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편한 세상 -1

 

 

 

 

이 예 훈

 

 

하늘은 맑고 공기는 신선하다. 명은 가만히 입속으로 말을 굴려본다.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이 맨살을 스칠 적마다 아련한 매연 냄새와 동글동글한 질감으로 살에 와 닿는 공기의 무게가 싫지 않다. 9월 중순이다. 이제 질긴 가을장마가 물러갈 때도 되었지.

팔월 초에 시작한 늦장마는 서너 번의 태풍과 해일로 온 들에서 익어가는 과일이며 곡식들을 진구렁에 쓸어 넣고, 해변의 건축물과 고기 배들을 마구 부셔댔다. 설익은 과일들이 즐비하게 바닥에 떨어진 모습이며, 해변의 건축물과 고깃배들이 장난감처럼 부서져 나가는 모습이 티브이 뉴스시간을 채우는 동안, 도시의 시민들은 무슨 천기라도 누설하듯 음울하게 이즈음의 이상기후에 대해 수군거리곤 했다. 근래 들어 해마다 날씨는 더 춥거나 더웠고 눈이 오면 폭설이요, 비가 오면 폭우인데, 이것은 여간 심상찮은 징조가 아니라는 것이다.

행인들의 옷차림은 아직 여름이다. 도로변의 버스승강장 안내 모니터를 중심으로 꽤 많은 사람들이 서성서성 버스를 기다린다. 모니터에서는 2-3초 정도의 일정한 간격으로 깜빡깜빡 새로운 정보를 전송한다. 무표정하게 서있던 사람들은 가끔씩 모니터로 시선을 옮겨 자신이 탈 버스가 올 시간을 확인한다. 명은 인도 안쪽에 비치한 장의자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며 망연히 거리를 바라본다. 마치 시선이 마주치는 걸 겁내기라도 하듯 애써 서로의 눈길을 피해 허공을 응시하는 사람들 속에서, 명은 마주보고 서있는 젊은 남녀를 찾아낸다. 둘은 무엇인가 쉼 없이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눈다. 자신보다 머리하나쯤은 커 보이는 사내애를 올려다보는 소녀의 눈길이 애틋한 정감으로 반짝인다.

이만하면 됐지 않느냐고, 명은 자신에게 속삭인다. 이제 여름은 가고 있고 공기는 가벼운 새털처럼 보송보송 하지 않은가. 기형도의 하늘은 딱딱한 널빤지였고 공기는 더러운 담벼락 같았다. 그의 시는 그 딱딱한 공기 속에서의 헐떡임이었던 것일까. 명은 어제 산 시집을 떠올린다. 시집을 사들고 첫 시를 읽은 다음 약력 란에서 그의 탄생년도와 사망년도 사이를 손가락을 짚으며 계산했었다. 그에 따르면 그는 스물아홉 해를 살았다. 그에게 공기는 너무 딱딱하고 무거웠다. 명은 쉰다섯이다. 아직 살아서 바람이 선들선들 가볍다고 생각한다. 명은 자기도 모르게 가슴위에 손을 얻는다. 마치 심장이 뛰는 소리를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지금 이 시간에도 누군가는 이 공기가 버거워 헐떡이며 옥상 난간으로 올라서거나 아파트 베란다의 창틀을 넘을 것이다. 그는 수능시험공부를 하다 갑자기 투명비닐봉지가 척 얼굴에 달라붙는 것 같다고 하소연하던 고등학생일 수도, 한 평짜리 고시원에서 삼년 째 공무원시험공부를 하던 취업준비생일 수도 있다. 아니 오랜 기간 친구들로부터 집단 따돌림과 폭력에 시달리던 중학생이거나 백점을 받지 못한 시험지에 부모의 도장을 받아야 하는 초등학생이었다고 해도 놀랄 일이 아니다. 공기는 언제든 누구에게든 유리처럼 단단해 질 수도 실리콘처럼 말랑 거리며 숨구멍에 달라붙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명이 숨 쉬는 공기는 맑고 부드럽다. 그녀는 오늘 오랜만의 외출을 한 것이다. 얼마 전 함께 해외여행을 떠났던 이들과의 만남이었다. 사람들은 때로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 속에 있을 때 위안을 얻는다. 명에게 그들과의 첫 만남은 그런 것이었다.

명은 조금 전에 건너온 행단보도 너머에 우뚝 솟아있는 리베라 호텔을 올려다본다. 리베라 호텔 뷔페식당에서 만난 토마스는 폐암 수술을 하고 두 번째 항암 주사를 맞았다고 했다. 그는 몸피가 약간 준 것 말고는 비교적 건강해보였다. 그 자리는 토마스가 호주여행을 함께 했던 이들을 초대해, 자신이 병원에 있는 동안 관심을 보여줬던 것에 대한 보답으로 식사 대접을 하는 자리였다. 그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고 그간의 안부를 묻고 하는 사이, 그 자리가 토마스의 암수술과 연결된 모임이라는 걸 잊은 듯 여행지의 가볍고 자유로웠던 분위기를 홀연 재연해 내곤 했다. 하지만 곧 이성을 회복해 토마스의 무사귀환을 축하하고 빠른 쾌유를 바란다는 인사가 오고갔지만 식사분위기는 자주 토마스의 암수술에 대한 배려를 잊은 채 화들짝 부풀어 오르곤 했다. 토마스의 암은 그들에게 식사를 해칠 만큼 무겁지 않았고, 요리는 나무랄 데 없었던 것이다.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토마스는 혼잣말처럼 웅얼웅얼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병이 걸리기 전에는 얼마든지 담담하게 죽음을 맞을 수 있을 거라고 자신했어요. 살만큼 살았잖아요. 아무 미련이 없을 거라 생각했지. 무슨 미련이 있겠나, 나 같은 사람이. 그런데 막상 암이란 말을 들으니 그게 아닙디다. 겁이 났어요. 죽는 다는 건 모든 게 끝이라는 거거든. 그게 막상 코앞에 닥치니까 벼락같이 가슴을 칩디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숨을 쉬고, 밥을 먹고, 사람을 만나고, 사랑을 하고, 자식을 낳아 기르고....... 그렇게 살면 되는 건데, 그리 살다 보면, 저 죽을 날은 저절로 알게 되는 건데....... 핏기 있을 땐 그게 참 하찮고 시시해 보이더란 말이오. 도대체 그 긴 세월을 뭐에 홀려 살았던 건지 모르겠소. 그 시절에 내가 아무도 없는 빈집에서 혼자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걸 어찌 생각이나 할 수 있었겠소.’ 낮은 톤으로 조용조용 풀어내는 토마스의 말이 천천히 공중에서 유영하고 있었다. 명은 마치 그의 말을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보는 듯 했고, 공기 중에 스며들어 선뜻선뜻 살갗을 스치는 것 같았다. 명은 안다. 죽음이 코앞에 다가왔을 때 그가 느꼈을 그 두려움. 그가 무섭다고 말하는 것. 그 참혹한 외로움을. 의사로부터 ‘당신은 암에 걸렸습니다’ 라고 말하는 걸 들어야 하는 자리. 그렇게 불쑥 실체를 드러낸 죽음과 마주한 순간에도 그는 혼자였을 것이다. 그는 오랫동안 혼자 살아왔다. 음악교사였던 젊은 시절에 미국으로 보냈다던 아내와 자식들은 끝내 그의 곁으로 돌아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분명하게 그 이유를 말하지는 않았지만 혼자살고 있다는 걸 그는 종종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얘기하곤 했었다. 유별나다 싶을 만큼 깔끔하고 단정해서 혼자 사는 노인이라는 선입견을 갖게 하는 인상은 아니지만, 불쑥불쑥 드러나는 결벽과 과장된 자기변호, 시시때때로 수업의 흐름을 끊는 반어적 질문과 자기주장. 같은 행동들이 혼자 살아온 이의 외돌아진 성정을 드러내곤 했다.

여행에서 돌아와 닷새쯤 지났을까, 그들은 메시 정으로부터 핸드폰 메시지 하나씩를 받았다. ‘토마스 선생님께서 어려운 수술을 받게 되었다고 하니, 위로와 격려 메시지 부탁드립니다.’ 그랬다. 한 학기 동안 열다섯 번쯤 만나 같은 강좌를 듣고, 6박 7일간의 해외여행을 하면서 그들은 일행 중 한명이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격려 메시지 하나쯤 날려줄 만큼의 인연을 쌓은 것이다. 메시 정의 문자를 받고 놀란 일행들이 급히 모여 앞뒤 정황을 듣고 상의를 했지만 서울에서 수술을 기다리고 있다는 그에게 ‘수술 잘 받고, 쾌차하시길 빕니다.’ 따위의 핸드폰 문자 하나쯤 날리는 것 말고는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 문자는 토마스의 조카가 보고 그에게 전해 줄 것이며, 보호자 이외의 누군가가 병문안을 간다고 해도 환자를 직접 볼 수는 없을 거라는 게 메시 정의 설명이었다. 일행은 그 자리에서 몇 만원씩 거출을 해 메시 정에게 맡기고 헤어졌었다. 그녀가 서울 가는 길에 잠깐 병원에 들러 토마스의 조카를 만나보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열흘쯤 지난 후 토마스의 조카라는 이로부터 수술은 무사히 끝났으며 아저씨도 순조롭게 회복중이라는 답신을 받았다.

여행을 떠날 때 토마스는 사흘간 입원해 건강검진을 받고 곧바로 합류했다고 말했지만 별로 피곤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었다. 일행은 모두 그저 일상적인 검진이려니 했기 때문에 별다른 염려를 하지 않았고, 여행을 다니는 동안 그의 건강검진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어버렸다. 어쩌면 토마스 자신조차 건강검진 따위는 있고 있었을지 모른다.

명은 겨울도 봄도 아니던 이월의 어느 날 아파트 베란다를 통해 보이는 C대학교의 평생교육원에서 수강생을 모집하기 위해 내건 플래카드를 보았다. C대학에서는 봄가을로 늘 하던 일이었을 텐데, 명의 눈에 그것이 구체적인 의미를 가지고 들어온 건 처음이었다. 명은 산책길에 무작정 평생교육원 행정실을 찾아갔다. 담당자가 내준 팸플릿에는 별의별 수강과목들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명은 그중에서 <외국여행을 위한 필수영어>라는 제목이 달려있는 과목을 신청했다. 아마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제대로 된 해외여행 한번 해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을 것이다. 30년이 넘는 세월을 은행의 민원실에서 보냈다. 하반신을 차단대 아래 숨긴 채 상체만 불쑥불쑥 앞으로 들이밀며 업무처리를 요구하는 사람들을 상대하면서 명은 흡- 하고 숨을 멈추게 되는 순간 숨을 고르듯 다짐하곤 했었다. 이곳을 떠나면 반드시 두발로 뚜벅뚜벅 걸어 세상 속으로 들어가리라. 아무도 나를 똑바로 내려다보며 무엇을 해내라고 요구하는 지 못하도록 꼿꼿이 서서 세상을 바라보고 가고 싶은 곳이라면 어디든 날아갈 것이다.

명이 아직 젊었고 그녀의 직장이 많은 이들의 선망이던 때, 그 직장은 그녀가 일과 가정을 모두 갖는 걸 허용하지 않았다. 결혼과 일, 둘 중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시점에서 그녀는 다른 이들의 선망의 대상인 직장을 버릴 용기가 없었다. 그녀가 그곳에서 벌어오는 돈에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얽힌 네 명의 밥과 미래가 매달려있었다. 당시 그녀를 둘러싼 공기는 가족에 대한 헌신을 그녀의 삶에 주어진 하나의 신성으로 부각시키고 있었다. 그녀는 그 신성한 의무에 충실했고 그 자부심이 그녀의 삶을 지탱했다. 하지만 그녀의 신성한 가치를 끝없이 부각시키고 있던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두 세상을 떠나고 동생들 또한 각자 독립해 그녀의 곁을 떠나고 났을 때, 그녀는 혼기를 한참 지난 중년 여자의 모습으로 덩그러니 혼자 남았다. 무엇보다 긴 세월 그녀에게 편안하고 익숙한 타성을 만들어 주었던 직장에서마저 퇴직을 하고나니 마치 낯선 혹성에 홀로 내던져진 것 같았다. 질긴 고삐처럼 그녀를 묶고 있던 직장과 가족들로부터 온전히 놓여나 혼자가 되었을 때 그녀는 자신이 알고 있는 세계는 은행의 민원실과 가족들이 함께 살던 집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자신이 마치 거대한 기계에서 빠져나온 낡은 부속품 조각 같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이 치밀하고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는 거대한 조직체의 일부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만 집중할 수 있을 때 명은 자신이 완벽한 존재라고 생각했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누구보다 깔끔하고 빈틈없이 처리할 줄 아는 유능한 사원이었다. 그것으로 그녀는 집에서도 사회에서도 당당하게 제몫을 다하는 존재로 인정받았다.

집에서는 그녀가 한 달 동안 직장에서 일한 대가로 받아오는 월급봉투가 그녀의 모든 것을 대변했다. 가족들은 명에게 그 외의 어떤 역할도 바라지 않았다. 그들은 명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사사로운 일들, 예컨대 아침에 몇 시에 눈을 뜨고, 잠자리에서 일어나 제일먼저 무엇을 해야 하는 지, 아침식사는 무엇을 먹고 출근할 때 옷은 어떤 걸 입을 지, 점심에는 무엇을 먹으며 저녁 때 퇴근을 하면 누구를 만나고 몇 시에 집에 와야 하는 지에 대해 알아야 하고 참견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말하자면 병약하고 무능한 아버지를 대신해 일용할 양식을 책임지고 있는 명에게 주어진 권리의 대가인 동시에 또한 배려이기도 했다. 그녀에 대한 지극한 애정이며 관심이라는 명분을 가지고 이루어지는 이러한 간섭들은 그녀만의 사적인 행동이나 사고방식을 아주 쉽게 무너뜨렸다. 그녀에게는 가족들의 평판으로부터 자유로운 친구도, 가족애라는 투철한 상식을 벗어난 어떠한 행동도 가능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항 속에서 태어나 그 속에서 살아가는 금붕어처럼 명은 아무런 거부감 없이 그 생활에 길들여졌다. 은행창구에 갇혀 일하는 동안 그녀가 무슨 꿈을 꾸었던 그녀는 어항 밖의 삶에 대해 어떤 경험도 지식도 없는 어항 속의 물고기일 뿐이었던 것이다.

명이 인터넷 주식거래를 시작한 것은 아마 그러한 정황들과 맞닿아 있을 것이다. 무엇으로 채워야 좋을지 모를 텅빈 시간들. 끝없이 밀려드는, 가닥이 잡히지 않는 잡념과 불안감 같은 것들로부터 그녀를 끄집어내, 확고하게 눈앞에 드러나는 수치로 결과를 보여주는 인터넷 주식거래는 그녀에게 꽤 만만해 보이는 일이었다. 더구나 자신이 은행원 출신이라는 자부심은 그녀에게 근거 없는 자신감까지 불어넣었다. 하지만 그것이 그녀에게 승리감까지 안겨주지는 않았다. 주식에 몰두해 있던 삼년 동안 그녀의 퇴직금통장은 거의 바닥이 드러났다.

명이 신청한 강좌에는 스무 명 정도의 수강생이 있었다. 수강생들은 예순 살은 족히 넘어 보이는 남자들과 중년의 주부들이 주류를 이루고 드문드문 앳된 얼굴이 눈에 띄었다. 사십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여자 강사는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수강생들이 불편해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많은 신경을 썼다. 각자 자기소개를 하는 첫날 초노의 남자 수강생들은 공무원이거나 학교 교사였던 자신의 전직을 필요이상으로 장황하게 이야기하곤 했는데, 그것은 그들이 현재의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생각되고, 또 그런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킬 뿐이었다. 명은 그들이 스스로를 완벽한 조직에서 떨어져 나온 낡은 부속품처럼 느끼고 있다는 걸 한눈에 알아보았다. 젊은 강사는 나이 많은 수강생들이 강조하는 그들의 전직에 대해 아낌없는 존경을 표하는 것으로 그들을 안심시켰다. 그리고 메시 정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영어회화를 하려면 영어식 이름을 하나씩 갖는 게 좋다고 말했다. 그리고 ‘사용하기 좋은 잉글리시 네임 목록’이라고 쓰인 파일을 스크린에 띄워 주었다. 수강생들은 평소 생각해 두었던 이름을 내놓거나 스크린에 띄워진 파일 목록 중에서 하나씩을 골라 가졌다. 그렇게 해서 ‘외국여행을 위한 필수영어반’ 수강생들은 한 학기동안 자기 자신에게 조차 낯선 영어이름으로 대화연습을 하거나 강사가 알려주는 간단한 문장을 반복해 연습하는 방식의 수업을 받았다. 그들은 서로의 본명조차 알려주거나 익힐 기회를 갖지 못했기 때문에 그 어색한 영어이름으로 서로를 기억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두어 시간씩 영어공부를 하는 강좌가 막바지에 이를 무렵, 누군가 농담처럼 현장학습을 떠나자는 말을 꺼냈을 때 뜻밖에도 꽤 많은 수강생들이 기다렸다는 듯 호응을 보냈다.

그 여행은 마치 한적한 공원벤치에서 만나 잠시 한담을 나누던 낯선 이웃들이 헤어지기 섭섭하니 소주나 한잔 하자고 포장마차로 발길을 돌리듯 그렇게 갑작스럽게 이루어졌다. 여행사 홈페이지에서 적당한 여행패키지 프로그램을 찾아내 소개를 하고 여행계획서를 만들어 여행에 필요한 제반 사항을 준비시키는 일은 메시 정과 토마스가 맡아서 처리했다. 토마스는 우리나라에 기러기아빠라는 신조어가 생기기도 전에 아내와 아이들을 미국에 보내고 혼자 살아오면서 방학 때면 빠짐없이 해외여행을 다녔다던 음악교사 출신의 노신사로 왜 이 강좌에 등록했는지 이해가 안될 만큼 영어를 잘했다. 여행에 동참한 수강생은 메시 정과 토마스를 포함한 여덟 명이었다. 그들은 여행사에서 팀 구성을 위해 합류시킨 일곱 명의 다른 멤버와 공항에서 만나 함께 출발했다.

-저기 왼편으로 보이는 바다가 로즈베이입니다. 해변 쪽으로 요트들이 정박해 있는 모습이 보이죠? 반대편 언덕의 주택가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가장 땅값이 비싼 지역으로 알려져 있죠. 그야말로 갑부들만 사는 동네입니다. 웬만한 한국 부자들이 왔다가 명함도 못 내밀고 가는 곳이죠. 이 해변이 로즈베이라고 불리게 된 건 초기의 이주민들과 원주민간의 전투에서 죽은 원주민들의 피가 바다를 붉은 장밋빛으로 물들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초기에 유럽에서 이곳으로 온 이주민들이 죄수와 군인들이었다는 건 알고 계시죠? 하지만 이제는 이곳에 사는 주민들이 자식들에게 그렇게 설명하지는 않죠. ‘영국인들이 이곳에 와 자리를 잡으면서 그들이 옮겨 심은 붉은 장미가 바다 주변을 아름답게 수놓았기 때문에 로즈베이라고 불리게 되었단다.’-

톰슨박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현지 가이드는 익살이 담긴 서툰 성대모사로 관객들의 머릿속에 잠시 전 자신이 심어놓은 핏빛 바다의 이미지를 성급히 지워내려 한다. 외국에서 온 관광객이란 단순한 호기심으로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끼어든 의도적인 타자들이다. 그들은 이 땅이 지닌 원죄의 기억을 완전히 덮으려고도 깊이 관여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다만 들어 알면 그뿐이다.

“한국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까? 어느 정도 부자여야 저 동네에 살 수 있는 건데요?”

“유명 연예인 한명이 이곳에 집을 샀다는 얘길 듣긴 했어요. 하지만 그건 그 사람 허영심을 채워주는데 도움이 될지는 몰라도 여기 생활을 제대로 누리진 못할 걸요. 유럽부자의 생활이나 사고방식은 사실 한국하고는 많이 다르거든요. 한국부자들은 돈이 있어도 여기 생활을 즐길 줄 몰라요. 유럽의 귀족들이 즐기는 문화라는 건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거든요.”

“죄수와 군인들이었다면서 귀족은 무슨, 못된 무뢰배들이 어쭙잖은 흉내나 내는 게지.”

“자본주의 귀족은 돈과 시간이 만드는 거지 무슨 혈통으로 되는 게 아니거든요. 특히 오스트레일리아는 더하죠. 흔히 말하지 않습니까? 호주에서는 과거를 묻지 마라. 이 땅에 과거는 없다. 미래만 있을 뿐이다. 실제로 이 나라에서 개인사를 함부로 묻는 건 금기에 가깝습니다. 아무리 가까워져도 본인이 말하지 않는 개인사는 묻지 않는 게 불문율이죠.”

앞에 앉은 제임스와 현지가이드인 톰슨박이 나누는 이야기 소리가 뒷자리까지 우렁우렁 들려온다. 톰슨박은 유학생으로 이곳에 왔다가 관광가이드로 주저앉았다고 했다. 그는 공황에서 일행을 태우고 숙소로 가는 도중 호주에 대한 기본적인 안내를 시작하기도 전에 오늘 아침 한국 뉴스에 무엇이 나왔으며, 현재 한국 정부의 정책이 얼마나 형편없이 돌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놓다가 한바탕 곤욕을 치렀다. 그가 왜 고국에서 온 관광객을 만났을 때 그런 행동을 하는지 모르지만, 한국에서 지겹도록 듣고 떠들던 정치 잡설일망정, 이국땅에 와서 제나라 여행객을 상대로 돈벌이를 하며 살아가는 젊은이가 거친 욕설처럼 한국에 대해 떠벌이는 걸 듣는 건 뭐라 말할 수 없이 불편하고 불쾌했다. 그리고 차안에 있는 누구도 그 감정을 숨기려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 모든 불편한 것들로부터 방금 떠나온 여행객이 아니던가. 다행이 가이드는 상황파악이 빠른 사람이었다. 호텔에 짐을 풀고 다음날 아침에 만난 그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유능하고 사려 깊은 관광안내원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어제의 실수에 대해 정중히 사과하고 해명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외국에 나와 살면서 온통 고국 쪽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민자들의 딱한 사정에 대해서도 제법 설득력 있게 설명했다. 그의 솔직한 태도에 여행객들의 마음은 쉽게 풀렸다. 현지 가이드와 여행객들 사이에는 금세 타국에 나와 고생하는 젊은이를 대하는 모국의 어르신들이 가질법한 연민과 고국에 두고 온 친지를 그리는 이민자의 정성이 끈끈하게 어우러졌다. 그들은 5박 6일간 관광명소들을 돌며 가이드의 설명에 따라 감탄을 하고, 사진을 찍고, 가벼운 농담에도 까르르 까르르 즐거운 웃음을 날렸다. 그리고 날이 저물면 호텔 근처로 돌아와 가이드가 예약해 놓은 식당에서 저녁밥을 먹었다. 그러는 사이 여행자들의 기억 속에는 로즈베이의 핏빛 장미, 파도사이로 잠깐 솟구쳤던 고래의 무리, 작은 우리에 갇혀 여행객들의 사진 들러리가 되었던 코알라와 캥거루, 시드니의 어디를 가도 조망이 가능했던 오페라 하우스, 같은 것들이 새겨졌다.

아마 여행 일정의 마지막 날 밤 그 술집에서의 일들을 뺀다면 일행에게 호주 여행은 아무것도 아니었을지 모른다. 그저 흔하디흔한 패키지여행.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 여행의 마지막 밤을 멋지게 장식하자며 일행을 호텔근처의 작은 술집으로 이끈 것은 마이클이었다. 일행이 간 술집 간판에는 커다란 올빼미 머리가 그려있었다. 누군가가 한국에도 체인점이 있다며 아는 체를 했다. 초저녁인 탓인지 어둠침침한 실내는 거의 비어있었다. 그들은 큰 탁자가 있는 구석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그 특별한 모임에 함께한 사람은, 한 학기 내내 틈만 나면 자신의 재력을 과시하며 호기를 부리던 제임스, 이번 여행의 기획자였던 토마스, 전직이 행정 공무원이었다고 자신을 소개했던 마이클, 현직 간호사인 아바, 병역을 마치고 복학 전에 잠시 쉬고 있는 아들과 함께 온 로즈여사, 그리고 명과 메시 정이었다. 로즈여사의 아들은 공항에서 만난 멤버들과 어울리고 있을 것이다. 그 팀은 로즈여사의 아들 또래인, 두 딸과 엄마가 함께 온 그룹과 신혼여행을 온 젊은 부부, 그리고 두 명의 나 홀로 여행자로 구성되어 있었다. 로즈여사의 아들은 여행 내내 나 홀로 여행자인 두 여성과 어울렸다.

머뭇머뭇 어색하게 시작한 술자리였지만 분위기는 금세 무르익었다. 한 학기짜리 평생교육원 강좌에서 만나 외국여행까지 함께하게 되다니 이건 보통 인연이 아니라고, 넉살좋은 제임스가 먼저 입을 열었고 모두들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무엇보다 한 학기 동안 상냥하고 적극적인 호의로 여기까지 이끌어준 교수님에게 박수로 고마움을 전해야한다고 메시 정을 추켜세우며 일행을 부추기는 바람에 그들은 외국의 조용한 술집이라는 것도 잊고 짝짝짝 요란한 박수로 한바탕의 소요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메시 정은 그들의 교수이고 실제적인 리더였지만 가장 나이가 어렸다. 그녀는 미국에서 의상디자인을 공부하기위해 6년쯤 체류했던 경력으로 대학의 평생교육원이나 문화센터 같은 곳에서 영어회화를 가르치고 있었다. 그녀는 학기 중에도 이런 저런 구실을 만들어 야회수업을 한다거나 인터넷카페를 활용해 유대감을 키우는 따위의 노력으로 강좌를 활성화하는데 공을 들였다. 이미 세상 한 편으로 밀려나고 있다는 자괴감을 얼마쯤 안고 살아가는 노년의 수강생들에게 젊은 강사의 그런 노력은 꽤 적절한 처신이었던 듯, 대부분의 수강생들은 메시 정에게 호감을 가졌다.

“그 동안 꽤 많은 여행을 했다고 자부했는데 이런 여행은 처음이에요. 정말 좋아요. 갑자기 내가 참 바보같이 살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원체 술을 즐기지 않으니까 한국에 있을 때도 잘 안가지만 여행 중에 이렇게 술집에 오는 건 꿈에도 생각 못했어요. 여행 중에 이런 재미도 있다는 걸 이제야 알았네요.”

토마스가 사뭇 들뜬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반장님 표정이 꼭 생전처음 놀이공원에 간 어린아이같이 해맑네요. 정말 여행 중에 한 번도 이런데 안가 봤어요? 그럼 도대체 그동안 뭘 하고 살았대요?”

고지식한 토마스를 놀리는 게 취미인 제임스가 배꼽을 잡는 시늉을 하며 그의 시선을 쫓아 실내를 둘러본다. 어둠침침한 황색불빛이 고여 있는 눅눅한 공간을 노란색 어깨걸이 티셔츠와 빨간색 짧은 반바지를 입은 여종업원이 천천히 오가며 주문을 받거나 음식을 나르고 있다. 그녀는 백인 여성이라고 하기 민망할 만큼 옷 밖으로 드러난 살갗이 짙은 갈색으로 그을린데다 맨살을 뒤덮은 노란 털 때문에 다소 지저분한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훤칠한 키와 볼륨감 있는 몸매, 순박한 미소를 띤 얼굴은 제법 밉지않은 인상을 주었다. 사방 벽에는 각가지 모양의 술병과 짤막한 홍보 문구가 담긴 광고지가 나붙어있고, 술집 한가운데 설치된 진열대 위에도 다양한 술병들로 가득 차 있다. 술집의 그 묘하게 어수선한 분위기는 거부할 수없는 흡인력으로 음주를 부추기는 것 같았다. 탁자위에 술병이 쌓여 갈수 록 잔을 비우는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제임스가 기념촬영을 해야 한다며 옆으로 지나가는 여종업원을 불러 세운 건 아마 분위기를 좀 바꿔보자는 의도였을 것이다. 그녀가 선뜻 제임스와 토마스 사이에 서서 포즈를 취했다. 제임스가 같이 사진을 찍자며 마이클을 일으켜 세우려 했을 때 그는 이미 꽤 많이 취해 있었다. 아니, 어쩌면 전혀 취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는 마치 혼자서 먼 곳을 헤매고 온 사람처럼 멍한 표정으로 제임스를 올려다보았다.

“이런, 이 양반 많이 취하셨네. 혼자서 마냥 자작을 하더니만. 자, 사진 찍읍시다. 일어나요.”

“그 여자는 왜 그렇게 죽었을 까요?”

제임스에게 한쪽 팔을 잡힌 채 불쑥 내뱉은 마이클의 한마디는 생뚱맞고 서늘했다. 하지만 그 한마디야 말로 그때까지 의미 없이 겉돌기만 하던 좌중의 말장난들을 단번에 휘어잡아 그들 내면의 가장 깊은 골짜기로 이끌어 가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2년입니다. 2년, 2년 동안 난 정말 아무것도 몰랐어요. 아내와 살아온 삼십년 세월과 그 2년이 어떻게 달랐던가. 수도 없이 생각합니다. 하지만 모르겠어요. 아내의 어디에서 내가 죽음의 냄새를 맡았어야 했던 건지. 그녀의 어떤 행동이 몸속에서 자라고 있던 암덩이의 징후였는지. 내가 무심했던 탓일까요? 그럴지도 모릅니다. 자꾸 생각하다보면 실상 나와 결혼해서 같이 살아온 삼십년 세월에 대해서도 난 아내에 대해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드니까요. 하지만 그녀는 왜, 왜 그 사실을 나한테 말하지 않은 걸까요? 2년 전에 병원으로부터 암 진단을 받았다는데 말입니다. 뭔가 나한테 복수를 하고 싶었던 걸까요?”

그는 한 학기 내내 맨 뒤의 창문 옆자리에 앉았다가 수업이 끝나면 조용히 사라지곤 해서 누구하고도 대화하는 걸 본적이 없었다. 첫 수업시간에 자기소개를 할 때 공무원이었는데 지난해 퇴임을 했다는 말을 했었다. 겉보기에도 그가 공무원이었다는 걸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을 만큼 평범하고 단정한 인상을 주었다. 수업시간에도 강사가 질문을 할 때 말고는 거의 말이 없어서 누구의 주목을 받을 만한 일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한 번도 수업에 빠진 적이 없었고 여행계획을 세울 때도 제일먼저 동참의사를 밝혔다.

그가 누구였던가. 수강생 모두에 대해 꽤 세심한 성향까지 파악을 하고 있다고 자부했던 메시 정조차도 마이클이 한 학기 동안 어떤 모습으로 자신의 머릿속에 입력되었던가를 기억해 내느라 말문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그건 약을 먹거나 목을 매 자살하는 것 보다 더 나빠요. 어떻게 2년씩이나 식구들을 속이고 혼자서 천천히 죽어갈 생각을 할 수 있죠? 선생님은 믿어지십니까? 혹시 돈 때문이냐고요? 수술할 돈이 없어서 희생할 결심을 한 거 아니냐고요? 아니요. 아닙니다. 우리 먹고 살만큼 돈 있어요. 암 보험도 들었고요. 어느 날 화장실에 쓰러져있는 아내를 병원으로 싣고 갔다가 이미 온몸에 암이 퍼져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죄의식 때문에 죽을 거 같았어요. 아내는 나와 살면서 고생을 많이 했거든요. 시집 온지 십년도 되기 전에 어머니가 중풍으로 쓰러지셔서 그 수발을 혼자 다 했어요. 그 세월이 8년입니다. 아내한테 고맙게 생각하며 살았죠. 그 후론 그리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냥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았죠. 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의사의 말이 2년 전에 본인에게 알렸는데 보호자가 없다고 했다는 겁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내 심정이 어땠을 지 짐작이 가십니까? 아내가 말하더군요. 그냥 사는 게 너무 지루했다고. 당신 잘못 아니니까 죄의식 같은 거 가질 필요 없다고. 자기가 죽으면 꼭 좋은 여자 만나서 재혼하라고. 그게 설사 아내의 진심이었다고 해도, 그건 나를 향해 날리는 비수고 조롱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자기 인생의 마지막 퍼즐을 스스로 선택해서 끼워 넣을 작정을 하는 게 그렇게 나쁜 걸까요?”

마이클의 맞은편에서 듣는 듯 마는 듯 술을 마시고 있던 아바가 시비라도 걸 듯 툭 말을 던졌다.

“부인의 죽음을 이해하고 싶다면 그이가 살아온 시간 속을 뒤져보세요. 한 생명의 죽음은 그 존재의 마지막 퍼즐조각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 그 삶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맞추다보면 마지막 퍼즐 조각의 모양을 알 수 있지 않겠어요? 하긴 한 인간의 퍼즐게임이 늘 완성된 형태로 마무리되는 건 아닙니다. 전 흔히들 말하는 정신 병원에 근무하고 있답니다. 그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을 전 퍼즐 조각의 경계가 허물어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되면 더 이상 퍼즐게임을 이어가는 게 불가능하게 되죠. 정성을 다해 그려놓은 수채화에 누군가가 물 한 양동이를 쫙 쏟아 부었다고 상상해 보세요. 사람의 정신에 가해지는 폭력이란 그런 거 아니겠습니다. 그들이 천천히 자신의 정신에 가해진 충격을 걷어내고 희미해진 퍼즐의 경계를 회복해 가는 걸 지켜보는 게 제가 하는 일입니다.”

“아내가 살아온 시간의 조각들을 이제 와 어디서 찾는단 말입니까. 아내가 그렇게 가고 나니까 난 그동안 아내에 대해 알고 있던 것들을 아무것도 믿을 수가 없더란 말입니다. 그 사람은 살아오는 동안 나한테 바가지라는 걸 별로 긁은 적이 없어요. 농담도 잘하고 꽤 화통한 사람이었죠. 아니, 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 사람인 줄 알고 살았어요. 너그럽고 인내심도 많고 사는데 별로 불만이 없는....... 사실 나는 늘 바빴습니다. 공무원이 철밥통이라고 흔히들 빈정대지만 얼마나 골치 아픈 일이 많은지 아십니까. 내 머릿속에는 언제나 직장일로 꽉 차 있어서 집안일까지 살뜰히 살펴가며 살 여유가 없었어요. 우리는 같은 직장에서 만나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갑자기 중풍으로 쓰러지셨을 때 둘 중 한명은 일을 그만두고 어머니를 돌봐야 했어요. 그래서 아내가 퇴직을 하고 어머니를 돌보며 살림을 맡게 되었죠. 그 사실이 아내한테 늘 미안하긴 했어요. 그런데 난 그런 내 마음을 왠지 아내한테 보이고 싶지가 않더군요. 아마 그래서 점점 무뚝뚝하게 대했던 것 같기도 해요. 하지만 아내는 내 마음을 알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어머니는 마이클 씨 어머닌데 왜 부인에게 그 일을 맡겼을까요? 똑같은 공무원이었으면 수입도 비슷했을 테고, 꼭 부인이 퇴직을 하고 그 일을 맡아야할 이유가 있었습니까? 당연히 밖에서 돈을 벌어 와야 하는 건 남자라거나. 누군가를 돌보는 일은 여자가 해야 한다거나 그런 고리타분한 이유 말고 다른 이유요?”

아바의 말투에는 왠지 짜증이 잔뜩 묻어있었다. 마이클은 아바의 신경질적인 반응에 머쓱해져서 말문을 닫았다.

“사람들이 자신을 밖으로 표출하는 방법이 늘 똑같은 건 아닐 겁니다. 예컨대 세상에 여자라곤 자기밖에 모른다고 믿고 살아왔던 남편에게 이미 오래전부터 숨겨둔 여자가 있었다는 걸 알았다고 합시다. 그런 때에 모든 여자들이 드라마에 나오는 여자들처럼 행동하지는 않는 단 말입니다. 배신감에 치를 떨고, 남편의 여자에게 모욕을 주고, 위자료를 듬뿍 받아 이혼을 하거나 남편이 여자와의 관계를 청산하도록 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는 따위의 일들 말입니다. 여자는 남편의 관심 밖으로 벗어난 것에 오히려 홀가분함을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여자라고해서 독립적인 어떤 일을 꿈꾸지 말란 법이 없으니까요. 여자가 남편과 남편의 정부에게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으면서 철저하게 두 사람을 자신의 삶으로부터 소외시킬 수 있다면 그것도 복수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혹시 앎니까? 부인은 정말로 사는 게 지루해 견딜 수 없었는지. 그래서 거미가 새끼들을 제 등위에 놓아기르듯, 암덩이라도 키워야 살 수 있었는지 알 수없는 일이지요. 그러니 마이클 씨는 부인에게 몸속의 암덩이 만큼도 의미가 없는 존재였다는, 그 사실만 슬퍼하면 될 일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로즈 여사님,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사람의 관계가 정말 그렇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요. 그건 잘못된 생각입니다. 사람사이의 정이 그렇게 아무것도 아니라면 도대체 인간은 무엇에 의지해 이 팍팍한 세상을 살아가야 한단 말입니까? 2년 동안 아내가 철저하게 나를 소외 시킨 채 혼자서 감당한 그 고통과 외로움의 무게를 그렇게 가볍게 단정해 버리는 건 내 아내에 대한 모독입니다.”

대화는 점점 격해져서 좁은 실내를 휘젓는 소란으로 변질되고 삿대질이 오갈 지경이 되었을 쯤 일행은 술집에서 쫓겨났다. 하지만 외국의 낯선 밤거리로 내동냉이 처진 그들은 뜻밖의 해방감에 몸을 떨며 서로를 부둥켜안고 거리가 떠나갈 듯 웃어댔다. 무엇이 그들 사이의 경계를 한순간에 허물고 그렇게 한 덩어리가 되게 했는지,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지만 그 때 그들 사이에는 은밀한 통과의례를 함께 치러낸 자들만의 동질감 같은 것이 생겨났다. 리베라호텔에서의 만찬은 말하자면 그것을 재확인 하는 자리였던 셈이다.

승강장에 버스가 들어와 멎을 때마다 무리를 이루고 있던 행인들 사이에서는 작은 소요가 일며 몇몇은 타고 몇몇은 내린다. 승강장의 안내 모니터에는 분 단위의 정보가 재깍재깍 쉼 없이 떠오르고 그 시각에 맞춰 새로운 버스가 왔다가 떠나간다. 그 분 단위의 질서 안에서 사람들은 무기물처럼 흘러가고 새로운 무리가 흘러든다. 명은 멀리 보이는 모니터를 유심히 살피며 704번 버스의 도착시각을 기다린다. 7분 재깍, 6분 재깍, 5분, 4분 모니터 영상의 정확하고 날렵한 변화에 따라 얇게 저며진 시각의 조각들이 도열하듯 재깍 재깍 명을 향해 다가온다. 명은 조용히 일어나 도열한 시각의 벽속으로 스며든다. 따뜻하고 편안한 무기질의 시간 속으로 진입.

 

 

 

 

 

약 력

1954년 충북 괴산군에서 출생

1994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불임의 숲」 당선

199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