는다. 부모의 죽음을 두고 목 놓아 울어도 서러울 아이가 눈물을 뿌리며 노래로 구걸을 해야 했던 시절, 이때 만인의 원망은 분명 전쟁에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꽃을 파는 소녀는 몽실이가 건넨 돈을 두고 기어코 거스름돈을 돌려준다. 비록 전쟁통에 부모는 잃었어도 부모의 정신을 그대로 담고 사는 단단한 아이. 부모와 사별한 아픔, 배고픔, 혼자라는 외로움이 뒤죽박죽으로 섞여 세상 누구보다 답답하고 암담한 이들도 하루하루 삶의 의지를 생존에서 배우고 찾아간다. 아버지의 징병은 몽실이를 완전히 어른으로 만든다. 새어머니와의 단란한 행복도 새어머니의 죽음으로 끝난다. 아버지가 전쟁터에서 다친 다리로 돌아오나 먹고 살 길은 더 아득하고 어린 난남까지 챙겨야 하는 지경이다. 이때 몽실은 깡통을 주워와 밥을 얻으러 다닌다. 기꺼이 희생양의 길을 선택한 몽실. 전쟁통에도 사람은 태어나고 살아가야 하지만 어린 몽실이가 감당하기엔 너무 무거운 짐이었다. 전쟁영상이 적극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영화이다 보니 아버지 붉은 피투성이 다리가 나름 자극을 준다. 마치 딸의 절름발이 다리가 자신의 탓인 양 몽실이처럼 절면서 돌아온 아버지. 전쟁의 잔인한 현실을 시각적으로 담으려 애쓰는 영화와는 엄연히 거리를 유지하면서. 영화는 전쟁을 냉정하게 이성적으로 바라보라고 한다. 징병으로 끌려가는 동네 아저씨들. 전혀 총 쏠 준비가 안 된 아저씨들의 힘없는 어깨가 유독 선명하게 기억된다. 동네 청년은 도망쳐보려 트럭에서 뛰어내리지만 군인들이 잡아서 다시 차에 태운다. 그 장면을 보고 청년의 어미는 쓰러지고 만다. 이 때 군인들이 총을 쏘거나 청년을 때리지는 않는다. 감독은 전쟁을 둘러싼 숱한 이야기를 이 화면으로 모두 처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맑고 투명하게 징병의 현장을 포착한 화면 앞에서 울컥 감정이 치미는 것은 다른 전쟁영화의 징병장면이 오버랩 되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전쟁은 누구도 원한 적이 없지만 어느날 불쑥 삶을 간섭하고 나타나서 누군가의 삶을 끝장내고 말았다. 소박한 꿈도 멀리 사라지게 만들었다. 전쟁은 그리운 사람을 다시 못 보게 하는 고통을 주거나 살아남았으되 죽은 것보다 나을 게 없는 삶을 남겼다. 5. 가난, 전쟁에서 아이들은 취약하다. 생명성도 여리고 체력도 약하다. 그런데 몽실이의 삶의 의지는 돋보이고 빛난다. 그럭저럭 살아지는 인생이 아니라 스스로 삶을 선택하고 생존의 방식까지 결정하면서 살아간다. 이미 어린이가 아닌, ‘작은 어른’이 된 몽실이가 있다. 영화는 전쟁고아들 대부분이 철든 아이를 넘어 작은 어른으로 살았음을 말한다. 몽실은 어린 아이가 아니다. 영화적인 설정이지만 어린아이가 이런 말을 한다고 상상해보라. 고모와 함께 친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면서 엄마와 이별하는 장면이 있다. 여기서 몽실은 엄마를 향해 “엄마 잘못 아니야”라고 말한다. 가난이 죄임을 이미 알아버린 철든 아이의 등을 바라보며 엄마는 눈물만 흘린다. 이 때 몽실은 엄마와 살고 싶다거나, 가기 싫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아버지에게 밥을 해드리고 빨래를 할 손이 필요하다는 걸 몽실은 안다. 자신이 필요해 부르는 사람에게 기꺼이 간다. 아버지가 홧김에 욕을 하고 손찌검을 해도 원망의 눈길 한 번 없이 묵묵히 인내하고 겁먹은 난남을 감싸 안는다. 새어머니가 난남을 낳느라 병든 몸으로 힘들어 할 때 “어머니 힘내세요, 어머니 입술 깨물어요.” 라고 말한다. 소름이 돋지 않는가. 어린 아이의 말이라고 해도 되는가. 어머니가 시집간 딸에게 말하는 설정이다. ‘힘 내라, 단단히 입 물고’ 뭐 이런 버전이지 않나. 이미 슬픈 어른이 된 몽실이가 성큼 다가와 있다. 새어머니가 아파 자리에 눕자 “어머니 누워 계셔요, 제가 어머니 대신 다 할테니까요.”는 귀엽지만 철이 든 딸의 목소리이다. 소설 스토리와는 다른 영화적인 설정이긴 하나 생모가 돌아가자 큰 항아리에 물을 가득 담고 스스로 그 항아리에 들어가 물속에 몸을 담근다. 항아리는 아무런 일 없이 맑고 투명하게 하늘을 받아 이고 있을 뿐이다. 다시 물 밖으로 몽실이가 고개를 내밀 때까지 항아리 표면은 조용하다. 다만 몽실이가 숨을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서자 항아리 물이 요동치고 넘친다. 생의 의지를 그만 접고 끝내겠다는 생각이 간절해진 몽실이가 선택한 항아리. 몽실은 헐떡거리며 숨차하면서 생존의 무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죽음의 무게를 어린나이에 체득하게 된 것일까. 그래서 살아내야 한다는 엄정한 생의 의지를 받아들인 것일까. 슬픈 몽실 이야기에 아름다운 영상은 슬픔을 더 보탠다. 엄마가 몽실이의 손을 끌어당기는 봄날 들녘의 푸른 들판, 그 길은 개가를 가는 장면이다. 그 생기있고 은은한 봄풀들은 무심하게 푸를 뿐이다. 주인에게 쌀을 꾸는 아버지 뒤로 펼쳐진 푸른 산과 하얀 모래사장. 주인을 모시고 짐수레를 끌고 가는 아버지와 쌀을 얻어 이고 절뚝거리며 아버지와 반대 방향으로 길을 걷는 몽실이. 모녀의 등 뒤로 고요하게 흐르는 강물과 푸른 산, 그리고 모래사장과 대비되는 아름다운 조화는 슬픔을 더욱 길게 이어놓고 있었다. (인터뷰에 응해주신 이지상 감독님께 감사드립니다.) 이 원고는 사랑방 <<안동>>지 실린 적이 있습니다.  
227 그녀의 무도회/김서련
편집자
2490 2012-07-31
12.08월27호 소설  그녀의 무도회 김서련 그녀한테서 전화가 걸려 온 것은 오십 대 초반에 뇌출혈로 사망한 남자의 영결식을 마치고 막 화장터에 도착할 무렵이었다. 수 년 만에 전화를 걸어온 그녀는 다짜고짜 오늘 당신의 집으로 좀 와 달라고 말했다. 오늘, 집에요? 나는 난감한 심정으로 되물었다. 오늘은 장례식이 끝나면 곧바로 집으로 달려가서 침대에 들어가서 내일 오후까지 나오지 않을 계획을 미리 세워두고 있었다. 어제 사장한테도 그렇게 말해 놓았다. 그동안 내내 죽으라고 일만 해 왔다. 마침내 한계에 도달했는지 온몸의 뼈마디가 부서질 듯 욱신거렸다. 침대에 몸을 눕히자마자 그대로 깊은 잠 속으로 빠질 것 같았다. 그래, 별일 없으면 꼭 와 주면 좋겠는데. 그녀의 목소리는 착 가라앉아 있었다. 저기, 무슨 일이신데요? 전화로 얘기하면 안 될까요? 나는 약간 난색을 표하며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가 날 찾을 일이 없었다. 몇 년 전, 작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부터 우리 집안 식구와는 인연을 끊다시피 한 그녀가 아닌가. 남자 때문에 집을 나갔던 그녀가 다시 돌아온 것은 작은 아버지 장례식 때였다. 장례식을 치루는 동안 그녀는 집안 친척들의 냉대에도 불구하고 검은 상복을 입고 내내 빈소를 지켰다. 어릴 적 그녀를 좋아했던 나는 이것저것 챙겨주며 신경을 써 주었다. 학교가 파하면 곧장 작은 집으로 향할 때가 많았다. 내 또래의 사촌과 함께 숙제도 하고 책도 읽고 게임도 하고 만화영화를 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쿠키나 케잌 같은 것을 만들어 우리에게 먹이곤 했다. 내 생의 가장 행복하고 즐거운 순간들이었다. 불현듯 그때의 기억들이 오롯하게 되살아났다. 웬만하면 그녀의 청을 들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지난 몇 달 동안 제대로 잠을 잔 적이 없었다. 매일 사람이 죽었고 일손이 딸려서였다. 올해는 이상하게도 다른 해보다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 자살하고 교통사고를 당해 죽고 암이나 이름도 잘 알지 못하는 병에 걸려 주고 자연 재해를 당해 죽고… 따라서 우리 회사에 끊임없이 상담이 들어왔고 인원이 모자라는 데도 불구하고 사장은 우리를 빡빡한 일정 속으로 몰아넣었다. 만나서 얘기해야 된다면서, 꼭 집으로 와 달라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절박한 뭔가가 담겨져 있었다. 딱 잘라서 거절하면 안 될 것 같은 뭔가가. 나는 일이 끝나는대로 연락하겠다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남자가 한 줌의 가루로 남는 동안 여보! 여보! 가지 마. 날더러 어떻게 살라고. 하고 울부짖는 소리와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는 콧물 소리가 분향실을 가득 채웠다. 늘 보는 광경인데도 볼 때마다 가슴이 울컥했다. 그녀의 전화 때문인지 한참 잊고 있었던 사촌이 생각났다. 그녀가 집을 나가지 않았다면 사촌은 교통사고를 당하지 않았을까. 한동안 내내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던 의문이었다. 그날도 사촌은 혼자서 저녁을 챙겨 먹고 학원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보통은 학원 버스를 타고 오는데, 그날을 그러지 않았다. 사촌은 횡단보도 앞에 서 있다가 신호등이 바뀌자마자 길을 건너가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였다. 트럭이 그대로 돌진한 것은. 정말이지 전 신호등을 확실히 봤어요. 분명히 초록불이었어요. 운전자는 시종일관 신호등이 초록불이었다고 주장했다. 단 한 명의 목격자는 이렇게 말했다. 고개를 푹 숙이고 걷는 것만 봤어요. 정말 착하고 예쁜 사촌이었다. 아마도 좋은 곳에서 잘 지내고 있겠지. 나는 속으로 사촌을 위해 기도했다. 부디 좋은 데서 잘 살아. 사촌이 있는 바로 그곳은 아마도 이러지 않을까. 푸른 산과 푸른 초원과 만발한 꽃과 청명한 하늘과 새하얀 구름과 부드러운 바람과 유유히 흘러가는 강이 있는. 작은 아버지와 담소를 나누고 있는 사촌을 떠올렸다. 티 하나 없는 맑고 맑은 햇빛 아래 활짝 웃고 있는 사촌 얼굴은 원래부터 그러하듯 순진무구했다. 고속도로는 한가했고 길고 길었다. 시속 80킬로미터의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 틈틈이 브레이크를 밟으면서 나는 후회했다. 일이 끝나자마자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찾아가 뵙겠다는 말을 하는 게 아니었다. 집에서 서너 시간 자고 출발해도 늦지 않을 텐데. 왜 굳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서둘러 길을 나섰을까. 눈에 익은 산과 들… 터널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자꾸만 졸음이 밀려왔다. 인터체인지를 지나 고속도로에 접어들 때부터 그랬다. 나도 모르게 졸았다가 깜짝 놀라며 눈을 떴다.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아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 여전히 도로는 텅텅 비어 있었고 차선도 벗어나지 않았다. 앞서 가는 차도 뒤따라오는 차도 없었다. 기이한 느낌이었다. 마치 비현실적인 도로를 달리고 있는 듯했다. 마침내 저 멀리 동네가 보였다. 현재 그녀가 살고 있는 집은 작은 아버지가 노후를 보낼 목적으로 지은 것으로, 가족과 함께 두어 번 와 본 적이 있었다. 먼 눈빛으로 나는 동네를 바라보았다. 울긋불긋 막 단풍이 든 산과 청명한 하늘, 흘러가는 구름을 배경으로 삼은 동네는 ‘평화롭다’ 그 자체였다. 그녀의 집은 동네에서 뚝 떨어진 바로 산자락에 위치해 있었다. 흰색 지붕이 나무 사이로 살짝 보였다. 이윽고 동네에 주차한 나는 산길로 올라가는 바로 입구에 차를 세워 두고 걷기 시작했다. 논밭 사이로 흰뱀처럼 구불구불 난 길은 그녀의 집까지 나 있고 걷는데 약 15분 정도 걸렸다. 울타리 삼아 심어 놓은 동백나무 너머 집안을 기웃거렸다. 마당 한구석에는 감나무들이 심어져 있고 말끔한 햇살이 켜켜이 쌓이고 있었다. 계세요? 나는 안으로 한 걸음 내 딛으면서 소리를 질렀다. 왔어. 문을 열고 나와 반갑게 맞아들이는 그녀의 얼굴은 놀랍도록 많이 상해 있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이렇게 변할 수도 있는지 의아했다. 유난히 나이에 비해 젊어 보였던 그녀였다. 희고 곱던 살결에는 검은 반점이 여기저기 박혀 있고 얼굴은 광대뼈가 툭 불거진 정도로 야위어져 있고 이마와 눈밑에는 깊은 주름이 져 있었다. 그동안 잘 계셨죠? 그녀의 눈을 마주한 순간, 나는 흡, 하고 숨을 삼켰다. 깊고 그윽한 그녀의 눈빛 때문이었다. 얼굴에서 풍기는 분위기와 완전 딴판이었다. 나는 한참 동안 그녀의 눈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낯설지 않았다. 어디서 봤더라. 그녀의 손에 이끌려 집안으로 들어가면서 내내 생각했다. 집안은 생각보다 널찍하고 그런 대로 잘 꾸며져 있지만 가을인데도 마치 한겨울인듯 서늘한 기분이 들었다. 맥주 마실래? 커피 마실래? 그녀가 물었다. 맥주요. 나는 선뜻 대답했다. 실은 그녀의 말이 반가웠다. 아까부터 차가운 맥주 생각이 간절했다. 한 잔 마시면 피로가 싹 사라질 것 같은 느낌 때문이었다. 그녀가 부엌에서 맥주를 꺼내오는 동안 나는 탁자 위에 수북하게 쌓여 있는 프린트 용지를 뒤적거렸다. 내용을 한눈으로 쭉 훑어보니 대부분이 여러 나라의 장례식 풍습에 관한 글과 사진이었다. 아무나 단순한 흥미꺼리로 읽을 내용이 아니었다. 순간적으로 의아했으나 곧 잊어버렸다. 생각한 대로 차가운 맥주는 내 몸의 피로를 씻어주었다. 나는 잠자코 맥주를 들이켰다. 말하는 것도 피곤했고 생각하는 것도 피곤했다. 그녀가 날 찾은 이유를 말하면 잘 듣고 거기에 맞춰 적절히 행동할 작정이었다. 그녀는 바로 입을 열지 않았다. 엄마와 아버지가 어딜 아픈 데 없이 건강하신지 내가 하는 일은 어떤지 여자 친구는 있는지 묻기만 했다. 간간이 예전에 말이야 어쩌고저쩌고 하며 오래 전의 기억을 꺼내기도 하고. 그러다가 느닷없이 이런 말을 꺼냈다. 산 사람을 장례 치루려고 하면 말이지. 어떻게 하면 될까? 네? 그러니까 산 사람을 장례 치루는 것 말이야. 그녀가 말했다. 그런 게 어딨어요? 어떻게 산 사람을 장례 치루어요? 불교에서 소지 공양이라고, 말 그대로 스스로 몸을 태워 온몸을 부처님께 공양하거나, 손가락을 태워 수양한다는 말은 들어 봤지만요. 나는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인 다음 길게 연기를 내뿜었다. 그렇지? 그녀는 긴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그런데 그게 뭐 어쨌다는 건데요. 입안에서 맴도는 말을 나도 모르게 삼켰다. 지그시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그녀의 눈빛 때문이었다. 그것은 광야를 헤매는 짐승의 고독과 닮았고 북극의 얼음 덩어리 속에서 수천 년 동안 갇혀 있는 사람의 절망과 닮았고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상실한 사람만이 가질 법한 슬픔과 닮아 있었다. 행여 누가 들으면 당혹스러워 할 정도로, 그냥 약간 슬픈 것에 불과할지도 모를 눈빛에다 지나친 상상력을 동원했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나는 분명 그녀의 눈빛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나저나 그녀는 도대체 어떤 일을 겪었던 것일까. 남자한테 푹 빠져 남편과 자식을 버리고 집을 나갔고 그 사이 사촌이 죽었다. 그 뒤 그녀는 남자와 헤어지고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 쭉 혼자 살아왔다. 평탄하게 살아온 것은 아니었다. 충분히 사연을 가질 수 있었다. 대체 그게 뭘까. 무엇이기에 저런 눈빛일까. 바로 순간이었다. 어디에선가 날아온 날카로운 돌멩이가 내 심장을 팍 내리쳤다.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핏물이 튀었다. 살고 있는데도 말이지 이상하게도 내가 산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아. 마치 좀비가 된 것 같아. 결별하고 한 달쯤 지났을까. 밤늦은 시각에 전화를 걸어온 영주 목소리가 귓전에서 되살아났다. 잊고 있었는데. 아니,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 잊어버리려고 무진 애를 썼는데. 한데 뒤섞인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 덩어리가 목구멍까지 치밀어올랐다. 도대체 왜? 단지 산 사람… 장례식…그런 말만 들었을 뿐인데. 그녀의 눈빛을 바라보았을 뿐인데. 영주의 말이 생각났을 뿐인데. 갑자기 속에서 구토가 일어났다. 금방이라도 토할 것만 같았다. 급히 화장실로 뛰어간 나는 변기에다 고개를 처박고 웩웩거렸다. 누런 액체가 변기 안으로 흘러내렸다. 괜찮아? 문 입구에서 그녀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네. 오늘 낮에 먹은 게 잘못 됐나 봐요. 나는 거짓말을 했다. 화장터에서 점심으로 먹은 도시락은 상하지 않았고 맛있었다. 내 입에서 음식물이 부패된 듯한 냄새가 풍겼고 변기 안에는 누런 찌꺼기가 더덕더덕 달라붙어 있었다. 물을 내려도 잘 씻겨 내려가지 않아서 솔로 박박 문질렀다. 대체 왜 이러는 거지. 그러고 보니 아까 여기로 올 때부터 뭔가 꺼림칙한 기분이었다. 마음을 편하게 가져. 나는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두려워. 이러다가 정말 좀비처럼 살까봐 너무 두려워, 라고 말하는 영주에게도 그랬다. 모든 것이 잘 될 거라고, 편하게 생각해. 그 말을 할 때 사실은 약간 마음이 흔들렸다. 하지만 애써 생각을 돌렸다. 죄책감이나 미안한 감정에 휘둘릴 때가 아니야.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내 삶은 지옥행이야. 잘못하는 게 아니야. 그냥 사랑하다 헤어지는 것뿐이야. 만나면 헤어지는 것은 당연하잖아. 그러니까…마음을 독하게 먹어.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나는 아무런 말도 없이 담배만 피워댔고 그녀는 깊은 생각에 빠진 채 간간이 맥주를 마셨다. 그런데 왜 헤어졌어요? 나는 긴 침묵을 깨고 말했다. 오랫동안 머릿속에서 달라붙어 있던 의문이기도 했다. 그녀는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는 듯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 순간, 때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이미 오래 전의 일이고 조카가 작은 어머니에게 물어볼 말이 아니었다. 할 수만 있다면 주먹으로 내 뒤통수를 한 대 내리치고 싶었다. 왜 헤어졌냐고? 그리고 이 말은 내게 해야할 질문이었다. 실은 이미 수십 번이나 스스로에게 한 질문이기도 했다. 굳이 헤어져야만 했을까. 내 자신에게 묻고 또 물었다. 영주를 사랑하고 있었고 굳이 헤어질 이유가 없었다. 거의 매일 만나다시피 했던 우리는 그즈음 축제를 보러 다니는 데 살짝 재미를 붙이고 있었다. 그날도 진주 유등 축제를 보고 돌아오는 날이었다. 고속도로는 검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축제를 보러 갈 때만 해도 대여섯 시간 걸릴 정도로 긴 행렬을 이루고 있던 차들이 어찌된 셈인지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 길을 잘못 접어든 것은 아닐까. 이상하게도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해졌다. 영주는 가능한 편안한 자세로 조수석에 앉아 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비틀즈의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불현듯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식으로 내 삶을 끌고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을 그만 끝내고 싶었다. 우리, 그만 두자. 무슨 말이야? 라는 눈빛으로 영주가 나를 쳐다보았다. 이쯤에서 그만두는 게 좋을 것 같아. 영주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입술을 굳게 다문 영주의 얼굴은 바싹 얼어붙어 있었다. 꽁꽁 얼어붙어서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형체도 없이 산산조각이 날 것만 같았다. 핸들을 잡은 팔에서 저절로 힘이 빠졌다. 왜 갑자기 그만두고 싶어진 것일까. 스스로도 잘 알 수 없었다. 간신히 갓길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영주에게 이런 말들을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네가 싫어서 그런 거 아냐. 널 사랑하지만 말이야. 상황이 그러잖아. 그러지 말고 마음 독하게 먹어. 미안하다는 말도 했다. 난 죽어서 지옥에 떨어질 거야. 속으로 중얼거렸다. 일을 어렵게 만들지 말자. 나도 힘들어. 널 보내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 그래도 어떻게 해. 너도 알다시피 상황이 안 좋잖아. 나는 영주를 달랬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단 한가지였다. 영주와 끝내야 한다는 것. 내가 싫어졌어? 영주가 물었다. 도대체 왜 그래? 아니라고 했잖아. 나는 약간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은 일찌감치 끝내야 했던 관계였다. 한 마디로 우리는 둘다 가난했다. 둘다 가난하다는 게 얼마나 비참한 일인지 아마도 그걸 겪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동네 슈퍼를 운영하는 부모 밑에서 간신히 대학을 졸업한 영주는 몇 년 째 교사임용고시시험에서 떨어지자 다시 간호대학에 갈 거라고 수능공부를 하고 있고 나는 대학에서 별 인기 없는 과목을 강의하다가 점차로 수강생이 줄어들고 그 과목마저 폐지될 위기에 처하게 되자 과감하게 학문의 길을 접고 평생교육원에서 장례지도사 과정을 밟고 상조회사에 들어갔다. 앞으로의 전망 때문이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직업이 다 사라져도 단 하나 남는 게 있다면 바로 장의사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죽지 않는 사람은 없으니까. 평생 동안 하는 일마다 잘 되지 않아 육십 넘은 나이에 일용직 잡역부로 일하고 있는 아버지와 식당에서 일하다가 암으로 집에서 쉬고 있는 엄마의 기대를(내가 폼나는 교수가 되는 것)을 저버린 꼴이 되었지만 나는 후회하지 않았다. 매달 들어오는 월급은 그동안 공부하면서 은행에서 대출받은 돈을 갚고 집세를 주고 몇 달에 한 번씩 엄마의 병원비로 목돈을 대야 했다. 당연 영주와의 만남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인터넷을 뒤져가며 싸게 먹히는 데이트를 하는데도 이런저런 일로 빚은 점점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그것은 서서히 내 목을 죄여오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서서히 다가오는 두려움, 그건 이러다가 나중에 개인파산선고를 받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거였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여전히 영주는 단 한마디 말도 하지 않은 채 전방만 바라보고 있었다. 도로와 산, 논밭을 통째로 집어 삼킨 어둠보다 더 짙은, 깊은 상처를 입은 채 광야에서 울부짖는 짐승처럼 처절하게 외로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런 눈빛이니? 나는 입안에 맴도는 말을 감히 내뱉을 수가 없었다. 느릿하게 담배 연기를 내 뿜으며 말없이 앞만 응시했다. 지난 기억들이 밀려왔다. 건물과 배를 소유한 아버지의 반대로 헤어진 첫사랑의 얼굴이 떠올랐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그녀의 결별 통고에 썩은 고기를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처럼 술에 취해 거리를 헤매고 다녔던 그때의 내 눈빛이 저러하지 않았을까. 먹고 먹히는 세상. 짓밟고 짓밟히는 세상. 어둠이 검어서, 일그러진 내 얼굴을 보이지 않아서 참으로 다행이다 싶었다.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괴물이라도 나보다 더 낫지 않을까. 네가 있기에 여태까지 견딜 수 있었어. 이제 날더러 어쩌라고. 내가 죽기를 바래? 마침내 입을 연 영주는 집어 삼킬듯이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도끼로 내 몸의 일부를 내리찍듯 마음이 아파왔다. 하지만 나는 의자에 깊숙이 몸을 기댄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어둠은 더욱더 짙어지는 듯했고 차안엔 비틀즈의 노래가 돌아다녔다. 부모님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사촌과 놀던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쿠키와 초콜릿 음료를 먹으면서 봤던 만화영화들 …. 앞으로의 내 삶이 결코 순탄하지 않을 거라는 예감에 사로잡혔다. 문득 사촌과 함께 먹던 쿠키가 먹고 싶었다. 그러니까 제 말은…. 나는 어색하게 입을 열었다. 가족을 버리고 도망까지 갔으면서 그 남자랑 왜 헤어졌는지 궁금한 거야? 그녀가 설핏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글쎄다. 우린 왜 헤어졌을까. 나는 정말로 그 남자를 사랑했는데. 어느 날이었어. 나는 종일 새로운 쿠키를 만드는데, 온 정신을 쏟아 붓고 있었어. 너도 알다시피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쿠키를 만드는 게 내 꿈이잖아. 베이커리에서 일하는 그를 만나게 된 것도 사실은 쿠키 때문이고. 아무튼 그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예쁜 접시에다 먹음직스럽게 쿠키와 샌드위치를 담고 촛불을 켜고 장미꽃으로 식탁을 장식하고 그를 기다렸어. 그 당시 그는 거의 매일 밤 열 시 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어. 그날도 그랬지. 너무나 피곤해서 그만 자고 싶다는 그에게 나는 억지로 쿠키를 권했어. 그는 계속 자고 싶다고 먹기 싫다고 말했고 나는 꼭 먹어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어.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 나중에는 그가 막 화를 내고 나는 쿠키를 담은 접시를 그의 얼굴에다 냅다 던져버렸어. 팍, 소리가 나고 이어 쨍그랑, 접시가 깨지는 소리가 났어. 나는 그 모든 것을 그냥 바라만 보았어. 쿠키 몇 조각이 그의 얼굴과 옷에 달라붙어 있고 바닥은 깨진 사기그릇과 쿠키로 엉망이었어. 그도 나도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았어. 그녀가 잠깐 말을 멈추었다. 나는 머릿속으로 그녀가 쿠키 그릇을 던지는 장면을 떠올렸다. 휘익, 거침없이 날아가는 그릇. 그런 상황이 연출될 때까지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단지 쿠키 때문에 벌어진 일은 아닐 것이다. 한참 뒤 이어진 그 다음의 장면은 이랬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그녀는 한참을 생각했다. 정성껏 쿠키를 만들고… 그에게 쿠키 그릇을 던지고… 쿠키를 만들 때 무슨 생각을 했지? 알고 보니 남자는 제과점을 하다가 실패해서 부도를 냈고 그때 자신에게 돈을 빌려 준 여자를 정리하지 못하고 이따금 만나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화가 나긴 했다. 하지만 뭐 어쩌겠나 싶었다. 이미 사랑하기로 결정한 남자였다. 그런저런 생각에 이따금 눈시울이 뜨거워졌지만 … 그녀는 쿠키에만 정신을 집중했다. 오로지 그한테 쿠키를 선보일 생각으로 정말 열심히 만들었다. 그랬는데. 쿠키 세례를 받은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녀는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이미 끝장났다는 것을. 그리고 처음으로 총이나 칼도 없이 침묵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것이 그녀의 심장을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정확하게 도려냈다. 마치 날카로운 메스로 도려내는 것처럼. 그가 직접 메스를 휘두른 것은 아니지만 그의 침묵이 그녀의 가슴을 마취도 하지 않고 도려내는 기분이었다. 통증이 느껴진 것은 한참 시간이 지난 뒤였다. 그는 혼이 완전히 달아난 것처럼 서 있는 그녀의 옆을 지나 방으로 들어가더니 여행용 트렁크에다 자신의 옷가지를 챙겨 넣기 시작했다. 트렁크가 가득 차자 이번에는 종이박스에다 화장품과 수첩, 세면도구 등 자잘한 소지품들을 담았다. 그제서야 급격하게 밀려온 통증으로 그녀는 도저히 서 있을 수 없었다. 그녀는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면서 비명을 질렀다.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그는 그런 그녀에게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고 한 손엔 트렁크를, 한 손엔 종이박스를 들고 집을 나갔다. 온몸의 수분이 다 빠져나가고 온몸의 뼈가 다 부서지는 통증이 한참 계속되었다. 그때 말이지 난 진실을 한꺼번에 깨달았어. 그녀가 말했다. 그게 뭔데요? 나는 물었다. ……. 그녀는 내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체 뭘 깨달았다는 걸까. 이 세상에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아니면…. 그녀가 그런 장면을 연출한 진실이 뭔지 알고 싶었다. 그렇게 사랑했는데 왜 그랬을까. 하지만 그녀는 끝내 답하지 않았다. 사실은…내가 자넬 부른 것은. 한참 있다가 그녀가 말했다. 나는 두 눈을 끔벅이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내 장례식을 치루고 싶어서야.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나는 두 눈을 크게 뜨고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그러니까 내 장례식을 치루는 거야. 이쯤에서 모든 걸 마무리하고 싶어서 그래. 그래도 그렇죠. 죽은 사람도 없는데, 어떻게 장례식을 치루어요? 혹시 편찮으신 것은 아니죠? 나는 아까부터 입안에 맴돌던 말을 꺼냈다. 없어. 그냥 그러고 싶어서 그래. 사람들한테는 굳이 장례식 운운 말하지 말고 그냥 치루는 거야. 어떻게요? 내 생각은 이래. 장례식 무도회를 여는 거야. 무도회요?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졌다. 장례식 무도회라. 나는 아론 슈나이더 감독의 ‘겟 로우’라는 영화를 떠올렸다. 줄거리는 이렇다. 1930년 미국 테네시의 한 마을, 사유지에 들어온 사람은 어른이나 아이를 가리지 않고 총을 쏘아 쫓아 내던 펠릭스 노인은 자신의 죽음을 미리 감지하고 살아 있는 동안 장례파티를 열 계획을 세운다. 초대 손님은 자신에게 얘기하고 싶은 사람들이다. 그는 스물 살 때 한 여자를 사랑했고 그 일로 여자는 남편에게 폭행을 당한다. 남편이 집에 불을 지르고 그는 여자를 불길에 두고 본능적으로 탈출한다. 그 죄책감으로 40년간 스스로를 감옥에 두고 살아온 펠릭스. 장례 파티에서 그는 그간의 진실을 얘기한다. 혹시, 그 영화를 보고 이런 발상을 한 것일까. 펠릭스처럼 뭔가 할 말이 있어서 말이야. 그래도 그렇지 그건 엄연하게 영화에서나 일어나는 일이고. 그래, 아주 성대하게 여는 거야. 그런데… 혹시, 어딜 아프신가요? 하고 물었다. 그런 것은 아니고. 그럼요? 그냥 그러고 싶어.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을 초대해서 근사하게 대접하고 싶기도 하고…. 그녀가 가냘픈 한숨을 내 쉬었다. 저기, 무도회를 열 생각이면 저보다 이벤트 회사에다 의뢰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은데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게… 그런 생각도 해 봤는데. 아무래도 장례식이라서 말이야. 관도 맞출 거야. 관요? 시체도 없는데 관은 왜요? 그녀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말을 하다가 말고 그녀는 방으로 쪼르르 가더니 A4용지를 가져왔다. 그리고는 무도회에 관한 구체적인 계획을 간단하게 그림을 그려가면서 내게 설명했다. 나는 머릿속으로 무도회의 풍경을 그려보았다. 마당과 집안 곳곳을 장미꽃으로 꾸미고 일급 요리사를 불러 음식을 만들게 하고 대부분 그냥 평범한 옷차림으로 올 사람들을 위해 파티의상도 준비하고 손님들을 모시러 갈 리무진도 빌리고. 나는 틈을 타서 슬쩍 농을 던졌다. 이왕이면 가면도 준비하는 것은 어때요? 그것도 좋은 생각 같은데. 그녀가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마당에서 가면을 쓰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상상했다. 이건 죽음을 애도하는 무도회가 아니라 죽음을 축하하는 무도회였다. 그리고 마지막 순서로 캠파이어를 하는 거야. 그녀의 말에 나는 캠파이어요? 하고 되물었다. 그래, 캠파이어. 장작더미를 쌓은 다음 그 위에 관을 올리는 거야. 그리고 태워버리는 거지. 관 속에는 그동안 내가 쓴 글들을 넣을 거야. 그녀가 말했다. 나는 아무말도 못하고 멍하니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녀의 말대로 못 할 것도 없지만 왜 굳이 그런 무도회를 열어야하는지 선뜩 납득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관을 불태우는 건 또 뭔가. 무슨 고대의 주술적인 의식도 아니고. 목이 말랐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갔다. 식탁 옆을 지나치다가 벽에 걸려 있는, 크고 작은 액자에서 활짝 웃고 있는 사촌을 발견했다. 사촌의 포즈는 다양했다. 초등학교 입학식 날에 눈을 둥그렇게 뜨고 양 볼에 바람을 넣고 찍은 것, 놀이공원에서 입을 활짝 벌리고 찍은 것,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피아노 건반을 두드릴 때의 깜찍한 표정 등등 새삼스럽게 감회에 젖어 들었다.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탁자에 구부정하게 앉아서 A4용지에다 열심히 뭔가를 쓰고 있는 그녀의 얼굴은 아무런 감정이 없는 것처럼 고요했다. 세파에 시달린 흔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죽은 사람처럼 평온해보였다. 여러 생각들이 복잡하게 서로 얽혔다. 축제 같은 장례식 무도회를 열겠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작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 이 외진 곳에서 두문불출하고 외롭게 살아온 그녀였다. 얼굴이 상한 걸 봐서 마음 고생도 많이 한 것 같았다. 그런 그녀가 왜 갑자기 모든 사람을 초대해서 무도회를 열겠다는 건지. 그러고 싶어서 한다고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그게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인가. 일단 바람이나 쐬고 보자. 나는 술도 깰 겸 집안을 둘러보고 싶다면서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면서 그녀도 나를 뒤따라 밖으로 나왔다. 해맑은 공기가 코끝으로 몰려왔다. 머릿속의 생각들이 한결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뭐 무도회를 못 열 것도 없었다.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는 게 아닌가. 생각보다 마당은 꽤 넓었다. 악단이 연주할 자리와 캠파이어를 할 자리를 대충 눈으로 봐두고 테이블와 의자를 몇 개 정도 놓을 수 있는지 가늠했다. 삼십 개는 충분히 놓을 수 있겠다는 계산이 나왔다. 4인용 테이블이니까 줄잡아 백이십 명은 초대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대충 초대할 손님의 숫자를 묻자 그녀는 주변 사람들을 일일이 이름을 열거했다. 안 그래도 바쁜 사람들이 촌구석까지 과연 올까. 나는 속으로 걱정이 되었다. 어쩌면 한 사람도 안 올 수도 있었다. 초대에 선뜻 응할 미끼가 필요했다. 그런 점을 얘기하자 그녀는 이미 생각해 둔 게 있다고 말했다. 그녀가 집을 나간 뒤에도 작은 아버지는 이혼 서류를 구청에 접수하지 않았고 그 덕분에 그녀는 꽤 많은 재산을 물려받게 되었다는 거였다. 이번 기회에 재산을 모두 정리해서 참석한 사람들에게 나눠 줄 생각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무도회 초대장에 넣을 거라고 말했다.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있는지요? 하고 말했다. 그냥 그러고 싶어. 그리고 나서는요? 나는 물었다. 떠날 거야.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새롭게 시작하고 싶어. 그녀가 말했다. 무도회 때 말이야. 왈츠곡을 연주하는 것은 어때? 등나무 밑 평상에 앉아 쉬고 있는데, 그녀가 말했다. 왈츠요? 그래, 모두들 춤을 추는 거야. 그것도 뭐 괜찮겠죠. 왈츠 출 줄 아니? 아뇨. 그냥 막춤밖에 못 춰요. 그럼, 일어나 봐. 가르쳐 줄게. 남자와 헤어지고 왈츠를 배웠다면서, 한동안 춤에 미쳐 살았다면서 그녀는 내 손을 잡아 일으켰다. 자, 양발을 어깨 넓이로 벌리고…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 그녀가 말하는 대로 나는 따라 했다. 어, 제법이네. 그녀의 말에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그녀도 입가에 웃음을 머금었다. 그런데 어쩐지 그 표정이 무척 슬퍼 보였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로. 자넨 웃는 모습이 보기 좋네. 순박한 시골청년처럼 순수해 보여. 나는 대답하지 않고 웃음을 삼켰다. 영주한테 자주 듣던 말이었다. 영주는 내가 웃는 모습에 반했다면서 틈만 나면 날더러 웃으라고 말하곤 했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영주가 생각나는 거지. 서서히 가슴을 죄여오는 이 감정은 또 뭔가. 산등성이에 해가 반쯤 넘어가고 있고 하늘은 온통 짙은 다홍빛으로 물들어져 있었다. 오래간만에 본 노을이었다. 정말이지 언제 하늘을 봤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다홍빛으로 내 몸을 물들일 것처럼 하늘을 눈 속으로 빨아들였다. 그녀도 하늘을 질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다홍빛 노을 너머 다른 세상이 있고 그곳을 들여다보고 싶은 것처럼. 저녁의 고요 속에 바람이 나뭇잎 흔드는 소리가 맑게 들려왔다. 요즘요…. 너무 두려워요. 나는 그녀의 귓가에 대고 고백하듯이 말했다. 정말이었다. 앞으로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가야할까. 막막하고 두려웠다. 여기에 처음 내려왔을 때 난 세상 끝에 내몰린 심정이었어. 그녀가 입을 열었다. 하루하루 견디는 게 너무 힘들었어. 그녀의 어깨 너머로 주렁주렁 감을 매달고 있는 감나무를 바라보았다. 열대 지방의 뜨거운 태양 아래 잘 익은 과일처럼 감이 단단하게 잘 익었다. 다홍빛이었다. 다홍빛이 감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노을도 다홍빛이고 감도 다홍빛이고 그러고 보니 주변이 온통 다홍빛으로 짙게 물들어지는 것 같았다. 다홍빛이 그녀와 나를 휘감았다. 우리는 다홍빛에 갇혀서 춤을 추었다. 그녀의 움직임에 따라 발을 움직였다. 하나, 둘, 셋…. 나는 춤에 몰입했다. 그것만이 전부인 것처럼. 그 순간이었다. 그녀와 단 한 순간도 떨어져 본 적이 없는 것처럼… 마치 한집에서 한솥밥을 먹으면서 살아온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가 자분자분 입을 열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겪었던 고통에 대해서. 죄책감에 대해서. 사랑에 대해서. 헤어짐에 대해서. 시종일관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이미 그 모든 것을 초월한 사람처럼. 내가 놓친 것은 무엇일까.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난 내 감정에 충실하게 따랐을 뿐인데. 단지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했을 뿐인데. 그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난 왜 후회를 하는 걸까.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할까.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끊임없이 생각했어. 뭐라고 결론을 내렸냐고? 나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노트에다 썼어. 안 그러면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거든. 내 머릿속의 생각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적으려고 애썼어. 마음을 스치고 지나가는 모든 감정들을 단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했어. 날카로운 칼날 위에 선 심정이었어. 그런데 정말 슬픈 건, 아이가 죽고 애인과 헤어지고 남편이 죽고 지인들은 내게 등을 돌리고 내게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때가 되면 요리를 하고 잠을 자고 티브이의 드라마를 보면서 울고 웃고 조금씩 야물어지는 과실나무를 보고 기쁨을 느낀다는 거야. 얼마 전 새벽이었어. 눈을 떴는데, 불쑥 어떤 장면이 눈앞에 선명하게 나타났어. 수면 위로 무수한 햇살이 떨어지는 푸른 강과 주변에 심어져 있는 나무들, 푸른 잎사귀 사이로 떨어지는 햇살. 몇백 년 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우람하고 잘 생긴 나무 사이로 나는 걷고 있었어. 청설모가 내 발 밑에서 놀고 있고. 숲 향기는 상큼하고 몸은 새털처럼 가벼웠어. 한 발짝을 옮길 때마다 몸이 공중으로 붕붕 솟아오르는 느낌이었어. 그때 이런 생각이 불현듯 들었어. 이제 그만 하자. 이쯤에서 그만 떠나자. 그 순간, 나를 옭아맸던 모든 감정들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느낌이었어. 그녀는 설핏 웃었다. 그래서 장례식을 치루려고 했나요? 떠나기 위해서요? 그래, 그러니까 나를 좀 도와줘. 내 손을 잡은 그녀의 손에서 힘이 느껴졌다. 곧이어 강렬한 온기가 내 손으로 전해져 왔다. 내 마음이 따뜻하게 데워지는 느낌이었다. 하나의 장면을 떠올렸다. 나는 죽은 듯 누워 있는 영주의 몸을 알콜 솜으로 정성껏 닦고 있었다. 미안해.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나는 중얼거렸다. 난 정말 비열한 놈이야. 그런 식으로 너와 끝내는 게 아니었어. 정말 미안해. 영주의 얼굴을 목을 가슴을 배를 허벅지를… 정성껏 닦고 또 닦았다. 맨 처음 죽은 사람의 몸을 염할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솜털이 바짝 설 정도로 두려웠고 어서 일을 끝내고 싶다는 생각 이외엔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며칠 동안 잠을 자다가도 알 수 없는 두려움에 휩싸여 벌떡 일어나기도 했다. 지금은 예전처럼 두렵지 않았다. 나는 기도하듯이 영주의 몸을 염했다. 영주가 모든 걸 잊고 누군가를 다시 사랑하고 잘 살아가기를 바라면서. 너무 골똘하게 생각한 탓인지 지금의 내 행동인 비현실적인 일인지 현실적인 일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어떤 확신에 사로잡혀 있었다.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영주도 내 손길을 느끼고 있을 거라고.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마당을 빙빙 돌았다. 내 옆에서 또 다른 내가 영주의 손을 잡고 빙빙 돌고 있었다. 그녀가 사촌의 손을 잡고 빙빙 돌고 있는 것도 보였다. 엄마와 아버지도 손을 잡고 빙빙 돌고 있었다. 사람들이 손을 잡고 빙빙 돌고 있었다. 다홍빛 노을 속에다 몸을 담근 것처럼 사람들은 다홍빛으로 물들어져 갔다. 아니, 다홍빛 노을이 사람들의 몸을 야금야금 삼키고 있었다. 아버지도 엄마도 사촌도 영주도 다홍빛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는 듯 그녀의 손을 꼭 잡고 마당을 빙빙 돌았다.  
226 내 마음의 타클라마칸 사막 외 1편/박승민 file
편집자
2754 2012-07-31
12.08월27호 시  내 마음의 타클라마칸 사막 박승민 한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8부 능선에서 그는 말좆 같은 시거를 물고 해시계 밑에 흐린 일획으로 서 있다. 빗살무늬 대리석 같은 등줄기로 촉에 불을 단 화살들이 쉴 새 없이 날아와 박혀도 그는 전혀 자신의 자리를 양보할 생각이 없다. 그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간신히 雪山의 문턱에 닿는 다해도 生은 늘 목마르다는 것을. 너무 목말라서 시거의 불꽃처럼 자신이 완전히 타들어갈 때까지만 온전한 生의 시간으로 인정하기로 했다는 것을. 모래폭풍 한번 몰아쳐오면 무덤이 평지로 순식간에 원상 복귀하는 신기루에서 그는 지금 마지막 한 모금까지 불타고 싶은 것이다. *타클라마칸 사막을 뜻하는 위구르어 다세대주택 지하에서 있는 거라곤 전세 계약서 (아니 전세계 계약서?)밖에 없는 찰리 김은 밥먹다 말고 밥상을 꽝 내리친다. 입을 한 一자로 귀밑 볼까지 엄숙하게 쫙 찢은 후 속으로 아내의 동태를 이리저리 염탐한다. 미세스 찰리는 일순 긴장한다. 긴장은 순간이고 잔머리는 곧 어김없는 응징을 받게 되어 있다 이내 냄비 뚜껑이 찰리의 얼굴을 강타한다. “새끼 돈도 못 버는 주제에” 경북 영주출생, 2007년 <내일을 여는 작가>로 등단, 시집으로 『지붕의 등뼈』가 있음 메일주소: 84blue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