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벌레

                                                                             김서련


 바퀴벌레였다. 변기에 앉아 아랫배에 힘을 주다가 말고 문득 고개를 들고 천장을 쳐다보았다. 벽 모서리 타일에 일정한 간격으로 딱 들러붙어 있는 검은 점 같은 게 눈으로 들어왔다. 처음엔 곰팡이인가 생각했다. 그런데 곰팡이라고 여기기엔 모양새가 너무 단정했다. 나는 아랫배에 힘을 주면서 그게 뭔지 생각을 했다. 아까부터 아랫배가 살살 아팠는데도 변은 나오지 않았다. 끝내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나는 변기에서 일어나서 목을 길게 뺐다. 곰팡이 같기도 하고 개미 같기도 하고 아무튼 정확하게 뭔지 알 수 없었다. 바지를 무릎에 걸친 채 목욕용 플라스틱 의자를 딛고 올라서서 그것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바퀴벌레였다. 몸길이 약 1센티미터 남짓한 반질반질 광택이 나는, 납작한 다갈색의 바퀴벌레가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벽 너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 같기도 하고 어디로 가야할지 방향을 모색하고 있는 것 같기도 뭔가가 겁이 나서 움츠리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한 마디로 별종이었다. 불만 켜도 잽싸게 어둠 속으로 도망가는 게 바퀴벌레의 생리가 아닌가. 그런데 이 놈은 사람의 기척을 느꼈을 텐데도 도망갈 기세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내가 공격이라도 하면 굳세게 저항하려는 듯 더 단단히 몸을 움츠리는 듯했다. 의아했다. 한참 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다가 문득 마루에 대자로 엎드려 자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요즘 접어들어 생긴 버릇이었다. 바닥에 납작하게 붙어서 자는 모습이 어쩐지 바퀴벌레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인지 어쩐지 바퀴벌레가 친숙하게 느껴졌다. 곤충이든 뭐든 살아 있는 존재가 이 집안에 있다는 게 은근히 위로도 되었다. 

  아무튼 간에 간이 큰 바퀴벌레였다. 밝은 불빛에서 분명 사람의 기척을 감지했을 텐데도 도망가지 않고 딱 버티고 있다니. 이렇게 당당하게 제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은 집의 음습한 공간에 있는 수천 마리의 바퀴들이 뒤를 받쳐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언뜻 지나갔다. 아니면 나를 자신의 종족으로 간주하고 있든지. 그런 생각을 해서인지 바퀴벌레가 그다지 혐오스럽지 않았다. 그리고 불결한 환경 속에서 살고 있지만 사람과 마주치면 도망쳐 숨어서는 자신의 몸을 조심스럽게 닦는다는 말도 있다시피 실제로 생각보다 불결한 곤충은 아닐지도 몰랐다. 그리고 애완용으로 키우는 사람들도 있고. 하지만 바퀴벌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싫어하는 곤충인 것은 사실이다. 바퀴벌레가 출몰하면 사람들은 질겁을 하며 세스코를 부르거나 삶은 달걀을 으깬 뒤 붕산과 섞어 집안 구석구석에 두거나 컴배트를 사용해서 바퀴벌레 소탕 작전을 벌인다. 집안에 바퀴벌레가 있다는 자체를 견딜 수 없어 하는 그런 혐오감에 대해 언젠가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다룬 적이 있었다. 그런 혐오감은 진화신화적인 이유에서 인간에게 선천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감정이라고 했다. 즉 인간의 유전자 안에 바퀴벌레에 대한 혐오감을 내재시킴으로써 비위생적인 바퀴벌레와의 접촉을 피하도록 시스템화되었다는 거였다. 소나 토끼들이 배우지 않아도 독풀을 피하는 것처럼. 

  나는 텔레비전 화면 속에 비친 바퀴벌레들을 보면서 더럽다기보다 오히려 측은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축축한 곳에서 오글오글 모여 있는 바퀴벌레들이 힘들고 지쳐 보이고 그러다가 나중에 집단으로 자살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다시 변기에 앉아 아랫배에 힘을 주었다. 여전히 배는 살살 아프고 가스가 찬 듯 아랫배가 탱탱한데도 변은 나올 듯 말 듯 했다. 저녁에 먹은 음식을 떠올렸다. 김치전과 밥을 먹었다. 묵은 김치를 총총 잘게 썰어 부친 전은 평소에 자주 해 먹는 것이었다. 여느 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조금 붓는다는 게 팍 부은 거였다. 티슈로 닦아내는 게 귀찮아서 튀김을 해도 될 정도로 흥건한 기름에 전을 부쳐 먹었다. 속이 느글거렸지만 시간이 지나면 괜찮겠지, 생각했다. 배가 갑자기 아프기 시작한 것은 저녁을 먹고 두 시간이 지난 뒤였다. 

  마침내 변이 나올 기미를 보였다. 한 번 더 아랫배에 힘을 꽉 주었다. 두두두, 소리가 나더니 팍, 물똥이 변기 안에 튀었다. 설사였다. 한차례 변을 본 뒤 물을 내렸다. 여전히 배가 더부룩하고 시원한 느낌이 들지 않아서 나는 변기에 붙인 엉덩이를 떼지 않았다. 다시 배가 아프기를 기다리면서 천장으로 눈길을 던졌다. 바퀴벌레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딱 들러붙어 있었다. 혹시 죽은 것은 아닐까. 나는 눈의 초점을 그러모았다. 그때 아래층에서 우당탕 거리는 소리와 함께 고함 소리가 수챗구멍을 통해 올라왔다. 무거운 정적으로 짓눌려 있는 욕실 속에서 웅장하게 울려오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아래층 남자였다. 집에 들어온 남자가 또 애매한 여자를 후려잡는 모양이었다. 가만히 들어보면 남자는 늘 이런저런 빌미를 잡아 여자에게 신경질을 부리고 화를 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두 번은 술 마시고 와서 밤새도록 고함을 지르며 여자를 닦달했다. 오늘은 그런 날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가끔 남자와 부딪칠 때마다 나는 주의 깊게 남자를 살폈다. 각진 얼굴에 안경을 낀 얼굴이 어딘가 모르게 딱딱해 보이고 눈빛이 희번덕거렸지만 그렇게 악의적인 인상은 아니었다. 공무원이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꼼꼼하고 성실해 보이기까지 했다. 여자는 밝고 차분한 성격인 듯했다. 얼굴이 마주치면 생글생글 웃으면서 인사도 곧잘 했다. 남자에게 매일 구박을 당하면서도 어떻게 저렇게 밝게 웃을 수 있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다시 배가 살살 아프기 시작했다. 나는 아픔이 심해지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때 단전에 힘을 세게 주었다. 물똥이 팍팍, 총알처럼 튀어나와 사방으로 튀었다. 변기 안에 들러붙은 황백색 똥을 잠시 들여다보았다. 물을 내렸다. 잘 씻겨 내려가지 않았다. 나는 변기 안에 세제를 푼 뒤 솔로 박박 문질렀다.

      

  나는 거실 바닥에 대자로 엎드렸다. 바퀴벌레처럼 마루판에 배를 딱 갖다 붙인 채 죽은 듯이 움직이지 않았다. 오른쪽으로 돌린 눈 속으로 어둠 속에서 고요하게 숨을 죽이고 있는 사물들이 희미하게 들어왔다. 그들은 지금까지 집안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을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난 네가 한 행동을 알아. 그렇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아이가 집 나간 것이 내 책임이라고? 내가 잘못했기 때문에 아이가 집을 나갔다고? 그래서 뭐 어쩌라고. 지금에 와서 되돌릴 수도 없는데, 뭐 어쩌라고. 나는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자장가처럼 고함 소리를 듣다가 이내 잠이 들었다. 꿈을 꾸었다. 검회색 구름이 온통 하늘을 뒤덮은 우중충한 날씨였고 나는 뭔가에 쫓겨 끝없이 도망을 다녔다. 몇 번이나 잠을 깼다. 눈을 뜨고 그런 꿈을 꾼 이유가 뭔지 그 꿈이 뭘 의미하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한쪽으로만 오래 엎드려 있은 탓인지 목도 뻐근하고 어깨도 욱신거렸다. 하지만 자세를 바꾸지 않았다. 통증이 싫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속으로 통증이 더 심해지기를 바랐다.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올랐다. 저절로 생겨나서 온전한 형태를 이루기도 전에 일그러지는 생각들 사이로 남자의 고함 소리가 파고들었다. 너무 오래 고함을 지른 탓인지 남자의 목소리에는 쉰소리가 났다. 그런데도 남자는 바락바락 악을 쓰고 있다. 희번덕거리던 남자의 눈빛이 떠올랐다. 도대체 남자가 왜 저러는지 알 수 없었다. 마루판을 뚫고 귓속으로 들어온 쉰소리가 내 몸의 혈관을 타고 피부와 내장, 근육과 뇌 속으로 돌아다녔다. 그리고 신경들을 자극했다. 쉰소리가 온몸을 훑고 지나가는 동안, 신경 돌기 사이에 웅크리고 있던 두려움이 슬그머니 고개를 치켜들었다. 살아가는 게 두려웠다. 나를 둘러싼 것들이 두려웠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입안이 바싹 말랐다. 혈관과 근육, 지방, 뼈들이 모조리 빠져나간 텅 빈 몸에 수천 개의 자갈이 꽉 들어차 있는 듯 온몸이 무거웠다. 몸은 마루를 뚫고 땅을 뚫고 땅 속의 바위를 뚫고 끝없는 어둠뿐인 밑바닥으로 추락했다. 밑으로 추락했다.

 

  힘내! 나는 자꾸만 가라앉는 몸을 추슬렀다. 무거운 손으로 머리맡에 휴대폰을 찾았다. 어둠 속에서 금방 찾을 수 있게 바로 머리맡에 뒀는데, 어디로 갔는지 손에 잡혀지지 않았다. 나는 손발을 옴지락거렸다. 다음에 팔다리를 들었다가 놓았다. 축 처진 몸에 조금씩 힘이 생겼다.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나 베개와 이불을 털었다. 휴대폰은 침대 밑에 떨어져 있었다.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휴대폰 폴더를 열었다. 아이 이름을 찾아 한참 들여다보다가 메시지전송을 클릭했다. 아무 것도 씌여지지 않은, 커서가 깜박거리는 창에다 ‘잘 지내고 있지?’ 라고 글자를 쳤다. 잘 지내고 있지?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별일 없이 잘 지내고 있지? 그 다음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나지 않았다. 몸은 아프지 않니? 밥은 잘 먹고 있니? 그런 말을 하면 아이는 뭐라고 답문을 보낼까. 걱정 마. 그럭저럭 잘 살고 있어. 아니면 침묵을 지킬까. 나는 아이가 답문을 보내고 싶은 말들이 뭘까 머릿속으로 생각을 했다. 내가 어떤 말을 해야 아이가 답을 보내줄 마음이 생길까. 생각나지 않았다. 십중팔구 아이는 내가 무슨 말을 적어 보내도 답문을 보내지 않을 게 뻔했다. 지난 6개월 동안 나는 아이에게 매일 문자를 보냈고 아이는 한 마디 대꾸도 하지 않았다. 집에도 오지 않았다. 아이가 사는 곳에 가고 싶었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아이가 날 찾을 때까지 만나지 않기로 한 약속 때문이었다. 나는 아이의 맘이 풀어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한참 동안 메시지창에 뜬 글자를 들여다보다가 전송 버튼을 눌렀다. 포르르, 날아가는 편지에다 내 마음을 담았다. 널 사랑해! 정말 널 사랑해! 내 맘 알지! 어느새 아래층은 잠잠해져 있었다. 오늘 할 일을 머릿속으로 점검했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은행에 들러 아이에게 한 달 생활비와 용돈을 보내고 오후에는 상담 치료사를 만날 예정이었다. 갑자기 마음이 바빠졌다. 집안을 반들반들하게 해 놓고 나가려면 서둘러 일해야 했다. 매일 청소를 하는데도 구석구석 먼지가 쌓여 있다. 이 먼지들이 다 어디서 오는 것인지. 이리저리 둘러봐도 공중에는 먼지 비슷한 것도 날아다니지 않았다. 그럼에도 기분이 이상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먼지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날아다니다가 사물에 들러붙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내 몸에도 달라붙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숨을 쉴 때마다 입안으로 먼지가 들어오는 것 같았다. 목이 퍼석거렸다. 정수기에서 냉수를 받아 단숨에 마시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배추김치와 물김치가 담긴 플라스틱 통과 유통기간이 지난 식빵과 보름 전에 사 놓은 계란이 서너 개, 햇반이 세 개 있었다. 햇반을 꺼내 전자레인지에 데우고 김치를 꺼내 접시에 담았다. 김치전을 해 먹을까하다가 그만 두었다. 또 장이 탈 날까봐 겁이 났다. 큰 대접에 밥을 넣고 물을 가득 부었다. 입맛이 없을 때 나는 주로 물에 밥을 말아 후루룩 마셨다. 아이가 편지 한 장 남기지 않고 집을 나간 뒤 나는 물밥만 먹었다. 밥맛도 없었지만 집에 붙어 있을 새가 없었다. 임시 강사를 구해 학원을 맡겨 놓고 아이를 찾으러 밤낮으로 쫓아다녔다. 아이 친구의 친구까지 찾아가서 아이의 행방을 묻고 주점을 뒤지고 경찰에 실종 신고를 내고 전단지를 붙이고 신문에 난 사건들을 일일이 체크하고 경찰서를 들락거렸다. 보름 만에 집으로 돌아온 아이는 한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독립하게 방을 얻어달라는 것이었다. 도저히 나랑은 살 수 없다고 말했다. 내 얼굴을 보면 미쳐버릴 것 같다고 말했다. 아이와 상담한 담임선생님은 내게 아이의 말을 들어주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솜털이 보송보송 난 담임선생님은 굳은 결의가 담긴 눈으로 내게 약속을 했다. 나는 아이에게 학교 근처에 있는 방을 얻어 주고 학원을 정리했다. 내 몸의 에너지가 완전히 소진된 된 듯 기력이 다 빠진 나는 당분간 쉬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지 생각해 보기로 했다. 후루룩 밥을 마시고 집을 나섰다.    


  엘리베이터가 20층에 서자 아래층 여자가 올라탔다. 약간 고개를 숙인 채 안으로 들어온 여자는 곧장 한쪽 구석으로 가서 눈길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나는 여자가 눈치 채지 못하게 슬쩍 훑어보았다. 얼굴이 많이 상해 있었다. 속으로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숫자판에 눈길을 고정시켰다. 여자와 내가 내뿜는 숨소리가 엘리베이터 안에 떠다녔다. 19. 18. 17. 엘리베이터는 곧장 아래로 내려갔다. 출근 시간대인데도 도중에 타는 사람이 없었다. 무서운 속도로 떨어지고 있는 엘리베이터를 상상했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이대로 추락하는 것은 아닐까. 추락하면 나와 여자는 어떻게 되는 걸까. 죽을 수도 있고 살 수도 있겠지. 어쨌든 한 운명의 배를 탄 여자와 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쓸데없는 상상을 털어내고 맨 안쪽 구석 코너에 설치되어 있는 CCTV를 힐끔거렸다. CCTV는 다소곳하게 서 있는 여자와 내 모습을 흑백으로 찍고 있을 것이다. 나는 CCTV에 찍힌 둘의 모습이 궁금했다. 그때 여자가 고개를 들어 눈길을 엘리베이터 숫자판으로 던졌다. 그러다가 나와 눈길이 서로 얽혔다. 가볍게 목례를 하는 여자의 눈을 본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언젠가 본 적이 있는, 아이의 눈과 많이 닮아 있었다. 그건 절망에 가득 찬 눈이었다.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어 제발 도와 달라고 부탁을 하는데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절망이 그녀의 눈빛에서 느껴졌다. 현재 여자가 처해 있는 상황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아이를 떠올렸다. 누군가의 간절한 도움을 바라는 듯한 눈빛. 아이도 저랬을까. 저렇게 간절하게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을까. 엄마가 도와주지 않아서 절망했을까. 아무도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아서 외로웠을까. 아이에게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내 삶의 전부가 된 남자 때문에 아이에게 마음을 줄 여유가 없었다. 아이는 내 손이 가지 않아도 스스로 자기 일을 곧잘 했고 순했다. 그래서 나는 아내와 이혼하고 몇 군데의 대학에서 고고학을 강의하는 그와 함께 살기로 결정을 했고 아이의 마음을 물어보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통보를 했다. 아이는 순순히 그와의 생활을 받아들였다. 마음을 활짝 열고 그를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잘 지내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그는 아이와 사는 것을 조금 불편해 했던 것 같다. 실제로 내게 아이와 잘 지낼 자신이 없다고 말한 적도 있었다. 천성적으로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는 아이가 착하니 신경 쓰게 할 일이 없을 거라고 말했다. 걱정한 것과 달리 그도 아이와의 생활에 쉽게 적응하는 것 같았다. 개가 교통사고로 죽지 않았다면, 아니 아이에게 개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여전히 잘 지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순하고 순한 아이가 변한 것을 개가 죽은 뒤부터였다. 개를 산책시키던 아이가 잠깐 한눈을 파는 사이에 개가 차도에 뛰어들었고 그때 빠른 속도로 달려오던 트럭이 개를 그대로 통과했던 거였다. 그가 오랫동안 키워 온 개였다. 그는 몹시 화를 내며 사고의 책임을 아이에게 돌렸다. 내 잘못이 아니라고 그냥 사고였을 뿐이라고 아이가 말하자 그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아이는 나쁜 아이라고 그런 아이가 나중에 사회에서 암적인 존재가 된다고 모든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주는 존재가 된다고 차갑게 말했다. 나는 개 때문에 아이를 윽박지르는 그가 못마땅했으나 속으로 삼키고 그의 편을 들었다. 어쨌거나 아이의 부주의 때문에 개가 죽은 것은 사실이었다. 아이는 입술을 깨물고 나와 그를 노려보았다. 그 일이 있은 뒤 아이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 가능한 우리와 얼굴이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듯했다. 밥도 자기 방으로 가지고 가서 먹었다. 어쩌다가 서로 마주치면 고개를 싹 돌리거나 아니면 아예 보지 못한 것처럼 굴었다. 그는 그런 아이를 견딜 수 없어 했다. 나는 아이의 방 앞에서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도대체 뭐하자는 거니? 난 너 같이 못된 딸 키우고 싶지 않아. 그러다가 문득 태도를 바꾸어 회유작전을 펼치기도 했다. 제발, 이러지 말자. 난 널 사랑해. 내 맘 알잖아. 하고 간절하게 말했다. 어느 것도 아이한테 먹혀 들어가지 않았다. 아이의 얼굴은 냉정했고 눈빛에서는 맹렬하게 타오르는 적의가 느껴졌다. 내 손에 걸리기만 해 봐, 작살을 내버릴 거야, 라는 아이의 얼굴빛을 보고 아이를 고문하는 것은 아이 자신이 아니라 혹시 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언뜻 스쳐 지나갔다.    

  갑자기 돌변한 아이의 태도에 나는 쩔쩔맸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 수 없었다. 그는 그런 아이를 바퀴벌레를 보듯 싫어했다. 술에 취할 때마다 그는 아이가 음습하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의 존재 자체를 싫어했다. 아이의 말이나 행동, 태도, 모든 것을 싫어했다. 나는 그런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그런 말을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아이가 방에만 틀어박혀 있는 것은 아마도 그때 너무 심하게 말한 것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개의 죽음을 아이 책임이라고 몰아부친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그건 그냥 사고였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니 아이를 그렇게 대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는 내 말에 화를 냈다. 아이가 하는 짓을 잘 보라고. 아이가 아니라 이건 숫제 괴물이라고 말했다. 아이를 보면 숨이 탁 막힌다고도 말했다. 나는 할 말을 잃고 그를 멀뚱히 쳐다보았다. 내가 그를 잘못 보지 않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그를 사랑했다. 무슨 말을 하던 그를 사랑했다. 그와 헤어질 마음이 티끌만치도 없었다. 아이한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아이한테 예전처럼 잘 지내자고 구구절절 마음을 담아 문자를 보냈다. 아이는 단 한 번도 답장하지 않았다. 하루하루 긴장 속에서 살았다. 내가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해야 네 마음이 나아지겠니? 한 번은 문을 사이에 두고 아이에게 물었다. 아이는 야무지게 대답했다. 둘만 살고 싶어. 나는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 엄마는 그를 사랑해. 네가 마음을 바꾸면 안 되겠니? 아이는 싫다고 소리를 질렀다. 아이와 둘 중 하나를 택하라고 하면 누구를 택할 것인지 나는 생각했고 아이보다 그가 더 좋다고, 그 없이 살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 확실히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그와 헤어져서는 도저히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나는 아이의 심정을 헤아리지 않고 오히려 날 도와주지 않는 아이를 원망했다. 한 번은 화장실에 가기 위해 방에서 나온 아이에게 말했다. 날 너무 힘들게 한다고. 나를 좀 도와주면 안 되겠냐고. 아이의 손을 꼭 붙잡고 아이의 눈을 들여다보며 사정했다. 가만히 내 말을 듣고 있던 아이가 내게 말했다. 엄마가 돼서 어떻게 엄마 생각만 해? 엄마는 엄마만 중요하고 나는 안 중요해? 정말 그래? 날 바퀴벌레 취급하는 남자가 그렇게 좋아? 나보다 더 좋아? 나는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 날 바라보는 아이의 눈은 절망에 가득차 있었다.   

  

  여자보다 한 걸음 앞서 걸어갔다. 뒤에서 걸어오는 여자의 기척이 느껴졌다. 여자에게 뭔가 말을 걸어야하는 것은 아닐까. 경비실을 지날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차 한 대가 올라왔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내 뒤를 따라오던 여자도 내 옆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나는 여자에게 말을 걸었다.

  날씨가 많이 덥죠?

  네.

  여자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얼굴빛은 여전히 어두웠다.

  어딜 가요?

  시내에요.

  아, 네. … 요즘도 춤을 가르치고 있어요?

  나는 언젠가 여자에게 들은 말을 기억해내고 물었다. 그때 여자는 댄스교습소에서 춤을 가르치고 있다고 말했다.

  네.

  차가 지나가고 우리는 걸음을 말없이 옮겼다. 예식장과 뷔페, 사무실이 들어서 있는 7층짜리 건물과 은행, 편의점을 지나가면 횡단보도가 나오고 길은 갈라졌다. 도로를 건너가면 시내로 가는 지하철이 나오고 도로를 따라 걸어가면 버스정류장이 나왔다. 나는 여자에게 말을 계속 말을 붙이고 싶었다. 그러나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게다가 여자는 별로 말을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혹시, 케이크 좋아해요?

  생각지도 않은 말이 불쑥 입에서 나왔다.

  네.

  여자가 대답했다.

  그럼, 나중에 케이크 먹으러 올래요?

  여자가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제가 케이크를 무지무지하게 좋아해요. 잘 만들고요. 혼자서 먹으려고 하니 좀 그러네요. 오후 4시쯤 집에 오세요. 한 조각 먹고 저녁 준비하면 되잖아요. 

  나는 애정을 담아 말했다. 여자에게 케이크를 꼭 먹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들었다.

  아, 네. 그때쯤 돌아오게 되면 집으로 갈게요. 고마워요.

  그제야 여자는 내 말을 알아들었다는 듯 살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횡단보도 앞에서 걸음을 멈추는 여자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럼, 나중에 봐요.

  초록 신호불이 들어오고 여자가 횡단보도를 건너가기 시작했다. 나는 몇 번이나 여자의 뒷모습을 훔쳐보았다. 무거운 기분이었다. 한 발짝 옮길 때마다 무거운 기분은 더 심해졌다.  나는 왜 여자에게 케이크를 먹으러 오라고 했을까. 케이크를 만들 생각도 하지 않았으면서. 그리고 나는 케이크를 딱 한 번 만들어봤을 뿐이었다. 그때 모양도 형편없었고 맛도 없었다. 차라리 제과점에서 살 걸 하면서 후회를 했었다. 그런데 여자에게 케이크를 잘 만드니 어쩌니 하면서 먹으러 오라고 하다니. 더구나 나는 오후에 해야 할 일도 있었다. 정말이지 대체 왜 그 말을 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여자에게 뭔가 다른 말을 해야 했던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 정류장을 지나쳤다. 다음 정류장은 초등학교 앞에 있었다. 널찍한 주차장을 가진 마트 건물을 지나 산등성이에 위치한 초등학교는 아이가 6년 동안 다닌 곳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지도위원 선거에 나간 아이가 떠올랐다. 아침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날이었다. 전날 밤 새벽 2시까지 시험 준비 중인 학생들을 지도하고 온 나는 아이에게 빵과 우유를 먹였다. 비가 오는 것도 모르고 학교에 빨리 가라고 재촉했다. 아이는 비를 쫄딱 맞고 학교에서 가서 지도위원 선거에 나갔다. 나중에 반 아이 엄마들한테 그 얘기를 들은 나는 비에 젖은 생쥐 꼴이 되어 아이들 앞에서 선 아이를 떠올렸다. 아이를 챙기지 못한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너무 부끄러워서 눈물이 났다. 그리고 바쁜 일상에 쫓겨 잊어버렸다. 

  초등학교에서 걸음을 멈췄다. 98번 버스를 기다리면서 학교 쪽으로 흘끔거렸다. 교문에서 학교 건물로 올라가는 길에는 햇살이 출렁거리고 있었다. 가방을 맨 아이들이 띄엄띄엄 올라가고 있었다. 아이들이 빛 속에서 걷고 있는 듯했다. 만약에 빛에게 뿌리가 있다면 그 뿌리까지 들여다보려는 듯 나는 햇살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맑고 강한 햇살이었다. 오래 햇빛을 받고 있으면 몸이 스르르 녹아내릴까봐 걱정이 될 정도였다. 우리 생이 저렇게 투명한 빛으로 가득 찬다면 빛의 반대편에 있는 그늘은 어디로 사라지는 것일까. 아이가 떠올랐다. 지금 아이는 어둠뿐인 길을 외롭게 걸어가고 있는 중일지도 몰랐다. 온통 어둠뿐인 길을 걷다가 방향을 잃어버리고 헤매고 있는지도 몰랐다. 아니다. 아이는 지금 온몸으로 살아갈 길을 찾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온몸으로 자신을 존재를 드러내며 살아가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그날따라 집으로 전화를 거는 것을 깜박 잊고 있었다. 보통 사정이 생겨 퇴근이 늦어지면 그에게 아무 일도 없냐고 물어보곤 했다. 그날따라 학생들은 말을 듣지 않았고 성적이 뚝 떨어진 남학생 엄마가 한 시간 넘게 하소연을 했다. 머리가 띵했다. 휴대폰의 배터리가 떨어진 것을 오히려 다행으로 여겼다. 더 이상 그 누구의 전화도 받고 싶지 않았다. 집에 도착한 내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것은 난장판이 된 거실이었다. 거실에 놓여 있던 탁자가 베란다 쪽으로 밀려 있고 한쪽 구석에 세워 둔 이젤과 유화그림, 스탠드가 아무렇게나 엎어져 있고 라면 가닥과 국물, 소주병과 술잔이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TV는 혼자 떠들고 있고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이는 어두컴컴한 방구석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새파랗게 질린 아이의 얼굴에는 멍이 들어 있었다. 무슨 일이냐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도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감히 상상도 못한 일이 일어난 거였다. 아니, 나는 그런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어쩌면 예측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랬기에 마음이 늘 불안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정말 그랬다면 그건 아이를 방임한 것이었다. 진실을 외면한 것이었다. 나를 결코 용서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병원으로 데리고 가면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았다. 이틀 정도 입원해서 치료를 하면 되겠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있을 때 나는 심한 허기를 느꼈다. 아이는 주사를 맞고 잠이 들었다. 나는 병원 매점으로 갔다. 뭐라도 먹지 않으면 쓰러질 것만 같았다. 빵과 우유를 먹는데, 눈물이 주르르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술에 취해 광기를 부리는 남자와 겁에 질려 발발 떨고 있는 아이를 상상하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런 남자를 집으로 데리고 온 엄마를 원망하는 마음이, 심장에 박혀 있는 검은 돌멩이처럼 단단해진 원망이, 깊은 어둠의 뿌리에 휘감겨 있는 아이의 분노가 내게로 전해져 왔다. 그동안 아이가 살고 있었던 곳은 사람들이 살 수 없는 황량한 사막이었고 삭막한 바람이 부는 낯선 곳이었다.   

  잊어버려. 살다보면 말이야. 내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도 나쁜 일을 당하는 경우도 있어.   

  나는 잠을 자고 있는 아이한테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분명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는데도 말은 허공으로 흩어지지 않고 내 귓속에서 웅웅거렸다.

  그날 이후 그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한 달이 지난 뒤 그는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미안해. 그는 조용하게 말했다. 나는 입을 뗄 수가 없었다. 말들이 혓바닥에서 춤을 추었다. 왜 그랬어? 아이가 그렇게 싫었어? 아이가 말대꾸 했다고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손찌검을 해? 나쁜 놈, 넌 정말 나쁜 놈이야. 날 생각했다면, 날 조금이라도 사랑했다면 내 딸을 그런 식으로 대하지 않았을 거야. 말들이 입안에서 맴돌았다. 너무 화가 나도 말이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내 물건은 그냥 버려. 그가 풀이 잔뜩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화장대 위에 놓여 있는 그와 함께 찍은 사진으로 눈길을 던지면서 그의 말을 들었다. 당신한테 정말 미안해. 입이 열 개 있어도 할 말이 없어. 나도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알 수 없어. 내 머릿속에서 미친개들이 날뛰고 있는 기분이 들었어. 강의 시간이 줄어들고 전처가 재혼하는 것 때문에 술을 마셨지만 아이에게 화를 낼 생각은 없었어. 그냥 내 자신에게 화가 났어. 모든 것이 지긋지긋했고 끝장내고 싶었어. 아무래도 그날 귀신에게 덮어 씌인 것 같아. 정말 미안해. 그는 미안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강조했다. 전화가 끊어진 뒤에도 나는 한참동안 휴대폰을 들고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내 몸이 땅 속 깊이 빨려 들어가고 있는 듯 의식이 혼미했다.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그의 말을 듣고만 있었던 내 자신이 바보 같았다. 아이가 그 지경이 됐는데도 그를 보내 줄 마음이 없는 내 자신이 바보 같았다. 나는 머릿속으로 그와 나의 장례식을 떠올렸다. 싸늘한 시체. 아무도 울지 않는 삭막한 장례식장. 비정한 엄마에 대한 신문기사. 깊은 배신감에 상처 입은 아이. 실행에 옮길 수는 없는 상상을 하고 또 했다.

  

  도서관 휴게실에 비치된 열 종류가 넘는 신문을 읽고 디지털 정보실에서 인터넷 검색을 하고 5층 열람실로 갔다. 심리학에 관한 책을 꺼내 창가에 앉았다. 얼마 전에 새로 지은 이 도서관은 벽 한 면이 전면 유리창이었다.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끝없이 펼쳐져 있는 바다와 모래사장, 저 너머 산이 그대로 안으로 들어왔다. 책의 내용은 외상의 종류와 그것의 치료법에 관한 것이었다. 책을 읽다가 바다를 보다가 했다. 그리고 바다를 침대 삼아 자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도서관에서 바다까지의 거리를 떠올렸다. 불과 십 분 정도의 거리지만 그 공간에 있는 사물들은 무수했다. 나는 그 사물들을 거쳐 바다까지 가야했다. 문득 아이의 집까지의 거리를 떠올렸다. 버스로 삼십 분이면 가는 거리인데도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 그 공간에 존재하는 무수한 사물들을 어루만지며 아이에게로 가고 있는 내 자신을 떠올렸다. 아이와 나 사이에 가로 놓여 있는 것들은 무엇일까. 병원 침대에서 자고 있는 아이는 너무나 여리고 힘이 없어 보였다. 나는 아이의 가냘픈 손목이 안쓰럽고 야윈 어깨가 불쌍했다. 열다섯 살이지만 아직 아이는 어린 팔다리를 가지고 있었다.

  기분 좀 어때?

  나는 오랜 잠에서 깨어난 아이에게 물었다.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내야할지. 내내 궁리했지만 딱히 적당한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도대체 아이한테 무슨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마침 저녁 무렵이었고 서쪽 하늘에는 붉은 노을이 진하게 퍼져 있었다. 옅은 어둠이 병실에 깔렸다. 작고 볼품없는 고요 속에서 사람들의 걸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미안해.

  나는 아이의 손을 양손으로 잡고 말했다. 아이의 손을 기도하는 것처럼 잡고 언제까지나 움직이지 않을 것처럼 그렇게 앉아 있었다. 그동안 나는 아이는 내버려두면 저절로 커는 줄 알았다. 아니, 바쁜 엄마를 이해하고 스스로 자신의 일을 해결하고 있는 줄 알았다.   

  있잖아. 너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아이의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아이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존재인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이가 내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그것이 얼마나 큰지. 아이가 있음으로써 내가 존재하고 아이와 내가 하나로 이어져 있음을 말하려고 애썼다. 

  

  다음날 나는 아이에게 초콜릿케이크를 만들어주었다. 생전 처음 만들어 본 것이었다. 제과점에서 아이가 먹을 만한 빵을 고르다가 문득 내 눈길이 케이크에 가서 닿았다. 아이가 자신의 생일 때 초콜릿 케이크를 한꺼번에 먹어치우던 생각이 났다. 나는 아이에게 내가 직접 만든 케이크를 먹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든 것을 맛있게 먹는 아이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좋았어. 나는 인터넷에서 초콜릿 케이크를 만드는 법에 대한 정보를 검색하고 재료를 샀다. 생크림, 버터, 스위트 초콜릿, 박력분, 코코아 가루. 케이크 만드는 순서를 몇 번이나 읽었다. 케이크를 만들면서 나는 삶을 생각했다. 이스트와 밀가루의 비율을 지나 반죽덩어리가 케이크가 되는 과정에 대해 생각했다. 밀가루가 케이크가 되는 과정이 아이가 여자가 되고 엄마가 되고 아줌마가 되고 할머니가 되는 것과 비슷한 점이 있는지 없는지 생각했다. 

  맛있지?

  케이크를 한 조각 먹은 아이에게 물었다. 아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배가  고팠는지 케이크를 숟가락으로 푹푹 퍼서 한 입에 넣고 우물우물 먹었다.

  이거 봐. 케이크는 말이야. 이렇게 먹어야 해.

  나는 포크로 맨 위부터 맨 바닥까지 한 번에 찍어내려 모든 층을 한꺼번에 입안에 넣었다.

  이렇게 먹어야 제 맛이 나.

  아이는 얌전하게 나를 따라 먹었다. 뜻밖이었다. 순간 눈물이 났지만 나는 내색하지 않으려고 일부러 눈을 크게 떴다.


  마트에서 사온 식료품을 선반과 냉장고에 차곡차곡 정리해 넣고 케이크 재료는 식탁 위에 꺼내 놓은 뒤 아이의 방에 들어갔다. 방안을 서성거리며 아이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알지 못한 것이 무엇일까. 아이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았을까. 아이의 옷장과 침대, 책상, 화장대는 예전과 똑같은 위치에서 고집스럽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문을 잠근 채 방안에 틀어박혀 있는 아이에게 문 열어! 나는 소리를 지르곤 했다. 왜 문을 잠그고 있어? 빨랑 문 안 열어! 문손잡이를 드라이브로 도려낸 적도 있었다. 그때 아이는 방안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에 숨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가만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딘가에 아이가 숨어 있을 만한 공간이 있을 것 같았다. 옷장과 화장대 거울, 책상, 침대 밑을 들여다보았다. 침대 밑은 한 사람 정도 들어갈 수 있을 만한 공간이 있었다. 나는 무릎을 꿇고 옅은 어둠이 고여 있는 침대 밑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뭔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방바닥에 배를 붙이고 침대 밑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지난 몇 개월 사이 줄어든 체중 탓인지 몸이 쉽게 들어갔다. 스멀스멀, 뭔가가 몸에 와 닿는 느낌이 들었다. 옆 눈으로 살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곤충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그건 바퀴벌레와 비슷했다. 아니, 바퀴벌레였다. 내 몸으로 모여든 바퀴벌레들이 이상하게 징그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았다. 두 팔과 두 다리를 쫙 벌렸다. 내 안의 음습한 곳에서 존재하고 있는 것들이 꾸역꾸역 기어 나왔다. 내 입에서 내 귀에서 내 눈에서 내 음부에서 꾸역꾸역 기어 나왔다. 그리고 내 몸에 달라붙기 시작했다. 바퀴벌레였다. 내 눈에 그렇게 보였다. 바퀴벌레들이 우글우글 내 몸을 기어 다니면서 몸집을 불렸다. 한 마리의 거대한 바퀴벌레가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침대 밑에서 기어 나왔다. 화다닥 바퀴벌레들이 일시에 도망을 갔다. 서너 마리가 손등에 딱 달라붙어 있었다. 용기가 대단한 놈이었다. 손을 휘저었다. 바퀴벌레가 떨어지지 않았다. 탁, 때려서 죽이고 싶었지만 손으로 떼어냈다. 순간적으로 손끝이 오그라들었다. 나는 큰소리로 중얼거렸다. 바퀴벌레는 혐오스런 존재가 아니다. 바퀴벌레는 혐오스런 존재가 아니다. 바퀴벌레는 혐오스런 존재가 아니다.

  

 나는 케이크 재료들을 난감한 심정으로 바라보았다. 막상 여자를 오라고 했지만 케이크 만들 일이 걱정이었다. 잘 될지 어떨지 자신이 없었다. 뭐 그래도 한 번 해보는 거다. 용기를 냈다. 볼에 생크림을 붓고 중불에 올려 데우고 있는데, 벨이 울렸다. 아랫집 여자였다. 잘 왔다면서 호들갑을 떨며 여자를 집안으로 끌었다. 일단 여자에게 커피를 주면서 잠시 기다리라고 말했다. 여자는 소파에 앉아서 초대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뭘 그런 것 가지고 그래요. 버터와 잘게 다진 스위트 초콜릿을 볼에 넣은 뒤 불을 끄고 골고루 저어주면서 말했다. 그런데, 남편이 왜 그래요? 아무 것도 아닌 일처럼 물었다. 여자는 의외로 순순하게 대답했다. 나도 잘 모르겠어요. 왜 그러는지. 나도 이해할 수 없어요. 아무 것도 아닌 일에도 늘 화를 내고…. 아마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죠. 내가 싫을 수도 있고 어릴 때 받은 상처 때문일 수도 있고 나보다 더 사랑하는 여자 때문일 수도 있고…. 한참 뜸을 들인 여자가 내게 물었다.

  그런데 케이크를 직접 만들어서 먹어요?

  아, 네. 딸이 케이크를 좋아해서…….

  나도 모르게 나온 말이었다. 나는 능숙한 프로처럼 여자에게 케이크 만드는 법을 말해 주었다. 소파에서 일어나 내 곁으로 다가온 여자는 자신이 도울 일이 없냐고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가만히 있는 것이 도와주는 거라고 말했다. 케이크 만드는 동안 기분이 좋아졌다. 콧속으로 스며드는 초콜릿의 냄새도 좋았다. 밀가루를 반죽할 때의 느낌도 좋았다. 어느새 온몸에 적당히 배여 있는 달콤한 냄새도 좋았다. 나는 여자에게 이런저런 농담을 했다. 여자가 웃었다. 나도 웃었다. 투명한 빛방울 같은 둘의 웃음소리가 공간에 촘촘하게 박혔다. 나는 손으로 웃음소리를 잡았다. 케이크가 실패할 조짐이 보였다. 나는 여자에게 따뜻한 웃음을 보내면서 말했다. 음식의 맛은 정성이 맞죠? 순간 여자의 얼굴빛이 쓸쓸하게 변했다. 갑자기 왜 그래요? 나는 여자의 눈을 들여다보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난 지금까지 누군가 정성껏 해주는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어요. 엄만 먹고살기에 바빠서 내가 집안일이랑 밥을 해야 했거든요. 여자가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 완성된 케이크는 엉망이었다. 납작하게 찌그러져 케이크인지 주물럭거린 초콜릿 덩어리인지 알 수 없었다. 창의성이 맘껏 발휘된 작품이네요. 여자는 도리어 날 위로하는 듯 말했다. 그렇죠? 역시 내 솜씨는 알아준다니까요. 우리는 킬킬거리며 초콜릿케이크를 앞에 두고 마주 앉았다. 마트에서 사온 와인을 유리잔에 절반쯤 따른 뒤 쨍, 하고 잔을 부딪쳤다. 쨍, 맑은 소리가 허공으로 울려 퍼졌다. 쨍, 경쾌한 웃음소리가 온 집안을 채웠다.  

  생각보다 케이크는 맛있었다. 포크로 깊이 찍어 한 입에 넣자 달콤한 맛이 혀끝에 번졌다. 나는 아이를 떠올렸다. 아이에게도 케이크를 먹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주 짧은 시간, 지금 이 순간, 아이가 케이크를 먹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케이크를 먹기 위해 아이가 집으로 오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휴대폰으로 초콜릿 케이크를 찍었다. 액정 화면 속에 찍힌 케이크의 모양이 이상했다. 두 눈을 크게 뜨고 자세히 사진을 바라봤다. 커다란 접시에 납작하게 엎드린 모습과 진한 갈색빛이 꼭 거대한 한 마리의 바퀴벌레처럼 보였다. 한참 신기한 눈으로 보다가 사진을 아이의 휴대폰으로 전송했다. 오늘 초콜릿 케이크 만들었어. 먹으러 오지 않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