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뚜기 사랑

 

최 순 섭

 

봄물이 오르면 이때다 싶어

수양버들 푸른 등껍데기에 도레미 구멍을 파고

세상을 향해 힘껏 불어봅니다.

호~뚜 호~뚜

함박꽃 같은 그 애와 마주보고 불면 웃음소리 흘러나오고

혼자 시냇가에 앉아서 불면

슬픈 노래가 나온다는 걸 사춘기 분홍 얼굴에서 보았습니다.

구불텅한 흙길 따라 아버지가 비틀거리며 돌아오는 저물녘

밭둑에는 어깨 축 늘어진 수심 깊은 수양버들이 서있습니다.

이때다 싶어 속이 빈 호뚜기를 꺼내

눈 빨갛도록 힘껏 불어 봅니다.

호~뚜 호~뚜

아, 수양버들 아버지가 춤추는 걸 보았습니다.

 

슈퍼 선착장

 

 

한여름 밤 아파트 입구 슈퍼 앞

 

노을 주점을 지나 고단한 항해를 끝내고 돌아온 배들이

 

후미진 벤치에, 더러는 흙바닥에 철퍼덕 닻을 내립니다.

 

막걸리 부어놓고 새롭게 떠나는 마지막 항해

 

이따금 타고 내리는 낯익은 승객들도 파도에 떠밀려옵니다.

 

누구나 방향키를 잡으면 선장이 되듯이

 

목적지는 그때마다 다르지요, 세계지도 펼쳐 들고

 

숨 쉬는 고래들이 수면 위로 나올 때쯤

 

목울대 카랑카랑 아파트가 들썩입니다.

 

우리가 가고 싶은 곳은 은하 건너 아늑한 그 분의 집인데

 

술로 떠가는 배는 언제나 항로를 벗어나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흔들립니다.

 

 

최순섭 : 충남대전 출생. 1978년<시밭>동인으로 작품활동시작. 2007년 <작가연대> 등단. 고양작가회 이사. 열린시조학회. 창작21작가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