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무럭무럭

 

 

이상도

 

 

여자의 얼굴은 동글동글

 

난 웃는다, 실실 쪼개면서

한번 자빠뜨릴 궁리를 한다

 

헌혈차 한 대 플라타너스 그늘 아래

움직이지 않고 계속 그 자리다

 

헌혈은 참여와 성원 속에서,

그래서 플라타너스는 오늘도 무럭무럭

 

지난 겨울 삭발 당해 몰골 앙상했던 몰염치의 풍광에서

다닥다닥 푸른 순을 밀어 올리던 오월 초순

처절한 생의 아비규환을 들었다면

지금 널따란 이파리는 어쩌면 덤이랄까

 

그러니까 플라타너스는 생의 흉폭함

그러니까 플라타너스는 생의 잔혹함

 

그러니까 어젯밤 잠 못 자고 헐떡였던 건 열대야 때문이 아니라 모기 때문이었다

손바닥으로 찰싹, 압사인지 질식사인지 벼락사인지 피 확 터트려놓고 허벅지에 엉겨 붙은 모기 사체를 훑어내다 담배 또 피워 물고 침 발라 피를 닦아내고 잠을 청해도

그러거나 말거나 여자는 꿈에까지 따라와 애태우고 모기는 여전히 앵앵

 

오늘 밤에도 악몽은 뭇별처럼 가득할 테지만

그래도 모든 것이 무럭무럭

 

플라타너스는 잔인하게도 싱싱

여자의 웃음은 고맙게도 생글

 

그러니까 난 헌혈하기 싫다

 

 

 

공기

 

이상도

 

가볍게, 가볍게 살아가는 일이 힘들다.

오래 지속된 우기의 눅눅한 습기 때문만은 아니다.

축 처진 길들을 배회하는 하루가 어렵다.

 

공기는 가벼움에 의지한 무거움이다.

얼마나 나를 짓누르고 있는가.

막강한 힘과 권위에 주눅 든다.

먹기 싫으면, 잠시라도 쉬고 있으면 죽음뿐이라는,

죽지 않기 위해 허파는 심장은 살아간다.

 

공기는 천천히 내려앉는다.

아무 곳에나 앉아 이리저리 굴러다니면서

잠시도 감시의 눈길을 버리지 않는다.

내 속에 음흉하게 숨어 들어와

내가 보지 못한 마음까지 꿰뚫고 다닌다.

 

유유히 빠져나가 떠돌고 또 들어오고 하는,

나와 관계 맺은,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불특정 다수에게

내 음음(陰陰)한 마음을 들키고야 마는,

 

이 무방비의 적나라!

 

나는 반성할 게 없는데

다만 부끄러울 뿐인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얼마나 까발렸는지.

이것이 나의 노출증인지.

공기의 관음증인지.

 

 

이상도

경남 거창에서 태어났다. 구미의 ‘수요문학회’와 ‘경북작가회의’의 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