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웹진]문학마실~...116호...
   2020년 02월

  1. 내일을 여는 창
  2. 소설
  3. 수필
  4. 권서각의 변방서사
  5. 이달의 작가
  6. 동인지를 엿보다
  7. 작품집에 스며들다
  8. 시와 거닐다
  9. 사진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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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2014년 1월 41호부터 2014년 10월 53호까지...
편집자
87892 2014-11-03
153 먼 꽃 외1편/권오윤
편집자
3577 2011-10-31
11.11월 18호 시  먼 꽃 권 오윤 강 건너 꽃 들판이 더 어여뻐 물 건너 무릎앉아 가슴을 열었더니 구절초 송이마다 멍이 들었고 코스모스 한 잎은 숨을 죽였다. 우는 듯 웃고 있는 꽃 옆에서 나도 그저 우는 듯 웃는 한송이 꽃이다. 건너온 강둑 이만치서 보니 있던 자리도 그저 어여쁜 꽃밭이다. 아, 먼 꽃들은 내 먼 꽃들은 다 그만치서 어여쁘다. 입추 입추가 되면 귀뚜라미가 운단다. 할머님이 그렇게 말씀하신 이후로 귀뚜라미소리는 입추 지나서만 내 귀에 들렸습니다. 무덤가 잔디는 이제 다 자랐는지 지난해 심어둔 국화는 심심하신지 백로 지나면 가 보려는데 오늘 밤 귀뚜라미 소리가 동그란 할매 젖가슴 따뜻하게 식은 그곳으로 먼저 떠나갑니다. 딸들에게 ‘입추 지나니 귀뚜라미가 울지?’ 해놓고선 혼자 돌아누워 귀뚜라미대신 울어보는 밤입니다.  
152 자위하는 남자/고창근 file [3] (2)
편집자
11219 2011-09-30
11.10월 17호 소설  자위하는 남자 1. 그가 그림의 포장지를 벗겨냈을 때 아내는 기겁을 했다. “망측해라. 이게 뭐예요. 이게.” 아내는 무슨 징그러운 것을 보기라도 한 듯 뒤로 물러섰다. 그는 그림을 두 손으로 잡은 채 아내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애원이라도 할 듯한 간절함이 서려있었다. “영애가 보면 어떡하려고요. 빨리 치워요.” 아내가 딸의 방을 흘긋거리며 다급하게 말했기에 그는 꾸지람을 듣는 학생처럼 고개를 숙인 채 서재로 그림을 들고 들어갔다. 전혀 예상치 못 한 상황이었다. 아내가 좋아할 것 같지는 않았지만 구박받을 줄은 몰랐다. 그는 무슨 설명이라도 했으면 싶었지만 도무지 말이 머릿속에서 정리되지 않았다. 어디에 걸어둔담. 그는 이제 막 퇴근했기에 몹시 피곤함을 느꼈으나 그림을 책상에 기대어 둔 채 벽을 둘러보았다. 책상 앞에는 창문이 있고 옆에는 책장이 이어져 있었기에 그림을 걸기에는 마땅치가 않았다. 그는 책장 옆에 그림을 세워 놓고 천천히 책상 앞으로 걸어와 의자에 앉았다. 그리곤 한참동안 그림을 바라보았다. 사내가 옷을 몽땅 벗은 채 두 손으로 자위를 하다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는 그림이었다. 허릿살이 나오고 약간 벌린 두 다리의 허벅지와 엉덩이에 살이 제법 붙은 영락없는 중년의 사내였다. ‘자위하는 남자’ 그는 그림을 바라보다 길게 숨을 내쉬었다. 아직도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듯한 긴장된 그의 표정이 사내 앞에 나타났다. 그림은 배경이 없이 그냥 거울에 그려져 있었기에 그의 모습이 그림 옆 거울에 비쳐졌다. 자위하는 사내의 앞에 영혼이 빠져나간 듯한 그의 모습이 일종의 배경이 되어 거울 속에 있었다. 저녁을 먹으라는 아내의 말을 듣고 그는 사내와 헤어지는 것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서재를 나왔다. “아빠 무슨 그림 사오셨어요?” 딸이 물었고 아내가 나섰다. “얘. 말도 마라. 망측하게. 대체 그림이 아니고. 남사시럽게.” “무슨 그림인데요?” 딸이 호기심을 이기지 못 하고 서재로 들어가려고 하자 아내가 기겁을 하며 딸의 팔을 잡았다. “그건 그림도 아니래도. 그리고 그런 건 너희들이 보는 게 아니야.” 딸은 그를 바라보았지만 그 또한 딱히 그림을 설명할 수 없었다. “자 자, 어서 밥 드셔요. 넌 방에 들어가 공부 해.” 아내는 딸을 방으로 밀었다. 그는 밀려들어가는 딸과 아내를 번갈아 보았다. 뭔가 불쾌한 기분이 명치께에 머물렀다. 누군가에게 몹시 경멸을 당했을 때의 느낌하고 비슷했다. 그는 식탁에 앉았다. “내일 당장 그림 치워요.” 아내는 국이 들은 그릇을 식탁에 놓으며 그에게 말했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숟가락을 멀뚱히 바라보기만 했다. “어떻게 그림 살 생각을 다 했어요?” 아내는 그의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그는 말없이 아내를 바라보았다. 그건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는 지금도 자신이 그 그림을 사왔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는 지금까지 그림을 사기는커녕 전시회에 가보지도 않았다. 그런 그가 그림을 샀다니. 그것도 예쁜 꽃 그림이나 풍경화가 아닌 인물화를, 자위하는 사내 그림을. 그는 들었던 숟가락을 놓고 일어섰다. “왜요? 속이 안 좋아요?” 아내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아냐.” 그는 너무나 피곤했기에 쉬고 싶었고 서재로 들어갔다. 뒤에서 아내의 걱정하는 목소리가 이어졌지만 그는 무시했다.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림을 사왔는데도 뭔가 뒷맛이 개운하지가 않았다. 그는 고개를 돌려 그림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두 다리를 벌리고 두 손을 앞으로 가져간 사내가 뒤를 돌아 그를 보고 있었다. 사내는 공허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그를 돌아보느라 비틀어진 등은 애잔한 느낌을 주었다. 며칠 동안 고심하다 산 그림이었다. 며칠 동안 끙끙 앓다 산 그림이었다. 처음 그림을 보았을 때 그는 마치 자기 자신을 본 듯했다. 마치 자신이 자위를 하다 들킨 기분이었다. 전시장에 들어갈 때부터 뭔가 묘한 기분이 들었던 거 또한 사실이었다. 2. 퇴근하던 길이었다. 출장을 갔다가 부장에게 전화로 보고하고 조금 이른 시간에 퇴근하다 들른 갤러리였다. 시간은 오후 5시를 조금 넘었을 텐데 이상하게 발걸음이 집으로 향하지 않고 무작정 거리를 걷던 중이었다. 매번 바쁘게 지하철역으로 뛰어다니던 그는 오랜만에 거리를 천천히 걷던 중이었다. 아직 퇴근시간이 되지 않은 탓인지 거리는 조금 한가한 편이었다. 왠지 목적 없이 걷고 싶었다. 객기가 아니었다. 언제부턴가 그는 몸에서 물기가 서서히 빠져나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자신이 미라가 되어가는 듯 했다. 그는 조금 더 걷다가 눈에 띄는 지하철역으로 들어갈 참이었다. 그때 그는 가로 세로 1M가 조금 큰 펼침막을 보았다. 김선우展 - 또 다른 나. 개인전을 알리는 흔하디흔한 펼침막이었다. 시선 갤러리. 펼침막 옆에는 세로로 된 나무에 눈 그림과 함께 갤러리라는 간판이 걸려 있었다. 그는 무심코 지나쳤다. 개인전을 여는 이도 모를 뿐만 아니라 갤러리 역시 처음 보는 거였다. 몇 걸음 더 걸어갔을 때 그는 이상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한번 가봐. 누군가 말을 걸었다. 뒤를 돌아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그는 다시 가던 길을 걸었다. 한번 가보라니까. 또다시 같은 목소리가 그에게 재촉했다. 왜 이럴까. 며칠 동안 야근해서 몸과 마음이 피곤해서 그런가, 했다. 그러던 순간 그는 전시장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은 절박한 무엇이 있었다. 그는 무엇인가에 이끌리듯 오던 길을 되돌아 시선 갤러리로 들어갔다. 김선우展은 제2관에서 열리고 있었다. 홀에 있는 20대의 아가씨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그는 목례를 하고는 쭈빗거리며 제2관으로 들어갔다. 전시장에는 젊은 연인으로 보이는 몇 쌍과 중년 여인으로 보이는 대여섯 명의 무리들이 보였다. 그는 천천히 걸으며 그림을 보기 시작했다. 그림은 그가 평소에 상상했던 그림들 하고는 달랐다. 전시장에 온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으레 꽃 그림이나 풍경화를 예상했었다. 그러나 그러한 그림들은 한 점도 없었고 대부분이 남자의 일그러진 얼굴 그림이었다. 어쩌다 전신 그림이 있었는데 대부분 성기를 드러낸 채 서 있거나 누워 있는 그림이었다. 그림을 볼수록 그는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마치 자기 자신이 옷을 홀라당 벗고 서 있는 것 같은, 수치심이 몰려왔다. 원 이런 그림을. 그는 괜히 왔다는 후회감이 밀려 왔지만 짐짓 팔짱을 끼고 그림을 둘러보았다. 다른 이들은 일행들과 그림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곤거리거나 킥킥 웃었다. 누군가 함께 왔으면 이런 수치심이 덜 했을 텐데. 그는 애써 감정을 숨기며 그림을 둘러 보다 한 그림 앞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흡. 숨이 확 멈추는 것 같았다. 그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두 그림을 감상하고 있을 뿐 그를 바라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붉게 오른 얼굴에서 열이 확확 났다. 음. 그는 다시 그림을 바라보았다. 누가, 나를. 그는 불쾌감에 몸을 떨며 그림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영락없는 자기 자신이었다. 이럴 수가. 그는 그림 옆 하단에 붙은 제목을 보았다. 자위하는 남자. 그는 다시 그림을 보았다. 홀라당 벗은 사내가 두 다리를 벌리고 두 팔을 성기 쪽으로 가져간 채 뒤를 돌아보는 그림이었다. 사내는 사람 키만큼 높고 두 팔 넓이의 거울 속에 2/3쯤 차지하고 그려져 있는데 살이 오른 허리와 엉덩이 그리고 허벅지로 볼 때 영락없이 중년인 그 자신이었다. 마치 자신이 자위를 하다 들킨 기분이었다. 그는 정신이 들었을 때, 갤러리 밖에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어떻게 갤러리를 빠져나왔는지 기억에 없었다. 여전히 불쾌감과 수치심이 느껴졌다. 그는 걸었다. 갑자기 인생이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3. 그는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 했다. 순간순간 그 자신이 거울 속에 들어가 전시장에 걸려 있는 착각에 빠지곤 했다. 젊은 남자 여자들이 자신의 모습을 감상하는 환영을 보기도 했다. 그는 밤새 비몽사몽으로 갤러리에 걸려 있다 새벽에 잠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아직도 수치심과 불쾌감으로 몸을 떨었다. 아내는 얕게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그는 베란다로 가서 담배를 연거푸 세 대를 피웠다. 목이 싸하게 따끔거렸고 윗배가 울렁거렸다. 그는 두 손바닥으로 얼굴을 쓰다듬었다. 마치 얼굴이 물기가 모두 빠져나가 바싹 마른 나뭇가지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당신 왜 그래요?” 그제야 일어나 거실로 나온 아내는 그를 보고는 걱정을 했다. “아냐 잠을 못 자서.” “피곤해 보여요. 어디 안 좋아요?” “아냐.” 그는 짐짓 아내를 안심시키려고 했지만 아내는 그를 바라보며 어디 아픈 거 아니냐고 자꾸만 걱정스레 물었다. 딸도 그의 푸석한 얼굴을 보더니 무슨 일이 있느냐고 했다. 그는 순간, 짜증이 났지만 애써 아내와 딸에게 아무 일도 아니라고 말하곤 욕실로 들어갔다. 그는 아침도 먹지 않고 출근했다. 도저히 아침을 먹을 기분이 아니었다. 그는 일을 하는 둥 마는 둥 하루를 보내고 어제 갔던 갤러리로 갔다. 갤러리 홀에는 아가씨가 어제처럼 목례를 했다. 그는 곧장 제2관으로 들어갔다. 전시장에는 역시 어제처럼 연인처럼 보이는 몇 명의 젊은 사람들과 중년으로 보이는 남녀 몇이 그림을 감상하고 있었다. 그는 그림을 대충 훑어보며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다 어제 그 그림에 앞에 멈춰 섰다. 어제처럼 역시 그림 속의 사내는 다리를 벌리고 홀라당 벗은 몸으로 자위를 하다 그를 뒤돌아보았다. 역시 자기 자신이었다. 수치감과 불쾌감이 솟아오르는가 싶더니 순간 쿵, 하고 뭔가 무너지는 소리가 몸 내부에서 들렸다. 그 자신의 몸도 아래로 추락하는 듯 했고 현기증을 느꼈다. 그러더니 슬픔 같은 느낌이 드는가 싶더니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뤄지는 일이라 그는 당혹해 하면서도 흐르는 눈물을 제어하지 못 했다. 한참동안 그렇게 눈물을 흘리다 문득 사내 앞에 서 있는, 거울에 비친 그 자신을 보았다. 거울 속의 사내가 참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또다시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갤러리 밖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참 묘했다. 어떻게 갤러리 밖으로 나왔는지 도통 기억에 나지 않았다. 그는 어제처럼 무작정 걸었다. 4. 역시 그날 밤에도 그는 잠을 이루지 못 했다. 마치 그 자신이 자위를 하며 갤러리에 걸려 있는 기분이 밤 내내 들었다. 다만 자위를 하다 들킨 당혹감은 별로 들지 않았다. 어제처럼 수치심이나 불쾌감보다도 대신 그림 속의 그 자신에게 동점심이 일었다. 불쌍했다. 그러자 또다시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내렸다. 몸 어딘가에서 쿵, 하고 뭔가가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새벽 무렵 그는 잠자리에 일어나 잠을 자지 못 해 휘청거리는 몸을 이끌고 베란다로 가서 어제처럼 담배 세 대를 피웠다. “어머. 이럴 어째.” 아내는 그의 얼굴을 보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빠. 얼굴이 왜 그래요.” 방금 일어난 딸은 가까이 오지도 못 하고 비명을 지를 듯 했다. “당신 안 되겠어요. 오늘 병원에 한번 가 봐요. 보약을 한 질 먹든지.” 아내는 곧 울 듯 한 표정을 지었다. “괜찮아. 보약은 무슨. 그는 부리나케 욕실로 들어가서 씻었다. 면도를 하면서 그는 오늘 그 그림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그림이 갤러리에 걸려 있는 한 그는 매일 밤 갤러리에 걸려 있어 잠을 못 잘 것이고 낮에도 일이 손에 잡히지 못 할 것 같았다. 그는 아침도 먹지 않고 출근을 했다. 보는 직장 동료들마다 걱정하는 눈빛으로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지만 말하는 것조차 귀찮아 고개를 가로 젓기만 했다. 역시 일은 손에 잡히지 않았고 멍하니 창밖을 보다가 부장한테 지적을 받기도 했다. 눈이 쑥 들어갈 것 같고 몸이 천근만근 무거웠지만 정신은 말짱했다. 그는 어제처럼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몇 숟가락 들다가 그만두었다. 배는 고프지 않았고 모든 게 허무하게 느껴졌고 귀찮아졌다. 퇴근하고 술 한 잔 하자는 입사 동기인 L의 제의를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L은 서운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그는 일을 하는 둥 마는 둥 하다가 퇴근하자마자 갤러리에 찾아갔지만 화가를 만나지 못 했다. 안내하는 아가씨는 그림을 팔 목적으로 전시를 하는 게 아니라 갤러리 기획전이라고, 물론 그림을 사고자 하는 사람이 있으면 당연히 팔기도 하지만, 화가와 먼저 얘기가 되어야 갤러리에서 팔 수가 있다고 했다. 화가는 아마도 오늘은 만날 수 없고 미리 약속 시간을 잡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그 그림을 다른 이에게 절대로 팔지 말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내일 다시 오겠으니 화가에게 연락해 달라고 했다. 다음 날 그가 갤러리를 찾아갔을 때 화가가 와 있다며 사무실로 그를 안내했다. 화가는 보통 키에 약간은 마른 형의 남자였다. 금테 안경 속의 눈이 날카로워 보였다. 화가는 대뜸 어째서 그림을 살 생각을 했냐고 물었다. 그는 대답을 못 했다. 그림 속의 인물이 바로 자기 자신 같다고는 말 할 수가 없었다. 입에는 나오는 대로 말했다. “그냥 소장하고 싶습니다.” 화가는 그를 빤히 쳐다보더니 “이 그림은 원래 팔려고 그린 게 아닙니다. 집에 걸어두려고 이런 그림을 살 사람도 없고요.” “저는 꼭 이 그림을 사야겠습니다.” “무슨 이유라도 있습니까? 다른 관에는 풍경화나 정물화 같은…… 집에 걸어둘 만한 그림들이 많은데요.” “이유를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냥 팔아주십시오. 이 그림이 꼭 필요합니다.” 그는 애원하듯이 말했다. 화가는 껄껄 웃더니 옆에 앉은 여자를 소개하며 여기 관장님하고 얘기하라고 했다. 관장은 지금은 예약만 해 놓고 일주일 뒤 전시회가 끝나면 가져가라고 했다. 그는 금액은 묻지도 않고 고맙다고 꾸벅 인사를 하고 나왔다. 일주일 동안이나 전시를 더 한다는 게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그런대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여전히 밤이면 그 자신이 벌거벗은 채 전시장에 걸려 있다는 환상에 빠졌고, 당연히 잠을 못 잤으며, 아침을 먹지 않고 출근을 했다. 점심은 몇 숟가락 들다 그만두었다. 부장한테 불러가 무슨 일이 있느냐고 추궁을 당했고 퇴근하면서 그는 인생이 허무하다는 생각에 빠졌다. 그는 그림 속의 사내를 불러내 술 한 잔 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지만 그림 속의 인물을 불러 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혼자 술을 마셨고 그림 속의 사내를 생각했다. 일주일 동안 퇴근하면 곧장 전시장에 들렀고 자위하는 남자를 보았다. 5. 그림을 사 온 날 아내에게 무안을 당했지만 그는 그림을 집으로 가져 온 것으로도 마음이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다. 그는 그날 밤 여전히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서재에는 침대가 없어 요를 깔고 바닥에 누웠지만 여전히 자신이 거울 속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었다. 다음 날 그는 아내의 성화에 잠자리에서 일어나기는 했지만 출근을 하지 않았다. 몸도 지쳐있었지만 출근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냥 집에 있고 싶었다. “당신 정말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에요? 잠도 서재에서 자고.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 아내는 걱정을 했다. 그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씩 웃어보였지만 표정이 일그러졌다. 아내는 오늘 하루 쉬라고 했다. 아무 걱정 말고 푹 쉬라고 했다. 그는 아침 식사 내내 숟가락만 만지작거리다 서재로 들어갔다. 잠시 후 문이 열리더니 학교 간다는 딸의 인사말이 들려 왔고 그는 잘 갔다 오라는 말을 하곤 이불 속으로 들어가 벽에 기대어 있는 거울 속의 자위하는 남자를 쳐다보았다. 그러다 비몽사몽으로 지냈고 점심 먹으라는 아내의 말에 그는 거실로 나왔다. 점심은 장어탕을 끓어놓았지만 그는 입맛을 잃은 지가 오래라 몇 숟가락 뜨질 못 했다. “억지로라도 드세요. 당신이 건강해야지요.” 아내는 사정을 했고 그는 구역질이 나는 걸 겨우 참으면 국물을 다 비웠다. 하지만 화장실에 간 그는 이내 먹은 것을 다 토해냈다. 그는 다시 서재로 들어가 누웠다. 만사가 다 귀찮았다. 회사에서 전화가 왔지만 받지 않았다. 저녁에 딸이 다녀왔다고 문을 열고 인사를 했지만 그는 누운 채 인사를 받았다. “아빠가 이상해.” 딸이 아내에게 소곤거리는 소리를 그는 들었다. 다음날도 그는 출근하지 않았다. 회사에서 전화가 왔지만 그는 받지 않았고 아내가 대신 그의 증상을 말해 주었다. 입사 동기인 L한테서도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 신호음이 끊기자 휴대폰의 배터리를 빼버렸다. 그리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자신이 생각해도 참 이상한 일이었다. 그는 20여 년 동안 결근은커녕 지각이나 조퇴 한 번 하지 않았다. 또한 애교 있는 아내랑 대학1학년이 된 딸이 있는 집에 만족했다. 그래서 그는 열심히 일했다. 회사에서도 인정받았다. 근데 이게 왠일인가. 그는 모든 게 귀찮아졌다. 출근하기 싫었다. 나는 무얼 바라고 살아왔나. 김선우展-또 다른 나. 그는 개인전의 그 문구에 집착했다. 또 다른 나는 무엇인가. 갑자기 이렇게 살아온 자신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일주일째 출근도 안 하고 지내는 동안 아내는 별별 보양식을 다 해 주었지만 그는 먹자마자 토했다. “여보 제발 병원에 가요.” 아내는 몇 번이나 애원을 했지만 그는 서재에서 꼼짝달싹하지 않았다. “당신이 그렇게 아프면 우리 집은 어떡해요. 당신이 가장인데.” 아내는 울면서 사정했다. 아내는 신경정신과에 가자고 했다. 2주일째 되는 날 그는 할 수 없이 신경정신과에 갔다. 50대 후반의 의사는 그의 증상을 묻더니 크게 신경 쓸 일이 아니라고 했다. 스트레스 때문이니 우선 약을 먹어 보라고 했다. 약은 아침에 먹는 약과 점심, 저녁에 먹는 약이 각각 달랐다. 저녁에 먹는 약은 낮에 먹는 약보다 파란 약 두 알이 더 많았다. “회사에는 제가 잘 얘기해서 병가를 내놨어요. 그러니 당신은 우선 몸부터 추스르세요.” 아내는 그렇게 말했지만 그는 이미 회사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설사 돌아갈 수 있다고 해도 그는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약을 먹고 잠을 잤다. 낮에 일어나 점심을 먹고 약을 먹고 잠을 잤다. 저녁에 일어나 밥을 먹고 약을 먹고 잠을 잤다. 계속 잠이 왔다. 그는 계속해서 며칠 동안 밥 먹고 잠만 잤기 때문에 그림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다. 꿈 속에서만 어렴풋이 그림 속의 사내를 만났다. 여전히 그 사내는 자위를 했다. 그는 살이 찌기 시작했다. 살이 올라 화장실이나 밥 먹으러 거실로 나올 때마다 끙, 하며 두 팔을 바닥에 집고 상체를 겨우 들어 올린 후 일어서야 했다. 옷은 어느새 작아져서 몸에 꼭 끼였다. 아내는 커다란 운동복을 사주었고 그는 그 옷만 매일 입었다. 6. 어느 날 그는 방문이 열리는 것을 이불 속에서 들었다. 하지만 그는 가만히 있었다. 곧이어 방문이 닫혔다. 그는 일어나 방문 쪽을 바라보았다. 문 앞에 하얀 쪽지가 있었다. 그는 기어가 쪽지를 풀었다. 여보. 저 오늘부터 식당에 나가요. 밥 차려주지 못 해서 죄송해요. 상은 차려놨으니 굶지 마세요. 당신이 다 나을 때까지만 식당에 나갈 테니 너무 걱정 마세요. 식당은 밤 10시 문 닫으니 끝나면 곧장 올게요. - 당신을 사랑하는 아내가 그는 침침한 눈을 끔벅이며 몇 번이나 읽었다. 그는 회사에서 잘렸구나 생각했다. 이렇게 지낸 지가 몇 개월이 지났는지 알 수 없었지만 회사로서도 많이 참아준 것 같았다. 잠깐이나마 20여 년을 다닌 직장에서 이렇게 나에게 말 한마디 없이 해고 시킬 수 있는가 생각했지만 이내 잊어버렸다. 다만 경제적으로 집안이 쪼들리는 것이 걱정이 되었으나 이내 모든 것이 귀찮아진 그는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다음날부터 그는 아내가 출근하고 난 뒤 주방으로 가서 아내가 차려놓은 식탁에 밥솥에서 밥을 퍼서 먹었다. 국이 식었지만 달게 먹었다. 때를 거르지 않았고 반찬은 남김없이 먹었다. 몇 번 더 신경정신과에 갔을 때 약은 처음과 좀 달랐다. 아침 점심 저녁으로 따로 먹는 것은 변함이 없으나 알약 수가 많이 줄어들었다. 의사는 많이 좋아졌으니 마음 편히 먹으라고 했다. 약을 먹으니 마음이 편안하고 식욕이 일고 잠만 잔다고 했다. “너무 잠이 오면 파란 알약은 드시지 마세요.” 의사는 자상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신 많이 나은 것 같아 좋아요. 이제 조금만 있으면 전과 같이 직장도 나가고 할 거예요.” 피곤한 기색이 완연한 아내는 웃으며 말했다. 그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러나 그는 그 뒤로도 왕성한 식욕에 잠만 잤다. 살은 계속 쪘기에 아내는 다시 옷을 사 와야 했다. 그는 이제 일어서거나 걷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그러나 약을 먹으면 잡생각이 안 들고 하루 종일 멍하게 지냈다. 다행히 잠은 잘 잤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화장실에 가기 위해 겨우 일어서서 밖으로 나오니 거실에 웬 여자들 서너 명이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런 일이 처음이라 그는 당황해 하고 있는데 아내가 다가 왔다. “친구들이에요. 무슨 일이에요?” 아내는 무뚝뚝하게 말했다. “화장실…….” 그는 말을 얼버무리며 재빨리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 날 저녁 아내는 서재로 왔다. “당신 이제 제발 밖으로 나오지 마세요.” 아내의 말투는 싸늘했다. 그는 당황해서 무슨 말이라고 꺼내려고 하는데 아내는 이내 서재를 나갔다. 그는 서운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냥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이제 식사 때가 되면 거실의 동정을 살피고 아무도 없을 때 가만히 나와서 밥을 퍼고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 먹었다. 아내는 그를 위해 밥상을 차리지 않았다. 반찬도 따로 만들지 않아 그는 냉장고에서 있는 대로 반찬을 꺼내 먹었다. 하지만 그는 식욕이 왕성해서 한 끼에 밥을 두 그릇이나 먹었다. 점점 딸의 얼굴도 보지 못 했다. 아침에 학교에 나갈 때나 집에 오면 서재 문을 열고 다녀오겠습니다, 혹은 다녀왔습니다, 라고 웃으며 인사를 했는데 그러다 점차 문을 열지 않고 인사를 했고, 언제부턴가 인사를 하지 않았다. 그는 서운한 생각이 들었지만 따지거나 훈계를 할 입장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용돈도 주지 못 하는 아빠는 그렇게 대접 받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가끔 딸의 얼굴이 보고 싶을 땐 낮에 아무도 없을 때 나와 딸의 방을 기웃거렸다. 사진도 보고 흐트러진 옷도 잘 걸어놓고 화장품 냄새를 맡기도 했다. 책상위에는 가족끼리 관악산에 갔다가 정상 바위에서 찍은 가족사진이 있었는데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벽에는 백인 청년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왠지 딸의 방이 낯설게 느껴졌다. 7. 그는 몸이 불어나서 일어서는 것조차 힘들어 기어 다니기 시작했다. 두 다리로 뒤뚱거리며 걷는 것보다 두 팔과 무릎으로 기어 다니는 것이 훨씬 편했다. 하지만 별로 기어 다닐 일이 없기 때문에 그는 하루 종일 누워 지냈다. 가끔 무료하기도 했고, 가끔 외로울 때도 있었고, 아주 가끔 인생이 허무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그는 낮이고 밤이고 수시로 잠이 들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그의 인생에 크게 방해되지 않았다. 그의 유일한 낙은 자위하는 남자를 보는 것이었다. 항상 발가벗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자위하는 남자. 뒤를 돌아보며 공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내. 그 사내도 언제부턴가 그처럼 살이 찌기 시작했다. 처음 그림을 사왔을 땐 허릿살이 오르고 엉덩이와 허벅지에 살이 통통한 정도였지만 지금은 우람한 채구에 팔뚝이 보통 사람 다리 굵기만 했다. 그는 그런 것에 개의치 않았다. 그 자신이 살이 불어났기에 그림 속의 사내도 살이 불어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또한 언제부턴가 그의 아내가 간섭을 하지 않았기에 그의 머리카락은 어깻죽지까지 내려왔고 수염은 그의 얼굴을 덮었다. 그림 속의 사내도 머리가 길게 내려왔고 얼굴은 수염으로 뒤덮였다. 아내는 점점 귀가 시간이 늦어졌다. 언젠가 새벽에 아내가 퇴근하고 난 뒤 화장실에 가려고 거실에 나왔을 때 알코올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안방에서 아내는 혀 꼬부라진 소리로 누군가 오랫동안 통화하고 있었다. 상대방이 남자인 듯 했으나 그는 짐짓 모른 채 화장실을 다녀왔다. 아내의 얼굴을 본 지도 꽤 지났다고 느껴지던 어느 밤이었다. 그는 기어 나와 화장실을 다녀오는데 안방의 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새벽인 듯 했으나 아내는 금방 들어온 듯 했다. 역시나 알코올 냄새가 거실에 가득했다. 딸은 아직 들어오지 않았는지 방문이 열려진 채로 불이 꺼져 있었다. 그는 안방으로 기어갔다. 아내는 옷을 모두 벗고 침대 위에 누워 자고 있었다. 자다가 가끔 휘유, 하고 긴 숨을 몰아쉬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역한 알코올 냄새가 났다. 그는 아내의 벗은 몸을 천천히 음미하듯 바라보았다. 아직은 봉긋한 유방이며 살이 오른 허리가 창문으로 들어온 빛에 온전히 드러났다. 그는 무릎을 꿇고 아내의 다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음. 그의 손이 무릎을 지나 허벅지를 거쳐 음부에 와 닿았을 때 그는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토해냈다. 참으로 오랜만에 아내의 몸을 만진다 생각했다. 아내는 다시 한 번 휘유, 긴 숨을 토해 내며 그 쪽으로 돌아누웠다. 그의 손은 배꼽을 지나 유방으로 올라갔다. 물컹한 유방이 손 가득히 들어왔다. 음. 그는 아내의 유방에 얼굴을 묻었다. 알코올 냄새와 향긋한 냄새가 났다. 그는 갑자기 울고 싶었으나 참고 가만히 있었다. 그는 옷을 벗기 시작했다. 몸이 불어났기에 옷 벗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땀을 흘리며 겨우 옷을 벗었다. 아내는 다시 반대편으로 돌아누웠다. 그는 아내 곁에 누웠다. 참으로 오랜만에 아내 옆에 누워 보는 것이었다. 그는 아내의 머리를 들어 자신의 팔을 밑으로 넣었다. 그리고 아내의 몸을 돌려 자신을 향하도록 했다. 아내를 꼭 껴안았다. 머리에서 향긋한 샴푸 냄새가 났다.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아내도 잠결에 그를 꼭 안았다. 음. 그는 신음을 토해냈다. 그는 아내의 다리를 벌렸다. 그리곤 자신의 하체를 다리 사이로 넣었다. 그는 아내의 몸속으로 성기를 넣으려고 발버둥쳤다. 하지만 헛수고였다. 그의 성기는 발기되지 않았다. 휘유. 긴 김숨을 토해내던 아내는 갑자기 눈을 떴다. 그는 가만히 아내를 바라보았다. 아내는 눈을 크게 떴다. “악.” 아내는 비명을 질렀다. 나야. 나. 그는 말을 했지만 밖으로 나온 목소리는 우우, 하는 소리였다. “누, 누구야.” 아내는 이불을 껴안고 침대 머리맡으로 가 오들오들 떨었다. 그는 몇 번이나 당신 남편이라고 말을 했지만 우우, 우우우, 하는 소리만 입으로 나왔다. “악.” 아내는 여전히 그를 보며 비명을 질렀다. 그는 손을 저으며 안심시키려고 했지만 아내는 여전히 떨었다. “다, 당신?” 마침내 아내는 그를 알아보았다. 그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끄덕거렸다. “당신. 방 밖으로 나오지 말랬잖아. 나가! 나가란 말이야.” 아내는 베개를 그에게 던졌다. 그는 할 수 없이 옷을 집고 엉금엉금 기어 방을 나왔다. 그는 서재로 들어가 누웠다. 슬펐다. 그는 팬티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발기 되지 않은 성기는 오므라져 있었다. 그는 그림을 보았다. 그러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손을 움직였다. 성기가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손을 움직였다. 성기가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음. 그는 신음을 토해내며 계속 자위를 했다. 8. 아내는 집에 있을 때도 그에게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아내는 딸하고만 얘기를 나누었고 음식도 둘이서만 먹었다. 또한 샤워를 하고 난 뒤에는 마치 집에 아무도 없는 양 벌거벗고 다니기도 했다. 딸도 마찬가지였다. 아내가 출근해서 늦게 퇴근하거나 외박을 할 때면 마치 집에 혼자 있는 양 샤워를 하곤 발가벗은 채로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춤을 추기도 하고 남자친구랑 오랫동안 통화를 하며 야한 농담을 하기도 했다. 딸은 주로 새벽까지 컴퓨터를 했고 오전에는 잠을 잤다. 오후에는 외출을 했다. 치마의 길이는 점점 짧아졌고 지나간 자리에는 진한 향수 냄새가 느껴졌다. 아내가 집에 있을 때 그는 곤혹스러웠다. 아내 혹은 딸이 집에 있을 때면 그는 죽은 듯이 방안에서 요의도 참고 지내야 했다. 또한 식사를 하기 위해선 아내와 딸이 잠들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어쩌다 그는 요의를 참지 못 해 살그머니 문을 열고 나왔는데 그때 아내와 딸은 전혀 눈치 채지 못 했다. 그가 문을 열고 엉금엉금 기어 거실을 가로 질러 화장실에 갈 때도 두 모녀는 그의 기척을 느끼지 못 하고 낄낄거리며 수다를 떨었다. 그는 몇 번 그렇게 되자 과감하게 아내 혹은 딸이 있을 때도 밖으로 나왔다. 역시나 그들은 그를 전혀 눈치 채지 못 했다. 그가 거실에 있는데도 아내와 딸은 혼자 있을 때처럼 각자 남자 친구에게 전화를 오랫동안 했다. “잠깐만 참으라고. 오늘 밤에 죽여줄 테니까.” 아내는 깔깔거렸다. 아내와 딸이 없을 때 그는 가만히 기어 나와 그들이 먹다 남긴 음식을 먹었다. 아내가 그를 위해 음식을 따로 준비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어떨 땐 며칠이 지난 음식을 먹을 때도 있었고 쓰레기통을 뒤져 먹기도 했다. 그나마 그렇게라도 먹을 수 있을 때가 좋았다. 아내가 며칠씩 안 들어올 때는, 딸은 아예 집에서 음식을 해 먹지 않았기에, 그 또한 며칠씩 굶어야 했다. 9. 며칠째 아내와 딸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굶었다. 그러다 참지 못하고 냉장고에서 반찬을 만들기 위해 사놓은 야채실의 호박이나 파, 심지어 국수를 생으로 먹었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금방 동이 났다. 그는 굶었다. 되도록 밖으로 나오지 않고 이불 속에서만 지냈다. 전화라도 왔으면. 그는 외로웠다. 처음에 몇 번 그를 찾던 회사 동료나 친구들의 연락이 끊어진 지는 오래 되었다. 그는 무인도에 갇힌 느낌이 들었다. 누구라도 찾아왔으면. 그는 이불 속에서 중얼거렸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딩~동!” 며칠이 지났는지 그는 혼미한 정신으로 누워 있는데 인터폰이 울렸다. 그는 꿈인가 했다. “딩~동!” 또다시 인터폰이 울렸다. 그는 반가운 마음에 눈물을 흘릴 뻔 했다. 그는 엉금엉금 기어 나왔다. 액정화면엔 30대로 보이는 여자 둘이 가방을 들고 서 있었다. 그는 반가운 마음에 인터폰을 들었다. “예. 초대장을 드리려 왔습니다.” “우우.” 그는 무슨 초대장이냐고 물었다. “초대장을 드리려고 하는데 문 좀 열어주세요. 하나님 말씀을 전하려 왔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들어야 천국에 갑니다. 이번 주 일요일에 초대하려고 합니다.” 그는 어쨌든 초대한다는 말에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는 엉금엉금 기어가 겨우 상체를 들고 문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 악!” 그들은 문 안으로 발을 들여놓다 그를 보고서 비명을 질렀다. “우우.우우우.” 그는 그들이 안으로 들어오도록 옆으로 비켜섰다. “어머!” “으악!” 그들은 비명을 지르며 문을 쾅 닫았고 뒤이어 급하게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슬픔 마음에 문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졌다. 그는 문을 잠그지 않았다. 그리고 뒤를 돌아서서 서재로 들어갔다.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매일 자위하는 남자를 바라보며 지냈다. 며칠 후 아내가 다녀갔지만 음식을 먹지 않고 옷가지만 챙겨갔기에 그는 먹을 것이 없었다. 딸은 새벽녘에 들어와 저녁까지 자다가 해가 지고 난 뒤 또 집을 나가서는 깜깜 무소식이었다. 며칠 뒤 그는 혼미해 가는 정신으로 자위하는 남자를 보고 있는데 딩동, 하며 인터폰 소리가 울렸다. 누굴까. 그는 하나님을 믿으라는 두 여인을 떠올리며 그대로 누워 있었다. 곧이어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어, 문이 열려 있네.”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계세요? 아무도 안 계시나?” 여전히 여자의 목소리. 그는 몇 번이나 몸이 뒤척인 후에야 겨우 상체를 일으켰다. 거실에서는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데 남의 집에 와서 무얼 하는가. 그는 두 팔을 앞으로 짚었다.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밖에서는 여전히 그릇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그는 휘청거리는 팔에 힘을 주며 엉금엉금 기어 거실로 나왔다. 회색빛 제복을 입은 여자가 정수기 뚜껑을 열고 행주로 닦고 있었다. “우우우. 우우.” 그는 여자가 놀랄까봐 작은 소리로 말했다. 여자는 손길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악!” 여자는 비명을 질렀다. “우우, 우우우우.” 그는 여자에게 고개를 가로 지르며 안심하라고 했다. 이 집 주인이라고 했다. “가까이 오지 마!” 여자는 싱크대에서 재빨리 칼을 집어 들었다. 여자는 검정색 가방을 한 손에 들고 칼을 휘두르며 현관 쪽으로 옆걸음으로 나아갔다. “우우우.” 그는 절망스럽게 신음했다. 현관에 다가간 여자는 문을 열자마자 칼을 버리고 재빨리 밖으로 나갔다. “우우.” 그는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울부짖었다. 그는 서재로 들어왔다.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가려던 그는 문득 그림을 바라보았다. 그림 속의 사내는 여전히 자위를 하다 그를 뒤돌아보았다. 음. 그는 그림 쪽으로 팔을 휘청거리며 다가갔다. 그림 앞에 멈춰 선 그는 손으로 사내를 쓰다듬었다. 그렇게 한동안 사내를 바라보던 그는 옷을 벗기 시작했다. 옷이 몸에 꽉 끼였기 때문에 윗옷이 팔에서 잘 빠지지 않았다. 그는 입으로 소매 끝을 물고 한 손으로 옷을 쥐었다. 우우. 그는 있는 힘껏 옷을 당겼다. 부북. 옷이 찢어지며 팔이 빠져 나왔다. 바지는 다행히 누워서 바지 끝을 손에 쥐고 힘껏 당기자 다리를 잘 빠져 나왔다. 팬티를 벗자 그의 알몸이 드러났다. 음. 그는 자신의 몸을 살펴보다 두 손으로 벽을 짚었다. 팔과 다리에 힘을 주자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일어서고 나자 오랫동안 직립보행을 하지 않은 다리도 덜덜 떨렸다. 그는 벽을 짚으며 그림에 다가갔다. 그림을 마주 보고 섰다. 잠시 그림 속의 사내를 바라보던 그는 그림 속으로 다리를 쑥 집어넣었다. 다리는 마치 물 속에 들어가는 것처럼 들어갔다. 다른 다리도 그림 속에 집어넣었다. 그리곤 물속에 잠기 듯 상체를 그림 속에 밀어 넣었다. 그림 속으로 들어가며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10. 며칠 후 딸이 새벽에 들어와 점심 무렵에 나갔고 그 다음 날 아침 아내가 집에 왔다. 아내는 거실에 들어오자마자 휘유, 긴 숨을 내쉬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담배를 꺼내 달게 한 대를 피웠다. 담배를 빈 병 속에 집어넣은 아내는 주위를 둘러 보다 그의 방에 시선이 머물렀다. “방문을 열어 놓았나.” 아내는 그의 방으로 와서 방안을 휘 둘러보았다. “망측해라. 이 그림이 아직도 여기 있네.” 아내는 잠시 징그럽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다 그림을 질질 끌고 거실로 나왔다. “웬 그림이 이렇게 무겁담.” 아내는 그림을 거실 바닥에 눕혀 놓고 신발장 서랍에서 망치를 들고 왔다. 망측해. 아내는 그림을 망치로 내리쳤다. 순간 사내의 몸이 쨍, 하며 여러 갈래로 금이 갔다. 아내는 한 번 더 망치를 내리치려고 손을 들었다가 잠시 멈추었다. 무슨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사람의 비명 소리 같기도 했기에 아내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아내는 다시 망치를 내리쳤다. 쨍. 사내의 몸이 여러 갈래로 깨졌다. 금이 간 부분엔 아내의 얼굴이 일그러져 비쳤다. 아내는 다용도실에서 빈 종이상자와 빗자루, 쓰레받기를 들고 왔다. 산산이 깨진 사내를 종이상자에 담았다. 멀리까지 튄 작은 조각까지 쓰레받기에 빗자루로 쓸어 담은 후 종이상자에 부었다. 아내는 종이상자를 현관밖에 내놓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옷을 갈아 입은 아내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온 아내는 종이상자를 쓰레기장에 버렸다. *** 문학웹진 <문학마실> 편집인 한국작가회의 회원 소설집 <소도(蘇塗)> <아버지의 알리바이>  
151 공락중생 共樂衆生 /박희용 file
편집자
3260 2011-09-30
11.10월 17호 수필 공락중생 共樂衆生 강은 늘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른다는, 장애물이 앞을 가로막으면 차곡차곡 쌓여 올랐다가 마침내 부드럽게 넘어 다시 흘러간다는 매우 평범한 진리의 표상인 강. 산과 들을 떠나온 온갖 풀씨들을 품고 흐르다가 적당한 곳에 내려놓아 싹 트게 하고 꽃 피게 하고, 인간 생활이 쓰다 버린 온갖 쓰레기들을 싣고 흘러 삭혀주는 강을 바라 볼 적마다 한 작은 인간의 마음은 옷깃을 여민다. 퇴근길 달리기, 강을 안고 달려가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작년 봄 이곳 평은 초등학교로 전근 와서 학구 안을 흐르는 평은강 따라 달리기를 시작한 지 두 해째로 접어들었다. 세상엔 자기 건강을 위해서 하는 여러 가지 운동이 있지만 달리기, 흙빛 강둑길을 밟으며 달리다가 걷다하는 이 운동만큼은 내게 가장 알맞은 운동이다. 선생인 내가 건강해야 우리 반 아이들도 몸과 마음이 건강할 것이다. 봄이 한창 무르익으며 여름을 준비하는 맑은 감성의 계절 속을 달린다. 산벚나무 숲을 지나 세 마리 경비견이 컹 컹 컹 짖어대는 버섯재배 농장을 지나 한참을 달리며 다리를 건넌다. 발이 받는 촉감은 흙과 시멘트가 다르다. 다리를 건너며 힐끗 보니 다리 아래엔 너덧 명의 사람들이 고기를 잡고 있다. 아니, 자세히 보니 배터리로 지져대고 있다. 고기 다 죽겠구나 배터리 전기에 감전된 고기는 살아도 산란과 사정을 못한다는데 말이다.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저걸 어떻게 한다. 내가 나서서 말리면 괜히 내가 오히려 곤경에 처할 거고, 쉬운 방법은 경찰에 신고하는 수밖엔 없는데 말이다. 신고하자니 핸드폰은 저 멀리 차 안에 놔두었고, 만약 신고하면 신고자가 이 곳 초등학교 교사라고 소문나 학교와 내가 순박한 농촌 지역사회의 지탄과 눈총으로 곤경에 처해질 거고 말이다.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배터리 전기로 죽어나고 불구가 되는 평은강 물고기들을 불쌍히 여기고 신고할 생각까지 하는 여기까지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경고한다든지 신고한다든지 하는 행동화의 단계는 나의 영역 밖인 것이다. 다리를 건너 저편 강둑 왼쪽으로 구비를 돌 때까지 안타깝고 찝찝한 마음이다. 천렵꾼들을 힐끗힐끗 보며 조금 달리다니 누가 “선생님!”하고 날 부른다. 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가자골 이 마을에 사는 태용이가 아닌가. 할머니와 함께 오고 있다. 연거푸 해서 “선생님! 선생님!” 큰 소리로 부른다. 그 때, 문득 천렵꾼들이 “선생님, 선생님이란다.”하는 소리가 들린다. 태용이 할머니께 인사를 하고 또 한참을 달린다. 가자골의 끄트머리이다. 평은강이 크게 휘어 금강리 쪽으로 흐르는 물회돌이 백사장을 보며 걷는다. 가자골 끝엔 농가 한 채가 있고 새끼 두 마리를 거느린 어미 개 발바리 한 마리와 개집이 있다. 그들은 날만 보면 열심히 짖는다. 새끼들은 부리나케 농가 쪽으로 도주하면서 연신 뒤돌아보며 짖어댄다. 어미는 자지러지게 짖으며 새끼들의 피난길을 재촉한다. 내가 이 곳 방향으로 한 달에 두 번 정도씩 달리기 코스를 한 지도 벌써 두 해 짼데도 아직 내가 매우 낯서나 보다. 인간과 짐승의 관계라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이지만 도둑도 아닌데 매번 컹 컹 컹 개 짖음을 당하니 기분이 좋은 건 아니다. 저 위 버섯농장 개 세 마리도 얼마나 짖어대고 사나운지 내가 저들의 영역을 벗어날 때까지 일 미터 뒤를 쫒아오며 정말 두렵게 짖어댄다. 다행히 요즈음은 낯이 좀 익었는지 짖는 소리 데시벨이 좀 낮아지고 꼬리도 탈래탈래 흔들어댄다. 강둑길을 돌면 야트막한 산자락을 끼고 도는 산길이다. 완보를 하며 길섶을 보니 봄 풀꽃들이 한창이다. 자그마한 민들레들이 길섶을 따라 십 여 미터 줄지어 피어있다. 민들레, 한없는 정감을 자아내는 이름이다. 이 땅엔 크게 두 종류의 민들레가 있다. 들 민들레와 인간 민들레. 인간 민들레, 다방이나 술집에서 만나는 2-30대 여인들에게 성씨를 물으면 대게 민씨예요 한다. 어디 민씨? 관향은? 하고 물으면 그녀는 씁쓰레한 미소만 지을 뿐 대답이 없다. 민들레, 이른 봄부터 싹을 틔운다. 한창 봄에는 힘센 자들이 많이 나타나기 때문에 남들이 아직 겨울의 끝, 따스한 봄 이불 속에 있을 때 미리 싹을 틔우고 자라고 꽃을 피워야 한다. 이 땅엔 이른 봄부터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는 들 민들레도 많고, 여윈 몸뚱이 하나로 삶을 헤쳐 나가야 하는 인간 민들레도 많이 있다. 민들레를 보면 진한 정감을 자아낸다고 했지만, 사실 나는 며칠 전 많은 민들레를 무참히 학살했다. 이유는 딱 하나, 성인병 예방에 좋다고 해서. 지난 토요일 오후에 학교 근처에서 민들레를 두 보따리나 캐서 쪄 말리고 있는 중이다. 얼마나 보신이 될지는 먹어봐야 알 거 지만, 말로는 한없는 정감을 자아내는 민들레 민들레 하면서 짐짓 자연 애호론자 연 하면서 내 이익을 위하여 하여튼 민들레 학살을 자행했다 나는. 다음날 출근해서 민들레 캐낸 자리를 보려니 눈이 자꾸 사시가 된다. 다시 다리 근처로 뛰어오다 보니 허연 농촌트럭 두 대가 저 건너 지방도로를 급히 달려간다. 왕유리나 금계리 방향으로 간다. 그런데, 조금 전에 있던 천렵꾼들이 하나도 없다. 그새 어디로 갔나보다. 잘 된 일이다. 그들도 알맞게 잡아갔을 거고, 감전사와 감전 성기능 장애를 면한 물고기들은 천만다행이다. 태용이가 크게 부르던 “선생님!” 소리는 분명 아이의 소리이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는 분명 평은강 물고기들의 비명 소리일 거다. 하지만, 좀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야 뭐 마음속으로만 ‘신고 해버려?’ 하고 생각했지, 행동으로 실천하진 않았지만 말이다. 오후 늦게까지 농사 준비를 하다가 매운탕 생각이 나서 천렵 나선 그들, 한 솥 가득 끓인 매운탕 안주에 막걸리 소주잔 나누며 오늘 저녁 한 때 즐거울 텐데 말이다. 부처님은 ‘공업중생’을 말한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생각한다면 ‘공락중생’이 아닐까. 왜냐면 ‘업(業)이란 말은 좀 비극적인 이미지를 내포하는 말이지만,’락(樂)이란 말은 살아있음을 긍정적으로 보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 지구상에서 생명을 부지하는 모든 것들 삼라만상, 식물과 동물 모두가 공락중생 할 순 없을까. 식물이 뱉는 산소로 동물이 호흡하고 동물이 뱉는 이산화탄소로 식물이 녹말을 만들고 인간이 그것을 양식으로 한다는 지극히 단순하고 평범한 이 한 가지 기본 원칙이 반듯하게 설 때가 언제일까. 동물의 한 종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인간, 그들이 보호해야 할 대상이 자연이 아니라 이미 자연으로부터 보호받고 있음을 간파할 때는 언제일까. 교실에서 선생님이 ‘자연보호를 해야 합니다’라고 가르치기 보다는, ‘인간은 자연입니다’를 가르칠 때는 언제일까. 이십 리 남짓 평은강 내 영역을 한 바퀴 돌아 달리고 출발지 건너편에서 강을 건넌다. 종아리를 간질이는 강물들의 맑고 차가운 속삭임이 싱그럽다, 강가에서 얼굴을 씻고 발을 씻다니 벌 한 마리가 지푸라기를 부여잡고 떠내려간다. 사람하고 똑 같다 물에 빠지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 살며시 건져 올려 마른 풀숲에 놓는다. 벌은 자꾸 풀숲 짙은 그늘 속으로 숨는다. 인간인 내가 무서워서인지 아니면 아직 비몽사몽 정신을 못 차렸는지, 하지만, 곧 정신을 차려 천적에게 잡아먹히지 말고 무사히 귀가 하여라 벌 한 마리. 박희용 p4092@chollian.net 시집<霜寒圖><양백집>  
150 청소 외1편/윤임수 file
편집자
4000 2011-09-30
11.10월 17호 시 청소 아는 아저씨가 청소 대행 가게를 차렸다기에 번창을 기원하며 찾아갔더니 간판에 푸른 소, 그러니까 청소 한 마리가 그려져 있다. 씩 웃으면서 들어갔더니 소처럼 듬직하게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한다. 열심히 일해서 푸른 내일을 가꾸겠다고 한다. 그 모습이 하도 고와 막걸리 두 잔 들이켜고 잘 될 것이라며 밝게 웃어 주었다. 주인도 덩달아 환하게 웃었다. 돌아오는 길에 돌아보니 간판의 푸른 소도 활짝 웃고 있었다. 경주 읍천리 주상절리 저렇게 고운 부챗살 웃음 나는 지을 수 없네 몇천 년 아니 몇억 년을 더 산다 해도 모든 것 편하게 풀어놓는 저 단단한 웃음 나는 지을 수 없네 거센 파도 앞에 하염없이 서 있어 본 적 없는 나는, 시린 바람 앞에 온몸 들어내 본 적 없는 나는, * 윤 임 수 - 충남 부여 출생 - 1998년 실천문학 신인상 당선 - 시집 『상처의 집』(실천문학사. 2005) - 한국작가회의 회원 - 한국철도공사 홍보실 근무 - 대전시 중구 문화동 한밭우성아파트 111동 905호 - 010-2044-7699 - yunis007@hanmail.net  
149 새로운 학설 외1편/ 김재순 file
편집자
3649 2011-09-30
11.10월 17호 시 새로운 학설 공무도하가는 예언의 노래라네 오늘 그 예언의 성취를 보네 웃옷을 풀어헤친 더벅머리 중년 사내 그라목손 병을 들고 비틀비틀 강가로 가고 발끝에 꿰었던 고무신을 팽개치고 가지마라, 그러지 말거라 꼬부랑꼬부랑 쫒아가다 엎어지는 그의 어미 모래밭이 어스름에 잠기는 낙동강 가에서 공무도하가를 성취시키는 저 추레한 사내는 산 너머 마을에 서마지기 다랑논 일구고 돌담위로 벙글벙글 해바라기 올리던 사람 어린것들 재롱에 너털웃음 웃던 사람 그러나 강물은 역류했네, 조개더미 싣고 소용돌이치며 밀려들어 마을은 패총이 되고 그는 이제, 목수였던 그 사람처럼 예언을 성취시키네 낡은 운동화 가지런히 물가에 벗어놓고 공무도하가를 다 이루었네 나를 울리는 사람1 계림16통 통장님은 나를 울려요 팔할의 주민이 사유재산과 노동력이 빙점 그 빙점이 무덤처럼 이룬 16통, 통장님은 가로의 나무들을 베고 다듬고 꽃가꾸는 인부 중학교 문 앞에는 가셨을라나 글쎄요. 그러나 통장님은 나를 울리는 능력이 탁월해요 중앙선을 뛰어넘어 삿대질하며 담당직원의 멱살을 잡으려다 마음을 쓰다듬어 석문처럼 닫힌 그 마음을 열어젖히는 통장님 마음으로 살아라, 그게 사람 사는 이치다 그의 그 말은 내 마음의 돌덩이도 깨뜨려 맑은 눈물 퐁퐁 솟게 합니다. 당신이 내게 사랑한다고 취한 듯 속삭여도, 골백번 속삭여도 내 머리카락 한 올이 움직일까만,  
148 호뚜기 사랑 외1편/최순섭 file
편집자
6228 2011-09-30
11.10월 17호 시 호뚜기 사랑 최 순 섭 봄물이 오르면 이때다 싶어 수양버들 푸른 등껍데기에 도레미 구멍을 파고 세상을 향해 힘껏 불어봅니다. 호~뚜 호~뚜 함박꽃 같은 그 애와 마주보고 불면 웃음소리 흘러나오고 혼자 시냇가에 앉아서 불면 슬픈 노래가 나온다는 걸 사춘기 분홍 얼굴에서 보았습니다. 구불텅한 흙길 따라 아버지가 비틀거리며 돌아오는 저물녘 밭둑에는 어깨 축 늘어진 수심 깊은 수양버들이 서있습니다. 이때다 싶어 속이 빈 호뚜기를 꺼내 눈 빨갛도록 힘껏 불어 봅니다. 호~뚜 호~뚜 아, 수양버들 아버지가 춤추는 걸 보았습니다. 슈퍼 선착장 한여름 밤 아파트 입구 슈퍼 앞 노을 주점을 지나 고단한 항해를 끝내고 돌아온 배들이 후미진 벤치에, 더러는 흙바닥에 철퍼덕 닻을 내립니다. 막걸리 부어놓고 새롭게 떠나는 마지막 항해 이따금 타고 내리는 낯익은 승객들도 파도에 떠밀려옵니다. 누구나 방향키를 잡으면 선장이 되듯이 목적지는 그때마다 다르지요, 세계지도 펼쳐 들고 숨 쉬는 고래들이 수면 위로 나올 때쯤 목울대 카랑카랑 아파트가 들썩입니다. 우리가 가고 싶은 곳은 은하 건너 아늑한 그 분의 집인데 술로 떠가는 배는 언제나 항로를 벗어나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흔들립니다. 최순섭 : 충남대전 출생. 1978년<시밭>동인으로 작품활동시작. 2007년 <작가연대> 등단. 고양작가회 이사. 열린시조학회. 창작21작가회 회원.  
147 계정溪亭/박찬선 file
편집자
3891 2011-09-30
11.10월 17호 시 계정溪亭  내가 사랑하는 집이 있습니다. 기왓장이 번들거리고  추녀가 하늘을 향해 치솟은  대궐 같은 큰 집이 아닙니다. 방 한 칸에 마루 한 칸으로 된  아주 작은   띠집은 좁기가 나룻배와 같은* 지붕은 톡톡하게 짚으로 덮고  마루 옆에는 판자문이 나란히 달렸는데  삐걱 문을 열면  종가가 올려다 보입니다. 한 사람이 들고나기에 알맞은 키가 닿을 듯한 예쁘장한 낮은 문이  우산천을 향해 있습니다.  온통 물소리가 넘치고  솔 소리도 덩달아 들어오고  이따금 달님이 찾아와 놀다 갑니다.  우산천이 물길을 따라 굽이돌아 흐르듯 첩첩 들어온 산길을 보며  앞길을 열어갑니다. 사람이 들면  큰 집이 되는  홀로 없는 듯 자유로워지는 큰 뜻이 사는 집  상주시 외서면 우산리에는 내가 무척 사랑하는 집이 있습니다. *우복의 시 계정에 나오는 시구 계곡물은 맑기가 거울 같은데 띠집은 좁기가 나룻배와 흡사하다 溪水淸如鏡 茅堂狹似船            시인의 말    지난 여름은 지리한 장마로 한 철을 다 보냈습니다.장마 뒤에 찾아온 따가운 햇살이 가을곡식과 과일을 탐스럽게 영글게 합니다.코스모스길이 가을의 정취를 북돋우고 벼이삭이 노릿노릿 물드는 날 우복종가를 찾았습니다.T자형의 특이한 대산루의 강학,휴양,장서,독서 등 복합용도로 쓰임에도 호기심이 일지만 그 보다도 계정溪亭이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계정은 우복 정경세 선생께서 1603년(41세)에 지은 정자로 청간정聽澗亭이라 부르기도 합니다.방1칸,마루 1칸의 최소규모에 초가지붕을 한 3량가의 소박한 건물입니다.마루 서쪽 벽에 초가에서 보기 드문 고식의 영쌍창이 나 있습니다.삐걱-소리가 날듯한 판자문을 열면 언덕 위의 종가가 보입니다.  아파트도 단독주택도 큰 쪽을 선호하는 요즘 세태와는 거리가 먼 아주 작은 집.산골물(澗)이 흐르는 시내(溪)가에 자리 잡은 자연친화의 건물.맑은 물을 보고 물소리를 들으며 충양充養(독서,사색,詩作,학문연찬)에 전념했을 공간.그것은 집중으로 하나됨이요 물아일체의 경지로 아름다운 우산의 자연에 심취한 우산동천愚山洞天의 세계를 열었습니다.우산의 자연을 시로 읊은 우곡잡영이십절愚谷雜詠二十絶 중에 계정溪亭이 떠오릅니다.  깊은 골짜기 물바람소리 홀로 문을 닫으니萬壑風泉獨掩扃 해 긴 날 계정에 이르는 손이 없구나日長無客到溪亭 느지막에 고달파서 책 덮고 나서니晩來意倦抛書出 눈 시리도록 싱그러운 녹음 뜰에 가득 차누나.潑眼新陰綠滿庭     
146 이 편한 세상 -1/이예훈 file
편집자
3642 2011-08-31
11.09월 16호 소설 이 편한 세상 -1 이 예 훈 하늘은 맑고 공기는 신선하다. 명은 가만히 입속으로 말을 굴려본다.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이 맨살을 스칠 적마다 아련한 매연 냄새와 동글동글한 질감으로 살에 와 닿는 공기의 무게가 싫지 않다. 9월 중순이다. 이제 질긴 가을장마가 물러갈 때도 되었지. 팔월 초에 시작한 늦장마는 서너 번의 태풍과 해일로 온 들에서 익어가는 과일이며 곡식들을 진구렁에 쓸어 넣고, 해변의 건축물과 고기 배들을 마구 부셔댔다. 설익은 과일들이 즐비하게 바닥에 떨어진 모습이며, 해변의 건축물과 고깃배들이 장난감처럼 부서져 나가는 모습이 티브이 뉴스시간을 채우는 동안, 도시의 시민들은 무슨 천기라도 누설하듯 음울하게 이즈음의 이상기후에 대해 수군거리곤 했다. 근래 들어 해마다 날씨는 더 춥거나 더웠고 눈이 오면 폭설이요, 비가 오면 폭우인데, 이것은 여간 심상찮은 징조가 아니라는 것이다. 행인들의 옷차림은 아직 여름이다. 도로변의 버스승강장 안내 모니터를 중심으로 꽤 많은 사람들이 서성서성 버스를 기다린다. 모니터에서는 2-3초 정도의 일정한 간격으로 깜빡깜빡 새로운 정보를 전송한다. 무표정하게 서있던 사람들은 가끔씩 모니터로 시선을 옮겨 자신이 탈 버스가 올 시간을 확인한다. 명은 인도 안쪽에 비치한 장의자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며 망연히 거리를 바라본다. 마치 시선이 마주치는 걸 겁내기라도 하듯 애써 서로의 눈길을 피해 허공을 응시하는 사람들 속에서, 명은 마주보고 서있는 젊은 남녀를 찾아낸다. 둘은 무엇인가 쉼 없이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눈다. 자신보다 머리하나쯤은 커 보이는 사내애를 올려다보는 소녀의 눈길이 애틋한 정감으로 반짝인다. 이만하면 됐지 않느냐고, 명은 자신에게 속삭인다. 이제 여름은 가고 있고 공기는 가벼운 새털처럼 보송보송 하지 않은가. 기형도의 하늘은 딱딱한 널빤지였고 공기는 더러운 담벼락 같았다. 그의 시는 그 딱딱한 공기 속에서의 헐떡임이었던 것일까. 명은 어제 산 시집을 떠올린다. 시집을 사들고 첫 시를 읽은 다음 약력 란에서 그의 탄생년도와 사망년도 사이를 손가락을 짚으며 계산했었다. 그에 따르면 그는 스물아홉 해를 살았다. 그에게 공기는 너무 딱딱하고 무거웠다. 명은 쉰다섯이다. 아직 살아서 바람이 선들선들 가볍다고 생각한다. 명은 자기도 모르게 가슴위에 손을 얻는다. 마치 심장이 뛰는 소리를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지금 이 시간에도 누군가는 이 공기가 버거워 헐떡이며 옥상 난간으로 올라서거나 아파트 베란다의 창틀을 넘을 것이다. 그는 수능시험공부를 하다 갑자기 투명비닐봉지가 척 얼굴에 달라붙는 것 같다고 하소연하던 고등학생일 수도, 한 평짜리 고시원에서 삼년 째 공무원시험공부를 하던 취업준비생일 수도 있다. 아니 오랜 기간 친구들로부터 집단 따돌림과 폭력에 시달리던 중학생이거나 백점을 받지 못한 시험지에 부모의 도장을 받아야 하는 초등학생이었다고 해도 놀랄 일이 아니다. 공기는 언제든 누구에게든 유리처럼 단단해 질 수도 실리콘처럼 말랑 거리며 숨구멍에 달라붙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명이 숨 쉬는 공기는 맑고 부드럽다. 그녀는 오늘 오랜만의 외출을 한 것이다. 얼마 전 함께 해외여행을 떠났던 이들과의 만남이었다. 사람들은 때로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 속에 있을 때 위안을 얻는다. 명에게 그들과의 첫 만남은 그런 것이었다. 명은 조금 전에 건너온 행단보도 너머에 우뚝 솟아있는 리베라 호텔을 올려다본다. 리베라 호텔 뷔페식당에서 만난 토마스는 폐암 수술을 하고 두 번째 항암 주사를 맞았다고 했다. 그는 몸피가 약간 준 것 말고는 비교적 건강해보였다. 그 자리는 토마스가 호주여행을 함께 했던 이들을 초대해, 자신이 병원에 있는 동안 관심을 보여줬던 것에 대한 보답으로 식사 대접을 하는 자리였다. 그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고 그간의 안부를 묻고 하는 사이, 그 자리가 토마스의 암수술과 연결된 모임이라는 걸 잊은 듯 여행지의 가볍고 자유로웠던 분위기를 홀연 재연해 내곤 했다. 하지만 곧 이성을 회복해 토마스의 무사귀환을 축하하고 빠른 쾌유를 바란다는 인사가 오고갔지만 식사분위기는 자주 토마스의 암수술에 대한 배려를 잊은 채 화들짝 부풀어 오르곤 했다. 토마스의 암은 그들에게 식사를 해칠 만큼 무겁지 않았고, 요리는 나무랄 데 없었던 것이다.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토마스는 혼잣말처럼 웅얼웅얼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병이 걸리기 전에는 얼마든지 담담하게 죽음을 맞을 수 있을 거라고 자신했어요. 살만큼 살았잖아요. 아무 미련이 없을 거라 생각했지. 무슨 미련이 있겠나, 나 같은 사람이. 그런데 막상 암이란 말을 들으니 그게 아닙디다. 겁이 났어요. 죽는 다는 건 모든 게 끝이라는 거거든. 그게 막상 코앞에 닥치니까 벼락같이 가슴을 칩디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숨을 쉬고, 밥을 먹고, 사람을 만나고, 사랑을 하고, 자식을 낳아 기르고....... 그렇게 살면 되는 건데, 그리 살다 보면, 저 죽을 날은 저절로 알게 되는 건데....... 핏기 있을 땐 그게 참 하찮고 시시해 보이더란 말이오. 도대체 그 긴 세월을 뭐에 홀려 살았던 건지 모르겠소. 그 시절에 내가 아무도 없는 빈집에서 혼자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걸 어찌 생각이나 할 수 있었겠소.’ 낮은 톤으로 조용조용 풀어내는 토마스의 말이 천천히 공중에서 유영하고 있었다. 명은 마치 그의 말을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보는 듯 했고, 공기 중에 스며들어 선뜻선뜻 살갗을 스치는 것 같았다. 명은 안다. 죽음이 코앞에 다가왔을 때 그가 느꼈을 그 두려움. 그가 무섭다고 말하는 것. 그 참혹한 외로움을. 의사로부터 ‘당신은 암에 걸렸습니다’ 라고 말하는 걸 들어야 하는 자리. 그렇게 불쑥 실체를 드러낸 죽음과 마주한 순간에도 그는 혼자였을 것이다. 그는 오랫동안 혼자 살아왔다. 음악교사였던 젊은 시절에 미국으로 보냈다던 아내와 자식들은 끝내 그의 곁으로 돌아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분명하게 그 이유를 말하지는 않았지만 혼자살고 있다는 걸 그는 종종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얘기하곤 했었다. 유별나다 싶을 만큼 깔끔하고 단정해서 혼자 사는 노인이라는 선입견을 갖게 하는 인상은 아니지만, 불쑥불쑥 드러나는 결벽과 과장된 자기변호, 시시때때로 수업의 흐름을 끊는 반어적 질문과 자기주장. 같은 행동들이 혼자 살아온 이의 외돌아진 성정을 드러내곤 했다. 여행에서 돌아와 닷새쯤 지났을까, 그들은 메시 정으로부터 핸드폰 메시지 하나씩를 받았다. ‘토마스 선생님께서 어려운 수술을 받게 되었다고 하니, 위로와 격려 메시지 부탁드립니다.’ 그랬다. 한 학기 동안 열다섯 번쯤 만나 같은 강좌를 듣고, 6박 7일간의 해외여행을 하면서 그들은 일행 중 한명이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격려 메시지 하나쯤 날려줄 만큼의 인연을 쌓은 것이다. 메시 정의 문자를 받고 놀란 일행들이 급히 모여 앞뒤 정황을 듣고 상의를 했지만 서울에서 수술을 기다리고 있다는 그에게 ‘수술 잘 받고, 쾌차하시길 빕니다.’ 따위의 핸드폰 문자 하나쯤 날리는 것 말고는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 문자는 토마스의 조카가 보고 그에게 전해 줄 것이며, 보호자 이외의 누군가가 병문안을 간다고 해도 환자를 직접 볼 수는 없을 거라는 게 메시 정의 설명이었다. 일행은 그 자리에서 몇 만원씩 거출을 해 메시 정에게 맡기고 헤어졌었다. 그녀가 서울 가는 길에 잠깐 병원에 들러 토마스의 조카를 만나보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열흘쯤 지난 후 토마스의 조카라는 이로부터 수술은 무사히 끝났으며 아저씨도 순조롭게 회복중이라는 답신을 받았다. 여행을 떠날 때 토마스는 사흘간 입원해 건강검진을 받고 곧바로 합류했다고 말했지만 별로 피곤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었다. 일행은 모두 그저 일상적인 검진이려니 했기 때문에 별다른 염려를 하지 않았고, 여행을 다니는 동안 그의 건강검진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어버렸다. 어쩌면 토마스 자신조차 건강검진 따위는 있고 있었을지 모른다. 명은 겨울도 봄도 아니던 이월의 어느 날 아파트 베란다를 통해 보이는 C대학교의 평생교육원에서 수강생을 모집하기 위해 내건 플래카드를 보았다. C대학에서는 봄가을로 늘 하던 일이었을 텐데, 명의 눈에 그것이 구체적인 의미를 가지고 들어온 건 처음이었다. 명은 산책길에 무작정 평생교육원 행정실을 찾아갔다. 담당자가 내준 팸플릿에는 별의별 수강과목들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명은 그중에서 <외국여행을 위한 필수영어>라는 제목이 달려있는 과목을 신청했다. 아마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제대로 된 해외여행 한번 해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을 것이다. 30년이 넘는 세월을 은행의 민원실에서 보냈다. 하반신을 차단대 아래 숨긴 채 상체만 불쑥불쑥 앞으로 들이밀며 업무처리를 요구하는 사람들을 상대하면서 명은 흡- 하고 숨을 멈추게 되는 순간 숨을 고르듯 다짐하곤 했었다. 이곳을 떠나면 반드시 두발로 뚜벅뚜벅 걸어 세상 속으로 들어가리라. 아무도 나를 똑바로 내려다보며 무엇을 해내라고 요구하는 지 못하도록 꼿꼿이 서서 세상을 바라보고 가고 싶은 곳이라면 어디든 날아갈 것이다. 명이 아직 젊었고 그녀의 직장이 많은 이들의 선망이던 때, 그 직장은 그녀가 일과 가정을 모두 갖는 걸 허용하지 않았다. 결혼과 일, 둘 중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시점에서 그녀는 다른 이들의 선망의 대상인 직장을 버릴 용기가 없었다. 그녀가 그곳에서 벌어오는 돈에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얽힌 네 명의 밥과 미래가 매달려있었다. 당시 그녀를 둘러싼 공기는 가족에 대한 헌신을 그녀의 삶에 주어진 하나의 신성으로 부각시키고 있었다. 그녀는 그 신성한 의무에 충실했고 그 자부심이 그녀의 삶을 지탱했다. 하지만 그녀의 신성한 가치를 끝없이 부각시키고 있던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두 세상을 떠나고 동생들 또한 각자 독립해 그녀의 곁을 떠나고 났을 때, 그녀는 혼기를 한참 지난 중년 여자의 모습으로 덩그러니 혼자 남았다. 무엇보다 긴 세월 그녀에게 편안하고 익숙한 타성을 만들어 주었던 직장에서마저 퇴직을 하고나니 마치 낯선 혹성에 홀로 내던져진 것 같았다. 질긴 고삐처럼 그녀를 묶고 있던 직장과 가족들로부터 온전히 놓여나 혼자가 되었을 때 그녀는 자신이 알고 있는 세계는 은행의 민원실과 가족들이 함께 살던 집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자신이 마치 거대한 기계에서 빠져나온 낡은 부속품 조각 같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이 치밀하고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는 거대한 조직체의 일부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만 집중할 수 있을 때 명은 자신이 완벽한 존재라고 생각했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누구보다 깔끔하고 빈틈없이 처리할 줄 아는 유능한 사원이었다. 그것으로 그녀는 집에서도 사회에서도 당당하게 제몫을 다하는 존재로 인정받았다. 집에서는 그녀가 한 달 동안 직장에서 일한 대가로 받아오는 월급봉투가 그녀의 모든 것을 대변했다. 가족들은 명에게 그 외의 어떤 역할도 바라지 않았다. 그들은 명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사사로운 일들, 예컨대 아침에 몇 시에 눈을 뜨고, 잠자리에서 일어나 제일먼저 무엇을 해야 하는 지, 아침식사는 무엇을 먹고 출근할 때 옷은 어떤 걸 입을 지, 점심에는 무엇을 먹으며 저녁 때 퇴근을 하면 누구를 만나고 몇 시에 집에 와야 하는 지에 대해 알아야 하고 참견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말하자면 병약하고 무능한 아버지를 대신해 일용할 양식을 책임지고 있는 명에게 주어진 권리의 대가인 동시에 또한 배려이기도 했다. 그녀에 대한 지극한 애정이며 관심이라는 명분을 가지고 이루어지는 이러한 간섭들은 그녀만의 사적인 행동이나 사고방식을 아주 쉽게 무너뜨렸다. 그녀에게는 가족들의 평판으로부터 자유로운 친구도, 가족애라는 투철한 상식을 벗어난 어떠한 행동도 가능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항 속에서 태어나 그 속에서 살아가는 금붕어처럼 명은 아무런 거부감 없이 그 생활에 길들여졌다. 은행창구에 갇혀 일하는 동안 그녀가 무슨 꿈을 꾸었던 그녀는 어항 밖의 삶에 대해 어떤 경험도 지식도 없는 어항 속의 물고기일 뿐이었던 것이다. 명이 인터넷 주식거래를 시작한 것은 아마 그러한 정황들과 맞닿아 있을 것이다. 무엇으로 채워야 좋을지 모를 텅빈 시간들. 끝없이 밀려드는, 가닥이 잡히지 않는 잡념과 불안감 같은 것들로부터 그녀를 끄집어내, 확고하게 눈앞에 드러나는 수치로 결과를 보여주는 인터넷 주식거래는 그녀에게 꽤 만만해 보이는 일이었다. 더구나 자신이 은행원 출신이라는 자부심은 그녀에게 근거 없는 자신감까지 불어넣었다. 하지만 그것이 그녀에게 승리감까지 안겨주지는 않았다. 주식에 몰두해 있던 삼년 동안 그녀의 퇴직금통장은 거의 바닥이 드러났다. 명이 신청한 강좌에는 스무 명 정도의 수강생이 있었다. 수강생들은 예순 살은 족히 넘어 보이는 남자들과 중년의 주부들이 주류를 이루고 드문드문 앳된 얼굴이 눈에 띄었다. 사십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여자 강사는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수강생들이 불편해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많은 신경을 썼다. 각자 자기소개를 하는 첫날 초노의 남자 수강생들은 공무원이거나 학교 교사였던 자신의 전직을 필요이상으로 장황하게 이야기하곤 했는데, 그것은 그들이 현재의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생각되고, 또 그런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킬 뿐이었다. 명은 그들이 스스로를 완벽한 조직에서 떨어져 나온 낡은 부속품처럼 느끼고 있다는 걸 한눈에 알아보았다. 젊은 강사는 나이 많은 수강생들이 강조하는 그들의 전직에 대해 아낌없는 존경을 표하는 것으로 그들을 안심시켰다. 그리고 메시 정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영어회화를 하려면 영어식 이름을 하나씩 갖는 게 좋다고 말했다. 그리고 ‘사용하기 좋은 잉글리시 네임 목록’이라고 쓰인 파일을 스크린에 띄워 주었다. 수강생들은 평소 생각해 두었던 이름을 내놓거나 스크린에 띄워진 파일 목록 중에서 하나씩을 골라 가졌다. 그렇게 해서 ‘외국여행을 위한 필수영어반’ 수강생들은 한 학기동안 자기 자신에게 조차 낯선 영어이름으로 대화연습을 하거나 강사가 알려주는 간단한 문장을 반복해 연습하는 방식의 수업을 받았다. 그들은 서로의 본명조차 알려주거나 익힐 기회를 갖지 못했기 때문에 그 어색한 영어이름으로 서로를 기억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두어 시간씩 영어공부를 하는 강좌가 막바지에 이를 무렵, 누군가 농담처럼 현장학습을 떠나자는 말을 꺼냈을 때 뜻밖에도 꽤 많은 수강생들이 기다렸다는 듯 호응을 보냈다. 그 여행은 마치 한적한 공원벤치에서 만나 잠시 한담을 나누던 낯선 이웃들이 헤어지기 섭섭하니 소주나 한잔 하자고 포장마차로 발길을 돌리듯 그렇게 갑작스럽게 이루어졌다. 여행사 홈페이지에서 적당한 여행패키지 프로그램을 찾아내 소개를 하고 여행계획서를 만들어 여행에 필요한 제반 사항을 준비시키는 일은 메시 정과 토마스가 맡아서 처리했다. 토마스는 우리나라에 기러기아빠라는 신조어가 생기기도 전에 아내와 아이들을 미국에 보내고 혼자 살아오면서 방학 때면 빠짐없이 해외여행을 다녔다던 음악교사 출신의 노신사로 왜 이 강좌에 등록했는지 이해가 안될 만큼 영어를 잘했다. 여행에 동참한 수강생은 메시 정과 토마스를 포함한 여덟 명이었다. 그들은 여행사에서 팀 구성을 위해 합류시킨 일곱 명의 다른 멤버와 공항에서 만나 함께 출발했다. -저기 왼편으로 보이는 바다가 로즈베이입니다. 해변 쪽으로 요트들이 정박해 있는 모습이 보이죠? 반대편 언덕의 주택가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가장 땅값이 비싼 지역으로 알려져 있죠. 그야말로 갑부들만 사는 동네입니다. 웬만한 한국 부자들이 왔다가 명함도 못 내밀고 가는 곳이죠. 이 해변이 로즈베이라고 불리게 된 건 초기의 이주민들과 원주민간의 전투에서 죽은 원주민들의 피가 바다를 붉은 장밋빛으로 물들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초기에 유럽에서 이곳으로 온 이주민들이 죄수와 군인들이었다는 건 알고 계시죠? 하지만 이제는 이곳에 사는 주민들이 자식들에게 그렇게 설명하지는 않죠. ‘영국인들이 이곳에 와 자리를 잡으면서 그들이 옮겨 심은 붉은 장미가 바다 주변을 아름답게 수놓았기 때문에 로즈베이라고 불리게 되었단다.’- 톰슨박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현지 가이드는 익살이 담긴 서툰 성대모사로 관객들의 머릿속에 잠시 전 자신이 심어놓은 핏빛 바다의 이미지를 성급히 지워내려 한다. 외국에서 온 관광객이란 단순한 호기심으로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끼어든 의도적인 타자들이다. 그들은 이 땅이 지닌 원죄의 기억을 완전히 덮으려고도 깊이 관여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다만 들어 알면 그뿐이다. “한국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까? 어느 정도 부자여야 저 동네에 살 수 있는 건데요?” “유명 연예인 한명이 이곳에 집을 샀다는 얘길 듣긴 했어요. 하지만 그건 그 사람 허영심을 채워주는데 도움이 될지는 몰라도 여기 생활을 제대로 누리진 못할 걸요. 유럽부자의 생활이나 사고방식은 사실 한국하고는 많이 다르거든요. 한국부자들은 돈이 있어도 여기 생활을 즐길 줄 몰라요. 유럽의 귀족들이 즐기는 문화라는 건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거든요.” “죄수와 군인들이었다면서 귀족은 무슨, 못된 무뢰배들이 어쭙잖은 흉내나 내는 게지.” “자본주의 귀족은 돈과 시간이 만드는 거지 무슨 혈통으로 되는 게 아니거든요. 특히 오스트레일리아는 더하죠. 흔히 말하지 않습니까? 호주에서는 과거를 묻지 마라. 이 땅에 과거는 없다. 미래만 있을 뿐이다. 실제로 이 나라에서 개인사를 함부로 묻는 건 금기에 가깝습니다. 아무리 가까워져도 본인이 말하지 않는 개인사는 묻지 않는 게 불문율이죠.” 앞에 앉은 제임스와 현지가이드인 톰슨박이 나누는 이야기 소리가 뒷자리까지 우렁우렁 들려온다. 톰슨박은 유학생으로 이곳에 왔다가 관광가이드로 주저앉았다고 했다. 그는 공황에서 일행을 태우고 숙소로 가는 도중 호주에 대한 기본적인 안내를 시작하기도 전에 오늘 아침 한국 뉴스에 무엇이 나왔으며, 현재 한국 정부의 정책이 얼마나 형편없이 돌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놓다가 한바탕 곤욕을 치렀다. 그가 왜 고국에서 온 관광객을 만났을 때 그런 행동을 하는지 모르지만, 한국에서 지겹도록 듣고 떠들던 정치 잡설일망정, 이국땅에 와서 제나라 여행객을 상대로 돈벌이를 하며 살아가는 젊은이가 거친 욕설처럼 한국에 대해 떠벌이는 걸 듣는 건 뭐라 말할 수 없이 불편하고 불쾌했다. 그리고 차안에 있는 누구도 그 감정을 숨기려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 모든 불편한 것들로부터 방금 떠나온 여행객이 아니던가. 다행이 가이드는 상황파악이 빠른 사람이었다. 호텔에 짐을 풀고 다음날 아침에 만난 그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유능하고 사려 깊은 관광안내원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어제의 실수에 대해 정중히 사과하고 해명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외국에 나와 살면서 온통 고국 쪽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민자들의 딱한 사정에 대해서도 제법 설득력 있게 설명했다. 그의 솔직한 태도에 여행객들의 마음은 쉽게 풀렸다. 현지 가이드와 여행객들 사이에는 금세 타국에 나와 고생하는 젊은이를 대하는 모국의 어르신들이 가질법한 연민과 고국에 두고 온 친지를 그리는 이민자의 정성이 끈끈하게 어우러졌다. 그들은 5박 6일간 관광명소들을 돌며 가이드의 설명에 따라 감탄을 하고, 사진을 찍고, 가벼운 농담에도 까르르 까르르 즐거운 웃음을 날렸다. 그리고 날이 저물면 호텔 근처로 돌아와 가이드가 예약해 놓은 식당에서 저녁밥을 먹었다. 그러는 사이 여행자들의 기억 속에는 로즈베이의 핏빛 장미, 파도사이로 잠깐 솟구쳤던 고래의 무리, 작은 우리에 갇혀 여행객들의 사진 들러리가 되었던 코알라와 캥거루, 시드니의 어디를 가도 조망이 가능했던 오페라 하우스, 같은 것들이 새겨졌다. 아마 여행 일정의 마지막 날 밤 그 술집에서의 일들을 뺀다면 일행에게 호주 여행은 아무것도 아니었을지 모른다. 그저 흔하디흔한 패키지여행.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 여행의 마지막 밤을 멋지게 장식하자며 일행을 호텔근처의 작은 술집으로 이끈 것은 마이클이었다. 일행이 간 술집 간판에는 커다란 올빼미 머리가 그려있었다. 누군가가 한국에도 체인점이 있다며 아는 체를 했다. 초저녁인 탓인지 어둠침침한 실내는 거의 비어있었다. 그들은 큰 탁자가 있는 구석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그 특별한 모임에 함께한 사람은, 한 학기 내내 틈만 나면 자신의 재력을 과시하며 호기를 부리던 제임스, 이번 여행의 기획자였던 토마스, 전직이 행정 공무원이었다고 자신을 소개했던 마이클, 현직 간호사인 아바, 병역을 마치고 복학 전에 잠시 쉬고 있는 아들과 함께 온 로즈여사, 그리고 명과 메시 정이었다. 로즈여사의 아들은 공항에서 만난 멤버들과 어울리고 있을 것이다. 그 팀은 로즈여사의 아들 또래인, 두 딸과 엄마가 함께 온 그룹과 신혼여행을 온 젊은 부부, 그리고 두 명의 나 홀로 여행자로 구성되어 있었다. 로즈여사의 아들은 여행 내내 나 홀로 여행자인 두 여성과 어울렸다. 머뭇머뭇 어색하게 시작한 술자리였지만 분위기는 금세 무르익었다. 한 학기짜리 평생교육원 강좌에서 만나 외국여행까지 함께하게 되다니 이건 보통 인연이 아니라고, 넉살좋은 제임스가 먼저 입을 열었고 모두들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무엇보다 한 학기 동안 상냥하고 적극적인 호의로 여기까지 이끌어준 교수님에게 박수로 고마움을 전해야한다고 메시 정을 추켜세우며 일행을 부추기는 바람에 그들은 외국의 조용한 술집이라는 것도 잊고 짝짝짝 요란한 박수로 한바탕의 소요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메시 정은 그들의 교수이고 실제적인 리더였지만 가장 나이가 어렸다. 그녀는 미국에서 의상디자인을 공부하기위해 6년쯤 체류했던 경력으로 대학의 평생교육원이나 문화센터 같은 곳에서 영어회화를 가르치고 있었다. 그녀는 학기 중에도 이런 저런 구실을 만들어 야회수업을 한다거나 인터넷카페를 활용해 유대감을 키우는 따위의 노력으로 강좌를 활성화하는데 공을 들였다. 이미 세상 한 편으로 밀려나고 있다는 자괴감을 얼마쯤 안고 살아가는 노년의 수강생들에게 젊은 강사의 그런 노력은 꽤 적절한 처신이었던 듯, 대부분의 수강생들은 메시 정에게 호감을 가졌다. “그 동안 꽤 많은 여행을 했다고 자부했는데 이런 여행은 처음이에요. 정말 좋아요. 갑자기 내가 참 바보같이 살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원체 술을 즐기지 않으니까 한국에 있을 때도 잘 안가지만 여행 중에 이렇게 술집에 오는 건 꿈에도 생각 못했어요. 여행 중에 이런 재미도 있다는 걸 이제야 알았네요.” 토마스가 사뭇 들뜬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반장님 표정이 꼭 생전처음 놀이공원에 간 어린아이같이 해맑네요. 정말 여행 중에 한 번도 이런데 안가 봤어요? 그럼 도대체 그동안 뭘 하고 살았대요?” 고지식한 토마스를 놀리는 게 취미인 제임스가 배꼽을 잡는 시늉을 하며 그의 시선을 쫓아 실내를 둘러본다. 어둠침침한 황색불빛이 고여 있는 눅눅한 공간을 노란색 어깨걸이 티셔츠와 빨간색 짧은 반바지를 입은 여종업원이 천천히 오가며 주문을 받거나 음식을 나르고 있다. 그녀는 백인 여성이라고 하기 민망할 만큼 옷 밖으로 드러난 살갗이 짙은 갈색으로 그을린데다 맨살을 뒤덮은 노란 털 때문에 다소 지저분한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훤칠한 키와 볼륨감 있는 몸매, 순박한 미소를 띤 얼굴은 제법 밉지않은 인상을 주었다. 사방 벽에는 각가지 모양의 술병과 짤막한 홍보 문구가 담긴 광고지가 나붙어있고, 술집 한가운데 설치된 진열대 위에도 다양한 술병들로 가득 차 있다. 술집의 그 묘하게 어수선한 분위기는 거부할 수없는 흡인력으로 음주를 부추기는 것 같았다. 탁자위에 술병이 쌓여 갈수 록 잔을 비우는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제임스가 기념촬영을 해야 한다며 옆으로 지나가는 여종업원을 불러 세운 건 아마 분위기를 좀 바꿔보자는 의도였을 것이다. 그녀가 선뜻 제임스와 토마스 사이에 서서 포즈를 취했다. 제임스가 같이 사진을 찍자며 마이클을 일으켜 세우려 했을 때 그는 이미 꽤 많이 취해 있었다. 아니, 어쩌면 전혀 취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는 마치 혼자서 먼 곳을 헤매고 온 사람처럼 멍한 표정으로 제임스를 올려다보았다. “이런, 이 양반 많이 취하셨네. 혼자서 마냥 자작을 하더니만. 자, 사진 찍읍시다. 일어나요.” “그 여자는 왜 그렇게 죽었을 까요?” 제임스에게 한쪽 팔을 잡힌 채 불쑥 내뱉은 마이클의 한마디는 생뚱맞고 서늘했다. 하지만 그 한마디야 말로 그때까지 의미 없이 겉돌기만 하던 좌중의 말장난들을 단번에 휘어잡아 그들 내면의 가장 깊은 골짜기로 이끌어 가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2년입니다. 2년, 2년 동안 난 정말 아무것도 몰랐어요. 아내와 살아온 삼십년 세월과 그 2년이 어떻게 달랐던가. 수도 없이 생각합니다. 하지만 모르겠어요. 아내의 어디에서 내가 죽음의 냄새를 맡았어야 했던 건지. 그녀의 어떤 행동이 몸속에서 자라고 있던 암덩이의 징후였는지. 내가 무심했던 탓일까요? 그럴지도 모릅니다. 자꾸 생각하다보면 실상 나와 결혼해서 같이 살아온 삼십년 세월에 대해서도 난 아내에 대해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드니까요. 하지만 그녀는 왜, 왜 그 사실을 나한테 말하지 않은 걸까요? 2년 전에 병원으로부터 암 진단을 받았다는데 말입니다. 뭔가 나한테 복수를 하고 싶었던 걸까요?” 그는 한 학기 내내 맨 뒤의 창문 옆자리에 앉았다가 수업이 끝나면 조용히 사라지곤 해서 누구하고도 대화하는 걸 본적이 없었다. 첫 수업시간에 자기소개를 할 때 공무원이었는데 지난해 퇴임을 했다는 말을 했었다. 겉보기에도 그가 공무원이었다는 걸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을 만큼 평범하고 단정한 인상을 주었다. 수업시간에도 강사가 질문을 할 때 말고는 거의 말이 없어서 누구의 주목을 받을 만한 일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한 번도 수업에 빠진 적이 없었고 여행계획을 세울 때도 제일먼저 동참의사를 밝혔다. 그가 누구였던가. 수강생 모두에 대해 꽤 세심한 성향까지 파악을 하고 있다고 자부했던 메시 정조차도 마이클이 한 학기 동안 어떤 모습으로 자신의 머릿속에 입력되었던가를 기억해 내느라 말문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그건 약을 먹거나 목을 매 자살하는 것 보다 더 나빠요. 어떻게 2년씩이나 식구들을 속이고 혼자서 천천히 죽어갈 생각을 할 수 있죠? 선생님은 믿어지십니까? 혹시 돈 때문이냐고요? 수술할 돈이 없어서 희생할 결심을 한 거 아니냐고요? 아니요. 아닙니다. 우리 먹고 살만큼 돈 있어요. 암 보험도 들었고요. 어느 날 화장실에 쓰러져있는 아내를 병원으로 싣고 갔다가 이미 온몸에 암이 퍼져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죄의식 때문에 죽을 거 같았어요. 아내는 나와 살면서 고생을 많이 했거든요. 시집 온지 십년도 되기 전에 어머니가 중풍으로 쓰러지셔서 그 수발을 혼자 다 했어요. 그 세월이 8년입니다. 아내한테 고맙게 생각하며 살았죠. 그 후론 그리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냥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았죠. 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의사의 말이 2년 전에 본인에게 알렸는데 보호자가 없다고 했다는 겁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내 심정이 어땠을 지 짐작이 가십니까? 아내가 말하더군요. 그냥 사는 게 너무 지루했다고. 당신 잘못 아니니까 죄의식 같은 거 가질 필요 없다고. 자기가 죽으면 꼭 좋은 여자 만나서 재혼하라고. 그게 설사 아내의 진심이었다고 해도, 그건 나를 향해 날리는 비수고 조롱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자기 인생의 마지막 퍼즐을 스스로 선택해서 끼워 넣을 작정을 하는 게 그렇게 나쁜 걸까요?” 마이클의 맞은편에서 듣는 듯 마는 듯 술을 마시고 있던 아바가 시비라도 걸 듯 툭 말을 던졌다. “부인의 죽음을 이해하고 싶다면 그이가 살아온 시간 속을 뒤져보세요. 한 생명의 죽음은 그 존재의 마지막 퍼즐조각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 그 삶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맞추다보면 마지막 퍼즐 조각의 모양을 알 수 있지 않겠어요? 하긴 한 인간의 퍼즐게임이 늘 완성된 형태로 마무리되는 건 아닙니다. 전 흔히들 말하는 정신 병원에 근무하고 있답니다. 그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을 전 퍼즐 조각의 경계가 허물어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되면 더 이상 퍼즐게임을 이어가는 게 불가능하게 되죠. 정성을 다해 그려놓은 수채화에 누군가가 물 한 양동이를 쫙 쏟아 부었다고 상상해 보세요. 사람의 정신에 가해지는 폭력이란 그런 거 아니겠습니다. 그들이 천천히 자신의 정신에 가해진 충격을 걷어내고 희미해진 퍼즐의 경계를 회복해 가는 걸 지켜보는 게 제가 하는 일입니다.” “아내가 살아온 시간의 조각들을 이제 와 어디서 찾는단 말입니까. 아내가 그렇게 가고 나니까 난 그동안 아내에 대해 알고 있던 것들을 아무것도 믿을 수가 없더란 말입니다. 그 사람은 살아오는 동안 나한테 바가지라는 걸 별로 긁은 적이 없어요. 농담도 잘하고 꽤 화통한 사람이었죠. 아니, 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 사람인 줄 알고 살았어요. 너그럽고 인내심도 많고 사는데 별로 불만이 없는....... 사실 나는 늘 바빴습니다. 공무원이 철밥통이라고 흔히들 빈정대지만 얼마나 골치 아픈 일이 많은지 아십니까. 내 머릿속에는 언제나 직장일로 꽉 차 있어서 집안일까지 살뜰히 살펴가며 살 여유가 없었어요. 우리는 같은 직장에서 만나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갑자기 중풍으로 쓰러지셨을 때 둘 중 한명은 일을 그만두고 어머니를 돌봐야 했어요. 그래서 아내가 퇴직을 하고 어머니를 돌보며 살림을 맡게 되었죠. 그 사실이 아내한테 늘 미안하긴 했어요. 그런데 난 그런 내 마음을 왠지 아내한테 보이고 싶지가 않더군요. 아마 그래서 점점 무뚝뚝하게 대했던 것 같기도 해요. 하지만 아내는 내 마음을 알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어머니는 마이클 씨 어머닌데 왜 부인에게 그 일을 맡겼을까요? 똑같은 공무원이었으면 수입도 비슷했을 테고, 꼭 부인이 퇴직을 하고 그 일을 맡아야할 이유가 있었습니까? 당연히 밖에서 돈을 벌어 와야 하는 건 남자라거나. 누군가를 돌보는 일은 여자가 해야 한다거나 그런 고리타분한 이유 말고 다른 이유요?” 아바의 말투에는 왠지 짜증이 잔뜩 묻어있었다. 마이클은 아바의 신경질적인 반응에 머쓱해져서 말문을 닫았다. “사람들이 자신을 밖으로 표출하는 방법이 늘 똑같은 건 아닐 겁니다. 예컨대 세상에 여자라곤 자기밖에 모른다고 믿고 살아왔던 남편에게 이미 오래전부터 숨겨둔 여자가 있었다는 걸 알았다고 합시다. 그런 때에 모든 여자들이 드라마에 나오는 여자들처럼 행동하지는 않는 단 말입니다. 배신감에 치를 떨고, 남편의 여자에게 모욕을 주고, 위자료를 듬뿍 받아 이혼을 하거나 남편이 여자와의 관계를 청산하도록 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는 따위의 일들 말입니다. 여자는 남편의 관심 밖으로 벗어난 것에 오히려 홀가분함을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여자라고해서 독립적인 어떤 일을 꿈꾸지 말란 법이 없으니까요. 여자가 남편과 남편의 정부에게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으면서 철저하게 두 사람을 자신의 삶으로부터 소외시킬 수 있다면 그것도 복수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혹시 앎니까? 부인은 정말로 사는 게 지루해 견딜 수 없었는지. 그래서 거미가 새끼들을 제 등위에 놓아기르듯, 암덩이라도 키워야 살 수 있었는지 알 수없는 일이지요. 그러니 마이클 씨는 부인에게 몸속의 암덩이 만큼도 의미가 없는 존재였다는, 그 사실만 슬퍼하면 될 일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로즈 여사님,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사람의 관계가 정말 그렇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요. 그건 잘못된 생각입니다. 사람사이의 정이 그렇게 아무것도 아니라면 도대체 인간은 무엇에 의지해 이 팍팍한 세상을 살아가야 한단 말입니까? 2년 동안 아내가 철저하게 나를 소외 시킨 채 혼자서 감당한 그 고통과 외로움의 무게를 그렇게 가볍게 단정해 버리는 건 내 아내에 대한 모독입니다.” 대화는 점점 격해져서 좁은 실내를 휘젓는 소란으로 변질되고 삿대질이 오갈 지경이 되었을 쯤 일행은 술집에서 쫓겨났다. 하지만 외국의 낯선 밤거리로 내동냉이 처진 그들은 뜻밖의 해방감에 몸을 떨며 서로를 부둥켜안고 거리가 떠나갈 듯 웃어댔다. 무엇이 그들 사이의 경계를 한순간에 허물고 그렇게 한 덩어리가 되게 했는지,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지만 그 때 그들 사이에는 은밀한 통과의례를 함께 치러낸 자들만의 동질감 같은 것이 생겨났다. 리베라호텔에서의 만찬은 말하자면 그것을 재확인 하는 자리였던 셈이다. 승강장에 버스가 들어와 멎을 때마다 무리를 이루고 있던 행인들 사이에서는 작은 소요가 일며 몇몇은 타고 몇몇은 내린다. 승강장의 안내 모니터에는 분 단위의 정보가 재깍재깍 쉼 없이 떠오르고 그 시각에 맞춰 새로운 버스가 왔다가 떠나간다. 그 분 단위의 질서 안에서 사람들은 무기물처럼 흘러가고 새로운 무리가 흘러든다. 명은 멀리 보이는 모니터를 유심히 살피며 704번 버스의 도착시각을 기다린다. 7분 재깍, 6분 재깍, 5분, 4분 모니터 영상의 정확하고 날렵한 변화에 따라 얇게 저며진 시각의 조각들이 도열하듯 재깍 재깍 명을 향해 다가온다. 명은 조용히 일어나 도열한 시각의 벽속으로 스며든다. 따뜻하고 편안한 무기질의 시간 속으로 진입. 약 력 1954년 충북 괴산군에서 출생 1994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불임의 숲」 당선 1995년  
145 금수회의록 외1편/강태규 file
편집자
4058 2011-08-31
11.09월 16호 시 금수회의록 강태규 꿈인지 날 것인지는 모르겠다 탕국 잘 먹고 툇마루에서 남포불을 지필 때였을 거라 왼켠 미루나무는 참견 없이 차렷 자세로 어슴프레 있건만 삭밤이라 캄캄 무인지경 저번 늦겨울 소 여럿 잡던 일 좀 잊어볼까 했지만 수이 되질 않는 그런 불씨 없는 밤. 별다방 프라스틱 라이타 불 화홧 댓지만 심지로 댕겨지질 않고 콧잔등 어디쯤해서 소쩍 소쩍대길래 그냥 집나간 제 짝 부르는 소린줄로만. 자시 쯤 되었을까 심지에 기름 좀 배이라고 남포를 들었다 놨다 하던 중, 이젠 오른 켠 귀 어디쯤 와서는 소도적 소도적, 좀 더 잘 들으라 낭낭하고 쩌렁하여 가슴까지 철렁, 마른 번개처럼 퍼떡 집히는게 뒷집 소 같은 소가家라고 쩍새한테 귀뜸한 게야 산바람 댓닢조차 흔들지 못하고 백열등 저만치 아랫말에 있는 그런 밤. 산마루께 우묵 골진 즈음에서 빈 저수지 밤배 지나 듯 흘리던 쩍새소리에 오른켠 눈 꼬리 쪽 너머, 소 외양간에서는 한 두박자 꽤어 무쇠 코뚜리 어김없이 철럭댔으니 집짐승이나 날짐승이나 서로 사람 흉을 본다는 게 억지인 것도 같지만 잠 못드는 이 밤에 소 생각을 자꾸하니 소도적이 맞는 것 같기도 해 禽獸會議錄 : 개화기 때 정의 안국선이 쓴 신소설의 제목에서 차용함 장화홍련전 강태규 상주 중덕못에 홍련이 가득하다 낚시금지 팻말에 참붕어, 청개구리, 왕두꺼비, 소금쟁이들도 잠잠하다 배무룡 둘째 딸 홍련이 장화언니 따라 못으로 들더니 수십만 쌍둥이 딸들로 복제되어 환생했다 배좌수댁 딸처럼 심학규네 청이도 소생할 차례다 이 마을, 사람의 집들 동쪽으로 앉아있고 생태공원 공사가 한창이다 잘난 애비와 못생긴 여식女息, 계모繼母와 조사釣士들은 괴롭다  
144 순이의 하늘 외1편/안현심 file
편집자
3446 2011-08-31
11.09월 16호 시 순이의 하늘 안 현 심 마당가에 피어난 붉은 동백꽃, 이름은 순이. 고향은 함경북도 청진 배가 고파서 도망 나왔어요 부모는 일찍 세상을 뜨고 오빠는 군대 가서 죽고 허기진 배 거머쥐고 피붙이를 찾았지만 냉대와 멸시뿐 아무도 따스운 밥 나눌 사람 없었어요 여행증 없이 숨어든 평양에서 죽도록 매를 맞고 살길은 두만강을 건너는 일뿐이었어요 낮에는 산에 엎드려 풀잎을 먹고 밤을 틈타 걸었어요 잡혀서 죽으나 굶어 죽으나 매한가지 배곯지 않을 땅을 찾아야 했어요. 칠흑 같은 강물에 떠내려가며 이렇게 죽는구나 결국은 중국 공안에게 잡히고 말았어요 살려주세요 제 발로 다시 돌아갈 테니 북한 보위부에는 넘기지 말아줘요 몰매 맞고 강제노동을 하다가 뼈만 남아 죽게 돼요 울며불며 매달리는 얼굴에 병색은 무르익어 한 주먹거리도 되지 않고 앙상한 몸에 걸친 누더기 옷, 그들도 안쓰러웠던지 그럼 돌아가라 하였지요 주머니에 사탕 세 알을 넣어주며 두만강에서 흔들리는 목숨을 지켜보았어요. 배가 고파 길바닥에 쓰러졌을 때 어느 할머니가 먹을 것을 주었지요 그런데 할머니는 배곯는 처녀를 중국에 팔아넘기는 알선책이었어요 그걸 알면서도 다시 가야 하는 땅 어떤 삶을 살든지 굶주림보단 나았어요. 연변에 들어서자 도망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어느 마을에서 오줌 누러 간다하고 줄행랑을 놓았지요 개들은 무섭게 짖어대는데 낯선 집에 뛰어들어 숨겨 달라 애원했지요 노인은 감자 굴에 나를 파묻었어요 며칠을 굴 속에서 숨어 지내다 햇빛을 보았지요 그 집 농사일을 일 년 남짓 도운 후에 도회지 부잣집 가정부가 되었어요. 그러나 내 하늘은 여기가 아니에요 오 년을 살아도 십 년을 살아도 공안에게 들키면 잡혀가는 탈북자 아이를 낳고 살다가도 쇠꼬챙이에 꿰인 채 끌려가야 해요 실컷 부려먹고도 돈 한 푼 주지 않는 고용주가 들끓는 땅 여기는 내가 그리던 하늘이 아니에요. 이름은 순이, 남녘 하늘 귀퉁이 키 작은 동백꽃. 생존을 위하여 안 현 심 여행증 없이 평양 거리를 떠돌다가 즉결소에 끌려갔지요 깜깜한 방 안에 내동댕이쳐졌는데 아침이 되어서야 사방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이백 명 가량의 눈만 퀭한 거지들 속에 맨 무릎이 드러난 아이 신발 대신 비닐봉지로 발을 싸맨 아이 평양 거리를 헤맨 내 신발도 앞부리가 해져 다섯 발가락이 보였어요 열다섯 처녀아이는 엉덩이를 내놓고도 부끄러운 줄 몰랐어요 우리에게 당면한 건 배를 채우는 일 그것 외엔 아무 것도 관심이 없어요 아이들은 배낭을 뒤지더니 생감자 훔친 것을 꺼내 먹고 언 시래기 훔친 것을 먹었어요 훔치지 않으면 먹을 것이 없으니 도둑질을 해야 해요 바싹 여윈 할머니가 농장에 숨어들었다가 피범벅으로 맞는 것도 보았어요. 그래도 우리는 훔쳐야 해요. 안 현 심 시인․문학평론가 <하늘소리> 외 두 권의 시집과 산문집 <오월의 편지>, 논저 <서정주 후기시의 상상력>을 펴내고, 현재 한남대학교 강사로 재직 중이다. .  
143 Darma 法 외1편/권현수 file
편집자
4193 2011-08-31
11.09월 16호 시 Darma 法 권 현 수 法이란 것이 그런 거 아이겄나 해 뜨모 일 하고 해 지모 자고 빨간 불이모 서고 파란 불이모 가고 그라고, 내하나 묵고 니하나 주고 물은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는 것잉께. 구름 위를 걷는 방법 권 현 수 저 높은 산봉우리에 걸쳐있는 뭉게뭉게 뭉게구름 보이지 그 위를 걸어 보는 거야 먼저 그 무거운 외투부터 벗어버려야지 알록달록한 카드들 잘랑거리는 열쇠들 크고 작은 지갑들도 함께 말이야 그리고는 운무사雲霧絲 날개옷을 입어야지 그 전에 물론 천상수에 목욕도 하고 묵은 때를 깨끗이 벗어버린 숨구멍마다 사방팔방으로 뻗쳐있는 의식의 촉수들 무의식의 뿌리까지 잠재워 버리는 거야 그러면 기러기 깃털처럼 가벼워지겠지 그리고는 펄쩍 뛰어 보는 거야 아직도 발이 떨어지지 않으면 발목을 잡고 있는 중력 때문이야 미련을 버려야지 발 씻은 물과 함께 확 비워버려요 다시 한번 힘껏 뛰어 봐, 그렇지. 어때,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 권현수 건국대학교 교육대학원 2003년 <불교문예> 신인상 시집 [칼라차크라] 서울 강동구 둔촌동 주공아파트 436동 709호 hyonsue7@hanmail.net  
142 오늘도 무럭무럭 외1편/이상도 file
편집자
3479 2011-08-31
11.09월 16호 시 오늘도 무럭무럭 이상도 여자의 얼굴은 동글동글 난 웃는다, 실실 쪼개면서 한번 자빠뜨릴 궁리를 한다 헌혈차 한 대 플라타너스 그늘 아래 움직이지 않고 계속 그 자리다 헌혈은 참여와 성원 속에서, 그래서 플라타너스는 오늘도 무럭무럭 지난 겨울 삭발 당해 몰골 앙상했던 몰염치의 풍광에서 다닥다닥 푸른 순을 밀어 올리던 오월 초순 처절한 생의 아비규환을 들었다면 지금 널따란 이파리는 어쩌면 덤이랄까 그러니까 플라타너스는 생의 흉폭함 그러니까 플라타너스는 생의 잔혹함 그러니까 어젯밤 잠 못 자고 헐떡였던 건 열대야 때문이 아니라 모기 때문이었다 손바닥으로 찰싹, 압사인지 질식사인지 벼락사인지 피 확 터트려놓고 허벅지에 엉겨 붙은 모기 사체를 훑어내다 담배 또 피워 물고 침 발라 피를 닦아내고 잠을 청해도 그러거나 말거나 여자는 꿈에까지 따라와 애태우고 모기는 여전히 앵앵 오늘 밤에도 악몽은 뭇별처럼 가득할 테지만 그래도 모든 것이 무럭무럭 플라타너스는 잔인하게도 싱싱 여자의 웃음은 고맙게도 생글 그러니까 난 헌혈하기 싫다 공기 이상도 가볍게, 가볍게 살아가는 일이 힘들다. 오래 지속된 우기의 눅눅한 습기 때문만은 아니다. 축 처진 길들을 배회하는 하루가 어렵다. 공기는 가벼움에 의지한 무거움이다. 얼마나 나를 짓누르고 있는가. 막강한 힘과 권위에 주눅 든다. 먹기 싫으면, 잠시라도 쉬고 있으면 죽음뿐이라는, 죽지 않기 위해 허파는 심장은 살아간다. 공기는 천천히 내려앉는다. 아무 곳에나 앉아 이리저리 굴러다니면서 잠시도 감시의 눈길을 버리지 않는다. 내 속에 음흉하게 숨어 들어와 내가 보지 못한 마음까지 꿰뚫고 다닌다. 유유히 빠져나가 떠돌고 또 들어오고 하는, 나와 관계 맺은,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불특정 다수에게 내 음음(陰陰)한 마음을 들키고야 마는, 이 무방비의 적나라! 나는 반성할 게 없는데 다만 부끄러울 뿐인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얼마나 까발렸는지. 이것이 나의 노출증인지. 공기의 관음증인지. 이상도 경남 거창에서 태어났다. 구미의 ‘수요문학회’와 ‘경북작가회의’의 회원이다.  
141 고래 - 천명관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
상주신문
4442 2011-07-31
내가 좋아하는 소설 소설을 즐기시는 분이라면 강추! 재미로 읽고, 가슴으로 남는 드라마 같은 소설입니다. “『고래』는 가히 소설이 무엇인지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 전지전능하고 고압적이며 시공을 초월한 이야기꾼의 입담에 힘입어 소설은 엄격한 형식의 규제를 뚫고 민담과 전설, 기담들, 무협지와 장르영화의 부스러기들, 동화와 환상적 요소 등이 뒤섞이는 환상의 도가니로 돌변한다.”--신수정, 문학평론가  
140 정취암* 일박一泊 외1편/차영호 file
편집자
3803 2011-07-31
11.08월 15호 시 정취암* 일박一泊 차 영 호 저무는 하늘이 두툼한 구름요 깔고 누워 별 한 조각 내비치지 않는다 오밤중에 내려다보니 우리가 사는 세상도 별천지였구나 저 아래 숲정이 끄트머리에 북두칠성 마차부는 마을 어귀에 있고 탁 트인 저기 저 너머 아득하게 찰람거리는 은하銀河 *경남 산청군 신등면 대성산에 자리한 암자 대서大暑 무렵 ―― 지리산 연하천 건너 벽소령 넘는 마루금은 물 고흔 갈래머리들이 재잘재잘 쏟아져 나오는 방학식날 여학교 하굣길만 같아서 원추리, 비비추 입 삐죽거리는 모롱이 굽이돌면 배시시 웃는 층층잔대며 도라지모싯대, 마주칠 때마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하늘말나리, 양지 바른 언덕에 올라 손차양을 하고 먼 산을 내다보는 동자, 동자꽃…… 각색 발자국 자오록한 길섶 한구석빼기에는 노루오줌에 바짓가랑이 적신 내가 멀거니 홀아비꽃대마냥 서 있고 차영호(車榮浩) 1954년 충북 청원 출생. 1986년 《내륙문학》으로 등단. 〈푸른시〉동인. 시집 『어제 내린 비를 오늘 맞는다』,『애기앉은부채』 youngghc@hanmail.net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대도동 512 상도빌라 303  
139 언제나없이 외2편/남태식 file
편집자
3994 2011-07-31
11.08월 15호 시 언제나없이 남 태 식 언제나없이 꿈은 무덤에서 이루어진다 무덤이 열리고 아이들이 쏟아진다 우리가 남이가 얼굴이 없는 짝퉁 우리가 손을 내민다 살짝 주먹을 말아 쥐었다 저 주먹 속에는 무엇이 들었나 저 주먹을 본 적이 있다 저 주먹과 거래를 한 적이 있다 그 거래는 무엇이었나 뒷짐을 지고 한 아이가 고개를 가로젓는다 또 한 아이가 고개를 가로젓는다 또또 한 아이가 고개를 가로젓는다 무덤 앞에는 아직은 고개를 가로저은 아이들과 고개를 가로젓는 아이들뿐이다 모두 걷고 있다 제자리걸음이다 언제나없이 꿈이 산허리 높이 올라앉아서도 낮은 무덤에서 틘다 가위바위보 남 태 식 지나면 큰 집 대문 보이는 무덤가에 오래된 아이들이 왁자하다 뒷짐을 풀고 한 아이가 손을 펼치면 또 한 아이가 손을 펼치고 또또 한 아이가 손을 펼친다 머뭇머뭇 뒷짐을 풀고 머뭇머뭇 손을 펼친다 왁자한 소리 마당은 꽃들 흐드러지게 핀 봄날인데 풍경은 아직 움 안 돋고 망울 안 맺은 겨울 산천이다 한 아이가 손을 내밀면 또 한 아이가 손을 내밀고 또또 한 아이가 손을 내민다 펼친 손은 언제 말아 쥐었을까 내미는 손도 느닷없고 말아 쥔 손도 느닷없다 가위바위보 가위바위보 가위......? 바위......? 왜?!...... 내민 손들은 모두 허공을 향하고 손들이 갸웃하니 허공이 갸웃갸웃한다 지나면 큰 집 대문 환하게 보여도 오래된 아이들 아무도 아직 무덤가를 못 뜨고 있다 무너져라, 벽! 남 태 식 큰 집 대문과 무덤 사이에 벽이 있다 귀를 잃은, 듣고 싶은 것만 듣는 벽은 눈을 잃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벽은 입을 잃은, 하고 싶은 말만 하는 벽은 번듯한 군대마냥 나름 꿋꿋하고 도시에 쏟아진 폭설처럼 호들갑스러우나 시방 더 이상 자라기를 멈춘 피로한 식물이다 가로막은 벽 이 편 무덤가에는 큰 집 대문을 향해 나아가는 무덤을 뛰쳐나온 거듭 거듭나는 여러 무리의 새 아이들 벽을 무너뜨려라 쿵! 한 무리의 아이들이 앞서며 땅을 밟으니 쿵! 쿵! 또 한 무리의 아이들이 뒤이어 땅을 밟고 쿵! 쿵! 쿵! 또또 한 무리의 아이들이 연이어 땅을 밟는다 무너져라, 벽! 무너진다, 벽! * 남 태 식 2003년『리토피아』 등단, 시집 『속살 드러낸 것들은 모두 아름답다』『내 슬픈 전설의 그 뱀』  
138 옛 전신전화국에 가다 외1편/정선호 file
편집자
4377 2011-07-31
11.08월 15호 시 옛 전신전화국에 가다 정선호 영도 바닷가 해안을 따라 달렸다 달린다는 것은 시간의 날개를 다는 것, 햇살을 다리에 감아 바다에 풀어 던졌다 시간의 날개 꺾여 봄 햇살에 졸고 있는 옛 영도 전신전화국에 들어갔다 입구, 오래된 동백나무에 꽃 피었고 낡은 건물 앞엔 수명을 다한 전봇대들 노인정의 노인들처럼 늙어갔다 폐경이 얼마 남지 않은 동백나무는 전봇대에게 꽃을 털어 올려 주었다 그제야 전봇대는 생기가 돌았고 전화를 섬 전역에 송수신 해주던 시절을 추억하며 흰 머리카락 날렸다 사람들 송전탑 주위엔 텃밭을 만들어 밭을 갈아 채소를 길렀다 옛 전신전화국은 심장이며 허파마저 사람들에게 내어주며 동백나무와 함께 천천히 늙어갔다 산에서 보물찾기 어린이 날 아내와 산에 갔다 산꼭대기에 올라 김밥을 먹고 있자니 야유회 온 여러 가족 보물찾기 한다 사람들 보물 찾으려 라마피테쿠스처럼 나무를 흔들자 산이 흔들렸다 나무는 갑작스런 사람의 온기에 정신없이 잎을 틔워냈다 한 무리 유인원들 박힌 돌 들추자 돌과 땅 사이에 터 잡고 살아왔던 개미며 지렁이들 화들짝 놀라고 돌은 뿌리 뽑혀 어쩔 줄 몰라 했다 유인원들 돌로 불을 만들어 음식을 끓여 제 아이에게 먹였다 돌의 방향과 물성을 생각하는 순간 우주가 갑자기 정지했다 순간 내가 서서히 돌이 되어 갔다 여기저기서 보물 찾았다는 함성에 산이 심하게 흔들렸다 *. 약력 : 충남 서천 출생, 창원대 국문학과 대학원 졸업, 2001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으로 『내 몸속의 지구』가 있다  
137 주류와 비주류 외 1편/송은영 file
편집자
4731 2011-07-31
11.08월 15호 시 주류와 비주류 송은영 울타리 밖 다른 부류 나는 집에 있으면서 집 밖에 있고 누구도 나를 기억해 주길 원하지도 않는다 등골이 휘어지도록 일하면서도 가난의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한 숨막힘을 보고 자란 나는 누가 뭐래도 한번 올라가면 끝까지 내려오지 않는 장안의 권세가인 당신이 부러울 따름이다 오늘도 당신이 전하는 말은 대서특필되고 시시콜콜 해석된다 당신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니면서 항상 최상의 힘을 누리며 다른 사람들이 죽기 살기로 밀어 부치면 언제나 위기라고 말하는 당신 소파 뒤 오래된 쿠션처럼 곰비임비 닳고 닳아 우리의 루머가 되어간다 정몽주로 산580번지 토악질 나는 후손들이 잘 사는 일에 몰두하지만 튀밥이 송아지 되고 송아지가 집되는 웅장한 서사시는 옛말이라 당신이 골백번 죽고 죽어도 여기에 사는 사람들은 당신을 떠받칠 만큼 녹녹치 않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하수상한 현실은 자꾸 만약을 떠올려 스스로의 판단을 방해하고 춘설이 난분분한날 저녁 당신의 충절을 내세우는 포은 도서관이 시소 끄트머리에서 몸이 공중에 뜨기를 바라는 어린아이처럼 칭얼대고 있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공공근로사업 희망자 모집에 하여가 부르며 구름처럼 모여든 생활보호대상들 약력:경북 포항 출생,2007시와 상상으로 등단 jayou7453@daum.net  
136 청춘(靑春)이란?/김재수 file
편집자
3893 2011-07-31
11. 08월 15호 수필 청춘(靑春)이란? 지난 세주일 연속으로 일요일 오후 시간이 되면 가슴이 설레고 있습니다. KBS 제2TV 해피 선데이 ‘청춘합창단’ 오디션 광경이 벌써 세 주째 방영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첨엔 그냥 '남격 합창단'이후 또 한 번의 연속적 시도이려니 했고, 52세 이상의 참가자들에게 걸맞지 않게 무슨 청춘합창단이냐 라고 대수롭잖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첨부터 예사롭지 않은 오디션이었습니다. 52세부터 90세의 할아버지, 할머니, 평범한 주부에서 이름 있는 기업의 CEO까지 참가자도 다양했습니다. 연변에서 온 조선족 동포, 종일 치킨을 팔다 오신 치킨 집 아저씨, 며느리의 권유로 참가한 시어머니, 겨우 우리말을 익혀 산토끼 노래도 다 소화하지 못한 어느 외국인, 15년간 성대결절로 인해 노래를 잃었던 전직 음악선생님, 음대를 졸업하고도 타의에 의해 30년을 다른 인생을 살았던 주부, 이미 이름 있는 가수와 중견 탈렌트, 심지어 간과 신장을 이식받아 투병 중에 있는 분도 참가 했습니다. 동요에서 가요, 그리고 가곡, 그들이 부르는 노래 또한 다양합니다. 뿐만 아니라 합창단을 뽑는 오디션이라지만 심사위원도 특별합니다. 초대 손님으로 나온 윤학원, 박완규, 임혜영과 남격의 멤버인 김태원 씨가 음악 전문가라면 양준혁, 이경규, 이윤석, 윤형빈, 전현무 씨는 그야 말로 비전공자들입니다. 이들의 역할이 워낙 어중간해서 과연 남자의 자격과 청춘합창단이 어떤 관계가 있느냐라는 비판도 있습니다만 이는 앞으로 두고 볼 일입니다. 다만 우리가 감동하는 것은 이들이 나와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 이자 언니 누나의 삶이며 아내와 남편 그리고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노래를 통해 자신들이 이루고자 하는 꿈에 대한 그 간절한 열망이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감동으로 우리에게 다가온 때문입니다. 요즈음 평균 연령이 높아지면서 현역 이 후 남은 인생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역할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이는 개인의 문제를 떠나 사회적 요구가 되었고 , 보다 활동적인 이들을 통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청춘합창단의 오디션을 보면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실감합니다. ‘인간은 호기심(好奇心)을 잃는 순간 늙는다.’ 2005년 96세로 타계 직전까지 강연과 집필을 계속했던 세계적인 석학 ‘피터 드러커’의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비록 52세 이상이란 숫자가 분명히 넘을 수 없는 확실한 인생 후반의 표식이지만 그러나 이들의 간절한 꿈은 바로 이들을 청춘으로 인정해 주어도 좋을 필요충분조건임을 확신했습니다. ‘청춘 합창단’ 이들의 꿈과 열망에 박수를 보냅니다. 김재수(金在洙) 1947년 경북 상주 출생 1973년 제1회 창주아동문학상 받음(동시, 제비집) 1980년 제12회 한정동 아동문학상 받음(동시, 겨울 일기장) 1988년 제5회 상주시 문화상(예술부문) 1993년 제1회 M.B.C 창작동화 입선(동화, 철조망이 피운 꽃) 1994년 국민일보 주관 친절노래가사 당선 1996년 제16회 해강아동문학상 받음(동시, 농부와 풀꽃) 2010년 경상북도문학상 받음(한국문인협회경상북도지회) 개인 작품집 1974년 낙서가 있는 골목(동시집, 대학출판사) 1978년 겨울 일기장(동시집, 학사원) 1995년 농부와 풀꽃(동시집, 미리네) 1992년 사랑이 꽃피는 언덕(동화집, 효성사) 1996년 하느님의 나들이(동화집, 도서출판 대길) 2008년 트임과 터짐(산문집, 시와에세이)  
135 용암마애불기(龍巖磨崖佛記)/정복태 file [1]
편집자
4575 2011-07-31
11. 08월 15호 소설 용암마애불기(龍巖磨崖佛記) 정복태 갈증으로 눈을 떴을 때 TV 소리가 귀로 자글대며 밀려들고 있었다. 현은 습관적으로 손을 뻗혀 물주전자를 입에 대고 벌컥이며 정신없이 마셨다. 속은 뒤끓고 있었다. 어제 편집국장과 마지막 헤어진 뒤 현은 결국 T술집에서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마담이 한껏 말렸으나 계속하여 머리끝이 하얗게 될 때까지 마신 기억만 겨우 떠올랐다. 비교적 이런 소도시에서는 조용한 그런대로 술집 분위기도 한껏 주인의 디자인에 의하여 잘 갖추어 놓은 그런 술집이어서 현은 신문사일이 끝나면 편안한 마음으로 곧잘 가곤 하는 곳이었다. 마담은 언제나 한복을 입고서 그윽한 그 나름대로의 기품을 은은히 풍기며 손님들을 편안하게 하는 곳이어서 현은 그런 분위기로 하여 이따금 이 집을 드나들었다. 지자체 선거가 끝나고 이제 시는 새로운 사람으로 의욕적으로 일상의 업무에 들어서서 의욕적으로 시 행정을 펼쳐 나가는 때이기에 현이 몸담고 있는 K지방신문은 새로운 기사가 넘쳐나서 무척 바쁘기만 할 때였다. 편집국장과 사장이 동석한 술자리였는데 결국 술판이 과열된 것은 편집국장의 사장에 대한 불만이 터지고 부터였다. 현은 말이 편집부장이란 직책이었지 이런 경우 어쩔 수 없이 금방 입사한 신출내기 기자 노릇을 해야만 했다. 싸움은 처음 현 시국에 대한 사장과 편집국장의 고정화된 의견 차이에서 벌어졌다. 정작 그것이 번진 것은 편집국장의 일을 한 댓가에 대한 사장에 대한 불만이 나오면서 걷잡을 수 없이 산불처럼 번져서 현으로서도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을 정도로 두 사람 사이의 간극은 수습 불능의 상태로 격화되어 버렸다. 주전자 구멍에서 입을 떼자 현의 귓가로 무언가 아나운서의 말과 함께 화면의 글씨들이 눈시울로 들어오고 있었다. 거북한 속임에도 불구하고 현은 본능적인 감각으로 그 뉴스가 범상치 않은 것을 감지하기 시작하였다. 인근의 낙단보 공사 현장에서 고려 시대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측되는 마애불이 그 광배 부위가 인부의 실수에 의하여 파손되어 버려서 조계종 종단의 총무원장과 종단의 고위 스님들이 가뜩이나 자연보호를 주장하던 조계종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여서 이번에 대규모 항의 법회를 광배 부위가 구멍이 난 사실에 대하여 정부에 시위집회를 하기로 했다는 뉴스였다. 술을 먹은 배는 뒤끓었으나 현은 이미 술기운이 걷히고 있었다. 어제 사장과 편집국장의 회식에서의 집요한 의견 다툼도 역시 이번에 새로 시작된 시장과 이 고을 국회의원 사이의 권력 겨루기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현이 담배에 불을 붙이면서 떠올랐다. 그것은 이 고을을 대표하는 두 인사가 암암리에 이 소도시에서의 헤게모니 다툼으로 새로운 시정을 펼치면서 조금씩 틈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비롯된 일이었다. 중앙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시작한 4대강 사업으로 하여 야당의 집요한 공략을 받고 있으며 지난 번 연평도에서 일어난 북한군에 의한 천안함 침몰로 인한 작전 중이던 한국군 46명이 서해 바다로 산화하면서 그에 대한 정부의 한참 뒤의 성명은 북한에 의한 계획된 어뢰공격에 의한 것이라 발표한 것에 대하여 야당은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라며 정부의 발표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나라의 의견은 반반으로 갈라져 뜨거운 논쟁으로 설왕설래하고 있었다. 야당은 지금 정부가 국가사업으로 확정하여 실행에 옮긴 4대강 사업을 국민 복지를 위한 기금으로 전환하지 않은 현 정부를 5공식 독재라면서 그들 식의 공세를 거세게 펼치고 있었다. 게다가 불교계와 환경단체에서는 자연 훼손에 대한 생각으로 강렬하게 정부의 4대강 사업을 반대하고 있는 분위기였다. 현은 그 일에 대하여 나름대로의 개인적 생각은 하지만 평행선으로 치다르며 국론이 분열되는 듯한 모양은 아니란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현이 살고 있는 이 소도시는 선사 시대부터 존재한 고대 도시의 역사적 전통을 가지고 있었고 신라 시대에는 북방의 고구려의 침범을 막아내는 첨병 역할을 했던 중요한 요충지였다. 신라가 통일 이후 귀족들의 골육분쟁과 이권 다툼으로 서서히 천년 왕국이 기울어져 갈 때 이곳 근처의 가은에서 아자개의 아들 견훤이 왕을 칭하여 멀리 전라도 지역으로 옮겨 후백제를 세우고 멀리 경기도 철원 지방에서 신라 왕국의 후손인 궁예가 태봉이란 나라를 세웠고, 궁예의 측근이었던 왕건은, 해괴한 미륵 신앙에 심취하여 여러 이름으로 국명을 바꾼 궁예를 대신하여 결국 역사에서 기록되었 듯이 왕건은 후백제의 견훤을 굴복 시켰고,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귀순으로 고려를 세웠다. 신라가 당나라의 힘을 빌려 원산 이남의 삼국통일을 하고 그 이후 당나라의 위세를 함께 물리쳐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일과 왕건에 의한 지방 토호 세력과 함께 고려를 세움으로써 명실상부한 한반도의 단일 국가 형성은 그 성격이 조금은 그에 대한 느낌이 다를 수도 있는 점이다. 현이 살고 있는 이 고대도시이자 지금 그렇게 화려하게 큰 도시로 성장은 되지 않았지만 그런대로 현이 살고 있는 고대 도시는 역사에서 특히 과거부터 대단한 지역이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었다. 지금 나라는 20여 년 전부터 지방화 정책을 실시하여 우리나라는 과히 지방 축제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고 그 지역의 경제적 인프라 구축에 중앙 정부와 치열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4년 전 새로 출범한 현 정부는 4대강 사업을 국가적 사업으로 확정하여 한강, 낙동강, 영산강, 금강을 집중적으로 친환경적 환경을 위하여 대대적 4대강 사업이란 국가적 대 정비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다. 현이 있는 이곳 소도시에서도 비로소 강다운 낙동강이 시작되는 곳으로서 일찍이 신라 이전에 고대 부족 국가 형태의 옛사람의 살아갔던 유물이 대규모 도로 사업을 하면서 그 이후 발굴 작업이 이루어져 그 성과가 옛 이곳의 역사적 삶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신라에 병합되기 이전의 사벌국의 존재가 학계에 알려지게 되어 비상한 관심을 보이는 지역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이즈음에는 ‘사벌국 보존회’를 결성하여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에도 발굴 밑 유적 보존을 위한 대대적 운동을 펼치고 있다. 지방 자치제는 지방의 재정 자립도가 늘 중앙 정부에 의해서 통제되곤 하여서 지방 정부의 의도대로 그 사업의 필연적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그 사업을 계속할 수 있는 재정적 문제가 걸림돌이 되어서 순탄하게 진행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나 지방의회는 조직 되었고 지방의 대표자들은 세비 문제를 거론하면서 지역민의 비난을 늘 받곤하지만 그들 지자체 의원들은 해외 선진지 시찰이라는 명목으로 잦은 나들이로 인하여 지역민들의 원성을 사기도 하였다. 그 상황에서 지역 신문은 우후죽순처럼 만들어져 작은 시골 소도시에서 과잉공급으로 인하여 신문사마다 재정적 시달림에 곤경을 맞고 있었다. 현이 처음 이곳 지방 신문에 일자리라고 찾아와서 시청의 언론 브리핑을 받으면서 적어도 많은 재정적 부담을 견디고 있는 신문은 적어도 어떤 큰 컨소시엄으로 선의의 통합을 절실히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작은 도시에서 일어난 사건들은 그 자체가 지역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치기 때문에 조그만 지역 기사일지라도 어떤 특정인을 향한 기사는 사실 보도하기에 힘이 드는 경우가 많았다. 그것은 농경사회로 이루어진 이 지역의 전통적 관습이었다. 현이 그 날 새로 발굴된 용암마애불을 기자로서 처음 찾아갔을 때 이곳저곳은 낙단보 공사로 분주한 모습이었다. 대형트럭은 끊임없이 이어졌고 여기저기 공사에 투입된 사람들이 일에 몰두해 있는 광경이 먼저 눈에 띄었다. 현이 현장에 가서 확인한 결과 마애불은 연꽃을 받침대로한 좌상 형태로 매우 부드러운 음각으로 만들어진 고려 초기불 형식의 마애불 좌상이었다. 그런데 인부의 실수로 부처님 뒤의 광배 부분의 왼쪽에 깊게 구멍이 뚫려 버렸다. 그 동안 도로 밑에 깊숙이 들어 있으면서 지축에 시달려서인지 이곳저곳으로 금이 간 부분이 많이 균열되어 있었다. 새로 마애불이 발굴되었다기보다는 일제 시대 산미 증산 계획으로 급하게 만들어진 신작로에 함부로 매장되었다가 이번 4대강 사업에서 발견된 것이라고 현은 생각했다. 멀리 맞은편으로 이 지역의 진산격인 나각산이 정면으로 눈에 들어왔다. 나각산에는 예로부터 전해지는 이 마을의 전설이 있었다. 그 곳에는 마고할미가 살고 있었다고 한다. 천 년을 사는 신통력을 갖춘 마고할미가 어느 날 무언가에 홀려서 자신의 수명을 빼앗길 운세에 처했을 때 큰 돌을 안고 굴에서 나가지 않으려고 하다가 결국 하늘의 신선에 의해서 마고굴에 갇혔다가 간신히 그 위기를 헤쳐나간 뒤에 그 굴을 다녀간 마을 사람들이 자식을 보았기에 그 마고할미 굴을 새 생명을 얻는 영험 있는 곳으로 마을 사람들에 의해 신성시하고 기도를 드린 곳으로 전해져 왔는데, 어떤 행패스런 인사가 그 돌을 치워 버렸다고 전한다. 하여튼 지금 현이 서있는 마애불상에서 바라보면 바로 나각산의 한 곳을 집중적으로 향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헤아릴 수 있었다. 그래서 현은 마애불이 있는 현재 있는 자리와 멀리 마고 할미의 굴과의 깊은 연관성을 생각해 보았다. 균열이 여기저기 나있는 원만 구족한 연화 받침대 위의 고려 초기 불상은 비록 어떤 노동자에 의해 광배 부분에 구멍이 났지만 그런대로 오히려 얼굴이 예쁜 여자 같은 어여쁜 모습까지도 엿볼 수 있는 부처님의 경외의 모습보다는 예쁜 상호였다. 언덕 아래로 강물은 붉고 탁하게 흐르고 있었다. 근처로는 조선 시대 유학자들이 모여서 시회를 열었다는 관수루가 지역 독지가에 의해서 복원되어 시원하고 정취있는 풍경으로 웅장하게 세워져 있었다. 그 근처는 오랜 세월 동안, 오늘날의 낙단교가 세워지기 전에, 낙동과 낙정을 이어주던 목선이 있어서 나루터의 역할을 한 곳이다. 그 시절 나루터는 동네의 많은 장삼이사들이 모여서 기생들과 술추렴을 하면서 사람들의 활기가 넘치던 곳이었다. 강에서 잡아 올린 뱀장어와 잉어들이 지천으로 그 시절의 술 안주감으로 술상에 올랐던 시절이었다. 자연히 나루 근처에서 사람들은 장사를 했고 나름대로 시끌벅적한 사람들의 소음으로 파시를 이루던 곳이었다. 양정으로 향한 길은 도청 소재지가 있었던 대구로 향하는 길이었고, 마애불이 있는 용암 바위 길은 인근의 의성으로 통하던 길이었다. 옛날 신라시대부터 이곳은 상주 지역이었다. 의성을 가기 전에 있는 비록 면단위 마을이지만 안계는 근처에서도 이름난 곡창지대로 특히 대단히 번성한 장을 이루던 곳이었다. 그리고 안계는 벌이 넓어서 무진장한 벼농사의 중심이 되는 곳이었다. 하여 일제 시대 이 곳 용암 바위 근처를 통하여 일제에 의해 산미 증산 계획에 의하여 함부로 산의 옆을 절단하여 도로를 만들었던 모양이다. 그 때 이 마애불상이 땅 속으로 묻혀 버린 듯했다. 일제는 1920년대 두 번에 걸친 산미 증산 계획을 강압적으로 해서 이 땅의 좋은 쌀을 저들의 일본땅으로 날랐다. 그 결과 일본 내의 농민들이 자신들 농업의 경제적 취약성으로 인한 반발로 결국 그 산미 증산 계획은 ‘30년 이전에 폐지돼 버렸다. 고려 초기에 조성된 용암마애불의 광배 부분이 공사장의 부주의로 파손이 된 뉴스는, 결국 조계종의 총무원장과 주요 간부급 스님들로 하여금 대규모 대정부 집회를 하게 하였고, 그 이후 문화재청장과 정부 내 고위인사가 시위중인 스님들 앞에서 복원상의 잘못을 인정하고 마애불상을 원래의 자리에서 문화재로 지정하여 소중히 할 것이고, 또 하나의 장군 보살상을 발굴하는데 전문가를 통해 철저히 발굴할 것을 발표하면서 스님들의 시위는 하룻만에 끝이 났었다. 지방 신문이며 방송에서도 그 사실에 대한 보도가 계속 이어져 하마터면 4대강 사업에 대한 반대 시위로 번질 뻔하기도 한 일들이 이어졌다. 현지 지역민들에 대한, 과거 이 마애불상의 존재에 대한 불교계 신문들의 취재 열기도 더욱 관심을 고조시켰다. 신라는 골품제도에 의한 왕족의 사치와 방탕이 AD 8C를 전후하여 왕권을 쥔 진성왕 이후 중앙집권적 권위가 실추되면서 여기저기 반란이 계속하여 발생하여 백성들은 귀족에 의한 착취뿐만 아니라 비적의 무리들에게 시달리게 되면서 그들의 곤궁함은 초근목피로 겨우 연명하는 시대로 이어졌다. 그리하여 상주의 가은지방에서 신라의 군인이었던 견훤이, 신라 왕족 출신인 궁예가 도탄에 빠진 백성을 위기에서 구출한다는 대의를 내걸고 수많은 추종자들을 동원하여 본격적인 천년 사직의 신라를 향한 저항 운동을 통하여 새로운 왕국을 세우기 시작하였다. 반란군인 견훤의 무리에 휩쓸려 함께 신라에 저항했던 사람을 아버지로 두었던 승려 효각(曉覺)은, 그 어려운 시절에 태어났었다. 천 년 역사를 지켜온 신라는 이제 사직을 유지하기에는 힘이 너무 빠져 버렸다. 곳곳에서 민란의 빈번한 발생으로 백성들의 삶은 풍전등화였고 그 목숨이 초로와 같은 누란지위의 시절이었다. 효각의 아버지는 견훤 무리의 중간 무장이었는데, 왕건과의 전투에서 그만 장열하게 이승을 하직하고 말았다. 그 이후 효각의 어미는 두 남매를 데리고 마을의 궂은 일을 마다 않고 열심히 살고자 했으나, 그것도 일철이 지나면 추운 겨울을 맞으면서 의식주 해결이 어려워지자, 근처의 절로 들어가 공양주보살로 들어가 두 남매를 키웠고, 결국 효각은 그곳에서 사미계를 받고 스님이 되었다. 그것은 운명 같은 것이었다. 함께 한 어미와 누이의 품을 떠나 효각은 전국의 사찰을 돌면서 스스로의 불심을 닦아 나갔다. 효각이 단밀의 만경산 자락에 있는 절을 찾은 것은 이미 궁예며 견훤 세력이 왕건에 의한 개성 세력으로 변하고 있을 때였다.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도 아들인 마의 태자의 간절한 탄원에도 불구하고 신라 백성을 지키기 위하여 천 년 사직을 새로운 개성의 왕건에게 귀순하였다. 그리고 경순왕은 왕건의 사위가 되었다. 그 이후 비운의 마의태자는 사직을 잃은 슬픔으로 금강산으로 들어갔다. 효각은 아비가 견훤의 수하에서 일을 하고 그 일로 하여 목숨을 잃었지만 개성 출신의 왕건에게 은근히 마음을 두고 있었다. 효각에게는 그것이 늘 마음 속의 어떤 알 수 없는 일로 풀리지 않는 마음의 갈등으로 남았다. 일찍이 진성여왕 시대, 시무 10조라는 글을 써서 무너지는 골품제도의 부당성과 흐트러진 민심을 수습하는 간곡하고 절박한 고운 선생의 탄원에도 불구하고 천년을 이어온 신라는 서서히 저무는 황혼기를 맞이하고 있을 때, 고운 최치원은 송도의 왕건을 은근히 찬양하는 글을 발표한 적이 있었다고 효각은 들은 적이 있었다. 아비가 견훤 수하에 있었으며 그로 인하여 전쟁터에서 세상을 하직하였으면 응당 효각 역시 견훤을 숭모하는 것이 인간적 도리겠으나 효각은 송도의 왕건에 대하여 은근히 존숭의 마음을 느껴왔다. 만행을 하면서 들은 그 당시의 백성들의 여러 갈래 어지러운 시대에 대한 의견이 있었는데 여기저기 많은 대다수의 중생들은 왕건을 지지하고 있었다. 게다가 왕건은 각 지역의 호족들과 왕씨 집안 간의 혼인을 통해 지지 세력을 넓혀 나가고 있었다. 효각은 드디어 용바위 근처의 작은 암자에서 시대의 혼란과 자신에게 지워진 삶의 근원을 깨치기 위하여 용맹정진의 장좌불와 참선에 들어갔다. 현은 용암마애불에 대한 르뽀 기사를 쓰기 위하여 인근의 나이 많은 할머니들을 찾아 다니면서 마애불에 관련된 역사를 찾기 시작하였다. 대체로 일제 시대를 살았던 연세 지긋한 할머니들의 공통된 이야기는, 옛날의 마애불은 마을 사람들의 경외의 대상으로 모셔져 일제 시대에도 존재해서 집안의 어려운 일을 해원하기 위하여 맞은 편 모래사장에 돗자리를 깔고 소원을 빌곤 했었다는 증언을 들었다. 집안의 길흉사를 절대적 존재인 마애 부처님께 빌었다는 사실을 현은 현지답사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 마을 사람들의 절대적 구원의 대상으로 모셨던 마애불상이 어느 날 사라져 버렸다. 그것은 일제에 의한 강제적 산미 증산 계획으로 인한 일제 총독부의 우리 민족 문화에 대한 경원시로 그러한 참혹한 결과를 가져왔다. 일본 총독부는 질 좋은 양질의 조선 쌀을 일본으로 실어 나르기 위하여 강압적인 신작로 공사를 강제로 실행하여 조선 문화 훼손을 단지 그들 제국주의적 침략을 정당화하는 악랄한 전시에 사용할 양식을 갖추기 위하여 식민지 소설의 산하를 여러 악랄한 방법으로 잔인하게 유린하였다. 그 때 신작로 공사로 인하여 천여 년 전에 조성된 우리 민족의 뛰어난 문화재가 일제에 의한 마구잡이식 신작로 공사로 인하여 용암마애불이 매몰된 사실이 엄연한 역사적 사실로 드러나게 되었다. 현은 의성 군청의 문화관광과에 들러 마애불의 존재에 대한 첫 파악이 이루어진 시점을 알아 보았다. 눈빛이 순한 담당 직원은 매우 친절하게 그 동안의 마애불 실상을 자세하게 현에게 알려 주었다. 군청에서 마애불의 두부 부분이 발견되면서 군청 담당자는 군수의 직인으로 마애불 보호를 위하여 공사 책임자에 대한 그 부근 일대를 보호해 달라고 공문을 벌써 여러 번 보냈다고 했다. 그러나 공사 책임자는 그 공문을 철저히 무시하고 공사를 감행하다가 이런 사태를 발생시키게 되었다고 군청 직원은 공무원다운 정확한 저간의 사실을 말하면서 전국으로 흘러나간 뉴스를 걱정하는 얼굴을 지어 보였다. 현이 군 청사를 나와서 다시 용암마애불이 있는 곳을 찾았을 때, 근처 마을에서 청년 몇 명이 텐트를 치고 마애불 보존을 위한 자원 봉사자를 자임하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마애불 앞으로는 큰 차단막을 쳐서 일반인들의 접근을 통제하고 있었다. 강의 여기저기로 줄을 이은 대형트럭이 강에 쌓인 퇴적물을 운반하는 분주한 광경을 보다가 현은 신문사로 돌아왔다. 효각은 밤낮으로 그 혼란한 시대에 희생된 가여운 중생들에 대한 화평에의 기원과, 효각 자신에 매달린 삶의 근원적 문제를 화두로 하여 정진하였다. 그 어느 날이었다. 잠시 암자의 토굴을 빠져나와 지친 심신을 아무런 생각 없이 서서 무연히 여름날 아침의 청정한 대기를 마주하고 있을 때였다. 바로 눈 앞에서, 작은 떨켜나무가 눈시울로 비쳐들면서 나뭇잎 사이 가지에 거미가 쳐놓은 거미줄이 안광으로 밀려 들어왔다. 이미 거미는 포획한 곤충을 먹어버렸고 앙상한 껍질만 거미줄에 대롱대롱 그 흔적만 남은 것이 안광으로 강하게 밀려들었다. 효각은 불현듯 그것을 보면서 자신이 바로 거미줄에 갇혀버린 불쌍한 곤충 같은 존재로 느껴지면서 온몸이 부르르 전율에 휩싸였다. 그렇다면, 그 운명처럼 갇힌 세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무엇이란 말인가! 효각은 마음의 눈이 뇌성벽력같이 환하게 밝아오는 깨달음을 느꼈다. 그래, 중생이, 구도자가, 깨우쳐야 할 것은, 번뇌와 오욕칠정이 바닷물만큼이나 출렁이는 속세의 번민의 세계에서의 깨달음의 지혜란, 거미줄처럼 얽어 매인 운명의 실에서 벗어나야 함을 효각은 천둥과 같은 대오각성으로 도를 깨친 것이었다. 그날 이후 효각은 행운유수의 운수납자로 중생이 살아가는 저잣거리로 나섰다. 불교에서 말하는 카르마, 즉 업(業)은 현생에서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전생에서 유래한 업은 그야말로 거미줄처럼 그 한 인간의 현생에 걸려 있는 문제일진데, 효각은 자신이 처한 변화하는 그 시대에 대하여 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운명적 일임을 아프게 깨달았다. 도처의 대중들은 도탄에 빠져서 신음하고 있었다. 어느 날, 깊은 산길에서 여러 무리가 떼를 지어서 승려인 효각의 바랑을 뒤질 때에도, 효각은 그들 도적을 위하여 참으로 마음 속에서 우러나는 축원을 해 주었다. 골품제도에 깊이 빠져든 귀족층의 사치하고 방탕한 풍조에서 신음하는 그 시대의 민초들은, 너무나 깊은 시름에 겨워 죽지 못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도처에 그러한 모습을 보는 효각의 마음은 아팠다. 그리하여 덧없는 행운유수의 운수납자의 세월을 보내고 그가 처음 득도한 암자로 돌아와서 그 날부터 큰 화강암 바위에 부처님의 상호를 음각하는 지난한 작업을 결심하였다. 암각에 원만구족한 부처님 상호를 새기는 작업 전에 먼저 효각은 온몸을 깨끗이 씻고 향을 사루면서 부처님을 향한 일념을 곧추 세워 조금씩 조금씨 작업을 해나가기 시작하였다. 처음 부처님 상호를 어떻게 형상화하는가 하는 문제로 여러 날을 효각은 깊이 궁구하면서 수천 번의 참배를 올리면서 자신의 마음 속 불심의 끈을 도사려 잡았다. 작업이 진척이 되지 않을 때는 토굴에 들어가 면벽하면서 부처님의 가피력을 간절히 빌기도 했다. 그리하여 부처님 마음이 효각 자신의 마음으로 스며드는 무아의 경지에서 바위에 상호를 그려 나갔다. 현이 그 동안의 용암마애불에 대한 기사문을 사진과 함께 편집국장의 데스크에 올리자 얼마 전의 사장과의 언쟁으로 아직도 부어 있는 편집국장은 얼굴 표정을 풀지 않은 채 O.K사인을 해 주었다. 현은 자리로 돌아와 자신이 기록한 기사를 다시 한 번 자세히 읽어 보았다. 현은 이 소도시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지방신문의 기자인 자신의 현재를 떠올리며 씁쓸한 마음이 마음의 한 부분에서 서서히 의식되면서 갑자기 자신의 존재 자체가 헛헛해졌다. 언제나 변방에 유배 나온 듯한 자신이 어쩌면 더욱 그런 마음으로 빠져들게 하는 것인지 모른다. 서울에서도 이름이 있는 대기업체의 노조일을 하다가 현은 직장을 떠나게 되었다. 하여 고향인 이 작은 소도시에서 선배의 주선으로 신문사 일을 보게 되면서 이곳 사람들의 살아가는 생활 방식을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체득하였다. 대체로 보수적이면서 농경을 중심으로 살아온 이곳 소도시는 대체로 계모임을 통해서 서로 간의 길흉사를 상부상조하는 옛날의 풍습을 엄격히 지키며 살아가는 곳이었다. 그렇게 살다보니 자연 이웃들이 큰 원환처럼 관계되어진 소도시민들의 삶의 공통된 모습이었다. 소도시이면서도 닷새마다 열리는 장날이 되면 이 지역의 가까운 인근 사람들로 붐비고 특히 풍물 시장이라는 곳에서 서민들의 물건을 사고 파는 현장에서는 아기자기한 이 곳 사람들의 삶의 따뜻한 모습들이 아직도 전통적인 경향을 짙게 풍기고 있었다. 그런 날이면 시장의 돼지고기 집에서는 고기 삶은 구수한 냄새가 시장 전체로 가득 차올라 시장 사람들의 입맛을 돋우기도 하였다. 대체로 푸성귀며 반찬용 향미료가 그 시장 전체의 주요 품목이었다. 현은 그런 시장이 열리는 날이면 그들과 더불어 돼지국밥을 먹으면서 이곳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들과 마음으로 가까워지기 위하여 현 자신의 마음을 기울이곤 하였다. 이따금 낮술의 소주도 반주로 곁들여 마신 날은 근처의 남산에 올라서 이곳저곳의 시내 전체를 조망을 하기도 하였다. 남산은 시민 공원처럼 둘레를 걷기 편하게 하기 위하여 일주 도로까지도 만들어 놓았다. 국궁을 하는 활터가 있었고 이 지방과 관련이 깊은 서애 류성룡의 유허비도 자리를 하고 공원 이곳저곳으로 시민들이 운동을 할 수 있는 시설과 쉴 수 있는 의자들도 도처에 설치해 놓은 곳이었다. 평화로운 이곳의 생활의 모습은 언제나 현의 마음을 푸근하게 하였다. 다만 시의 경제적 주름을 펴게 하는 기업 유치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이 소도시의 살림살이는 그렇게 풍요롭지 못한 것이 이곳 사람들의 시름이라면 시름이었다. 이곳 사람들의 뇌리에 박혀있는 삼백 즉, 쌀, 누에, 그리고 곶감이 이곳 사람들의 주생산물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전근대적 농산품은 그렇게 이 고을을 풍요롭게 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때마침 상주보와 낙단보 공사를 통한 현 정부의 4대강 살리기 사업은 이곳 마을을 위해서는 조금은 다행스런 일이었다. 많은 크고 작은 기업들이 이 사업의 하청을 따내서 소도시 사람들의 살림살이를 조금은 주름을 펴는 계기가 되게 할 수 있었다. 밤낮으로 효각은 화강석에 심혈을 기울여 언젠가 들렸던 서산 삼존불과, 영주 가흥리의 삼존석불을 떠올리며 자신의 부처를 향한 일념을 담아서 작업을 해 나갔다. 효각은 자신의 삶 존재 전체를 마애불에 혼신으로 담아나갔다. 그 일은 효각에게 불도에 귀의 한 중생을 계도하는 납자로서의 온마음의 총화였다. 서서히 부처님의 상호가 드러나면서 효각은 더욱 마음의 끝을 한 마음에 담고서 조금씩 조금씩 형상화해 나갔다. 이따금 나각산 정상의 바위굴에 살았다는 마고할머니의 굴을 바라보았다. 강은 예나 지금이나 억겁으로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사람은 불심으로도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지만 강물은 언제나 사람살이의 지극히 필수적인 물을 풍부하게 가지고 흘러가고 있었다. 효각은 영원히 흐르는 강물처럼 모든 사람들이 흠모할 영원한 부처님 상호를 조성하는 일로 언제부터인가 어렴풋이 생각을 하기도 했다. 언젠가 본적이 있는 백제 시대에 조성된 서산 마애불상의 원만하면서도 푸근하게 잔잔히 웃는 그 부처님의 상호를 머릿속으로 떠올리기도 했다. 효각이 조성하는 연화 받침대위의 부처님 상호가 잔잔한 웃음을 머금는 것도 그런 인연에서 유래되었는지 몰랐다. ‘일체유심조’의 초발심으로 효각의 손끝에서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 부처님 상호는 효각의 마음을 더욱 가파르게 옭죄는 숨을 멈춘 듯한 긴장을 가지게 하였다. 새벽의 부우연 여명이 안광으로 느껴지는 때 효각은 작업을 멈추었다. 효각은 이마위로 흥건히 흐르는 땀을 장삼 자락으로 닦아냈다. 마음은 너무나 평안했다. 효각은 굴을 나와 멀리 나각산 쪽으로 시선을 돌려 바라보기 시작하였다. 마고 할미굴을 향하여 두 손을 모아서 합장을 올렸다. 중생들의 생명에 대한 외경과 구원을 생각하며 효각은 간절한 기원을 드렸다. 현이 올린 용암마애불에 대한 그간의 기사를 내보내자 경향 각지의 신문사에서 그에 대한 기사의 문의가 계속하여 신문사 전화기로 이어졌다. 때마침 병인양요로 프랑스에 가있던 조선의궤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증폭되면서 현이 기사화한 용암마애불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는 한 계기가 되었다. 현은 그 동안 자신이 직접 발로 뛰어서 현장 주변에 관계된 내용을 가능한 자세하고 친절히 알려 주었다. 사장 역시 지방 신문에서 낸 기사에 대한 경향 각지의 여러 곳에서 문의가 이어지자 매우 만족한 눈길을 현에게 쏟았다. 현은 풍물 시장에 들러 대낮부터 순대를 씹으면서 소주를 야금야금 마셔댔다. 시장 주변은 가난한 시골 할머니와 아주머니들이 푸성귀를 펼쳐놓고 한낮의 뙤약볕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앉아 있는 모습을 현은 쓸쓸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그 마음은 종이 상자를 실은 리어커를 힘겹게 끄는 노인들의 모습을 시내에서 목격할 때 느끼는 연민과 같은 마음이었다. 그들의 작은 수입이 바로 생활이었다. 현은 근처의 임란 전적지가 있는 북천교를 건너 경내로 들어섰다. 왜적이 상주로 진입할 때 불과 800여 명의 의병과 관군으로 장렬히 순사한 선조들을 모신 곳이었다. 현은 돌계단을 올라서 위령각에 가 참배를 드렸고 천천히 북천교 쪽으로 시선을 던지니 근처의 아름다운 정경이 오히려 나라를 위해 아까운 목숨을 내던지신 영령들을 생각하니 더욱 쓸쓸함에 젖는 자신을 느꼈다. 선비들이 시회를 열었던 침천정, 그 시절의 사신을 맞이했던 상산관, 그리고 동학으로 목숨을 잃었던 한이 서린 태평루가 보였다. 현은 역사의 흐름을 늘 이 임란전적지에 오면 절실하게 느끼곤 하면서 나라를 위해 의로운 목숨을 던지신 선령들에게 추모의 마음이 솟구치는 애달픔을 생각하고 머리를 숙이고 추모의 마음을 드렸다. 이곳 소도시는 그런 추로지향의 고을, 그리고 충절이 살아 숨 쉬는 곳이었다. 북천교 아래로는 때마침 방학을 맞이한 어린아이들과 어른들이 요란스럽게 뒤엉켜서 여름 더위를 식히고 있는 모습이었다. 시에서는 몇 년 전부터 북천교 아래에 아이들을 위한 강수욕장을 설치하여 도시 서민들의 아이들 물놀이를 즐기는 장소로 만들어 놓았다. 폭염을 피하기에는 다리 밑이 금상첨화의 최적의 공간이었다. 그리고 후천교에서 이 고을의 고찰 남장사에 이르는 이른바 MRF길에는 벚나무를 심어서 멋진 걷기 운동을 하게 하는 절경을 이루고 있었다. MRF란 M(Mountain), R(River), F(Field)를 일컫는 말로서 시민들의 슬로 시티 운동을 위하여 특별이 만든 열서너 곳의 걷기에 좋은 산, 강, 들을 끼고 건강과 레져를 위하여 걷는 길이었다. 참으로 이곳 소도시의 싱싱하고 아름다운 길이었다. 그리고 시내의 중심지 길의 이름을 삼백로로 하여 이 도시의 상징인 감나무로 가로수를 설치하여 삼백의 고장이라는 상징성을 가지게 힘을 쏟아 놓기도 했다. 바야흐로 시는 이곳 소도시의 특징을 한껏 아름답고 그윽하게 힘을 쏟아 부었다. 시내를 벗어난 곳에는 이 소도시의 옛 터전이었던 사벌에 박물관을 설립하여 전통 깊은 이 고을을 더욱 유서 깊은 곳으로 만들고 있었다. 현도 박물관을 취재하면서 이곳 소도시의 아스라한 오랜 역사의 깊은 내력을 조금은 알 수 있게 되었다. 박물관에 전시한 여러 유물이 도굴꾼들에 의해서 벌써 여러 곳으로 옮겨져 조금은 그 규모가 부족한 듯한 느낌도 있었지만 이 전통의 소도시를 위해서는 매우 뜻있는 일이기도 하다고 현은 생각했다. 박물관은 인근의 산천과 어울려 참으로 아름다운 공원처럼 서 있었다. 군데군데 연못도 설치하고 이곳 소도시의 여러 선조들의 삶의 흔적을 보여주는 많은 유적들을 야외 드넓은 잔디위에 친절히 알려주는 설치물도 이곳저곳에 있었다. 현은 박물관에 들어설 때면 마음의 평안함을 느끼곤 하였다. 그래서 현은 낙단교 공사장에서 발견된 용암마애불을 보면서 아득한 천여 년 전의 선조의 소중한 손길에서 탄생한 연꽃 위에 가부좌로 앉아 계신 부처님 상호의 모습에서 눈물겹도록 그윽하면서도 깊은 감동을 절실히 느꼈다. 그것은 단순한 유물이 아니었다. 어느 불심 깊은 스님이 중생을 구원하기 위하여 온몸을 다바쳐서 거룩하게 이루어낸, 천 년을 넘어서까지 오늘의 우리에게 전하는 따뜻한 부처님마음의 정화라고 현은 깨달았다. <끝>  
134 목련에 들리다/주진
편집자
3259 2011-06-30
11. 07월 14호 소설 <단편소설> 목련에 들리다 거울 속에 지난밤의 흔적이 있다. 옷들이 지친 여행자처럼 바닥부터 침대 위까지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나는 결국 흰 바지에다 검은 바탕 흰물방울 무늬 재킷을 입기로 했다. 무던하고 깔끔한 쪽으로 손을 든 셈이다. 할머니 상중임을 의식하여 검정 슈트를 입어보기도 했으나 이 봄날 십년 만에 만나는 그를 부담스럽게 할 것까지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내 몸매의 장점인 긴 허리선을 위해선 작은 꽃무늬 원피스에 볼레로를 걸치는 것이 마땅했다. 그러나 여성스러운 자태가 드러날수록 마음 한쪽에서는 가위표를 그어대며 말렸다. 그러다 지쳐버렸고 등잔을 택배로 부쳐달라고 할 걸 그랬나 싶기도 했다. 새벽녘이 되어서야 눈을 붙였다. 모닝콜이 간밤의 고민과 망설임에 종지부를 찍어 주었다. 나는 여느 날과 달리 벌떡 일어나 샤워를 했다. 머리에 롤을 말고 화장대 서랍을 뒤져 몇 년째 굴러다니는 파운데이션을 바르고 수분이 다 빠져 표면이 거칠어진 립스틱을 엣센스에 섞어 발랐다. 양쪽 입꼬리를 올려 미소를 만들어 본다. 눈가 주름이 서너 개 접히고 입가는 굵은 여덟팔자가 됐다. 몇 년째 화장대 뒤편으로 밀려난 채 선택받지 못하고 먼지만 뽀얗게 뒤집어쓴 술탄 향수를 집어 들었다. 늙은 술탄의 여인처럼 향기는 뿌릴 때뿐이고 방을 나서는 순간 사라지고 말았다. 일주일 전, 외할머니의 빈소에서 돌아오면서 나는 등잔을 되찾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이제 내게 혈육이라곤 어머니밖에 남지 않았다. 외할머니와 각별했다거나 특별한 추억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묘한 상실감이 있었다. 해가 갈수록 심해져가는 탈모증상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듯 희미해져가는 내 존재감이 쓸쓸했다. 그렇다고 그 상실감을 메우기 위해 등잔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시작은 순수했다. 오직 등잔에 담긴 의미를 기리려 했을 뿐. 등잔은 원래 외할머니 것이었는데 십 년 전에 문도에게 넘어간 상태였다. 내 손으로 넘겨주긴 했으나 이렇게 등잔과의 인연이 끝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등잔은 나무로 만든 등경에 백자등잔을 얹은 단순한 모양이었다. 예전에는 생활용품이었으나 요즘은 인테리어 소품으로 쓰이기도 하고 사찰이나 국립공원 기념품 매장에서 혹은 박물관에서도 볼 수 있는 평범한 것이었다. 대량 생산된 상품들과 모양은 비슷했지만 할머니의 등잔은 특별했다. 이제 유품이 돼버린 그것을 되찾아오는 것이 할머니에 대한 예의고 마음의 빚을 갚을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하자 더 미적거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막상 등잔을 되찾기 위해 문도의 소식을 찾아 나서자 마음은 뒤범벅이 돼버렸다. 그의 웃음과 습관과 걸음걸이가 떠오르고 함께 겪었던 일들과 그때그때의 감정들이 생생하게 살아났고 함께 봤던 영화와 드나들었던 술집이 스쳐가더니 결국 그의 근황이 참을 수 없이 궁금해졌다. 초심에서 벗어나지는 말자고 수시로 자신을 다독여야 했다. 주로 분위기를 환기시키거나 아이들을 집중시킬 때 혹은 수업을 마무리할 때 로토스를 꺼내곤 한다. 마치 오디세우스가 항해 도중 만난 섬에 발을 내딛는 것처럼 한숨 돌리는 순간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콩알처럼 생긴 초콜릿을 나눠준다. 이건 연꽃의 열매인 로토스라는 건데 이걸 먹으면 세상 근심을 다 잊어버릴 수 있어.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다가 풍랑을 만나 어느 섬에 들르게 됐는데 그곳엔 로토스를 먹는 종족들이 살고 있었어. 그의 부하들은 섬사람들이 건네준 로토스를 먹은 뒤 고향을 잊어버리고 그곳에서 살겠다고 버티기도 했지. 초콜릿을 로토스라 믿는 아이들은 없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로토스를 입 안에 넣고 잊고 싶은 것들을 열심히 입 밖으로 내보낸다. 기를 써도 80점을 넘지 못하는 성적과 아침에 들은 친구의 욕설과 부모의 잔소리 같은, 불편하고 음울한 것들을. 아이러니하게도 그 망각의 열매는 옛 친구를 기억나게 한다. 문도는 대학 3학년 가을학기에 제대하여 복학했다. 그의 주머니 속에는 늘 콩알만한 커피색 초콜릿이 있었는데 그는 그것을 로토스라고 부르며 친구들에게 나눠주었다. 당시 전공선택 과목에 그리스 신화를 해석하는 과목이 있었다. 겉핥기로나마 리포트를 써내며 한 학기를 보내고 나면 신들의 이름이 친구 이름처럼 친근해지는데 문도의 로토스 역시 그런 공감대 위에 애교스럽게 받아들여졌다. 위태로운 열정을 위하여! 장밋빛 미래를 위하여! 문도는 씩씩하게 구호를 외치며 한 명 한 명의 입 속에 로토스를 집어넣어 주었다. 진부한 구호는 건강하고 낙천적인 그의 성격과 묘하게 어울렸고 로토스를 문 친구들의 입가엔 천진한 웃음이 절로 배어나왔다. 문도의 별칭은 자연스럽게 로토스가 됐다. 흔히 첫사랑을 상처와 함께 떠올리곤 한다지만 나는 로토스를 먹고 첫사랑의 아픔을 지웠다. 대학 졸업반 봄 학기가 시작될 즈음 첫사랑 애인과 헤어졌다. 왼손잡이였기 때문에 한동안 내 입술의 오른쪽은 담배 독으로 거무스름했고 혀와 입천장의 오른쪽 부위 역시 알코올로 절여지고 있었다. 나는 동기들보다 다섯 살이나 많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3,40대 여자들과 함께 휴대폰 생산 라인에서 일하며 4년을 보내고 난 뒤에야 대학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시력이 약한데다 작은 부품들을 조립하고 미세한 결함을 찾아내느라 눈이 더욱 나빠진 것도 하나의 이유였다. 뒤늦게 시작한 대학생활이었지만 보람 있게 보내지는 못했다. 학우 관계는 어정쩡했다. 사교적이지도 못하고 융통성도 없는데다가 나를 누나 언니로 부르는 동기생들과 섞이는 게 어색하고 불편했다. 곧 연애에 빠져들었고 학교 밖에서 맴돌았다. 헤어진 뒤에는 누구로부터도 위로받지 못했다. 대학 졸업반의 봄날이 지나가고 있던 어느 날, 수업을 끝내고 밖으로 나왔을 때 문도가 벤치에 앉아 있었다. 강의실 건물 앞 벤치는 과 학생들이 곧잘 모여 앉아 노닥거리는 곳이었다. 벤치 뒤로 수수꽃다리가 한창이었다. 그가 대뜸 말을 걸어왔다. “사랑이라는 놈이 어떤 맛을 가지고 있는지 맛 좀 볼래?” 무슨 헛소린가 하여 그냥 지나치려는데 그가 수수꽃다리 잎새 하나를 따더니 조그맣게 되도록 몇 겹으로 접어 내게 건넸다. “어금니로 콱 씹어야만 해.” 황당한 주문이었지만 그 황당함에 이끌려 나는 그것을 입안 깊숙이 집어넣고는 어금니로 깨물었다. 순간 혀를 마비시키는 쓰디쓴 맛에 몸서리가 쳐졌다. 그는 기다리고 있었던 듯 킬킬킬 웃었다. “그건 첫사랑의 맛이야. 이제 이걸 먹어봐.” 쓴 맛을 수습해야겠기에 따지고 자시고 할 겨를 없이 그가 건네준 콩알 같은 초콜릿을 냉큼 받아먹었다. “이건 망각의 씨앗이야.” 단 맛이 퍼지면서 쓴 맛을 몰아냈다. 그렇게 농담처럼 첫사랑이 지워지고 로토스에 서서히 취해갔다. 로토스. 입에 넣어 봐. 이빨을 사용해선 안 돼. 가만히 혀 위에다 얹어 두는 거야. 소화기관이라곤 혀와 침밖에 없다고 생각해. 침이 잘 나오려면 마음이 편안해져야 하지. 네 마음을 혀와 침에다 갖다 놓으렴. 이제 침과 함께 서서히 녹기 시작할 거야. 처음엔 달콤하지만 마지막엔 씁쓰레한 맛. 숨을 깊게 들이쉬면 그 향기가 온몸 구석구석으로 퍼져갈 거야. 한 번, 다시 한 번. 사람의 혈관을 한 줄로 이어붙이면 지구를 두 번 반이나 감을 수 있다는데 향기가 그 혈관을 한 바퀴 도는 시간은 1분도 안 걸려. 머리끝부터 발끝 손끝까지 다 퍼지면 너는 현실과 기억에서 벗어나고 네 몸은 해변의 소금기 머금은 바람을 맞고 있거나 피톤치드가 뿜어져 나오는 오후2시의 숲속에 있을 거야. 아이들에게 말하곤 했다. 사람에게 시달릴수록 자연 속에 있고 싶어 하고 그 속에서 에너지를 얻는다고. 그러나 나는 물속이나 숲속에서까지 내 모습을 보는 게 지겨워 어느 날부터 천변을 걷고 뒷산을 오르던 산책 코스를 버리고 대형마트를 둘러보거나 대학가를 돌았다. 소음으로 귀가 먹먹하고 눈앞의 정경들이 영상처럼 돌아가고 고기 굽는 냄새와 시궁창 냄새가 뒤섞인 거리를 걸어 다녔다. 광고판에는 그 날 밤에 있을 공연 포스터가 붙어 있고 보도블록에는 갖가지 홍보 명함들이 떨어져 있었다. 머뭇거리다 익명의 어깨들과 부딪쳤을 때 자신의 무게감에 놀라기도 했다. 쇼윈도 속 마네킹이 입은 원피스와 화장품 가게의 테스트용 립스틱을 구경한 다음 내가 걸음을 멈추는 곳은 테이크아웃 샌드위치 가게가 바라다 보이는 길목이다. 나는 뜨거운 철판 앞에 서 있는 여자를 오래도록 훔쳐본다. 여자는 손님의 주문이 떨어지자마자 옆에 놓인 스텐리스 통을 열어 다섯 가지 재료를 차례로 꺼낸다. 나는 재료가 놓이는 순서를 외고 있었고 여자는 단 한 번도 그 순서를 바꾸지 않았다. 완제품을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5분에서 6분 사이다. 여자의 손은 피아노를 치듯이 움직였다. 여자와 함께 꾸려가는 삶은 어떨까. 나는 종일 오이를 썰어 피클을 절이고 양배추를 썰고 소스를 만들고, 여자는 철판 앞에 서서 내가 만들어준 재료들을 이리저리 넣으며 샌드위치를 만드는 거다. 밤 열두시가 되면 가게 셔터를 내리고 뒷정리를 하겠지. 서로 어깨를 주물러준 뒤 술을 한잔 하는 것도 좋겠다. 상상을 하는 동안 손님이 끊기고 여자의 손놀림이 멈춘 것을 참을 수 없어서 우물쭈물 가게 앞으로 다가가 샌드위치를 주문한 적도 있었다. 집으로 돌아올 때쯤엔 어머니와 단둘이 이렇게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새삼 끔찍스러워지고 어떤 결단을 도모하는 심정이 목울대까지 차오른다. 그러나 주방에서 파자마 바람으로 마늘을 까고 있던 어머니가 대파를 사오라며 다시 등을 떠밀면 나는 대파를 향해 종종걸음을 걸어야 했다. 어머니는 대파같이 맵고 현실적이었고 나는 대파를 넘어설 수 없었다. 언젠가 했던 심심풀이 심리테스트에서 어머니는 귀가 얇아서 남의 말을 잘 듣는 유형으로, 나는 비현실적인 유형으로 결과가 나온 적이 있었다. 그 결과에 대해서마저도 어머니는 그것 봐라는 투로 나를 나무랐다. 그래서 결혼도 못 하고 궁상을 떨고 있지 않느냐고. 나 역시 어머니의 그 말이야말로 당신 귀가 종잇장만큼이나 얇은 것을 적나라하게 증명하고 있는 거라고 반박했다. 어머니와 나는 서로를 잘 알았고 상대의 단점에 관대하지 못했다. 문도의 연락처를 알아내는 것은 간단했다. 학과 사무실을 통해 알음알음으로 휴대폰 번호를 알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선뜻 전화를 걸지 못하고 망설였다. 그와의 마지막 만남 이후 묻어두었던 불편한 감정 때문이었다. 등잔을 건네주던 날이 마지막 만남이 될 줄은 그도 나도 몰랐다. 등잔은 그래서 뜻하지 않게 이별의 선물이 돼버렸다. 통화에 앞서 수십 번도 더 생각을 정리해야 했다. 바로 며칠 전 할머니상을 당한 손녀가 고가의 물건이 아닌 고작 할머니 손때가 묻은 등잔을 돌려받겠다는 건 결코 무리한 부탁이 아니다, 가까운 이를 잃은 슬픔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 물건으로나마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어느 누구라도 기꺼이 해줄 수 있는 일이지 않은가. 나는 휴대폰 폴더를 수차례 열고 닫으며 자신을 설득했다. 그러나 막상 통화가 됐을 땐 십년 세월이 무색할 만큼 싱거웠다. 문도는 스스럼없이 반가워했다. “야, 이게 누구야? 정말 오랜만이다. 어떻게 지내?” 어떻게 지내냐는 말에 나는 억누르던 감정의 둑이 무너지는 것도 모자라 그만 앞질러버렸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어.” 사실 넘어져서 그를 쳐다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당황스럽기는 그도 마찬가지였을 텐데 그는 그러냐며 조의를 표했다. 무던하고 배려 있는 성격이 그대로인 건지 사회생활 십 년차의 의례적인 언사인지 알 수 없으나 어쨌든 무연함이 누그러졌다. 할머니 얘기가 나와서 등잔 얘기를 꺼내기가 수월해졌다. 약속장소를 모교 앞으로 정했다. 알고 보니 사는 곳이 서로 반대 방향이었는데 어림잡아 모교가 중간지점쯤 되었다. “아직도 있나 몰라, 정문 맞은편 복사집 옆에 우리 잘 가던 찻집 말야.” 문도는 학교 앞에 안 가 본지 오래 돼서 모르겠다고 했다. “찻집이 없으면 정문 앞에서 보지 뭐. 그 날은 시간 잘 맞춰서 나갈게.” 그는 말끝에 의미 있는 웃음을 흘렸다. “그래, 이번엔 늦지 마라.” 그의 다짐을 확인하면서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시간을 잘 지키겠다던 그의 말에 왠지 김이 빠졌다. 단지 늦었기 때문에 우리 관계가 어그러진 것일까. 외할머니가 세상을 뜨던 날은 내가 우연찮게 신비스런 장면 하나를 포착한 날이었다. 어디까지나 어쭙잖은 내 시선으로 기존의 평범한 사실 하나를 포착했다는 것이지만 그 날의 포착은 내 영혼을 땅 하고 치는 각인이 있었다. 봄이 점점 짧아진다 하지만 예전부터도 내게는 인색한 계절이었다. 볕이 예사롭지 않아 밖으로 시선을 돌리면 벚꽃은 이미 눈이 되어 날리고 있고 성급한 목련은 행인들 발길에 즈려 밟히고 있었다. 마음먹고 봄옷을 꺼내 입은 어느 날엔 꽃들을 제치며 푸른 잎들이 성큼 화단을 덮었고 사람들은 반소매 차림이었다. 올봄, 오랫동안 해오던 논술 과외팀이 점점 줄어들어 한 팀만이 남아 있었다. 서른다섯 살은 무얼 시작하기에도 애매했고 결혼을 위해 남자를 만나기도 쉽지 않은 나이다. 안정된 직장을 가지지도 못했고 제대로 된 자격증도, 그럴싸한 이력도, 벌어놓은 돈도 없었다. 학원과 과외를 번갈아가며 그저 어머니와 나, 두 식구 먹고 산 게 전부였다. 그런 어느 봄날 아침이었다. 느지막이 일어나 물을 마시다가 베란다 쪽으로 문득 시선이 갔다. 창을 가득 채운 건 이제 막 터진 목련꽃 한 무리였다. 빛과 달리 꽃송이 하나하나에서 발하는 환한 기운이 모아져 애드벌룬처럼 커다랗게 원을 그리며 떠 있었다. 해가 없어도 늠름하게 밝을 순백의 기운이었다. “와아, 저게 뭐야? 엄마, 저것 좀 봐요!” “뭐?” 어머니는 노인복지관에 가려고 준비중이었다. 어머니는 아직도 스웨터를 벗지 못하고 분홍색 봄점퍼를 들었다놨다했다. 내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으나 어머니는 시큰둥했다. “저게 뭐 어떻다고?” 쯔쯔, 어머니는 혀를 찼다. 나는 창문 쪽으로 다가갔다. 목련은, 아니 목련이 뿜는 기운은 먼 데서 온 순결하고 너그러운 손님처럼 낯설고 신비로웠다. 내가 놓쳐버린 수많은 봄날에도 목련은 이 이층 베란다 창을 통해 거실을 들여다봤을 것이다. 목소리가 변하고 수염이 나기 시작한 사춘기 아이들과 밤늦게까지 씨름하고 자정 즈음 베란다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냉장고에서 한 달 묵은 사과 같은 얼굴을 보았을 것이다. 불면으로 한잔 두잔 마시기 시작한 소주가 병으로 비워지는 것도, 아침에는 술에서 덜 깬 상태로 학생 엄마들의 전화를 받는 것도. 아이들 수준은 초등학생들이 읽는 책을 소화하기도 버거운데 엄마들은 고등학생이 읽는 책들을 넌지시 열거하고, 시험기간이 되면 교과서 문제풀이를 해달라고 요구했다. 시험을 치르고 나면 팀이 깨지기 일쑤였다. 아이들이 농담과 핑계로 자신의 잘못을 눙치며 넘어가려 할 때마다 나는 잘못의 본질을 강조하며 역정을 내고 있었다. 아이들과 나는 줄다리기를 하는 것처럼 팽팽해져갔다. 해를 거듭할수록 가르치는 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확신이 들었다. 매사에 대해 너그러움이 사라지고 있었다. 어느 책에서 읽었던 글귀처럼 너그러움은 모든 일이 잘 풀릴 때에 퍼지는 온기일 것이다. 그런데, 너그러움이 눈앞에 있었다. 지친 새가 깃들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그때, 전화벨소리가 울렸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단다, 어머니가 다가와 소리 나게 베란다 창문을 닫았다. 쿵! 목련과 할머니는 아무런 관계도 없으면서 그렇게 묘한 인연으로 내 머릿속 한 귀퉁이에 자리를 잡아버렸다. 목련이 오고 할머니가 갔다. 숱한 생명이 오고 가는 길목에서 스친 사소한 우연에 불과했지만 아마도 나는 살아가면서 목련을 볼 때마다 외할머니가 생각날 것이다. 몇 군데 전화를 하고 서둘러 짐을 쌌다. 그리고 경황없이 어머니와 터미널로 갔다. 고속터미널로 가는 지하도 기둥을 에워싸며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명품 로베르또, 얼마 안 남았어요~, 만원부터, 로베르또로 땡잡으세요~ 몰려든 사람들 사이로 짝퉁 로베르또를 파는 남자의 소리가 울려나왔다. “무슨 로또로 땡잡으란다.” 어머니가 돌아보면서 말했다. 지하도는 무척 붐볐고 사람들과 부딪치지 않으려 애써야 했다. “가방이잖아.” 나는 그럴 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로또로 땡잡으러 무리 속에 끼어들까봐 어머니의 팔을 잡았다. “그래, 가당찮은 짓이다. 로또로 무슨 땡을 잡아.” 이미 로또에 대한 나쁜 기억에 사로잡힌 어머니는 들리는 말에서 쓰고 싶은 조각만을 주워들으며 조소를 날렸다. 어머니는 언젠가 로또가 5만원에 당첨되는 행운을 얻은 적이 있었다. 게이트볼 동호회에서 만난 장호씨가 선물로 준 것이었다. 그 사건 때문에 장호씨와 급속도로 친해졌고 한동안 내가 주는 용돈의 전부를 쏟을 만큼 로또의 마력에 흠뻑 빠져 버렸다. 물론 그 뒤로는 단돈 5천원짜리 행운도 건지지 못했다. 어머니 방에서 또 꽝이네, 하는 소리가 들리고, 박복한 년이 무슨 요행을 바라고 어쩌고 하는 익숙한 한탄이 뒤따라 나오곤 했다. 로또에서 더 이상 재미를 보지 못한 탓인지 장호씨와도 시들해지고 말았다. 할머니의 빈소가 있는 남쪽 지방도시까지 가는 동안 어머니와 나는 각자 그런저런 시시한 사념에 빠져 있었다. 할머니 얘기만 나오면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다고….’로 시작되는 어머니의 말을 듣는 것보다 딴청과 침묵이 나았다. 할머니 빈소가 마련된 곳은 어머니와 성이 다른 외삼촌 집이었다. 할머니는 어머니를 낳은 후 남편이 실종되는 바람에 상처한 박씨와 재혼했다. 주변의 눈총보다 먹고 사는 일이 더 문제였던 때였다. 나는 열 살 무렵 이후로 외가 왕래가 없었기에 친척들이 낯설고 불편했다. 핏줄로 보자면 할머니의 손녀였고 당연히 상제였지만 대하는 이들이나 나 자신도 서먹하기가 남남 같았다. 주방에서 여자들이 모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속에 끼지는 못하고 나는 뒤뜰로 이어지는 문간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눈으로는 길 건너 보이는 동백 밭을 바라보면서 여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얼마나 깔끔한 양반이었는지…. 뒤가 이렇게 깨끗할 데가 있나. 입던 옷가지랑 쓰던 물건들 다 싸봐야 상자 두 개가 고작이고, 팬티며 내복도 꼼꼼하게 접어 꾹꾹 쟁여놨습디다. 자손들 고생할까봐 수의며 상복도 미리 만들어뒀더라구. 덕분에 우리는 정말 편하게 일 치르고 있잖어. 생시에도 있는 듯 없는 듯하시더니 가실 때도 그렇고…. ” 어머니가 끼어들었다. “우리 어머니가 노상 등잔 밑에 앉아 있었던 게 기억나네. 밖에서 놀다가 어두워지면 멀리서도 어머니가 불을 켜 놓았겠거니 믿고 걸어가다 보면 틀림없이 희미하게 등잔불빛이 보였어. 방안엔 항시 석유냄새가 배어 있고 말이지. 벽이며 천장에 그을음이 생겨서 손가락으로 문대며 장난치다 혼나기도 많이 했지. 나중에 나를 보낼 때….” 어머니는 울컥 치미는 설움에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어머니는 여덟 살 때 남의 집으로 보내졌다고 했다. 도저히 생계를 이어갈 수 없었던 할머니는 딸을 남의 집에 보내고 당신은 박씨에게 간 것이다. 어머니는 이 부분 때문에 이때껏 할머니를 용서하지 못했다. “그 등잔을 보자기에 싸주며… 흐윽… 아버지 유물이 될지도 모른다고… 으으으… 얼굴도 못 본 아비 대신 가져가라고오오…. ” 할머니 영정 앞에서도 눈물을 안 보이던 어머니는 그제야 봇물 터지듯 울기 시작했고 주변의 여자들도 여덟 살 어머니가 불쌍해서 눈물을 훔쳤다. 그렇게 한 고개를 넘고 나서 어머니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등잔은 아버지가 손수 나무를 깎아 만들었다네. 내가 태어나기도 전이지. 손재주가 좋은 양반이라 어머니가 편케 이것저것 만들었다는데 남은 건 등잔뿐이라네. 자라면서 등잔불 켜고 책이라도 볼라치면 기름 든다고 양어머니한테 잔소리 많이 들었지. 이사 다니며 살다 보니 그것도 어디로 갔는지….” 나는 얼굴을 완전히 동백 밭으로 돌렸다. 이런 유래를 알았더라면 등잔을 문도에게 주진 않았을 것이다. 왜 하필 등잔이었을까? 선물을 주고 싶었다면 새롭고 좋은 물건들도 얼마든지 있었을 텐데. 나는 제풀에 얼굴이 붉어졌다. 거기엔 내 자신에게만은 속일 수 없는 은밀한 이유가 숨어 있었다. 농담으로 시작해서 진지함으로 끝나는 게 남녀의 관계라면 그가 농담 즈음에 있을 때 나는 혼자 서둘러 진지했던 셈이었다. 십년 전 겨울, 졸업식을 앞두고 나는 문도에게 선물을 주기로 결정했다. 결정이라는 단호한 절차를 밟은 것은 그만큼 신중했고 고민했다는 뜻이다. 도서관이나 수수꽃다리 앞 벤치거나 학과 사무실에서 우연히 마주치고, 점심을 함께 먹기 위해 시장통을 누벼 다니고, 단골찻집에서 담배를 나눠 피며 시간을 죽이고, 각자 다른 노선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에서 인사를 하는 일은 더 이상 없을지라도 문도와의 유대감을 이어가고 싶었고, 숙고한 끝에 그건 특별한 감정이라는 결론을 얻었으며 그래서 선물이라는 형태를 생각해 낸 것이다. 문도와 나의 관계에 지포라이터나 만년필 같은 선물은 식은 죽처럼 향기가 없었고 벨트나 지갑 따위는 뜨거운 죽 같았다. 통념의 가치와 기준에서 벗어난 것,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것, 무엇으로도 환산 불가능할 것, 선물의 의미에 대해 나는 오래도록 궁리했다. 내 마음을 더도 덜도 아니게 담고 싶으면서도 그대로 보여주기에는 자존심이 허락지 않는 모순된 갈등이 있었다. 그러다 눈에 띈 것이 등잔이었다. 등잔은 먼 시간이 주는 향수와 무용한 쓰임새와 희소성을 갖췄으며 경박하지 않고 내면적이었다. 문도와 나 사이에 놓였을 때 담백하면서도 메시지를 애매하게 담을 수 있는 선물로는 그만이었다. 나는 등잔이 할머니로부터 어머니에게 내림한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등잔을 특별히 소중히 여기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할머니를 마뜩찮아 하고 내왕이 뜸했던 것과 관계없이 그저 낡고 쓰임이 없는 물건 정도로 취급했다. 어떤 물건에 특별히 의미를 두는 편이 아니었다. 그래서 양은냄비나 소쿠리 등속과 함께 베란다 창고 신세였던 등잔을 몇 해 전 우연히 발견하고 내 방 화장대에 갖다 두었다. 나 역시 예스럽고 고상해 보여서 그랬을 뿐 할머니나 어머니의 내력까지는 미처 의식하지 못했다. 등잔으로 낙점이 되자 정성들여 닦고 한지를 사다 포장하고 문도와 약속을 잡았다. 포장해 놓고 나니 마음이 이상스레 설레던 기억이 난다. …… 솔직해지자면, 그건 일종의 프로포즈였다. 소극적인 프로포즈. 어차피 등잔은 다시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식탁에 파라핀유를 넣은 등잔불을 켜놓고 문도와 둘이 저녁을 먹는 상상까지 했었다. 등잔에 담긴 오랜 시간과 변치 않는 모양에 나는 심취했다. 등잔을 앞에 두고 밤마다 그를 생각하며 한 발짝, 한 발짝, 혼자 관계를 진전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 날은 유독 추운 날이었다. 전날부터 편도가 근질거렸기 때문에 미리 약국에서 항생제를 사먹어야 했다. 패딩코트에다 바지를 입었어야 할 날씨였지만 모직반코트와 스커트를 입고 부츠를 신었다. 포장한 등잔을 커다란 쇼핑백에 넣고 집을 나섰을 때의 기세는 눈이라도 녹일 듯했다. 약속시간은 오후 세시였다. 문도가 오전에 학원 수업을 받고 스터디를 해야 한다고 해서 넉넉하게 잡은 시각이었다. 점심을 먹고 나갔던가. 아마 제대로 먹지 못했을 것이다. 그와 함께 스테이크를 썰 작정이었다. 그즈음 학교 앞에 인테리어를 새로 바꾼 레스토랑이 있었는데 그 날 저녁을 보내기에 안성맞춤일 것 같았다. 원목마루와 패브릭 소파, 옹기와 목기 같은 소품이 있어 여느 집 거실처럼 아늑하고 따뜻해 보이는 공간이었다. 약속시간에서 30분이 지나도록 그는 오지 않았다. 나는 차를 시켰다. 한 시간이 지나자 그냥 갈까 말까 갈등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시 30분이 지나자 화가 났다. 또 30분이 지났고 오기가 생겼다. 만나기만 하면 따귀라도 올려붙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가 나타난 시간은 저녁 일곱 시였다. 일곱 시의 나는 그를 기다린다기보다 낙담과 절망적인 기분 속에서 망연히 앉아 있었다. 뭔가 어그러지고 있다는 참담함이 몸을 칭칭 감아 꼼짝할 수 없었다. 그는 느릿느릿 걸어 들어왔다. 그때까지 내가 기다릴 줄은 몰랐다고, 그냥 한번 들러본 거라고 했다. 너무 미안해서 그는 내게 정이 떨어진 얼굴이었다. 나 역시 돌처럼 굳어서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다. “나가서 저녁이라도 먹자.” 그가 기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찬바람이 닿자 오한으로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이게 뭐니?” 커다란 쇼핑백이 무거워보였는지 그가 들어주겠다며 손을 내밀었다. “등잔이야.” 나는 별것 아닌 듯 말하며 그의 손을 뿌리쳤다. “웬 거야?” 그 역시 별 관심은 없었지만 어색한 기류를 무마하고자 애쓰듯 다시 물었다. 그새 편도가 부어올라 침을 삼키기 거북해졌고 손발도 얼어 감각이 없었다. 레스토랑은 너무 멀게 느껴졌다. 근처 식당에서 김치찌개를 주문하고 나서 그에게 늦은 이유를 물었다. “깜빡했어. 아침에 늦잠 자는 바람에 학원에 늦고 스터디도 엉망이었고 오늘 종일 이러네. 첫 단추를 잘못 뀄어. 약속이 있다는 걸 기억하고 있었는데 스터디 끝나고 한 놈이 당구장에 가자는 거야.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간 거지.” 그 때 문도와 나의 관계가 연인이 아니라 친구라는 것을 냉정하게 이해해야 했다. 문도의 말 속에는 친구의 약속을 한 번 정도 지키지 못한 만큼의 부채감이 있을 뿐이었다. “그랬구나, 너는….”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손발에서 시작된 떨림이 온몸으로 퍼져 새파랗게 질린 채 와들거리고 있었다. 편도는 숨을 쉴 때마다 부어올라 고통스러웠다. 항생제로 눌러놓았던 감기 기운이 몸을 덮쳤고 나는 대항할 무기도 의지도 기력도 없었다. “너 어디 아프니?” 내 꼴이 심상치 않았는지 문도가 놀라며 물었다. 나는 김치찌개를 먹지 못하고 그가 잡아준 택시를 탔다. 택시에 오르기 전에 쇼핑백을 떠맡기듯 그에게 건넸다. 그가 무심히 늦었듯이 나 역시 짐을 내던지는 기분으로 줘버렸다. 그 순간의 등잔에는 어떤 의미도 없었다. “… 졸업선물이라고나 할까.” 그때 내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무의식중에 튀어나온, 철저히 방어적이었던 그 말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싸늘해진다. “어어… 이거 고마워서 어쩌지? 몸조리 잘하고 푹 쉬어라.” 얼결에 쇼핑백을 받아든 그는 당황스런 표정이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밤새 고열에 시달렸다. 십년 만에 만난 문도는 생각했던 대로 순조롭게 나이든 모습이었다. 그간의 안부를 묻고 덕담을 주고받는 의례적인 인사가 끝나자 잠시 어색한 침묵이 깔렸다. 그는 다시 한번 할머니에 대해 조의를 표하며 말을 이었다. “이 등잔이 할머니의 유품이란 말이지? 어쩐지, 요즘 대량 생산되는 것과는 다르다 했어.” “네가 그렇게 섬세했었니? 그런 눈썰미가 있었어?” 그는 쑥스럽게 웃었다. “물론 내 눈썰미는 아직도 실종중이야. 근데 이 등잔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더라고. 아무튼 너한테 감사해야 할 일이 있어.” “감사할 일? 뭐?” “일단 볼래?” 그는 쇼핑백에서 분홍보자기에 싸인 물건을 꺼냈다. 꽃잎 모양 같은 매듭을 풀자 등잔이 모습을 드러냈다. 새삼스러웠다. 나무로 만든 받침대에다 등잔걸이를 얹어놓은, 참으로 단순하고 소박한 자태였다. 오래 묵은 나무를 정성으로 닦아주고 만져준 흔적인지 천연광택이 나면서 등잔은 생기가 있어 보였다. 받침대 밑판은 재떨이 겸용으로 쓸 요량이었는지 오목하게 패여 있어 할아버지의 마음이 엿보이기도 했다. 수십 년 전의 그을음이 스며든 백자 호형 등잔도 잘 닦여져 말끔했다. 내게 있을 때보다 등잔은 더 좋아 보였다. 혹시 방치해두었거나 잃어버리진 않았을까 걱정도 됐었는데 이렇게까지 대접을 받고 있을 줄은 몰랐다. 등잔이 내 분신이라도 되는 양 가슴이 떨려왔다. “관리를 잘했구나.” 내 말에 문도는 쑥스럽게 웃었다. “내겐 귀한 물건이야.” 나는 기대와 흥분을 누르며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십년 전 그 날, 나를 택시에 태워 보내고 그는 식당으로 되돌아갔다. 김치찌개는 다시 데워 나왔고 그는 소주를 곁들였다. 그는 이래저래 꼬인 하루를 조금씩 풀고 있었다. 얼마 뒤에 과 후배 영선이 들어왔다.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고 했다. 둘은 2차까지 가며 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뒷날 자고 있는데 전화가 왔어. 영선이야. 이거 너한텐 정말 미안한 얘긴데 내가 취해서 등잔을 할매집에 놓고 나온 거야. 다행히 영선이 등잔을 챙겼더라구. 이래저래 바빠서 한 일주일쯤 지나서야 걔를 만났나봐.” 영선은 등잔을 그냥 줄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저녁을 사기로 했고 그녀가 이끄는 대로 학교 앞 레스토랑으로 갔다. 영선은 스테이크를 썰면서 술 취한 선배가 너무 귀여웠다고 말했고 문도는 귀까지 빨개졌노라고 했다. 둘은 와인을 곁들이고 시시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식사를 끝냈다. 디저트로 나온 아이스크림을 핥으며 영선은 등잔이 딱 자기 취향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문도의 눈을 바라보았다. 선배, 이 등잔 저 주시면 안돼요? 훗날 둘이 결혼하게 됐을 때 문도는 그 말이 프로포즈처럼 들렸었다고 그녀에게 고백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손이 올라가 내 입을 틀어막았다. 심장이 멈추듯 했고 소름이 돋았다. 문도는 얘기를 끝내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너는 어떻게 된 거야? 왜 갑자기 연락이 끊긴 거야? 네 소식을 아는 사람이 없더라구. 전화번호도 바뀌고.” 졸업과 동시에 나는 학교에서 맺은 인연들을 끊어버렸다. 실은 인연이랄 것도 없었다. 학교에 다닐 때도 혼자였고, 그나마 함께 다니던 예비역 몇 명은 우연히 만나면 어울리는 정도였지 따로 연락하고 말고 할 관계는 아니었다. 전화번호를 바꾼 건 즉흥적인 기분에서였다. 그 날 이후 감기를 호되게 앓고 나자 갑자기 주변을 정리하고 싶어졌다. 전화번호를 바꾼다고 해서 달라질 만한 주변도 아니었지만 그때의 심정은 그랬다. 문도는 휴대폰 문자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와이프가 맛있는 거 먹으랜다. 그 대신 늦으면 안 된대. 둘째가 돌쟁이라서 아직 힘들다. 와이프가 이 등잔을 참 좋아하고 아꼈어. 기념일에는 이 등잔을 꼭 켜곤 했어.” 등잔에서 느껴지던 생기는 그들의 시간이 스며들어서였을까. 문도는 굳이 융숭한 대접을 해야만 한다며 시내로 나가자고 했으나 결국엔 내 뜻대로 근처 일식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시종일관 은인을 대접하듯 깍듯한 태도였다. 저녁을 먹으면서 마음이 담담하고 차분해졌다. 등잔이 가리키는 대로, 등잔이 밝힌 길을 우리는 각자 갔던 것뿐이었다. 할아버지의 손길이 닿았고 할머니의 마음이 스며들었고 어머니의 원망이 덧칠되었다면 문도의 십년도 등잔의 엄연한 무늬로 새겨졌을 것이다. 식사를 끝내고 잠깐 그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나는 일식집에서 빠져나왔다. 등잔을 그대로 둔 채. 돌아오는 차 안에서 문도에게 문자를 보냈다. 등잔의 주인은 너와 네 가족이라고. 아파트 화단에 목련 꽃잎이 떨어지고 있었다. 낙화도 끝물이었다. 며칠 전 일제히 피어난 목련꽃 무리는 모두 북쪽을 향하고 있었다. 북쪽의 바다 신을 사모하던 공주의 무덤가에 핀 꽃이 목련이라는 전설을 들은 적이 있다. 한편으로는 겨우내 자라난 꽃봉오리의 겉껍질이 햇볕 잘 드는 남쪽 방향에서 튼실하게 먼저 열리다 보니 북쪽 꽃잎은 수그러져 꽃 모양이 북쪽을 향하게 될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꽃이 핀 방향 하나에도 과학적인 이치가 있었다. 오늘만큼은 전설을 믿을 수 없는 날이다. 이렇게 화사한 한순간을 위해 목련은 길고 추운 계절을 빳빳이 견뎌냈다. 모든 기다림의 끝이 다 좋지는 않을지라도 활짝 열린 그 속을 들여다본다는 건 의미 있는 일이다. 나는 남은 생애 동안 목련이 화사하게 피는 절정의 순간마다 할머니를 떠올리게 될 테고, 더불어 등잔을 생각하게 되리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