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웹진]문학마실~...119호...
   2020년 05월

  1. 내일을 여는 창
  2. 소설
  3. 수필
  4. 권서각의 변방서사
  5. 이달의 작가
  6. 동인지를 엿보다
  7. 작품집에 스며들다
  8. 시와 거닐다
  9. 사진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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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2014년 1월 41호부터 2014년 10월 53호까지...
편집자
92875 2014-11-03
145 금수회의록 외1편/강태규 file
편집자
4215 2011-08-31
11.09월 16호 시 금수회의록 강태규 꿈인지 날 것인지는 모르겠다 탕국 잘 먹고 툇마루에서 남포불을 지필 때였을 거라 왼켠 미루나무는 참견 없이 차렷 자세로 어슴프레 있건만 삭밤이라 캄캄 무인지경 저번 늦겨울 소 여럿 잡던 일 좀 잊어볼까 했지만 수이 되질 않는 그런 불씨 없는 밤. 별다방 프라스틱 라이타 불 화홧 댓지만 심지로 댕겨지질 않고 콧잔등 어디쯤해서 소쩍 소쩍대길래 그냥 집나간 제 짝 부르는 소린줄로만. 자시 쯤 되었을까 심지에 기름 좀 배이라고 남포를 들었다 놨다 하던 중, 이젠 오른 켠 귀 어디쯤 와서는 소도적 소도적, 좀 더 잘 들으라 낭낭하고 쩌렁하여 가슴까지 철렁, 마른 번개처럼 퍼떡 집히는게 뒷집 소 같은 소가家라고 쩍새한테 귀뜸한 게야 산바람 댓닢조차 흔들지 못하고 백열등 저만치 아랫말에 있는 그런 밤. 산마루께 우묵 골진 즈음에서 빈 저수지 밤배 지나 듯 흘리던 쩍새소리에 오른켠 눈 꼬리 쪽 너머, 소 외양간에서는 한 두박자 꽤어 무쇠 코뚜리 어김없이 철럭댔으니 집짐승이나 날짐승이나 서로 사람 흉을 본다는 게 억지인 것도 같지만 잠 못드는 이 밤에 소 생각을 자꾸하니 소도적이 맞는 것 같기도 해 禽獸會議錄 : 개화기 때 정의 안국선이 쓴 신소설의 제목에서 차용함 장화홍련전 강태규 상주 중덕못에 홍련이 가득하다 낚시금지 팻말에 참붕어, 청개구리, 왕두꺼비, 소금쟁이들도 잠잠하다 배무룡 둘째 딸 홍련이 장화언니 따라 못으로 들더니 수십만 쌍둥이 딸들로 복제되어 환생했다 배좌수댁 딸처럼 심학규네 청이도 소생할 차례다 이 마을, 사람의 집들 동쪽으로 앉아있고 생태공원 공사가 한창이다 잘난 애비와 못생긴 여식女息, 계모繼母와 조사釣士들은 괴롭다  
144 순이의 하늘 외1편/안현심 file
편집자
3603 2011-08-31
11.09월 16호 시 순이의 하늘 안 현 심 마당가에 피어난 붉은 동백꽃, 이름은 순이. 고향은 함경북도 청진 배가 고파서 도망 나왔어요 부모는 일찍 세상을 뜨고 오빠는 군대 가서 죽고 허기진 배 거머쥐고 피붙이를 찾았지만 냉대와 멸시뿐 아무도 따스운 밥 나눌 사람 없었어요 여행증 없이 숨어든 평양에서 죽도록 매를 맞고 살길은 두만강을 건너는 일뿐이었어요 낮에는 산에 엎드려 풀잎을 먹고 밤을 틈타 걸었어요 잡혀서 죽으나 굶어 죽으나 매한가지 배곯지 않을 땅을 찾아야 했어요. 칠흑 같은 강물에 떠내려가며 이렇게 죽는구나 결국은 중국 공안에게 잡히고 말았어요 살려주세요 제 발로 다시 돌아갈 테니 북한 보위부에는 넘기지 말아줘요 몰매 맞고 강제노동을 하다가 뼈만 남아 죽게 돼요 울며불며 매달리는 얼굴에 병색은 무르익어 한 주먹거리도 되지 않고 앙상한 몸에 걸친 누더기 옷, 그들도 안쓰러웠던지 그럼 돌아가라 하였지요 주머니에 사탕 세 알을 넣어주며 두만강에서 흔들리는 목숨을 지켜보았어요. 배가 고파 길바닥에 쓰러졌을 때 어느 할머니가 먹을 것을 주었지요 그런데 할머니는 배곯는 처녀를 중국에 팔아넘기는 알선책이었어요 그걸 알면서도 다시 가야 하는 땅 어떤 삶을 살든지 굶주림보단 나았어요. 연변에 들어서자 도망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어느 마을에서 오줌 누러 간다하고 줄행랑을 놓았지요 개들은 무섭게 짖어대는데 낯선 집에 뛰어들어 숨겨 달라 애원했지요 노인은 감자 굴에 나를 파묻었어요 며칠을 굴 속에서 숨어 지내다 햇빛을 보았지요 그 집 농사일을 일 년 남짓 도운 후에 도회지 부잣집 가정부가 되었어요. 그러나 내 하늘은 여기가 아니에요 오 년을 살아도 십 년을 살아도 공안에게 들키면 잡혀가는 탈북자 아이를 낳고 살다가도 쇠꼬챙이에 꿰인 채 끌려가야 해요 실컷 부려먹고도 돈 한 푼 주지 않는 고용주가 들끓는 땅 여기는 내가 그리던 하늘이 아니에요. 이름은 순이, 남녘 하늘 귀퉁이 키 작은 동백꽃. 생존을 위하여 안 현 심 여행증 없이 평양 거리를 떠돌다가 즉결소에 끌려갔지요 깜깜한 방 안에 내동댕이쳐졌는데 아침이 되어서야 사방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이백 명 가량의 눈만 퀭한 거지들 속에 맨 무릎이 드러난 아이 신발 대신 비닐봉지로 발을 싸맨 아이 평양 거리를 헤맨 내 신발도 앞부리가 해져 다섯 발가락이 보였어요 열다섯 처녀아이는 엉덩이를 내놓고도 부끄러운 줄 몰랐어요 우리에게 당면한 건 배를 채우는 일 그것 외엔 아무 것도 관심이 없어요 아이들은 배낭을 뒤지더니 생감자 훔친 것을 꺼내 먹고 언 시래기 훔친 것을 먹었어요 훔치지 않으면 먹을 것이 없으니 도둑질을 해야 해요 바싹 여윈 할머니가 농장에 숨어들었다가 피범벅으로 맞는 것도 보았어요. 그래도 우리는 훔쳐야 해요. 안 현 심 시인․문학평론가 <하늘소리> 외 두 권의 시집과 산문집 <오월의 편지>, 논저 <서정주 후기시의 상상력>을 펴내고, 현재 한남대학교 강사로 재직 중이다. .  
143 Darma 法 외1편/권현수 file
편집자
4336 2011-08-31
11.09월 16호 시 Darma 法 권 현 수 法이란 것이 그런 거 아이겄나 해 뜨모 일 하고 해 지모 자고 빨간 불이모 서고 파란 불이모 가고 그라고, 내하나 묵고 니하나 주고 물은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는 것잉께. 구름 위를 걷는 방법 권 현 수 저 높은 산봉우리에 걸쳐있는 뭉게뭉게 뭉게구름 보이지 그 위를 걸어 보는 거야 먼저 그 무거운 외투부터 벗어버려야지 알록달록한 카드들 잘랑거리는 열쇠들 크고 작은 지갑들도 함께 말이야 그리고는 운무사雲霧絲 날개옷을 입어야지 그 전에 물론 천상수에 목욕도 하고 묵은 때를 깨끗이 벗어버린 숨구멍마다 사방팔방으로 뻗쳐있는 의식의 촉수들 무의식의 뿌리까지 잠재워 버리는 거야 그러면 기러기 깃털처럼 가벼워지겠지 그리고는 펄쩍 뛰어 보는 거야 아직도 발이 떨어지지 않으면 발목을 잡고 있는 중력 때문이야 미련을 버려야지 발 씻은 물과 함께 확 비워버려요 다시 한번 힘껏 뛰어 봐, 그렇지. 어때,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 권현수 건국대학교 교육대학원 2003년 <불교문예> 신인상 시집 [칼라차크라] 서울 강동구 둔촌동 주공아파트 436동 709호 hyonsue7@hanmail.net  
142 오늘도 무럭무럭 외1편/이상도 file
편집자
3618 2011-08-31
11.09월 16호 시 오늘도 무럭무럭 이상도 여자의 얼굴은 동글동글 난 웃는다, 실실 쪼개면서 한번 자빠뜨릴 궁리를 한다 헌혈차 한 대 플라타너스 그늘 아래 움직이지 않고 계속 그 자리다 헌혈은 참여와 성원 속에서, 그래서 플라타너스는 오늘도 무럭무럭 지난 겨울 삭발 당해 몰골 앙상했던 몰염치의 풍광에서 다닥다닥 푸른 순을 밀어 올리던 오월 초순 처절한 생의 아비규환을 들었다면 지금 널따란 이파리는 어쩌면 덤이랄까 그러니까 플라타너스는 생의 흉폭함 그러니까 플라타너스는 생의 잔혹함 그러니까 어젯밤 잠 못 자고 헐떡였던 건 열대야 때문이 아니라 모기 때문이었다 손바닥으로 찰싹, 압사인지 질식사인지 벼락사인지 피 확 터트려놓고 허벅지에 엉겨 붙은 모기 사체를 훑어내다 담배 또 피워 물고 침 발라 피를 닦아내고 잠을 청해도 그러거나 말거나 여자는 꿈에까지 따라와 애태우고 모기는 여전히 앵앵 오늘 밤에도 악몽은 뭇별처럼 가득할 테지만 그래도 모든 것이 무럭무럭 플라타너스는 잔인하게도 싱싱 여자의 웃음은 고맙게도 생글 그러니까 난 헌혈하기 싫다 공기 이상도 가볍게, 가볍게 살아가는 일이 힘들다. 오래 지속된 우기의 눅눅한 습기 때문만은 아니다. 축 처진 길들을 배회하는 하루가 어렵다. 공기는 가벼움에 의지한 무거움이다. 얼마나 나를 짓누르고 있는가. 막강한 힘과 권위에 주눅 든다. 먹기 싫으면, 잠시라도 쉬고 있으면 죽음뿐이라는, 죽지 않기 위해 허파는 심장은 살아간다. 공기는 천천히 내려앉는다. 아무 곳에나 앉아 이리저리 굴러다니면서 잠시도 감시의 눈길을 버리지 않는다. 내 속에 음흉하게 숨어 들어와 내가 보지 못한 마음까지 꿰뚫고 다닌다. 유유히 빠져나가 떠돌고 또 들어오고 하는, 나와 관계 맺은,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불특정 다수에게 내 음음(陰陰)한 마음을 들키고야 마는, 이 무방비의 적나라! 나는 반성할 게 없는데 다만 부끄러울 뿐인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얼마나 까발렸는지. 이것이 나의 노출증인지. 공기의 관음증인지. 이상도 경남 거창에서 태어났다. 구미의 ‘수요문학회’와 ‘경북작가회의’의 회원이다.  
141 고래 - 천명관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
상주신문
4698 2011-07-31
내가 좋아하는 소설 소설을 즐기시는 분이라면 강추! 재미로 읽고, 가슴으로 남는 드라마 같은 소설입니다. “『고래』는 가히 소설이 무엇인지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 전지전능하고 고압적이며 시공을 초월한 이야기꾼의 입담에 힘입어 소설은 엄격한 형식의 규제를 뚫고 민담과 전설, 기담들, 무협지와 장르영화의 부스러기들, 동화와 환상적 요소 등이 뒤섞이는 환상의 도가니로 돌변한다.”--신수정, 문학평론가  
140 정취암* 일박一泊 외1편/차영호 file
편집자
3947 2011-07-31
11.08월 15호 시 정취암* 일박一泊 차 영 호 저무는 하늘이 두툼한 구름요 깔고 누워 별 한 조각 내비치지 않는다 오밤중에 내려다보니 우리가 사는 세상도 별천지였구나 저 아래 숲정이 끄트머리에 북두칠성 마차부는 마을 어귀에 있고 탁 트인 저기 저 너머 아득하게 찰람거리는 은하銀河 *경남 산청군 신등면 대성산에 자리한 암자 대서大暑 무렵 ―― 지리산 연하천 건너 벽소령 넘는 마루금은 물 고흔 갈래머리들이 재잘재잘 쏟아져 나오는 방학식날 여학교 하굣길만 같아서 원추리, 비비추 입 삐죽거리는 모롱이 굽이돌면 배시시 웃는 층층잔대며 도라지모싯대, 마주칠 때마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하늘말나리, 양지 바른 언덕에 올라 손차양을 하고 먼 산을 내다보는 동자, 동자꽃…… 각색 발자국 자오록한 길섶 한구석빼기에는 노루오줌에 바짓가랑이 적신 내가 멀거니 홀아비꽃대마냥 서 있고 차영호(車榮浩) 1954년 충북 청원 출생. 1986년 《내륙문학》으로 등단. 〈푸른시〉동인. 시집 『어제 내린 비를 오늘 맞는다』,『애기앉은부채』 youngghc@hanmail.net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대도동 512 상도빌라 303  
139 언제나없이 외2편/남태식 file
편집자
4159 2011-07-31
11.08월 15호 시 언제나없이 남 태 식 언제나없이 꿈은 무덤에서 이루어진다 무덤이 열리고 아이들이 쏟아진다 우리가 남이가 얼굴이 없는 짝퉁 우리가 손을 내민다 살짝 주먹을 말아 쥐었다 저 주먹 속에는 무엇이 들었나 저 주먹을 본 적이 있다 저 주먹과 거래를 한 적이 있다 그 거래는 무엇이었나 뒷짐을 지고 한 아이가 고개를 가로젓는다 또 한 아이가 고개를 가로젓는다 또또 한 아이가 고개를 가로젓는다 무덤 앞에는 아직은 고개를 가로저은 아이들과 고개를 가로젓는 아이들뿐이다 모두 걷고 있다 제자리걸음이다 언제나없이 꿈이 산허리 높이 올라앉아서도 낮은 무덤에서 틘다 가위바위보 남 태 식 지나면 큰 집 대문 보이는 무덤가에 오래된 아이들이 왁자하다 뒷짐을 풀고 한 아이가 손을 펼치면 또 한 아이가 손을 펼치고 또또 한 아이가 손을 펼친다 머뭇머뭇 뒷짐을 풀고 머뭇머뭇 손을 펼친다 왁자한 소리 마당은 꽃들 흐드러지게 핀 봄날인데 풍경은 아직 움 안 돋고 망울 안 맺은 겨울 산천이다 한 아이가 손을 내밀면 또 한 아이가 손을 내밀고 또또 한 아이가 손을 내민다 펼친 손은 언제 말아 쥐었을까 내미는 손도 느닷없고 말아 쥔 손도 느닷없다 가위바위보 가위바위보 가위......? 바위......? 왜?!...... 내민 손들은 모두 허공을 향하고 손들이 갸웃하니 허공이 갸웃갸웃한다 지나면 큰 집 대문 환하게 보여도 오래된 아이들 아무도 아직 무덤가를 못 뜨고 있다 무너져라, 벽! 남 태 식 큰 집 대문과 무덤 사이에 벽이 있다 귀를 잃은, 듣고 싶은 것만 듣는 벽은 눈을 잃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벽은 입을 잃은, 하고 싶은 말만 하는 벽은 번듯한 군대마냥 나름 꿋꿋하고 도시에 쏟아진 폭설처럼 호들갑스러우나 시방 더 이상 자라기를 멈춘 피로한 식물이다 가로막은 벽 이 편 무덤가에는 큰 집 대문을 향해 나아가는 무덤을 뛰쳐나온 거듭 거듭나는 여러 무리의 새 아이들 벽을 무너뜨려라 쿵! 한 무리의 아이들이 앞서며 땅을 밟으니 쿵! 쿵! 또 한 무리의 아이들이 뒤이어 땅을 밟고 쿵! 쿵! 쿵! 또또 한 무리의 아이들이 연이어 땅을 밟는다 무너져라, 벽! 무너진다, 벽! * 남 태 식 2003년『리토피아』 등단, 시집 『속살 드러낸 것들은 모두 아름답다』『내 슬픈 전설의 그 뱀』  
138 옛 전신전화국에 가다 외1편/정선호 file
편집자
4518 2011-07-31
11.08월 15호 시 옛 전신전화국에 가다 정선호 영도 바닷가 해안을 따라 달렸다 달린다는 것은 시간의 날개를 다는 것, 햇살을 다리에 감아 바다에 풀어 던졌다 시간의 날개 꺾여 봄 햇살에 졸고 있는 옛 영도 전신전화국에 들어갔다 입구, 오래된 동백나무에 꽃 피었고 낡은 건물 앞엔 수명을 다한 전봇대들 노인정의 노인들처럼 늙어갔다 폐경이 얼마 남지 않은 동백나무는 전봇대에게 꽃을 털어 올려 주었다 그제야 전봇대는 생기가 돌았고 전화를 섬 전역에 송수신 해주던 시절을 추억하며 흰 머리카락 날렸다 사람들 송전탑 주위엔 텃밭을 만들어 밭을 갈아 채소를 길렀다 옛 전신전화국은 심장이며 허파마저 사람들에게 내어주며 동백나무와 함께 천천히 늙어갔다 산에서 보물찾기 어린이 날 아내와 산에 갔다 산꼭대기에 올라 김밥을 먹고 있자니 야유회 온 여러 가족 보물찾기 한다 사람들 보물 찾으려 라마피테쿠스처럼 나무를 흔들자 산이 흔들렸다 나무는 갑작스런 사람의 온기에 정신없이 잎을 틔워냈다 한 무리 유인원들 박힌 돌 들추자 돌과 땅 사이에 터 잡고 살아왔던 개미며 지렁이들 화들짝 놀라고 돌은 뿌리 뽑혀 어쩔 줄 몰라 했다 유인원들 돌로 불을 만들어 음식을 끓여 제 아이에게 먹였다 돌의 방향과 물성을 생각하는 순간 우주가 갑자기 정지했다 순간 내가 서서히 돌이 되어 갔다 여기저기서 보물 찾았다는 함성에 산이 심하게 흔들렸다 *. 약력 : 충남 서천 출생, 창원대 국문학과 대학원 졸업, 2001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으로 『내 몸속의 지구』가 있다  
137 주류와 비주류 외 1편/송은영 file
편집자
4860 2011-07-31
11.08월 15호 시 주류와 비주류 송은영 울타리 밖 다른 부류 나는 집에 있으면서 집 밖에 있고 누구도 나를 기억해 주길 원하지도 않는다 등골이 휘어지도록 일하면서도 가난의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한 숨막힘을 보고 자란 나는 누가 뭐래도 한번 올라가면 끝까지 내려오지 않는 장안의 권세가인 당신이 부러울 따름이다 오늘도 당신이 전하는 말은 대서특필되고 시시콜콜 해석된다 당신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니면서 항상 최상의 힘을 누리며 다른 사람들이 죽기 살기로 밀어 부치면 언제나 위기라고 말하는 당신 소파 뒤 오래된 쿠션처럼 곰비임비 닳고 닳아 우리의 루머가 되어간다 정몽주로 산580번지 토악질 나는 후손들이 잘 사는 일에 몰두하지만 튀밥이 송아지 되고 송아지가 집되는 웅장한 서사시는 옛말이라 당신이 골백번 죽고 죽어도 여기에 사는 사람들은 당신을 떠받칠 만큼 녹녹치 않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하수상한 현실은 자꾸 만약을 떠올려 스스로의 판단을 방해하고 춘설이 난분분한날 저녁 당신의 충절을 내세우는 포은 도서관이 시소 끄트머리에서 몸이 공중에 뜨기를 바라는 어린아이처럼 칭얼대고 있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공공근로사업 희망자 모집에 하여가 부르며 구름처럼 모여든 생활보호대상들 약력:경북 포항 출생,2007시와 상상으로 등단 jayou7453@daum.net  
136 청춘(靑春)이란?/김재수 file
편집자
4018 2011-07-31
11. 08월 15호 수필 청춘(靑春)이란? 지난 세주일 연속으로 일요일 오후 시간이 되면 가슴이 설레고 있습니다. KBS 제2TV 해피 선데이 ‘청춘합창단’ 오디션 광경이 벌써 세 주째 방영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첨엔 그냥 '남격 합창단'이후 또 한 번의 연속적 시도이려니 했고, 52세 이상의 참가자들에게 걸맞지 않게 무슨 청춘합창단이냐 라고 대수롭잖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첨부터 예사롭지 않은 오디션이었습니다. 52세부터 90세의 할아버지, 할머니, 평범한 주부에서 이름 있는 기업의 CEO까지 참가자도 다양했습니다. 연변에서 온 조선족 동포, 종일 치킨을 팔다 오신 치킨 집 아저씨, 며느리의 권유로 참가한 시어머니, 겨우 우리말을 익혀 산토끼 노래도 다 소화하지 못한 어느 외국인, 15년간 성대결절로 인해 노래를 잃었던 전직 음악선생님, 음대를 졸업하고도 타의에 의해 30년을 다른 인생을 살았던 주부, 이미 이름 있는 가수와 중견 탈렌트, 심지어 간과 신장을 이식받아 투병 중에 있는 분도 참가 했습니다. 동요에서 가요, 그리고 가곡, 그들이 부르는 노래 또한 다양합니다. 뿐만 아니라 합창단을 뽑는 오디션이라지만 심사위원도 특별합니다. 초대 손님으로 나온 윤학원, 박완규, 임혜영과 남격의 멤버인 김태원 씨가 음악 전문가라면 양준혁, 이경규, 이윤석, 윤형빈, 전현무 씨는 그야 말로 비전공자들입니다. 이들의 역할이 워낙 어중간해서 과연 남자의 자격과 청춘합창단이 어떤 관계가 있느냐라는 비판도 있습니다만 이는 앞으로 두고 볼 일입니다. 다만 우리가 감동하는 것은 이들이 나와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 이자 언니 누나의 삶이며 아내와 남편 그리고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노래를 통해 자신들이 이루고자 하는 꿈에 대한 그 간절한 열망이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감동으로 우리에게 다가온 때문입니다. 요즈음 평균 연령이 높아지면서 현역 이 후 남은 인생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역할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이는 개인의 문제를 떠나 사회적 요구가 되었고 , 보다 활동적인 이들을 통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청춘합창단의 오디션을 보면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실감합니다. ‘인간은 호기심(好奇心)을 잃는 순간 늙는다.’ 2005년 96세로 타계 직전까지 강연과 집필을 계속했던 세계적인 석학 ‘피터 드러커’의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비록 52세 이상이란 숫자가 분명히 넘을 수 없는 확실한 인생 후반의 표식이지만 그러나 이들의 간절한 꿈은 바로 이들을 청춘으로 인정해 주어도 좋을 필요충분조건임을 확신했습니다. ‘청춘 합창단’ 이들의 꿈과 열망에 박수를 보냅니다. 김재수(金在洙) 1947년 경북 상주 출생 1973년 제1회 창주아동문학상 받음(동시, 제비집) 1980년 제12회 한정동 아동문학상 받음(동시, 겨울 일기장) 1988년 제5회 상주시 문화상(예술부문) 1993년 제1회 M.B.C 창작동화 입선(동화, 철조망이 피운 꽃) 1994년 국민일보 주관 친절노래가사 당선 1996년 제16회 해강아동문학상 받음(동시, 농부와 풀꽃) 2010년 경상북도문학상 받음(한국문인협회경상북도지회) 개인 작품집 1974년 낙서가 있는 골목(동시집, 대학출판사) 1978년 겨울 일기장(동시집, 학사원) 1995년 농부와 풀꽃(동시집, 미리네) 1992년 사랑이 꽃피는 언덕(동화집, 효성사) 1996년 하느님의 나들이(동화집, 도서출판 대길) 2008년 트임과 터짐(산문집, 시와에세이)  
135 용암마애불기(龍巖磨崖佛記)/정복태 file [1]
편집자
4744 2011-07-31
11. 08월 15호 소설 용암마애불기(龍巖磨崖佛記) 정복태 갈증으로 눈을 떴을 때 TV 소리가 귀로 자글대며 밀려들고 있었다. 현은 습관적으로 손을 뻗혀 물주전자를 입에 대고 벌컥이며 정신없이 마셨다. 속은 뒤끓고 있었다. 어제 편집국장과 마지막 헤어진 뒤 현은 결국 T술집에서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마담이 한껏 말렸으나 계속하여 머리끝이 하얗게 될 때까지 마신 기억만 겨우 떠올랐다. 비교적 이런 소도시에서는 조용한 그런대로 술집 분위기도 한껏 주인의 디자인에 의하여 잘 갖추어 놓은 그런 술집이어서 현은 신문사일이 끝나면 편안한 마음으로 곧잘 가곤 하는 곳이었다. 마담은 언제나 한복을 입고서 그윽한 그 나름대로의 기품을 은은히 풍기며 손님들을 편안하게 하는 곳이어서 현은 그런 분위기로 하여 이따금 이 집을 드나들었다. 지자체 선거가 끝나고 이제 시는 새로운 사람으로 의욕적으로 일상의 업무에 들어서서 의욕적으로 시 행정을 펼쳐 나가는 때이기에 현이 몸담고 있는 K지방신문은 새로운 기사가 넘쳐나서 무척 바쁘기만 할 때였다. 편집국장과 사장이 동석한 술자리였는데 결국 술판이 과열된 것은 편집국장의 사장에 대한 불만이 터지고 부터였다. 현은 말이 편집부장이란 직책이었지 이런 경우 어쩔 수 없이 금방 입사한 신출내기 기자 노릇을 해야만 했다. 싸움은 처음 현 시국에 대한 사장과 편집국장의 고정화된 의견 차이에서 벌어졌다. 정작 그것이 번진 것은 편집국장의 일을 한 댓가에 대한 사장에 대한 불만이 나오면서 걷잡을 수 없이 산불처럼 번져서 현으로서도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을 정도로 두 사람 사이의 간극은 수습 불능의 상태로 격화되어 버렸다. 주전자 구멍에서 입을 떼자 현의 귓가로 무언가 아나운서의 말과 함께 화면의 글씨들이 눈시울로 들어오고 있었다. 거북한 속임에도 불구하고 현은 본능적인 감각으로 그 뉴스가 범상치 않은 것을 감지하기 시작하였다. 인근의 낙단보 공사 현장에서 고려 시대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측되는 마애불이 그 광배 부위가 인부의 실수에 의하여 파손되어 버려서 조계종 종단의 총무원장과 종단의 고위 스님들이 가뜩이나 자연보호를 주장하던 조계종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여서 이번에 대규모 항의 법회를 광배 부위가 구멍이 난 사실에 대하여 정부에 시위집회를 하기로 했다는 뉴스였다. 술을 먹은 배는 뒤끓었으나 현은 이미 술기운이 걷히고 있었다. 어제 사장과 편집국장의 회식에서의 집요한 의견 다툼도 역시 이번에 새로 시작된 시장과 이 고을 국회의원 사이의 권력 겨루기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현이 담배에 불을 붙이면서 떠올랐다. 그것은 이 고을을 대표하는 두 인사가 암암리에 이 소도시에서의 헤게모니 다툼으로 새로운 시정을 펼치면서 조금씩 틈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비롯된 일이었다. 중앙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시작한 4대강 사업으로 하여 야당의 집요한 공략을 받고 있으며 지난 번 연평도에서 일어난 북한군에 의한 천안함 침몰로 인한 작전 중이던 한국군 46명이 서해 바다로 산화하면서 그에 대한 정부의 한참 뒤의 성명은 북한에 의한 계획된 어뢰공격에 의한 것이라 발표한 것에 대하여 야당은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라며 정부의 발표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나라의 의견은 반반으로 갈라져 뜨거운 논쟁으로 설왕설래하고 있었다. 야당은 지금 정부가 국가사업으로 확정하여 실행에 옮긴 4대강 사업을 국민 복지를 위한 기금으로 전환하지 않은 현 정부를 5공식 독재라면서 그들 식의 공세를 거세게 펼치고 있었다. 게다가 불교계와 환경단체에서는 자연 훼손에 대한 생각으로 강렬하게 정부의 4대강 사업을 반대하고 있는 분위기였다. 현은 그 일에 대하여 나름대로의 개인적 생각은 하지만 평행선으로 치다르며 국론이 분열되는 듯한 모양은 아니란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현이 살고 있는 이 소도시는 선사 시대부터 존재한 고대 도시의 역사적 전통을 가지고 있었고 신라 시대에는 북방의 고구려의 침범을 막아내는 첨병 역할을 했던 중요한 요충지였다. 신라가 통일 이후 귀족들의 골육분쟁과 이권 다툼으로 서서히 천년 왕국이 기울어져 갈 때 이곳 근처의 가은에서 아자개의 아들 견훤이 왕을 칭하여 멀리 전라도 지역으로 옮겨 후백제를 세우고 멀리 경기도 철원 지방에서 신라 왕국의 후손인 궁예가 태봉이란 나라를 세웠고, 궁예의 측근이었던 왕건은, 해괴한 미륵 신앙에 심취하여 여러 이름으로 국명을 바꾼 궁예를 대신하여 결국 역사에서 기록되었 듯이 왕건은 후백제의 견훤을 굴복 시켰고,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귀순으로 고려를 세웠다. 신라가 당나라의 힘을 빌려 원산 이남의 삼국통일을 하고 그 이후 당나라의 위세를 함께 물리쳐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일과 왕건에 의한 지방 토호 세력과 함께 고려를 세움으로써 명실상부한 한반도의 단일 국가 형성은 그 성격이 조금은 그에 대한 느낌이 다를 수도 있는 점이다. 현이 살고 있는 이 고대도시이자 지금 그렇게 화려하게 큰 도시로 성장은 되지 않았지만 그런대로 현이 살고 있는 고대 도시는 역사에서 특히 과거부터 대단한 지역이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었다. 지금 나라는 20여 년 전부터 지방화 정책을 실시하여 우리나라는 과히 지방 축제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고 그 지역의 경제적 인프라 구축에 중앙 정부와 치열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4년 전 새로 출범한 현 정부는 4대강 사업을 국가적 사업으로 확정하여 한강, 낙동강, 영산강, 금강을 집중적으로 친환경적 환경을 위하여 대대적 4대강 사업이란 국가적 대 정비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다. 현이 있는 이곳 소도시에서도 비로소 강다운 낙동강이 시작되는 곳으로서 일찍이 신라 이전에 고대 부족 국가 형태의 옛사람의 살아갔던 유물이 대규모 도로 사업을 하면서 그 이후 발굴 작업이 이루어져 그 성과가 옛 이곳의 역사적 삶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신라에 병합되기 이전의 사벌국의 존재가 학계에 알려지게 되어 비상한 관심을 보이는 지역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이즈음에는 ‘사벌국 보존회’를 결성하여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에도 발굴 밑 유적 보존을 위한 대대적 운동을 펼치고 있다. 지방 자치제는 지방의 재정 자립도가 늘 중앙 정부에 의해서 통제되곤 하여서 지방 정부의 의도대로 그 사업의 필연적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그 사업을 계속할 수 있는 재정적 문제가 걸림돌이 되어서 순탄하게 진행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나 지방의회는 조직 되었고 지방의 대표자들은 세비 문제를 거론하면서 지역민의 비난을 늘 받곤하지만 그들 지자체 의원들은 해외 선진지 시찰이라는 명목으로 잦은 나들이로 인하여 지역민들의 원성을 사기도 하였다. 그 상황에서 지역 신문은 우후죽순처럼 만들어져 작은 시골 소도시에서 과잉공급으로 인하여 신문사마다 재정적 시달림에 곤경을 맞고 있었다. 현이 처음 이곳 지방 신문에 일자리라고 찾아와서 시청의 언론 브리핑을 받으면서 적어도 많은 재정적 부담을 견디고 있는 신문은 적어도 어떤 큰 컨소시엄으로 선의의 통합을 절실히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작은 도시에서 일어난 사건들은 그 자체가 지역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치기 때문에 조그만 지역 기사일지라도 어떤 특정인을 향한 기사는 사실 보도하기에 힘이 드는 경우가 많았다. 그것은 농경사회로 이루어진 이 지역의 전통적 관습이었다. 현이 그 날 새로 발굴된 용암마애불을 기자로서 처음 찾아갔을 때 이곳저곳은 낙단보 공사로 분주한 모습이었다. 대형트럭은 끊임없이 이어졌고 여기저기 공사에 투입된 사람들이 일에 몰두해 있는 광경이 먼저 눈에 띄었다. 현이 현장에 가서 확인한 결과 마애불은 연꽃을 받침대로한 좌상 형태로 매우 부드러운 음각으로 만들어진 고려 초기불 형식의 마애불 좌상이었다. 그런데 인부의 실수로 부처님 뒤의 광배 부분의 왼쪽에 깊게 구멍이 뚫려 버렸다. 그 동안 도로 밑에 깊숙이 들어 있으면서 지축에 시달려서인지 이곳저곳으로 금이 간 부분이 많이 균열되어 있었다. 새로 마애불이 발굴되었다기보다는 일제 시대 산미 증산 계획으로 급하게 만들어진 신작로에 함부로 매장되었다가 이번 4대강 사업에서 발견된 것이라고 현은 생각했다. 멀리 맞은편으로 이 지역의 진산격인 나각산이 정면으로 눈에 들어왔다. 나각산에는 예로부터 전해지는 이 마을의 전설이 있었다. 그 곳에는 마고할미가 살고 있었다고 한다. 천 년을 사는 신통력을 갖춘 마고할미가 어느 날 무언가에 홀려서 자신의 수명을 빼앗길 운세에 처했을 때 큰 돌을 안고 굴에서 나가지 않으려고 하다가 결국 하늘의 신선에 의해서 마고굴에 갇혔다가 간신히 그 위기를 헤쳐나간 뒤에 그 굴을 다녀간 마을 사람들이 자식을 보았기에 그 마고할미 굴을 새 생명을 얻는 영험 있는 곳으로 마을 사람들에 의해 신성시하고 기도를 드린 곳으로 전해져 왔는데, 어떤 행패스런 인사가 그 돌을 치워 버렸다고 전한다. 하여튼 지금 현이 서있는 마애불상에서 바라보면 바로 나각산의 한 곳을 집중적으로 향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헤아릴 수 있었다. 그래서 현은 마애불이 있는 현재 있는 자리와 멀리 마고 할미의 굴과의 깊은 연관성을 생각해 보았다. 균열이 여기저기 나있는 원만 구족한 연화 받침대 위의 고려 초기 불상은 비록 어떤 노동자에 의해 광배 부분에 구멍이 났지만 그런대로 오히려 얼굴이 예쁜 여자 같은 어여쁜 모습까지도 엿볼 수 있는 부처님의 경외의 모습보다는 예쁜 상호였다. 언덕 아래로 강물은 붉고 탁하게 흐르고 있었다. 근처로는 조선 시대 유학자들이 모여서 시회를 열었다는 관수루가 지역 독지가에 의해서 복원되어 시원하고 정취있는 풍경으로 웅장하게 세워져 있었다. 그 근처는 오랜 세월 동안, 오늘날의 낙단교가 세워지기 전에, 낙동과 낙정을 이어주던 목선이 있어서 나루터의 역할을 한 곳이다. 그 시절 나루터는 동네의 많은 장삼이사들이 모여서 기생들과 술추렴을 하면서 사람들의 활기가 넘치던 곳이었다. 강에서 잡아 올린 뱀장어와 잉어들이 지천으로 그 시절의 술 안주감으로 술상에 올랐던 시절이었다. 자연히 나루 근처에서 사람들은 장사를 했고 나름대로 시끌벅적한 사람들의 소음으로 파시를 이루던 곳이었다. 양정으로 향한 길은 도청 소재지가 있었던 대구로 향하는 길이었고, 마애불이 있는 용암 바위 길은 인근의 의성으로 통하던 길이었다. 옛날 신라시대부터 이곳은 상주 지역이었다. 의성을 가기 전에 있는 비록 면단위 마을이지만 안계는 근처에서도 이름난 곡창지대로 특히 대단히 번성한 장을 이루던 곳이었다. 그리고 안계는 벌이 넓어서 무진장한 벼농사의 중심이 되는 곳이었다. 하여 일제 시대 이 곳 용암 바위 근처를 통하여 일제에 의해 산미 증산 계획에 의하여 함부로 산의 옆을 절단하여 도로를 만들었던 모양이다. 그 때 이 마애불상이 땅 속으로 묻혀 버린 듯했다. 일제는 1920년대 두 번에 걸친 산미 증산 계획을 강압적으로 해서 이 땅의 좋은 쌀을 저들의 일본땅으로 날랐다. 그 결과 일본 내의 농민들이 자신들 농업의 경제적 취약성으로 인한 반발로 결국 그 산미 증산 계획은 ‘30년 이전에 폐지돼 버렸다. 고려 초기에 조성된 용암마애불의 광배 부분이 공사장의 부주의로 파손이 된 뉴스는, 결국 조계종의 총무원장과 주요 간부급 스님들로 하여금 대규모 대정부 집회를 하게 하였고, 그 이후 문화재청장과 정부 내 고위인사가 시위중인 스님들 앞에서 복원상의 잘못을 인정하고 마애불상을 원래의 자리에서 문화재로 지정하여 소중히 할 것이고, 또 하나의 장군 보살상을 발굴하는데 전문가를 통해 철저히 발굴할 것을 발표하면서 스님들의 시위는 하룻만에 끝이 났었다. 지방 신문이며 방송에서도 그 사실에 대한 보도가 계속 이어져 하마터면 4대강 사업에 대한 반대 시위로 번질 뻔하기도 한 일들이 이어졌다. 현지 지역민들에 대한, 과거 이 마애불상의 존재에 대한 불교계 신문들의 취재 열기도 더욱 관심을 고조시켰다. 신라는 골품제도에 의한 왕족의 사치와 방탕이 AD 8C를 전후하여 왕권을 쥔 진성왕 이후 중앙집권적 권위가 실추되면서 여기저기 반란이 계속하여 발생하여 백성들은 귀족에 의한 착취뿐만 아니라 비적의 무리들에게 시달리게 되면서 그들의 곤궁함은 초근목피로 겨우 연명하는 시대로 이어졌다. 그리하여 상주의 가은지방에서 신라의 군인이었던 견훤이, 신라 왕족 출신인 궁예가 도탄에 빠진 백성을 위기에서 구출한다는 대의를 내걸고 수많은 추종자들을 동원하여 본격적인 천년 사직의 신라를 향한 저항 운동을 통하여 새로운 왕국을 세우기 시작하였다. 반란군인 견훤의 무리에 휩쓸려 함께 신라에 저항했던 사람을 아버지로 두었던 승려 효각(曉覺)은, 그 어려운 시절에 태어났었다. 천 년 역사를 지켜온 신라는 이제 사직을 유지하기에는 힘이 너무 빠져 버렸다. 곳곳에서 민란의 빈번한 발생으로 백성들의 삶은 풍전등화였고 그 목숨이 초로와 같은 누란지위의 시절이었다. 효각의 아버지는 견훤 무리의 중간 무장이었는데, 왕건과의 전투에서 그만 장열하게 이승을 하직하고 말았다. 그 이후 효각의 어미는 두 남매를 데리고 마을의 궂은 일을 마다 않고 열심히 살고자 했으나, 그것도 일철이 지나면 추운 겨울을 맞으면서 의식주 해결이 어려워지자, 근처의 절로 들어가 공양주보살로 들어가 두 남매를 키웠고, 결국 효각은 그곳에서 사미계를 받고 스님이 되었다. 그것은 운명 같은 것이었다. 함께 한 어미와 누이의 품을 떠나 효각은 전국의 사찰을 돌면서 스스로의 불심을 닦아 나갔다. 효각이 단밀의 만경산 자락에 있는 절을 찾은 것은 이미 궁예며 견훤 세력이 왕건에 의한 개성 세력으로 변하고 있을 때였다.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도 아들인 마의 태자의 간절한 탄원에도 불구하고 신라 백성을 지키기 위하여 천 년 사직을 새로운 개성의 왕건에게 귀순하였다. 그리고 경순왕은 왕건의 사위가 되었다. 그 이후 비운의 마의태자는 사직을 잃은 슬픔으로 금강산으로 들어갔다. 효각은 아비가 견훤의 수하에서 일을 하고 그 일로 하여 목숨을 잃었지만 개성 출신의 왕건에게 은근히 마음을 두고 있었다. 효각에게는 그것이 늘 마음 속의 어떤 알 수 없는 일로 풀리지 않는 마음의 갈등으로 남았다. 일찍이 진성여왕 시대, 시무 10조라는 글을 써서 무너지는 골품제도의 부당성과 흐트러진 민심을 수습하는 간곡하고 절박한 고운 선생의 탄원에도 불구하고 천년을 이어온 신라는 서서히 저무는 황혼기를 맞이하고 있을 때, 고운 최치원은 송도의 왕건을 은근히 찬양하는 글을 발표한 적이 있었다고 효각은 들은 적이 있었다. 아비가 견훤 수하에 있었으며 그로 인하여 전쟁터에서 세상을 하직하였으면 응당 효각 역시 견훤을 숭모하는 것이 인간적 도리겠으나 효각은 송도의 왕건에 대하여 은근히 존숭의 마음을 느껴왔다. 만행을 하면서 들은 그 당시의 백성들의 여러 갈래 어지러운 시대에 대한 의견이 있었는데 여기저기 많은 대다수의 중생들은 왕건을 지지하고 있었다. 게다가 왕건은 각 지역의 호족들과 왕씨 집안 간의 혼인을 통해 지지 세력을 넓혀 나가고 있었다. 효각은 드디어 용바위 근처의 작은 암자에서 시대의 혼란과 자신에게 지워진 삶의 근원을 깨치기 위하여 용맹정진의 장좌불와 참선에 들어갔다. 현은 용암마애불에 대한 르뽀 기사를 쓰기 위하여 인근의 나이 많은 할머니들을 찾아 다니면서 마애불에 관련된 역사를 찾기 시작하였다. 대체로 일제 시대를 살았던 연세 지긋한 할머니들의 공통된 이야기는, 옛날의 마애불은 마을 사람들의 경외의 대상으로 모셔져 일제 시대에도 존재해서 집안의 어려운 일을 해원하기 위하여 맞은 편 모래사장에 돗자리를 깔고 소원을 빌곤 했었다는 증언을 들었다. 집안의 길흉사를 절대적 존재인 마애 부처님께 빌었다는 사실을 현은 현지답사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 마을 사람들의 절대적 구원의 대상으로 모셨던 마애불상이 어느 날 사라져 버렸다. 그것은 일제에 의한 강제적 산미 증산 계획으로 인한 일제 총독부의 우리 민족 문화에 대한 경원시로 그러한 참혹한 결과를 가져왔다. 일본 총독부는 질 좋은 양질의 조선 쌀을 일본으로 실어 나르기 위하여 강압적인 신작로 공사를 강제로 실행하여 조선 문화 훼손을 단지 그들 제국주의적 침략을 정당화하는 악랄한 전시에 사용할 양식을 갖추기 위하여 식민지 소설의 산하를 여러 악랄한 방법으로 잔인하게 유린하였다. 그 때 신작로 공사로 인하여 천여 년 전에 조성된 우리 민족의 뛰어난 문화재가 일제에 의한 마구잡이식 신작로 공사로 인하여 용암마애불이 매몰된 사실이 엄연한 역사적 사실로 드러나게 되었다. 현은 의성 군청의 문화관광과에 들러 마애불의 존재에 대한 첫 파악이 이루어진 시점을 알아 보았다. 눈빛이 순한 담당 직원은 매우 친절하게 그 동안의 마애불 실상을 자세하게 현에게 알려 주었다. 군청에서 마애불의 두부 부분이 발견되면서 군청 담당자는 군수의 직인으로 마애불 보호를 위하여 공사 책임자에 대한 그 부근 일대를 보호해 달라고 공문을 벌써 여러 번 보냈다고 했다. 그러나 공사 책임자는 그 공문을 철저히 무시하고 공사를 감행하다가 이런 사태를 발생시키게 되었다고 군청 직원은 공무원다운 정확한 저간의 사실을 말하면서 전국으로 흘러나간 뉴스를 걱정하는 얼굴을 지어 보였다. 현이 군 청사를 나와서 다시 용암마애불이 있는 곳을 찾았을 때, 근처 마을에서 청년 몇 명이 텐트를 치고 마애불 보존을 위한 자원 봉사자를 자임하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마애불 앞으로는 큰 차단막을 쳐서 일반인들의 접근을 통제하고 있었다. 강의 여기저기로 줄을 이은 대형트럭이 강에 쌓인 퇴적물을 운반하는 분주한 광경을 보다가 현은 신문사로 돌아왔다. 효각은 밤낮으로 그 혼란한 시대에 희생된 가여운 중생들에 대한 화평에의 기원과, 효각 자신에 매달린 삶의 근원적 문제를 화두로 하여 정진하였다. 그 어느 날이었다. 잠시 암자의 토굴을 빠져나와 지친 심신을 아무런 생각 없이 서서 무연히 여름날 아침의 청정한 대기를 마주하고 있을 때였다. 바로 눈 앞에서, 작은 떨켜나무가 눈시울로 비쳐들면서 나뭇잎 사이 가지에 거미가 쳐놓은 거미줄이 안광으로 밀려 들어왔다. 이미 거미는 포획한 곤충을 먹어버렸고 앙상한 껍질만 거미줄에 대롱대롱 그 흔적만 남은 것이 안광으로 강하게 밀려들었다. 효각은 불현듯 그것을 보면서 자신이 바로 거미줄에 갇혀버린 불쌍한 곤충 같은 존재로 느껴지면서 온몸이 부르르 전율에 휩싸였다. 그렇다면, 그 운명처럼 갇힌 세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무엇이란 말인가! 효각은 마음의 눈이 뇌성벽력같이 환하게 밝아오는 깨달음을 느꼈다. 그래, 중생이, 구도자가, 깨우쳐야 할 것은, 번뇌와 오욕칠정이 바닷물만큼이나 출렁이는 속세의 번민의 세계에서의 깨달음의 지혜란, 거미줄처럼 얽어 매인 운명의 실에서 벗어나야 함을 효각은 천둥과 같은 대오각성으로 도를 깨친 것이었다. 그날 이후 효각은 행운유수의 운수납자로 중생이 살아가는 저잣거리로 나섰다. 불교에서 말하는 카르마, 즉 업(業)은 현생에서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전생에서 유래한 업은 그야말로 거미줄처럼 그 한 인간의 현생에 걸려 있는 문제일진데, 효각은 자신이 처한 변화하는 그 시대에 대하여 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운명적 일임을 아프게 깨달았다. 도처의 대중들은 도탄에 빠져서 신음하고 있었다. 어느 날, 깊은 산길에서 여러 무리가 떼를 지어서 승려인 효각의 바랑을 뒤질 때에도, 효각은 그들 도적을 위하여 참으로 마음 속에서 우러나는 축원을 해 주었다. 골품제도에 깊이 빠져든 귀족층의 사치하고 방탕한 풍조에서 신음하는 그 시대의 민초들은, 너무나 깊은 시름에 겨워 죽지 못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도처에 그러한 모습을 보는 효각의 마음은 아팠다. 그리하여 덧없는 행운유수의 운수납자의 세월을 보내고 그가 처음 득도한 암자로 돌아와서 그 날부터 큰 화강암 바위에 부처님의 상호를 음각하는 지난한 작업을 결심하였다. 암각에 원만구족한 부처님 상호를 새기는 작업 전에 먼저 효각은 온몸을 깨끗이 씻고 향을 사루면서 부처님을 향한 일념을 곧추 세워 조금씩 조금씨 작업을 해나가기 시작하였다. 처음 부처님 상호를 어떻게 형상화하는가 하는 문제로 여러 날을 효각은 깊이 궁구하면서 수천 번의 참배를 올리면서 자신의 마음 속 불심의 끈을 도사려 잡았다. 작업이 진척이 되지 않을 때는 토굴에 들어가 면벽하면서 부처님의 가피력을 간절히 빌기도 했다. 그리하여 부처님 마음이 효각 자신의 마음으로 스며드는 무아의 경지에서 바위에 상호를 그려 나갔다. 현이 그 동안의 용암마애불에 대한 기사문을 사진과 함께 편집국장의 데스크에 올리자 얼마 전의 사장과의 언쟁으로 아직도 부어 있는 편집국장은 얼굴 표정을 풀지 않은 채 O.K사인을 해 주었다. 현은 자리로 돌아와 자신이 기록한 기사를 다시 한 번 자세히 읽어 보았다. 현은 이 소도시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지방신문의 기자인 자신의 현재를 떠올리며 씁쓸한 마음이 마음의 한 부분에서 서서히 의식되면서 갑자기 자신의 존재 자체가 헛헛해졌다. 언제나 변방에 유배 나온 듯한 자신이 어쩌면 더욱 그런 마음으로 빠져들게 하는 것인지 모른다. 서울에서도 이름이 있는 대기업체의 노조일을 하다가 현은 직장을 떠나게 되었다. 하여 고향인 이 작은 소도시에서 선배의 주선으로 신문사 일을 보게 되면서 이곳 사람들의 살아가는 생활 방식을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체득하였다. 대체로 보수적이면서 농경을 중심으로 살아온 이곳 소도시는 대체로 계모임을 통해서 서로 간의 길흉사를 상부상조하는 옛날의 풍습을 엄격히 지키며 살아가는 곳이었다. 그렇게 살다보니 자연 이웃들이 큰 원환처럼 관계되어진 소도시민들의 삶의 공통된 모습이었다. 소도시이면서도 닷새마다 열리는 장날이 되면 이 지역의 가까운 인근 사람들로 붐비고 특히 풍물 시장이라는 곳에서 서민들의 물건을 사고 파는 현장에서는 아기자기한 이 곳 사람들의 삶의 따뜻한 모습들이 아직도 전통적인 경향을 짙게 풍기고 있었다. 그런 날이면 시장의 돼지고기 집에서는 고기 삶은 구수한 냄새가 시장 전체로 가득 차올라 시장 사람들의 입맛을 돋우기도 하였다. 대체로 푸성귀며 반찬용 향미료가 그 시장 전체의 주요 품목이었다. 현은 그런 시장이 열리는 날이면 그들과 더불어 돼지국밥을 먹으면서 이곳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들과 마음으로 가까워지기 위하여 현 자신의 마음을 기울이곤 하였다. 이따금 낮술의 소주도 반주로 곁들여 마신 날은 근처의 남산에 올라서 이곳저곳의 시내 전체를 조망을 하기도 하였다. 남산은 시민 공원처럼 둘레를 걷기 편하게 하기 위하여 일주 도로까지도 만들어 놓았다. 국궁을 하는 활터가 있었고 이 지방과 관련이 깊은 서애 류성룡의 유허비도 자리를 하고 공원 이곳저곳으로 시민들이 운동을 할 수 있는 시설과 쉴 수 있는 의자들도 도처에 설치해 놓은 곳이었다. 평화로운 이곳의 생활의 모습은 언제나 현의 마음을 푸근하게 하였다. 다만 시의 경제적 주름을 펴게 하는 기업 유치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이 소도시의 살림살이는 그렇게 풍요롭지 못한 것이 이곳 사람들의 시름이라면 시름이었다. 이곳 사람들의 뇌리에 박혀있는 삼백 즉, 쌀, 누에, 그리고 곶감이 이곳 사람들의 주생산물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전근대적 농산품은 그렇게 이 고을을 풍요롭게 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때마침 상주보와 낙단보 공사를 통한 현 정부의 4대강 살리기 사업은 이곳 마을을 위해서는 조금은 다행스런 일이었다. 많은 크고 작은 기업들이 이 사업의 하청을 따내서 소도시 사람들의 살림살이를 조금은 주름을 펴는 계기가 되게 할 수 있었다. 밤낮으로 효각은 화강석에 심혈을 기울여 언젠가 들렸던 서산 삼존불과, 영주 가흥리의 삼존석불을 떠올리며 자신의 부처를 향한 일념을 담아서 작업을 해 나갔다. 효각은 자신의 삶 존재 전체를 마애불에 혼신으로 담아나갔다. 그 일은 효각에게 불도에 귀의 한 중생을 계도하는 납자로서의 온마음의 총화였다. 서서히 부처님의 상호가 드러나면서 효각은 더욱 마음의 끝을 한 마음에 담고서 조금씩 조금씩 형상화해 나갔다. 이따금 나각산 정상의 바위굴에 살았다는 마고할머니의 굴을 바라보았다. 강은 예나 지금이나 억겁으로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사람은 불심으로도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지만 강물은 언제나 사람살이의 지극히 필수적인 물을 풍부하게 가지고 흘러가고 있었다. 효각은 영원히 흐르는 강물처럼 모든 사람들이 흠모할 영원한 부처님 상호를 조성하는 일로 언제부터인가 어렴풋이 생각을 하기도 했다. 언젠가 본적이 있는 백제 시대에 조성된 서산 마애불상의 원만하면서도 푸근하게 잔잔히 웃는 그 부처님의 상호를 머릿속으로 떠올리기도 했다. 효각이 조성하는 연화 받침대위의 부처님 상호가 잔잔한 웃음을 머금는 것도 그런 인연에서 유래되었는지 몰랐다. ‘일체유심조’의 초발심으로 효각의 손끝에서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 부처님 상호는 효각의 마음을 더욱 가파르게 옭죄는 숨을 멈춘 듯한 긴장을 가지게 하였다. 새벽의 부우연 여명이 안광으로 느껴지는 때 효각은 작업을 멈추었다. 효각은 이마위로 흥건히 흐르는 땀을 장삼 자락으로 닦아냈다. 마음은 너무나 평안했다. 효각은 굴을 나와 멀리 나각산 쪽으로 시선을 돌려 바라보기 시작하였다. 마고 할미굴을 향하여 두 손을 모아서 합장을 올렸다. 중생들의 생명에 대한 외경과 구원을 생각하며 효각은 간절한 기원을 드렸다. 현이 올린 용암마애불에 대한 그간의 기사를 내보내자 경향 각지의 신문사에서 그에 대한 기사의 문의가 계속하여 신문사 전화기로 이어졌다. 때마침 병인양요로 프랑스에 가있던 조선의궤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증폭되면서 현이 기사화한 용암마애불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는 한 계기가 되었다. 현은 그 동안 자신이 직접 발로 뛰어서 현장 주변에 관계된 내용을 가능한 자세하고 친절히 알려 주었다. 사장 역시 지방 신문에서 낸 기사에 대한 경향 각지의 여러 곳에서 문의가 이어지자 매우 만족한 눈길을 현에게 쏟았다. 현은 풍물 시장에 들러 대낮부터 순대를 씹으면서 소주를 야금야금 마셔댔다. 시장 주변은 가난한 시골 할머니와 아주머니들이 푸성귀를 펼쳐놓고 한낮의 뙤약볕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앉아 있는 모습을 현은 쓸쓸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그 마음은 종이 상자를 실은 리어커를 힘겹게 끄는 노인들의 모습을 시내에서 목격할 때 느끼는 연민과 같은 마음이었다. 그들의 작은 수입이 바로 생활이었다. 현은 근처의 임란 전적지가 있는 북천교를 건너 경내로 들어섰다. 왜적이 상주로 진입할 때 불과 800여 명의 의병과 관군으로 장렬히 순사한 선조들을 모신 곳이었다. 현은 돌계단을 올라서 위령각에 가 참배를 드렸고 천천히 북천교 쪽으로 시선을 던지니 근처의 아름다운 정경이 오히려 나라를 위해 아까운 목숨을 내던지신 영령들을 생각하니 더욱 쓸쓸함에 젖는 자신을 느꼈다. 선비들이 시회를 열었던 침천정, 그 시절의 사신을 맞이했던 상산관, 그리고 동학으로 목숨을 잃었던 한이 서린 태평루가 보였다. 현은 역사의 흐름을 늘 이 임란전적지에 오면 절실하게 느끼곤 하면서 나라를 위해 의로운 목숨을 던지신 선령들에게 추모의 마음이 솟구치는 애달픔을 생각하고 머리를 숙이고 추모의 마음을 드렸다. 이곳 소도시는 그런 추로지향의 고을, 그리고 충절이 살아 숨 쉬는 곳이었다. 북천교 아래로는 때마침 방학을 맞이한 어린아이들과 어른들이 요란스럽게 뒤엉켜서 여름 더위를 식히고 있는 모습이었다. 시에서는 몇 년 전부터 북천교 아래에 아이들을 위한 강수욕장을 설치하여 도시 서민들의 아이들 물놀이를 즐기는 장소로 만들어 놓았다. 폭염을 피하기에는 다리 밑이 금상첨화의 최적의 공간이었다. 그리고 후천교에서 이 고을의 고찰 남장사에 이르는 이른바 MRF길에는 벚나무를 심어서 멋진 걷기 운동을 하게 하는 절경을 이루고 있었다. MRF란 M(Mountain), R(River), F(Field)를 일컫는 말로서 시민들의 슬로 시티 운동을 위하여 특별이 만든 열서너 곳의 걷기에 좋은 산, 강, 들을 끼고 건강과 레져를 위하여 걷는 길이었다. 참으로 이곳 소도시의 싱싱하고 아름다운 길이었다. 그리고 시내의 중심지 길의 이름을 삼백로로 하여 이 도시의 상징인 감나무로 가로수를 설치하여 삼백의 고장이라는 상징성을 가지게 힘을 쏟아 놓기도 했다. 바야흐로 시는 이곳 소도시의 특징을 한껏 아름답고 그윽하게 힘을 쏟아 부었다. 시내를 벗어난 곳에는 이 소도시의 옛 터전이었던 사벌에 박물관을 설립하여 전통 깊은 이 고을을 더욱 유서 깊은 곳으로 만들고 있었다. 현도 박물관을 취재하면서 이곳 소도시의 아스라한 오랜 역사의 깊은 내력을 조금은 알 수 있게 되었다. 박물관에 전시한 여러 유물이 도굴꾼들에 의해서 벌써 여러 곳으로 옮겨져 조금은 그 규모가 부족한 듯한 느낌도 있었지만 이 전통의 소도시를 위해서는 매우 뜻있는 일이기도 하다고 현은 생각했다. 박물관은 인근의 산천과 어울려 참으로 아름다운 공원처럼 서 있었다. 군데군데 연못도 설치하고 이곳 소도시의 여러 선조들의 삶의 흔적을 보여주는 많은 유적들을 야외 드넓은 잔디위에 친절히 알려주는 설치물도 이곳저곳에 있었다. 현은 박물관에 들어설 때면 마음의 평안함을 느끼곤 하였다. 그래서 현은 낙단교 공사장에서 발견된 용암마애불을 보면서 아득한 천여 년 전의 선조의 소중한 손길에서 탄생한 연꽃 위에 가부좌로 앉아 계신 부처님 상호의 모습에서 눈물겹도록 그윽하면서도 깊은 감동을 절실히 느꼈다. 그것은 단순한 유물이 아니었다. 어느 불심 깊은 스님이 중생을 구원하기 위하여 온몸을 다바쳐서 거룩하게 이루어낸, 천 년을 넘어서까지 오늘의 우리에게 전하는 따뜻한 부처님마음의 정화라고 현은 깨달았다. <끝>  
134 목련에 들리다/주진
편집자
3402 2011-06-30
11. 07월 14호 소설 <단편소설> 목련에 들리다 거울 속에 지난밤의 흔적이 있다. 옷들이 지친 여행자처럼 바닥부터 침대 위까지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나는 결국 흰 바지에다 검은 바탕 흰물방울 무늬 재킷을 입기로 했다. 무던하고 깔끔한 쪽으로 손을 든 셈이다. 할머니 상중임을 의식하여 검정 슈트를 입어보기도 했으나 이 봄날 십년 만에 만나는 그를 부담스럽게 할 것까지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내 몸매의 장점인 긴 허리선을 위해선 작은 꽃무늬 원피스에 볼레로를 걸치는 것이 마땅했다. 그러나 여성스러운 자태가 드러날수록 마음 한쪽에서는 가위표를 그어대며 말렸다. 그러다 지쳐버렸고 등잔을 택배로 부쳐달라고 할 걸 그랬나 싶기도 했다. 새벽녘이 되어서야 눈을 붙였다. 모닝콜이 간밤의 고민과 망설임에 종지부를 찍어 주었다. 나는 여느 날과 달리 벌떡 일어나 샤워를 했다. 머리에 롤을 말고 화장대 서랍을 뒤져 몇 년째 굴러다니는 파운데이션을 바르고 수분이 다 빠져 표면이 거칠어진 립스틱을 엣센스에 섞어 발랐다. 양쪽 입꼬리를 올려 미소를 만들어 본다. 눈가 주름이 서너 개 접히고 입가는 굵은 여덟팔자가 됐다. 몇 년째 화장대 뒤편으로 밀려난 채 선택받지 못하고 먼지만 뽀얗게 뒤집어쓴 술탄 향수를 집어 들었다. 늙은 술탄의 여인처럼 향기는 뿌릴 때뿐이고 방을 나서는 순간 사라지고 말았다. 일주일 전, 외할머니의 빈소에서 돌아오면서 나는 등잔을 되찾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이제 내게 혈육이라곤 어머니밖에 남지 않았다. 외할머니와 각별했다거나 특별한 추억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묘한 상실감이 있었다. 해가 갈수록 심해져가는 탈모증상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듯 희미해져가는 내 존재감이 쓸쓸했다. 그렇다고 그 상실감을 메우기 위해 등잔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시작은 순수했다. 오직 등잔에 담긴 의미를 기리려 했을 뿐. 등잔은 원래 외할머니 것이었는데 십 년 전에 문도에게 넘어간 상태였다. 내 손으로 넘겨주긴 했으나 이렇게 등잔과의 인연이 끝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등잔은 나무로 만든 등경에 백자등잔을 얹은 단순한 모양이었다. 예전에는 생활용품이었으나 요즘은 인테리어 소품으로 쓰이기도 하고 사찰이나 국립공원 기념품 매장에서 혹은 박물관에서도 볼 수 있는 평범한 것이었다. 대량 생산된 상품들과 모양은 비슷했지만 할머니의 등잔은 특별했다. 이제 유품이 돼버린 그것을 되찾아오는 것이 할머니에 대한 예의고 마음의 빚을 갚을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하자 더 미적거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막상 등잔을 되찾기 위해 문도의 소식을 찾아 나서자 마음은 뒤범벅이 돼버렸다. 그의 웃음과 습관과 걸음걸이가 떠오르고 함께 겪었던 일들과 그때그때의 감정들이 생생하게 살아났고 함께 봤던 영화와 드나들었던 술집이 스쳐가더니 결국 그의 근황이 참을 수 없이 궁금해졌다. 초심에서 벗어나지는 말자고 수시로 자신을 다독여야 했다. 주로 분위기를 환기시키거나 아이들을 집중시킬 때 혹은 수업을 마무리할 때 로토스를 꺼내곤 한다. 마치 오디세우스가 항해 도중 만난 섬에 발을 내딛는 것처럼 한숨 돌리는 순간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콩알처럼 생긴 초콜릿을 나눠준다. 이건 연꽃의 열매인 로토스라는 건데 이걸 먹으면 세상 근심을 다 잊어버릴 수 있어.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다가 풍랑을 만나 어느 섬에 들르게 됐는데 그곳엔 로토스를 먹는 종족들이 살고 있었어. 그의 부하들은 섬사람들이 건네준 로토스를 먹은 뒤 고향을 잊어버리고 그곳에서 살겠다고 버티기도 했지. 초콜릿을 로토스라 믿는 아이들은 없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로토스를 입 안에 넣고 잊고 싶은 것들을 열심히 입 밖으로 내보낸다. 기를 써도 80점을 넘지 못하는 성적과 아침에 들은 친구의 욕설과 부모의 잔소리 같은, 불편하고 음울한 것들을. 아이러니하게도 그 망각의 열매는 옛 친구를 기억나게 한다. 문도는 대학 3학년 가을학기에 제대하여 복학했다. 그의 주머니 속에는 늘 콩알만한 커피색 초콜릿이 있었는데 그는 그것을 로토스라고 부르며 친구들에게 나눠주었다. 당시 전공선택 과목에 그리스 신화를 해석하는 과목이 있었다. 겉핥기로나마 리포트를 써내며 한 학기를 보내고 나면 신들의 이름이 친구 이름처럼 친근해지는데 문도의 로토스 역시 그런 공감대 위에 애교스럽게 받아들여졌다. 위태로운 열정을 위하여! 장밋빛 미래를 위하여! 문도는 씩씩하게 구호를 외치며 한 명 한 명의 입 속에 로토스를 집어넣어 주었다. 진부한 구호는 건강하고 낙천적인 그의 성격과 묘하게 어울렸고 로토스를 문 친구들의 입가엔 천진한 웃음이 절로 배어나왔다. 문도의 별칭은 자연스럽게 로토스가 됐다. 흔히 첫사랑을 상처와 함께 떠올리곤 한다지만 나는 로토스를 먹고 첫사랑의 아픔을 지웠다. 대학 졸업반 봄 학기가 시작될 즈음 첫사랑 애인과 헤어졌다. 왼손잡이였기 때문에 한동안 내 입술의 오른쪽은 담배 독으로 거무스름했고 혀와 입천장의 오른쪽 부위 역시 알코올로 절여지고 있었다. 나는 동기들보다 다섯 살이나 많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3,40대 여자들과 함께 휴대폰 생산 라인에서 일하며 4년을 보내고 난 뒤에야 대학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시력이 약한데다 작은 부품들을 조립하고 미세한 결함을 찾아내느라 눈이 더욱 나빠진 것도 하나의 이유였다. 뒤늦게 시작한 대학생활이었지만 보람 있게 보내지는 못했다. 학우 관계는 어정쩡했다. 사교적이지도 못하고 융통성도 없는데다가 나를 누나 언니로 부르는 동기생들과 섞이는 게 어색하고 불편했다. 곧 연애에 빠져들었고 학교 밖에서 맴돌았다. 헤어진 뒤에는 누구로부터도 위로받지 못했다. 대학 졸업반의 봄날이 지나가고 있던 어느 날, 수업을 끝내고 밖으로 나왔을 때 문도가 벤치에 앉아 있었다. 강의실 건물 앞 벤치는 과 학생들이 곧잘 모여 앉아 노닥거리는 곳이었다. 벤치 뒤로 수수꽃다리가 한창이었다. 그가 대뜸 말을 걸어왔다. “사랑이라는 놈이 어떤 맛을 가지고 있는지 맛 좀 볼래?” 무슨 헛소린가 하여 그냥 지나치려는데 그가 수수꽃다리 잎새 하나를 따더니 조그맣게 되도록 몇 겹으로 접어 내게 건넸다. “어금니로 콱 씹어야만 해.” 황당한 주문이었지만 그 황당함에 이끌려 나는 그것을 입안 깊숙이 집어넣고는 어금니로 깨물었다. 순간 혀를 마비시키는 쓰디쓴 맛에 몸서리가 쳐졌다. 그는 기다리고 있었던 듯 킬킬킬 웃었다. “그건 첫사랑의 맛이야. 이제 이걸 먹어봐.” 쓴 맛을 수습해야겠기에 따지고 자시고 할 겨를 없이 그가 건네준 콩알 같은 초콜릿을 냉큼 받아먹었다. “이건 망각의 씨앗이야.” 단 맛이 퍼지면서 쓴 맛을 몰아냈다. 그렇게 농담처럼 첫사랑이 지워지고 로토스에 서서히 취해갔다. 로토스. 입에 넣어 봐. 이빨을 사용해선 안 돼. 가만히 혀 위에다 얹어 두는 거야. 소화기관이라곤 혀와 침밖에 없다고 생각해. 침이 잘 나오려면 마음이 편안해져야 하지. 네 마음을 혀와 침에다 갖다 놓으렴. 이제 침과 함께 서서히 녹기 시작할 거야. 처음엔 달콤하지만 마지막엔 씁쓰레한 맛. 숨을 깊게 들이쉬면 그 향기가 온몸 구석구석으로 퍼져갈 거야. 한 번, 다시 한 번. 사람의 혈관을 한 줄로 이어붙이면 지구를 두 번 반이나 감을 수 있다는데 향기가 그 혈관을 한 바퀴 도는 시간은 1분도 안 걸려. 머리끝부터 발끝 손끝까지 다 퍼지면 너는 현실과 기억에서 벗어나고 네 몸은 해변의 소금기 머금은 바람을 맞고 있거나 피톤치드가 뿜어져 나오는 오후2시의 숲속에 있을 거야. 아이들에게 말하곤 했다. 사람에게 시달릴수록 자연 속에 있고 싶어 하고 그 속에서 에너지를 얻는다고. 그러나 나는 물속이나 숲속에서까지 내 모습을 보는 게 지겨워 어느 날부터 천변을 걷고 뒷산을 오르던 산책 코스를 버리고 대형마트를 둘러보거나 대학가를 돌았다. 소음으로 귀가 먹먹하고 눈앞의 정경들이 영상처럼 돌아가고 고기 굽는 냄새와 시궁창 냄새가 뒤섞인 거리를 걸어 다녔다. 광고판에는 그 날 밤에 있을 공연 포스터가 붙어 있고 보도블록에는 갖가지 홍보 명함들이 떨어져 있었다. 머뭇거리다 익명의 어깨들과 부딪쳤을 때 자신의 무게감에 놀라기도 했다. 쇼윈도 속 마네킹이 입은 원피스와 화장품 가게의 테스트용 립스틱을 구경한 다음 내가 걸음을 멈추는 곳은 테이크아웃 샌드위치 가게가 바라다 보이는 길목이다. 나는 뜨거운 철판 앞에 서 있는 여자를 오래도록 훔쳐본다. 여자는 손님의 주문이 떨어지자마자 옆에 놓인 스텐리스 통을 열어 다섯 가지 재료를 차례로 꺼낸다. 나는 재료가 놓이는 순서를 외고 있었고 여자는 단 한 번도 그 순서를 바꾸지 않았다. 완제품을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5분에서 6분 사이다. 여자의 손은 피아노를 치듯이 움직였다. 여자와 함께 꾸려가는 삶은 어떨까. 나는 종일 오이를 썰어 피클을 절이고 양배추를 썰고 소스를 만들고, 여자는 철판 앞에 서서 내가 만들어준 재료들을 이리저리 넣으며 샌드위치를 만드는 거다. 밤 열두시가 되면 가게 셔터를 내리고 뒷정리를 하겠지. 서로 어깨를 주물러준 뒤 술을 한잔 하는 것도 좋겠다. 상상을 하는 동안 손님이 끊기고 여자의 손놀림이 멈춘 것을 참을 수 없어서 우물쭈물 가게 앞으로 다가가 샌드위치를 주문한 적도 있었다. 집으로 돌아올 때쯤엔 어머니와 단둘이 이렇게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새삼 끔찍스러워지고 어떤 결단을 도모하는 심정이 목울대까지 차오른다. 그러나 주방에서 파자마 바람으로 마늘을 까고 있던 어머니가 대파를 사오라며 다시 등을 떠밀면 나는 대파를 향해 종종걸음을 걸어야 했다. 어머니는 대파같이 맵고 현실적이었고 나는 대파를 넘어설 수 없었다. 언젠가 했던 심심풀이 심리테스트에서 어머니는 귀가 얇아서 남의 말을 잘 듣는 유형으로, 나는 비현실적인 유형으로 결과가 나온 적이 있었다. 그 결과에 대해서마저도 어머니는 그것 봐라는 투로 나를 나무랐다. 그래서 결혼도 못 하고 궁상을 떨고 있지 않느냐고. 나 역시 어머니의 그 말이야말로 당신 귀가 종잇장만큼이나 얇은 것을 적나라하게 증명하고 있는 거라고 반박했다. 어머니와 나는 서로를 잘 알았고 상대의 단점에 관대하지 못했다. 문도의 연락처를 알아내는 것은 간단했다. 학과 사무실을 통해 알음알음으로 휴대폰 번호를 알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선뜻 전화를 걸지 못하고 망설였다. 그와의 마지막 만남 이후 묻어두었던 불편한 감정 때문이었다. 등잔을 건네주던 날이 마지막 만남이 될 줄은 그도 나도 몰랐다. 등잔은 그래서 뜻하지 않게 이별의 선물이 돼버렸다. 통화에 앞서 수십 번도 더 생각을 정리해야 했다. 바로 며칠 전 할머니상을 당한 손녀가 고가의 물건이 아닌 고작 할머니 손때가 묻은 등잔을 돌려받겠다는 건 결코 무리한 부탁이 아니다, 가까운 이를 잃은 슬픔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 물건으로나마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어느 누구라도 기꺼이 해줄 수 있는 일이지 않은가. 나는 휴대폰 폴더를 수차례 열고 닫으며 자신을 설득했다. 그러나 막상 통화가 됐을 땐 십년 세월이 무색할 만큼 싱거웠다. 문도는 스스럼없이 반가워했다. “야, 이게 누구야? 정말 오랜만이다. 어떻게 지내?” 어떻게 지내냐는 말에 나는 억누르던 감정의 둑이 무너지는 것도 모자라 그만 앞질러버렸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어.” 사실 넘어져서 그를 쳐다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당황스럽기는 그도 마찬가지였을 텐데 그는 그러냐며 조의를 표했다. 무던하고 배려 있는 성격이 그대로인 건지 사회생활 십 년차의 의례적인 언사인지 알 수 없으나 어쨌든 무연함이 누그러졌다. 할머니 얘기가 나와서 등잔 얘기를 꺼내기가 수월해졌다. 약속장소를 모교 앞으로 정했다. 알고 보니 사는 곳이 서로 반대 방향이었는데 어림잡아 모교가 중간지점쯤 되었다. “아직도 있나 몰라, 정문 맞은편 복사집 옆에 우리 잘 가던 찻집 말야.” 문도는 학교 앞에 안 가 본지 오래 돼서 모르겠다고 했다. “찻집이 없으면 정문 앞에서 보지 뭐. 그 날은 시간 잘 맞춰서 나갈게.” 그는 말끝에 의미 있는 웃음을 흘렸다. “그래, 이번엔 늦지 마라.” 그의 다짐을 확인하면서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시간을 잘 지키겠다던 그의 말에 왠지 김이 빠졌다. 단지 늦었기 때문에 우리 관계가 어그러진 것일까. 외할머니가 세상을 뜨던 날은 내가 우연찮게 신비스런 장면 하나를 포착한 날이었다. 어디까지나 어쭙잖은 내 시선으로 기존의 평범한 사실 하나를 포착했다는 것이지만 그 날의 포착은 내 영혼을 땅 하고 치는 각인이 있었다. 봄이 점점 짧아진다 하지만 예전부터도 내게는 인색한 계절이었다. 볕이 예사롭지 않아 밖으로 시선을 돌리면 벚꽃은 이미 눈이 되어 날리고 있고 성급한 목련은 행인들 발길에 즈려 밟히고 있었다. 마음먹고 봄옷을 꺼내 입은 어느 날엔 꽃들을 제치며 푸른 잎들이 성큼 화단을 덮었고 사람들은 반소매 차림이었다. 올봄, 오랫동안 해오던 논술 과외팀이 점점 줄어들어 한 팀만이 남아 있었다. 서른다섯 살은 무얼 시작하기에도 애매했고 결혼을 위해 남자를 만나기도 쉽지 않은 나이다. 안정된 직장을 가지지도 못했고 제대로 된 자격증도, 그럴싸한 이력도, 벌어놓은 돈도 없었다. 학원과 과외를 번갈아가며 그저 어머니와 나, 두 식구 먹고 산 게 전부였다. 그런 어느 봄날 아침이었다. 느지막이 일어나 물을 마시다가 베란다 쪽으로 문득 시선이 갔다. 창을 가득 채운 건 이제 막 터진 목련꽃 한 무리였다. 빛과 달리 꽃송이 하나하나에서 발하는 환한 기운이 모아져 애드벌룬처럼 커다랗게 원을 그리며 떠 있었다. 해가 없어도 늠름하게 밝을 순백의 기운이었다. “와아, 저게 뭐야? 엄마, 저것 좀 봐요!” “뭐?” 어머니는 노인복지관에 가려고 준비중이었다. 어머니는 아직도 스웨터를 벗지 못하고 분홍색 봄점퍼를 들었다놨다했다. 내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으나 어머니는 시큰둥했다. “저게 뭐 어떻다고?” 쯔쯔, 어머니는 혀를 찼다. 나는 창문 쪽으로 다가갔다. 목련은, 아니 목련이 뿜는 기운은 먼 데서 온 순결하고 너그러운 손님처럼 낯설고 신비로웠다. 내가 놓쳐버린 수많은 봄날에도 목련은 이 이층 베란다 창을 통해 거실을 들여다봤을 것이다. 목소리가 변하고 수염이 나기 시작한 사춘기 아이들과 밤늦게까지 씨름하고 자정 즈음 베란다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냉장고에서 한 달 묵은 사과 같은 얼굴을 보았을 것이다. 불면으로 한잔 두잔 마시기 시작한 소주가 병으로 비워지는 것도, 아침에는 술에서 덜 깬 상태로 학생 엄마들의 전화를 받는 것도. 아이들 수준은 초등학생들이 읽는 책을 소화하기도 버거운데 엄마들은 고등학생이 읽는 책들을 넌지시 열거하고, 시험기간이 되면 교과서 문제풀이를 해달라고 요구했다. 시험을 치르고 나면 팀이 깨지기 일쑤였다. 아이들이 농담과 핑계로 자신의 잘못을 눙치며 넘어가려 할 때마다 나는 잘못의 본질을 강조하며 역정을 내고 있었다. 아이들과 나는 줄다리기를 하는 것처럼 팽팽해져갔다. 해를 거듭할수록 가르치는 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확신이 들었다. 매사에 대해 너그러움이 사라지고 있었다. 어느 책에서 읽었던 글귀처럼 너그러움은 모든 일이 잘 풀릴 때에 퍼지는 온기일 것이다. 그런데, 너그러움이 눈앞에 있었다. 지친 새가 깃들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그때, 전화벨소리가 울렸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단다, 어머니가 다가와 소리 나게 베란다 창문을 닫았다. 쿵! 목련과 할머니는 아무런 관계도 없으면서 그렇게 묘한 인연으로 내 머릿속 한 귀퉁이에 자리를 잡아버렸다. 목련이 오고 할머니가 갔다. 숱한 생명이 오고 가는 길목에서 스친 사소한 우연에 불과했지만 아마도 나는 살아가면서 목련을 볼 때마다 외할머니가 생각날 것이다. 몇 군데 전화를 하고 서둘러 짐을 쌌다. 그리고 경황없이 어머니와 터미널로 갔다. 고속터미널로 가는 지하도 기둥을 에워싸며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명품 로베르또, 얼마 안 남았어요~, 만원부터, 로베르또로 땡잡으세요~ 몰려든 사람들 사이로 짝퉁 로베르또를 파는 남자의 소리가 울려나왔다. “무슨 로또로 땡잡으란다.” 어머니가 돌아보면서 말했다. 지하도는 무척 붐볐고 사람들과 부딪치지 않으려 애써야 했다. “가방이잖아.” 나는 그럴 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로또로 땡잡으러 무리 속에 끼어들까봐 어머니의 팔을 잡았다. “그래, 가당찮은 짓이다. 로또로 무슨 땡을 잡아.” 이미 로또에 대한 나쁜 기억에 사로잡힌 어머니는 들리는 말에서 쓰고 싶은 조각만을 주워들으며 조소를 날렸다. 어머니는 언젠가 로또가 5만원에 당첨되는 행운을 얻은 적이 있었다. 게이트볼 동호회에서 만난 장호씨가 선물로 준 것이었다. 그 사건 때문에 장호씨와 급속도로 친해졌고 한동안 내가 주는 용돈의 전부를 쏟을 만큼 로또의 마력에 흠뻑 빠져 버렸다. 물론 그 뒤로는 단돈 5천원짜리 행운도 건지지 못했다. 어머니 방에서 또 꽝이네, 하는 소리가 들리고, 박복한 년이 무슨 요행을 바라고 어쩌고 하는 익숙한 한탄이 뒤따라 나오곤 했다. 로또에서 더 이상 재미를 보지 못한 탓인지 장호씨와도 시들해지고 말았다. 할머니의 빈소가 있는 남쪽 지방도시까지 가는 동안 어머니와 나는 각자 그런저런 시시한 사념에 빠져 있었다. 할머니 얘기만 나오면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다고….’로 시작되는 어머니의 말을 듣는 것보다 딴청과 침묵이 나았다. 할머니 빈소가 마련된 곳은 어머니와 성이 다른 외삼촌 집이었다. 할머니는 어머니를 낳은 후 남편이 실종되는 바람에 상처한 박씨와 재혼했다. 주변의 눈총보다 먹고 사는 일이 더 문제였던 때였다. 나는 열 살 무렵 이후로 외가 왕래가 없었기에 친척들이 낯설고 불편했다. 핏줄로 보자면 할머니의 손녀였고 당연히 상제였지만 대하는 이들이나 나 자신도 서먹하기가 남남 같았다. 주방에서 여자들이 모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속에 끼지는 못하고 나는 뒤뜰로 이어지는 문간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눈으로는 길 건너 보이는 동백 밭을 바라보면서 여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얼마나 깔끔한 양반이었는지…. 뒤가 이렇게 깨끗할 데가 있나. 입던 옷가지랑 쓰던 물건들 다 싸봐야 상자 두 개가 고작이고, 팬티며 내복도 꼼꼼하게 접어 꾹꾹 쟁여놨습디다. 자손들 고생할까봐 수의며 상복도 미리 만들어뒀더라구. 덕분에 우리는 정말 편하게 일 치르고 있잖어. 생시에도 있는 듯 없는 듯하시더니 가실 때도 그렇고…. ” 어머니가 끼어들었다. “우리 어머니가 노상 등잔 밑에 앉아 있었던 게 기억나네. 밖에서 놀다가 어두워지면 멀리서도 어머니가 불을 켜 놓았겠거니 믿고 걸어가다 보면 틀림없이 희미하게 등잔불빛이 보였어. 방안엔 항시 석유냄새가 배어 있고 말이지. 벽이며 천장에 그을음이 생겨서 손가락으로 문대며 장난치다 혼나기도 많이 했지. 나중에 나를 보낼 때….” 어머니는 울컥 치미는 설움에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어머니는 여덟 살 때 남의 집으로 보내졌다고 했다. 도저히 생계를 이어갈 수 없었던 할머니는 딸을 남의 집에 보내고 당신은 박씨에게 간 것이다. 어머니는 이 부분 때문에 이때껏 할머니를 용서하지 못했다. “그 등잔을 보자기에 싸주며… 흐윽… 아버지 유물이 될지도 모른다고… 으으으… 얼굴도 못 본 아비 대신 가져가라고오오…. ” 할머니 영정 앞에서도 눈물을 안 보이던 어머니는 그제야 봇물 터지듯 울기 시작했고 주변의 여자들도 여덟 살 어머니가 불쌍해서 눈물을 훔쳤다. 그렇게 한 고개를 넘고 나서 어머니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등잔은 아버지가 손수 나무를 깎아 만들었다네. 내가 태어나기도 전이지. 손재주가 좋은 양반이라 어머니가 편케 이것저것 만들었다는데 남은 건 등잔뿐이라네. 자라면서 등잔불 켜고 책이라도 볼라치면 기름 든다고 양어머니한테 잔소리 많이 들었지. 이사 다니며 살다 보니 그것도 어디로 갔는지….” 나는 얼굴을 완전히 동백 밭으로 돌렸다. 이런 유래를 알았더라면 등잔을 문도에게 주진 않았을 것이다. 왜 하필 등잔이었을까? 선물을 주고 싶었다면 새롭고 좋은 물건들도 얼마든지 있었을 텐데. 나는 제풀에 얼굴이 붉어졌다. 거기엔 내 자신에게만은 속일 수 없는 은밀한 이유가 숨어 있었다. 농담으로 시작해서 진지함으로 끝나는 게 남녀의 관계라면 그가 농담 즈음에 있을 때 나는 혼자 서둘러 진지했던 셈이었다. 십년 전 겨울, 졸업식을 앞두고 나는 문도에게 선물을 주기로 결정했다. 결정이라는 단호한 절차를 밟은 것은 그만큼 신중했고 고민했다는 뜻이다. 도서관이나 수수꽃다리 앞 벤치거나 학과 사무실에서 우연히 마주치고, 점심을 함께 먹기 위해 시장통을 누벼 다니고, 단골찻집에서 담배를 나눠 피며 시간을 죽이고, 각자 다른 노선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에서 인사를 하는 일은 더 이상 없을지라도 문도와의 유대감을 이어가고 싶었고, 숙고한 끝에 그건 특별한 감정이라는 결론을 얻었으며 그래서 선물이라는 형태를 생각해 낸 것이다. 문도와 나의 관계에 지포라이터나 만년필 같은 선물은 식은 죽처럼 향기가 없었고 벨트나 지갑 따위는 뜨거운 죽 같았다. 통념의 가치와 기준에서 벗어난 것,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것, 무엇으로도 환산 불가능할 것, 선물의 의미에 대해 나는 오래도록 궁리했다. 내 마음을 더도 덜도 아니게 담고 싶으면서도 그대로 보여주기에는 자존심이 허락지 않는 모순된 갈등이 있었다. 그러다 눈에 띈 것이 등잔이었다. 등잔은 먼 시간이 주는 향수와 무용한 쓰임새와 희소성을 갖췄으며 경박하지 않고 내면적이었다. 문도와 나 사이에 놓였을 때 담백하면서도 메시지를 애매하게 담을 수 있는 선물로는 그만이었다. 나는 등잔이 할머니로부터 어머니에게 내림한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등잔을 특별히 소중히 여기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할머니를 마뜩찮아 하고 내왕이 뜸했던 것과 관계없이 그저 낡고 쓰임이 없는 물건 정도로 취급했다. 어떤 물건에 특별히 의미를 두는 편이 아니었다. 그래서 양은냄비나 소쿠리 등속과 함께 베란다 창고 신세였던 등잔을 몇 해 전 우연히 발견하고 내 방 화장대에 갖다 두었다. 나 역시 예스럽고 고상해 보여서 그랬을 뿐 할머니나 어머니의 내력까지는 미처 의식하지 못했다. 등잔으로 낙점이 되자 정성들여 닦고 한지를 사다 포장하고 문도와 약속을 잡았다. 포장해 놓고 나니 마음이 이상스레 설레던 기억이 난다. …… 솔직해지자면, 그건 일종의 프로포즈였다. 소극적인 프로포즈. 어차피 등잔은 다시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식탁에 파라핀유를 넣은 등잔불을 켜놓고 문도와 둘이 저녁을 먹는 상상까지 했었다. 등잔에 담긴 오랜 시간과 변치 않는 모양에 나는 심취했다. 등잔을 앞에 두고 밤마다 그를 생각하며 한 발짝, 한 발짝, 혼자 관계를 진전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 날은 유독 추운 날이었다. 전날부터 편도가 근질거렸기 때문에 미리 약국에서 항생제를 사먹어야 했다. 패딩코트에다 바지를 입었어야 할 날씨였지만 모직반코트와 스커트를 입고 부츠를 신었다. 포장한 등잔을 커다란 쇼핑백에 넣고 집을 나섰을 때의 기세는 눈이라도 녹일 듯했다. 약속시간은 오후 세시였다. 문도가 오전에 학원 수업을 받고 스터디를 해야 한다고 해서 넉넉하게 잡은 시각이었다. 점심을 먹고 나갔던가. 아마 제대로 먹지 못했을 것이다. 그와 함께 스테이크를 썰 작정이었다. 그즈음 학교 앞에 인테리어를 새로 바꾼 레스토랑이 있었는데 그 날 저녁을 보내기에 안성맞춤일 것 같았다. 원목마루와 패브릭 소파, 옹기와 목기 같은 소품이 있어 여느 집 거실처럼 아늑하고 따뜻해 보이는 공간이었다. 약속시간에서 30분이 지나도록 그는 오지 않았다. 나는 차를 시켰다. 한 시간이 지나자 그냥 갈까 말까 갈등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시 30분이 지나자 화가 났다. 또 30분이 지났고 오기가 생겼다. 만나기만 하면 따귀라도 올려붙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가 나타난 시간은 저녁 일곱 시였다. 일곱 시의 나는 그를 기다린다기보다 낙담과 절망적인 기분 속에서 망연히 앉아 있었다. 뭔가 어그러지고 있다는 참담함이 몸을 칭칭 감아 꼼짝할 수 없었다. 그는 느릿느릿 걸어 들어왔다. 그때까지 내가 기다릴 줄은 몰랐다고, 그냥 한번 들러본 거라고 했다. 너무 미안해서 그는 내게 정이 떨어진 얼굴이었다. 나 역시 돌처럼 굳어서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다. “나가서 저녁이라도 먹자.” 그가 기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찬바람이 닿자 오한으로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이게 뭐니?” 커다란 쇼핑백이 무거워보였는지 그가 들어주겠다며 손을 내밀었다. “등잔이야.” 나는 별것 아닌 듯 말하며 그의 손을 뿌리쳤다. “웬 거야?” 그 역시 별 관심은 없었지만 어색한 기류를 무마하고자 애쓰듯 다시 물었다. 그새 편도가 부어올라 침을 삼키기 거북해졌고 손발도 얼어 감각이 없었다. 레스토랑은 너무 멀게 느껴졌다. 근처 식당에서 김치찌개를 주문하고 나서 그에게 늦은 이유를 물었다. “깜빡했어. 아침에 늦잠 자는 바람에 학원에 늦고 스터디도 엉망이었고 오늘 종일 이러네. 첫 단추를 잘못 뀄어. 약속이 있다는 걸 기억하고 있었는데 스터디 끝나고 한 놈이 당구장에 가자는 거야.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간 거지.” 그 때 문도와 나의 관계가 연인이 아니라 친구라는 것을 냉정하게 이해해야 했다. 문도의 말 속에는 친구의 약속을 한 번 정도 지키지 못한 만큼의 부채감이 있을 뿐이었다. “그랬구나, 너는….”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손발에서 시작된 떨림이 온몸으로 퍼져 새파랗게 질린 채 와들거리고 있었다. 편도는 숨을 쉴 때마다 부어올라 고통스러웠다. 항생제로 눌러놓았던 감기 기운이 몸을 덮쳤고 나는 대항할 무기도 의지도 기력도 없었다. “너 어디 아프니?” 내 꼴이 심상치 않았는지 문도가 놀라며 물었다. 나는 김치찌개를 먹지 못하고 그가 잡아준 택시를 탔다. 택시에 오르기 전에 쇼핑백을 떠맡기듯 그에게 건넸다. 그가 무심히 늦었듯이 나 역시 짐을 내던지는 기분으로 줘버렸다. 그 순간의 등잔에는 어떤 의미도 없었다. “… 졸업선물이라고나 할까.” 그때 내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무의식중에 튀어나온, 철저히 방어적이었던 그 말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싸늘해진다. “어어… 이거 고마워서 어쩌지? 몸조리 잘하고 푹 쉬어라.” 얼결에 쇼핑백을 받아든 그는 당황스런 표정이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밤새 고열에 시달렸다. 십년 만에 만난 문도는 생각했던 대로 순조롭게 나이든 모습이었다. 그간의 안부를 묻고 덕담을 주고받는 의례적인 인사가 끝나자 잠시 어색한 침묵이 깔렸다. 그는 다시 한번 할머니에 대해 조의를 표하며 말을 이었다. “이 등잔이 할머니의 유품이란 말이지? 어쩐지, 요즘 대량 생산되는 것과는 다르다 했어.” “네가 그렇게 섬세했었니? 그런 눈썰미가 있었어?” 그는 쑥스럽게 웃었다. “물론 내 눈썰미는 아직도 실종중이야. 근데 이 등잔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더라고. 아무튼 너한테 감사해야 할 일이 있어.” “감사할 일? 뭐?” “일단 볼래?” 그는 쇼핑백에서 분홍보자기에 싸인 물건을 꺼냈다. 꽃잎 모양 같은 매듭을 풀자 등잔이 모습을 드러냈다. 새삼스러웠다. 나무로 만든 받침대에다 등잔걸이를 얹어놓은, 참으로 단순하고 소박한 자태였다. 오래 묵은 나무를 정성으로 닦아주고 만져준 흔적인지 천연광택이 나면서 등잔은 생기가 있어 보였다. 받침대 밑판은 재떨이 겸용으로 쓸 요량이었는지 오목하게 패여 있어 할아버지의 마음이 엿보이기도 했다. 수십 년 전의 그을음이 스며든 백자 호형 등잔도 잘 닦여져 말끔했다. 내게 있을 때보다 등잔은 더 좋아 보였다. 혹시 방치해두었거나 잃어버리진 않았을까 걱정도 됐었는데 이렇게까지 대접을 받고 있을 줄은 몰랐다. 등잔이 내 분신이라도 되는 양 가슴이 떨려왔다. “관리를 잘했구나.” 내 말에 문도는 쑥스럽게 웃었다. “내겐 귀한 물건이야.” 나는 기대와 흥분을 누르며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십년 전 그 날, 나를 택시에 태워 보내고 그는 식당으로 되돌아갔다. 김치찌개는 다시 데워 나왔고 그는 소주를 곁들였다. 그는 이래저래 꼬인 하루를 조금씩 풀고 있었다. 얼마 뒤에 과 후배 영선이 들어왔다.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고 했다. 둘은 2차까지 가며 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뒷날 자고 있는데 전화가 왔어. 영선이야. 이거 너한텐 정말 미안한 얘긴데 내가 취해서 등잔을 할매집에 놓고 나온 거야. 다행히 영선이 등잔을 챙겼더라구. 이래저래 바빠서 한 일주일쯤 지나서야 걔를 만났나봐.” 영선은 등잔을 그냥 줄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저녁을 사기로 했고 그녀가 이끄는 대로 학교 앞 레스토랑으로 갔다. 영선은 스테이크를 썰면서 술 취한 선배가 너무 귀여웠다고 말했고 문도는 귀까지 빨개졌노라고 했다. 둘은 와인을 곁들이고 시시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식사를 끝냈다. 디저트로 나온 아이스크림을 핥으며 영선은 등잔이 딱 자기 취향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문도의 눈을 바라보았다. 선배, 이 등잔 저 주시면 안돼요? 훗날 둘이 결혼하게 됐을 때 문도는 그 말이 프로포즈처럼 들렸었다고 그녀에게 고백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손이 올라가 내 입을 틀어막았다. 심장이 멈추듯 했고 소름이 돋았다. 문도는 얘기를 끝내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너는 어떻게 된 거야? 왜 갑자기 연락이 끊긴 거야? 네 소식을 아는 사람이 없더라구. 전화번호도 바뀌고.” 졸업과 동시에 나는 학교에서 맺은 인연들을 끊어버렸다. 실은 인연이랄 것도 없었다. 학교에 다닐 때도 혼자였고, 그나마 함께 다니던 예비역 몇 명은 우연히 만나면 어울리는 정도였지 따로 연락하고 말고 할 관계는 아니었다. 전화번호를 바꾼 건 즉흥적인 기분에서였다. 그 날 이후 감기를 호되게 앓고 나자 갑자기 주변을 정리하고 싶어졌다. 전화번호를 바꾼다고 해서 달라질 만한 주변도 아니었지만 그때의 심정은 그랬다. 문도는 휴대폰 문자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와이프가 맛있는 거 먹으랜다. 그 대신 늦으면 안 된대. 둘째가 돌쟁이라서 아직 힘들다. 와이프가 이 등잔을 참 좋아하고 아꼈어. 기념일에는 이 등잔을 꼭 켜곤 했어.” 등잔에서 느껴지던 생기는 그들의 시간이 스며들어서였을까. 문도는 굳이 융숭한 대접을 해야만 한다며 시내로 나가자고 했으나 결국엔 내 뜻대로 근처 일식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시종일관 은인을 대접하듯 깍듯한 태도였다. 저녁을 먹으면서 마음이 담담하고 차분해졌다. 등잔이 가리키는 대로, 등잔이 밝힌 길을 우리는 각자 갔던 것뿐이었다. 할아버지의 손길이 닿았고 할머니의 마음이 스며들었고 어머니의 원망이 덧칠되었다면 문도의 십년도 등잔의 엄연한 무늬로 새겨졌을 것이다. 식사를 끝내고 잠깐 그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나는 일식집에서 빠져나왔다. 등잔을 그대로 둔 채. 돌아오는 차 안에서 문도에게 문자를 보냈다. 등잔의 주인은 너와 네 가족이라고. 아파트 화단에 목련 꽃잎이 떨어지고 있었다. 낙화도 끝물이었다. 며칠 전 일제히 피어난 목련꽃 무리는 모두 북쪽을 향하고 있었다. 북쪽의 바다 신을 사모하던 공주의 무덤가에 핀 꽃이 목련이라는 전설을 들은 적이 있다. 한편으로는 겨우내 자라난 꽃봉오리의 겉껍질이 햇볕 잘 드는 남쪽 방향에서 튼실하게 먼저 열리다 보니 북쪽 꽃잎은 수그러져 꽃 모양이 북쪽을 향하게 될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꽃이 핀 방향 하나에도 과학적인 이치가 있었다. 오늘만큼은 전설을 믿을 수 없는 날이다. 이렇게 화사한 한순간을 위해 목련은 길고 추운 계절을 빳빳이 견뎌냈다. 모든 기다림의 끝이 다 좋지는 않을지라도 활짝 열린 그 속을 들여다본다는 건 의미 있는 일이다. 나는 남은 생애 동안 목련이 화사하게 피는 절정의 순간마다 할머니를 떠올리게 될 테고, 더불어 등잔을 생각하게 되리라. <끝>  
133 씹는다, 씹어 세상의 질긴 것들을 외1편/정숙 file
편집자
4284 2011-06-30
11.07월 14호 시 씹는다, 씹어 세상의 질긴 것들을 ------cc tv 작동 중 38 1. 살결 야들야들 연하다 가끔 씹히는 힘줄 오히려 반갑다 모처럼 친정에서 뜯어온 상추쌈에 쇠고기 부채살 한 점 넣어 씹는다 씹을수록 살맛이 참기름과 섞여 달큰 고소하다 그런데 육즙은 쩝쩝거리며 왜 내 모습 비춰주는가 어른들께 그에게 또는 가까운 이들에게 이처럼 온 몸 다 바쳐 내 단맛 내어준 적 있는가 가끔 거칠게 씹히도록 성깔 맛 한번 보여준 적 있는가 은근히 따져 물으며 2. 물에 물 탄 듯 뻣뻣하고 싱겁기만 했던 나를 야무지게 씹는다 늘 적당히 구렁이 담 넘어 가기만 기다리던 거울 속 내 비겁을 쨍! 째쟁! 깨뜨린다 그러나 눈치만 키운 그는 결코 혼자 죽지 않는다 얼른 세포 분열하면서 제 몸 조각들 양심 뒷면에 꼭, 꼭 숨겨두고 떠난다 언제 끝날 것인가 숨 막히는 이 세상살이 숨바꼭질은 오늘도 호박씨 얼마큼 까고 있느냐 -낙동강 6 누워서 흐르기만 하는 너의 저 강물, 강물은 가끔 피리떼 쏘아 올리는지 삿대질합니다 때론 잉어를 출렁! 몸 무겁게 밀어 올립니다 바람의 힘 붙잡고 몸 뒤틀어 변덕스런 하늘 꾸짖기도 하며, 깜짝 놀라 돌아보니 철썩! 금세 떨어지면서 저 혼자 소용돌이치는 강물 그 자리엔 시인 몇 흘낏 보입니다 한 줄기 불빛 조명을 찾아 얼마나 답답하면 별난 문자를 쏘아 올리는지 칡넝쿨보다 더 엉켜 줄줄이 인연의 끈을 엮고 있는지 늘 슬픈 얼굴로 내숭백단을 떨어 정 넘치는 어린 시선을 끌어들이는지 떠난다, 버린다, 비운다 좋은 말 혼자 다하면서 너는 오늘도 뒤로 불륜의 호박씨 얼마큼 까고 있느냐 참, 그런데 내가 깐 호박씨 벌써 서 말 닷 되는 남아 될 텐데 어느 깊은 웅덩이에 숨겨야 하나 그보다 한껏 밀어 올릴 눈치라도 몇 마리 키우지 못했으니 빈 치맛자락은 잔물결 꽃물결 일으키며 멀뚱멀뚱 먼 산봉우리만 흘낏거립니다  
132 詩塚 외1편/이종암 file
편집자
3959 2011-06-30
11.07월 14호 시 詩塚 말조심의 뜻으로 전해져오는 언총(言塚)을 어느 시인의 시에서 만나고는 캬- 무릎을 치며 그 의미를 되새겨보았건만, 얼마 전 한 평론집 서문에서 만난 시총(詩塚)은 왜 그리 내 가슴을 답답하게 짓눌렀던가. 경북 영천시 자양면 성곡리 산 78번지, 백암 정의번의 무덤. 시총의 주인공 백암공은 임진왜란 때 경주성 전투에서 적에 포위된 아버지와 나라를 구하려 적진에 뛰어들어 왜적과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하였다. 훗날 시신도 찾을 수 없어 그 아비가 아들의 옷과 갓을 들고 경주 싸움터에 가서 초혼하여 빈소를 마련하고, 생전에 뜻을 나누던 지우(知友)들의 애사(哀詞)를 모아 관에 담아 묻으니 세상 처음 시총이 나온 바다. 수소문하여 찾아간 기룡산 기슭 십만 평의 영일 정씨 하천묘역. 장방형 묘역에 돌올하게 솟은 80여 기의 무덤들 거대한 책 속의 무슨 글자들만 같다. 시총을 찾아가 비문을 손으로 찬찬히 읽고는 엎드려 절하니 사람 묻은 곳보다 더 깊은 무덤이다. 무덤 속에 있을 여러 편의 시와 공을 추모하며 봉분을 둘러보는데, 홀연 나비 두 마리 무덤을 열고 푸르륵 날아오른다. 나비 허공으로 날아간 궤적에 일순간 펼쳐진 문장을 나는 보았다. <사람의 마음은 빛보다 빠르고 태산보다 크나니, 육신이 없어져도 마음은 남아 時空을 초월하여 通한다.> 무덤 속 백암공과 지우들이 남긴 시들도 나비처럼 날아올라 하늘의 별로 빛나는가. 어둠이 깔리니 열사흘 달빛 아래 하늘의 별과 땅 위 시총의 상응이 무한정 좋다. 시공을 건너는 저 시들은 비바람의 세월에도 지워지지 않겠다. 무덤 속 하얀 언어들 흩날리는 꽃잎처럼 자꾸 내게로 건너온다. *나는 정진규 시인의 시집『공기는 내 사랑』(책만드는집,2009)에서 언총(言塚)을, 그리고 박현수 교수의 평론집『황금책갈피』(예옥,2006)에서 시총(詩塚)을 만나 이 시를 쓸 수 있었다. 개밥바라기塚 시를 묻어둔 무덤이라고 요즘 막 세상의 이목을 받고 있는 시총(詩塚) 바로 앞자리에 작은 무덤 하나 놓여있다. <忠奴億壽之墓>, 영일 정씨 문중이 임진왜란 때 왜적에 붙들려간 주인을 구하려 적진에 뛰어들어 장렬히 전사한 노비를 어여삐 여겨 문중의 하천묘역 안에 고이 모셔놓은 것. 함께 죽은 주인의 무덤 시총보다 턱없이 작은 게 얼핏 보면 개집 같고 무슨 단추 같기도 하다. 이 작은 무덤의 사연을 세상에 내민다. 시총에 시가 있다면 노비 억수의 무덤에는 무엇이 묻혀 있는가. 시총의 주인처럼 노비 억수의 시신도 찾지 못했다면 이 무덤 속에는 대체 무엇이 묻혀 있는가. 마음이겠다. 주인을 구하려는 노비 억수의 마음, 그의 죽음을 안타깝고 고맙게 여긴 영일 정씨 문중의 따스한 마음이 여기에 있을 터. 그러면 이는 마음을 모셔놓은 심총(心塚)이다. 마음은 사람을 움직이게 하여 세상의 빛깔을 바꾸게 한다. 또 마음의 깊은 자리는 세월을 넘어 이승과 저승에까지 이어져 썩지 않는 끈이 된다. 주인의 무덤 시총 앞 <忠奴億壽之墓>는 초저녁 초승달 위에 피어난 별, 개밥바라기를 닮았다. 개밥바라기塚이라 이름을 붙여드린다. 시총과 개밥바라기총 어울림의 앉음새가 하늘의 그림 같다. 개밥바라기총, 세월이 가도 그 자취 없어지지 않고 빛도 잃지 않겠다. 총, 총, 이종암 1965년 경북 청도 출생 1993년『포항문학』으로 등단 시집『물이 살다 간 자리』『저, 쉼표들』『몸꽃』 mulgasarang@hanmail.net 791-220 경북 포항시 북구 우현동 우창서길 34번지 011-824-8163  
131 선생님은 내 꺼 외1편/조재학 file
편집자
4309 2011-06-30
11.07월 14호 시 선생님은 내 꺼 어머니 기일이라 고향으로 가고 있는 고속도로 옆 금강 물줄기가 팔짱을 낀 듯 은근하다 이 느낌, 한때 나도 물이었을 지도 모를...... 금강이 고개를 끄덕이며 “너는 내 꺼!” 한다 “선생님은 내 꺼” 수업을 갓 마친 나에게 1학년 꽁지머리 채현이가 팔짱을 끼며 하던 말 발가므레한 볼이 생각난다 무논은 흥건히 젖어 개구리밥을 안고 어른다 너는내꺼, 너는내꺼 비탈이 샛노란 꽃들을 게워낸다 오래 달려온 태양이 산의 뒤로 서서히 착륙하고 있다 너는 내 꺼 내 피의 어디쯤에 문신처럼 이 슬픈 말의 역사가 있었는가 선생님은 내 꺼 선생님은 내 꺼 채현의 음성이 굴러가는 고향 쪽 어디 감나무 잎이 골목에 쌓이는 날 그녀가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앓고 있다는 소문은 오래 전에 골목에 떠돌았으나 갑작스런 소식에 가슴은 긁히듯이 아프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저런 안부를 나누기도 했는데 상추가 많이 자랐으니 뜯어가라든가 감을 내릴 때는 담 너머 보내오곤 했던 달빛이 떨어진 잎을 둥글게 어루만지고 있다 소문은 떨어진 감나무 이파리처럼 나무 주변을 푸석거리다 흩어지리라 그녀가 은밀히 떠난 것처럼 가족들도 조용히 움직인다 수의 같은 햇빛을 입고 죽은 듯 누워 있는 골목으로 그녀의 가구들이 실려 나간다 귀퉁이가 닳은 갈색 옷장, 문 없는 그릇장, 회백색의 궤짝, 헌 받침대.....들이 포개진 채로 문 앞에 나와 있다. 그녀가 주고 간 맨몸의 하직 인사다 시대문학으로 문단에 나옴. 한국문협회원 시집『굴참나무의 사랑 이야기』『강 저 너머』 현, 한국문협 상주지부장, 성신여자중학교 교사  
130 요래 가이고 조래 해봐 외1편/권형하 file
편집자
4277 2011-06-30
11.07월 14호 시 요래 가이고 조래 해봐 권형하 내 어릴 적 할매가 바늘에 실 꿰어 달랄 때 실 한 뜸 바늘 구녕에 요래 가이고 조래 넣어라더니 어느새 내 입속 가득히 옹알쫑알 피는 말들. 눈 가뭇한 아내가 바늘에 실 꿰랄 때 입술 뭉텅 씹히는 말로 요래 가이고 조래 했더니 콧 구녕 밥알 빼 먹는 소리로 ‘알써 그래그래’ 한다. 탁본 열 살 적 꿈이란 게 대여섯 번 이사였다지 입 없는 아이들과 눈 없던 어른 속으로 축 처진 애비를 붙잡고 여자 애가 걸어왔다. 강마을 아파트로 껑충대며 뛰던 아이 손 하나 쑥 집어넣고 만지고 싶은 환한 사랑 이 대낮 토굴 속으로 손도 뵈지 않는다.  
129 구경꾼 외 1편/김세형 file
편집자
4099 2011-06-30
11.07월 14호 시 구경꾼 김 세형 난 인생의 영원한 구경꾼이고 싶었다 인생의 무대에 엑스트라라도 끼고 싶지 않았다 구경만큼 재미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젠 구경도 별 재미가 없다 내 몸의 아홉 구멍 그 구경九境도, 그 구경으로 내다보는 바깥세상 그 구경도, 이젠 시들하다 과연 무대 위의 주인공들은 주인공들인가? 그리고 객석의 나는 누구의 구경거리인가? 문득, 무대 위의 주인공들이 구경꾼인 객석의 나를 의혹에 찬 시선으로 내려다보고 있다 난 얼른 그들의 차가운 시선을 피해 극장 밖으로 달아난다 구경이 사라진 극장 밖은 고요하다 그 곳엔 주인공도 구경꾼도 없다 손잡이 흔들리는 지하철 객차 안 긴 공중 철봉, 달랑~달랑~ 대는 가는 목에 의지한 채 지친 손들을 기다리며 흔들리고 있는 손잡이들······ 살면서 무엇인가를 허겁지겁 잡기만 했던 내 손은 한번도 누군가의 손잡이가 되어준 적이 없었다 삶의 무게에 전신이 덜컹거리며 흔들릴 때 저 작은 손잡이들은 얼마나 내게 큰 위안이었던가? 저 손잡이들은 자신의 목을 공중에 매달고 있는데 난 저 손잡이를 붙잡고 그네를 탄 적도 있었다 어느 날의 귀갓길이었던가? 낡은 손잡이 하나가 더 이상 무게를 견디지 못해 자신의 목 동맥을 끊어내고 지하철 객차 바닥으로 뛰어내린 것을 본적이 있었다 누군가의 삶의 무게를 덜어주려다 더 이상 제 삶의 무게를 견뎌내기 힘들었던 것일까? 지하철 철로 위로 나비처럼 사뿐히 뛰어든 실연에 상심한 어느 청년의 잘려나간 손목처럼 사랑도 때로는 얼마나 고된 중노동이던가? 오늘도 흔들리는 객차 안 공중 철봉에는 사랑에 지친 목을 건 수많은 손들이 손을 흔들어대고 있다 잡아달라고, 제발 내 손 좀 잡아 달라고, 약력-2005년 《불교문예》로 등단 저서-『모래인어』『사라진 얼굴』 이메일-nalibul@hanmail.net 주소-서울 강동구 상일동 152번지 벽산빌라 3동303호  
128 정 나누기 /정경해 file
편집자
4139 2011-06-01
11.06월 13호 수필 정 나누기 정경해 두 마리의 소가 마주 서 있다. 길쭉한 얼굴로 서로 맞대어 있다. 가까이 들여다보니 맞댄 것은 입이 아니라 볼이었다. 최근에 작품집을 낸 어느 老 사진작가의 '모정(母情)'이라는 작품이다. 사진 속에는 어미 소와 송아지가 다정하게 서로의 볼을 비비고 있었다. 볼을 마주 댄 모습이 정겹다. 목을 길게 뺀 송아지와 그 키에 맞춰주기 위해 한껏 목을 움츠려 낮춘 어미 소의 주름진 목덜미가 다정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표정 또한 정겨움이 잔뜩 배어있다. 어미 소와 송아지의 두 귀는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뒤쪽으로 모아 쫑긋 세웠고, 눈망울은 감미로움에 도취되어 있는 듯하다. 그것을 보자 내 아이들과 뺨을 비벼대던 옛날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아이들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뽀뽀하는 것을 좋아했다. 틈만 나면 '뽀뽀' 하면서 나의 얼굴에 제 얼굴을 들이댔다. 처음에는 입과 입을 맞댔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은 즐거워했다. 아이들과의 가슴 벅찬 친밀감이 느껴져서 나 또한 흐뭇했다. 어느 날 부턴가 아이들은 코로 뽀뽀하기를 원했다. 내가 버릇처럼 입술을 내밀면 '아니' 하고는 코를 들이밀었다. 코로 하는 뽀뽀는 입술로 하는 것보다 또 다른 달콤함이 있었다. 한동안 서로의 코를 맞대어 비비고 나면 새록새록 情이 더 깊어갔다. 초등학교 고학년 쯤 되면서 아이들은 코를 맞대려하지 않았다. 그것이 유치하다고 느껴졌는지 대신에 볼과 볼을 비비는 볼 뽀뽀를 원했다. 우리는 마주하기만 하면 볼 뽀뽀를 해댔다. 아침에 일어나서 처음으로 하는 인사가 '잘 잤어?'라는 말을 건네며 서로의 볼을 맞대는 일이었다. 학교에 갈 때는 물론 집에 돌아와서도 볼을 비볐다. 속상한 마음 털어놓을 때면 눈물 젖은 볼을 지그시 눌러 비볐고, 기분이 좋을 때에는 발그레한 볼을 맞대어 훈기를 느끼게 했다. 볼에 뽀뽀를 할 때마다 아이는 자신의 몸을 나의 키에 맞추기 위해 까치발을 했다. 엄마인 나도 가슴께에 머문 아이의 키에 맞추려 허리를 구부렸다. 그런 모습에서도 우리는 진하게 오가는 사랑을 느꼈다. 내가 어린 시절, 우리들 부모님은 과묵하셨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산다는 여건 때문인지 우리들과 얼마간의 거리를 두셨다. 대신 그윽한 눈길과 짧지만 힘이 되어주는 말로 우리를 다독여주셨다. 힘든 내색이라도 보이면 '너는 잘 될 거야.'라는 말로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셨다.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자주 듣던 그 말은 중년을 넘어선 지금까지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게 했다. 잊히지 않는 부모님의 모습이 있다. 버스가 흔치않던 학창시절, 버스에서 내리는 마을 입구까지 꽤 먼 거리까지 나와서 서성거리시던 모습이다. 언제나 막차를 타고서야 집으로 돌아오던 그 시절의 나는 버스 불빛에 비치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는 순간 안도감과 함께 가슴이 찡해왔었다. 결혼을 하여 일 년에 한 번 부모님을 찾을 때도 그 모습은 변하지 않았다. 버스에서 내려 발을 딛기 바쁘게 반기시며 '지금 오니?' 라고 던지는 말씀은 더없이 편안하고 푸근했다. 승용차를 타고 친정을 오가게 된 요즘 변함없던 부모님 모습도 많이 달라졌다. 어김없이 서 계시던 마을 입구는 휑하고, 부랴부랴 친정집 앞에 도착해서야 부모님의 구부정한 모습을 볼 수가 있다. 마당에 내려 선 내가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것은 연로한 부모님을 끌어안는 것뿐이다. 부모님의 몸은 예전과 많이 다르다. 기력이 약해 지팡이에 의지한 채 간신히 서 계신다. 앙상한 팔다리와 물기어린 촉촉한 눈이 애잔하다. 몸이 맞닿을 때마다 메마른 살갗에서 느껴지는 감촉이 아리다. 이제 나의 두 아들도 성인이 되었다. 막내인 딸아이도 어느새 고등학생이다. 몸을 굽혀야 얼굴을 맞댈 수 있던 아이들의 키도 훌쩍 커졌다. 그러나 볼을 맞대고 비비며 나누는 정은 여전하다. 서로의 볼을 맞댈 때마다 내 키를 훌쩍 뛰어 넘은 아이에게 맞추려고 나는 까치발을 한다. 아이들 또한 나의 작은 키에 맞추려고 몸을 한껏 구부린다. 그러면서 '엄마, 왜 자꾸 키가 작아지세요.'라고 말하며 안쓰럽다는 표정이다.  세월이 좀 더 흐르면 아이들은 자신만의 길을 찾아 갈 것이다. 당연한 것이라는 듯 부모에게서도 멀어져 갈 것이다. 좋은 사람도 만나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생겨날 것이다. 그때쯤이면 그들도 자신의 아이와 뽀뽀를 할 것이다. 어쩌면 그들도 입으로 하는 뽀뽀에서 코로 하는 뽀뽀를 거쳐 볼을 맞대고 비비는 볼 뽀뽀의 순서를 밟아갈지도 모를 일이다. 약력) 경기 안성 출생 월간 <순수문학>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경북문인협회, 순수수필문학인협회, 숲문학회, 수필사랑문학회 회원. 수필집 <같은 빛깔로 물들어 간다는 것은> 공저<몸도 마음도 비우고>  
127 워낭소리/권홍열 file
편집자
4096 2011-06-01
11.06월 13호 소설 워 낭 소 리 권 홍 열 희끗희끗 잔설이 붙은 산허리를 스쳐 차가움을 몰고 오는 바람은 매서운 칼바람이었다. 언제부터인지 조금씩 모습이 바뀌기 시작한 마을은 풍요로운 농촌의 풍경이 사라진지 오래 되었다. 콘크리트로 포장된 초입 진입도로는 그렇다 치더라도 마을 어귀에서부터 여기저기에 웅크린 축사가 괴물의 형상을 띤 채로 서 있고 축사를 스친 바람이 역겨운 냄새를 달고 달아난다. 산 너머 이웃 마을에도 또 다른 마을에도 바람은 냄새가 역겹기는 마찬가지인듯 그 냄새를 달고 빠르게 달아나야만 했다. 해가 중천에 떠있는데도 바깥은 아직도 차가운 모양이었다. 해가 솟으면 어느 정도의 온기가 있어 추위를 녹여주건만 축사 안으로 새어드는 바람은 여전히 칼바람이었다. 지난 밤에는 낡은 양철지붕을 때리는 겨울바람이 하늘가득 머물던 찬공기를 안으로 밀어 넣어 설핏 잠을 설쳤다. 그 탓인지 몸이 어슬어슬하다. 춥기는 하지만 잠시나마 선채로 눈을 좀 붙여볼 요량으로 눈까풀에 힘을 풀었다. 순간 웅성거리는 소리와 발자국을 내 딛는 소리가 조금 소란스럽는가 했는데 크르릉 크르릉거리는 기계 마찰음 소리가 들렸다. ‘제기럴. 사료작업을 왜 이때에 해.’ 작은 산이 이어진 언덕 밑에 지어진 축사에 가끔 기계음소리와 엔진소리가 들리는 것은 사료를 가득 실은 자동차가 들러 이루어지는 사료작업이었다. 그럴 것이라 여기며 불안한 심통을 던졌다. 오래지 않아 일단의 사람들이 얼굴과 몸을 흰 천으로 가리고 축사 안으로 들어섰다. 자세히 보니 긴 장화를 신고 이상한 물건을 손에 든 것이 마치 자기 의사대로 하지 못하고 누군가의 지시나 통제에 따라 일관되게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로봇강시 같았다. 사람들은 심연의 강을 마지못해 건너가야 하는 듯 축사 안을 쭉 훑어보더니 저들끼리 무어라고 지껄었다. '사료작업이 아니쟎아, 그럼 예방주사 방역인가.’ 가끔씩 방역을 한답시고 축사주인은 4내지 5명씩 무리들과 어울려 뽀족하고 긴 바늘로 엉덩이며 목 주위를 찌러고서는 생각이상으로 살찐 놈들을 돌아보며 흐뭇해했다. 갑자기 무슨 일인가 싶어 함께 한 동료들이 발출하는 왠지 불안한 눈빛이 그들에게 모아졌다. 이윽고 그들은 우리 동료들을 한 쪽으로 몰아 일렬로 세우기 시작했다. 여러 칸으로 나누어진 칸막이가 열리고 축사에 가득 했던 동료들이 한곳으로 몰리자 좁은 공간에서 너댓 녀석들은 머리를 엉덩이에 맞대고 웅웅소리를 질렀다. 아직까지 구석으로 몰리지 않은 녀석들도 커다란 눈을 껌벅이며 웅웅소리를 질러댔지만 남성을 잃어버린 놈 중에는 아직까지 영문도 모르는 녀석도 있었다. 무슨 영문인지 감을 잡지 못하는 녀석은 바보 같았다. 영문을 모르는 녀석들은 ‘예방주사를 또 맞는구나’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터였지만, 왠지 모르게 도축장으로 끌려갈 것 같은 불길한 팽팽한 기운이 감돌았다. 어차피 죽어야하는 운명이라면 이 순간만큼은 낌새를 느끼지 못하는 녀석이 오히려 행복한지도 모른다. 가느다란 주사기 바늘이 꽂이자 맨 앞에 선 녀석이 영문도 모르고 있다가 불식간에 저항할 시간도 없이 쿵하고 넘어졌다. 그 옆에서 흰 장갑을 끼고 전자봉을 든 사람의 손이 떨리는듯 녀석을 바라보았다. 곧이어 검은 밧줄이 걸리고 녀석이 실려나갔다.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어두운 기가 다가오자 마지막이란 낌새를 느끼고 후다닥 탈출을 시도하던 녀석도 또 다른 놈도 탈출구가 없음에 뒤따르는 녀석을 힐끔 돌아보고서는 벌렁거리는 콧구멍으로 강한 콧바람을 내뿜으며 입을 벌린채 차례대로 넘어졌다. 내장을 다 비운듯한 가스덩어리가 코와 입에서 강하게 뿜어져 나와 옆에 서서 도움을 주던 너댓 사람의 얼굴로 겹겹이 줄기차게 몰아치자 견디지 못한 일부의 사람이 코를 움켜쥐고 컥컥하는 소리를 뱉었다. 동물성 사료가 화학반응을 한 마지막 날숨은 평소에는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만 위기를 탈출하기 위한 마지막을 예고한 콧바람은 독가스나 다름없었다. “속이 울렁거려 정말 인간으로서 못할 짓이구먼, 말 못하는 짐승이 무슨 죄가 있어 생으로 죽어야 하나 이거야 원.” 주사기를 잡은 사람이 불만을 토하며 흰 장갑을 낀 손으로 메스꺼움에 코를 훔쳤다. “놈들이 전생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댓가로 업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할 거야.” “업보, 업보라면 우리도 죽어서 소 돼지로 태어나는 건 아닌지. 무수한 생명을 강제로 뺏으니 아마 그렇게 되겠지......” “우리가 왜? 시킨 사람이 업을 받아야지.” “하긴 그렇네.” “허튼소리 집어치우고 굳은 마음으로 시작하자고.” “이 작업 끝나면 5일간의 휴가가 기다리니 얼마나 좋은가.” “얼어죽을......” “그냥 그렇다는 거야. 여기서 끝나면 좋은데, 작년과 같이 추운 날씨에 밤새워 방역초소근무 설 생각하니 즐거워서 그런다 왜.” “그러니깐 힘없는 지방공무원은 만능 선수란 말이다.” “ ...... ” 어쩔수 없이 생명을 지워야하는 자책의 말을 위안으로 흘리며 불도(佛徒)인양 윤생(輪生)의 변으로 응답하며 저들끼리 너스레를 떨었다. 사태가 심각한 극한 상황으로 가고 있다는 판단을 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인간들이 우리를 죽이고 있쟎아. 대체 무슨 이유로......’ 눈가에 흘린 물기가 마르기도 전에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인식하면서 실려나가는 녀석과 거리는 불과 이십여 미터, 죽음으로 가는 시간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 있었다. ‘이제 곧 나도 먼저 간 녀석들과 같이 인간들이 원하는 곳으로 가겠지. 타고난 수명대로 살지 못하고 가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비육이란 수단으로 키위지다 도축되어 인간들의 식탁에 오르는 것이나 젊기는 하나 좀 일찍 가는 것이나 살다가 가는 것은 마찬가지, 타고난 수명을 조금 늘리려고 아둥바둥하는 인간들보다는 어쩌면 우리가 더 신사적일 것이다.’ 관조적(觀照的)인 생각을 모으며 나는 내 발꿉을 내려다 보았다.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지난 해에는 먼 지역에서 발꿉이 썩어들어가고 콧물을 심하게 흘리는 병에 걸리어 비실거리는 동료들이 모두가 영문도 모르고 죽었다는 소문이 있어 혹시나 싶어 불안했는데, 동료들의 발꿉에 문제가 있나 싶어 유심히 살펴보았다. 하지만 물집이 생겨 갈라진 발꿉은 없고 모두들 이상 없었다. 혹시 콧물을 흘리는 녀석이 있나 싶어 둘러보았지만 감기로 인하여 조금 흘리는 녀석이 하나 있기는 한데 심한지는 않았다. ‘그런데 왜 죽임의 대상이 되어야하는가.’ 순간 시골의 야트막한 산이 이어진 언덕배기에서 이른 봄날 파란 새순으로 돋은 푸른 풀을 뜯어먹었던 풀냄새가 느껴졌다. 풀냄새를 따라 푸르름이 출렁이던 시골의 들판에서 밭갈이를 하던 어미의 꽁무니를 따라 천방지축으로 뛰어 놀던 때가 다가왔다. 산 모퉁이를 돌아 흐르는 물줄기를 스쳐온 바람이 신선한 공기를 담아 봄 아지랭이로 출렁이는 비탈밭은 어미가 즐겨가던 밭갈이 장소였다. 밭갈이를 나갈때면 어미는 무척 즐거워했다. 자식처럼 아껴주는 주인을 도와준다는 마음이 앞서기도 했지만 쟁기를 당기면 무척 힘은 들어도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발꿉에서 느껴지는 흙의 감촉이 부드러워 좋았기 때문이었다. 일을 마치고나면 어미는 멍에목에 군살이 돋아 밤새 끙끙거리기는 했어도 주인이 챙겨주는 영양가 있는 음식에 모든 피로를 풀었다. 소부쟁기가 넘기는 한이랑 두이랑이 한뜸 두뜸으로 메겨져 긴 사래 밭이 새롭게 단장되면 주인은 그 밭에 1년 동안 정성을 들일 농심을 심었다. 잠시 쉬는 시간에는 지나가는 다른 사람을 막걸리 잔에 불러들여 도회지로 나가 공부하는 아들 녀석의 효심을 주인은 늘 자랑으로 애기했다. 공부 잘하고 효심 가득했던 그 때의 아들의 마음이 지금까지 변하지 않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미의 잔등을 긁어주던 그 손길은 따뜻한 아비의 손길이었다. 앞서가는 어미의 뒤를 따라가다 슬쩍 뒤돌아보면 고삐를 잡고 뒤 따라 오는 주인의 모습은 법 없이도 살 것 같은 평온하고 환한 얼굴이었다. 흰 머리카락이 덮흰 이마에 가려진 주름은 영락없이 노인 얼굴이었지만 체력은 혈기왕성한 젊은이 그대로였다. 또 한 녀석이 넘어졌다. 녀석은 우리에게서 논객으로 통한 몽이란 놈인데 잘난척 하는 것이 지나친 과장으로 자기 포장을 하는 것이 좀 그러하기는 해도 나하고는 친했다. 넘어지는 녀석의 몸에서 짤랑 짤랑 소리가 은은히 들려왔다. 그건 몽이에 대하여 내가 알고 있는 워낭소리였다. 댕거랑 댕댕. 덩그랭. 댕그랑댕댕댕..... 잠재해있던 분노가 일어나 눈꼬리를 일으켜 세웠다. “발꿉도 멀쩡하고 건강한 우리가 왜 생으로 죽어야 하는데, 망할 인간넘들.....” 내가 표한 분노의 소리가 인간의 귀에는 우어잉 우엉이잉 하는 소리로만 들렸을 테지만 내 뒤를 따라 온 털식이가 우어이잉하고 똑 같은 소리를 지르며 눈물을 흘렸다. 털식이가 내지른 소리를 필두로 하여 모든 녀석들이 일제히 소리를 질러댔다. 일부 녀석들은 강하게 저항하려고 유일한 공격무기인 뿔을 앞으로 내밀었지만 전자봉 앞에서는 죽을 수도 있음을 알기에 맥을 추지 못하고 뒤로 물러나야했다. ‘그리 오래지 않은 옛날에 조상들은 농사일로 단련된 근력이 어지간한 동물은 한방으로 날릴 무도의 힘이 있어 호랑이와 맞설 힘이 있었지만 인간에 의하여 남성이 제거된 상태로는 어림반푼어치도 없는 일. 숫놈의 기질은 남성에서 나오는데 그시기가 없으니 기력이 약하고 기력이 약하니 감히 인간에게 맞서서 저항 할 용기가 사라지는 것은 다 인간들이 바라는 요구사항, 때문에 좋은 말로 육질이 좋고 성격을 순하게 하기 위하여 불까기를 한다나. 욱지라질 넘들......’ 눈앞에 있는 주사기를 든 인간을 보니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너도 짤렀냐. 나도 잘렸다. 통증으로 사타구니 밑이 좀 가볍다고 느꼈을 때 내 모습을 본 털식이가 내한데 던진 말이다. 주사에 익숙한지라 평소에 맞던 예방주사이거니 대수롭지않게 생각하고 인간에게 몸을 맡기고 조금 따끔하겠지 했는데 따끔함을 느끼고 나서 다리에 힘이 빠짐을 느끼고 부터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서는 사타구니 밑에 통증을 느낄뿐이었다. “참 이상하게도 생겼네. ” “이상하다니, 내꺼가 이상하면 니꺼도 마찬가지야 임아. ” 농담을 받으며 왜 그런 말을 할까 하고 궁금증을 풀기 위하여 뒤돌아가서 본 털식이의 것이 진짜로 꾸굴쭈굴 했다. 남성을 잃어버리고 꾸굴쭈굴한 것은 생명력이 없다는 뜻 생식기능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니 세상을 다 잃은 기분이었다. 건너편 다른 울타리에서 새끼를 낳은 눈여겨 봐둔 미즈를 바라 보았다. 미즈는 내가 이성으로 좋아한 동료 여인이었다. 항상 짝사랑으로 일렁거리는 마음이 있어 조금만 더 자라면 내가 보아둔 미즈와 합궁할 날을 기다리며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왔는데 종속보존의 기능을 강제로 빼았겼다고 생각하니 한없이 인간이 싫어졌다. “어이 형철이 앞에 선 애들이 주사를 맞고 일어나지를 않지, 공기가 이상하다 씨벌 인간넘들이 진짜로 우리 모두 다 죽이는 것 아니야 이거.” 내 이름을 부르기에 뒤돌아보니 힘이 세기로는 상대가 없는 통발이 형이 좁은 통로를 비집고 앞으로 나오면서 물어왔다. “형 이제야 감잡았소, 무디기는 오늘 우리 모두 제삿날인지 아슈.” “제삿날이라 어쩐지 이상하다 했지. 그럼 죽는다는 말인데, 우리 힘으로 한꺼번에 밀고 나가자. 내가 앞장설 테니 모두들 나를 따르라구.” “형, 저들이 든 것이 전자봉이요. 전자봉을 든 인간을 상대로 우리가 이길 것 같소. 전자봉은 총이나 다름없는 것이요. 총 맞으면 모든 게 다 죽는데.” “그래도 그렇지 이 자리에서 그냥 죽을 순 없지. 어차피 죽을 거면 이판사판으로 가는거야.” “통발이 임마야 그시기도 없는 놈이 용기가 참 가상타. 참아.” 통발이와는 달내로 3일 차이가 나는 동갑내기인 경상도 상주에서 왔다는 천덕이가 나섰다. 통발이와 천덕이는 담장 하나를 두고 한 집 건너 있는 양쪽농가에서 같은 달에 때어났다. 저 둘은 사실 자신들은 알지 못하지만 배가 다르고 씨가 같은 이복형제이다. 배란 기일에 맞춰 옆 집에 온 수의사가 인공수정을 하고, 마침 이웃집 노인이 기르고 있는 암소도 배란을 맞아 울고 불고 야단을 하는지라 실패하는 셈치고 같은 씨로 수정을 했는데 그렇게 하여 태어난 녀석이 천덕이인 것이다. 따지고 보면 둘은 형제인데도 저들은 그냥 친구로 터고 있다. 마을에는 소규모로 재미삼아 열댓 농가가 소를 키웠는데 두 농가는 각각 암소를 한 마리씩 길러서 새끼를 낳아서 파는 노인네가 주인인데, 송아지의 티를 벗을쯤에 어찌하다 통발이와 천덕이는 이 곳으로 입식되었고 통성명을 하다보니 이웃에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와, 천덕이 넌 자신이 없냐. 그시기가 없다고 눌러지낸 인간들이 무섭냐.” “인간이 무서운건 사실이 잖냐. 그시기가 있어도 마찬가지고. 고기소로 팔려 죽으나 그냥 죽으나 죽긴 마찬가지 그냥 소로 태어난 걸 원망하며 그냥 가는 거야. 우린 동향이 쟎냐 좋은 친구와 함께 가게된 것을 축복으로 받아들여야지.” “축복, 개뿔이 축복이야. 나 혼자라도 앞으로 치달을 테니. 싫으면 모두 그만 두라고” 빠르고 강한 톤으로 말을 마친 통발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통발이가 뿔을 앞으로 내밀더니 감당할 수 없는 살의를 품으며 발꿉을 박차고 좁은 통로를 비집고 앞으로 내달렸다. 하지만 앞으로 갈수록 통로가 좁아 더 이상 나가지 못하자 분함을 참지 못하고 우어이잉 우어이잉 고함을 지르며 씩씩거렸다. “내가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아 상황을 잘 모르긴 하나, 사전에 막을 수 있지 않았겠나.” “미처 예상하지 못 했습니다.” “양성으로 판명된 축사의 가축만 살처분 하면 되지 않을까.?” “안됩니다. 지침을 따라야 합니다. 더 확산되기 전에 반경 3키로에 있는 대상 모두를 처분해야만 합니다.” “너무 가혹하군. 축산농가가 반발하지 않을까.?” “현싯가 보상이라서 이해하고 따라 줄 것입니다.” “현싯가 보상이라니, 80% 보상이라 했지 않았는가.” “예, 이번 만큼은 그렇게 합니다.” “그런데 살처분으로 구제역을 막을 수 있을지?." “지난해에 다른 지역에서도 같은 방법으로 확산을 막았지 않았습니까. 지금은 살처분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 때 완전히 차단되었다면 올해는 발생하지 않아야 되는데, 문제는 매년마다 발생한다는 것인데..... 살처분 매몰지는 선택 잘했겠지. 침출수 문제로 언론이 시끌해서는 절대 않되니, 각별히 신경을 쓰야 할거야.” 말끝을 흐린 사람이 상기된 모습으로 앞 사람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실장님, 이런 말씀 드려도 될지” “무슨 예긴데. 개인적으로 학교 후배지만 여기선 공식적인 얘기만, 알지” “예, 사실, 가축의 숫자나 너무 많은 것이 사실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균형을 맞추려고 자연적으로 구제역이 정리를 좀 하는 것이 잘 된 일인지도 모르죠.” “하긴, 면적에 비해 많긴 하지. 보조지원에 돈이 된다고 하니 앞 뒤 가리지 않고 온 천지에 축사를 지어, 수질이며 토양을 오염시키고, 냄새를 풍기는 것은 사실이지. 초식동물의 내장이 왜 긴지 홍과장은 알아.” “예, 풀 먹고 자라라고 신이 길게 한 거 아닙니까.” “그렇지” “그런데, 육식동물의 살점이 들어간 사료를 먹고 운동도 없이 식용으로 가두어 키우니 병에 대한 저항성이 떨어져 병에 잘 걸린다고 전 봅니다.” “그럴지도 모르지, 아니 그게 정답일거야. 구제역 말이야, 이 구제역이 14세기 중세에 유럽 및 아시아를 휩쓴 페스트의 변형이 아닐까? 구제역이 1934년에도 있었다지. 그 당시 흑사병으로 이천오백만명이 죽었다는데, 세균은 무서운거야. 지금은 발꿉 갈라진 동물이 구제역에 약하지만, 돼지 감기가 변형된 신종프루 같이 앞으로 또 어떤 변종이 나와 사람에게 저항할지...... 근데, 영감님 한데 보고할 자료 준비는 되었는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럼, 사전 연습 삼아 브리핑 함이, 어때?.” “예. 연습 한번 하겠습니다.” 홍과장이 전화를 들고 무어라고 말하자 곧 이어 주무관이 브리핑차트를 가지고 왔다. 차트에는 구제역 발생현황이라고 적인 전지 크기의 현황판에 발생일시․현재추진현황․향후계획․대처방안 순으로 간략하게 적혔고, 구제역 발생지점으로 부터 색깔이 다른 작고 큰 원이 두개가 그려져 있었다. “붉은 색이 반경 500m고 푸른색 원이 반경 3km인가.” “그렇습니다. ” “몇 농가가 대상인가” "붉은 원안에 총 5농가 있으며 이중 축산농가는 2농가로 한우 123두이며 돼지는 없습니다. 푸른 원안에는 15농가중 축산농가 8농가이며 소 1,234두 돼지 2농가 2,000여 마리 입니다. 문제는 인접한 시와 경계지점이라 파장의 여추가 민감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겠지. 전염속도가 빠른 돼지가 있는 지역이라 신경이 많이 쓰이겠지. 영감님을 모시고 기자들한데 하는 만큼, 해박한 실력을 발휘해 보도록.” “시작하겠습니다.” “참, 홍과장이 프리핑은 청내에서 제일이라면서” “축산위생과장 홍근전입니다. 여러분께서 관심이 많은 관내에서 발생한 구제역 양성 사건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구제역은 영어로는 Foot and Mouth Diseas 하고 한자로는 口(입구)蹄(발꿉제)疫(병역)이라 합니다. 글자와 같이 입과 발꿉에 걸리는 병으로서 주 병원체는 RNA(Picornaviridae Aphthovrius)바이러스입니다. 어제 14일 표시된 지점의 관내 축산 농가에서 보도된 바와 같이 구제역이 발생했습니다. 금월 12일에 농가로부터 의심축 신고가 들어와 확인 결과 구제역 초기 증세와 비슷하여 우리시에서 자체 가축 이동 통제를 하고 국립수의과학검역원에 검사를 의뢰 오늘 14일 최종결과 구제역으로 판명되었습니다. 현재 추진 중인 사항은 주요 길목에 방역 이동초소를 설치 완료 하고 오늘부터 방역근무을 할 것이며 내일은 방역메뉴얼에 따라 살처분 등 후속조치를 할 것입니다. 구제역바이러스는 산도 6이하 산성이나 9이상 알카리에서는 활동하지 못하므로 아울러서 축산농가 개별적으로 철저한 소독을 실시하여 다른 지역으로의 확산을 차단하도록 하겠습니다. 지난해에는 구제역이 다른 지역에서 발생해도 철저한 방역으로 우리시에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올해는 그렇지는 못한 것이 죄송스럽습니다. 청정지역에서 비껴나 우리나라에서 가장 선호하는 상감한우의 명성이 밀려날 염려가 있어 안타깝습니다, 아시다시피 구제역은 국제수역사무국에서 A급 전염병으로 선포한 바이러스에 의하여 전염되는 급성전염병으로 우라나라에서는 1종가축전염병입니다. 주로 소.돼지.양.사슴 등 발굽이 두개로 갈라진 초식동물에 걸리고 증세는 발꿉.입,구강.코.젖꼭지에 수포성 물집이 생겨 썩어가는 병으로 전염되면 치사율이 최고 55%나 되는 무서운 병입니다. 바이러스 잠복기는 약 14일정도인데 소의 경우는 3~5일이며 감염 초기에는 약 40~41도의 고열로 잘 먹지 않고 거품이 섞인 침을 흘리고 심한 경우는 일어서지 못하다가 죽어가는 병입니다. 메리알 이라고 하는 예방백신이 있기는 하지만 전체 축산농가에 할당하기는 부족한 상태이고, 아시다시피 백신은 치료약이 아니고 예방약입니다. 백신을 맞았다고 해서 모두 안전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선진외국에서도 대상 가축을 살처분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현재로서는 매몰처분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으로 살처분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우라나라에서도 1934년 발병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만 주로 베트남 등 농업 후진국에서 발생했는데 근래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발생하여 예방을 위하여 대상가축 모두를 살처분했습니다, 우리시에서도 메뉴얼에 따라 농가 500m 내에 있는 모든 가축을 이미 살처분하였으며 또 예방을 위하여 반경 3km내도 살처분 하도록 하겠습니다. 구제역이 발생하면 소보다는 돼지의 전염속도가 무척 빠릅니다. 발생요건은 대기의 습도가 60%이상으로 높고 온도가 25도 이하일 때 잘 발생합니다. 전염원인은 바이러스에 감염된 지역을 차량. 사람 등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때가 주 원인이고, 일부는 공기로도 전염된다고 합니다. 문제는 구제역이 사람의 인체에 영향을 주느냐 하는 것인데, 구제역은 돼지에서 생겨나 변형된 신종플루 같은 인수전염병이 아니며, 현재까지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구제역바이러스는 70이상 고온에서 살지 못하므로 고기를 70도이상에서 충분히 익혀서 먹으면 되겠습니다. 구제역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축산농가 개개인의 철저한 소독이 최선의 방법입니다. 여러분께서도 구제역과 사투에 들어간 저희들에게 많은 격려와 관심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상 마치겠습니다.” “역시, 홍과장이야. 잘했어. 그런데, 서두에 영어 하고 한자 설명은 괜히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자기 과시로 느껴질 것 같아서, 빼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홍과장, 그리고 구제역이 생기면 가축방역에 따른 소독약품의 과다 살포로 가축분뇨 정화처리에 어려움이 있다고 하던데 그건 뭔가?.” “예, 가축분뇨는 소규모로 돼지를 사육하는 신고대상 농가에 저렴한 비용으로 처리해주는 일종의 혜택입니다. 처리는 그냥 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기준에 따라 처리합니다. 처리기준은 돼지분뇨를 BOD(생물학적산소요구량)약24,000ppm에서 유입하여 허용기준은 30ppm이나 우리시는 3ppm이하로 처리하여 방류하고 있습니다. 그외 COD(화학적산소요구량)는 유입시 10,000 방류시 20이하, 부유물질(SS)은 22,000유입 5이하 방류, 총질소(T-N)는 4,500유입 16이하 방류, 총인(T-P)은 800유입 1ppm이하로 방류 하고 있습니다. 가축분뇨 처리는 미생물을 이용하여 분해하고 최종으로 화학처리를 하여 방류기준으로 방류합니다. 문제는 농가에서 방역으로 살포한 과다한 약품이 가축분뇨에 녹아들어 함께 처리장으로 유입되어 미생물이 처리능력을 초과하면 미생물이 죽는데 있습니다. 그 미생물을 어떻게 죽지 않게 하느냐가 어려움이라고 합니다.” “그런 문제가, 분뇨처리 측면에서도 구제역은 발생하면 않되겠구먼. 우리시 처리실태는 어떤가?.” “그 기술적인 처리기술이 우리나라 다른 시군보다 뛰어나 다른 지역은 많은 문제가 발생하여 가동중지한 곳도 많지만 우리시 처리장은 잘 처리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우리시 공무원이 뛰어나다는 얘기구만.” “그렇게 봐 주시어 감사합니다.” “결국은 가축분뇨는 농가에서 수거하는 유입량이 어떻냐에 따라 기술적인 충족요구가 필연인데, 농가에서 반드시 수거시 유입기준을 지켜야 하겠네.” “예,그렇습니다. 사실상 대부분의 농가가 유입기준을 초과하고 있지만 반입을 거부하면 민원 발생이 예기되어 받아서 처리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참, 축산분뇨 해양투기 금지와 더불어 축산농가의 건전한 양식이 꼭 필요한데......” 말 끝을 흐린 실장이 안경을 걷어올렸다. “예 그렇습니다. 지금까지는 음식물쓰레기 폐수 및 가축분뇨를 바다에 버렸습니다만 해양투기금지에 따라 가축분뇨를 비롯한 처리문제가 정부시책인 저탄소녹색성장에 부응하는 중요한 과제입니다. ” “환경문제 대두라, 녹색성장이 다방면에서 변화를 구하고 있으니, 지방행정공무원은 역시 만능이어야.....” 안경 너머에 감추어졌던 다년간의 행정경력이 빛나는 안광이 강하게 뿜어져나왔다. 우어이잉 우어이잉 통발이가 한을 품으며 소리치고 울분을 토하자 그제서야 사태 파악을 한 동료들이 머리를 좌우상하로 흔들며 허무의 핏물이 다빠져 나갈 것 같은 기세로 각각 일제히 소리를 질러댔다. 목줄기를 빠져나간 공기의 떨림이 큰 울림통이 되어 축사를 진동시켰다. “이 놈들이 갑자기 왜 이래 소란하지, 뿔로 받을 듯한 기세가 만만찮은데, 울타리 펜스를 넘어와 진짜 뿔에 받혀 죽는 것 아니야 이거.” “놈들이라고 죽는 느낌이 없을라고.” “조심하세요. 전자봉을 앞으로 내밀고, 상황 파악 하세요.” “한 놈씩 격리했다가 보내세요.” 명령대로 움직이는 로봇 강시들의 다급하게 주고 받는 말이 흐릿하게 들렸다. 커다란 눈에서 쏟아지는 불안한 눈빛이 강시들에게 모아졌다. 미쳐 떨구지 못한 메마른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륵 떨어졌다. 생과 사를 가르는 선이 길게 그어졌다. 그 선이 점차 좁혀져 작아지고 있었다. ‘점점 좁아져 더 이상 설자리가 없을 때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생과 사를 가름하는 순간에 순교자의 순수한 마음을 담지 못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 선에 수평선 또는 지평선을 대입해 걸어보면 수평선이라면 바다를 걸 것이고 지평선에는 대지가 걸릴 것이다. 수평선에 걸린 바다의 무게와 지평선에 걸린 대지의 무게는 얼마이며 어느 쪽이 더 무거울까?’ 혼자 관조(觀照)의 심금으로 뇌파를 흘렀다. “그야 수평선과 지평선만이 알일, 무게는 바다가 더 무거울걸. 친구 형철이의 마음에 바다가 걸리고 있으니 말일세.” 내 마음을 읽은 도형이 대답했다. 도형이는 철학을 하면서 문학을 하는 친구로서 문학을 하는 나와는 의견이 맞는 친구이다. 생각이 같으면 뇌파의 파장도 같은 법 내가 심각한 상태에서 무언가를 그리면 도형이는 항상 내가 그리는 생각을 같이 하곤 했다. 그것은 인간들이 흔히 말하는 테레파시였다. “그렇겠지.” “바다의 수평선은 하늘을 올려놓고 버거운듯 하면서도 항상 제자리로 돌아오기 때문이지. 그러기에 흔히들 하해(河海)와 같은 은혜라고 하지 않나.” “그렇지, 대지의 지평선은 하늘만 올려놓았지만 수평선은 하늘과 땅을 올려놓고도 늘 바다의 수평을 맞추지...... 배들이 저마다 그 무거운 수평선을 끌고 다니니, 배는 대지를 담을 수 있을 거야.” “인간들 중에는 수평선을 끌고 다니는 배 같은 사람도 있지만 지평선을 끌려고 하는 어리석은 인간도 있다지” “그래, 그것이 문제야, 過猶不及, 知足不辱知止不殆라했지, 작은 그릇에 크고 많은 것을 담으려고 하는 우둔한 인간이 얼마나 많은데.” “그래, 善不妄來災不空發 했지않냐, 자기들 마음대로 돈이 혈안이 되어 온갖 곳에 축사를 많이 지어 우리들을 이 꼴로 만들어 놓고선, 질병관리도 못하고 살처분이라니 무식하기는 지평선을 배로 끌려고 하는 것 같이.....” “그래, 윤리의 질서가 무너지는 것은 또 어떻고, 어미와 딸이 그리고 이웃 아줌마가 같은 씨를 가진 정자은행의 씨로.... ” “모든 축사의 가축이 뒤죽박죽이니.....” “그러니 저희들 세상도 반도덕으로 인륜이 무너지고 있쟎냐.” “세상은 뿌린 대로 거두고 준만큼 돌아오는 법. 우리한데 못된 짓 한 인간넘들 분명 다음엔 짐승으로 다시 태어 날 거다.” “우어이잉......” “우어이이이이이잉......” 바깥은 아직도 차가운 모양이었다. 얼굴이 따끔거리는 것은 칼바람탓만이 아니다. 눈물이 나올 때 마다 마른 기침이 나오고 예전 같지 않은 메케한 공기라는 것은 농촌도 이제는 공기 좋은 시골이 아니라는 뜻이다.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가면서 한을 내던지는 파장이 공기를 타고 흐른다. 그 미세한 기파가 전해졌다. 무엇 때문인지 마음 한 가닥이 어둑해졌다. ‘조금 있으면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맞겠지만 고통을 당하기 전에 고통을 잊어버리고 싶다’ 이것은 아닌 줄 알면서도 앞서간 동료들의 발자국을 밟으며 성큼성큼 앞으로 걸었다. 즐겁게 죽는 것도 멈추지 않고 사는 방법이다. 죽임을 당함에 벗어날 길은 없다. 문득 뒤돌아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뒤돌아보는 것은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이기에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갔다. 정신이 혼미하다. 앞은 보이는데 보이는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숨을 멈추었다. 시꺼멓게 탄 인간들의 얼굴이 다가왔다. 아늑한 저편에서 어미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댕거랑. 덩그랭. 댕그랑댕댕댕..... 그것은 워낭소리였다. 끝.  
126 시인 이면우/윤임수 file
편집자
3072 2011-06-01
시인 이면우 윤임수 보일러 새벽 가동 중 화염투시구로 연소실을 본다/고맙다 저 불길, 참 오래 날 먹여 살렸다/밥, 돼지고기, 공납금이 다 저기서 나왔다/녹차의 쓸쓸함도 따라나왔다 내 가족의/웃음, 눈물이 저 불길 속에 함께 타올랐다.//불길속에서,/마술처럼 음식을 끄집어내는 여자를 경배하듯/나는 불길처럼 일찍 붉은 마음을 들어 바쳤다/불길과 여자는 함께 뜨겁고 서늘하다/나는 나지막히 말을 건넨다 그래, 지금처럼/나와 가족을 지켜다오 때가 되면/육신을 들어 내게 바치겠다 이면우 시인의「화염경배」라는 시입니다. 신탄진에서 살고 있는 이면우 시인은 학력이 별로 없는 보일러공으로 오늘도 대전 시내의 한 건물에서 화염투시구로 연소실을 보고 있을 것입니다. 지난 일요일에 그를 만났습니다. 먹고 사는 일에 바빠서 시간을 낼 수 없다는 그를 청소년 문예지 일로 꼭 만나야 한다며 억지를 부려서 대청댐으로 나오게 했습니다. 한 시간 반쯤 그를 만나면서 사실 미안했습니다. 한 가족의 가장인 그는 노후의 생활을 걱정했습니다. 지금처럼 얄팍한 월급봉투로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십이 넘은 나이에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공부를 하고 있고, 그 자격증이 자기의 생명줄이기 때문에 한 눈 팔 틈이 없으며 당연히 시도 쓰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는 제2회 노작문학상을 탈 정도로 문단에서 인정받는 시인이며,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시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시인입니다. 그런 그가 생계를 위해 시를 쓰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저 또한 시보다 삶이 먼저라고 생각하지만 좋은 시인이 생계에 매달려서 시를 뒤로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그가 하루라도 빨리 자격증을 취득하여 다시 넓고 깊은 시 세상을 펼쳐나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