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권 천 학

 

 

흔들지 마라

무심(無心)의 발걸음으로 너덜샘을 떠나

구불구불 골짜기들을 지나서

안동 땅 감아 안느라 허리 휘어가며

모래턱 만들어 쉬엄쉬엄 내닫기도 하고

철교 아래 이르러

피 묻은 한 시대의 시름으로 굳어진

녹물 씻어내며

한 숨 참고,

더러 고시랑거리는 풀잎소리 엮어내느라

여울도 지다가

도란거리는 마을 앞을 지날 때는

고샅에서 새어나오는 소문도 실어내며

백리도 넘는 바다에 이르는 길을

서두는 일 없이, 멈추는 일도 없이

밤낮없이 흐르노라

 

어깨 죽지에 깃든 논과 밭

강물에 기대어 삶을 경작하는

뚝심좋은 사람들

뿌리 아래 스며들어 풀들을 키워내고

목숨의 씨알 거두는 노곤함도 잊고 부르는

땀 젖은 노동의 메나리 곡조에

줄기줄기 피워내는 들꽃으로 화답하는

융숭한 잠

깨우지 마라

 

잠자는 듯 누워서도 모두 기억하는

속살의 역사

그 땅을 적시는 땀방울로 너끈한 물줄기

온갖 목숨들 가득 품어 안고

새끼 쳐 기르며 함께 가는

먼 길

자연으로 흘러가는 발걸음

막지마라

 

 

 

묵계서원에서 바람차 한 잔

 

권 천 학

 

장마철 지난 탓인지

가르침 외면한 채 살아가는 눅눅한 죄스러움 탓인지

낡은 기둥 받들고 있는 주춧돌 틈에

삿갓 쓴 버섯 돋아 조용하고

허물어진 담장을 타넘어

햇살도 가득, 소리 없이 뿌려지는 뜰 안

매미들끼리 모여서 글 읽는 소리 쟁쟁한

9월의 묵계서원

 

삭아가는 세월

잠긴 대문 빗장에 걸려 기진해있고

주인도 문지기도 없는

자갈마당에 잡초 우북하여

집 안팎이 온통 쓸쓸함 뿐인

빈집 빈 마당

 

조용히 귀를 열어

나지막하게 글 읽는 소리 듣고 있는

녹슨 자물통

늙은 몸으로 댓돌 위에 누워있는

무심한 한 시대를 무심으로 지키고 있어

옛 어른의 한 세월이 무색하여 돌아서다가

나지막한 처마 아래, 입을 다문 채

내려다보고 있는 현판과 눈인사 나누는 사이

안부 궁금하던 차

헐린 담장을 넘어 마실 나온 까치 한 마리

앞장 선다

 

지나가던 바람 한 줄기

서둘러 문밖에서 읍하더니

너울너울 손 흔드는 칡넝쿨과 함께

마지막 예를 올리며

바람에 꿀을 풀어 타내는 바람차 한 잔,

칡꽃 향기가 그나마 빈 가슴을 달래준다

 

 

 

-----------------------

약력

*여원에 단편 모래성당선, 부록으로 출간.

*여성중앙에 단편 끊임없이 도는 풍차당선.

* 시 지게, 삶의 중심으로 떠나는 여행으로 현대문학 데뷔.

* 저녁노을 붉은 꽃」, 「등 드라마 당선(KBS, SBS)

*월간 어머니 편집장, 풀잎문학 주간 역임.

*서울신문 컬럼니스트, 관악문화신문 논설위원, 컬럼니스트 역임.

*진단시동인 역임.

*한국전자문학도서관 웹진 블루노트발행(2002~2007년).

*시 2H₂+O₂=2H₂O외 16편으로 하버드대학 번역대회 우승.

*단편 오이소박이로 경희해외동포문학상 대상 수상.

*시 「금동신발 」외 9편으로 코리아타임즈 번역대회 시부문 우승

*저서 첫시집 그물에 갇힌 은빛 물고기을 비롯 최근 초록비타민의 서러움 혹은 까지 단독시집 9권

공저, 동인지 다수

편저 <속담 명언 사전>

현재 토론토 거주.

이메일 impoet@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