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광옥 선생님>

            -남수현 

    11월 중순경 한 초등학교 동창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얼마 전 추석연휴 끝나고 부산으로 돌아가는 길에 안광옥 선생님 댁 앞을 속도를 늦추어 가다 보니 집 앞에 한 노인이 앉아 있는데 선생님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아 시내에 들러 두유를 하나 사 들고 방문했더니 조금 전 그 노인이 바로 초등학교 5,6학년 때 담임이셨던 안광옥 선생님이었다고 했다. 29년 전의 기억나는 제자들의 안부를 하나하나 물으시며 특히 나를 많이 기억하고 계셔서 나에게만 특별히 알려주는 거란다. 그러잖아도 친정집을 오갈 때 지나치는 길목인지라 한 번도 찾아뵙지 못한 게 마음에 항상 걸렸었는데 혼자 찾아뵈려니 용기도 없고 또 혼자만 선생님을 찾아뵈었느냐는 친구들도 있을 것 같아 일단 "I love school"에 <더 늦기 전에>라는 제목으로 샘이 그나마 제자들에 대한 기억이 일부분이라도 남아 있을 때 찾아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글을 올렸는데 조회 수가 졸업생숫자(당시 졸업생이 한 학급 57명)를 넘도록 걸려온 전화는 달랑 두 통화. 하는 수 없이 그 두 친구랑 12월 마지막 날로 일정을 잡고 동창회주소록의 전화에 하나씩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꼭 뵙고 싶다고 온다고 해 놓고 그날 아침 중요한 회사의 일이 있어 미안하다는 신봉이와 다음에 꼭 들리겠다는 본국이의 전화, 결국은 언양의 고속철도현장에서 없는 시간을 내어 올라온 영철이와 행정실에 근무하는 재의와 셋이서 가기로 했다. 지난 12월 마지막 날 오후 3시, 낮은 감나무 몇 그루로 둘러싸인 집안을 들어서니 집의 오른쪽 새로 지은 건물 안에서 선생님께서 창문에 기대어 밖을 내다보고 계셨다. 자녀가 조금씩 추렴해서 지었다는, 자녀가 다녀갈 때나 손님들이 오면 잠시 사용한다는 새집은 살림살이가 별로 없어 몹시 정갈해 보였다. 4년 전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동네 앞 화단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그 앞에 서 있던 흰색의 승용차가 눈 깜작할 사이에 선생님을 덮치는 바람에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생활을 4개월 정도 하셨고 그 바람에 척추뼈가 두 개 정도 망가져 허리가 매우 굽으셨다고 한다. 연세가 있으셔서 통증이 없으면 수술하지 않는 게 오히려 더 낫다는 전문의의 권유가 있어 그대로 지내신다고 하신다. 선생님의 자녀분들이 요즘은 젊은이들이 휴대전화나 디카로 사진을 수월하게 찍는다고 하셨다는데도 다니시는 교회에 부탁해서 카메라도 미리 준비해 놓으셨다 한다. 내 디카에 담아서 동창회사이트에도 올리고 사진을 현상해서 우편으로 보내드리겠다고 하니 그게 좋겠다고 하신다. 이야기 도중 뭔가 잠시 생각하는 듯하시더니 서랍에서 메모지 셋과 볼펜 셋을 꺼내어 '숙제'라고 하시며 적으라고 하신다. A4용지 절반 크기에 이름, 배우자 이름, 아이들 이름, 주소와 전화번호를 남겨두라는 거였다. 킬킬거리며 오랜만에 숙제하는 기분으로 셋이 나란히 방바닥에 엎드려 잘 읽으실 수 있도록 큼지막하게 적었다. 잠시 후 사모님이 비스킷과 과일, 유자차를 내어오셨다. 건강해 보이신다고 했더니 아흔여덟의 시어머님과 지팡이에 의지하고서야 밖이라도 산책할 수 있다는 선생님, 그리고 아홉 살에 뇌염을 앓아 장애를 가진 마흔아홉의 딸을 데리고 산다고 하신다. 한시라도 자리를 비우면 집안이 엉망이어서 가까운 시내에 볼일이 있으면 택시를 타고 빨리 갔다 와야 한다고 하시는 사모님의 위로 삼아 잡아본 손은 투박한 삶에도 정말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29년간의 함께 못한 이야기와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한 동창들과의 전화통화로 두 시간을 보내고 지팡이를 짚고 길가까지 배웅나오신 선생님, 저만큼 멀어진 영철이까지 큰 소리로 부르시더니 집에 돌아가면 아이들에게 전해주라며 한 사람에 만원씩을 주시는데 사양하는 게 도리는 아닌 것 같아 초등학교 다닐 때 손님들이 주시는 작은 용돈에도 마냥 즐거웠던 기분으로 감사하게 받았다. 차를 돌려나오는데 집 앞에서 선생님과 사모님이 우리 차가 멀어지도록 내내 손을 흔들고 계셨다. 오누이같이 다정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