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위하는 남자

 

1.

 

그가 그림의 포장지를 벗겨냈을 때 아내는 기겁을 했다.

“망측해라. 이게 뭐예요. 이게.”

아내는 무슨 징그러운 것을 보기라도 한 듯 뒤로 물러섰다. 그는 그림을 두 손으로 잡은 채 아내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애원이라도 할 듯한 간절함이 서려있었다.

“영애가 보면 어떡하려고요. 빨리 치워요.”

아내가 딸의 방을 흘긋거리며 다급하게 말했기에 그는 꾸지람을 듣는 학생처럼 고개를 숙인 채 서재로 그림을 들고 들어갔다. 전혀 예상치 못 한 상황이었다. 아내가 좋아할 것 같지는 않았지만 구박받을 줄은 몰랐다. 그는 무슨 설명이라도 했으면 싶었지만 도무지 말이 머릿속에서 정리되지 않았다.

어디에 걸어둔담.

그는 이제 막 퇴근했기에 몹시 피곤함을 느꼈으나 그림을 책상에 기대어 둔 채 벽을 둘러보았다. 책상 앞에는 창문이 있고 옆에는 책장이 이어져 있었기에 그림을 걸기에는 마땅치가 않았다. 그는 책장 옆에 그림을 세워 놓고 천천히 책상 앞으로 걸어와 의자에 앉았다. 그리곤 한참동안 그림을 바라보았다. 사내가 옷을 몽땅 벗은 채 두 손으로 자위를 하다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는 그림이었다. 허릿살이 나오고 약간 벌린 두 다리의 허벅지와 엉덩이에 살이 제법 붙은 영락없는 중년의 사내였다.

‘자위하는 남자’

그는 그림을 바라보다 길게 숨을 내쉬었다. 아직도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듯한 긴장된 그의 표정이 사내 앞에 나타났다. 그림은 배경이 없이 그냥 거울에 그려져 있었기에 그의 모습이 그림 옆 거울에 비쳐졌다. 자위하는 사내의 앞에 영혼이 빠져나간 듯한 그의 모습이 일종의 배경이 되어 거울 속에 있었다.

저녁을 먹으라는 아내의 말을 듣고 그는 사내와 헤어지는 것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서재를 나왔다.

“아빠 무슨 그림 사오셨어요?”

딸이 물었고 아내가 나섰다.

“얘. 말도 마라. 망측하게. 대체 그림이 아니고. 남사시럽게.”

“무슨 그림인데요?”

딸이 호기심을 이기지 못 하고 서재로 들어가려고 하자 아내가 기겁을 하며 딸의 팔을 잡았다.

“그건 그림도 아니래도. 그리고 그런 건 너희들이 보는 게 아니야.”

딸은 그를 바라보았지만 그 또한 딱히 그림을 설명할 수 없었다.

“자 자, 어서 밥 드셔요. 넌 방에 들어가 공부 해.”

아내는 딸을 방으로 밀었다. 그는 밀려들어가는 딸과 아내를 번갈아 보았다. 뭔가 불쾌한 기분이 명치께에 머물렀다. 누군가에게 몹시 경멸을 당했을 때의 느낌하고 비슷했다. 그는 식탁에 앉았다.

“내일 당장 그림 치워요.”

아내는 국이 들은 그릇을 식탁에 놓으며 그에게 말했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숟가락을 멀뚱히 바라보기만 했다.

“어떻게 그림 살 생각을 다 했어요?”

아내는 그의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그는 말없이 아내를 바라보았다. 그건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는 지금도 자신이 그 그림을 사왔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는 지금까지 그림을 사기는커녕 전시회에 가보지도 않았다. 그런 그가 그림을 샀다니. 그것도 예쁜 꽃 그림이나 풍경화가 아닌 인물화를, 자위하는 사내 그림을. 그는 들었던 숟가락을 놓고 일어섰다.

“왜요? 속이 안 좋아요?”

아내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아냐.”

그는 너무나 피곤했기에 쉬고 싶었고 서재로 들어갔다. 뒤에서 아내의 걱정하는 목소리가 이어졌지만 그는 무시했다.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림을 사왔는데도 뭔가 뒷맛이 개운하지가 않았다. 그는 고개를 돌려 그림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두 다리를 벌리고 두 손을 앞으로 가져간 사내가 뒤를 돌아 그를 보고 있었다. 사내는 공허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그를 돌아보느라 비틀어진 등은 애잔한 느낌을 주었다.

며칠 동안 고심하다 산 그림이었다. 며칠 동안 끙끙 앓다 산 그림이었다. 처음 그림을 보았을 때 그는 마치 자기 자신을 본 듯했다. 마치 자신이 자위를 하다 들킨 기분이었다. 전시장에 들어갈 때부터 뭔가 묘한 기분이 들었던 거 또한 사실이었다.

 

2.

 

퇴근하던 길이었다. 출장을 갔다가 부장에게 전화로 보고하고 조금 이른 시간에 퇴근하다 들른 갤러리였다. 시간은 오후 5시를 조금 넘었을 텐데 이상하게 발걸음이 집으로 향하지 않고 무작정 거리를 걷던 중이었다. 매번 바쁘게 지하철역으로 뛰어다니던 그는 오랜만에 거리를 천천히 걷던 중이었다. 아직 퇴근시간이 되지 않은 탓인지 거리는 조금 한가한 편이었다. 왠지 목적 없이 걷고 싶었다. 객기가 아니었다. 언제부턴가 그는 몸에서 물기가 서서히 빠져나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자신이 미라가 되어가는 듯 했다.

그는 조금 더 걷다가 눈에 띄는 지하철역으로 들어갈 참이었다. 그때 그는 가로 세로 1M가 조금 큰 펼침막을 보았다.

김선우展 - 또 다른 나.

개인전을 알리는 흔하디흔한 펼침막이었다. 시선 갤러리. 펼침막 옆에는 세로로 된 나무에 눈 그림과 함께 갤러리라는 간판이 걸려 있었다. 그는 무심코 지나쳤다. 개인전을 여는 이도 모를 뿐만 아니라 갤러리 역시 처음 보는 거였다. 몇 걸음 더 걸어갔을 때 그는 이상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한번 가봐. 누군가 말을 걸었다. 뒤를 돌아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그는 다시 가던 길을 걸었다. 한번 가보라니까. 또다시 같은 목소리가 그에게 재촉했다. 왜 이럴까. 며칠 동안 야근해서 몸과 마음이 피곤해서 그런가, 했다. 그러던 순간 그는 전시장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은 절박한 무엇이 있었다. 그는 무엇인가에 이끌리듯 오던 길을 되돌아 시선 갤러리로 들어갔다. 김선우展은 제2관에서 열리고 있었다. 홀에 있는 20대의 아가씨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그는 목례를 하고는 쭈빗거리며 제2관으로 들어갔다. 전시장에는 젊은 연인으로 보이는 몇 쌍과 중년 여인으로 보이는 대여섯 명의 무리들이 보였다. 그는 천천히 걸으며 그림을 보기 시작했다. 그림은 그가 평소에 상상했던 그림들 하고는 달랐다. 전시장에 온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으레 꽃 그림이나 풍경화를 예상했었다. 그러나 그러한 그림들은 한 점도 없었고 대부분이 남자의 일그러진 얼굴 그림이었다. 어쩌다 전신 그림이 있었는데 대부분 성기를 드러낸 채 서 있거나 누워 있는 그림이었다. 그림을 볼수록 그는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마치 자기 자신이 옷을 홀라당 벗고 서 있는 것 같은, 수치심이 몰려왔다.

원 이런 그림을.

그는 괜히 왔다는 후회감이 밀려 왔지만 짐짓 팔짱을 끼고 그림을 둘러보았다. 다른 이들은 일행들과 그림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곤거리거나 킥킥 웃었다. 누군가 함께 왔으면 이런 수치심이 덜 했을 텐데. 그는 애써 감정을 숨기며 그림을 둘러 보다 한 그림 앞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흡.

숨이 확 멈추는 것 같았다. 그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두 그림을 감상하고 있을 뿐 그를 바라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붉게 오른 얼굴에서 열이 확확 났다.

음.

그는 다시 그림을 바라보았다.

누가, 나를.

그는 불쾌감에 몸을 떨며 그림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영락없는 자기 자신이었다.

이럴 수가. 그는 그림 옆 하단에 붙은 제목을 보았다.

자위하는 남자.

그는 다시 그림을 보았다. 홀라당 벗은 사내가 두 다리를 벌리고 두 팔을 성기 쪽으로 가져간 채 뒤를 돌아보는 그림이었다. 사내는 사람 키만큼 높고 두 팔 넓이의 거울 속에 2/3쯤 차지하고 그려져 있는데 살이 오른 허리와 엉덩이 그리고 허벅지로 볼 때 영락없이 중년인 그 자신이었다. 마치 자신이 자위를 하다 들킨 기분이었다.

그는 정신이 들었을 때, 갤러리 밖에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어떻게 갤러리를 빠져나왔는지 기억에 없었다. 여전히 불쾌감과 수치심이 느껴졌다. 그는 걸었다. 갑자기 인생이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3.

 

그는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 했다. 순간순간 그 자신이 거울 속에 들어가 전시장에 걸려 있는 착각에 빠지곤 했다. 젊은 남자 여자들이 자신의 모습을 감상하는 환영을 보기도 했다. 그는 밤새 비몽사몽으로 갤러리에 걸려 있다 새벽에 잠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아직도 수치심과 불쾌감으로 몸을 떨었다. 아내는 얕게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그는 베란다로 가서 담배를 연거푸 세 대를 피웠다. 목이 싸하게 따끔거렸고 윗배가 울렁거렸다. 그는 두 손바닥으로 얼굴을 쓰다듬었다. 마치 얼굴이 물기가 모두 빠져나가 바싹 마른 나뭇가지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당신 왜 그래요?”

그제야 일어나 거실로 나온 아내는 그를 보고는 걱정을 했다.

“아냐 잠을 못 자서.”

“피곤해 보여요. 어디 안 좋아요?”

“아냐.”

그는 짐짓 아내를 안심시키려고 했지만 아내는 그를 바라보며 어디 아픈 거 아니냐고 자꾸만 걱정스레 물었다. 딸도 그의 푸석한 얼굴을 보더니 무슨 일이 있느냐고 했다. 그는 순간, 짜증이 났지만 애써 아내와 딸에게 아무 일도 아니라고 말하곤 욕실로 들어갔다.

그는 아침도 먹지 않고 출근했다. 도저히 아침을 먹을 기분이 아니었다. 그는 일을 하는 둥 마는 둥 하루를 보내고 어제 갔던 갤러리로 갔다. 갤러리 홀에는 아가씨가 어제처럼 목례를 했다. 그는 곧장 제2관으로 들어갔다. 전시장에는 역시 어제처럼 연인처럼 보이는 몇 명의 젊은 사람들과 중년으로 보이는 남녀 몇이 그림을 감상하고 있었다. 그는 그림을 대충 훑어보며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다 어제 그 그림에 앞에 멈춰 섰다. 어제처럼 역시 그림 속의 사내는 다리를 벌리고 홀라당 벗은 몸으로 자위를 하다 그를 뒤돌아보았다. 역시 자기 자신이었다. 수치감과 불쾌감이 솟아오르는가 싶더니 순간 쿵, 하고 뭔가 무너지는 소리가 몸 내부에서 들렸다. 그 자신의 몸도 아래로 추락하는 듯 했고 현기증을 느꼈다. 그러더니 슬픔 같은 느낌이 드는가 싶더니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뤄지는 일이라 그는 당혹해 하면서도 흐르는 눈물을 제어하지 못 했다. 한참동안 그렇게 눈물을 흘리다 문득 사내 앞에 서 있는, 거울에 비친 그 자신을 보았다. 거울 속의 사내가 참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또다시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갤러리 밖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참 묘했다. 어떻게 갤러리 밖으로 나왔는지 도통 기억에 나지 않았다. 그는 어제처럼 무작정 걸었다.

 

4.

 

역시 그날 밤에도 그는 잠을 이루지 못 했다. 마치 그 자신이 자위를 하며 갤러리에 걸려 있는 기분이 밤 내내 들었다. 다만 자위를 하다 들킨 당혹감은 별로 들지 않았다. 어제처럼 수치심이나 불쾌감보다도 대신 그림 속의 그 자신에게 동점심이 일었다. 불쌍했다. 그러자 또다시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내렸다. 몸 어딘가에서 쿵, 하고 뭔가가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새벽 무렵 그는 잠자리에 일어나 잠을 자지 못 해 휘청거리는 몸을 이끌고 베란다로 가서 어제처럼 담배 세 대를 피웠다.

“어머. 이럴 어째.”

아내는 그의 얼굴을 보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빠. 얼굴이 왜 그래요.”

방금 일어난 딸은 가까이 오지도 못 하고 비명을 지를 듯 했다.

“당신 안 되겠어요. 오늘 병원에 한번 가 봐요. 보약을 한 질 먹든지.”

아내는 곧 울 듯 한 표정을 지었다.

“괜찮아. 보약은 무슨.

그는 부리나케 욕실로 들어가서 씻었다. 면도를 하면서 그는 오늘 그 그림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그림이 갤러리에 걸려 있는 한 그는 매일 밤 갤러리에 걸려 있어 잠을 못 잘 것이고 낮에도 일이 손에 잡히지 못 할 것 같았다.

그는 아침도 먹지 않고 출근을 했다. 보는 직장 동료들마다 걱정하는 눈빛으로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지만 말하는 것조차 귀찮아 고개를 가로 젓기만 했다. 역시 일은 손에 잡히지 않았고 멍하니 창밖을 보다가 부장한테 지적을 받기도 했다. 눈이 쑥 들어갈 것 같고 몸이 천근만근 무거웠지만 정신은 말짱했다.

그는 어제처럼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몇 숟가락 들다가 그만두었다. 배는 고프지 않았고 모든 게 허무하게 느껴졌고 귀찮아졌다. 퇴근하고 술 한 잔 하자는 입사 동기인 L의 제의를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L은 서운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그는 일을 하는 둥 마는 둥 하다가 퇴근하자마자 갤러리에 찾아갔지만 화가를 만나지 못 했다. 안내하는 아가씨는 그림을 팔 목적으로 전시를 하는 게 아니라 갤러리 기획전이라고, 물론 그림을 사고자 하는 사람이 있으면 당연히 팔기도 하지만, 화가와 먼저 얘기가 되어야 갤러리에서 팔 수가 있다고 했다. 화가는 아마도 오늘은 만날 수 없고 미리 약속 시간을 잡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그 그림을 다른 이에게 절대로 팔지 말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내일 다시 오겠으니 화가에게 연락해 달라고 했다.

다음 날 그가 갤러리를 찾아갔을 때 화가가 와 있다며 사무실로 그를 안내했다. 화가는 보통 키에 약간은 마른 형의 남자였다. 금테 안경 속의 눈이 날카로워 보였다. 화가는 대뜸 어째서 그림을 살 생각을 했냐고 물었다. 그는 대답을 못 했다. 그림 속의 인물이 바로 자기 자신 같다고는 말 할 수가 없었다. 입에는 나오는 대로 말했다.

“그냥 소장하고 싶습니다.”

화가는 그를 빤히 쳐다보더니

“이 그림은 원래 팔려고 그린 게 아닙니다. 집에 걸어두려고 이런 그림을 살 사람도 없고요.”

“저는 꼭 이 그림을 사야겠습니다.”

“무슨 이유라도 있습니까? 다른 관에는 풍경화나 정물화 같은…… 집에 걸어둘 만한 그림들이 많은데요.”

“이유를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냥 팔아주십시오. 이 그림이 꼭 필요합니다.”

그는 애원하듯이 말했다. 화가는 껄껄 웃더니 옆에 앉은 여자를 소개하며 여기 관장님하고 얘기하라고 했다. 관장은 지금은 예약만 해 놓고 일주일 뒤 전시회가 끝나면 가져가라고 했다. 그는 금액은 묻지도 않고 고맙다고 꾸벅 인사를 하고 나왔다. 일주일 동안이나 전시를 더 한다는 게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그런대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여전히 밤이면 그 자신이 벌거벗은 채 전시장에 걸려 있다는 환상에 빠졌고, 당연히 잠을 못 잤으며, 아침을 먹지 않고 출근을 했다. 점심은 몇 숟가락 들다 그만두었다. 부장한테 불러가 무슨 일이 있느냐고 추궁을 당했고 퇴근하면서 그는 인생이 허무하다는 생각에 빠졌다. 그는 그림 속의 사내를 불러내 술 한 잔 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지만 그림 속의 인물을 불러 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혼자 술을 마셨고 그림 속의 사내를 생각했다. 일주일 동안 퇴근하면 곧장 전시장에 들렀고 자위하는 남자를 보았다.

 

5.

 

그림을 사 온 날 아내에게 무안을 당했지만 그는 그림을 집으로 가져 온 것으로도 마음이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다. 그는 그날 밤 여전히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서재에는 침대가 없어 요를 깔고 바닥에 누웠지만 여전히 자신이 거울 속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었다.

다음 날 그는 아내의 성화에 잠자리에서 일어나기는 했지만 출근을 하지 않았다. 몸도 지쳐있었지만 출근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냥 집에 있고 싶었다.

“당신 정말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에요? 잠도 서재에서 자고.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

아내는 걱정을 했다. 그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씩 웃어보였지만 표정이 일그러졌다. 아내는 오늘 하루 쉬라고 했다. 아무 걱정 말고 푹 쉬라고 했다. 그는 아침 식사 내내 숟가락만 만지작거리다 서재로 들어갔다. 잠시 후 문이 열리더니 학교 간다는 딸의 인사말이 들려 왔고 그는 잘 갔다 오라는 말을 하곤 이불 속으로 들어가 벽에 기대어 있는 거울 속의 자위하는 남자를 쳐다보았다. 그러다 비몽사몽으로 지냈고 점심 먹으라는 아내의 말에 그는 거실로 나왔다. 점심은 장어탕을 끓어놓았지만 그는 입맛을 잃은 지가 오래라 몇 숟가락 뜨질 못 했다.

“억지로라도 드세요. 당신이 건강해야지요.”

아내는 사정을 했고 그는 구역질이 나는 걸 겨우 참으면 국물을 다 비웠다. 하지만 화장실에 간 그는 이내 먹은 것을 다 토해냈다. 그는 다시 서재로 들어가 누웠다. 만사가 다 귀찮았다. 회사에서 전화가 왔지만 받지 않았다. 저녁에 딸이 다녀왔다고 문을 열고 인사를 했지만 그는 누운 채 인사를 받았다.

“아빠가 이상해.”

딸이 아내에게 소곤거리는 소리를 그는 들었다.

다음날도 그는 출근하지 않았다. 회사에서 전화가 왔지만 그는 받지 않았고 아내가 대신 그의 증상을 말해 주었다. 입사 동기인 L한테서도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 신호음이 끊기자 휴대폰의 배터리를 빼버렸다. 그리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자신이 생각해도 참 이상한 일이었다. 그는 20여 년 동안 결근은커녕 지각이나 조퇴 한 번 하지 않았다. 또한 애교 있는 아내랑 대학1학년이 된 딸이 있는 집에 만족했다. 그래서 그는 열심히 일했다. 회사에서도 인정받았다.

근데 이게 왠일인가. 그는 모든 게 귀찮아졌다. 출근하기 싫었다. 나는 무얼 바라고 살아왔나. 김선우展-또 다른 나. 그는 개인전의 그 문구에 집착했다. 또 다른 나는 무엇인가. 갑자기 이렇게 살아온 자신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일주일째 출근도 안 하고 지내는 동안 아내는 별별 보양식을 다 해 주었지만 그는 먹자마자 토했다.

“여보 제발 병원에 가요.”

아내는 몇 번이나 애원을 했지만 그는 서재에서 꼼짝달싹하지 않았다.

“당신이 그렇게 아프면 우리 집은 어떡해요. 당신이 가장인데.”

아내는 울면서 사정했다. 아내는 신경정신과에 가자고 했다. 2주일째 되는 날 그는 할 수 없이 신경정신과에 갔다. 50대 후반의 의사는 그의 증상을 묻더니 크게 신경 쓸 일이 아니라고 했다. 스트레스 때문이니 우선 약을 먹어 보라고 했다. 약은 아침에 먹는 약과 점심, 저녁에 먹는 약이 각각 달랐다. 저녁에 먹는 약은 낮에 먹는 약보다 파란 약 두 알이 더 많았다.

“회사에는 제가 잘 얘기해서 병가를 내놨어요. 그러니 당신은 우선 몸부터 추스르세요.”

아내는 그렇게 말했지만 그는 이미 회사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설사 돌아갈 수 있다고 해도 그는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약을 먹고 잠을 잤다. 낮에 일어나 점심을 먹고 약을 먹고 잠을 잤다. 저녁에 일어나 밥을 먹고 약을 먹고 잠을 잤다. 계속 잠이 왔다. 그는 계속해서 며칠 동안 밥 먹고 잠만 잤기 때문에 그림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다. 꿈 속에서만 어렴풋이 그림 속의 사내를 만났다. 여전히 그 사내는 자위를 했다.

그는 살이 찌기 시작했다. 살이 올라 화장실이나 밥 먹으러 거실로 나올 때마다 끙, 하며 두 팔을 바닥에 집고 상체를 겨우 들어 올린 후 일어서야 했다. 옷은 어느새 작아져서 몸에 꼭 끼였다. 아내는 커다란 운동복을 사주었고 그는 그 옷만 매일 입었다.

 

6.

 

어느 날 그는 방문이 열리는 것을 이불 속에서 들었다. 하지만 그는 가만히 있었다. 곧이어 방문이 닫혔다. 그는 일어나 방문 쪽을 바라보았다. 문 앞에 하얀 쪽지가 있었다. 그는 기어가 쪽지를 풀었다.

여보. 저 오늘부터 식당에 나가요. 밥 차려주지 못 해서 죄송해요. 상은 차려놨으니 굶지 마세요. 당신이 다 나을 때까지만 식당에 나갈 테니 너무 걱정 마세요. 식당은 밤 10시 문 닫으니 끝나면 곧장 올게요.

- 당신을 사랑하는 아내가

그는 침침한 눈을 끔벅이며 몇 번이나 읽었다. 그는 회사에서 잘렸구나 생각했다. 이렇게 지낸 지가 몇 개월이 지났는지 알 수 없었지만 회사로서도 많이 참아준 것 같았다. 잠깐이나마 20여 년을 다닌 직장에서 이렇게 나에게 말 한마디 없이 해고 시킬 수 있는가 생각했지만 이내 잊어버렸다. 다만 경제적으로 집안이 쪼들리는 것이 걱정이 되었으나 이내 모든 것이 귀찮아진 그는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다음날부터 그는 아내가 출근하고 난 뒤 주방으로 가서 아내가 차려놓은 식탁에 밥솥에서 밥을 퍼서 먹었다. 국이 식었지만 달게 먹었다. 때를 거르지 않았고 반찬은 남김없이 먹었다.

몇 번 더 신경정신과에 갔을 때 약은 처음과 좀 달랐다. 아침 점심 저녁으로 따로 먹는 것은 변함이 없으나 알약 수가 많이 줄어들었다. 의사는 많이 좋아졌으니 마음 편히 먹으라고 했다. 약을 먹으니 마음이 편안하고 식욕이 일고 잠만 잔다고 했다.

“너무 잠이 오면 파란 알약은 드시지 마세요.”

의사는 자상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신 많이 나은 것 같아 좋아요. 이제 조금만 있으면 전과 같이 직장도 나가고 할 거예요.”

피곤한 기색이 완연한 아내는 웃으며 말했다. 그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러나 그는 그 뒤로도 왕성한 식욕에 잠만 잤다. 살은 계속 쪘기에 아내는 다시 옷을 사 와야 했다. 그는 이제 일어서거나 걷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그러나 약을 먹으면 잡생각이 안 들고 하루 종일 멍하게 지냈다. 다행히 잠은 잘 잤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화장실에 가기 위해 겨우 일어서서 밖으로 나오니 거실에 웬 여자들 서너 명이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런 일이 처음이라 그는 당황해 하고 있는데 아내가 다가 왔다.

“친구들이에요. 무슨 일이에요?”

아내는 무뚝뚝하게 말했다.

“화장실…….”

그는 말을 얼버무리며 재빨리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 날 저녁 아내는 서재로 왔다.

“당신 이제 제발 밖으로 나오지 마세요.”

아내의 말투는 싸늘했다. 그는 당황해서 무슨 말이라고 꺼내려고 하는데 아내는 이내 서재를 나갔다. 그는 서운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냥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이제 식사 때가 되면 거실의 동정을 살피고 아무도 없을 때 가만히 나와서 밥을 퍼고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 먹었다. 아내는 그를 위해 밥상을 차리지 않았다. 반찬도 따로 만들지 않아 그는 냉장고에서 있는 대로 반찬을 꺼내 먹었다. 하지만 그는 식욕이 왕성해서 한 끼에 밥을 두 그릇이나 먹었다.

점점 딸의 얼굴도 보지 못 했다. 아침에 학교에 나갈 때나 집에 오면 서재 문을 열고 다녀오겠습니다, 혹은 다녀왔습니다, 라고 웃으며 인사를 했는데 그러다 점차 문을 열지 않고 인사를 했고, 언제부턴가 인사를 하지 않았다. 그는 서운한 생각이 들었지만 따지거나 훈계를 할 입장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용돈도 주지 못 하는 아빠는 그렇게 대접 받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가끔 딸의 얼굴이 보고 싶을 땐 낮에 아무도 없을 때 나와 딸의 방을 기웃거렸다. 사진도 보고 흐트러진 옷도 잘 걸어놓고 화장품 냄새를 맡기도 했다. 책상위에는 가족끼리 관악산에 갔다가 정상 바위에서 찍은 가족사진이 있었는데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벽에는 백인 청년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왠지 딸의 방이 낯설게 느껴졌다.

 

7.

 

그는 몸이 불어나서 일어서는 것조차 힘들어 기어 다니기 시작했다. 두 다리로 뒤뚱거리며 걷는 것보다 두 팔과 무릎으로 기어 다니는 것이 훨씬 편했다. 하지만 별로 기어 다닐 일이 없기 때문에 그는 하루 종일 누워 지냈다. 가끔 무료하기도 했고, 가끔 외로울 때도 있었고, 아주 가끔 인생이 허무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그는 낮이고 밤이고 수시로 잠이 들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그의 인생에 크게 방해되지 않았다.

그의 유일한 낙은 자위하는 남자를 보는 것이었다. 항상 발가벗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자위하는 남자. 뒤를 돌아보며 공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내. 그 사내도 언제부턴가 그처럼 살이 찌기 시작했다. 처음 그림을 사왔을 땐 허릿살이 오르고 엉덩이와 허벅지에 살이 통통한 정도였지만 지금은 우람한 채구에 팔뚝이 보통 사람 다리 굵기만 했다. 그는 그런 것에 개의치 않았다. 그 자신이 살이 불어났기에 그림 속의 사내도 살이 불어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또한 언제부턴가 그의 아내가 간섭을 하지 않았기에 그의 머리카락은 어깻죽지까지 내려왔고 수염은 그의 얼굴을 덮었다. 그림 속의 사내도 머리가 길게 내려왔고 얼굴은 수염으로 뒤덮였다.

아내는 점점 귀가 시간이 늦어졌다. 언젠가 새벽에 아내가 퇴근하고 난 뒤 화장실에 가려고 거실에 나왔을 때 알코올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안방에서 아내는 혀 꼬부라진 소리로 누군가 오랫동안 통화하고 있었다. 상대방이 남자인 듯 했으나 그는 짐짓 모른 채 화장실을 다녀왔다.

아내의 얼굴을 본 지도 꽤 지났다고 느껴지던 어느 밤이었다. 그는 기어 나와 화장실을 다녀오는데 안방의 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새벽인 듯 했으나 아내는 금방 들어온 듯 했다. 역시나 알코올 냄새가 거실에 가득했다. 딸은 아직 들어오지 않았는지 방문이 열려진 채로 불이 꺼져 있었다. 그는 안방으로 기어갔다. 아내는 옷을 모두 벗고 침대 위에 누워 자고 있었다. 자다가 가끔 휘유, 하고 긴 숨을 몰아쉬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역한 알코올 냄새가 났다. 그는 아내의 벗은 몸을 천천히 음미하듯 바라보았다. 아직은 봉긋한 유방이며 살이 오른 허리가 창문으로 들어온 빛에 온전히 드러났다. 그는 무릎을 꿇고 아내의 다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음.

그의 손이 무릎을 지나 허벅지를 거쳐 음부에 와 닿았을 때 그는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토해냈다. 참으로 오랜만에 아내의 몸을 만진다 생각했다.

아내는 다시 한 번 휘유, 긴 숨을 토해 내며 그 쪽으로 돌아누웠다. 그의 손은 배꼽을 지나 유방으로 올라갔다. 물컹한 유방이 손 가득히 들어왔다.

음.

그는 아내의 유방에 얼굴을 묻었다. 알코올 냄새와 향긋한 냄새가 났다. 그는 갑자기 울고 싶었으나 참고 가만히 있었다. 그는 옷을 벗기 시작했다. 몸이 불어났기에 옷 벗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땀을 흘리며 겨우 옷을 벗었다. 아내는 다시 반대편으로 돌아누웠다. 그는 아내 곁에 누웠다. 참으로 오랜만에 아내 옆에 누워 보는 것이었다. 그는 아내의 머리를 들어 자신의 팔을 밑으로 넣었다. 그리고 아내의 몸을 돌려 자신을 향하도록 했다. 아내를 꼭 껴안았다. 머리에서 향긋한 샴푸 냄새가 났다.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아내도 잠결에 그를 꼭 안았다.

음.

그는 신음을 토해냈다. 그는 아내의 다리를 벌렸다. 그리곤 자신의 하체를 다리 사이로 넣었다. 그는 아내의 몸속으로 성기를 넣으려고 발버둥쳤다. 하지만 헛수고였다. 그의 성기는 발기되지 않았다.

휘유.

긴 김숨을 토해내던 아내는 갑자기 눈을 떴다. 그는 가만히 아내를 바라보았다. 아내는 눈을 크게 떴다.

“악.”

아내는 비명을 질렀다.

나야. 나.

그는 말을 했지만 밖으로 나온 목소리는 우우, 하는 소리였다.

“누, 누구야.”

아내는 이불을 껴안고 침대 머리맡으로 가 오들오들 떨었다. 그는 몇 번이나 당신 남편이라고 말을 했지만 우우, 우우우, 하는 소리만 입으로 나왔다.

“악.”

아내는 여전히 그를 보며 비명을 질렀다. 그는 손을 저으며 안심시키려고 했지만 아내는 여전히 떨었다.

“다, 당신?”

마침내 아내는 그를 알아보았다. 그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끄덕거렸다.

“당신. 방 밖으로 나오지 말랬잖아. 나가! 나가란 말이야.”

아내는 베개를 그에게 던졌다. 그는 할 수 없이 옷을 집고 엉금엉금 기어 방을 나왔다.

그는 서재로 들어가 누웠다. 슬펐다. 그는 팬티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발기 되지 않은 성기는 오므라져 있었다. 그는 그림을 보았다. 그러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손을 움직였다. 성기가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손을 움직였다. 성기가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음.

그는 신음을 토해내며 계속 자위를 했다.

 

8.

 

아내는 집에 있을 때도 그에게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아내는 딸하고만 얘기를 나누었고 음식도 둘이서만 먹었다. 또한 샤워를 하고 난 뒤에는 마치 집에 아무도 없는 양 벌거벗고 다니기도 했다. 딸도 마찬가지였다. 아내가 출근해서 늦게 퇴근하거나 외박을 할 때면 마치 집에 혼자 있는 양 샤워를 하곤 발가벗은 채로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춤을 추기도 하고 남자친구랑 오랫동안 통화를 하며 야한 농담을 하기도 했다.

딸은 주로 새벽까지 컴퓨터를 했고 오전에는 잠을 잤다. 오후에는 외출을 했다. 치마의 길이는 점점 짧아졌고 지나간 자리에는 진한 향수 냄새가 느껴졌다.

아내가 집에 있을 때 그는 곤혹스러웠다. 아내 혹은 딸이 집에 있을 때면 그는 죽은 듯이 방안에서 요의도 참고 지내야 했다. 또한 식사를 하기 위해선 아내와 딸이 잠들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어쩌다 그는 요의를 참지 못 해 살그머니 문을 열고 나왔는데 그때 아내와 딸은 전혀 눈치 채지 못 했다. 그가 문을 열고 엉금엉금 기어 거실을 가로 질러 화장실에 갈 때도 두 모녀는 그의 기척을 느끼지 못 하고 낄낄거리며 수다를 떨었다. 그는 몇 번 그렇게 되자 과감하게 아내 혹은 딸이 있을 때도 밖으로 나왔다. 역시나 그들은 그를 전혀 눈치 채지 못 했다. 그가 거실에 있는데도 아내와 딸은 혼자 있을 때처럼 각자 남자 친구에게 전화를 오랫동안 했다.

“잠깐만 참으라고. 오늘 밤에 죽여줄 테니까.”

아내는 깔깔거렸다. 아내와 딸이 없을 때 그는 가만히 기어 나와 그들이 먹다 남긴 음식을 먹었다. 아내가 그를 위해 음식을 따로 준비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어떨 땐 며칠이 지난 음식을 먹을 때도 있었고 쓰레기통을 뒤져 먹기도 했다. 그나마 그렇게라도 먹을 수 있을 때가 좋았다. 아내가 며칠씩 안 들어올 때는, 딸은 아예 집에서 음식을 해 먹지 않았기에, 그 또한 며칠씩 굶어야 했다.

 

9.

 

며칠째 아내와 딸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굶었다. 그러다 참지 못하고 냉장고에서 반찬을 만들기 위해 사놓은 야채실의 호박이나 파, 심지어 국수를 생으로 먹었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금방 동이 났다. 그는 굶었다. 되도록 밖으로 나오지 않고 이불 속에서만 지냈다.

전화라도 왔으면.

그는 외로웠다. 처음에 몇 번 그를 찾던 회사 동료나 친구들의 연락이 끊어진 지는 오래 되었다. 그는 무인도에 갇힌 느낌이 들었다.

누구라도 찾아왔으면.

그는 이불 속에서 중얼거렸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딩~동!”

며칠이 지났는지 그는 혼미한 정신으로 누워 있는데 인터폰이 울렸다. 그는 꿈인가 했다.

“딩~동!”

또다시 인터폰이 울렸다. 그는 반가운 마음에 눈물을 흘릴 뻔 했다. 그는 엉금엉금 기어 나왔다. 액정화면엔 30대로 보이는 여자 둘이 가방을 들고 서 있었다. 그는 반가운 마음에 인터폰을 들었다.

“예. 초대장을 드리려 왔습니다.”

“우우.”

그는 무슨 초대장이냐고 물었다.

“초대장을 드리려고 하는데 문 좀 열어주세요. 하나님 말씀을 전하려 왔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들어야 천국에 갑니다. 이번 주 일요일에 초대하려고 합니다.”

그는 어쨌든 초대한다는 말에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는 엉금엉금 기어가 겨우 상체를 들고 문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 악!”

그들은 문 안으로 발을 들여놓다 그를 보고서 비명을 질렀다.

“우우.우우우.”

그는 그들이 안으로 들어오도록 옆으로 비켜섰다.

“어머!”

“으악!”

그들은 비명을 지르며 문을 쾅 닫았고 뒤이어 급하게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슬픔 마음에 문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졌다. 그는 문을 잠그지 않았다. 그리고 뒤를 돌아서서 서재로 들어갔다.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매일 자위하는 남자를 바라보며 지냈다. 며칠 후 아내가 다녀갔지만 음식을 먹지 않고 옷가지만 챙겨갔기에 그는 먹을 것이 없었다. 딸은 새벽녘에 들어와 저녁까지 자다가 해가 지고 난 뒤 또 집을 나가서는 깜깜 무소식이었다.

며칠 뒤 그는 혼미해 가는 정신으로 자위하는 남자를 보고 있는데 딩동, 하며 인터폰 소리가 울렸다. 누굴까. 그는 하나님을 믿으라는 두 여인을 떠올리며 그대로 누워 있었다. 곧이어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어, 문이 열려 있네.”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계세요? 아무도 안 계시나?”

여전히 여자의 목소리. 그는 몇 번이나 몸이 뒤척인 후에야 겨우 상체를 일으켰다. 거실에서는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데 남의 집에 와서 무얼 하는가. 그는 두 팔을 앞으로 짚었다.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밖에서는 여전히 그릇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그는 휘청거리는 팔에 힘을 주며 엉금엉금 기어 거실로 나왔다. 회색빛 제복을 입은 여자가 정수기 뚜껑을 열고 행주로 닦고 있었다.

“우우우. 우우.”

그는 여자가 놀랄까봐 작은 소리로 말했다. 여자는 손길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악!”

여자는 비명을 질렀다.

“우우, 우우우우.”

그는 여자에게 고개를 가로 지르며 안심하라고 했다. 이 집 주인이라고 했다.

“가까이 오지 마!”

여자는 싱크대에서 재빨리 칼을 집어 들었다. 여자는 검정색 가방을 한 손에 들고 칼을 휘두르며 현관 쪽으로 옆걸음으로 나아갔다.

“우우우.”

그는 절망스럽게 신음했다. 현관에 다가간 여자는 문을 열자마자 칼을 버리고 재빨리 밖으로 나갔다.

“우우.”

그는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울부짖었다. 그는 서재로 들어왔다.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가려던 그는 문득 그림을 바라보았다. 그림 속의 사내는 여전히 자위를 하다 그를 뒤돌아보았다.

음.

그는 그림 쪽으로 팔을 휘청거리며 다가갔다. 그림 앞에 멈춰 선 그는 손으로 사내를 쓰다듬었다. 그렇게 한동안 사내를 바라보던 그는 옷을 벗기 시작했다. 옷이 몸에 꽉 끼였기 때문에 윗옷이 팔에서 잘 빠지지 않았다. 그는 입으로 소매 끝을 물고 한 손으로 옷을 쥐었다.

우우.

그는 있는 힘껏 옷을 당겼다. 부북. 옷이 찢어지며 팔이 빠져 나왔다. 바지는 다행히 누워서 바지 끝을 손에 쥐고 힘껏 당기자 다리를 잘 빠져 나왔다. 팬티를 벗자 그의 알몸이 드러났다.

음.

그는 자신의 몸을 살펴보다 두 손으로 벽을 짚었다. 팔과 다리에 힘을 주자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일어서고 나자 오랫동안 직립보행을 하지 않은 다리도 덜덜 떨렸다. 그는 벽을 짚으며 그림에 다가갔다. 그림을 마주 보고 섰다. 잠시 그림 속의 사내를 바라보던 그는 그림 속으로 다리를 쑥 집어넣었다. 다리는 마치 물 속에 들어가는 것처럼 들어갔다. 다른 다리도 그림 속에 집어넣었다. 그리곤 물속에 잠기 듯 상체를 그림 속에 밀어 넣었다. 그림 속으로 들어가며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10.

 

며칠 후 딸이 새벽에 들어와 점심 무렵에 나갔고 그 다음 날 아침 아내가 집에 왔다. 아내는 거실에 들어오자마자 휘유, 긴 숨을 내쉬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담배를 꺼내 달게 한 대를 피웠다. 담배를 빈 병 속에 집어넣은 아내는 주위를 둘러 보다 그의 방에 시선이 머물렀다.

“방문을 열어 놓았나.”

아내는 그의 방으로 와서 방안을 휘 둘러보았다.

“망측해라. 이 그림이 아직도 여기 있네.”

아내는 잠시 징그럽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다 그림을 질질 끌고 거실로 나왔다.

“웬 그림이 이렇게 무겁담.”

아내는 그림을 거실 바닥에 눕혀 놓고 신발장 서랍에서 망치를 들고 왔다.

망측해.

아내는 그림을 망치로 내리쳤다. 순간 사내의 몸이 쨍, 하며 여러 갈래로 금이 갔다. 아내는 한 번 더 망치를 내리치려고 손을 들었다가 잠시 멈추었다. 무슨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사람의 비명 소리 같기도 했기에 아내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아내는 다시 망치를 내리쳤다.

쨍.

사내의 몸이 여러 갈래로 깨졌다. 금이 간 부분엔 아내의 얼굴이 일그러져 비쳤다. 아내는 다용도실에서 빈 종이상자와 빗자루, 쓰레받기를 들고 왔다. 산산이 깨진 사내를 종이상자에 담았다. 멀리까지 튄 작은 조각까지 쓰레받기에 빗자루로 쓸어 담은 후 종이상자에 부었다. 아내는 종이상자를 현관밖에 내놓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옷을 갈아 입은 아내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온 아내는 종이상자를 쓰레기장에 버렸다. ***

 

 문학웹진 <문학마실> 편집인  한국작가회의 회원   소설집 <소도(蘇塗)> <아버지의 알리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