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누가 지나갔다

진란

 

 

 

숲을 열고 들어간다
숲을 밀고 걸어간다
숲을 흔들며 서있는 바람
숲의 가슴에는 온전히 숨이다
숨을 내쉬었다가 들이키니 나뭇잎의 숨이 향긋하다
익숙한 냄새, 킁킁거리며 한참 누구였을까 생각하였다
그대 품에서 나던 나뭇잎 냄새가 금세도
이 숲에 스며들었었구나
개똥지빠귀 한마리 찌이익 울며
숲 위로 하늘을 물고 날아갔다
어떤 손이 저리도 뜨겁게 흔드는지
숲이 메어 출렁, 목울대를 밀고 들어섰다
거미줄을 가르며, 누군가 지나갔다
붉은 것들이 함성을 지르며 화르륵 번졌다
숲을 밀고 누군가, 누가 지나갔다

 

 

 

 

 


지상에서의 하루

 


 

바람과 함께 하늘을 걸어가는 너랑
구름과 함께 바람을 걸어가는 나랑
지상에서 단 하루, 뜨겁게 피어날 수 있었다면
나중에, 아주 나중에 슬픔도 없을까
아주아주 오랜 후에 후회도 없을까
꽃은 자주 피어나고 숫한* 꽃잎들 뛰어내리는데
떨리는 마음, 내 무덤에 숨겨두고
그리운 마음, 하늘에 흔들리면서
내가 가고 없는 조등에 무어라고,
나의 무엇이여라고 쓸 수 있을까
그때에야 네 이름 석자 쓰면서 이슬받이
기울여 추억한다고 하면 기쁠까
저 풀잎, 쉼을 얻지 못하고
저 바람, 멈춤을 구하지 않고
가슴에 묻어버린 네 눈동자와 네 숨소리와
너의 따스한 손과 어깨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면
한번 피었다 지는 저 가을꽃도 제 설움에 겨워
다시 꽃으로 피지 않으리라고
꽃으로 다시는 오지 않으리라고
흐린 세상에 그런 말 남기고 싶어질까

 

 

 *숫한:숫하다:(형)순박하고 어수룩하다

 

 

 

 

진란 
2002년 시전문계간《주변인과詩》로 작품활동
《주변인과詩》편집장 역임
현재 월간《우리시》교정위원


이메일 : ranigy2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