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말.

 말.

 말의 성찬이요. 지옥이요. 천국인 세상이다.

 말이란 아 해 다르고 어 해 다르다는데 사람을 음해하고 매도하기위해 던지는 말은 살인미수와도 같다는 생각이 드는 요즈음이다.

 글도 별반 다름없을 것이다.

 교언성색의 미사여구로 꾸민 글을 보노라면 글의 아름다움이 퇴색하다 못해 그 글을 읽는 자신이 부끄럽고 초라해질 때도 있을 정도이니 말과 글의 치부가 한껏 회자되는 세상인 모양이다.

 이러함에 일찍 삶과 말, 글에 대한 성찰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상주 출신 학자인 息山이만부(李萬敷·1664-1732)의 ‘息山先生文集卷之十一  雜著’에 “脩恥贈學者 (부끄러움을 닦는 법)”을 남겼나보다.

부끄러움이 있다면 부끄러워해야 한다.

부끄러움이 없어도 부끄러워해야 한다.

부끄러움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부끄러움이 없고,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은 반드시 부끄러움이 있다.

때문에 부끄러운데도 부끄러워하지 않으면

능히 부끄러움이 있게 되고,

부끄러운데 부끄러워하면

능히 부끄러움이 없게 된다.

부끄러운 일에 부끄러워함이 있는 사람은

그 부끄러움을 가지고 부끄러워하고,

부끄러운 일에 부끄러워함이 없는 사람은

부끄러움이 없음을 가지고 부끄러워한다.

부끄러움을 가지고 부끄러워하는 까닭에

부끄러움이 없게 되려고 생각하게 되고,

부끄러움이 없음을 가지고 부끄러워하는 까닭에

부끄러움이 있으려 생각하게 된다.

부끄러운데도 부끄러워하지 않으면

능히 부끄러움이 있게 되고,

부끄러운데 부끄러워하면 능히 부끄러움이 없게 된다.

이것을 일러 부끄러움을 닦는다고 한다. 

요컨대 이를 닦아 힘써 행할 뿐이다.  

有恥可恥。無恥亦可恥。有恥者。必無恥。無恥者。

必有恥。故恥無恥。則能有恥。恥有恥。

則能無恥。恥有恥者。以恥爲恥也。恥無恥者。

以無恥爲恥也。以恥爲恥。故思無恥。

以無恥爲恥。故思有恥。恥無恥而能有恥。

恥有恥而能無恥。則是謂脩恥。要脩之力行而已。


 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해 ‘천국에서 보내는 첫 번째 유언’ 이란 글로 비하하고 글을 퇴색시킨 한 언론인의 사설에 분노하여 쓴 패러디 댓글이다.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천국에서 보내는 첫 번째 유언’이 아닐까하여 쓴 그 유명한(?) 언론인 역시 죽어 이런 글을 남기지 않았을까 추론하며 물론 역시 똑같은 말과 글의 추함이 더해졌겠지만 치미는 화를 삭이지 못해 쓴 글이다.

 (故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사설은 반대로 읽으면 되겠기에 지면 관계상 생략.)

 “歲月(세월)이 끝났다.

 그리고 그도 떠났다.

 그의 혼령이 있다면 단 한 사람의 국민도 자신의 죽음을 슬퍼해주지 않는 모습을 보고 어떤 감회에 젖었을까?

 어쩌면 하늘나라에서 남은 우리에게 첫 번째 유언처럼 당부의 말을 쓴다면 이렇게 써 보냈을지 모른다.

 국민 여러분, 못난 저를 위해 그간 힘들게 읽어준 글들에 연민과 사랑에 감사를 드립니다.   언론인 노릇도 부족했고 修身齊家(수신제가)도 제대로 못 하고, 나라와 국민 여러분께 번듯하게 남겨 드린 것도 없는 저에게 언론인이라는 과분한 명예 주신 점 또한 고맙습니다.

 요 며칠 새 저는 구정물이 난무하는 천국(川國)에서 만난 많은 분들의 말씀과 위로를 들으며 문득문득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고 깨우치게도 됩니다.

 민주주의를 깨고 독재를 위해 애썼다는 칭찬도 들었습니다.

 패밀리신문들이 고맙게도 저의 모자란 모습들을 좋은 모습으로 비쳐 보여주신 건 감사하지만 저는 천국(天國) 옆 동네 천국(川國)에서 제 자신의 참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솔직하게 사이비 기자도 못됩니다.

 저의 죽음은 민주광장에서 최루탄에 맞은 열사의 죽음도 아니고 광주의 아픔 속에서 희생된 뜨거운 魂들의 죽음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그토록 슬픈 척 애도한 사랑, 가슴 아리도록 고마울 뿐입니다.

 방송이나 인터넷은 더 이상 저를 마치 독재를 수호하다 희생당한 영웅인 양 그리지 말아 주십시오. 겸손이 아닙니다.

 저는 저를 사랑한 패밀리신문과 아끼고 믿어준 사람들에게 하늘나라에서 당부하고 싶습니다. 많은 언론인과 나의 옛 동료에게도 당부합니다.

 나 같은 친구를 언론인으로 내세웠음이 내가 부끄럽다’고….

 故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임에도 시민광장을 봉쇄하고 무고한 시민들을 치는 분들, 그리고 ‘배후를 발본색원하겠다.’며 촛불을 든 유모차 어머니들을 소환하고 故 노무현 전 대통령 영정마저 패대기치며 의경의 작은 실수로 돌리는 공권력과 언론인 후배들에게도 저는 충고하고 싶습니다.

 이 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이고 법치와 공권력을 지키기 위해 현 대통령이었던 측근까지 의혹이 있나 없나 수사대상으로 삼았습니다.

 별로 구속할 사안이 없어 구속영장이 기각되었지만 그런 용기와 원칙적 자세는 칭찬하면 했지 탓할 일이 아닙니다.

 본분을 다한 공직자에게 무슨 ‘책임’을 묻겠다는 겁니까? 살아서 이런 글을 올린 스스로가 부끄럽고 다시는 나 같은 언론인이 없기를 충고하며 당부하고 싶습니다.

 저와 가족을 위해 울어주신 신문사 사장님께도 한 말씀 드립니다. 저의 반쪽이라시면서 ‘나도 똑같이 했을(곡필) 것이다’고 하신 것은 큰 언론사 대표가 할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천국(川國)에 와 보니 그런 말씀은 저에겐 결코 위로가 아닌 화합을 깨고 분열을 부추기는 선동이란 생각이 들 뿐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아들딸아, 신문사 사장님이 내 처지를 감안해 행여 퇴직 연금을 중단하더라도 이 아비 너희 모르게 미국 땅에 아파트 숨겨둔 게 정말 있으니 끝까지 항의하거나 원망하지 말거라. 그것이 우리 집안과 이 아버지의 남은 자존심을 지켜주는 길이다.

 그리고 엄마랑 함께 故 노무현 전 대통령 유족을 찾아가 나 대신 위로와 사죄를 전하거라.   그게 사람 사는 도리였다. 그리고 친 독재, 반언론, 자네들은 喪主(상주)도 아니면서 골방에서 참회하며 기도나 하고 있지 나를 위한 애도 기간 신청은 왜 해서 TV 앞에 얼굴을 치 들고 다녔나? 자네들을 부추긴 신문사 사주도 고맙거나 인자하다는 생각보다는 겁먹은 것 같은 유약함과 법 정신의 원칙을 허무는 것 같아 앞날이 걱정스럽네. 신문사 사장이 배짱 하나는 죽은 나에게 배워야겠다는 생각마저 드네.

 일부 보수층 여러분도 이젠 국민에게로 돌아가십시오.

 민심이 흉흉한 이때 사람다운 사람이 사는 세상 교육이나 더 시켜주십시오. 극 보수, 타도 진보 여러분도 힘들지만 참으십시오. 경제가 난리인 이때 여러분의 손에는 아직 공권력이나 철거 대신 民主(민주)와 휴먼빅딜들이 쥐어져야 합니다.

 오늘의 양보와 희생은 언젠가 나라와 국민이 모아서 갚아주실 것이고 또 그렇게 될 것입니다. 부디 여러분들이 저를 사랑하신다면 천국에서 보내는 저의 첫 번째 유언에 귀 기울여 주십시오.…. 국민 여러분 고맙고 미안합니다. “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글도 이런 댓글도 사라져야할 글의 폭력이다.

 수십 년째 말의 폭력과 난동에 지친 몸으로 새해에는 당부하고 싶다.

 이십년 전부터 ‘이사 갔다.’ ‘파산했다.’ ‘이혼했다.’ ‘돈을 횡령해 고발당했다.’ 했지만 신묘년 올해까지 이사 가지 않고, 파산하지 않고, 이혼하지 않고, 고발당한 일 없으니 소설 같은 말은 더 각색을 첨가하여 그럴듯한 말을 해주면 좋겠다.

‘이효리 같은 미인과 데이트를 하더라.’

이런 군침 나는 이야기는 절대로 사양하지 않고 거짓말투성이인 그대들을 칭찬하며 우리 말, 우리글의 아름다움을 앵무새처럼 되뇌는 한해를 보내련만…….




초대받지 못한 땅



때로는 절규(絶叫)

때로는 묵언(黙言)

구비마다 채색 달리하며

유유히 흘러가는

저 洛江 보며

상념에 잠기지 말자.


거기

담긴 나의 영혼

혼돈이란 이름으로 외면하고 있다.


물 어린

시시껄렁한 모습일랑

추억조차 남기지 말고

그저 물 흐르듯

세월의 뒤안길 흘려버리자.


버리자

지워 버리자.


손잡은 인연도

손 놓은 악연

모두 나의 몫이다.


백화산 모퉁이

저승문 열고

저승골 닫고

남은 흔적도 없이

바람 저리 부는데

섶다리

외로운 자태로

이리 오너라

이리 오너라

미친 하늘 너머

숨죽인 세상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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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농부이로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