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구는 누렁이다. 순 우리나라 토종개다. 수천년을 우리나라 백성들과 함께 살아온 똥개다. 근데 왜 비명을 지를까. 이 소설을 읽다 보면 미순이 효순이가 생각나고... 미국의 지배에 억압당하는 기층민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

황구의 비명

 

천승세

 

다이아몬드형의 오밀조밀한 쇠창살을 달고 퐁 뚫린 작은 창문으로부터 눈이 시린 햇살이 뻗치고 있었다. 햇살에 드러난 나의 깡마른 허벅지는 허연 살비듬을 먼지처럼 일구고 있었다.

 

복부의 팽만감은 벌써 가셔, 쥐어짜 봐야 나올 것도 없었지만, 나는 노곤한 하품만 기가 차게 뱉어대며 그대로 앉아 있었다.

 

조그만 창문으로부터 새어 들어오는 것들은 평범한 일상(日常)의 전부들이었다. 여인의 짜증스러운 목소리가 자식들을 불렀고, 배드민턴 치는 개구쟁이들의 함성이 펄펄 끓고 있었고, 고물장수와 젊은 아낙이 나직이 서로 다투고 있었으며, 그리고 발바리 강아지들의 울부짖음들이 골목을 흔들고 있었다.

 

나는 조금도 슬플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예의 청승맞은 하품은 급기야 한숨으로 변해 버리는 것이었다.

 

변소문을 다급히 두들기는 노크 소리에 나는 내가 한숨을 내뱉고 있는 이유와 또 좌변기에 붙은 채 떨어질 줄 모르는 엉덩이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방정맞게 다가오는 발짝 소리며, 신경질적인 노크를 퍼붓고는 내처 돌아가는 심사로 보아, 노크를 해대고 있는 사람이 아내일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또 한 차례 요란스러운 노크를 해대고 난 아내가 짜증스럽게 악을 써대고 있었다.

 

"빨랑빨랑 나오지 뭘 하는 거예요? 애기를 낳았대두 네 쌍둥이는 낳았겠수, 차암"

 

나는 손가락 끝에 들려 궁상스럽게 동작하던 휴지를 내던지고 일어났다. 좌변기는 요란하게 울며 나의 대변을 쓸고 내려갔다.

 

---쐐에쐐에, 호그르호글, 터텁텁, 꼬골---

 

아내는 기가 차다는 듯 팔장을 끼고 서선 물끄러미 나를 올려다봤다.

 

"뭉기적거리다가 그년을 아예 놓칠 셈이에요? 일주일 안으로 이사해야 될 것을 뻔히 알면서두 언제 갈려고 그래요?"

 

나는 아내의 말에는 대꾸도 않고 방으로 들어왔다. 나는 옷을 꿰입으면서 말했다.

 

"당신이 한번만 더 가줘 제발, 난 그런 곳엔 딱 질색이거든. 그 다음엔 내가 꼭 갈께"

 

아내는 펄쩍 뛰었다.

 

"글쎄 그런 년은 남자가 본때를 뵈줘야 한다니깐 그러네. 고년이 아주 천년 묵은 구렁이라니깐 그래..... 오늘은 두 말 말고 머리채라도 끌어서 기어코 받아내요. 알았죠?"

 

나는 아내가 그려준 약도를 받아들고 대문을 나섰다. 약도 위에 <그년의 양색시 이름, 담비 킴>이라 쓴 아내의 달필이 유독 힘줘 눌려 있었다.

 

"오시는 길에 웬만한 방 있으면 그냥 계약해 버리세요. 시간도 없구 또 내 집도 아닌 걸 뭐. 알았죠?"

 

나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망연한 심정으로 걸어 나갔다.

 

이제는 <담비 킴>이 된, 그 은주를 나는 한 번도 똑바로 쳐다본 적이 없었다. 그 여자는 내가 의정부에서 살 때 우리처럼 세를 들어 살고 있었다. 우리와는 방벽 하나 사이인 문간방에 살고 있었는데, 어느 바아에 나가는 호스테스라 했다.

 

잘 생긴 편은 아니었다. 말하자면, 호스테스 같은 인기 직업에서는 되게 별 볼일 없는 전형적인 시골 처녀 타이프였다. 키도 작았다. 은주는 가끔 밤중에 청승맞게 울다가 주인으로부터 호되게 당하기도 했었는데 그녀의 슬픔은 고향에 두고 온 두 살짜리 딸애 때문이라 들었다. 돈놀이(소위 달러변)을 했던 아내와는 무척 친한 사이여서 한때는 언니 동생하는 처지였는데, 어느 날 밤, 은주는 원금과 밀린 이자를 합쳐 십오만 원이라는 큰 돈을 떼먹고 어디론가 자취를 감춰 버린 것이었다.

 

아내는 끈질기게 뒤를 밟아 기어코 은주의 행방을 알아낸 것이었다. 몇 차례 대판 싸움질을 치르고 난 아내가 돈 받는 일을 나에게 떠맡긴 것이었다.

 

나는 용산행 시내 버스에 올라 아내의 간청을 단호하게 뿌리치지 못했던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우선 <돈놀이>라는 아내의 사업이 나의 생리와는 등을 돌리는 일이었다. 더구나 얼굴도 제대로 못 기억하고 있는 양색시에게 돈을 받으러 간다는 사실에 대해 나의 자존심은 치를 떨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며칠 후의 얄팍한 타산을 계산해 보고 있었다. 아내의 돈놀음은 그야말로 <튼판>의 <망통>지경으로 불운했으며 우리는 그나마 전세금을 줄여 이사를 해야 할 처지에 놓여 있었다.

 

용주골행 버스는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나는 공교롭게도 커튼도 없는 창켠의 자리에 앉았다. 유월의 땡볕이 비닐로 만든 좌석을 물렁하게 삶고 있었다. 앞좌석에 앉은 흑인병사가 다소 유치한 무늬의 남방샤쓰를 벗어들고 그 옷으로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흑인병사의 훼훼 내두르는 혓바닥이 유독 빨갛게 더위를 타고 있었다.

 

내 옆에는 치고의 윤곽이 다 드러나도록 꼬옥 째인 청바지를 입은 여이이 요란스럽게 껌을 씹어대며 앉아 있었는데, 그 여인의 남빛 도는 얼굴색과 그 색깔 속으로 펴져 돋은 왕여드름으로 하여, 나는 그녀가 소위 양색시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모든 남자들의 소변 보고 있는 뒷모습이 한결같이 처량하듯, 양색시들 역시 그들의 얼굴빛으로, 허탈한 눈빛으로, 가쁜 숨소리로 그녀들의 처량함을 그리고 있었다.

 

버스는 구성진 유행가 가락을 내뽑으며 불광동 고개를 넘어 달리고 있었다. 내 옆에 앉은 여인은 버스 속의 낡은 스피커가 내뽑는 남진의 <당신과 나 사이에 저 바다가 없었다면....>을 나직이 따라 부르고 있었으며 버스 운전사는 지나가는 버스를 향해 기계처럼 무심하게 손을 내젓고 있었다. 용주골행 버스 안에서 제일 좋다고 느낀 것은 이 처량한 유행가와 그리고 무심히 내젓는 운전사의 손, 이것 두 가지뿐이었다.

 

 

용주골의 한낮은 무척 더웁게 끓고 있었다. 나는 버스에서 내려 10원짜리 하드로 마른 입을 적시며 서 있었다.

 

기세 좋은 더위 탓인지 용주골의 시가는 서부영화의 흔한 피날레처럼 한산했다. 흉한을 쓰러뜨린 정의한처럼 백인병사 한 사람이 샛노란 머리털을 휘날리며 멍청하게 서 있었고, 그 병사는 잠시 후 허리에 얹었던 양팔을 서서히 내리고는 길 모퉁이로 사라져 갔다. 이따금씩 사복한 두서너 명의 미군들이 지루한 표정들로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으며 온통 영문으로 간판을 채운 무료한 상가들의 쇼윈도우가 지나치는 그들을 잠시 담았다가 다시 흘려보내고 있었다.

 

용주골의 거리는 마술의 거리철머 금새 꽉 찼다가 곧장 텅 비워져 버리기 일쑤였다. 양색시들이 목적도 없이 도로의 횡단을 반복하다가 거리 모퉁이로 사라지면 예의 하릴없는 미군 떼거리들이 갑자기 거리를 부산하게 하다가, 그녀들의 뒤를 좇아 금새 사라지곤 했다. 한동안 거리는 텅비는 것이었다.

 

내 옆좌석에 앉아서 왔던 그녀가 웃옷을 벗어 어깨에 걸치고는 망연히 서 있었다. 그녀는 짧은 거리를 몇 차례 오락가락해 대다가 내 앞을 지나쳐 무겁게 발길을 옮기고 있었다. 그녀가 쇼윈도우 앞에 멈춰 서선 얼굴 속의 왕여드름 한 개를 쥐어짜고 있을 때 나는 슬그머니 다가가 벼란간 물었다.

 

"은주라는 여자를 아십니까?"

 

여인은 바보스러운 나의 물음에 신경질이 나는 모양이었다.

 

"이 냥반 골 속이 휑한 모양이셔? 은준지 감준지 내가 어떻게 알아?"

 

여인은 새하얗게 눈을 홀겼다. 그녀는 다시 여드름을 쥐어짜고 있었다.

 

".........양색시인 모양인데........"

 

"양색시오?...... 양색시가 용주골 천지에 한둘이래야 말이지.....그런 애 모르겠는데요? 운 좋으면 (3자 삭제)나 불리고 있을께구....."

 

나는 돌아서면서 새삼스럽게 아내를 원망하고 있었다. 이 여인의 어마어마한 실례의 말투는 선명한 동요 하나 없이 텅 비어 버린 한심스러운 거리를 한 차례 기세 좋게 울렸던 것이었다.

내가 아내가 그려준 약도 쪽지를 들고 막 도로를 횡단할 때였다.

 

"이봐요! 푹푹 찌는데 낮거리라도 한 탕 뛰고 나서 찾아보시지 그래"

 

여인은 능글맞게 웃으면서 한번 꿈틀 하고 하복부를 흔들어 보였다. 나는 건성으로 오른팔을 들어 흔들어 보이고는 곧장 도로를 횡단해 버렸다.

 

"육갑 떠네에----"

 

여인은 허탈하게 내뱉고는 기진한 듯 걸어가고 있었다.

 

<그년의 양색시 이름, 담비 킴>으로 시작한 아내의 약도는 퍽 자상스러운 편이었다. 나는 골목을 접어들면서 한번 뒤를 돌아다봤다. 그 여인은 쇼윈도우 앞에 멈춰 서선 어린애처럼 핸드백을 좌우로 흔들어대고 있었다.

 

나는 야릇하게 찡 아려오는 콧날을 쓰윽 훔치고는 걸음을 재촉했다. 한심스러운 판에, 저 여인과 낮거리라도 신나게 한 탕 뛰고 나서 은주를 찾아 나선다면, 일은 훨씬 더 수월할 것이었다. 여인은 한눈에도 퍽은 고참 양색시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걸으면서 생각하고 있었다. 도대체 저 여인은 무슨 이유로 하여 저렇게 숨통 막히는 무료를 스스로 자청하고 나섰던 것이며, 가능하면 저 여인의 무료함이 한시바삐 숨가쁜 동작으로 변하기를--- 그래서, 어떻든 분망하다 보면 슬픔의 자질구레한 응어리들은 풀자루가 된 콘돔처럼 쉽게 버려지는 것이라고. 버리고 나면 그만이라고.

 

나는 걷다 말고 초라한 구멍가게 앞에 놓여 있는 긴 나무의자에 주저앉아 버렸다. 산전수전 신산각고를 다 겪은 듯한 오십대의 주인은 나를 거들떠보지 않고 무성한 야산을 바라다보고 있었다.

 

"뭐 시원한 것 없나요?"

 

"시원한 게 무스거 이서......사이다나 콜라 그런 거디 뭘."

 

"한 병 주세요."

 

그러시구레. 야아--- 이 손님 콜라 한 병 따드레라아"

 

나는 콜라 한 병을 단숨에 벌컥 들여마셔 버렸다. 그제서야 주인은 나의 얼굴을 힐끔 훑어내렸다.  

 

"용주골엔 뭬하러 와서?"

 

"놀러 왔습니다... 그런데 내 얼굴에 서울 사람이라고 그려져 있습니까?"

 

"그냥 알디 뭘. 용주골에 뭬 볼 게 있다고 놀러 와?"

 

주인은 칼자국이 서너 개쯤 뻗친 우람한 팔뚝을 들어 성성한 백발을 쓸어 올리며 물었다.

 

"누굴 찾아 왔는데요. 은주라구."

 

"양색씬가?"

 

"그렇습니다. 혹시 아시나요?"

 

"알긴 뭘 알아? 거렁거 이름 외우고 살게 돼서? 이 용주골에서 살래믄 말야, 첫때루 안면몰수하구 둘때루 예의사절하구, 세때루 악발교육해야 사능게야. 이 흉터 좀 보라우! 손주 볼 나이에 이렇게 살고 있는 것 좀 보라우. 미치가서.... 하옇튼지 이놈의 용주골, 이거 머이 못되두 단단히 못된 건데 말이디...."

 

주인은 땡볕만큼 더운 한숨을 후우---내뱉고는 다시 야산의 무성한 수풀 속으로 시선을 던졌다. 주인의 얼굴은 나이보다도 훨씬 겉늙어 있었다.

 

나는 멍청하게 앉아 이 겉늙어 버린 주인이 내뱉은 말을 음미하고 있었다. <안면몰수> <예의사절> <악발교육>....이렇게 삭막한 땅속에서 용케도 숨줄을 잇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주인의 말대로라면 그야말로 살맛 없는 말세의 끝이었다.

 

 

 

<저작권 보호와 관련하여 출판사측의 요청에 의해 중략합니다>

 

  

 

은주는 풀섶에 이울지는 모진 빗방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숨이 가빠갔다.

 

"그리구 말야, 은주의 이런 발은 나훈아의 고향의 돌담길이나 몰레방아 도는 시골 같은 땅을 밟고 살 발이야. 이런 발로 라스팔마스는 너무했잖어? 은주의 외씨 고무신 곁에는 황토로 범벅된 검정 고무신이나 코째진 짚신 같은 것이 놓여 있으면 되는 거구...."

 

나는 정신없이 지껄여대면서도 뚜렷한 한 가지 사실에 대해 반성하고 있었다. 나는 왜 가엾고 측은한 은주를 깊게 안아줄 수 없는가 하는 것이었다. 은주는 백 마디의 그럴싸한 설교보다도 한번의 포옹, 한번의 입맞춤에서 훨씬 더 진하게 나의 뜻을 공감할는지 모를 일이었다. 이런 것을 밀어내고 있는 것은 얍싸한 위신이나 아내에 대한 정결감 같은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문둥이 자식을 둔 어머니의 아픔과 같은 것이었다.

 

나와 은주의 적요한 사이에 끼여 용주골의 하늘은 비를 채우고, 미친 듯 천둥을 울고 있었다.

 

광막한 들판을 질러 한 쌍의 개들이 뛰어 오고 있었다. 나와 은주는 점점 다가오는 한 쌍의 개들에게 시선을 던져 놓은 채 참으로 조용하게 앉았고, 또 서 있었다.

 

".....난 어차피 가야 할 시간이야. 그래 끝내 용주골에 남겠나?"

 

은주는 별안간 긴 한숨을 내뱉더니 무척 답답한 듯 가슴을 쓸어내고 있었다.

 

"나에게 다소의 돈이 있어요. 오만원쯤은 은주에게 보태주고 싶군. 은주가 용주골의 한 모서리를 떠난다면 말야...."

 

은주는 오랜만에 샐쭉 웃었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 주인한테 꼭 오만원의 빛이 있는데...."

 

나와 은주가 멋적게 웃고 있는 동안 우리 시선 앞에서는 엄청난 노동이 진행되고 있었다.

 

수캐는 어마어마한 체구를 자랑하며 암캐의 엉덩이 위로 댕겅 몸을 실었고, 수캐에 비해 너무나 볼품없는 조그만 암캐는 그때마다 중량을 감당하지 못해 풀썩 뒷다리를 꺾고 주저앉는 것이었다.

 

혀를 빼물은 수캐는 뾰족하게 선 귀와 늘씬한 체구를 자랑하며 몹시 함부로 암캐를 다루고 있어싿. 암캐는 복날이 서러운 조그만 재래종 황구였다.

 

황구는 기구한 여인처럼 사력을 다해 순종하고 있었으나 수캐의 폭력은 절정의 극이었다. 수캐는 숫제 기진해서 무릎을 꺾어버린 황구의 등 위로 길게 체구를 얹어 뻗고 우람한 불알통을 딸랑대며 느슨느슨 동작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무척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형언할 수 없는 분노였다.

 

<황구여! 꼬리를 내려라! 제발!>

 

황구는 알량한 꼬리를 받쳐들고 감질거리는 쾌락을 참고 있는 모양이었다. 수캐는 여의치 않는 동작에 대해 무척 신경질이 나는 모양이었다. 큰 입을 벌려 황구의 목덜미를 덥썩 물었다 놓았다 하며 장군처럼 질겼고, 황구는 그때마다 닳아빠진 빗자루 같은 꼬리를 하늘 높이 쳐들고 뒷다리를 불끈 세워 보는 것이었다.

 

은주는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한 쌍의 개들이 벌이고 있는 적절한 기회 속에서 화급하게 나의 목적을 부르고 있었다. 나는 흠뻑 물에 젖은 돈뭉치를 꺼내 들고 오만원을 헤이고 있었다.

 

"은주! 눈 딱 감고 떠나 버려. 한두 사람 이렇게 떠나가는 거야. 그러면 되는 거야, 그러면...."

 

".......떠나 버리면 어떡행. 아주머니 돈은 떼어먹고 마는 건데."

 

그때였다. 고막이 따가울 정도로 앙칼진 황구의 비명이 터졌다. 한쌍의 개는 서로 돌아서고 있었으나 황구의 뒷다리는 한 뼘은 실히 공중에 떠 있었다. 수캐는 황구의 불끈 들린 뒷다리를 끌고 있었다. 황구는 진창 바닥에다 턱을 끌며 그 요란스럽고 처절한 비명을 내뱉고 있는 것이었다. 황구는 죽어가는 듯싶었다.

 

그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은주가 몹시도 서럽게 울기 시작한 것이었다. 은주의 흐느낌 속으로 끼여드는 황구의 비명을 모진 빗발이 물컹하게 적시고 있었다.

 

나는 울고 있는 은주 옆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별안간 들먹거리는 어깨쭉지를 감싸 안았다.

 

나는 바보처럼 바쁘게 내뱉었다.

 

"은주! 황구는 황구끼리....황구는 황구끼리 말야..."

 

"가겠어요! 당장이라도 떠나겠어요."

 

은주는 온몸을 떨고 있었다.

 

은주의 젖은 등어리로부터 보리멸 익은 듯한 비린 체취가 풍겨왔다. 나는 은주의 등어리에다 깊게 얼굴을 묻었다. 훈훈한 은주의 체온이 내 볼을 타고 온몸에 퍼져들고 있었다.

 

"봐요......그것 봐요......향수가 빗물에 씻겨 버리고 나니깐 고향 냄새가 나잖아. 보리밭 냄새가 말야."

 

나는 아내를 생각하고 있었다. 정결한 한 여인의 긴 치맛자락이 끌려가는 아이들의 함성이 꽉 찬, 배드민턴의 어지러운 포물선들이 메운, 그리고 내 자식들이 왕사탕 가게 앞에서 군침을 삼킬 수 있느  런 예사스러운 골목 안이라면 판잣집인들 어떻겠는가 하고---

 

나는 그 방안에서 고향에 있는 은주의 꿈을 꾸며 아내의 시들은 젖무덤에다 입을 맞출 것이었다. 서럽지 않은 황구와 황구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