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 그 유혹에 대해

-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를 보고

 

황정인

 

참 기이한 일이었다.

나는 가던 길을 멈춘 채 뒤돌아서서 그 남자의 뒷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그대로 붙박은 듯 서 있었다. 짧은 동안, 몸은 스스로의 의지와 상관없이 무언가에 사로잡힌 채 내부에서 급격하게 일어나는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둔감하던 내 몸의 60조나 되는 세포가 일제히 성적 충동에 이끌려 그를 안고 싶다고 느끼는 것이었다. 길을 가고 있는 다른 사람에게서 느낄 수 없던 충동이 단지 그 남자에게서만 일어났다. 마음의 변화도 기이하지만 난데없는 욕구 앞에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걷잡을 수 없이 새어나온 욕구와 대면하게 된 이성은 내 안의 욕망들을 가까스로 돌아보게 했다. 겨울나무에 매달린 자잘한 알전구에 스위치를 넣는 순간, 수 천 수만의 빛이 비로소 나무가 거기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한 것처럼 내 안에서도 자극과 동시에 일어날 수 있는 성적 충동이 그렇게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는 모르는 남자다. 뒷모습만 보았기 때문에 나이나 생김조차 가늠할 수가 없다. 뒷모습이라고 해봐야 내가 유혹을 느낄만한 어떤 사안도 지니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왜 순식간에 열병 같은 느낌에 사로잡힌 것인지 자신 안에서 생성된 감정임에도 이해하기 어렵고 설명하기 힘들었다. 다만 내가 알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서는 다른 사람에게서 나지 않던 향기가 났었다는 사실 뿐이었다. 흔히 맡을 수 있는 달콤하거나 청량감 있는 향이 아니라 뜨거운 여름날 혼곤하게 낮잠에서 일어나면 땀에 배인 몸에서 나는 냄새처럼 어딘가 은밀하고 습한 기운이 묻어나는 그런 향이었다. 그러나 향이 사라지자 느낌 또한 사라지고 없었다.

향에 대한 민망한 기억으로 오랜 세월 보낸 후, 이해 받을 수도 이해 할 수도 없던 부분에 대해 마침내 이해하게 되는 영화를 보게 되었다. 우연한 기회에 인터넷으로 보게 된 영화 ‘향수’, 그 내용이나 영상이 잠시도 한눈을 팔지 못하게 하는 마력이 있어 오랫동안 기억에 남기도 했지만 향에 대한 기이한 경험 때문에 충격적인 마지막 장면까지도 이해가 가능하던 영화였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험만큼 빠른 것은 없는 모양이다.

 

향수는 2006년도에 우리나라에서 개봉되었던 영화인데 아마 극장에서 그 적나라한 마지막 영상을 대했던 사람들은 당황스럽고 억지스럽게 여기지 않았을까 한다. 영화가 주는 미묘한 끌림에 의해 도서관으로 달려가 책을 빌려 보게 되었다.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라는 부제를 단 쥐스킨트의 ‘향수’는 1985년 발매되자마자 이 년 만에 이백만부나 팔린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다. 영화는 작품이 발간된 이후 십 수 년이 지난 다음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전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작품을 영화화해서 성공한 사례는 드물지만 이 영화는 원작이 보여주고자 하는 바를 충실하게 따라가려 했다는 것을 책을 보고나니 확연히 느껴졌다. 향수라는 생소한 소재로 만들어진 영화는 18세기 프랑스와 향수의 고장인 그라스를 배경으로 향수의 제조 과정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있다. 그 시대의 서민들의 생생한 삶의 모습이나 아름다운 풍경이 볼거리를 더해주고 있었다. 책이 보여줄 수 없는 영상을 생생하게 보여주어 상호 보완적 역할을 톡톡히 한 것으로 여겨진다.

 

주인공 장 바티스트 그루누이는 더럽고 악취가 가득한 생선 시장의 쓰레기 더미 위에서 태어나 버려졌지만, 정작 본인은 아무런 체취를 지니지 않은 채 태어났다. 그러면서도 그는 냄새에 있어서는 천재적이다. 그의 뛰어난 후각은 냄새로 모든 사물을 구분했고 냄새로 인식을 햇으며 세상의 어떤 냄새도 구분하고 조합하여 새로운 냄새를 만들 수 있는 재능까지 타고 났다.

 

파리 뒷골목의 가죽 무두장에서 처절한 어린시절을 보낸 그루누이는 어느 날, 이제 그 명성을 잃고 망해가기 시작하는 향수 제조업자 발디니의 가게에 배달을 가게 된다. 그 곳에서 자신의 후각으로만 향을 섞어 새로운 향수를 만들어 준 후, 발디니의 도제로 들어가 그 곳에서 각종 식물에서 향을 추출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지만 사람의 향을 만들고 싶었던 그는 우연한 방황 끝에 향수의 고장인 그라스에 들어가 그 곳에서 향을 추출하는 방법을 배우고 동물의 향까지 추출할 수 있게 된다. 체취가 없는 그는 자신이 사용할 향수를 만들어 동정심을 유발하게 하는 향,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게 하는 향, 평범한 보통 사람으로 인식하게 하는 향 등으로 자신이 모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향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향기로 세상을 다스릴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단 한 번도 사랑을 받아본 적 없는 그는 모든 사람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는 향을 만들고 싶어 한다. 사랑을 느끼게 하는 향을 만들기 위해 그는 가장 아름답고 순수한 여자들을 서서히 죽이고 그 사람들 몸에서 향을 채취하고 증류하여 열세개의 작은 통에 사람의 향을 보관하게 된다. 그러다 결국 체포되어 공개 처형을 당하게 되지만 공개처형 되는 날, 그는 자신이 만든 그 향을 조합하여 온몸에 뿌리고 나가자 광장에 모여 있던 수백만 인파에게서 기적이 일어난다. 25명을 죽인 살인마에 대한 분노로 들끓던 광장에 모였던 사람들이 그 향을 맡는 순간, 갑자기 그루누이가 살인을 저질렀을 리가 없다고 믿게 되고 그의 볼품없는 외모조차도 눈물 흘린 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고 심지어 그에게 딸을 잃은 귀족조차도 그의 살인을 용서하게 되는 현상이 일어났다. 모든 분노나 증오 대신 사랑이 광장을 뒤덮어 사람들은 서로 처음 보는 상대를 안고 열광하며 옷을 벗어 던진 채 육체적 사랑까지 나누게 된다. 환상에 사로잡힌 채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난교를 벌이던 대중을 바라보던 그루누이 자신은 오히려 사랑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모든 인간과 신을 이겼다는 승리감에 그들을 비웃게 되고 오히려 증오심이 일어난다. 사형수였던 그는 유유히 그 자리에서 사라지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사람의 맘을 움직이는 것은 진심이 담긴 말이나 행동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말이나 행동보다 더 강렬하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에 이런 향기도 있다는 것을 알게 한다. 말이나 행동이 오랜 시간 공들여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것에 비한다면 향은 순식간에 이성을 마비시켜 무조건적으로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기도 하지만 공포를 느끼게도 한다.

 

물론 ‘향수’는 상징성이 강한 작품이다. 주인공은 향으로 세상을 인식했고 향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고 향으로 세상을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해 향을 만드는 일에만 집착하여 살았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몰두하는 것이 있다. 그루누이가 향수에 몰두 하는 것처럼 우리는 인간 본연의 욕망인 물징이나 권력이나 사랑에 빠질 수도 있다. 향이 인간의 손에 만들어진 화학 성분에 불과하지만 감각을 자극해 전혀 의외의 사고를 하고 그 사고로 전 생을 바꿀 수 있다는 설정이 가능했던 것처럼 우리의 욕망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이런 설정이 비약이기만 한 것일까?

 

오래전, 향이 사라지자 마음도 사라졌다고 하지만 그 느낌이 가끔은 그리울 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