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로 나가 돈을 버는 딸이 가난한 시골 집에 다니러 왔을 때의 분위기는 세계 어느 곳이든 비슷할 것이다. 이 소설속의 정경도 우리나라 70, 80년대를 거친 세대라면 무척이나 익숙한 얘기리라. 시골 사람들이 갖는 도시에 대한 환상은 도시 물 먹은 주인공을 통해 형상화되고 부풀려진다. 그러나 돈의 위력에 무릎을 꿇었다 하더라도 사랑하는 사람 사이 특히 부모 자식간의 정을 돈으로만 해결할 수는 없을 게다. 어머니는 딸의 불안을 손수건으로 거둬주고 딸은 보답으로 돈을 줘야 편안하고... 그러나 그 딸이 만약 어머니가 된다면 똑같이 자기 딸의 눈물을 닦아줄 것이다. 그 딸의 딸은 똑같이 돈으로 보답할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누가 되든지 어머니일 수밖에 없다. 설령 딸이 던진 돈을 받아 주머니에 챙겨넣는다 하더라도.

 

 

 

버스정류장

 

마루야마 겐지

 

 

 

쉬지 않고 걸었더니 예상보다 빨리 정거장에 도착했다. 어머니는 숨 한번 돌리지 않았지만 난 매우 힘들었다. 폐는 마치 구멍이라도 뚫린 것 같은 소리를 내고 무릎관절 부위가 한없이 떨리는 것이 영락없는 환자 같았다. 게다가 당장이라도 옷을 갈아입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땀이 범벅이 되었다.

버스가 올 때까지 앞으로 40분 정도 있어야 한다고 말해놓고도 어머니는 쉼 없이 현도(현에서 관리하는 도로) 저쪽 어두운 계곡 사이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곳에는 먼지가 뽀얗게 이는 꾸불꾸불한 길이 잡초나 논에 둘러싸여 있을 뿐, 버스는커녕 인적조차 없었다.

주위는 무덥고 눈이 부신데다 고요하기만 했다. 근처에 녹음이 없어 나는 거칠게 숨을 헐떡거려야 했다. 논과 수풀 지대에 서있는 것이라고는 그 버스 정거장의 표식이 유일했다. 양산이라도 가지고 왔더라면 좋았을 텐데…….

헐떡거리는 숨이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단 2년 동안 내 몸의 상태는 허약해질 대로 허약해졌다. 마을을 떠난 순간부터 엉망이 된 것이다. 약간 경사진 길이 나타나도 소리를 지르고 싶고 한 걸음 떼는 것이 정말이지 귀찮았다.

도시 생활로 나는 상당히 변했다. 그러나 고향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2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전혀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도리어 깜짝 놀랐다. 놀란 나머지 하루라도 빨리 돌아가기로 하였다. 이곳은 지루했다. 이런 땅에서 10여년 헛되이 보냈다는 사실에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얘기하고 싶은 것이 산처럼 쌓여 있는데 아버지나 어머니, 이웃 사람들은 거의 화제가 없었다. 고작 작년 가을에 일어난 산불 얘기가 화젯거리였다.

모두들 나를 보면 ‘촌티 벗었다’는 말을 연발하며 내 얘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너도나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떤 얘기를 하더라도 의심받지 않았다. 하나에서 열까지 곧이곧대로 믿어주었다. 그러다 보니 난 셀 수 없을 정도로 거짓말을 늘어놓게 되었다. 도시 생활에 대해 지어낸 얘기가 꽤 많았다. 얘기만으로도 충분했는데 용돈이라도 손에 쥐어주면 더더욱 날 믿어주었다. 내 얼굴을 보려 몰려드는 사람에게 일일이 돈을 주었던 것이다.

눈물까지 찔끔거리면서 즐거워했기 때문에 아버지 어머니에게는 사흘 연속해서 각각 5천 엔씩 드렸다. 그러자 아버지는 나와 같이 생활하고 싶다 하시며 부상을 당해 읍내 병원에 누워 있는 동생을 홀대하는 듯한 말을 무심코 입 밖에 내고 말았다. 어머니마저 그런 표현을 이웃에 다니며 흘리고 다니셨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거짓말쟁이였다. 동생에게 집을 맡긴 후 나와 함께 도시에서 생활하기로 결정했다고 여기저기 말하고 다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도시는 노인들이 살아갈 수 있는 곳이 못된다, 라고. 돈은 드리지만 함께 생활할 수 없다고.

동생의 얼굴은 아직 보지 못했다. 만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침대에 누워 있으면 자연스럽게 나을 수 있을 정도의 병으로 일부러 문병까지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부모님이나 이웃사람들이 열심히 권유했기 때문에 돌아가는 길에 병원에 들를 것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정말 즐거운 휴일이었다. 2년 동안 겪었던 어떤 놀이보다도 재미있었다. 3일 동안 한 방울의 술도 입에 대지 않았고 담배도 사람들 앞에서는 피우지 않았으며 남자들에게 기세 좋게 대들거나 하지 않고 매일같이 뒹굴거리고 있을 뿐이었지만 언제나 즐거운 기분이었다. 지루했지만 기분은 최상이었다.

오랜만에 고향으로 돌아와 보니 내 입장은 완전히 허공에 떠 있었다. 풍선처럼 떠다니며 지낼 수 있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이웃사람들도 나를 우러러보며 한숨만 쉬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나도 피곤해졌다. 적당히 좋은 말만 지껄여대는 자신에게 정나미가 떨어질 대로 떨어져 마침내 내가 지갑에 손을 대는 것만으로 여러 사람의 표정이 바뀌는 것이 느껴질 때 돌아가고 싶어졌다. 도시로 돌아가 같은 가게에서 일하는 여자들과 함께 술을 마시며 마음껏 떠들고 싶었다.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 돌아간다는 말을 하자 아버지는 울먹이셨다. 하룻밤만 더 자고 가면 안 되겠니? 하고 말씀하셨다. 요 사흘 간 특별한 불만은 없었다. 단지 하나, 부모님이 중대한 질문을 하지 않았던 일이 불만이라면 불만이었다. 누구나 내 직업에 대해 자세하게 물으려 하지 않았다. 2년 전의 백화점 판매 일을 계속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세상물정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혹은 대강 짐작을 하고 있어서 일부러 묻지 않는 것이라면 더더욱 쓸모없는 사람들이다. 그런 질문을 받았을 때의 대답 정도는 미리 준비해 두었는데 말이다. 이제 그런 일은 아무래도 좋았다. 이로써 당분간 이곳에서의 일을 떠올리지 않고 지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나였다. 나는 이곳 마을사람들이 아니다. 게다가 약간의 부자였다. 지금 나는 고향의 그 누구보다도 많은 현금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산이나 밭의 의미가 아닌 그리고 저금액도 아닌 단지 지갑의 내용물을 서로 비교해본다면 틀림없이 내가 최고 부자일 것이다. 그만큼 호기 있게 선심을 썼지만 아직 내 지갑은 불룩하다. 그런 내가 머리에 손수건을 두르고 쨍쨍 내리쬐는 햇빛 아래 서있는 것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이런 모습이라면 과거에 도시로 직장을 구하러 나가는 날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날은 참담했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울었다. 이웃사람들도 손을 흔들어 주었고 반 친구들이나 학교 선생님, 동생, 그리고 나도 하염없이 울었었다. 내가 숲에서 풍기는 푹푹한 열기에 끊임없이 타격당하고 있는데 어머니는 여전히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기분 좋은 듯 앉아 계셨다. 쨍쨍 내리쬐는 태양을 어머니는 특별히 문제 삼지 않았다. 얼굴과 비슷하게 검게 그을린 손으로 내 가방을 소중한 듯 품에 안고 풀 위에 앉아 매우 즐거워보였다.

어머니가 가끔 현도 건너편을 바라보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버스가 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함이고 다른 하나는 마을사람이 지나가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나를, 돈 많은 딸을 분명 자랑스럽게 과시하고 싶은 것이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의 나를 되도록 많은 고향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훌륭한 옷차림과 유행하는 머리모양, 잘 다듬은 얼굴모양, 비싼 핸드백 등을 전부 보여주고 싶었다. 근처 사람들뿐만 아니라 모든 시골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읍에서 택시를 부리지 않은 이유는 그 때문이다. 버스 정거장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두세 사람은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어디에도 사람 그림자는 없고 주위에는 정적만이 흘렀다.

컴컴한 계곡 쪽에서 불어오는 썰렁한 바람만 아니었어도 나는 지쳐 주저앉아버렸을 것이다. 시원한 바람만이 의지였다. 달맞이꽃이 살짝 흔들리고 풀숲 깊숙한 곳에서 울던 벌레 소리가 뚝 끊기며 계곡 물로 식혀진 공기가 나를 감싸주었다. 순식간에 땀이 식으며 정수리 부분까지 시원해졌다. 우리는 거의 입을 열지 않았다. 어머니가 먼저 입을 여는 일은 없고 나는 나대로 입을 열 힘조차 없었다. 가까운 읍에서 택시를 불러야 했었다. 그렇게 하면 열차 안에서 옷을 갈아입어야 할 정도로 땀투성이가 될 일은 없었고 지금쯤 벌써 고향 일 따위는 완전히 잊어버렸을 것이다. 냉방이 잘된 차 안에서 편안하게 쉬며 당당하게 담배를 피우고 얼음으로 차게 식힌 캔 맥주를 마시고 있을 것이다. 그래, 맥주를 마시자, 우선 시원한 맥주로 목을 축이자, 열차가 달리는 동안 쭈욱 마시자, 그러면 기분 좋을 정도로 취해 그 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동거하고 있는 그 여자가 얼간이 같은 남자와 함께 있더라도 나는 아마 아무렇지 않을 것이다. 가방을 방 한가운데 휙 내던지고 알몸으로 서로 껴안은 채 뒹굴고 있을 두 사람을 내려보며 큰소리로 웃을 것이다. 그리고 위스키로 목을 축이며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큰소리로 밤이 밝을 때까지 시끌벅적하게 소동을 벌이자.

도시 동료들에게 술 없이 사흘 정도를 보냈다고 말해도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 캔 맥주를 목구멍에 들이붓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목 언저리에 무더위 때문이 아닌 땀이 배어 나왔다. 그러나 맥주가 내 손에 오기까지는 앞으로 1시간 이상이나 걸릴 것이다. 버스가 오기까지 30분, 버스가 읍내 역 앞에 도착하기까지 적어도 40분.

 

버스가 아닌 몹시 낡은 승용차 한 대가 우리 앞을 지나갔다. 일단 지나쳤다가 다시 되돌아왔다. 운전하고 있는 남자는 황색 헬멧에 작업복을 입고 있었는데 어머니와는 안면이 있는 듯했다. 어머니는 댐 공사에 와 있다며 좋은 사람이라는 사족을 붙였다. 그러나 난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한눈에 어떤 타입의 남자인지 알아보았다.

남자는 마음씨 좋은 웃음을 띤 채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읍내까지 가는 것이라면 태워준다고 했다. 어머니는 매우 기뻐했지만 나는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내가 근무하는 가게에 오는 손님 중에도 그와 같은 남자가 몇 명 있었다. 방심할 수 없는, 돈을 쓰지 않고 즐기려고만 하는 남자 부류에 드는 사내임이 분명했다. 읍내로 나가려면 인적이 드문 숲을 두 곳이나 지나가야 한다. 남자는 끈질기게 권유하였다. 이런 무더위에 있을 만한 곳이 아니라며 승용차라면 버스보다 훨씬 빠르다며 마침내는 차에서 내려 조수석 문을 열어주기까지 했다.

“타고 가려무나, 얘야.”

어머니도 쉼 없이 권하였다.

그러나 나는 버스가 멀미도 하지 않고 오랜만에 타고 싶다고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남자 얼굴은 기름칠을 한 것처럼 발갛게 빛나 마치 토마토 도깨비처럼 보였다. 그러나 추남은 아니었다. 어떤 일이든 태연하게 해치울 수 있는 그런 인상으로, 그 남자도 나를 간파하고 있는 낌새였다. 평범한 여자를 보는 눈초리가 아니었다. 도시에서 자랐거나 도시에 대해 도통한 남자가 아니라면 그런 눈으로 나를 볼 수 없을 터였다.

“어?”

남자는 짐짓 연극을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하였다.

“어디선가 한번 만난 것 같은데?”

나는 순간적으로 꼬리를 내렸다. 좀더 말을 걸기 위한 구실임을 알지만 나도 모르게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남자는 하루에도 대여섯 명이나 되었다. 나는 일일이 기억하지 못해도 남자들은 잊어버리지 않을 수도 있다.

결국 남자는 차를 조금씩 움직였지만 출발하지는 않고 반대로 내 쪽으로 더 다가왔다. 차를 버스 정류장 옆에 정차한 후 엔진을 끄고 여전히 느글거리는 웃음을 띤 채였다. 작업복에는 땀자국이 여기저기에 나 있어 마치 무늬처럼 보였다.

남자는 어머니와 나 사이에 앉았다. 강렬한 암내가 코를 찌르는 통에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버렸다. 나를 유혹하는 것을 포기했는지, 그는 어머니에게 말을 걸었다. 공사가 예정보다 지체 되었다는 둥, 말을 늘어놓는 와중에 자신이 아직 독신으로 지내고 있다는 말을 슬쩍 흐린다. 이런 거친 일을 하고 있다 보니 가정을 꾸릴 틈이 없다고 남자가 말한 순간 어머니의 눈이 갑자기 빛났다. 나는 더욱더 경계심이 일었다. 그 남자가 차에서 내린 그 순간부터 언제라도 몸을 피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불안정한 눈초리로 연신 주위를 살피는 모양이 괴이했다. 나이 먹은 어머니를 해치우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울 것이다. 우람한 팔을 한번만 휘두르면 모든 상황은 끝난다. 그리고 그 다음 내가 당할 차례이다.

아니 그는 그 전에 좀더 조용하고 숙련된 방법으로 최선을 다 해볼 작정일 것이다. 천천히 시간을 두고 우선 자신과 어머니가 얼마나 친밀한 사이인가 나에게 보여준 후 다시 나를 차에 태우려도 할 의도는 아닐까? 어떤 방법이든 그런 수에 걸려들 내가 아니었다. 겨드랑이 액취 때문에 견딜 수가 없었다. 남자의 목표는 나뿐이 아닐 수도 있다. 나와 내 가방속의 내용물을 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입을 다물고 계시던 어머니의 말문이 드디어 물 만난 고기처럼 쉴 틈 없이 이어졌다.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말로 나에 대한 얘기를 늘어놓고 계셨다. 집안부터 시작해 내 지갑 속까지 좔좔 풀어 놓는다. 그리고 어머니는 남자의 팔과 다리를 만지며 엄지손가락에 슬쩍 힘을 줘보기도 한다. 그것은 죽은 할아버지가 농사용 말을 살 때 사용하시던 방법이었다. 그러나 남자는 무슨 일을 당하고 있는지 모른 채 땀에 젖은 담배에 불을 붙여 멋쩍은 듯 뿜어댄다.

남자가 가끔 곁눈으로 이쪽을 보았지만 나는 무뚝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착한 딸 이라우.” 라고 말한 순간 나는 가방을 열고 담배를 꺼내 들었다. 양절담배를 손가락 끝으로 톡톡 두드린 후 입에 물고 마을 남자의 한 달분 수입보다도 비싼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의 표정은 경악 그 자체였다. 쩍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나를 빤히 쳐다보셨다.

그런데 남자의 표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는 아마도 그 장소에서 위스키 병으로 나발을 분다 해도 놀라지 않을 것이다. 입고 있는 옷을 모조리 벗어버린다 해도…….

어머니는 끝까지 말이 없었다. 담배를 피우는 여자가 어떤 범주의 인간에 속하는지 진즉부터 어머니는 말씀하시던 터였다. 입을 다문 어머니는 어두운 계곡이 아닌 여름 햇살이 쨍쨍 내리 꽂고 있는 남쪽 계곡을 바라보았다. 그곳의 대기는 성을 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늦는 구먼요, 버스가.”

남자가 중얼거렸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런 남자는 아예 상대를 하지 않는 편이 낫다. 어쩌면 저 남자와 내가 정말 만난 적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가 자신만만해 하는 것은 그 당시의 일을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까?

설령 그렇다고 치더라도 나는 전혀 상관없었다. 발뺌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첫째, 도시에는 나와 비슷하게 생긴 여자들이 수도 없이 널려있다. 내가 알고 있는 여자 중에서도 쌍둥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닮은 여자가 세 명이나 있다. 코와 눈 모양만 정돈하면 대개의 얼굴은 거기서 거기이다.

세 사람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 붙일 틈도 내주지 않는 내게 데었는지 남자는 불안해했다. 그가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대략 감이 왔다. 그러나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무서운 모의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때는 그때다. 그가 원하는 것을 남김없이 주고 목숨을 지키는 쪽이 영리한 판단일 것이다.

이윽고 남자는 묵묵히 일어섰다. 나는 갖고 있던 핸드백을 살짝 옆 덤불 속에 감추고 몸을 움츠렸다. 그러나 남자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 어깨에 손을 얻어 상냥한 말을 남긴 후 다시 뜨거운 목욕탕을 방불케 하는 차에 올라탔다. 그는 단념한 것이다.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간단하게 해치울 수 있는 일을 그는 깨끗하게 포기해버린 것이다.

남자는 나를 향해 “조심하시게”라는 말을 던진 후 강렬한 액취를 풍기며 여름을 향해 사라져갔다. 날아오르던 흙먼지가 풀과 벼 위로 떨어지며 하얗게 물들였다.

잠시 후 벌레 소리가 또 들려왔다. 어두운 계곡에서 불어온 바람이 내 땀을 식혀주곤 이내 멀어져갔다. 피우던 담배를 개미집에 비벼 끄고 덤불 속에 감춰두었던 핸드백을 움켜쥐었다. 난 아직 믿을 수가 없었다. 그 남자가 정말 포기했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 그렇게 보일 뿐 실은 다른 동료를 부르러 간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으면 숲 속 어딘가에서 강제로 버스를 세워 타고 올 작정일 수도…….

안심하기에는 아직 일렀다. 시간은 아직 있었다. 어머니는 어느 정도 안정이 되어 평소의 어머니로 돌아가 있었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가끔 내 쪽을 쳐다보았지만 결국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마 담배 사건에 대해 묻고 싶었을 것이다. 언제부터 피우게 되었는지 묻고 되도록 피우지 않는 편이 좋을 것이다, 운운하고 싶었을 것이다. 댐 공사로 와 있던 그 남자가 갑자기 일어서서 돌아 가버린 것도 그 담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만약 어머니가 실제로 그런 말을 한다 해도 변명하지 않을 작정이다. 담배 피우는 여자가 생각한 것처럼 이상하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는 잠자코 담배 연기를 뿜어 보여주는 것이 가장 간단한 방법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담배 한 대를 입에 물었다. 어머니와 나 사이에 보라색 연기가 몇 번 피어올랐다.

“용돈 좀 드릴까요?”

갑자기 어머니에게 물었다. 그런 말을 할 의도는 전혀 없었는데 혀가 제멋대로 움직여버렸다. “아버지한테는 비밀로 할게.”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어머니 주머니 속에 지폐 한 장을 찔러 넣었다. 그렇게 하면 어머니 머릿속의 떨떠름한 그 무엇이 단숨에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실제로 어머니의 눈빛이 더욱 반짝인 것 같았다. 막 받은 돈을 주머니에서 꺼내 가만히 바라보다가 그것을 어디에 감출까 고민하는 것 같더니 양말 속 깊숙이 집어넣었다.

갑자기 어머니를 바라볼 수가 없었다. 나는 그때서야 비로소 어머니가 늙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동시에 아직 젊었을 적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렸다. 지금부터 십 년도 더 지난 일이다. 어머니는 바짝 마르셨다. 똑같은 생활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지내오는 동안 겨울 건초처럼 지쳐버린 것이다.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생이다. 그것은 아버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 살아갈 날이 많다. 아직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다. 근래 2년 동안 내게는 무서운 것이 없었다. 도시, 남자, 세상, 결혼,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물론 언젠가는 나도 어머니처럼 말라비틀어지게 될 것이다. 그래도 좋다. 그래도 어머니의 10배는 살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어머니는 이미 죽고 없는 존재일 수도 있다. 이미 몇 년 전에 자신도 모른 사이에 가까운 사람 그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하게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은 나에게 용돈을 받을 때만 되살아나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나와 함께 살고 싶다고 했다. 전에는 두 분 모두 그런 말을 입 밖에 내신 적이 없었다.

컴컴한 계곡으로부터 불어오던 시원한 바람이 뚝 끊겼다. 내 몸은 땀으로 젖어갔다. 후끈거리는 열기 속에서 2년 동안 일하다보니 땀에는 익숙해졌다. 그러나 태양열 아래 고스란히 몸을 드러낸 상태로는 참을 수 없었다. 눈을 반쯤 감고 있어도, 눈이 부셔 손수건을 뒤집어써도 효과가 없었다. 나는 일어섰다 앉았다를 몇 번인가 반복하여 어서 버스가 오지 않나 초조해하며 현도로 빠지는 길 건너편을 노려보다가, 태연자약하게 앉아 있는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쑥 위에 앉아 손발을 움츠린 채 연신 눈을 깜빡거리며 엉뚱한 곳을 보고 계셨다. 그 모습은 나무통에 들어 앉혀놓은 모습과 흡사했고 또 새끼를 끌어안고 있는 엄마 원숭이와 닮기도 했다. 나는 드디어 폭발했다.

“언제 버스가 오는 거야!”

마음속에서는 단지 버스가 늦는다고 중얼거렸을 뿐인데 막상 입을 통해 나오는 말은 험악한 어조로 변해 있었다. 그러나 아직 올 시간이 되지 않은 것이다. 계속 투덜거리며 어머니에게 화풀이를 해댔다. 택시를 불렀으면 이런 험한 꼴을 당하지 않았을 거라는 둥, 집에서 좀더 기다리다 천천히 나왔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둥 어머니에게 악을 쓰며 퍼부어댔다.

그랬다. 사흘 전 2년 만에 어머니의 얼굴을 보았을 때부터 이렇게 하고 싶었다. 이런 재미없는 곳에서 사흘간이나 지낸 것은 어머니에게 퍼부어댈 수 있는 꼬투리를 잡기 위함이었다. 아버지에게 퍼부어대고 싶었다. 이웃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살아갈 거냐고 큰소리로 말하고 싶었다. 쭈그리고 앉아 있는 어머니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나는 화를 냈다. 마을에 남아 있는 모든 인간들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모두, 다 멍청이들이야.

그러나 어머니는 짐짓 아무것도 모르는 체하며 날 상대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어머니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은 게 아닐까. 그렇지만 나는 무시당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무시당했다고 강하게 느꼈다. 그것을 느낀 순간 외치고 말았다.

“가, 돌아가, 이제!”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외치고 있는 것처럼 들렸다.

“어린애가 아니니까, 나 혼자 버스 같은 거 탈 수 있어!”

어머니는 움직이지 않았다. 나에게 등을 떠밀릴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억지로 어머니를 일으켜 세워 집 쪽으로 밀었다. 어머니는 잠시 한숨을 쉬며 머뭇거리다가 이윽고 질질 끄는 발걸음으로 비탈길을 내려갔다. 어머니가 멈춰서거나 뒤를 돌아볼 때마다 나는 심하게 흔들렸다. 이유 없이 화를 내거나 발아래 돌멩이를 걷어차기도 했다. 어머니의 모습이 둑 아래로 사라진 그 순간 만에라도 버스가 왔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상쾌한 기분으로 차가운 캔 맥주를 시작으로 다시 새로운 생활로 돌아 갈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어머니를 무시한 것이다.

버스는 오지 않았다. 도착 시간이 되었지만 주위는 조용하기만 했다. 움직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런 곳의 버스가 늦는 일은 흔했으나 결국 나는 발끈하고 말았다. 갖고 있던 핸드백을 머리 위에서 마구 흔들어댔다.

핸드백을 붕붕 돌려대는 나에게 두 여자가 덤벼들었다. 머리를 풀어헤친 채 날카로운 목소리로 울부짖으며 막 닫은 가게 안에서 두 사람을 쫓아다녔다. 모두 재미있어 하며 날 제지하려 하지 않았다. 한 여자는 사투리를 흉내 내며 나를 놀려댔다. 그리고 다른 한 여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 얼굴로 이런 장사를 잘도 하겠구나, 라고.

지금은 사투리가 섞이지 않은 표준어를 구사할 수 있고 돈을 들인 덕분인지 얼굴도 한결 예뻐졌다. 그래도 동료 여자들과 늘상 싸움질을 해댔다. 손님이 적은 날에는 누구나 안절부절못했다. 그때마다 나는 핸드백을 돌려댔다.

핸드백 입구가 열려 화장품 도구가 쏟아지고 지갑 내용물들이 공중에서 춤을 추었다. 만약 돌풍이라도 불고 있었더라면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다행히 바람은 없고 지폐는 내 주위에 떨어져 내렸을 뿐이었다. 그래도 나는 이쪽저쪽 부지런히 손발을 벌려 기듯 하며 돈을 주워 모았다. 몇 번인고 몇 번이고 세 보았다. 아무래도 한 장이 부족했다. 아까 어머니에게 용돈이라고 드렸던 것을 생각해내기 전까지 미친 듯이 풀숲 여기저기를 헤매고 다녔다. 돈을 지갑에 잘 집어넣은 후 핸드백 깊숙이 넣고서 핸드백을 꽉 안았다. 아기라도 껴안듯 가슴에 꼬옥 안았다.

아직 버스는 보이지 않았다. 집을 향해 걸어가고 있을 어머니 모습을 상상했다. 상상하고 싶지 않았지만 생각이 났다. 쫓아가고 싶었다. 다시 용돈을 드리고 싶었다. 곧 또 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지폐 한 장을 주머니에 찔러주지 않으면 왠지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열차 안에서 차가운 캔 맥주를 마셔도 아무 느낌도 일지 않을 것 같았다. 순간적으로 하룻밤 더 묵고 내일 다시 출발할까, 하는 생각도 했다. 청량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읍내 택시를 불러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잠깐 손을 흔들어주고 재빨리 헤어지는 편이 좋지 않을까.

그런데 결국 나는 버스 정류장을 벗어나지 못했다. 담배를 피우며 작렬하는 태양 아래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아직 버스가 오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달맞이꽃 밑에서는 여전히 벌레가 울고 있었다. 어두운 계곡 쪽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내 몸을 간질이고 지나갔다. 나는 떨고 있었다. 이런 무더운 날씨에 이렇게 떨어야 될 이유를 나도 알 수 없었다. 마치 고개를 끄덕거리는 인형처럼 연신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그곳에는 황금색 빛이 있을 뿐, 인기척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이곳이 만약 도시였다면 설령 한밤중이라 하더라도 최소한 달맞이꽃 수만큼이나 많은 인간들로 득실거렸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는 나 혼자였다. 무시하는 놈조차 없었다.

나는 계속 떨었다. 병에 걸린 것도 아닌데 한여름의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서 심한 오한이 느껴졌다. 온몸의 힘이 빠져나가고 초조해할 기운조차 사라져 태양 아래 멍하게 앉아 있었다. 일사병에라도 걸린 것이 아닌가, 생각 될 정도였다.

알고 지내는 몇몇 여자들과 모여 술을 마시며 떠들썩하게 놀았지만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런 기분이었다. 고향을 떠나고 한동안 전철 안에서, 떨기도 했고 울기도 했다. 백화점 판매원으로 일하고 있었을 당시에는 주위의 모든 것이 두려웠고, 차가웠고 공허했었다.

지금 왜, 더구나 이런 무더위 속에서 떨고 있어야 하는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다. 2년 전의 내가 아니다. 누구의 힘도 빌리지 않고 살아갈 방법을 알고 돈도 갖고 있다. 그 순간 갑자기 생각났다. 댐 공사장에서 일하고 있다는 예의 그 남자가 혹시 다시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하고. 그 차가 다시 눈앞을 지나가는 일이 있다면 나는 손을 들어 정지시킬 것이다. 그리고 그 남자가 채 말을 걸기도 전에 조수석 문을 열고 올라탈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지나가지 않았다. 나는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듯 하여 간헐적으로 몸을 떨었다. 오한이 이는데도 땀방울이 방울방울 맺혀 땅 위에 떨어져 흡수되거나 지나가는 개미위에 떨어지기도 하였다. 문득 고개를 들자 그곳에 어머니가 서 있었다. 어머니가 다가오는 낌새를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어머니는 어느 사이엔가 되돌아온 것이다. 그때의 어머니는 생기가 있어 보였다. 도리어 내가 참담한 모습을 한 채 늙어버린 모습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무표정하게 일어서서 몸에 붙은 모래를 손으로 털기도 하고 핸드백을 만지작거리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어머니의 오른손이 천천히 다가오는가 싶더니 내 얼굴을 부드러운 헝겊으로 포근하게 감싼다. 어머니는 손수건 대신 항상 가지고 다니는 수건으로 내 얼굴의 땀을 닦아주려 한 것이다. 땀뿐만이 아니라 코까지 훔쳐 주려고 했다. 나의 떨림은 거짓말처럼 멈췄다. 나는 화장이 지워지는 것을 염려하여 어머니의 손을 살짝 제지하며 낮은 목소리로 “됐어”라고 했다. 어머니는 수건을 매우 소중한 물건인 듯 호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만약 그곳에 버스가 오지 않았다면 나는 그 어색한 시간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당황했을 것이다. 버스는 예정보다 15분이나 늦게 어두운 계곡 사이로부터 모습을 드러냈다. 앞 유리창과 범퍼를 반짝반짝 빛내며 흙먼지를 날리면서 이쪽을 향해 달려왔다. 어머니는 현명하게 손을 흔들어 운전수에게 신호를 보냈다. 엔진열기를 훅 내뿜으며 타이어가 요란하게 땅 위에서 버티는 소리가 났다. 짐을 들고 버스에 올라탔다. 어머니의 몇 번이고 운전수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모습은 ‘우리 아이를 잘 부탁한다’는 어머니의 옛 버릇이었다. 내가 아직 어렸을 적 읍내 치과병원에 다닐 때 어머니는 자주 그렇게 나를 버스에 태워 보냈었다.

뒤따르는 승객이 없어 자리에 앉자마자 버스는 출발했다. 어머니는 이쪽을 향해 크게 손을 흔들었다. 옛날 그대로였다. 나도 약간 손을 흔들었다. 그것도 옛날 그대로였다. 다른 점은 그 후였다. 나는 황급히 서둘러 지갑을 열고 지폐를 한 장 꺼내 들고 창밖으로 던졌다. 흙먼지와 함께 그 지폐는 어머니 쪽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나는 두 번 다시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러므로 창밖으로 던져진 돈이 무사히 어머니 손에 쥐어졌는지 알 수는 없었다. 돈을 던진 것을 안 어머니가 당황하여 부산을 떨며 그 돈을 주웠을 수도 있고 알아차리지 못한 채 아직도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들며 서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버스 정류장으로부터 멀어진 지금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버스 안은 시원했다. 직사광선을 쬘 염려도 없고 바람도 끊임없이 불어왔다. 나는 코에 손을 대 보았다. 어머니도 아까 그곳을 만졌다. 그러나 모습을 바꾸기 위해 삽입한 플라스틱 때문에 코끝은 썰렁했다.

이미 나는 건강을 회복했다. 다시 맥주를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해졌다. 얼음 조각에 묻어둔 캔 맥주를 입에 가져갈 때의 느낌을 상상하자 목 주위가 싸아, 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