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자가 있다. 현대 사회의 현실과 적응 못 하는 여자.

다 읽고 나면 어디선가 본 듯한 한 여자가 내 앞에 서있다.

소설을 공부하는 정신과 의사한테서 이 소설이 정신분석 연구에 많이 이용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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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상자-1998년 이상문학상 수상작.

은희경

마지막으로 아내의 방에 들어가 본다.
푸른 빛이 감도는 벽지, 벽을 향해 놓여진 독일식 책상과 창가의 안락의자. 그 사이로 알 수 없는 희미한 향기가 떠다닌다. 그리고 상자들.
아내는 상자를 많이 갖고 있다. 어떤 상자에는 그녀가 한 계절 내내 손가락을 찔려 가며 십자수를 놓은 탁자보가 들어 있고 어떤 상자에는 편지 뭉치가 들어 있다. 편지는 모두 종이색이 누렇게 바래고 잉크가 번진 오래된 것들이다. 최근에 그녀에게 편지가 오는 것은 한 번도 본 일이 없다. 아내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호들갑스러운 친구가 사주었다는 하얀 배냇저고리가 든 상자도 있다. 그 아이가 삼 개월만에 자연 유산된 후 아내는 또 다른 아이를 가지지 못했다. 그런데도 아내는 그런 물건을 간직했다. 아내의 상자에는 지나 시간동안 그녀를 스쳐 지나간 상처들이 담겨 있었다. 사람들은 상처가 회복된 다음에도 몸에 남아 있는 흉터로써 그 상처를 기억한다. 그녀는 흉터를 지니듯이 방 귀퉁이에 상자를 쌓아갔다.
맨 위의 상자 하나를 열어 본다. 조잡한 조개껍데기 목걸이가 비스듬히 누워있다. 생각난다. 신혼 여행지였던 해변의 기념품 상점에서 이 목걸이를 샀었다. 생각나나다. 그때 아내의 눈 속에 어리던 바다, 그 바다를 향해서 바구니에 주워담고 싶을 만큼 맑게 방울방울 굴러 떨어지던 그녀의 웃음소리.
하지만 아내는 이제 여기 없다. 아내의 독일식 책상의 뚜껑이 완강하게 닫혀 버린 것처럼, 그리고 언제나 그 책상 위에 놓여있던 고무지우개가 달린 아내의 노란색 연필, 그것이 어둠 속에 영원히 매몰되었듯이, 아내라는 존재는 폐기되었다.
내일이면 포장 이사 회사의 일꾼들이 와서 이 방을 통째로 커란 상자에 담아 내갈 것이다. 그러면 아내의 방은 없어진다.
아직 전세 기간이 몇 달이나 남았는데 왜 이사를 가세요? 요즘같이 전셋값이 치솟는 때에 복비까지 물어 가면서 이사를 가시려는거 보니 뭐 좋은 일이라도 있나 보죠? 주인이 물었을 때 내 머릿속에는 아무 대답도 떠오르지 않았다. 지금에서야 이유를 깨닫게 된다. 나는 아내가 이 방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일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알았으므로 떠나려는 것이었다.
아내의 방이 없어진다면 그녀를 기다리지 않을 수 있기라도 한단 말인가. 그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채로 그녀를 기다릴 수는 없다.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면 가장 먼저 할 일은 그녀를 저주하는 일일 것이다. 최소한 용서만이라도 하지 않도록 분노를 숫돌에 갈아 벼려야 한다. 아내를 위해 쓰여지리라고는 결코 생각지 못했던 녹슨 칼. 거기에서 음험한 검은 물이 천천히 배어 나와 회색 숫돌을 적시고 이윽고 땅으로 스며들어 흙을 물들이는 것을, 깨끗한 물을 끼얹은 숫돌 위에서 은색 칼날이 서서히 섬광을 드러내는 것을, 똑바로 지켜보아야 한다. 어떻게 그녀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천천히 창 쪽으로 다가간다. 걸음을 옮기자 방 안을 떠돌던 이상한 향기가 코 가까이로 따라와 스친다. 오래 전 닫힌 채로 망가져 버린 서랍 속의 방충제, 혹은 조화 위에 뿌려진 이국의 향수 냄새 같은. 아내의 냄새는 분명 아니다.
창가에는 아내의 안락의자가 놓여 있다. 책상을 뺀다면 이 방에 있는 유일한 가구이다. 아내는 이 의자에 웅크리고 낮잠을 자곤 했다. 의자 속이 깊숙해서 무덤처럼 편안하다고 했다. 다리를 가슴께로 끌어당긴 채 웅크리고 앉은 아내는 나뭇잎 뒷면에 몸을 둥글게 말고 숨어 있는 공벌레 같았다.
단단히 웅크린 그녀의 입구를 찾지 못해 진땀을 흘리던 밤들이 떠오른다. 우리는 부부야. 이건 자연스럽고 즐거운 일이라구, 하고 내가 말하면 그녀는 내 뺨에 입술을 갖다 대며 정말이야, 당신한테 잘해주고 싶어, 라고 속삭이면서도 몸은 여전히 차가웠다. 그녀의 마른 몸에 물기가 돌게 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그녀의 몸 한가운데 박혀 있는 입술산처럼 조금만 버튼을 참을성을 가지고 조심스럽게 만져 줘야 했다. 그런 다음 가까스로 열린 그녀의 몸 속으로 들어가면 아내는 내 어깨를 꼭 당겨 안으며 당신을 사랑해, 라고 기운없이 중얼거렸다. 그때마다 눈시울이 젖어 있었다. 그런 아내가 내게 무슨 짓을 했던가!
나는 좁은 방 안을 서성이기 시작한다. 온 방바닥을 내 발자국으로 덮어 버리려는 듯이 리놀륨 바닥을 꾹꾹 눌러 밟는다. 지난주에 나는 아내를 그곳에 버리고 왔다. 차마 죽여 버릴 수는 없다고 마음먹었으면서 그렇다고 죽이지 않은 것도 아니다.
나는 아내의 방을 나온다. 문고리로 손을 뻗다가 비로소 기분 나쁜 향기의 정체를 알게된다. 방문 안쪽에 걸려 있는 검붉은 화환장식, 그 속에 들어 있는 포푸리에서 나는 냄새였다. 영혼이 휘발돼 버린 뒤까지 살아 있을 때의 모습을 붙들고 있는 시간의 검은 그림자. 꽃의 박제.
방부제 향이 희미하게 떠 다니는 무덤, 나는 아내의 방을 나온다. 아내는 없다. 아내의 박제조차 이제는 여기 없다.

우리가 신도시로 이사를 온 것은 작년 삼월이다. 그 전에 우리는 유명한 불임 클리닉이 있는 강남의 아파트에 살았다. 신도시는 전셋값이 훨씬 쌌기 때문에 같은 돈으로 방 세 개짜리 아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자기의 방이 생겼다는 사실에 아내는 기뻐했다. 집도 깨끗하고 공기도 맑고, 무엇보다 기차가 지나다니는 걸 볼 수 있으니 좋다고 했다. 사실은 더 이상 불임 클리닉에 다니지 않게 된 것을 가장 기뻐하는 눈치였다. 어쨌든 신도시에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 즉 '변화'와 '삭막하지 않은 생활'이 있을 것 같았다.
처음에 아내는 새로운 생활에 대한 여러 가지 계획을 가졌다. 새로운 커튼, 새로운 관엽식물, 새로운 선반 등.
"커튼을 달아야 할 텐데 무슨 색이 좋을까요?"
아내가 불어 보았을 때 나는 텔레비전 리모컨을 눌러 채널을 바꾸는 중이었다. 화면에 한 무리의 댄스그룹이 사라지고 나처럼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남자가 나타났다. 남자의 등뒤로는 그가 앉은 패브릭 소파와 똑같은 장미꽃 무늬의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다.
나는 화면에 그대로 눈을 둔 채 턱만 아내 쪽으로 돌리고 말했다.
"글세. 장미꽃 무늬 어떨까?"
다시 리모컨을 누르니 어떤 사무실이었다. 나는 별 생각 없이 의견을 바꿨다.
"블라인드로 하면 어때? 깨끗해 보이는데."
"싫어요."
말꼬리에 힘이 들어가 있었으므로 나는 아내 쪽을 힐끗 쳐다보았다. 고개를 숙이고 사과를 깎고 있는 아내의 가느다란 뒷목이 눈에 들어올 뿐이었다. 나는 무심한 눈길을 다시 텔레비전으로 돌렸다. 한참 후에야 불현듯 깨달았다. 아내는 병원을 연상시키는 것은 뭐든지 싫어했다. 그러나 사과를 포크에 찍어 내게 건네주는 그녀의 표정은 평온했다. 우리는 다른 날처럼 과일을 먹으며 마감 뉴스로 눈을 주었다.
앵커의 입가가 금방이라도 너털웃음이 새어나올 듯이 올라갔다 싶었다. 거으 동시에 오른쪽 상단에 '반가운 단비'라는 글자가 올라왔다. 앵커는 계속 그 표정을 유지하며 그날 밤 열리는 국제 축구 대회에서 소나기골을 기대한다고 '비'를 물고 늘어졌다. 그러나 방송 원고를 읽기 위해 얼굴을 한 번 숙였다가 드는 짧은 순간 순발력 있는 앵커답게 심각한 낯빛으로 바뀌어 있었다. 오른쪽에 올라온 글씨는 '미, 3김 제거 작전'이었다. '정부는 최근, 80년 미국의 지시로 신현확씨가 주도한 '으로 시작되는 유창한 음성. 억양으로 보아서는 '작전' 내용보다는 '본사 독점으로 말씀드렸음'을 더 강조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바로 일 초 뒤에는 그 3김 중 하나인 대통령이 화면에 나왔다. 그는 중요한 용건이라도 있는 듯이 등장했지만 환경 대통령이 되겠다는 포부만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언'하고 그냥 들어갔다.
아내가 말했다. 내가 아는 대통령들은 셋 다 저런 억양으로 말했어요. 저 억양을 들으면 어쩐지 다 훌륭한 사람 같아. 나는 대꾸 대신 접시에 남은 마지막 사과살에 포크를 찍어 눌렀다.
다음 뉴스는 너구리와 소쩍새의 소식이었다. 그것들은 겨우내 사람의 보살핌을 받다가 봄이 되어 비무장지대로 돌려 보내지고 있었다. '야생 동물 보호'라는 글씨가 너구리의 주둥이 쪽 화면을 덮었다.
아내가 또 혼자말처럼 말했다. 기억이 확실한지는 모르겠는데, 야생 동물은 겨울에 산으로 돌려 보내야 한다는 걸 어디서 읽은 적이 있어요. 먹이가 없는 겨울에 버려져야만 자기가 야생 동물이란 사실에 빨리 적응한대요. 쥐를 죽였다가 기소될 뻔한 미국 남자 얘기는 어디서 봤더라? 며칠 전 해외 토픽에 났던가? 뒤뜰에서 토마토를 먹은 쥐를 죽였는데 동물보호협회에서 들고 일어났다나 봐요. 해를 끼친 동물은 보호 대상 동물에서 제외시킨다는 법안이 통과되어서 겨우 풀려났다던데.
쥐 죽인 일이야 쥐죽은듯하면 될 걸 갖고 그 호들갑을 떨다니, 참 하릴없이 배부른 나라야. 나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지만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증권 시황에 대한 뉴스가 시작되었으므로 거기에 시선을 고정시켰을 뿐이었다.
텔레비전을 끈 뒤 나는 시사 주간지를 들고 침대로 들어갔다. 아내는 과일 접시를 씻느라 조금 늦게 침대로 왔다. 아내의 손이 차가웠다. 나는 그녀의 두 손을 끌어다 내 잠옷 사타구니에 넣었다. 그녀가 조금 웃었다. 나는 아내를 사랑했다. 그녀에 대해서라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전문대 비서학과를 나왔지만 아내는 대학에서 뭘 배웠는지 거의 기억에 없다고 했다. 그녀는 원래 미술 대학을 지망했었다. 고3 겨울 그녀가 다니던 조그만 화실은 낡은 목조 건물 삼층에 있었는데 몹시 추웠다. 하지만 연탄 난로의 냄새 때문에 늘 창문을 조금 열어 두어야 했다. 그녀의 자리는 바로 그 창문 옆이었다. 오른쪽 뺨으로는 난로 위에서 끓어대는 커다란 주전자의 뜨거운 김을 쐬고, 왼쪽 뺨으로는 귓불을 얼리는 매서운 찬바람을 맞아 가며 그녀는 열심히 데생을 했다. 점점 연탄 가스의 냄새에도 익숙해져 갔다. 이따금 난로 위의 주전자에서 뜨거운 물을 따라 바람이 들이치는 창턱에 올려놓았다. 물은 몇 분 지나지 않아 알맞게 식었다. 그녀는 그 물로 두통약을 삼키곤 했다. 그해에도 대학 입시 날은 몹시 추웠다. 그녀의 어머니는 추위를 잘 타는 그녀를 위해 목이 올라오는 털스웨터를 떠서 입혔다. 뜨개질 솜씨가 신통치 않았던 어머니는 목 부분의 고무뜨기를 너무 촘촘하게 했다. 그날 처음 그 스웨터를 입으며 그녀는 목을 집어넣느라 얼마나 애를 먹었는지 모른다. 가까스로 스웨터를 입긴 했지만 누군가의 손이 억세게 목을 조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마치 한 방향만 쳐다보도록 고안된 스웨터처럼 목을 움직일 수조차 없었으며 피가 얼굴로 몰렸다. 그녀는 숨이 막혔어도 어머니는 흐뭇해했다.
수채화를 그릴 때쯤부터 그녀의 두통이 참을 수 없게 심해졌다. 귀에서는 끊임없이 흐르는 물 소리가 들려 왔다. 시험장 문 밖을 나서면 바로 복도 끝에 수돗가가 있었다. 수험생들은 그곳에서 양동이에 물을 받아와 옆에 놓고 붓을 씻어 가며 경직된 표정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물 소리는 복도에서 나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녀는 누군가가 수도꼭지를 잠그지 않은 거라고 생각했다. 시험 감독관에게 그녀는 말했다. 제가 가서 잠그고 오면 안 될까요. 감독관은 이상한 아이라는 표정을 구태여 감추지도 않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가서 수돗가를 향해 뛰었다. 수도꼭지는 단단히 잠겨져 있었다. 그녀는 돌아와 붓을 집어들었다. 그러나 물 소리는 계속해서 들려 왔다. 다시 허락을 받고 잠그러 가봤으나 또 누군가가 그녀보다 한 발 앞서 와서 수도꼭지를 잠근 뒤였다. 세 번째부터는 감독관의 허락도 받지 않고 복도로 나갔다. 허둥지둥 돌아와서 붓을 잡았지만 여전히 물 소리가 그녀의 뒤꼭지를 잡아당겼다. 목이 꽉 죈 스웨터 안에서 그녀는 안절부절못했다. 감독관은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이번에는 문가로 가더니 손잡이를 잡고 온 힘을 다해 잡아당겼다. 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감독관의 표정에는 이제 약간의 연민이 떠올라 있었다. 왜 그러지, 학생? 문이 열려 있어요. 문이 열렸다고? 감독관은 단단히 단속된 문을 쳐다보며 몇 번 눈을 껌벅이더니 다음 순간 깊은 이해심이 깃들인 표정을 짓고는 그녀의 어깨를 부드럽게 두드렸다. 자, 자, 긴장을 풀어요. 그녀는 감독관이 끄는 대로 순순히 자기의 이젤 앞으로 돌아가 붓을 쥐는가 싶었다. 그러나 갑자기 그것을 내던졌다. 그녀는 두 손으로 스웨터의 목을 쥐어뜯으며 소리쳤다. 물이 새잖아요! 제발 누가 저 수도꼭지 좀 잠가 주세요! 저 문 좀, 문 좀 닫아 주세요, 문! 문!
그녀는 그녀가 응시했던 대학의 부속 병원에서 깨어났다. 입시 강박증이라는 상식적이고 트집잡을 데 없는 진단이 내려졌으며 며칠 동안은 병원에서 절대 안정을 취해야 했다. 그곳에서 그녀는 언제나 자을 잤다. 신기하게도 약 먹을 시간이 되면 잠이 깼다. 깨어있는 시간에 하는 일이라고는 약을 먹는 일뿐이었다. 그러면 얼마 안 가 또 잠이 왔다.
그녀는 지은이의 이름은 잊었다며《벨 자(Bell Jar)》라는 소설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인간이 벨 소리에 의해 규칙적으로 약을 삼키기 위한 침을 분비하며 사육되는 폐쇄된 바구니.
아내는 그 일로 인해 자기 삶이 일그러진 점은 없다고 말했다. 그녀는 시시하다고 할 만큼 평범한 사람이었다. 전문대학을 졸업하고 조그만 오퍼상에 취직해서 전화 받는 일을 했고 그에 걸맞은 적은 월급을 받아 적금을 붓다가 나를 만나 결혼했다. 나는 모든 면에서 무난한 남편이었지만 음식에 관한 한 약간은 까탈스러웠다. 다양하고 새로운 반찬을 만들지는 못했어도 다행히 아내의 음식 솜씨는 얌전한 편이었다. 된장찌개는 불을 잘 조절했기 때문에 멸치의 비린 맛이나 된장 떫은 맛이 안 났다. 갈치를 구워도 그릴에 달라붙지 않고 바삭바삭하게 속가지 익혔으며 아내가 부친 달걀말이는 약한 불에 익혀서 부드럽고 단단하게 잘 말려 있었다. 아내는 정돈도 잘했다. 손톱깎이나 여분의 건전지, 옷솔과 드릴 따위를 늘 같은 자리에서 찾아 쓸 수 있었고 욕실에는 늘 고슬고슬한 수건이, 냉장고의 냉동실에는 반찬 냄새가 배지 않은 깨끗한 얼음이 있었다.
아내는 외출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집에 오는 것도 썩 반기지 않는 기색이었다. 나의 부모님은 내가 결혼하던 해에 형이 있는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 아내로서는 살림살이를 참견할 시댁 식구가 없는 것이 다행인 셈이었다. 배냇저고리를 사주었던 주책스러운 친구와 보험 외판을 한다는 또 한명의 고향친구가 이따금 들르는 것을 빼면 아내에게는 찾아오는 친구도 없었다. 지나치게 선량하고 적극적이어서 어떤 관계에서든 과장된 우정을 표현하는 사람, 혹은 뚜렷한 목적을 가진 사람만이 아내를 방문했던 것이다. 새 집에 이사를 온 뒤에는 그 친구들에게도 바뀐 전화번호를 알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혼자 있는 시간에 아내는 집안일을 하거나 신문과 잡지 따위를 뒤적였다. 자기 방의 독일식 책상에서 책을 읽는 일도 좋아했다. 아내는 꽤 많은 종류의 잡다한 책을 읽었다. 그러나 남들처럼 책을 통해 교양을 쌓고 정서를 함양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자기가 읽은 책의 내용을 극히 단편적으로만 기억했으며 자기 식대로 엉뚱하게 왜곡시켜 알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아내는 그것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벨 자》에 대해 얘기했을 때도 늘 그렇듯이 "내 기억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이라며 자신없어했다. 그녀는 다 읽은 책을 상자에 담아 두었다. 그녀는 기억들을 머릿속에 쌓아 두는 대신 상자에 담아서 뚜껑을 덮어 버리곤 했다. 그러고는 나머지 모든 시간에 잠을 잤다.
회사에서 낮에 집으로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 때가 많았다. 웬 잠이 그렇게 깊어?라고 물으면, 베란다에서 아파트 단지들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잠이 와요,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언제 봐도 단정한 아파트 단지의 창문들, 언제 봐도 그린 듯이 정확히 배치된 놀이터와 벤치와 나무와 주차 라인과 보도블록. 상가앞에 오가는 사람들도 언제 봐도 그렇게 정한 듯이 몇 명. 비슷한 비닐봉지, 비슷한 옷차림. 하늘도 언제 봐도 대충 그런 색의 지루한 안정의 빛이고 공기의 냄새 마저도 도식적이라고 아내는 말했다. 신도시에는 길이 없어요. 덩치가 큰 건물에 다 가로막혀 있어요. 신발을 신고 산책이나 하려고 나갔다가도 길이 다 끊어져 있어서 그냥 돌아와 버려요. 찻길밖에 없어요. 그러면서 그녀는 고층 건물사이의 찻길을 몇 번 건너갔다 오면 지치기 때문에 잠이 오는 거라는 주장도 했다.
아내의 잠은 이상할 만큼 깊었다. 그녀는 몸이 아플 때나 걱정거리가 있을 때, 심지어 화가 났을 때조차 잠을 잤다. 새 집에 이사오기 전 어느 일요일 나는 아내에게 좀 화를 낸 적이 있었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서 신문을 펼치는데 경제면이 잘려 나가고 없었다. 아내가 뒷면에 있는 기사를 보기 위해서 오렸다는 거였다. 내가 보지도 않은 신문을 오려 냈단 말야?라고 말하자 아내는 변명하려 했다. 사소한 일이라고 생각했는지 그다지 미안한 기색도 아니었다. 나는 그즈음 새로운 프로젝트의 팀장을 맡았기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다. 그때의 나에게는 아내의 언제나처럼 엉뚱하고 앞 뒤 안맞는 말을 들어주기 위해 참을성을 사용할 너그러움이 전혀 없었다. 듣기 싫어!라고 소리치자 아내는 놀라 입을 다물었다. 조금 후 일어나더니 말없이 청소기를 돌리기 시작했다. 나는 점퍼를 들고 밖으로 나와 버렸다.
집 앞 상가에 새로 생긴 미장원 간판이 눈에 띄었다. 마침 이발할 때가 되었으므로 거기 들어가 머리를 잘랐다. 기분이 풀린 나는 미장원 옆의 빵집에서 아내가 좋아하는 슈크림을 산 뒤 현관 벨을 눌렀다. 그러나 아내는 문을 열어 주지 않았다. 주머니를 뒤져 봤지만 열쇠는 양복 주머니에 들어 있었다. 할 수 없이 상가로 다시 나와 공중전화 부스로 들어갔다. 아내는 전화도 받지 않았다. 나는 한달음에 집으로 돌아왔다. 옆집 벨을 눌렀다. 그 집 베란다를 넘어타고 우리 집으로 들어가 봐야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그러나 막상 돌아가 보니 두 베란다 사이가 너무 넓어서 몹시 위험했다. 옆집의 전화를 빌려 다시 집으로 전화를 걸어 보았다. 벨이 울리는 소리보다 내 심장 두근대는 소리가 더 컸다. 숨소리를 따라 점퍼가 오르내리는 것이 보일 정도였다. 옆집 주인이 가져다 준 상가 정보지를 넘기며 열쇠집을 찾는 내 손도 부들부들 떨렸다. 열쇠공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전화통을 붙들고 집 전화번호를 계속 눌러댔다. 조금 후 오토바이 뒤에 연장통을 싣고 도착한 열쇠공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안에서 잠금 고리를 걸었기 때문에 열쇠가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옆집 주인이 점퍼 소매를 붙잡는 것도 뿌리치고 아내를 향한 위험하지만 유일한 비상구인 베란다로 달려나갔다. 그때 열쇠공이 현관문의 경첩을 부숴도 괜찮겠냐고 물어 주지 않았다면 나는 아내를 구하려는 격정을 이기지 못해 발을 헛디뎠을 것이고 그대로 팔층 베란다에서 아래로 떨어져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난리를 치른 뒤 폭파하듯이 문을 부수고 들어가 보니 아내는 소파에 웅크린 채 자고 있었다. 우리가 부순 문에서 불과 몇 발작 떨어지지 않은 자리였다.
아내가 그녀의 안락의자에 파묻혀 잠든 것을 보면 이따금 그때 생각이 났다. 뚜껑이 닫힌 상자들 곁에서 잠들어 있는 그녀의 모습. 그것은 자신을 상처 입힌 세상을 향해 빗장을 지르고 잠들어 버린 그때의 모습과 비슷했다.
어느 날 아침 아내는 비명을 질렀다.
"우리 집에서는 모든 게 말라 버려요!"
그녀의 손에 든 그릇 속에는 모래처럼 뻣뻣하게 마른 밥이 들어있었다. 간장 접시 좀 보세요. 과연 간장은 죄다 증발해 버리고 검게 물든 소금 알갱이뿐이었다. 사과도 하룻밤만 지나면 쪼글쪼글해져요. 시멘트 벽이 수분을 다 빨아들이나 봐요. 이러다가 나도 말라비틀어질 거예요. 자고 나면 내 몸에서 수분이 빠져 나가 몸이 삐그덕거리는 것 같다구요.
나는 실내 환기를 안 해서 습도가 낮아진 거라고 가볍게 아내를 나무라며 안심시켰다. 얼핏 생각이 떠오른 대로 수족관에 열대어를 키워 보면 어떻겠냐고 말해 보았다. 아내는 깜짝 놀랐다. 맞아요, 아파트 안이 건조해서 수족관의 물이 한 뼘씩 줄어든다는 뉴스를 텔레비전에서 봤어요. 시멘트 벽이 집 안의 온갖 물을 다 빨아들여요. 나중에는 수도관 속에 있는 물까지 빨아들일 거예요. 이건 벽이 아니라 흡반이에요. 토요일에 나는 가습기를 사서 들고 들어갔다. 아내는 포장조차 풀지 않았다. 병원에서만 쓰는 물건인 줄 아는 모양이군, 나는 못마땅했지만 그런 것을 일일이 맞춰 가며 살려고 하다보면 가정이란 피곤해지게 마련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으므로 그냥 내버려두었다. 아내는 늘 나로서는 아무 관심도 없는 소식을 진지한 말투로 전해 주기도 했다. 슈퍼 옆에 있는 유치원 말예요. 거기 자연 학습장에서 키우는 닭은 새벽에 울지 않고 매일 한 낮에 울어요. 슈퍼에서 나오는데 갑자기 꼬끼오, 소리가 나서 처음에는 깜짝 놀랐어요. 거기에다 제 나름의 논평까지 붙이곤 했다. 이제는 생태 환경이 달라져서 닭이 새벽에 울 필요가 없는 거죠. 요즘은 개하고 고양이도 사이좋게 지낸다잖아요. 그때마다 나는 시사 주간지나 마감 뉴스에 시선을 둔 채 고개를 두어 번 끄덕여 주었다.
우리의 삶은 그럭저럭 평온했다. 아내의 일상은 이사 오기 전과 똑같아졌다. 봄이 다 가도록 커튼 없이 지내고 있었지만 나는 아내에게 별다른 불만은 없었다. 그 무렵 비어 있던 옆집으로 그 여자가 이사를 왔다.
그날 퇴근해 들어오던 나는 난데없는 개 짖는 소리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옆집이 이사 들어왔어요."
아내가 설명해 주었다.
"남편은 외국 지사에 나가 있대요. 초등학교 다니는 아들 둘하고 세 식구래요."
개 짖는 소리는 그때가지도 그치지 않고 있었다.
"앞으로 꽤나 시끄럽겠는데."
아내는 내 양복을 받아 옷장 속에 걸었다. 그리고 서랍장 속에서 다림질된 면바지와 폴로 셔츠를 꺼내 주었다.
"당신이 들어올 때부터 저래요. 엘리베이터 소리가 날 때마다 짖는 것 같아요."
아내는 개 짖는 소리가 그다지 거슬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웃에 누가 이사 왔든, 그러니까 그것이 개이든 사람이든 시큰둥했다. 그러나 옆집에 한 번 다녀온 뒤부터 그 집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래층에서 반상회를 하거든요. 끝나고 나오는데 옆집 여자가 자기 집에 가서 차 한잔 하고 가라고 하더라구요. 그 집,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그래?"
"현관에서부터 그래요. 우산꽂이에다 편지꽂이, 열쇠 거는 고리 거실에도 소파는 소파대로 스툴과 흔들의자까지 있고, 코너장, 홈 바, 뭐가 뭔지 모르게 가구로 꽉 차 있어요. 보온밥통에가지 온갖 덮개를 씌워 놓았고 벽에도 빈 곳이 하나도 없더라구요. 등공예품, 빵꽃, 지점토 인형, 온갖 취미 강좌에 다 다녔나 봐요."
"집 꾸미기를 좋아하나 보지?"
나는 리모컨을 찾아 텔레비전을 켰다.
"성격이래요. 빈 곳이 있으면 허전해서 못 참는다나요."
"그래"
"벌써 수영이랑 마사지를 하러 다녀요. 자기가 집에 잘 안 있기 때문에 애들을 위해서 개를 키우는 거래요."
거기에서 아내는 말을 멈췄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한참 동안 손톱으로 소파 모서리를 꾹꾹 누르고만 있었다. 그런 다음 두 팔을 엇갈려 마치 방어하듯 자기의 가슴을 싸안더니 말했다.
"두 마리 다 아직 조그만 새끼예요."
"두 마리?"
"네."
자기 팔을 꽉 움켜잡았으므로 아내의 손마디가 불끈 튀어올랐다.
"난 지 사흘 만에 얻어 왔대요. 그것들을 긴 쇠줄에 묶어서 거실 문고리에 달아매 놨어요. 우유을 엎질렀다고 아이들이 벌을 주는 거래요. 그런데 둘이 꽁꽁 묶여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더라구요."
강아지들은 문고리에 함께 묶인 채로 어찌나 엉키며 장난을 쳤는지 서로의 줄이 새끼줄처럼 꼬여서 바로 목 위까지 당겨져 있더라고 했다. 쇠줄이 고여 제 목을 죄어 올 때까지 천진하게 장난을 쳤을 강아지들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나 아내의 눈가는 글썽해졌다.
"너무 좋아하다 보니 서로의 목을 죄게 된 거예요."
아내의 말에 따르면 두 마리가 아주 다르다고 했다. 한 마리는 털에 윤기가 나고 토실토실한데 한 마리는 비쩍 마른 게 털도 듬성듬성 빠져 있고 볼품이 없었다. 아내가 다가가자 토실토실한 강아지는 꼬리를 살살 흔들었지만 비쩍 마른 강아지는 비칠 한 걸음 물러나며 크앙, 하고 조그만 이빨을 드러내더라는 것이다. 그때 초등학교 오학년이라는 그 집 아들이 과자를 손에 들고 나왔다. 토실한 강아지가 고리를 흔들며 아들 쪽으로 한 걸음 옮겼다. 토실한 강아지와 목이 같이 묶인 비쩍 마른 강아지도 억지로 조금 딸려 갔다. 비쩍 마른 강아지는 아들이 싫은 듯 했다. 크왕, 하면서 다리를 버티고 가지 않으려고 해보았지만 쇠줄이 목을 파고들 뿐이었다.
과자는 토실한 강아지의 발치에만 떨어졌다. 토실한 강아지에 끌려 억지로 앞으로 들렸던 마른 강아지의 두 발이 앞으로 쏠리며 비틀거렸다. 마르고 더러운 강아지는 깨갱 소리를 내며 겨우 앞발을 버텼다. 그걸 본 옆집 아들은 아무것도 준 것 없이 마른 강아지를 발로 찼다. 그러고는 야, 먹고 살려면 성격부터 고쳐라, 앙? 하더니 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얘기를 다 한 다음 아내는 윗몸을 푹 꺾더니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이따금 아내는 그렇게 나를 당황하게 그리고 짜증나게 했다.
나는 아내를 달랬다.
"사내 녀석들은 다 그렇게 짓궂다구. 뭐 그런 일로 애들처럼 울어?"
"그게 아녜요."
"그럼 왜 그래? 강아지가 불쌍해서?"
아내는 도리질만 했다. 조금 후에는 마음이 진정된 듯 저녁상을 차리러 일어났다.
그날 밤 침대에서 아내는 내 잠옷 속으로 손을 집어 넣었다. 아내의 손은 배를 스쳐 올라오더니 젖꼭지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내 몸이 뜨거워졌다. 젖꼭지가 꼿꼿해지는 동시에 다리 사이가 묵직하게 일어났다. 나는 보고 있던 시사 주간지를 가볍게 침대 아래로 던졌다.
늘 그렇듯이 아내의 몸은 차가웠다. 내 목을 감고 있는 팔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지만 아랫도리는 마치 자기의 것이 아닌 듯 부자연스러웠다. 내 손이 아랫도리에 닿자마자 그녀는 다급하게 속삭였다. 사랑해요, 여보. 그녀는 눈을 감고 있었다. 그녀의 젖은 속눈썹은 몇 올씩 엉긴 채로 움찔거렸다. 그녀는 계속 눈을 감고는 들어와요, 어서, 라고 말했다. 아내의 피부는 부드러웠지만 갑옷을 입은 것처럼 열기가 힘들었다. 그날은 입술산 같은 작은 버튼조차도 그녀의 깊은 샘물을 길어 올리지 못했다. 그녀는 고통을 참으며 나를 받아들여야 했다. 그렇지만 막상 들어가 보면 그녀의 몸은 아주 따뜻했다. 내가 만족하는 것을 보고 그녀는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내가 욕실에서 돌아오자 그녀는 갑자기 물었다.
"당신, 사실은 아이 포기 안 했죠?"
우리는 아이에 관한 화제를 의도적으로 피해 왔다. 더구나 아내가 제 입으로 꺼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녀는 불임 클리닉에 시간을 잘 맞춰 다녔고 거기에서 시키는 대로 했다. 나는 아내가 아이를 원하는지 원치 않는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 질문을 나 자신에게조차 심각하게 해보지도 않았다. 나는 단지 인생은 필요한 것을 갖춰 나가며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왜 애가 안 생기는지 생각해 봤어요."
아내는 천장을 노려보며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나는 알아요."
전문 클리닉에서도 알아내지 못한 것을 그녀가 알았다는 말인가. 나는 말없이 침대로 돌아가 그녀 곁에 누웠다. 그녀는 십 년도 넘은 옛날에 보았다는 미국 영화 이야기를 꺼냈다. 으레 그렇듯이 '내 기억이 확실한지는 모르지만'이라는 말로 시작되는 그녀의 이야기는 이런 내용이었다.
한 가족이 있다. 아버지는 떠돌이었다. 그러므로 억척스런 어머니가 세 개구쟁이들을 갖은 욕을 퍼부으며 혼자 키운다. 어느 날 어머니가 죽는다. 아이들은 복지 시설에 맡겨진다. 소식을 들은 아버지가 아이들을 찾으러 온다. 그러나 알다시피 그는 무직자에다가 짐작하다시피 주정뱅이이다. 건전하고 깨끗한 복지 시설의 직원은 아버지를 예의바르게 멸시한다. 아이들의 복지를 위해서는 그들을 고아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버지는 아이들을 사랑했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그 유쾌한 자유까지도 기꺼이 포기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싸운다. 그러나 원래 규격에 맞지 않는 사람은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싸움에 진 뒤 자기를 개조하려는 아버지의 노력이 시작된다. 번번이 쫓겨나지만 그래도 다시 직장을 구하러 나선다. 천신만고 끝에 구김 없는 넥타이를 매고 복지 시설을 찾아온 아버지. 그러나 아이들은 뿔뿔이 흩어져서 소식을 알 수 없다는 통고만이 기다리고 있다. 아버지는 미칠 것만 같다. 온갖 서류를 뒤지고 온갖 사람에게 굽실거리고 온갖 복지 시설과 온갖 입양 가정을 돌아다니다. 그 모든 천신만고를 헤치고 드디어 아이들을 찾은 아버지. 그러나 아버지는 너무 늦게 도착했다. 아이들 역시 아버지에게로 가기 위해 끊임없이 규격 밖으로 도망치려 했었다. 그 결과 한 아이는 양부모에게 맞아 죽었고 한 아이는 자폐증에 걸렸다.
"그리고 한 아이는 소년원에서 거세당했어요."
"끔찍한 얘기군."
나는 건성으로 한마디 거들어 주었다. 끔찍한 것은 끔찍한 것이고, 그 얘기가 아내의 불임과 무슨 관련이 있다는 것인지. 나는 일어나 담배를 피워 물었다. 눈으로는 조금 전 집어 던졌던 시사 주간지를 찾으면서. 그런 나를 향해 갑자기 아내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거세당한 거예요."
담배 연기 때문에 아내는 눈을 깜박거렸다.
"소년원에서 거세를 시키는 건 범법자의 대를 끊어 버리려는 거잖아요. 나도 피가 나쁘기 때문에 애를 낳지 못하도록 거세당한 거예요."
"소년원에서 말야?"
내 입에서는 기어코 이죽거리는 말이 튀어나왔다. 아내는 말을 조리 있게 혹은 길게 할 만큼 논리적이지 못했다. 그렇지만 설명하려고 애썼다.
"그게 아니구요. 나 같은 사람은 선택 이론에 의해서 도태되게 되어 있어요. 책에서 본 적이 있어요. 우성만 유전되고 열성은 도태되는 게 진화잖아요."
나는 그녀가 조금 안쓰러워졌다. 손을 뻗어 그녀의 젖가슴을 만졌다. 그러나 그녀는 내 손을 밀쳐 내더니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러고는 그녀의 입에서 나올 성싶지 않은 과격한 말을 내뱉었다.
"옆집 개 말예요. 그 더러운 개새끼는 곧 굶어죽을 거예요. 죽는 날까지 토실토실한 개한테 가까이 달라붙겠죠. 뻔뻔스럽게도 그 개가 크는 것까지 가로막으면서 말이죠. 빨리 죽어 주면 좀 좋아. 개들은 왜 자살 같은 걸 안 하나 몰라."
한참 숨을 고르는가 싶더니 그녀는 조용히 일어나 욕실로 갔다. 마치 몽유병자가 창턱을 밟는 듯한 정확하고도 허전한 걸음걸이였다. 조금 후에 돌아왔을 때는 눈자위가 빨개져 있었다. 상자 속에 담아 덮어 버리는데도 아직 그녀의 머릿속에는 쓸데없는 생각이 많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나는 처음으로 심각하게 생각해 보았다. 어쩌면 아내의 삶에 무언가 다른 것이 더 필요하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 경박해 보이는 옆집 여자가 아내를 조금씩 변화시키는 일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옆집 여자는 차를 가지고 있었다. 아내는 말처럼 걸을 만한 흙길은 없고 찻길만 있는 신도시에서 그것은, 한 번 더 아내의 잡학 용어를 빌리자면, '우성'임을 뜻했다. 그 여자의 차에 실려 아내는 백화점이나 대형 할인점에 따라다녔다. 기찻길 옆에 있는 칼국수집이나 지하의 쌈밥집에서 점심을 먹기도 하면서. 날씨가 좋아지자 주말농장인지에 다닌다고 부쩍 교외로 돌아다니는 눈치였다. 어떤 토요일인가는 야근을 마치고 돌아온 나보다 더 늦게 집에 도착한 적도 있었다.
나는 일요일을 격주로 쉬었다. 아내는 내가 집에 있는 일요일까지도 새 백화점이 오픈이라며 옆집 여자를 따라 나가더니 그리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갖고 들어왔다. 나는 포푸리 화환을 보고 은근히 놀랐다. 그것은 필요하지 않기도 하려니와 한시적인 유행, 조악한 모조품, 특히 노골적인 향기를 내뿜는다는 점에서 아내의 취향과는 거리가 있었다. 아내는 그 포푸리가 옆집 여자의 선물이라고 말했다.
"그 여자가 왜 당신한테 선물을 준다는 거지?"
내 눈앞에는 먼발치에서 보기에도 유난히 화장이 짙던 옆집 여자의 모습이 스쳐 갔다. 내 차보다 한 등급 위인 그 여자의 중형차도 떠올랐다.
"그냥요."
나의 이죽거리는 물음에 반해 아내의 대답은 순진하고 명료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로 아무 기대를 함축하지 않은 선물이란 없었다. 나는 다시 물었다.
"차를 얻어타고 신세를 지는 건 당신이잖아. 선물을 한다면 당신이 해야지 왜 그 여자가 해?"
포푸리를 만지작거리고 있던 아내는 그것을 들고 일어났다.
"나를 좋아해서 그냥 선물한 거라니까요. 그럴 수도 있잖아요."
"좋아한다구?"
"그래요."
"왜?"
아내는 입술을 깨물었다. 아무 대답 없이 포푸리를 손에 든 채 자기의 방을 향해 몇 걸음 옮기더니 갑자기 돌아섰다. 그리고 쏘아붙였다.
"외로우니까요."
너무 필사적으로 말했기 때문에 나는 어이가 없어졌다. 아내는 대답이라도 기다리는 사람처럼 그대로 서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당신도 그래? 외롭다고 생각해?"
"아뇨."
아내의 시큰둥한 대답은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튀어나왔다. 그런 다음 자기의 방에 포푸리를 걸고 나와서는 무언가를 시위하는 듯한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감자를 꺼내 깎기 시작했다.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걸까. 나는 아내의 기분을 다는 몰랐지만 어쨌든 아내에게 아직도 어떤 것이 더 필요한 것만은 느낄 수 있었다.
다음날은 월요일인데다 비가 왔다. 막히는 차 안에서 나는 아내에게 무엇을 더 해줄 수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불임 클리닉으로 전화를 걸어 진료 예약을 했다. 집으로도 전화를 했다. 아내는 전화를 받았다. 그녀는 조그맣게, 알았어요,라고만 했을 뿐 화를 내거나 거부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나는 그녀를 위해 보편적이고 바람직한 처방을 찾아낸 데 대해 스스로 만족했다.
클리닉에 가는 날 회사에 월차를 냈다. 평소보다 두 시간쯤 늦게 집을 나섰다. 나들이 기분이 나는 싱그러운 오월 날씨였다. 연초록으로 덮인 작은 산에는 희고 붉은 꽃들이 피어 있었고 햇살이 투명했다. 그 길은 나의 출근길이었지만 출근 시간대에는 느끼지 못했던 유혹이 깃들여 있었다.
갑자기 옆 차선으로 달려온 흰색의 신형 스포츠카가 내 차 앞으로 끼어들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브레이크를 밟는데 그 순간 역시 같은 자리에 빨간색 스포츠카가 한 대가 더 튀어 나왔다. 두 차 모두 이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발랄한 차림의 젊은이가 운전을 하고 있었다. 각각의 조수석에는 역시 젊고 발랄하기로 내기를 한 듯한 젊은 여자들이 앉았다. 그들은 마치 숨박꼭질을 하듯이 차선을 질러 가며 지그재그로 운전을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두차선을 점령한 채 나란히 속도를 낮추는 것이었다.
먼저 빨간 차의 창문이 열렸다. 그 안에서 연보라색 블라우스 소매가 불쑥 나왔다. 여자의 긴 머리카락 한 줌이 차창 밖으로 빠져나와 바람에 나폴댔다. 여자는 하얀 차를 향해 뭔가를 던지는 것 같았다. 이번에는 하얀 차의 창문이 열렸다. 거기에서 뻗어 나온것도 반팔 스웨터를 입은 여자의 팔이었다. 팔이 드러났으므로 그 여자가 손에 쥐고 있는 물건이 조금 보였다. 그 여자 역시 그것을 빨간 차에 대고 쏘았다. 물총이었다. 남자들은 앞서거니뒤서거니 하면서 차를 갖고 장난을 쳤고 여자들은 차창 밖으로 한 팔을 내놓았다가 다음 순간 얼굴을 돌리고 움츠렸다가 하면서 물총 장난을 하고 있었다. 네 사람 다 죽을 만큼 깔깔댔다. 차 지붕 위에는 아직도 스키 캐리어가 그대로 붙어 있었지만 보나마나 트렁크 안에는 캔맥주와 과일이 든 아이스박스, 그리고 접는 피크닉 테이블 따위가 들어 있을 것이다.
그 길의 전혀 예상치 못했던 깜찍한 소용에 대해 솔직히 나는 약간 놀랐다. 그들의 차는 다음 신호등에서 좌회전을 받아 갈라져 나갔다. 지리한 회색 포장 도로로 직진하는 나와 달리 그들은 풀이 북슬북슬한 방둑길로 접어들었다. 그러고는 연녹색 산 속의 오솔길 뒤로 사라져 버렸다. 그들이 사라진 하얀 길은 알맞게 구부러졌고 꽃이 만발해 있었다.
옆자리를 보니 아내도 그 스포츠카들이 사라진 오솔길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길이 눈앞에서 완전히 사라지도록 내내 고개를 뒤로 잔뜩 돌리고 쳐다보았다.
"저 길로 한번 가보고 싶어요."
아내의 목소리는 꽉 잠겨 나왔다. 마치 선택된 사람에게만 열려 있다가 그 계절이 지나면 사라져 버리는 환상의 길 같다는 말도 했다. 나는 아내를 힐끗 쳐다보았다.
"언제 일요일에 한번 나오지."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아내는 바로 대답했다.
"봄이 가기 전에요."
"알았어."
한참 후에 아내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 길을 볼 때마다 가보고 싶었어요."
"여기로 나와 본 적이 있단 말야?"
"가끔요. 저쪽으로 조금 들어가면 중남미문화원이란 곳도 있어요."
그러나 아내는 문화원 안으로는 들어가 보지 못했다고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옆집 여자는 그런 곳에는 관심이 없는 모양이었다. 문화원을 지나면 보광사라는 절이 있는데 그 절 앞의 식당에서 산채비빔밥을 먹고 광탄이라는 곳으로 넘어가서 인공 연못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기만 한다는 것이었다. 옆집 여자와 둘이서만 갔냐고 물어 볼까 망설이는 사이에 아내는 불쑥 다른 말을 했다.
"교외 카페에는 나이 든 여자들이 많아요."
내 머릿속에는 계속 같은 질문이 맴돌고 있었다.
"휴대 전화로 집에 전화를 해서 숙제 안 한다고 아이들을 야단치고, 읽은 책 이야기도 하고, 헬스클럽이나 귀고리에 관한 이야기를 해요. 누구는 제사가 많다. 어떤 달은 세 번이라서 모임에도 잘 못나온다, 누구는 상가 시세가 올라서 돈을 벌었다, 아무개 교수의 교양 강좌가 좋더라, 듣고 울었다, 그런 얘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거예요."
나는 아내를 탐탁잖은 눈으로 힐끗 보았다. 뜻밖에도 아내의 표정은 쓸쓸했다.
"얼마 전에 옆집 여자가 백화점 주차장에서 어떤 남자 차를 받은 적이 있어요. 차가 꽤 긁혔는데 자꾸만 괜찮다고 그냥 가라는 거예요. 옆집 여자가 미안하다고 그 남자한테 점심을 사기로 했는데 같이 가자고 하더라구요. 옆집 여자는 그 남자를 몇 번 더 만났어요. 자기 인생 문제를 관심 있게 들어준대요."
아내는 아까보다 훨씬 더 쓸쓸한 얼굴이 되었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속된 호기심을 차단하기 위해 꽤 많은 의지가 필요했다. 서울에 다 와서 생각해 보니 그렇게 많은 의지가 필요했던 것은 차단해야 할 것이 호기심이 아니라 의심이었기 때문이었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동안 아내는 말이 없었다. 이름이 불려지자 초등학교 학생처럼 얌전히 대답을 한 다음 일어나서 진료실 문 쪽으로 다가갔다. 아내는 문 앞에서 발을 멈추고 아주 짧은 순간 나를 돌아보았다. 무력하고도 간절한 눈빛이었다. 그제서야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담배를 끄고 일어나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마셨다.
아내의 배란기에 나는 되도록 일찍 퇴근했다. 그녀는 힘든 눈치였지만 클리닉의 지시와 내가 주는 정자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어느 날 나는 침대에서 그녀의 눈시울이 더 이상 젖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언제부터인지 내 목을 꼭 껴안지도 않았다. 대신 샤워를 안 했다든지 감기에 걸렸다든지 하는 핑계를 대며 피하는 일은 없어졌다. 내 허리의 움직임에 아찔한 가속도가 붙는 순간 갑자기 가슴을 밀치며 "잠깐만요" 하면서 입덧을 하는 임부처럼 욕실로 뛰어 가는 일도 이제는 물론 없었다. 나는 어떤 방식으로든 아내가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고 해석했다.
가을 인사 때 부서가 바뀐 뒤로 나는 회사일이 더욱 바빠졌다. 아내의 배란기를 빼고는 일찍 들어와 아내와 시간을 보낼 기회도 적어졌다. 그러다 보니 아내를 안고 싶은 욕망도 그때에 맞춰 규칙적으로 생겨났다. 나는 무엇에든 잘 적응하는 편이었으며 그러니까, 상식적인 사람이었다.
아내도 그럭저럭 적응하고 있었다. 이제는 옆집 여자의 차를 자주 타지도 않은 듯했다. 더욱이 가을로 접어들 무렵 남편이 다시 서울 본사로 발령을 받아 돌아온 뒤로는 옆집 여자도 그 전처럼 외출이 잦지도 않다고 했다. 그 집에서는 개 짖는 소리가 사라진 대신 이따금 한밤중에 고함소리나 뭔가 둔중한 것이 집 안을 흔드는 소리 따위가 새어나왔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일곱 시 십 분이면 어김없이 옆집 여자가 남편을 지하철역까지 태워다 주는 광경을 먼발치로 볼 수 있었다.
아내는 말수가 적어졌다. 말 자체를 거의 안 했기 때문에 엉뚱한 말을 하는 일도 없어졌다. 집 안은 더욱 깨끗해지고 언제나 조용했다. 아내는 다시 독일식 책상에서 잡다한 책들을 읽고 안락의자에 웅크리고 잠을 자며 시간을 보내는 모양이었다. 책을 담아 두는 상자가 거의 늘어나지 않길래 물었더니 이제는 책을 사지 않고 상가의 대여점에서 빌려 본다고 했다. 그러나 아내 앞으로 배달돼 오던 《지오》나 《리더스 다이제스트》같은 잡지가 포장도 뜯지 않은 채 쌓여 있는 것을 보면 아마 아내는 잠이 늘어난 것 같았다.
평온한 나날이 계속되었다. 바쁜 만큼 나에 대한 회사의 신임은 날로 두터워졌다. 조직 사회라는 곳에서 힘든 일이 전혀 없지는 않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사소한 일이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보면 모든 것이 제자리에 준비되어 있었다. 아내까지도.
한동안 밤마다 걸려 오는 장난 전화에 시달리다 못해 아내가 전화선을 가위로 싹둑싹둑 잘라 버린 일, 배냇저고리를 사주었던 아내의 친구가 모처럼 찾아오며 사왔다는 장식 양초에서 불이 옮겨붙어 벽에 걸었던 우리의 결혼 사진이 타버린 일, 누군가 내 차와 옆집 차를 포함한 다섯 대의 타이어에 드릴 구멍을 내고 도망친 사건이 일어나 그때 광대뼈가 튀어나온 옆집 남자와 처음 인사를 나눈일 등 몇 가지 일이 일어났지만 큰 사건은 아니었다. 옆집 남자는 신도시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유럽 같은 오래된 나라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죠. 인공 호수도 그렇고, 아무튼 대단해요. 남자가, 신도시에 살기 어떠십니까,하고 물었을 때 나는 조용해서 좋더군요,라고만 대답했다.
그런 일들말고 그래도 좀 큰일이라면 아내가 화상을 입은 사건일 것이다. 아내는 레인지 위에 있는 뜨거운 주전자를 옮기다가 주전자 주둥이에서 끓는 물이 흘러내리는 바람에 옆구리를 데었다. 위험한 화상은 아니었지만 살갗이 벗겨진 자리에 며칠 동안 진물이 흘렀기 때문에 배란기인데도 나는 아내의 곁에 가지 못했다. 아내의 화상은 곧 아물었다. 아내가 꺼내 준 바바리 코트를 입고 출근하던 날 나는 신호 대기에 걸려 차를 세우고 기다리다가 불현 듯 가을이 깊어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니 봄이 지나가 버린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은 다시 봄이다. 봄이 다 가기 전에 함께 가보자고 약속했던 그 길. 지난주에 나와 아내는 그 길 옆을 지나쳤다. 작년과 똑같이 연녹색 잎과 희고 붉은 꽃들로 덮여 있었다. 나는 시계를 자주 그때마다 그런 자신에게 당황했다. 나와 달리 아내는 한 시간뒤면 우리가 헤어진다는 것을 잊기 위해 그다지 애쓰는 것 같지 않았다.
우리에게 지난 겨울은 무척 힘이 들었다. 그날 밤, 무섭게 조용하던 십일월의 밤 이후 아내는 몹시 수척해졌다. 안락의자 속에 공벌레처럼 웅크리고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면 공의 지름이 점점 작아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녀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십일월 마지막 밤은 바람이 몹시 불고 간간이 비가 뿌리는 음산한 날씨였다. 아홉 시쯤 퇴근한 나는 벨을 여러 번 눌러도 기척이 없자 열쇠로 문을 따고 들어왔다. 들어와서는 아내의 방문부터 열어 보았다. 그러나 그녀의 안락의자는 비어 있었다. 전등이 하나도 켜져 있지 않아 집 안은 깊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아내는 어두워지기 전에 외출한 모양이었다. 부엌에 가보니 저녁을 지은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흔치 않은 일이긴 했지만 나는 곧 이해했다. 아내에게라고 해서 갑작스러운 일이 생기지 말란 법은 없으니까. 나는 다른 날처럼 옷을 갈아입고 욕실에서 손을 씻은 다음 텔레비전을 켰다. 아내는 금방 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또 생각보다 좀 늦더라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내는 열한 시가 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열 시가 넘으면서부터 나는 몇 번인가 베란다로 나가 밖을 내다보았다. 열한 시가 되자 베란다에 서서 십 분을 기다렸다. 베란다 철책에 비벼 끈 담배만도 세 대나 되었다. 그제서야 어딘가로 연락을 해서 아내를 찾아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어디로? 나는 또 담배에 불을 붙였다. 아내가 어딘가로 가버렸다는 사실 못지않게, 그런데도 아내를 찾을 전화번호 하나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더 큰 당혹감이 느껴졌다. 아내의 방에 들어가 보았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너무 잘 정리되어 그것들은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았다. 독일식 책상 위에는 메모지 하나 없이 꽁무니에 지우개가 달린 노란 연필뿐이었다. 아내는 책을 펴기 전에 언제나 저 연필을 찾았다. 연필을 손에 쥐어야만 내용이 머릿속에 잘 들어온다고 말했다. 나는 아내가 그 연필로 무엇을 쓰는 것은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연필은 키가 아주 작아져 있었다. 아내의 상자들도 단정했다. 큰 것은 큰 것끼리 작은 것은 작은 것끼리 네 귀퉁이를 맞추고 쌓여 있었다. 다른 날과 다른 거라고는 아내답지 않게 상자 위에 먼지가 조금 있다는 점 정도였다. 부엌이나 욕실, 안방, 내 책상이 있는 방, 그 어디에도 눈에 거슬리는 특별한 것은 없었다. 그러니까 이 집 안에 아내라는 여자의 내면을 알 만한 것은 전혀 없는 것이었다. 이 집 안은 그녀가 아닌 어떤 여자가 들어와 당장 살기 시작해도 이상한 점이 조금도 없을 만큼 표준적이었다. 안주인의 냄새가 없었다. 아내와 나는 살을 맞대고 오 년을 함께 살아왔다. 그런데 아내가 사라졌는데도 그녀가 간 방향을 찾아 한발도 내디딜 수 없다면 우리가 함께한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대체 나는 무엇을 근거로 아내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다고 생각해왔던 걸까.
신발을 신고 집 밖으로 나갔다. 아내의 귀가 경로에 대해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아파트 앞 주차장까지 뿐이었다. 시간이 늦어 주차장에는 빈자리가 거의 없었다. 나는 화단에 쪼그리고 앉았다. 가는 비가 뿌려서 어깨가 차가웠지만 들어가서 우산ㄴ을 들고 나올 생각도 들지 않았다. 차 한 대가 들어오고 있었다. 뿌연 헤드라이트 불빛에 비쳐서 빗줄기의 가는 빗금이 드러났다. 차에서 내린 것은 옆집 남자였다. 빗속에 어정쩡하게 서 있는 사람이 나라는 것을 알아보고는 "왜 여기 서 계십니까"라고 인사를 건넸다. 나는 "아, 예"라고 얼버무리고는 한 걸음 비껴 서려 했다. 그러나 마침 운전석에서 내리는 옆집 여자를 보자 내 얼굴은 스트로보가 터지듯 갑자기 밝아졌다. 나의 반가움과 달리 여자는 내가 가까이 가자 경계하며 시선을 피했다. "저, 집사람이 아직 안 들어왔는데 혹시 "라고 말을 붙이는데도 주춤거리며 남편 쪽을 힐끗 쳐다본 다음 등을 돌리고 그냥 가버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무례하고 부자연스러운 몸짓 속에서 여자가 틀림없이 뭔가 할 말을 가지고 다시 찾아오리라는 것을 눈치챘다. 나는 그들 뒤로 몇 발짝 떨어져 집으로 돌아와서 여자를 기다렸다.
여자는 오 분쯤 후에 왔다. 여자가 자기 집의 현관문을 조금 열어놓고 받침쇠로 고정시키는걸 보고 나도 우리 집 문을 똑같이 했다. 여자는 조금 전과 달리 아내를 무척 걱정하고 있었다. 한밤중에 남자 혼자 있는 옆집에 가야만 하는 긴급 상황임을 남편에게 설명하기 위헤서라도 그런 표정은 필요했을 것이다. 우리 집 소파에 앉아 여자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잘 아는 번호인 듯 숫자판을 누르는 손가락이 빨랐다. 휴대 전화인 것 같았다. 여러 번 같은 번호를 눌렀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다시 십 분이 지나갔다. 여자는 일어났다. 이제 남은 일은 경찰서와 병원 응급실에 연락을 해보는 일뿐인 듯했다. 공공 기관의 기록철에 들어갈 만큼 공식적인 사건으로 커지지 않고 사소한 개인적인 일로 그칠 기회는 여기에서 끝인가. 친구 집에 갔다가 차가 끊겼다든지 책을 사러 광화문의 대형 서점에 나갔다가 내친김에 영화까지 보고 들어온다든지, 하다못해 집에 오는 버스 속에서 잠이 들어 버려 지금 종점에서 돌아오고 있다든지 그렇게 끝나 주면 얼마나 좋을까.
절망 때문에 나는 여자가 하는 말을 처음에는 잘 알아듣지 못했다. 여자는 현관에서 신발을 꿰다 말고 갑자기 버팀쇠를 발로 올려 반쯤 열려 있던 현관문을 닫아 버린 뒤 내개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제 남편 귀에는 안 들어가게 해주세요.
네? 뭐라구요? 내가 되묻자 여자는 말했다. 아파트 정문으로 나가서 좌회전하면 순환로가 나오잖아요. 그 길로 쭉 따라서 서너 블록 가다 보면 다리가 있어요. 다리 너머 우회전해서 계속 가세요. 오른쪽으로 크게 '그린 파크'라는 간판이 보일 거예요. 삼층 끝방이에요. 근처에 카페도 많고 다른 모텔도 많으니까 찾기는 쉬워요. 나는 구조대를 만난 조난자처럼 그녀의 설명을 열심히 들었다. 고맙습니다, 라고 말하자 그녀는 불안한 눈으로 남편에게는 지금 자기가 한 말을 비밀로 해달라고 다시 한 번 당부했다. 마치 거래를 하는 듯한 말투였다. 아내를 찾으러 갈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안심이 된 나는 여부가 있냐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는 현관문의 손잡이를 잡은 채 한 번 더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이런 말을 했다. 다 제 잘못이에요. 여자의 눈빛은 몹시 흔들렸다. 깊은 두려움과 번민이 어려 있었는데 남을 위한 것이라기에는 지나치게 비장했다. 순간 나는 '파크'라는 말이 가진 수상한 어감을 깨달았다. 나는 여자의 어깨를 억세게 움켜잡았다. 내 손톱이 옷을 파고들어 빗장뼈에 닿았는데도 여자는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순환로는 무섭도록 어둡고 조용했다. 이따금 건너편에서 질주해 오는 자동차의 불빛으로 젖은 도로가 언뜻언뜻 드러났다.
여자의 말대로 찾기 쉬운 장소였다. 검은 허공에 높이 걸린 붉은 온천 마크가 마치 소의 엉덩이를 가지기 위해 벌겋게 달군 인두 도장 같았다. 나는 어금니를 물었다. 그것을 떼어 내서 그대로 아내의 흰 젖가슴에 지져 주홍 글씨를 새겨 버리고 싶었다. 내 손 안에서 사이드 브레이크가 빠지직 소리를 내며 당겨졌다.
여자의 설명으로는 삼층 끝방은 그 모텔의 특실이라고 했다. 자기도 아는 어떤 사람이 특정한 요일에 빌리곤 했던 방이라는 것이다. 여자는 자기가 사용했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새댁은 차도 없고 워낙 외진 곳인데 이 시간까지 안 들어왔다니 저도 걱정이 돼서 알려 드리는 거예요. 다 제 잘못이에요. 제 얼굴을 봐서 한번 나갔던 건데 하도 전화질을 해대니까 오죽하면 새댁이 전화선까지 잘라 버렸겠어요 그리고 저 혹시 모르니까 지하 레스토랑으로 먼저 가보세요. 아직 거기 있을지도 몰라요. 새댁은 그럴 사람이 아녜요,라는 따위의 말만 했다. 물론 나는 지하 레스토랑에 들러 보지 않고 곧바로 계단을 올라갔다.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방 안은 어두웠다. 정규 방송이 끝나 지글거리고 있는 텔레비전 화면이 달빛처럼 부옇게 침대로 비쳐들었다. 그 침대에 아내는 혼자 잠들어 있었다. 나는 아내 곁으로 다가갔다. 베개에 긴 머리를 탐스럽게 흩뜨리고 혼곤히 잠들어 있는 아내으 하얀 옆 얼굴.
시트를 젖혀 보니 그녀는 알몸이었다. 유리로 된 천장 너머에서 어둠이 납작 엎드린 채 그녀의 벗은 몸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무섭게 몸을 떨더니 아내는 그대로 앓아누웠다. 지독한 감기였다. 며칠 동안 운신을 못하고 누워만 있었다. 물 한 방울 넘기지 않는 것 같았지만 나는 내버려두었다. 얼마쯤 나은 뒤부터 그녀는 다시 청소와 빨래를 시작했다. 너무나 여위어서 미라 같았다. 나는 새벽 헬스클럽과 외국어 학원의 야간 강좌에 등록을 했다. 늦은 밤에 열쇠로 문을 따고 들어가면 집 안은 환하게 불이 밝혀진 채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갑자기 부엌이나 자기의 방 쪽에서 마치 혼백이 떠돌 듯이 소리 없이 나타나면 그때마다 나는 그녀가 아직 살아 있다는 데 분노했다. 뻔뻔스럽게도! 왜 자살 같은 걸 안 하나 몰라, 하고 그녀 자신이 개에게 뱉었던 말을 떠올리기도 했다.
우리는 거의 얘기를 나누지 않았다. 그 동안 내가 저 여자의 무엇을 안다고 생각해 왔을까. 나는 그녀를 중오했다. 그날 밤의 일에 대해서 자세히 알기를 피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마다 나 자신까지도 증오했다. 아내의 잠은 더 깊어졌다. 이젠 약을 먹고 자는 게 아닐까 싶은 정도였지만 나는 모르는 척했다. 이따금 나는 유배지 같은 아내의 방 문틈에 귀를 대고 어둠 속에서 혼자 깊이 잠든 그녀의 숨소리를 듣곤 했다. 숨소리는 끊어질 듯하다가도 이어졌다. 나는 그곳으로 빛과 공기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문틈을 다 종이로 발라 버리고 싶었다. 그 위에 파라핀을 덧칠해서 봉인해 버리고 싶었다.
딱 한 번 그녀의 모습을 오랫동안 쳐다본 일이 있었다. 그날도 나는 밤늦게 들어왔다. 아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안락의자에서 자고 있을 것이었다. 나는 다른 날처럼 옷을 갈아입고 세수를 한 다음 마감 뉴스를 보려고 했다. 그러다가 불현듯 생각을 바꿔 아내의 방으로 들어가 보았다. 아내는 깊이 잠들어 있었다. 나는 충동적으로 거칠게 아내를 흔들었다. 손끝이 허전할 만큼 아내의 몸에는 거의 부피가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럴수록 내 손길은 난폭해 졌다.
아내가 눈을 떴다. 거실의 불빛이 새어들어와 그녀는 내 얼굴을 알아보았다. 그녀는 빙긋 웃었다. 몸을 일으키더니 유령처럼 바닥을 가볍게 스쳐 자 부엌으로 갔다. 그녀는 먼저 수도꼭지를 틀어 손을 문지르고는 쌀통에서 쌀을 꺼내 씻어 밥을 안쳤다. 멸치를 꺼내고 다용도실의 된장통에서 된장을 퍼와 뚝배기에 넣고 물을 부었다. 감자, 양파, 당근을 차례로 껍질을 벗기고 마늘을 깠다. 그것들을 도마 위에 깨끗이 썰어 놓을 때쯤에는 된장국물이 끓고 있었다. 야채를 차례로 넣은 다음 파를 꺼내 씻었고 두부도 귀를 맞춰 네모 반듯하게 썰어 대접 위에 준비해 놓았다. 그리고 볼에 달걀 세 개를 깨드려 소금을 넣고 나무젓가락으로 잘 휘저은 다음 파를 다져 넣었다. 생선 그릴에 물을 붓고 가스불을 켰다. 냉장고에서 갈치를 꺼내 씻어서 달구어진 생선 그릴에 집어 넣었고 그 옆의 가스 레인지에 프라이팬을 얹어 놓고 불을 붙였다. 적당이 달궈진 프라이팬에 달걀물을 한쪽에서부터 가만히 쏟아 천천히 말아 가기 시작했다. 조금 후에 갈치를 뒤집었다. 그녀의 손놀림은 정확했다. 그녀는 내가 꼼짝 않고 자기를 쳐다보고 있는 것은 물론 식탁의자에 앉아 있다는 것조차 전혀 깨닫지 못했다.
그녀는 식탁을 차렸다. 내 앞에 밥을 퍼서 놓더니 자기 밥을 가지고 와서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먹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녀의 모든 동작 속에 내 눈에 익숙한 평온이 깃들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평온하게 보일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이 아닐 때 뿐이었다. 평온하다는 것은 수면을 내려다보는 사람의 생각이다. 그 순간 물 속에서는 가물치가 꼬리를 바둥거리는 물새우를 반쯤 삼키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그녀는 열심히 밥을 먹었다. 다 먹은 다음 물을 가지러 냉장고로 갔다. 물쟁반을 들고 식탁으로 돌아온 그녀는 식탁 위를 보더니 갑자기 멈칫했다.
쟁반 위에 있던 물병과 유리컵을 내려놓고 거기에 자기의 빈 밥공기를 옮겨 담으며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내가 언제 밥을 먹었죠?"
그 겨울은 우리 둘 다에게 몹시 힘들었다.

떠나는 날 아침 아내는 머리를 감았다. 어딘가에서 전화가 왔다. 그 시각에 내게 걸려 올 전화는 없었으므로 나는 받지 않았다. 벨이 계속해서 울려대자 아내가 머리에 타월을 감싸고 욕실에서 나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그녀의 목소리는 건조했다. 그 다음부터 선 채로 한마디 말없이 듣기만 하고 있었다. 타월이 풀어져 그녀의 목 뒤로 점점 흘러내리더니 어깨 위로 떨어졌다. 검고 긴 머리카락이 쏟아졌다. 아내는 송화기를 잡지 않은 왼손으로 물이 뚝뚝 떨어지는 검은 머리채를 모아 잡고는 전화기 옆의 작은 화분 위에 내려놓았다. 그녀는 검게 적셔지는 것을 묵묵히 쳐다보다가 가만히 송화기를 내려놓았다. 어디서 왔어? 내가 묻자, 장난 전화예요, 아내의 음성은 조용했다.
아내는 조수석에 탔다. 불임 클리닉에 가던 때처럼 평온한 표정이었으며 내가 안전벨트 매는 것을 도와 주자 빙긋 웃음을 지었다. 차가 신도시를 벗어나 교외 풍경이 나타났을 때부터는 계속 창 밖을 쳐다보았다. 봄빛으로 물든 조그만 둔덕들, 줄지어 늘어선 비닐 하우스도 보고 지나가는 차에 타고 있는 아이들의 장난치는 모습도 보았다. 두 대가 앞뒤로 붙어서 나란히 달리고 있는 닭장차는 꽤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가로 세로로 창살이 질러진 닭장 속에서 닭은 몸조차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물건을 쌓아 놓듯이 빽빽이 집어 넣었기 때문이다. 몇 마리만이 겨우 창살 밖으로 목을 내밀고 공기를 마셨다. 봄바람이 불었으므로 그들의 지저분한 깃털이 가볍게 푸들거렸다. 닭장차가 지나가 버린 뒤로는 깃털 몇 개가 허공에 떠다녔다.
그녀는 나들이 가는 어린애처럼 흥미롭게 바깥 풍경을 내다보는 듯 했다. 그러나 그녀의 야위고 하얀 두 손. 그것은 누군가 극장 의자 위에 잃어버리고 두고 간 장갑처럼 그녀의 무릎 위에 기운 없이 방치되어 있었다. 내 시선을 느꼈는지 그녀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내가 짐짓 앞만 보고 있자 눈을 스르르 내리깔더니 다시 창 밖으로 시선을 돌리는 것이었다. 그때였다. 그녀의 입에서 끔찍한 비명 소리가 새어나왔다.
나는 황급히 오른손을 운전대에서 떼고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나도 모르게 왜 그래, 여보? 왜 그래? 하는 말이 튀어나왔다. 다음 순간 아내는 돌연 진정되었다. 꿈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멍한 눈으로 한참이나 앞을 쳐다보더니 나직하게 말했다. 닭이 다 없어졌어요. 그러고 보니 바로 앞에서 달리고 있는 닭장차에는 닭이 한 마리도 없었다. 아내는 텅 빈 닭장을 초점 없는 눈으로 쳐다보며 또 중얼거렸다. 닭이 다 없어졌어요. 그러나 놀랄 일은 아니었다. 닭장차는 두 대였고 앞에 가던 차에는 처음부터 빈 닭장만 실려 있었던 것이다. 아마 아내는 닭이 가득 실려 있는 뒤차만을 본 모양이었다.
내가 사정을 설명해 주었지만 아내는 믿는 것 같지 않았다. 닭장에 대해 더 이상 말을 하지는 않고 계속 두 손으로 자기의 목을 만지며 답답하다는 듯 이마를 찡그렸다. 그러더니 얼마 안 가 잠이 들었다.
그 곳에 도착한 뒤에야 그녀는 눈을 떴다. 자기가 잠든 사이에 낯선 곳에 도착해 버렸다는 사실을 깨닫자 그녀는 막 클로로포름에서 깨어나 눈에서 검은 안대를 벗은 납치된 소녀처럼 불안해했다. 그러나 아내는 대체로 침착했다. 수속은 순조로웠다. 숲속에 깊숙이 들어앉은 그곳은 그녀가 갇혀 있는 신도시의 집이나 불임 클리닉처럼 회색 건물이었지만 훨씬 더 평온해 보였다. 희망 따위를 볼모로 잡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제 헛된 희망을 갖는 일도없을 것이다.
나는 들어갈 때 내가 냈던 바퀴 자국을 따라 그곳을 나왔다. 붉은 꽃이 사방에 돋아 있었다. 차창을 내렸다. 숲 냄새가 났다. 나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곳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아내는 한 번도 나와 눈을 마주치치 않았다. 가까운 데에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어요, 라고 말했을 뿐이다.
아내를 데려다 주고 혼자 돌아오면서 나느 또 그 길 옆을 지나왔다. 구부러진 그 길을 보며, 지난 봄으로 되돌아간다면 모든 것을 돌이킬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지만 아주 잠깐 동안이었다. 나는 앞차가 서면 서고 출발하면 따라서 출발했다.
그날 밤 나는 아직 마감 뉴스를 보지 못해서 침대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채널을 이리저리돌려 보다가 생각보다 시간이 훨씬 천천히 흐르고 있음을 깨달았다. 리모컨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텔레비전 화면에 '세계는 지금'이라는 제목이 나타나더니 얼마 후에 내레이터의 음성이 들려 왔다.
- 지난 발렌타인 데이에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연구실에서는 수컷 초파리와 암컷 초파리 사이에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짝짓기를 하려고 날갯짓을 하며 암컷에게 달려드는 수컷을 암컷이 계속해서 머리로 들이받았습니다. 나중에는 다리로 수컷의 머리를 걷어차 버리리까지 했습니다. 이 암컷은 수컷이 정액을 뿌려도 알을 낳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내나 좋아했을 얘기였다. 나는 물끄러미 화면을 쳐다보았다.
- 그 이유는 돌연변이 유전자 때문으로 밝혀졌습니다. 연구팀은 이 실험으로 돌연변이 유전자가 신경 계통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 유전자에는 '불만'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나는 불타 버린 결혼 사진과 아내의 화상을 떠올렸다.
결국 마감 뉴스를 기다리지 못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잠을 설쳤다. 다음날 출근하자마자 나는 당장 들어갈 수 있는 빈집을 구해 줄 부동산과 포장 이사 회사에 전화를 했다.

그들은 정확히 아침 아홉 시에 도착했다. 한 사람은 휘파람 소리에 맞춰 장갑을 끼고 한 사람은 내게 이사 갈 집의 약도와 회사 전화번호를 넘겨받는다. 집을 나선 뒤 나는 아내의 방을 한 번 더 둘러보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차에 시동을 걸고 문득 건너편을 보니 옆집 여자가 차를 닦고 있다.
신도시를 벗어나면서도 나는 아무 감회가 느껴지지 않는다. 푸른 둔덕이 눈앞에 나타났을 때 비로소 그곳을 떠났다는 사실이 조금 실감났을 뿐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좌회전 차선으로 들어와 직진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차가 많지 않은 시각이라 그냥 직진을 해도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초록색 화살표에 불이 켜지자 차를 왼쪽으로 꺾는다. 언젠가 스포츠카가 달려갔던 것처럼 풀이 북슬북슬한 방둑길로 해서 아내가 가고 싶어하던 숲길로 접어든 것이다.
길은 몹시 구부러져 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험하고 좁은 숲길이다. 먼지가 날리고 차가 심하게 흔들린다. 그냥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비탈길을 돌아서는데 갑자기 산이 눈앞을 가로막는다. 무덤으로 가득 뒤덮인 거대한 산. 그리고는 낮은 하늘과 귀기 어린 정적뿐이다.
나는 멈추지 않고 계속 길을 따라간다. 겨드랑이가 땀으로 젖기 시작한다. 화장터와 마을이 갈라지는 길에서 팻말이 나온다. 급하게 마을 쪽을 향해 운전대를 꺾었지만 숲은 점점 깊어지는 것 같다. 무덤만이 끝날 줄 모르고 이어져 있다. 등뒤에서 와이셔츠가 땀으로 달라붙는다. 얼굴로도 땀이 흘러내린다. 차창을 내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먼지들이 수북이 몰려와 엉겨 붙는다. 차는 비틀거리듯이 산길을 달리고 달린다. 그렇다. 나는 아내를 위해 모든 것을 했다. 그것을 아내는 어떻게 갚아 주었던가. 아마 지금쯤 그녀는 자고 있을 것이다. 약을 먹을 시간이 되면 깨어난다. 그리고 다시 잠들기 전까지 하는 일이라고는 오직 나를 기다리는 것뿐이다. 그녀는 내 동의 없이는 그곳에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 그녀는 아주 잘 있다. 내가 찾아와 주기를 기다리는 일로 내 사랑에 보답하고 있다. 오늘 그녀의 방은 없어졌다.
이윽고 시야가 뚫린다. 반갑게도 저 멀리에 늘씬한 포장 도로가 나타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