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목련에 들리다

거울 속에 지난밤의 흔적이 있다. 옷들이 지친 여행자처럼 바닥부터 침대 위까지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나는 결국 흰 바지에다 검은 바탕 흰물방울 무늬 재킷을 입기로 했다. 무던하고 깔끔한 쪽으로 손을 든 셈이다. 할머니 상중임을 의식하여 검정 슈트를 입어보기도 했으나 이 봄날 십년 만에 만나는 그를 부담스럽게 할 것까지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내 몸매의 장점인 긴 허리선을 위해선 작은 꽃무늬 원피스에 볼레로를 걸치는 것이 마땅했다. 그러나 여성스러운 자태가 드러날수록 마음 한쪽에서는 가위표를 그어대며 말렸다. 그러다 지쳐버렸고 등잔을 택배로 부쳐달라고 할 걸 그랬나 싶기도 했다. 새벽녘이 되어서야 눈을 붙였다. 모닝콜이 간밤의 고민과 망설임에 종지부를 찍어 주었다. 나는 여느 날과 달리 벌떡 일어나 샤워를 했다. 머리에 롤을 말고 화장대 서랍을 뒤져 몇 년째 굴러다니는 파운데이션을 바르고 수분이 다 빠져 표면이 거칠어진 립스틱을 엣센스에 섞어 발랐다. 양쪽 입꼬리를 올려 미소를 만들어 본다. 눈가 주름이 서너 개 접히고 입가는 굵은 여덟팔자가 됐다. 몇 년째 화장대 뒤편으로 밀려난 채 선택받지 못하고 먼지만 뽀얗게 뒤집어쓴 술탄 향수를 집어 들었다. 늙은 술탄의 여인처럼 향기는 뿌릴 때뿐이고 방을 나서는 순간 사라지고 말았다.

일주일 전, 외할머니의 빈소에서 돌아오면서 나는 등잔을 되찾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이제 내게 혈육이라곤 어머니밖에 남지 않았다. 외할머니와 각별했다거나 특별한 추억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묘한 상실감이 있었다. 해가 갈수록 심해져가는 탈모증상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듯 희미해져가는 내 존재감이 쓸쓸했다. 그렇다고 그 상실감을 메우기 위해 등잔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시작은 순수했다. 오직 등잔에 담긴 의미를 기리려 했을 뿐. 등잔은 원래 외할머니 것이었는데 십 년 전에 문도에게 넘어간 상태였다. 내 손으로 넘겨주긴 했으나 이렇게 등잔과의 인연이 끝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등잔은 나무로 만든 등경에 백자등잔을 얹은 단순한 모양이었다. 예전에는 생활용품이었으나 요즘은 인테리어 소품으로 쓰이기도 하고 사찰이나 국립공원 기념품 매장에서 혹은 박물관에서도 볼 수 있는 평범한 것이었다. 대량 생산된 상품들과 모양은 비슷했지만 할머니의 등잔은 특별했다. 이제 유품이 돼버린 그것을 되찾아오는 것이 할머니에 대한 예의고 마음의 빚을 갚을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하자 더 미적거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막상 등잔을 되찾기 위해 문도의 소식을 찾아 나서자 마음은 뒤범벅이 돼버렸다. 그의 웃음과 습관과 걸음걸이가 떠오르고 함께 겪었던 일들과 그때그때의 감정들이 생생하게 살아났고 함께 봤던 영화와 드나들었던 술집이 스쳐가더니 결국 그의 근황이 참을 수 없이 궁금해졌다. 초심에서 벗어나지는 말자고 수시로 자신을 다독여야 했다.

주로 분위기를 환기시키거나 아이들을 집중시킬 때 혹은 수업을 마무리할 때 로토스를 꺼내곤 한다. 마치 오디세우스가 항해 도중 만난 섬에 발을 내딛는 것처럼 한숨 돌리는 순간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콩알처럼 생긴 초콜릿을 나눠준다. 이건 연꽃의 열매인 로토스라는 건데 이걸 먹으면 세상 근심을 다 잊어버릴 수 있어.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다가 풍랑을 만나 어느 섬에 들르게 됐는데 그곳엔 로토스를 먹는 종족들이 살고 있었어. 그의 부하들은 섬사람들이 건네준 로토스를 먹은 뒤 고향을 잊어버리고 그곳에서 살겠다고 버티기도 했지. 초콜릿을 로토스라 믿는 아이들은 없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로토스를 입 안에 넣고 잊고 싶은 것들을 열심히 입 밖으로 내보낸다. 기를 써도 80점을 넘지 못하는 성적과 아침에 들은 친구의 욕설과 부모의 잔소리 같은, 불편하고 음울한 것들을.

아이러니하게도 그 망각의 열매는 옛 친구를 기억나게 한다. 문도는 대학 3학년 가을학기에 제대하여 복학했다. 그의 주머니 속에는 늘 콩알만한 커피색 초콜릿이 있었는데 그는 그것을 로토스라고 부르며 친구들에게 나눠주었다. 당시 전공선택 과목에 그리스 신화를 해석하는 과목이 있었다. 겉핥기로나마 리포트를 써내며 한 학기를 보내고 나면 신들의 이름이 친구 이름처럼 친근해지는데 문도의 로토스 역시 그런 공감대 위에 애교스럽게 받아들여졌다. 위태로운 열정을 위하여! 장밋빛 미래를 위하여! 문도는 씩씩하게 구호를 외치며 한 명 한 명의 입 속에 로토스를 집어넣어 주었다. 진부한 구호는 건강하고 낙천적인 그의 성격과 묘하게 어울렸고 로토스를 문 친구들의 입가엔 천진한 웃음이 절로 배어나왔다. 문도의 별칭은 자연스럽게 로토스가 됐다.

흔히 첫사랑을 상처와 함께 떠올리곤 한다지만 나는 로토스를 먹고 첫사랑의 아픔을 지웠다. 대학 졸업반 봄 학기가 시작될 즈음 첫사랑 애인과 헤어졌다. 왼손잡이였기 때문에 한동안 내 입술의 오른쪽은 담배 독으로 거무스름했고 혀와 입천장의 오른쪽 부위 역시 알코올로 절여지고 있었다.

나는 동기들보다 다섯 살이나 많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3,40대 여자들과 함께 휴대폰 생산 라인에서 일하며 4년을 보내고 난 뒤에야 대학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시력이 약한데다 작은 부품들을 조립하고 미세한 결함을 찾아내느라 눈이 더욱 나빠진 것도 하나의 이유였다. 뒤늦게 시작한 대학생활이었지만 보람 있게 보내지는 못했다. 학우 관계는 어정쩡했다. 사교적이지도 못하고 융통성도 없는데다가 나를 누나 언니로 부르는 동기생들과 섞이는 게 어색하고 불편했다. 곧 연애에 빠져들었고 학교 밖에서 맴돌았다. 헤어진 뒤에는 누구로부터도 위로받지 못했다. 대학 졸업반의 봄날이 지나가고 있던 어느 날, 수업을 끝내고 밖으로 나왔을 때 문도가 벤치에 앉아 있었다. 강의실 건물 앞 벤치는 과 학생들이 곧잘 모여 앉아 노닥거리는 곳이었다. 벤치 뒤로 수수꽃다리가 한창이었다. 그가 대뜸 말을 걸어왔다.

“사랑이라는 놈이 어떤 맛을 가지고 있는지 맛 좀 볼래?”

무슨 헛소린가 하여 그냥 지나치려는데 그가 수수꽃다리 잎새 하나를 따더니 조그맣게 되도록 몇 겹으로 접어 내게 건넸다.

“어금니로 콱 씹어야만 해.”

황당한 주문이었지만 그 황당함에 이끌려 나는 그것을 입안 깊숙이 집어넣고는 어금니로 깨물었다. 순간 혀를 마비시키는 쓰디쓴 맛에 몸서리가 쳐졌다. 그는 기다리고 있었던 듯 킬킬킬 웃었다.

“그건 첫사랑의 맛이야. 이제 이걸 먹어봐.”

쓴 맛을 수습해야겠기에 따지고 자시고 할 겨를 없이 그가 건네준 콩알 같은 초콜릿을 냉큼 받아먹었다.

“이건 망각의 씨앗이야.”

단 맛이 퍼지면서 쓴 맛을 몰아냈다. 그렇게 농담처럼 첫사랑이 지워지고 로토스에 서서히 취해갔다.

로토스. 입에 넣어 봐. 이빨을 사용해선 안 돼. 가만히 혀 위에다 얹어 두는 거야. 소화기관이라곤 혀와 침밖에 없다고 생각해. 침이 잘 나오려면 마음이 편안해져야 하지. 네 마음을 혀와 침에다 갖다 놓으렴. 이제 침과 함께 서서히 녹기 시작할 거야. 처음엔 달콤하지만 마지막엔 씁쓰레한 맛. 숨을 깊게 들이쉬면 그 향기가 온몸 구석구석으로 퍼져갈 거야. 한 번, 다시 한 번. 사람의 혈관을 한 줄로 이어붙이면 지구를 두 번 반이나 감을 수 있다는데 향기가 그 혈관을 한 바퀴 도는 시간은 1분도 안 걸려. 머리끝부터 발끝 손끝까지 다 퍼지면 너는 현실과 기억에서 벗어나고 네 몸은 해변의 소금기 머금은 바람을 맞고 있거나 피톤치드가 뿜어져 나오는 오후2시의 숲속에 있을 거야.

아이들에게 말하곤 했다. 사람에게 시달릴수록 자연 속에 있고 싶어 하고 그 속에서 에너지를 얻는다고. 그러나 나는 물속이나 숲속에서까지 내 모습을 보는 게 지겨워 어느 날부터 천변을 걷고 뒷산을 오르던 산책 코스를 버리고 대형마트를 둘러보거나 대학가를 돌았다. 소음으로 귀가 먹먹하고 눈앞의 정경들이 영상처럼 돌아가고 고기 굽는 냄새와 시궁창 냄새가 뒤섞인 거리를 걸어 다녔다. 광고판에는 그 날 밤에 있을 공연 포스터가 붙어 있고 보도블록에는 갖가지 홍보 명함들이 떨어져 있었다. 머뭇거리다 익명의 어깨들과 부딪쳤을 때 자신의 무게감에 놀라기도 했다. 쇼윈도 속 마네킹이 입은 원피스와 화장품 가게의 테스트용 립스틱을 구경한 다음 내가 걸음을 멈추는 곳은 테이크아웃 샌드위치 가게가 바라다 보이는 길목이다. 나는 뜨거운 철판 앞에 서 있는 여자를 오래도록 훔쳐본다. 여자는 손님의 주문이 떨어지자마자 옆에 놓인 스텐리스 통을 열어 다섯 가지 재료를 차례로 꺼낸다. 나는 재료가 놓이는 순서를 외고 있었고 여자는 단 한 번도 그 순서를 바꾸지 않았다. 완제품을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5분에서 6분 사이다. 여자의 손은 피아노를 치듯이 움직였다. 여자와 함께 꾸려가는 삶은 어떨까. 나는 종일 오이를 썰어 피클을 절이고 양배추를 썰고 소스를 만들고, 여자는 철판 앞에 서서 내가 만들어준 재료들을 이리저리 넣으며 샌드위치를 만드는 거다. 밤 열두시가 되면 가게 셔터를 내리고 뒷정리를 하겠지. 서로 어깨를 주물러준 뒤 술을 한잔 하는 것도 좋겠다. 상상을 하는 동안 손님이 끊기고 여자의 손놀림이 멈춘 것을 참을 수 없어서 우물쭈물 가게 앞으로 다가가 샌드위치를 주문한 적도 있었다. 집으로 돌아올 때쯤엔 어머니와 단둘이 이렇게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새삼 끔찍스러워지고 어떤 결단을 도모하는 심정이 목울대까지 차오른다. 그러나 주방에서 파자마 바람으로 마늘을 까고 있던 어머니가 대파를 사오라며 다시 등을 떠밀면 나는 대파를 향해 종종걸음을 걸어야 했다. 어머니는 대파같이 맵고 현실적이었고 나는 대파를 넘어설 수 없었다. 언젠가 했던 심심풀이 심리테스트에서 어머니는 귀가 얇아서 남의 말을 잘 듣는 유형으로, 나는 비현실적인 유형으로 결과가 나온 적이 있었다. 그 결과에 대해서마저도 어머니는 그것 봐라는 투로 나를 나무랐다. 그래서 결혼도 못 하고 궁상을 떨고 있지 않느냐고. 나 역시 어머니의 그 말이야말로 당신 귀가 종잇장만큼이나 얇은 것을 적나라하게 증명하고 있는 거라고 반박했다. 어머니와 나는 서로를 잘 알았고 상대의 단점에 관대하지 못했다.

문도의 연락처를 알아내는 것은 간단했다. 학과 사무실을 통해 알음알음으로 휴대폰 번호를 알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선뜻 전화를 걸지 못하고 망설였다. 그와의 마지막 만남 이후 묻어두었던 불편한 감정 때문이었다. 등잔을 건네주던 날이 마지막 만남이 될 줄은 그도 나도 몰랐다. 등잔은 그래서 뜻하지 않게 이별의 선물이 돼버렸다. 통화에 앞서 수십 번도 더 생각을 정리해야 했다. 바로 며칠 전 할머니상을 당한 손녀가 고가의 물건이 아닌 고작 할머니 손때가 묻은 등잔을 돌려받겠다는 건 결코 무리한 부탁이 아니다, 가까운 이를 잃은 슬픔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 물건으로나마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어느 누구라도 기꺼이 해줄 수 있는 일이지 않은가. 나는 휴대폰 폴더를 수차례 열고 닫으며 자신을 설득했다.

그러나 막상 통화가 됐을 땐 십년 세월이 무색할 만큼 싱거웠다. 문도는 스스럼없이 반가워했다.

“야, 이게 누구야? 정말 오랜만이다. 어떻게 지내?”

어떻게 지내냐는 말에 나는 억누르던 감정의 둑이 무너지는 것도 모자라 그만 앞질러버렸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어.”

사실 넘어져서 그를 쳐다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당황스럽기는 그도 마찬가지였을 텐데 그는 그러냐며 조의를 표했다. 무던하고 배려 있는 성격이 그대로인 건지 사회생활 십 년차의 의례적인 언사인지 알 수 없으나 어쨌든 무연함이 누그러졌다. 할머니 얘기가 나와서 등잔 얘기를 꺼내기가 수월해졌다.

약속장소를 모교 앞으로 정했다. 알고 보니 사는 곳이 서로 반대 방향이었는데 어림잡아 모교가 중간지점쯤 되었다.

“아직도 있나 몰라, 정문 맞은편 복사집 옆에 우리 잘 가던 찻집 말야.”

문도는 학교 앞에 안 가 본지 오래 돼서 모르겠다고 했다.

“찻집이 없으면 정문 앞에서 보지 뭐. 그 날은 시간 잘 맞춰서 나갈게.”

그는 말끝에 의미 있는 웃음을 흘렸다.

“그래, 이번엔 늦지 마라.”

그의 다짐을 확인하면서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시간을 잘 지키겠다던 그의 말에 왠지 김이 빠졌다. 단지 늦었기 때문에 우리 관계가 어그러진 것일까.

외할머니가 세상을 뜨던 날은 내가 우연찮게 신비스런 장면 하나를 포착한 날이었다. 어디까지나 어쭙잖은 내 시선으로 기존의 평범한 사실 하나를 포착했다는 것이지만 그 날의 포착은 내 영혼을 땅 하고 치는 각인이 있었다. 봄이 점점 짧아진다 하지만 예전부터도 내게는 인색한 계절이었다. 볕이 예사롭지 않아 밖으로 시선을 돌리면 벚꽃은 이미 눈이 되어 날리고 있고 성급한 목련은 행인들 발길에 즈려 밟히고 있었다. 마음먹고 봄옷을 꺼내 입은 어느 날엔 꽃들을 제치며 푸른 잎들이 성큼 화단을 덮었고 사람들은 반소매 차림이었다. 올봄, 오랫동안 해오던 논술 과외팀이 점점 줄어들어 한 팀만이 남아 있었다. 서른다섯 살은 무얼 시작하기에도 애매했고 결혼을 위해 남자를 만나기도 쉽지 않은 나이다. 안정된 직장을 가지지도 못했고 제대로 된 자격증도, 그럴싸한 이력도, 벌어놓은 돈도 없었다. 학원과 과외를 번갈아가며 그저 어머니와 나, 두 식구 먹고 산 게 전부였다. 그런 어느 봄날 아침이었다. 느지막이 일어나 물을 마시다가 베란다 쪽으로 문득 시선이 갔다. 창을 가득 채운 건 이제 막 터진 목련꽃 한 무리였다. 빛과 달리 꽃송이 하나하나에서 발하는 환한 기운이 모아져 애드벌룬처럼 커다랗게 원을 그리며 떠 있었다. 해가 없어도 늠름하게 밝을 순백의 기운이었다.

“와아, 저게 뭐야? 엄마, 저것 좀 봐요!”

“뭐?”

어머니는 노인복지관에 가려고 준비중이었다. 어머니는 아직도 스웨터를 벗지 못하고 분홍색 봄점퍼를 들었다놨다했다. 내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으나 어머니는 시큰둥했다.

“저게 뭐 어떻다고?”

쯔쯔, 어머니는 혀를 찼다. 나는 창문 쪽으로 다가갔다. 목련은, 아니 목련이 뿜는 기운은 먼 데서 온 순결하고 너그러운 손님처럼 낯설고 신비로웠다. 내가 놓쳐버린 수많은 봄날에도 목련은 이 이층 베란다 창을 통해 거실을 들여다봤을 것이다. 목소리가 변하고 수염이 나기 시작한 사춘기 아이들과 밤늦게까지 씨름하고 자정 즈음 베란다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냉장고에서 한 달 묵은 사과 같은 얼굴을 보았을 것이다. 불면으로 한잔 두잔 마시기 시작한 소주가 병으로 비워지는 것도, 아침에는 술에서 덜 깬 상태로 학생 엄마들의 전화를 받는 것도. 아이들 수준은 초등학생들이 읽는 책을 소화하기도 버거운데 엄마들은 고등학생이 읽는 책들을 넌지시 열거하고, 시험기간이 되면 교과서 문제풀이를 해달라고 요구했다. 시험을 치르고 나면 팀이 깨지기 일쑤였다. 아이들이 농담과 핑계로 자신의 잘못을 눙치며 넘어가려 할 때마다 나는 잘못의 본질을 강조하며 역정을 내고 있었다. 아이들과 나는 줄다리기를 하는 것처럼 팽팽해져갔다. 해를 거듭할수록 가르치는 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확신이 들었다. 매사에 대해 너그러움이 사라지고 있었다. 어느 책에서 읽었던 글귀처럼 너그러움은 모든 일이 잘 풀릴 때에 퍼지는 온기일 것이다.

그런데, 너그러움이 눈앞에 있었다. 지친 새가 깃들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그때, 전화벨소리가 울렸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단다, 어머니가 다가와 소리 나게 베란다 창문을 닫았다. 쿵! 목련과 할머니는 아무런 관계도 없으면서 그렇게 묘한 인연으로 내 머릿속 한 귀퉁이에 자리를 잡아버렸다. 목련이 오고 할머니가 갔다. 숱한 생명이 오고 가는 길목에서 스친 사소한 우연에 불과했지만 아마도 나는 살아가면서 목련을 볼 때마다 외할머니가 생각날 것이다. 몇 군데 전화를 하고 서둘러 짐을 쌌다. 그리고 경황없이 어머니와 터미널로 갔다. 고속터미널로 가는 지하도 기둥을 에워싸며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명품 로베르또, 얼마 안 남았어요~, 만원부터, 로베르또로 땡잡으세요~ 몰려든 사람들 사이로 짝퉁 로베르또를 파는 남자의 소리가 울려나왔다.

“무슨 로또로 땡잡으란다.”

어머니가 돌아보면서 말했다. 지하도는 무척 붐볐고 사람들과 부딪치지 않으려 애써야 했다.

“가방이잖아.”

나는 그럴 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로또로 땡잡으러 무리 속에 끼어들까봐 어머니의 팔을 잡았다.

“그래, 가당찮은 짓이다. 로또로 무슨 땡을 잡아.”

이미 로또에 대한 나쁜 기억에 사로잡힌 어머니는 들리는 말에서 쓰고 싶은 조각만을 주워들으며 조소를 날렸다. 어머니는 언젠가 로또가 5만원에 당첨되는 행운을 얻은 적이 있었다. 게이트볼 동호회에서 만난 장호씨가 선물로 준 것이었다. 그 사건 때문에 장호씨와 급속도로 친해졌고 한동안 내가 주는 용돈의 전부를 쏟을 만큼 로또의 마력에 흠뻑 빠져 버렸다. 물론 그 뒤로는 단돈 5천원짜리 행운도 건지지 못했다. 어머니 방에서 또 꽝이네, 하는 소리가 들리고, 박복한 년이 무슨 요행을 바라고 어쩌고 하는 익숙한 한탄이 뒤따라 나오곤 했다. 로또에서 더 이상 재미를 보지 못한 탓인지 장호씨와도 시들해지고 말았다. 할머니의 빈소가 있는 남쪽 지방도시까지 가는 동안 어머니와 나는 각자 그런저런 시시한 사념에 빠져 있었다. 할머니 얘기만 나오면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다고….’로 시작되는 어머니의 말을 듣는 것보다 딴청과 침묵이 나았다.

할머니 빈소가 마련된 곳은 어머니와 성이 다른 외삼촌 집이었다. 할머니는 어머니를 낳은 후 남편이 실종되는 바람에 상처한 박씨와 재혼했다. 주변의 눈총보다 먹고 사는 일이 더 문제였던 때였다. 나는 열 살 무렵 이후로 외가 왕래가 없었기에 친척들이 낯설고 불편했다. 핏줄로 보자면 할머니의 손녀였고 당연히 상제였지만 대하는 이들이나 나 자신도 서먹하기가 남남 같았다.

주방에서 여자들이 모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속에 끼지는 못하고 나는 뒤뜰로 이어지는 문간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눈으로는 길 건너 보이는 동백 밭을 바라보면서 여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얼마나 깔끔한 양반이었는지…. 뒤가 이렇게 깨끗할 데가 있나. 입던 옷가지랑 쓰던 물건들 다 싸봐야 상자 두 개가 고작이고, 팬티며 내복도 꼼꼼하게 접어 꾹꾹 쟁여놨습디다. 자손들 고생할까봐 수의며 상복도 미리 만들어뒀더라구. 덕분에 우리는 정말 편하게 일 치르고 있잖어. 생시에도 있는 듯 없는 듯하시더니 가실 때도 그렇고…. ”

어머니가 끼어들었다.

“우리 어머니가 노상 등잔 밑에 앉아 있었던 게 기억나네. 밖에서 놀다가 어두워지면 멀리서도 어머니가 불을 켜 놓았겠거니 믿고 걸어가다 보면 틀림없이 희미하게 등잔불빛이 보였어. 방안엔 항시 석유냄새가 배어 있고 말이지. 벽이며 천장에 그을음이 생겨서 손가락으로 문대며 장난치다 혼나기도 많이 했지. 나중에 나를 보낼 때….”

어머니는 울컥 치미는 설움에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어머니는 여덟 살 때 남의 집으로 보내졌다고 했다. 도저히 생계를 이어갈 수 없었던 할머니는 딸을 남의 집에 보내고 당신은 박씨에게 간 것이다. 어머니는 이 부분 때문에 이때껏 할머니를 용서하지 못했다.

“그 등잔을 보자기에 싸주며… 흐윽… 아버지 유물이 될지도 모른다고… 으으으… 얼굴도 못 본 아비 대신 가져가라고오오…. ”

할머니 영정 앞에서도 눈물을 안 보이던 어머니는 그제야 봇물 터지듯 울기 시작했고 주변의 여자들도 여덟 살 어머니가 불쌍해서 눈물을 훔쳤다. 그렇게 한 고개를 넘고 나서 어머니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등잔은 아버지가 손수 나무를 깎아 만들었다네. 내가 태어나기도 전이지. 손재주가 좋은 양반이라 어머니가 편케 이것저것 만들었다는데 남은 건 등잔뿐이라네. 자라면서 등잔불 켜고 책이라도 볼라치면 기름 든다고 양어머니한테 잔소리 많이 들었지. 이사 다니며 살다 보니 그것도 어디로 갔는지….”

나는 얼굴을 완전히 동백 밭으로 돌렸다. 이런 유래를 알았더라면 등잔을 문도에게 주진 않았을 것이다. 왜 하필 등잔이었을까? 선물을 주고 싶었다면 새롭고 좋은 물건들도 얼마든지 있었을 텐데. 나는 제풀에 얼굴이 붉어졌다. 거기엔 내 자신에게만은 속일 수 없는 은밀한 이유가 숨어 있었다. 농담으로 시작해서 진지함으로 끝나는 게 남녀의 관계라면 그가 농담 즈음에 있을 때 나는 혼자 서둘러 진지했던 셈이었다.

십년 전 겨울, 졸업식을 앞두고 나는 문도에게 선물을 주기로 결정했다. 결정이라는 단호한 절차를 밟은 것은 그만큼 신중했고 고민했다는 뜻이다. 도서관이나 수수꽃다리 앞 벤치거나 학과 사무실에서 우연히 마주치고, 점심을 함께 먹기 위해 시장통을 누벼 다니고, 단골찻집에서 담배를 나눠 피며 시간을 죽이고, 각자 다른 노선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에서 인사를 하는 일은 더 이상 없을지라도 문도와의 유대감을 이어가고 싶었고, 숙고한 끝에 그건 특별한 감정이라는 결론을 얻었으며 그래서 선물이라는 형태를 생각해 낸 것이다. 문도와 나의 관계에 지포라이터나 만년필 같은 선물은 식은 죽처럼 향기가 없었고 벨트나 지갑 따위는 뜨거운 죽 같았다. 통념의 가치와 기준에서 벗어난 것,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것, 무엇으로도 환산 불가능할 것, 선물의 의미에 대해 나는 오래도록 궁리했다. 내 마음을 더도 덜도 아니게 담고 싶으면서도 그대로 보여주기에는 자존심이 허락지 않는 모순된 갈등이 있었다. 그러다 눈에 띈 것이 등잔이었다. 등잔은 먼 시간이 주는 향수와 무용한 쓰임새와 희소성을 갖췄으며 경박하지 않고 내면적이었다. 문도와 나 사이에 놓였을 때 담백하면서도 메시지를 애매하게 담을 수 있는 선물로는 그만이었다. 나는 등잔이 할머니로부터 어머니에게 내림한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등잔을 특별히 소중히 여기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할머니를 마뜩찮아 하고 내왕이 뜸했던 것과 관계없이 그저 낡고 쓰임이 없는 물건 정도로 취급했다. 어떤 물건에 특별히 의미를 두는 편이 아니었다. 그래서 양은냄비나 소쿠리 등속과 함께 베란다 창고 신세였던 등잔을 몇 해 전 우연히 발견하고 내 방 화장대에 갖다 두었다. 나 역시 예스럽고 고상해 보여서 그랬을 뿐 할머니나 어머니의 내력까지는 미처 의식하지 못했다. 등잔으로 낙점이 되자 정성들여 닦고 한지를 사다 포장하고 문도와 약속을 잡았다. 포장해 놓고 나니 마음이 이상스레 설레던 기억이 난다. …… 솔직해지자면, 그건 일종의 프로포즈였다. 소극적인 프로포즈. 어차피 등잔은 다시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식탁에 파라핀유를 넣은 등잔불을 켜놓고 문도와 둘이 저녁을 먹는 상상까지 했었다. 등잔에 담긴 오랜 시간과 변치 않는 모양에 나는 심취했다. 등잔을 앞에 두고 밤마다 그를 생각하며 한 발짝, 한 발짝, 혼자 관계를 진전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 날은 유독 추운 날이었다. 전날부터 편도가 근질거렸기 때문에 미리 약국에서 항생제를 사먹어야 했다. 패딩코트에다 바지를 입었어야 할 날씨였지만 모직반코트와 스커트를 입고 부츠를 신었다. 포장한 등잔을 커다란 쇼핑백에 넣고 집을 나섰을 때의 기세는 눈이라도 녹일 듯했다. 약속시간은 오후 세시였다. 문도가 오전에 학원 수업을 받고 스터디를 해야 한다고 해서 넉넉하게 잡은 시각이었다. 점심을 먹고 나갔던가. 아마 제대로 먹지 못했을 것이다. 그와 함께 스테이크를 썰 작정이었다. 그즈음 학교 앞에 인테리어를 새로 바꾼 레스토랑이 있었는데 그 날 저녁을 보내기에 안성맞춤일 것 같았다. 원목마루와 패브릭 소파, 옹기와 목기 같은 소품이 있어 여느 집 거실처럼 아늑하고 따뜻해 보이는 공간이었다.

약속시간에서 30분이 지나도록 그는 오지 않았다. 나는 차를 시켰다. 한 시간이 지나자 그냥 갈까 말까 갈등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시 30분이 지나자 화가 났다. 또 30분이 지났고 오기가 생겼다. 만나기만 하면 따귀라도 올려붙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가 나타난 시간은 저녁 일곱 시였다. 일곱 시의 나는 그를 기다린다기보다 낙담과 절망적인 기분 속에서 망연히 앉아 있었다. 뭔가 어그러지고 있다는 참담함이 몸을 칭칭 감아 꼼짝할 수 없었다. 그는 느릿느릿 걸어 들어왔다. 그때까지 내가 기다릴 줄은 몰랐다고, 그냥 한번 들러본 거라고 했다. 너무 미안해서 그는 내게 정이 떨어진 얼굴이었다. 나 역시 돌처럼 굳어서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다.

“나가서 저녁이라도 먹자.”

그가 기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찬바람이 닿자 오한으로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이게 뭐니?”

커다란 쇼핑백이 무거워보였는지 그가 들어주겠다며 손을 내밀었다.

“등잔이야.”

나는 별것 아닌 듯 말하며 그의 손을 뿌리쳤다.

“웬 거야?”

그 역시 별 관심은 없었지만 어색한 기류를 무마하고자 애쓰듯 다시 물었다. 그새 편도가 부어올라 침을 삼키기 거북해졌고 손발도 얼어 감각이 없었다. 레스토랑은 너무 멀게 느껴졌다. 근처 식당에서 김치찌개를 주문하고 나서 그에게 늦은 이유를 물었다.

“깜빡했어. 아침에 늦잠 자는 바람에 학원에 늦고 스터디도 엉망이었고 오늘 종일 이러네. 첫 단추를 잘못 뀄어. 약속이 있다는 걸 기억하고 있었는데 스터디 끝나고 한 놈이 당구장에 가자는 거야.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간 거지.”

그 때 문도와 나의 관계가 연인이 아니라 친구라는 것을 냉정하게 이해해야 했다. 문도의 말 속에는 친구의 약속을 한 번 정도 지키지 못한 만큼의 부채감이 있을 뿐이었다.

“그랬구나, 너는….”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손발에서 시작된 떨림이 온몸으로 퍼져 새파랗게 질린 채 와들거리고 있었다. 편도는 숨을 쉴 때마다 부어올라 고통스러웠다. 항생제로 눌러놓았던 감기 기운이 몸을 덮쳤고 나는 대항할 무기도 의지도 기력도 없었다.

“너 어디 아프니?”

내 꼴이 심상치 않았는지 문도가 놀라며 물었다. 나는 김치찌개를 먹지 못하고 그가 잡아준 택시를 탔다. 택시에 오르기 전에 쇼핑백을 떠맡기듯 그에게 건넸다. 그가 무심히 늦었듯이 나 역시 짐을 내던지는 기분으로 줘버렸다. 그 순간의 등잔에는 어떤 의미도 없었다.

“… 졸업선물이라고나 할까.”

그때 내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무의식중에 튀어나온, 철저히 방어적이었던 그 말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싸늘해진다.

“어어… 이거 고마워서 어쩌지? 몸조리 잘하고 푹 쉬어라.”

얼결에 쇼핑백을 받아든 그는 당황스런 표정이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밤새 고열에 시달렸다.

십년 만에 만난 문도는 생각했던 대로 순조롭게 나이든 모습이었다. 그간의 안부를 묻고 덕담을 주고받는 의례적인 인사가 끝나자 잠시 어색한 침묵이 깔렸다. 그는 다시 한번 할머니에 대해 조의를 표하며 말을 이었다.

“이 등잔이 할머니의 유품이란 말이지? 어쩐지, 요즘 대량 생산되는 것과는 다르다 했어.”

“네가 그렇게 섬세했었니? 그런 눈썰미가 있었어?”

그는 쑥스럽게 웃었다.

“물론 내 눈썰미는 아직도 실종중이야. 근데 이 등잔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더라고. 아무튼 너한테 감사해야 할 일이 있어.”

“감사할 일? 뭐?”

“일단 볼래?”

그는 쇼핑백에서 분홍보자기에 싸인 물건을 꺼냈다. 꽃잎 모양 같은 매듭을 풀자 등잔이 모습을 드러냈다. 새삼스러웠다. 나무로 만든 받침대에다 등잔걸이를 얹어놓은, 참으로 단순하고 소박한 자태였다. 오래 묵은 나무를 정성으로 닦아주고 만져준 흔적인지 천연광택이 나면서 등잔은 생기가 있어 보였다. 받침대 밑판은 재떨이 겸용으로 쓸 요량이었는지 오목하게 패여 있어 할아버지의 마음이 엿보이기도 했다. 수십 년 전의 그을음이 스며든 백자 호형 등잔도 잘 닦여져 말끔했다. 내게 있을 때보다 등잔은 더 좋아 보였다. 혹시 방치해두었거나 잃어버리진 않았을까 걱정도 됐었는데 이렇게까지 대접을 받고 있을 줄은 몰랐다. 등잔이 내 분신이라도 되는 양 가슴이 떨려왔다.

“관리를 잘했구나.”

내 말에 문도는 쑥스럽게 웃었다.

“내겐 귀한 물건이야.”

나는 기대와 흥분을 누르며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십년 전 그 날, 나를 택시에 태워 보내고 그는 식당으로 되돌아갔다. 김치찌개는 다시 데워 나왔고 그는 소주를 곁들였다. 그는 이래저래 꼬인 하루를 조금씩 풀고 있었다. 얼마 뒤에 과 후배 영선이 들어왔다.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고 했다. 둘은 2차까지 가며 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뒷날 자고 있는데 전화가 왔어. 영선이야. 이거 너한텐 정말 미안한 얘긴데 내가 취해서 등잔을 할매집에 놓고 나온 거야. 다행히 영선이 등잔을 챙겼더라구. 이래저래 바빠서 한 일주일쯤 지나서야 걔를 만났나봐.”

영선은 등잔을 그냥 줄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저녁을 사기로 했고 그녀가 이끄는 대로 학교 앞 레스토랑으로 갔다. 영선은 스테이크를 썰면서 술 취한 선배가 너무 귀여웠다고 말했고 문도는 귀까지 빨개졌노라고 했다. 둘은 와인을 곁들이고 시시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식사를 끝냈다. 디저트로 나온 아이스크림을 핥으며 영선은 등잔이 딱 자기 취향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문도의 눈을 바라보았다. 선배, 이 등잔 저 주시면 안돼요? 훗날 둘이 결혼하게 됐을 때 문도는 그 말이 프로포즈처럼 들렸었다고 그녀에게 고백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손이 올라가 내 입을 틀어막았다. 심장이 멈추듯 했고 소름이 돋았다. 문도는 얘기를 끝내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너는 어떻게 된 거야? 왜 갑자기 연락이 끊긴 거야? 네 소식을 아는 사람이 없더라구. 전화번호도 바뀌고.”

졸업과 동시에 나는 학교에서 맺은 인연들을 끊어버렸다. 실은 인연이랄 것도 없었다. 학교에 다닐 때도 혼자였고, 그나마 함께 다니던 예비역 몇 명은 우연히 만나면 어울리는 정도였지 따로 연락하고 말고 할 관계는 아니었다. 전화번호를 바꾼 건 즉흥적인 기분에서였다. 그 날 이후 감기를 호되게 앓고 나자 갑자기 주변을 정리하고 싶어졌다. 전화번호를 바꾼다고 해서 달라질 만한 주변도 아니었지만 그때의 심정은 그랬다.

문도는 휴대폰 문자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와이프가 맛있는 거 먹으랜다. 그 대신 늦으면 안 된대. 둘째가 돌쟁이라서 아직 힘들다. 와이프가 이 등잔을 참 좋아하고 아꼈어. 기념일에는 이 등잔을 꼭 켜곤 했어.”

등잔에서 느껴지던 생기는 그들의 시간이 스며들어서였을까.

문도는 굳이 융숭한 대접을 해야만 한다며 시내로 나가자고 했으나 결국엔 내 뜻대로 근처 일식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시종일관 은인을 대접하듯 깍듯한 태도였다. 저녁을 먹으면서 마음이 담담하고 차분해졌다. 등잔이 가리키는 대로, 등잔이 밝힌 길을 우리는 각자 갔던 것뿐이었다. 할아버지의 손길이 닿았고 할머니의 마음이 스며들었고 어머니의 원망이 덧칠되었다면 문도의 십년도 등잔의 엄연한 무늬로 새겨졌을 것이다. 식사를 끝내고 잠깐 그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나는 일식집에서 빠져나왔다. 등잔을 그대로 둔 채. 돌아오는 차 안에서 문도에게 문자를 보냈다. 등잔의 주인은 너와 네 가족이라고.

아파트 화단에 목련 꽃잎이 떨어지고 있었다. 낙화도 끝물이었다. 며칠 전 일제히 피어난 목련꽃 무리는 모두 북쪽을 향하고 있었다. 북쪽의 바다 신을 사모하던 공주의 무덤가에 핀 꽃이 목련이라는 전설을 들은 적이 있다. 한편으로는 겨우내 자라난 꽃봉오리의 겉껍질이 햇볕 잘 드는 남쪽 방향에서 튼실하게 먼저 열리다 보니 북쪽 꽃잎은 수그러져 꽃 모양이 북쪽을 향하게 될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꽃이 핀 방향 하나에도 과학적인 이치가 있었다. 오늘만큼은 전설을 믿을 수 없는 날이다. 이렇게 화사한 한순간을 위해 목련은 길고 추운 계절을 빳빳이 견뎌냈다. 모든 기다림의 끝이 다 좋지는 않을지라도 활짝 열린 그 속을 들여다본다는 건 의미 있는 일이다.

나는 남은 생애 동안 목련이 화사하게 피는 절정의 순간마다 할머니를 떠올리게 될 테고, 더불어 등잔을 생각하게 되리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