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없이


남 태 식


언제나없이 꿈은

무덤에서 이루어진다


무덤이 열리고

아이들이 쏟아진다

우리가 남이가 얼굴이 없는

짝퉁 우리가 손을 내민다

살짝 주먹을 말아 쥐었다

저 주먹 속에는 무엇이 들었나

저 주먹을 본 적이 있다

저 주먹과 거래를 한 적이 있다

그 거래는 무엇이었나


뒷짐을 지고

한 아이가 고개를 가로젓는다

또 한 아이가 고개를 가로젓는다

또또 한 아이가 고개를 가로젓는다

무덤 앞에는 아직은

고개를 가로저은 아이들과

고개를 가로젓는 아이들뿐이다

모두 걷고 있다

제자리걸음이다


언제나없이 꿈이

산허리 높이 올라앉아서도 낮은

무덤에서 틘다








가위바위보


남 태 식


지나면 큰 집 대문 보이는 무덤가에

오래된 아이들이 왁자하다


뒷짐을 풀고

한 아이가 손을 펼치면

또 한 아이가 손을 펼치고

또또 한 아이가 손을 펼친다

머뭇머뭇 뒷짐을 풀고

머뭇머뭇 손을 펼친다


왁자한 소리 마당은 꽃들 흐드러지게 핀 봄날인데

풍경은 아직 움 안 돋고 망울 안 맺은 겨울 산천이다


한 아이가 손을 내밀면

또 한 아이가 손을 내밀고

또또 한 아이가 손을 내민다

펼친 손은 언제 말아 쥐었을까

내미는 손도 느닷없고

말아 쥔 손도 느닷없다


가위바위보 가위바위보

가위......? 

바위......? 

왜?!......

내민 손들은 모두 허공을 향하고

손들이 갸웃하니 허공이 갸웃갸웃한다

 

지나면 큰 집 대문 환하게 보여도

오래된 아이들 아무도 아직 무덤가를 못 뜨고 있다






무너져라, 벽!


남 태 식


큰 집 대문과 무덤 사이에

벽이 있다


귀를 잃은, 듣고 싶은 것만 듣는 벽은

눈을 잃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벽은

입을 잃은, 하고 싶은 말만 하는 벽은


번듯한 군대마냥 나름 꿋꿋하고

도시에 쏟아진 폭설처럼 

호들갑스러우나 시방 더 이상 자라기를 멈춘

피로한 식물이다


가로막은 벽 이 편 무덤가에는

큰 집 대문을 향해 나아가는

무덤을 뛰쳐나온 거듭 거듭나는

여러 무리의 새 아이들


벽을 무너뜨려라


쿵!

한 무리의 아이들이 앞서며 땅을 밟으니

쿵! 쿵!

또 한 무리의 아이들이 뒤이어 땅을 밟고

쿵! 쿵! 쿵!

또또 한 무리의 아이들이 연이어 땅을 밟는다


무너져라, 벽!


무너진다, 벽!






* 남 태 식

  2003년『리토피아』 등단,  시집 『속살 드러낸 것들은 모두 아름답다』『내 슬픈 전설의 그 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