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진화, 정신의 진화                         

                                           양백산인  박 희 용

                


  ‘進化’하면 누구나 몸의 ‘점진적 변화’를 생각하는데, 몸의 진화와 병행하는 게, 오히려 앞서는 게 ‘정신 진화’이다. 즉 몸의 진화를 이끄는 원동력은 정신이다. 몸의 진화 다음에 정신의 진화가 따라오는 게 아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정신이 꼭 고급의식 만을 지칭하지 않는다. 微物의 단순감각도 정신의 일부분이다. 비록 저급하지만 말이다.

 일단 통틀어서 정신이라고 정의 하는데, 그 정신의 속성은 감각, 의식, 생각, 의지 등이며 각각에는 관습적인 면과 창조적인 면이 혼재되어 있다. 생활상에서 경험하는 여러 가지 상황에 대처하는 기술적인 방법에 대한 욕구를 정신이 느끼면 그것이 아주 서서히 -물론 우주적 시간으로 보면 순식간인- 몸의 변형-변화를 초래한다.


 사회적 진화란 관계의 진화 -그것이 다양한 인간 개체들이 서로 교류하면서 도출해내는 적당한 관계-를 의미하며, 그것은 개체들의 정신작용에 의해 결정되고 조정된다. 그것은 群集社會가 갖는 기본적 특성이기도 하다. 그러한 특성이 저변에 흐르기 때문에 群集社會에서 小數의 권력 독과점은 항구적인 당위성을 갖지 못한다. 즉 무리를 구성하는 개체 수가 증가하면서 상호 이익과 손해를 조정하고, 권력에 대한 참여 욕구가 높아지는 가운데 소수의 권력자들은 다수의 群集에 의해 차츰 거세되면서 참여 민주주의가 역사적 당위가 된다.

 사실 인류사는 얼마나 야만스러운가. 인류 역사 곳곳에 동물성이 적나라하게 표출되어 있다. 원시시대는 두말할 나위 없고, 봉건왕조시대만 해도 왕과 극소수 기득권 계급은 국가권력이라는 포장으로 싼 무소불위의 동물성을 휘둘렀다. 그들에게 인류의 보편적 가치란 아예 생각 밖의 것이었다.

 또, 전쟁은 어떠한가. 각 시대마다 뜻있는 현인들이 나서서 지성과 문화를 말했지만 야만은 어느 시대에나 펄펄 끓고 있었다.

 영장류에서 分岐된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분기 초기엔 他 영장류로부터 많은 여성 사피엔스들이 강간을 당했을 것이다. 왜냐면 사피엔스들의 정신력은 우수했을지 몰라도 육체적 힘은 영장류 짐승들보다 약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非 호모 사피엔스들의 DNA가 인류의 피에 일부 섞여들었을 것이다.

 種의 분화가 오랜 시간 계속되어 異種 교배가 안 되고 여성 사피엔스들의 미적 감각력과 남성 선별력이 발달하면서, 他 영장류로부터의 DNA 혼류가 그치게 되었다. 이때부터 원시적 인류 문명이 태동하게 되었다.


 수십만 년 동안의 태동기를 거쳐 ‘문명’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인류 문명이 발아한지 약 1만년, 인류 문명은 종점이 아니라 도중에 있다. 문명의 원동력은 ‘정신’인데, 그 ‘정신’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신’이 완성되지 않은 원인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野獸性’이다. 他 영장류와의 교배가 가능하던 수백만 년 전 시대에 호모 사피엔스의 DNA에 혼입된 非人類種들의  DNA가 갖는 ‘野獸性’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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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0000028c65ed.gif         영장류 DNA

                                          인류 D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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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만년 전      1 C           21 C                30 C        40 C

                         <시대별 지성도>


 그 DNA는 차츰 소멸되고 있는 중이다. 짐승 DNA는 劣性이기 때문에 優性 DNA인 인류 DNA에 밀려 거세되고 있다. 물론 인간은 동물이다. 그래서 영장류 DNA를 기본으로 한다. 그러나 他 영장류와는 특이한 성질을 갖는 인류 DNA를 따로 진화시키고 있는 중이다. 몇 세기 후에는 짐승 DNA는 거의 소멸하고 건강한 인류 DNA가 인체의 전부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野獸性 DNA'는 정도의 차이이지 인간 누구나 갖고 있다. 野獸性은 惡이고 인간성은 善인데, 인간은 누구나 악과 선을 공유하고 있다. 정신이 진화 도중에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인간 심성은 악이 점유하는 부분보다 선이 점유하는 부분이 훨씬 넓다. 그러나 악의 부분이 훨씬 많은 인간 -살육이나 폭력을 저지르거나, 전쟁을 일으키거나, 지배자가 되어 국민을 노예로 취급하며 권력을 광포하게 휘두르거나, 보편적인 국민 여론을 무시하거나, 도둑질을 하거나, 강간하거나, 방화하는 -들을 세상에서 아직 볼 수 있는데, 그들은 '野獸性 DNA'가 충만한 자들이다. 그러나 善과 평화를 애호하는 인류 정신사의 큰 흐름 속에서 그들의 DNA도 멀잖아 소멸하고 말 것이다.      

 

 문제는, 정신적 DNA의 淨化進化는 바람직하지만, 자칫하면 육체적 DNA가 퇴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인류는 정신을 고도로 사용하되 육체도 알맞게 사용해야 한다. 육체 없는 정신은 없다. 정신적 진화에만 치중하다 육체가 퇴화되어, 결국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種 의 멸종을 초래하는 어리석은 정신이 되어선 안 될 것이다.

 ‘정신과 육체, 야수성과 인간성’, 이런 말은 상대적 개념이다. 상대적 개념이란 절대적 개념 위에 존재할 수 있다. 그럼 절대적 개념이란 무엇인가? 바로 자연이다. 자연이 있기 때문에 생물이 존재하고 인간이 존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문명은 자연이라는 절대적 개념을 아주 무시하고 있다. 자연의 한 부분임이 분명한 인간이, 자연을 종속개념으로 취급하고 있다. 편리한 생활을 위하여 자연 자원을 무작정 채취할 뿐만 아니라, 자연을 변형, 파괴, 오염, 왜곡, 수몰, 제거시키는, 절대적 개념을 무너뜨리는 어리석음을 반복하고 있다. 제 한 몸과 가족의 생활 편리를 위하여 부정한 방법으로 재물을 쌓고 자연을 남용, 파괴, 오염시키는 행위란, 먹이와 번식을 위해선 저돌적인 야수성과 일맥상통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어느 한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해서, 자연을 함부로 변형, 파괴하는 행위는 ‘선과 악’의 차원이 아니라 생물 존재론적 차원에서 삼가고 삼가야 할 일이다. 

 현대 문명은 동전의 양면처럼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함께 갖는데, 부정적인 면을 사상하고 긍정적인 면을 키워나가는 것이 바로 ‘진화하는 정신’의 본령이라고 할 수 있다. ‘야수성’을 묽게 하고 ‘인간성’을 진하게 하는  것이 생각하는 갈대인 인류의 ‘진화의 올바른 방향’이 아닐까 한다. 

 ‘야수성’의 본질과 ‘인간성’의 진화 과정을 정확하게 투시함으로서 나라 안과 밖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각종 난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분자생물학. 미셀 모랑쥬. 몸과 마음. 2002>

 <진화론의 유혹. 데이비드 슬론 윌슨. 북스토리. 2009>

 <화담집> <퇴계집> <율곡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