녀의 거울



윤이주


 

  심야 영화가 끝난 극장 복도를 터벅터벅 걷는다. 관객의 발자국이 사라진지 오래다. 복도는 텅 비어 있다.

  저주받은 마술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는 모텔 노트르담으로 향한다. 생의 마지막 몇 시간을 위해 노트르담으로 향하던 수많은 발자국에 쌓이던 달빛을 나 역시 맞이하고 있다. 아직 누구도 비껴가지 못한 곳으로 목숨을 넘겨주러 이 밤을 내가 걷는다. 요절이란 얼마나 매혹적인 사건인가. 마지막 한 호흡은 짧고 단호해야 한다.

  도대체 이게 무엇일까. 모양이 꼭 초승달인 이것은 황소의 뿔과도 흡사하다. 그것이 빠져나간 양 옆구리에서 뭉텅뭉텅 솟구치는 피를 막기 위해 나는 숨을 참는다.


  극장에서 모텔까지는 무수한 생략이 매복되어 있다. 노트르담에 이르는 길은 언제나 끊겨 있다. 하지만 나는 곧 모텔입구에 이르는 길을 찾는다. 내가 낸 길을 찾지 못한다면 나는 요절을 앞둔 천재가 아니라 바보겠지만 불행히도 나는 바보가 아니다. 나의 길이 이리 저리로 거미줄처럼 만난다. 대체로 나는 미로에 빠진 쥐처럼 길을 찾지 못해 오랫동안 한자리를 맴돌곤 했으나 최근에 내가 낸 지름길을 성공적으로 이을 수 있었다. 길은 이제 더 이상 장애가 아니다.

  스르륵 스르륵. 입체감이라고는 없는 얇은 막이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끊임없이 움직인다. 노트르담은 수직 절벽 저 너머에 있다. 절벽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노트르담의 이 절벽은 하나의 공포다. 아니, 흑마술처럼 보일 것이다. 이 절벽을 힘들게 기어오를 필요는 없지만 당당히 걸어 들어가야 한다. 어려서부터 나는 기어다니는 놈들에 대해 턱없는 공포와 경멸을 품고 자란 까닭에 이 절벽을 통과하는 일이 노트르담 입성의 가장 어려운 지점이지만 이 모텔 이용자 모두가 그러하니 불평할 수는 없다. 절벽이 거대한 파충류란 사실을 나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판판한 얇은 저 막이 실은 사십오 분을 걸어가야 하는 파충류의 표피라는 것까지는 몰랐지만 말이다.

  실내는 적당히 은은하다. 몇 개의 실내조명 아래서 매니저 김이 나를 맞이한다. 그는 절대로 손님을 맞기 위해 일어서는 법이 없다. 그저 눈을 내리깔고 열쇠 함에서 열쇠를 꺼낼 뿐이다. 또한 그는 단 한 번도 웃은 일이 없다. 여기서는 결코 나에게 말을 붙여온 적도 없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호기심을 보인 적도 당연히 없다. 그저 빈틈없이 한결같은 동작으로 싸구려 티를 벗지 못한 분홍색 사각 플라스틱 접시를 내 쪽으로 내밀 뿐이다. 그 안엔 306이란 나무 표찰을 가진 열쇠가 들어있다. 그 열쇠를 볼 때마다 나는 빨리 객실로 들어가 샤워를 하고싶다는 생각이 발작처럼 터져나오곤 한다. 플라스틱 접시에서 열쇠를 거머쥐자 투명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지하 층 없이 지상 위에 세워진 3층짜리 건물을 오르내리는 엘리베이터는 사방이 투명한 유리벽이다. 땅에서 하늘로 하늘에서 다시 땅으로 전류가 흐른다. 굳이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괜찮다. 내가 접시에서 열쇠를 거머쥐는 순간 언제나 문은 저절로 열린다. 이런 게 바로 마술이다. 마술이……, 오늘은 유려하지가 않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지 않는다. 프런트에 앉은 김이 오늘따라 유심히 엘리베이터 내부를 주시한다. 하지만 나 역시 그에 대해 어떤 의문도 품지 않는다.

  내가 김을 처음으로 만난 건 작년 크리스마스 밤이었다. 그 날은 바로 모나미 극장에서 막 새 영화 몇 편을 동시에 개봉하던 날이었다. 그날은 또 모텔 노트르담이 개업 60주년을 맞은 날이기도 했다. 물론 내가 그 사실을 안 건 매니저인 김을 통해서였다. 영화가 끝나고 텅 빈 객석에 남아 영화의 뒷감당을 하며 쭐쭐 눈물까지 흘리고 있던 나에게 유난히 키가 작다싶은 사내가 다가왔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얼굴이었다. 사내가 성이 난 얼굴을 감추듯 숙이며 가벼운 인사를 해왔던 것인데 나도 얼떨결에 꾸벅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받고 말았다. 그는 대뜸, 호주머니 안쪽으로 손을 가져가더니 작은 손거울 하나를 꺼내는 것이었다. 손잡이와 둥근 테두리가 상아로 둘러진 고급스러운 손거울이었다.

  이제는 내 호주머니 안쪽에 들어와 버린 이 작은 거울에 대해 몇 마디를 미리 얘기해 두어야 할 것 같다. 아마 모두가 믿기 어려운 얘기일 것이다. 하더라도 나는 이 작은 손거울의 비밀을 말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손거울을 지닌 자의 처절한 운명이다. 두려워하면서도 얘기를 꺼내고 싶은, 혼자 간직하기엔 숨가쁜 그런 유혹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김의 눈이 나에게서 데스크로 옮겨진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힌다. 문 역시 투명하므로 매니저 김을 나는 각도를 달리해서 좇는다. 그는 고개를 들면 나와 눈이 마주칠까봐 아주 부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이느라 애쓰는 중이다.

  엘리베이터는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김의 짓이다. 그는 엘리베이터를 늘 제 곁에 세워두어야 안심이 되는 놈이다. 자주빛 융단을 밟아온 발의 감촉이 현관 대리석을 구별해낸다. 나쁘지 않다. 늘 그렇듯 방문은 열려있다.

 

  상아로 만들어진 이 거울이 어찌하여 노트르담의 김에게까지 전달이 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김의 말처럼 어느 달 밝은 가을밤 노트르담을 에워싸고 있던 바다 어디쯤에서 불쑥 솟아난 건지도 모를 일이다. 그의 몽롱한 어조만 아니었다면 나는 그것을 사실로 믿을 만큼 김의 얘기에 도취되어 있었다. 내 모든 감각을 불태워버린 영화 뒤끝에 이어진 만남이었던 탓일 것이다.

  “형씨, 그때 말이오, 광활한 우주 같은 소녀가 나타나더란 말이오. 광활한 우주, 그 끝을 알 수 없는 우주 같다는 말이 그때야 실감으로 다가옵디다. 소녀의 용모를 표현할 재주가 있다면 난 아까 그 영화의 곱추처럼, 참, 그이의 모델은 로트렉이 분명해 보이오, 그이처럼 좋은 화가가 되고도 남았을 거요. 이것 봐요, 난 이미 곱추는 되었으니 말이오, 히히. 허나 난 그림을 그릴 재주는 가지지 못했으니 그저 막연하게 소녀를 얘기할 수밖에 없소. 노트르담 앞마당으로 들어오는 그 소녀는 푸른빛이 도는 보라색이었지요.”

  김과 만난 그 날은 겨울비치고 꽤나 굵은 비가 밤 내내 극장 뒷골목위로 떨어져 내렸다. 김의 그 소녀 얘기보다 야식집 앞에 쌓이는 빗소리가 내 맘 가득 차지하고 있었지만 가끔은 그 광활한 우주 같다는 소녀를 영화 속의 여배우와 대비시킨 것도 같다. 그러나 본 것과 볼 수 없는 것과의 차이만큼 즉흥적이고 주관적인 대비였음을 인정한다. 그 날 김의 얘기 중에 빗소리를 멀찍이 밀어내고 내 맘으로 들어온 게 바로 이 작은 손거울 얘기였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이젠 내 호주머니 안쪽을 차지하고 있는 이 거울 말이다. 김의 말을 대략 종합해 보면 이 거울에 대해 소녀는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소녀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김은 불룩 솟은 등을 다 가리는, 풍성한 제 머리칼만큼 기름진 음성으로 얘길 꺼냈다. 야식집안의 축축한 습기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김의 목소리는 낮고 조용했으나 울림이 컸다. 나는 그가 꺼낸 말머리가 소녀가 한 말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화법으로만 받아들였으나 그게 거울 이야기의 독특한 형식이란 걸 곧 알게 되었다. 거울에 대한 직접․간접의 모든 표현 앞에 붙는 일종의 여음인 이 말을 여기서는 한 번만 쓰겠지만 거울 얘기의 형식이 ‘소녀는 이렇게 말하더군요’라는 후렴구가 반복되는 일종의 서사시였다는 걸 밝혀둔다. 그러나 나는 지금 그 형식을 완전히 동일하게 따를 수는 없다. 나의 기억 능력엔 분명한 한계가 있고 시대 탓을 하기는 뭐하지만 이 시대는 자기식대로만 얘기를 옮길 수밖에 없다는 걸 우리는 충분하고도 뼈아프게 깨닫고 말았으니까. 이제 우리는 모두 누구나 자기식대로만 말하면 된다. 어쩌면 벌써 이 거울의 비밀에 다가가기 시작한 독자도 있을 것이다. 기억력과 직관이 모두 떨어지는 사람들을 위해 부언을 하자면 ‘소녀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이 여음이 바로 거울의 비밀을 푸는 열쇠란 사실을 지금 내가 지나치게 친절하다 싶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자, 이제부터의 내 동작을 상상해보기 바란다. 지금 내가 호주머니 속으로 손을 가져간다. 상아로 만든 작은 손거울을 꺼내 들고 내가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다. 퍽이나 아름답긴 하지만 딱 손바닥 만한 평범한 손거울일 뿐이다, 아직은. 지금 여기까지는 말이다. 그러나 무엇이든 그 자체로써 아름다운 것은 없는 법이다. 아름답게 보인 것은 그 작은 거울이 내 동작과 표정을 읽어내는 보통의 거울이란 전제가 있기 때문이다. 조개가 아름다운 것은 그 조개를 다른 여느 조개들과 비교할 수 있는 조개다운 유사성이 있은 뒤에야 가능한 것이다. 그리하여 조개 중에 어떤 것이 특별히 아름다운 것은 누군가가 그것을 기억하면서부터일 테니까. 하물며 누군가의 정교한 손길로 만들어 진 이 작은 거울을 보고 내가 어찌 아름다움을 말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내가 아름답다고 느낀 이 순간, 바로 이 순간에 거울은 마술을 부리기 시작한다. 마술 역시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곳곳에서 수만 가지 모습으로 저를 드러내지만 적어도 몇 사람이 마술이라고 느끼려면 공감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어떻게 저것으로 변할 수 있지? 하는 강한 의문을 동반하는 변화가 그 장소에 함께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드러나야 한다. 이 거울의 마술을 누구나 볼 수 있는 열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주문(呪文)은 입을 동글게 말고 목구멍에서 궁글린 목소리로 노래하듯 이렇게 시작된다. 

  “소녀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거울을 보며 나는 주문을 왼다. 그리고 프런트에 앉아있을 매니저 김을 떠올린다. 놀라운 일이다. 생각만 하면 여기 이 거울이 상을 드러낸다. 해상도가 아주 높은 그림이 나타난다. 그는 지금 프런트를 나와 계단을 오른다. 계단은 언제나 가벼운 왁스냄새와 함께 정갈하게 반들거린다. 계단을 올라오는 그의 발이 보이고 내 방 호수가 거울에 나타난다. 306. 그가 지금 내 방을 향해 올라오고 있다는 뜻이다. 다시 거울엔 복도에 깔린 흑자주색 융단이 보인다. 그가 융단을 밟아오고 있다. 나의 방문은 언제나 열려있다. 거울엔 이미 뒷산이 보인다. 그가 이미 뒷산을 마주보고 서 있다면 오른쪽 제일 끝 방인 내 방 앞에 이미 도달했다는 얘기다. 다시 김의 신발이 보인다. 그는 흰색 바탕에 빨간 줄이 들어간 볼링화를 신고 있다. 또다시 붉은 융단이 보이고 거울엔 비상구를 표시하는 초록색 등이 보이고 계단을 따라 아래층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는 김이 드러난다. 그는 늘 이렇게 나를 주시해오고 있다.

  이 거울을 통해 나는 무수히 많은 것과 자유자재로 만나왔다. 그러나 내 마지막 몇 시간이 거울의 상에 뺏기는 걸 나는 원하지 않는다. 남은 시간을 최대한 자유롭게 보내고 싶다. 이제 내가 할 일은 분명하다. 내 상념을 내 신체에 묶어놓는 일이다. 잠을 자겠다는 뜻이다.

  대리석으로 바닥을 깐 욕실로 들어가 면도를 시작한다. 샤워시간은 5분이 넘지 않는다. 깨끗이 세탁된 하얀 가운을 입기 전에 내가 가장 아끼는 향수 ‘소녀의 향기’ 한 방울을 귓불과 손목에 바른다. 기분을 바꾸기에 ‘소녀의 향기’만한 향수는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

 이제 나는 편안한 잠 속으로 빠지기 위해 이 방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등(藤)으로 만든 흔들의자에 기댄다. 서툴지만 정성을 많이 쏟은 탓에 앉고 싶다는 강한 매혹을 불러일으키는 데까지 성공한 이 의자는 지난 여름, 근 한 달을 이곳에 눌러 살며 만든 내 작품이다. 전 과정이 수작업으로 이뤄지는 등가구 제작은 나에게 대단한 활력을 찾게 해준 일이었다. 김이 만들어준 화덕 위에 가마솥을 얹고 물을 끓이기 시작한다. 양옆에 설치한 길다란 나무 기둥에 장대를 매달고 등을 걸쳐놓고 가마솥에 불을 땐다. 물이 끓으면 가마솥 뚜껑을 열고 뿜어져 나오는 수증기로 등을 쪄낸다. 작업을 하는 동안 나는 몇번 실신을 하기도 했다. 더운 여름날 조그만 창고 안은 후끈거리는 열기로 모든 게 흐물거렸다. 잘 쪄서 말린 등나무 줄기를 한 올 한 올 매어가는 작업은 그야말로 신선놀음처럼 즐거웠지만 말이다. 흔들의자의 형태가 잡혀진 뒤에 나는 니스칠까지 곱게 했다. 하지만 여전히 균형감을 찾지 못해 의자는 보기보다 불편하다. 노트르담을 감싸고 있는 습기는 등나무 의자에 치명적이다. 야자과의 덩굴 식물로 내가 뭔가 만들어냈다는 은근한 자부심으로 견디고 있지만 말이다.

  꽃무늬 사각 쟁반에 놓인 컵 모양이 퍽 인상적이다. 상반신의 푸른 여체. 나는 좀처럼 잠들지 못하고 있다. 잠이 쉽게 들지 않는 날은 유리창 전면을 초록으로 뒤덮은 커다란 측백나무와 잠시 얘기를 나눈 후,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눈 같은 침대 시트를 젖히고 들어가면 좋지만 오늘밤의 달빛은 너무 밝다.

  김이 등나무 터널을 지나고 있다. 지금 그는 빽빽이 들어선 측백나무 숲으로 들어서려고 한다. 저곳은 노트르담의 차고다. 바람이 부는지 그가 고개를 떨구고 오랫동안 뺨에 양손을 대고 서 있다. 차고는 사방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지상으로부터 3층이나 올라온 곳에서도 둥그렇게 빈 부분만 보일 뿐 주차장 마당은 보이지 않는다.

  손님이 있었던가. 김을 따라 하얀 양산 하나가 측백나무 숲을 빠져 나와 뒷마당을 가로지른다. 오랜만에 내 맘이 뜨거워지고 있다. 저 아래서 바람과 춤을 추던 강아지풀을 모두 밀어내고 대리석을 깔아버린 사람은 누구일까. 그 사람이 궁금하다. 김의 두서너 발짝 뒤에 서서 머뭇거리던 하얀 양산이 멈춘다. 김이 하얀 양산에게로 다가가면 그때서야 양산은 멈칫거리며 움직인다. 가까스레 현관 앞까지 당도한 두 사람은 마당을 지나올 때보다 더 오랫동안 멈춰 서 있다. 아셨겠지만 이곳은 앞마당이 없다. 현관은 뒷산 쪽으로 나 있다.

  혹, 저 하얀 양산이 이 거울의 주인은 아닐까. 때마침 이곳에 든 손님이 있다는 사실에 나는 갑자기 바빠진다. 그러나 거울의 주인인지 아닌지 알아보는 방법을 나는 아직 모른다. 이제까지의 노력이 실패해서 내가 죽는다고 하더라도 아직 남은 몇 시간이 있다는 사실은 새삼 즐거움을 준다. 사실 지난 일 년이 즐겁지 않았다면 나는 진작 수면제를 털어넣고 쉽게 마술에서 풀려났을 것이다. 마술은 풀렸겠지만 그걸 내가 볼 수가 없다는 이유 때문에 나는 오늘까지 유예의 시간을 가졌던 것이다.

  몇 시간의 깊은 수면보다 더 재미있는 일이 생길 것 같다. 일이 잘 되면 새로운 밤을 맞아 오랜만에 숙면할 것이고 일이 잘못된다 하더라도 깨지도 않을 고요한 잠 속에 더 깊이 들어가면 그만이다.

  인터넷 채팅방에 아무데나 불쑥 들어가서 거기 누구 없어요, 이런 사람 없어요, 혹시 광활한 우주 같은 소녀를 만난 적 없어요, 하는 건 여간 황당한 방법이 아니다. 내가 차라리 죽고 마는 게 낫지 아무에게나 불쑥 이런 사람 좀 만나게 해주, 하기는 죽기보다 싫다. 내가 왜 이렇게 죽는 타령을 하는지 어쩌면 나는 그걸 먼저 얘기했어야 옳을 것이다. 생각해보니 여간 독자를 짜증스럽게 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당신들, 특히 내 고정 독자들은 나의 스타일을 이미 파악한 분들이 아닌가. 죽는 마당에 스타일까지 바꿔가며 애쓰고 싶지 않은 내 맘을 조금은 이해해 주길 바란다. 그저 내 식대로 무식하게 나아갈 테니 너무 나무라지는 말라. 어쨌거나 지금은 오늘 자정 무렵에 내가 죽을 수밖에 없는 수만 가지 이유 중 생각나는 한두 가지만이라도 밝혀야 옳겠다는 걸 인정한다. 달빛 환한 밤에 하얀 양산을 쓰고 이곳에 나타난 이는 잠시 잊기로 한다.

  우선, 내가 오늘 자정 안에 죽을 수밖에 없는 이유 중 가장 매혹적인 것은 내가 요절이란 말을 내 전 영혼을 바칠 만큼 사랑한다는 것이다. 내 스스로 정한 요절의 조건은 서른 살이다. 오늘이 내 서른 살의 마지막 날이라면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까? 또 한 이유는 바로 이 작은 손거울인데, 이 손거울의 주술에 빠지고 일 년을 버틴 사람은 없다. 그러한 손거울의 내력 또한 내 죽음의 커다란 이유가 될 것이다. 내가 이 손거울을 김으로부터 받은 게 꼭 일 년 전 자정 무렵이었으니 어쨌거나 별다른 수를 찾지 못하면 자정 무렵 나는 다른 세상으로 들어갈 것이다. 미흡하나마 이 정도가 내가 오늘 누군가에게 이 거울과 내 목숨을 함께 넘겨야 하는 이유이다. 그렇더라도 도대체 김으로부터 왜 내가 손거울을 넘겨받았냐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데, 내가 벌써 수백 차례 품어 본 그 물음에 대한 답을 나도 모른다.

  그날 김은 아주 절박해 보였다. 극장 입구에서부터 야식집으로 향하는 내내 그는 어두운 골목을 훑는 고양이처럼 날카로운 눈빛을 골목 여기저기에 쏘아붙이고 있었다. 어쨌거나 그가 주기에 나는 이걸 받았다. 내가 아는 이유는 이것 이상은 없다. 이 요상한 거울의 마술을 미리 알았다면 결단코 난 손거울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급진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자유연애 사상을 가진 내가 마법을 풀어주는 광활한 우주 같은 소녀, 그 한 소녀를 찾아 나설 이유는 그때도 지금도 없다. 나는 누군가를 찾아 단 한 걸음도 서성거리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소녀, 소녀…. 제길 어디까지가 소녀란 말인지. 또 광활한 우주는 뭐고, 자기가 그 소녀를 봤다면 저 스스로 찾을 것이지 나한테 왜 넘긴 거야, 망할놈의 곱사등이 같으니라구!

  “형씨, 생각해보슈. 난 몸도 불편하고 무엇보다도 하루 종일 안내책상에 붙박여 있어야 하는 직업으로 먹고 산다오. 그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우리 모텔에 누가 오겠소. 길을 내지 않은 곳이고, 가까이 배 한 척이 자나간다 해도 눈길 하나 줄 수 없는 측백나무만 빽빽이 둘러쳐진 섬일뿐더러, 내 좀 있다 한번 데리고 갈 테니 잘 봐보오, 거긴 아무도 살지 않는 곳이라오. 다람쥐나 산토끼를 손님으로 받는 날은 그나마 고놈들 귀여운 짓에 맘이라도 푸근해지지만 멧돼지나 살모사 같은 놈들이 고개를 디밀어봐요. 아이쿠야 비명이 절로 나온다오. 형씨, 내 사정이 이런데 내일이면 내가 이 손거울을 받은 지 꼭 1년이 된단 말이오. 제발 나 좀 도와줘요. 이 거울을 제발 좀 받아주오.”

  그날 밤, 김은 광활한 우주 같은 소녀는 고사하고 뺑덕이네 같은 여편네도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인상을 흠씬 풍겨대긴 했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저 역시 별 뾰족한 수도 없는 룸펜 프롤레타리아가 뭔 수가 있다고 이걸 넙죽 받아 버렸는지, 생각할 때마다 가슴엔 수많은 의문부호만 쌓일 뿐이다. 그래 솔직히 인정하자. 거울의 마술에 두 달은 정신없이 빠져 있었다. 두 달은 룸펜을 벗어나 명망 있는 몽상가가 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꿈꾸던 요절의 필수 조건인 그럴듯한 작품도 하나 나오는가 싶었고, 늘 표 한 장 끊어 갖고 들어가 하루 종일 뒹굴던 영화관 생활도 슬슬 물리기 시작했던 때여서 거울의 마술이 묘하게 내 맘을 끌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하더라도 좀 더 면밀히 따지고 예측해서 1년이 지난 후에는 어찌 될 건지에 대한 한두 가지의 방안은 세웠어야 옳았다.

  아니다. 결국 우리는 죽음이라는 뻔히 보이는 끝을 향해 줄달음치지 않는가. 우리 중 누구도 부드러운 흐름을 견뎌내지 못한다. 딱딱한 껍질을 둘러치기 위해 음악을 듣고 회랑을 걸으며 그림을 본다. 머리에 집이 그려지면 그 안에 무수히 잡다한 가구를 채우고 싶어한다. 그것도 모자라 다시 머리를 흔들며 연필을 준비하여 종이에 머릿속을 정리해보는 어리석은 짓까지 한다. 나의 느낌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다는 만용으로 좀 더 반듯하고 그럴듯하게 선을 긋는다. 논리적이도록 스스로를 부추기는 것이다. 내가 작은 손거울을 만나기 전까지 내 삶은 그랬다. 남들이 보기에 아무 틀에 매이지 않은 헐렁한 룸펜이었을지 몰라도 나는 안다. 룸펜이야말로 수많은 눈들 아래서 스스로의 공간을 구획하고 스스로 분규하며 스스로 더 촘촘해진 사람이란 걸 나는 안다. 현실은 절대로 유연하지 않다.

  이런 제길, <산타클로스의 흰 수염>이 그렇게 공전의 히트만 치지 않았어도 난 좀 더 인간적으로 고민이란 걸 했을 거다. 게다가 두 번째 작품 <소녀의 향기>로 나는 대중들과 화려한 결별을 이미 계획해 두고 있었단 말이다. <소녀의 향기>를 쓰며 나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철학적 고뇌와 감각적 문체가 절묘하게 만난, 정말 혜성처럼 나타난 신인이라는 말들이 조심스럽게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럴수록 또 대다수의 냉혹한 평이 이어지리라 예감했다. 그걸 굳게 이겨내며 초탈한 도인처럼 어느 먼 곳으로 사라지는 나의 시나리오도 완성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시나리오는 아무 쓸모가 없었다. 책이 출간된 지 보름 만에 출판계에 밀리언셀러로 등록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져 나는 사실 그때부터 더욱 황폐한 삶을 살았던 것 같다. 이해불가다. 사오십 대 아줌마들이 그 책을 그렇게나 사서 뭐에 썼을라나? 소녀들은 그렇다 쳐도 떠듬거리며 글을 읽는 유치원생 여아들에게마저 <소녀의 향기>는 어마어마하게 팔려나갔다. 난 돈벼락을 맞고 말았다. 게다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S향수회사에서 ‘소녀의 향기’ 이름값으로 백만 불을 책정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 덕에 나는 남아공 월드컵도 귀빈석에서 관람했다. 아프리카 전역을 누비다가 돌아왔다. 참 기가 막힐 노릇이다.

  엄밀히 말하면 <소녀의 향기>는 99퍼센트가 표절인데 말이다. 물론 형식의 표절을 의미한다. 나도 한 사람의 작가로써 심각한 내용의 표절이었다면 진즉 작가직함을 버렸겠지만, “소녀는 이렇게 말하더군요”를 후렴구로 반복했다는 것 외에 사실 내용이야 독창적인 내 것이다. 그러나 “소녀는 이렇게 말했다”로 고칠 수 없는 그 이상한 뉘앙스를 내가 100퍼센트 빌어쓴 건 사실이다. “소녀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차임벨 소리가 숨죽인 교정을 흔들어 깨워요. 나는 성난 파도처럼 교문을 부수고 도로를 점령하여 앞으로 앞으로 흘러나갑니다.”와 “소녀는 이렇게 말했다. 차임벨 소리가 교정을 흔들어 깨운다. 나는 성난 파도처럼 교문을 부수고 도로를 점령하여 앞으로 앞으로 흘러나간다.”는 그야말로 천양지차가 아닌가. 이런 구절 때문에 학생들이 열광했을 거라고 나름대로 진단하지만 그래도 나는 씁쓸하다. 뿐만 아니라 “소녀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혼란과 동요를 기억하게 해준 당신에게 감사해요. 아무 것도 몰랐어도 예감이 먼저 왔지요. 당신을 만난 그날 나는 새로운 세상을 보았어요.” 지랄. 이런 부분은 중장년층과 아줌마들에게 상당한 어필을 했던 것 같다. 사실 나는 이런 믿기지 않는 판매부수보다는 지겨운 하품을 원했다. 나는 대중이 아니라 소수의 마니아가 내 세계를 탐닉해 들어올 줄 알았다. 나는 아주 오래 전부터 컬트 작가의 꿈을 키워왔던 것이니.

  

 중학생으로써 마지막 겨울을 나던 열여섯의 난 남들처럼 얼굴에 여드름이라도 나면 좋았겠지만 계집애처럼 뽀얀 얼굴이 창피스러워 그룹 미팅이 있을 때마다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어두운 극장 안으로 도망 다니곤 했다. 마침 우리동네 모나미 극장이 수리 끝에 개봉관으로 오픈을 했다. 극장은 지린내를 풍기지도 않았고 플라스틱 의자에 다리를 올리고 앉아 시멘트 바닥에 아무렇게나 침을 뱉는 사람도 없는 세련되고 깨끗한 모습이었다. 입구부터 예전과는 차원이 달랐다. 넓고 낮은 계단을 따라 지린내가 풍겨나는 입구가 아니라 거울처럼 빛나는 질감의 좁은 계단을 출입하면서 나는 계단에 비치는 내 얼굴을 사뭇 감탄하며 바라보곤 했다. 아름다웠다. 미래는 아마도 매끄럽고 반질거리는 것들이 득세할거라는 예감도 얻었던 것 같다. 극장 내부는 또 어땠는가. 매표소 직원들의 산뜻한 유니폼과 정갈한 말투, 해사한 눈웃음에 나는 오랫동안 정신을 놓고 모나미 극장을 드나들었다. 부드러운 융단이 깔려있는 극장 안은 아홉 개 열 개의 칸으로 나뉘어져 적당히 작았고, 푹신한 소파는 언제나 날 흥분시켰다. 영화가 상영되기 전부터 나는 충분히 흥분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달빛에서 햇빛까지>란 영화가 내 인생에 들어왔다. 그 영화를 보고 내가 받은 충격을 다시 술회하고 싶지는 않지만 우리가 보는 현실이 바로 그 현실이라는 걸 어떻게 알 수 있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는 건 말할 수 있다. 그날 난 모나미 극장에 드나든 이래 처음으로 부드러운 소파가 주는 이질감 때문에 울었다. 울다가 잠이 들었다.

  저기 나보다 먼저 거울을 손에 넣어 점점 작아지며 등에 커다란 짐을 지고 있는 김이 보인다. 오늘 김은 나를 대하는 태도와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뒷마당을 서성이고 있다. 김에 대해서 내가 뭘 잘못알고 있는 걸까?

  하얀 양산의 여자―나는 하얀 양산을 쓰고 이곳에 온 이가 확실치는 않으나 여자라고 생각된다―가 내가 묵고 있는 3층이나 2층에 방을 배정받았다면 그이도 자주빛 융단을 밟아갔을 테고 객실이 두 개뿐인 1층에 들었다면 그는 자잘한 조약돌을 맨발로 밟아가 방문을 열었을 것이다. 어쨌든 어느 방이든 그이가 현관 오른쪽 벽에 붙은 열쇠함에 이미 열쇠를 꽂았다면 그이는 폭포처럼 쏟아지는 전등불 아래 망연히 서 있는 자신만 보게 될 것이다. 나는 그이에게로 향하는 호기심을 서둘러 막고 싶지 않다. 그래서 오늘만큼은 거울을 이용한 지름길을 택하진 않겠다. 거울 속에 비춘 상이 사실 그대로라고 장담할 수 없어서가 아니다. 너무도 오랫동안 나는 작은 손거울로 세상을 관찰해왔다는 생각이 드는 까닭이다. 이제 어쩌면 나는 모텔 매니저 김에게 다가가 내 목소리로 뭔가를 물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아주 오랜만에 의문이 목소리를 타고 하늘을 날지도 모른다. 빗자루를 탄 마법사처럼.

  

  등으로 만든 이 의자는 앉고 싶다는 유혹에 걸맞지 않게 불편하다. 삐거덕거리며 한 쪽으로 기울기 때문에 내 왼발은 늘 굳게 방바닥을 지지하고 있어야 한다.

  현관으로 들어가려던 김이 걸음을 돌려 노트르담을 끼고 사라지고 있다. 내가 이곳에서는 볼 수 없는 앞쪽으로 그가 걸음을 옮기고 있다. 노트르담 전면은 건물과 측백나무 사이의 오솔길이 있을 뿐이다. 아니 넓은 해자(垓字)가 있다. 그렇다. 여긴 사실 섬일 리가 없다. 아무도 함께 살지 않는 건 분명하나 섬은 아니다. 제법 넓은 해자를 가진 성(城)일 따름이다. 건너편에서 누군가 손을 흔들기만 한다면 김은 간단한 조작으로 부교를 만들어 내는 지도 모른다. 그가 지그시 밟으면 땅 속 깊이 들어가 다리를 만드는 사각의 돌이 어디에 있는지도 나는 알 것 같다. 김이 다시 모텔 현관에 모습을 드러낸다. 이제 내가 아래층으로 내려갈 차례다. 전깃불이 이제는 햇빛에게 제 임무를 서서히 이전해도 좋은 시간이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살아 있다.

  방을 나온 나는 엘리베이터가 아닌, 아직은 어둠이 채 빠져나가지 못한 비상계단을 택한다. 2층 계단을 돌자 바람의 군사들이 돌진해 오는 소리가 들린다. 쏴아 쏴아 솟구쳤다 낙하하는 물소리. 프런트 앞 작은 연못에 분수가 작동하는 시간이 바로 이 시간인 모양이다. 융단 끝에 매달린 황금색 수술이 마지막 층계 끝으로 흘러내리고 있다.

  웬만한 청년 앉은키만한 바위들과 물가식물을 알맞게 배치한 일반객실 크기의 인공연못가 평평한 바위 위에 앉은 사람은 내 예감대로 여자다. 긴 머리에 맑은 피부를 지녔다. 그 옆에 있는 이는 방금 현관으로 들어온 김이다. 김이 나를 보며 손짓을 한다. 절대로 노트르담에서 있을 수 없는 파격적인 행동이다. 나는 김을 바라보고 그런 나를 김의 옆에 있는 여자가 바라본다. 원망과 두려움을 담고 있는 눈이다. 여자는 다시 김에게 고개를 돌린다. 무언가 말을 건넨다. 여자는 쉬지도 않고 말을 하고 있다. 김은 탐스러운 머리칼을 흔들며 그녀의 얘기를 듣고 있다. 말을 하기 시작하면 멈추기 힘든 사람이 있다. 이 여자가 바로 그런 부류인 모양이다. 가끔 내 쪽으로 눈을 돌리기도 한다. 이런 사람은 쉽게 연민하고 또 쉽게 배신한다. 현실에 너무 주눅이 들었거나 그 반대일 가능성이 많은 유형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끊고 들어가 그들과 어울리기보다 계단에 앉아있는 게 내겐 더욱 편하다. 다시금 분수가 세차게 작동하기 시작하고 물소리에 섞여 두 사람이 나누는 말은 분명하게 들리지 않는다. 분명히 하얀 양산을 받고 들어온 이가 있다. 바로 저 여자다. 저 여자가 궁금하다. 주머니 속 거울을 만지작거리는 손에 땀이 밴다. 아직 시간은 많다.

  

  소녀는 딱딱한 간이의자에 앉아 습관적으로 의자 팔걸이를 찾았다. 팔걸이에 팔꿈치를 올려놓는 흉내를 내곤 했다. 그 자세로 묶은 머리를 다시 풀어 손으로 빗질을 했고 천천히 다시 묶었다. 초조한 듯 잘근잘근 입술을 씹고 있는 소녀가 그래도 푸근한 눈빛을 주는 것은 커다란 유리창이었다. 소녀의 왼편에 놓인 야자수 잎이 불타오르는 석양빛을 가려주고 있었다. 소녀가 반쯤 그늘에 들어가 있을 때 짧은 머리를 한 소년이 장구 모양으로 생긴 컵에 물을 따랐다. 소년은 서향인 창을 탓하며 블라인드를 쳤다. 소녀가 땀을 송송 흘리며 어설픈 배려를 감행하던 소년에게 애원하듯 말했다.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 물속에 잠긴 오리발처럼 모텔 뒤꼍을 뒤덮은 강아지풀이 부산스럽게 요동치고 있었다. 소년은 집착과 책임 사이에서 점점 더 석고상처럼 굳어갔다. ‘흔들의자가 있으면 좋겠어.’ 소녀는 딱딱한 간이 의자에 앉아 강아지풀에 그림자를 드리우던 등나무의 둥근 터널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얘, 일어나. 물에 흠뻑 젖겠어.”

  무엇인가가 내 어깨를 툭툭 치고 있다. 나는 놀라 벌떡 일어난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작은 분수대 옆이다. 소년은 두리번거리다가 저를 건드린 소녀를 발견한다. 김과 여자는 보이지 않는다. 여기는 노트르담이 아니고 모나미극장이다. 저만치로 멀어지는 사람들 발걸음 소리가 들려온다. 극장 관리인 최씨 아저씨가 열쇠 꾸러미를 쩔렁거리며 다가오고 있다. 소년을 보고는 켁켁 쉰 소릴 낸다.

  “명우야, 오늘은 집에 가서 자라. 청소는 내일 하자꾸나. 대신 내일은 공휴일이니까 아침부터 나오너라. 1관에서 9관까지 죄 청소를 해야 돼. 내일 지배인이 오는 날이잖니. 오늘은 꼭 집에 가야한다. 어머니가 좀 나아지셨는지 모르겠네. 너 정말 학교는 안 다닐꺼야? 중학교는 나와야지.”

  하얀 원피스를 입은 소녀가 투명한 눈빛으로 소년을 바라보고 있다. 최씨 아저씨가 불룩한 배를 더욱 앞으로 내밀며 어기적거리고 돌아가자 소녀도 극장 안을 두리번거리며 출입구를 찾는다. 소년이 일하는 모나미 극장은 엘리베이터가 네 대나 되고 비상계단도 세 군데나 있다. 그러나 그 일곱 곳을 찾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라는 점이 문제다. 좁은 통로를 따라가면 어김없이 출구를 만날 수 있겠지만 중간에 길을 잃을까 염려하는 사람들에겐 은빛 알루미늄으로 마감한 극장의 복도는 공포스럽다. 소녀의 까만 학생구두가 어느 쪽으로 나가야 하는지 몰라 당황하는 것 같다. 들려진 오른발앞머리가 이리저리 방향을 탐지하고 있다.

  “그쪽 아니야. 날 따라와.”

  저도 모르게 튀어나간 말에 소년이 놀란다. 붉어진 얼굴을 감추려고 챙모자를 깊숙이 눌러쓰는 소년의 눈에 바닥에 떨어진 작은 물체가 들어온다. 무언가를 떨어뜨리고도 소녀는 그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 자박자박 소년을 향해 걸어온다. 다가오는 소녀를 외면한 채 소년은 그 아이가 떨어뜨린 것을 향해 걷는다. 소녀가 황망한 걸음으로 되돌아가 제가 떨어뜨린 걸 주워들 때까지 소년은 걸음을 멈추고 아무 말 없이 소녀가 주워드는 그것을 바라보았다. 상아로 테를 두른 손거울이었다. 

  “지금 여름이니?”

  소년은 소녀의 반팔 원피스와 제 겨울 잠바를 번갈아보며 중얼거린다. 어째 그것도 몰라?  소녀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푸른빛이 도는 보라색 웃음을 퍼뜨린다. 소녀가 상아로 만들어진 손거울을 작은 가방에 넣는다. 저것이 먼 훗날 어찌어찌하여 저에게 와서 저를 죽음으로 몰아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더이상 하지 않기로 한다. 소년은 극장 밖을 나서며 챙모자를 더욱 깊게 눌러쓴다. 비가 온다. 소녀의 하얀 원피스가 다 젖을 것이다. 도로에 떨어지는 빗방울 수를 세어가던 소년의 눈에 하얀 색 바탕에 빨간 줄무늬가 그려진 볼링화가 들어온다. 소년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든다. 뒤에서 따라오던 소녀가 그 남자를 향해 달려가 안긴다. 안기는 게 아니라 안아준다. 아담한 소녀의 키보다 그 남자의 키는 반뼘쯤 더 작다. 부녀지간인지 연인사인인지 모르겠지만 둘은 다정해 보인다. 걸음을 돌리는 소년의 등에 비의 장벽을 뚫고 온 소리 한자락이 닿는다. 

  “오랜만이야.”

  소녀의 그 남자가 소년에게 웃음을 날리고는 소녀와 맞잡은 손을 머리 위로 흔들며 걸어간다. 불룩 솟은 그의 등에다 소년이 비열한 웃음을 흘린다. 소녀가 무언가를 길바닥에 떨어뜨린다. 세계가 구부러지고 엉키더니 산산조각난다. 조각난 세계 위로 방울방울 빗방울이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