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집 / 이승희

                             

1. 

이 집은 낡고 오래된 악기와 같아서 같아서

소리를 냈다 냈다. 낮잠처럼 햇살이 흘러들고 나가는 마당은 깊어서, 아 너무 깊어서 깊어서 어머니 등 뒤의 세월처럼 눈물 나, 눈물 나. 배냇저고리 같은 옷을 입은 풀들, 아기들, 녹색으로 몸 물들이며 마당 가득, 지붕 가득 피어올라, 동굴 같은 눈으로 노래 부르네, 노래 부르네.

 

다시 고욤나무로 돌아간 감나무 한 그루가 보낸 엽서가 마당에 가득하다

 

2. 

우물가에 앉아

햇감자를 숟가락으로 긁을 때마다

공중에도 둥글게 우물이 파였다.

 

3. 

이젠 덜 아픈 거니?

지금 난 네 안에 있어

네 안에서 자고 싶어

달이고 달인 세월

아직 따뜻하구나, 종일 햇살에 발 담근 세월아. 난 마루에 앉아 자꾸만 네게 말걸지,

세월 속에는 또 다른 세상이

저승의 세월이 이승의 세월로 꽃피는

늙음이, 낡음이, 이젠 떠나고 없음이 이리도 편안할 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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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희 / 1965년 경북 상주 출생. 서울예전 문예창작과 졸업. 1997년 《시와 사람》신인상 당선. 1999년 〈경향신문〉신춘문예 당선. 시집 『저녁을 굶은 달을 본 적이 있다』.


  과거로의 회귀와 미래로의 위안


소설이 현실 지향적 문학이라면 수필은 지나온 체험을 수렴하여 삶의 풍향계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시는 무엇일까. 아마도 과거나 현재 속에서 미래지향적 문학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승희 시인의 시 <오래된 집>은 과거로의 회귀와 미래로의 위안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어쩜 삶의 원형(原型)을 찾아 동심이 회복되는 시로 읽혀집니다. 더구나 물질을 중시하는 시대에 젖어 살다보면 자칫 정신적 내면적 가치를 되돌아보지 못한 채 부유(浮遊)하는 삶이되기도 할 때 되새겨 읽어볼 만합니다.

 오늘날은 이웃한 옆집 아파트의 노모가 보름 만에 죽은 채로 발견된다든지, 도박과 유흥에 빠졌던 젊은 부부가 아이를 아사시켰다고 하는 패륜적 보도나 기사들을 종종 대합니다. 이때 우리 사회가 소담스러운 현재나 미래를 위한 과거에의 아름다운 꿈을 회상하거나, 소박한 삶을 살지 못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승희의 시 <오래된 집>에서는 1연에서는 현재의 감나무인 화자가 과거의 고욤나무로 돌아가 엽서를 띄우면서 회상하는 온전한 자아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어쩜 많이 앓고 난 뒤에 불쑥 커버린 내면적 자아를 보는 듯합니다.

 2연에서도 과거의 단란했던 추억 때문에 햇감자를 긁어내어 감자전을 부치듯 감자 속으로 우물이 보인다고 합니다. 심리적학으로 본다면  우물은 내면적 자아를 상징할 것입니다. 이때 둥글게 파인 우물은 과거의 아름다움을 내포할 것입니다.

 3연에서는 과거의 순수함이나 완강한 천진함으로 우물 속에 비친 또 다른 자아와의 화해를 하거나 화합하는 정신세계를 보여줍니다.

 그러니까 이 시는 화자가 많이 앓고 난 뒤에 정신적으로 성적(性的)으로 성숙해 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시행 중, ‘따뜻하구나’와 ‘난 마루에 앉아 자꾸만 네게 말 걸지’ 라는 시행에서, 화자의 화합과 소통의 장면을 나타냈다고 봅니다. 그렇게 하고 난 뒤의 화자가 도달한 심리적 상태를 나타낸 시행은, “저승의 세월이 이승의 세월로 꽃피는‘ 것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떠나간 과거나 부족함이나 결핍 속에서는 다소 미온적 태도를 보이지만, ’편안할 수 있다‘라고 언술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인간들은 과거 속에서 현재의 꿈을 키우며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요. 이승희 시인의 <오래된 집>에서도 유년의 아린 추억의 실타래를 우물 속에 드리워 놓고, 날마다 한 뼘씩 건져내면서 현재의 자아를 부추기고 북돋우며 살아가듯, 우리들도 아린 추억의 실타래를 감아내면서 푸른 하늘을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오래된 집>을 처음 읽고는 ‘여성 시인이겠구나’ 하고 느꼈는데, 막상 알고 보니 남자였습니다. 어찌하였던 시인으로 살아가는 삶의 부피가 깊었겠지만, 이제는 ‘결핍’보다는 ‘연민’의 시의 길로 들어서는 시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