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이의 하늘

안 현 심

 

 

마당가에 피어난 붉은 동백꽃,

이름은 순이.

 

고향은 함경북도 청진 배가 고파서 도망 나왔어요 부모는 일찍 세상을 뜨고 오빠는 군대 가서 죽고 허기진 배 거머쥐고 피붙이를 찾았지만 냉대와 멸시뿐 아무도 따스운 밥 나눌 사람 없었어요 여행증 없이 숨어든 평양에서 죽도록 매를 맞고 살길은 두만강을 건너는 일뿐이었어요 낮에는 산에 엎드려 풀잎을 먹고 밤을 틈타 걸었어요 잡혀서 죽으나 굶어 죽으나 매한가지 배곯지 않을 땅을 찾아야 했어요.

칠흑 같은 강물에 떠내려가며 이렇게 죽는구나 결국은 중국 공안에게 잡히고 말았어요 살려주세요 제 발로 다시 돌아갈 테니 북한 보위부에는 넘기지 말아줘요 몰매 맞고 강제노동을 하다가 뼈만 남아 죽게 돼요 울며불며 매달리는 얼굴에 병색은 무르익어 한 주먹거리도 되지 않고 앙상한 몸에 걸친 누더기 옷, 그들도 안쓰러웠던지 그럼 돌아가라 하였지요 주머니에 사탕 세 알을 넣어주며 두만강에서 흔들리는 목숨을 지켜보았어요.

배가 고파 길바닥에 쓰러졌을 때 어느 할머니가 먹을 것을 주었지요 그런데 할머니는 배곯는 처녀를 중국에 팔아넘기는 알선책이었어요 그걸 알면서도 다시 가야 하는 땅 어떤 삶을 살든지 굶주림보단 나았어요.

연변에 들어서자 도망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어느 마을에서 오줌 누러 간다하고 줄행랑을 놓았지요 개들은 무섭게 짖어대는데 낯선 집에 뛰어들어 숨겨 달라 애원했지요 노인은 감자 굴에 나를 파묻었어요 며칠을 굴 속에서 숨어 지내다 햇빛을 보았지요 그 집 농사일을 일 년 남짓 도운 후에 도회지 부잣집 가정부가 되었어요.

그러나 내 하늘은 여기가 아니에요 오 년을 살아도 십 년을 살아도 공안에게 들키면 잡혀가는 탈북자 아이를 낳고 살다가도 쇠꼬챙이에 꿰인 채 끌려가야 해요 실컷 부려먹고도 돈 한 푼 주지 않는 고용주가 들끓는 땅 여기는 내가 그리던 하늘이 아니에요.

 

이름은 순이,

남녘 하늘 귀퉁이 키 작은 동백꽃.

 

 

 

 

생존을 위하여

안 현 심

 

 

여행증 없이 평양 거리를 떠돌다가 즉결소에 끌려갔지요 깜깜한 방 안에 내동댕이쳐졌는데 아침이 되어서야 사방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이백 명 가량의 눈만 퀭한 거지들 속에 맨 무릎이 드러난 아이 신발 대신 비닐봉지로 발을 싸맨 아이 평양 거리를 헤맨 내 신발도 앞부리가 해져 다섯 발가락이 보였어요 열다섯 처녀아이는 엉덩이를 내놓고도 부끄러운 줄 몰랐어요 우리에게 당면한 건 배를 채우는 일 그것 외엔 아무 것도 관심이 없어요 아이들은 배낭을 뒤지더니 생감자 훔친 것을 꺼내 먹고 언 시래기 훔친 것을 먹었어요 훔치지 않으면 먹을 것이 없으니 도둑질을 해야 해요 바싹 여윈 할머니가 농장에 숨어들었다가 피범벅으로 맞는 것도 보았어요.

그래도

 

우리는 훔쳐야 해요.

 

 

안 현 심

시인․문학평론가 

<하늘소리> 외 두 권의 시집과 산문집 <오월의 편지>, 논저 <서정주 후기시의 상상력>을 펴내고, 현재 한남대학교 강사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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