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에 대해 빚지고 있는가... 지금 현 상황에 대해서는 빚지고 있지 않은가... 5.18은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

 

 

 

 

 

동행

임철우

 

네 모습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아파트 단지 정문을 지나 백여 미터쯤 들어가면 길은 두 갈래로 나누어지고, 바로 거기 길이 나눠지는 지점에 서 있는 전화박스 곁에서 우리는 만나게 되어 있었다.

내가 너무 일찍 온 걸까.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세 시 오 분 전. 나는 조금 초조해하고 있었다. 집을 나와서 버스를 타고 와 그 자리에 서게 될 때까지 초조함은 줄곧 집요하게 목덜미를 잡아당기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다. 그건 훨씬 이전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어젯밤 전화를 받는 순간부터, 아니 그보다도 더 먼저, 그러니까 네가 일 년 반만에 처음으로 나타났던 일주일 전의 그 충격적인 밤으로부터 나의 초조함은 이미 시작되었으리라. 너는 마치도 주술적인 힘을 지닌 북소리처럼 어둠 저편으로부터 갑자기 그리고 은밀하게 나를 덮쳐 왔다. 그 북소리 속에서 본능적으로 나는 어떤 불길한 파괴의 냄새를 감지했다. 그것은 지금까지 내가 조심스럽게 지켜 오고 있던 휴식과 평온하고 느슨한 일상의 생활감각을 밑바닥부터 송두리째 휘저어 놓고 말리라는 걸, 그리고 어쩌면 머잖아 그것들과 가차없이 결별해야만 하는 최악의 상태까지도 감수해야 할지 모른다는 위험스러운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때문에 북소리가 점점 가까와질수록 나의 불안과 초조함은 배가해 가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의식의 어느 한 구석에선가 위험신호를 알리는 빨간 비상등이 급박하게 작동을 시작했을 때, 적어도 나는 적절하게 방어자세를 취하든가 아니면 다가오고 있는 그 위험으로부터 달아나거나 했어야 옳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피하지 않았다. 끊임없이 경계신호를 울리고 있는 의식의 저편 한구석으로부터 보다더 강력하고 거역할 수 없는 힘으로 그 북소리를 기다려 받아들이기를 명령하는 또 다른 목소리가 나를 몰아세웠기 때문이었다. 나는 결국 기다릴 도리밖에 없었다. 더욱 확실하게 가슴을 채워 오는 너에 대한 애정으로 전율하며 나는 끝내 너와 또 네가 안겨 줄 불길한 것들마저도 함께 받아들여야 할 것임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인기척이 들렸다. 짐짓 천천히 고개를 돌려보던 나는 이내 긴장을 풀었다. 네가 아니었다. 젊은 여자가 전화박스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수화기를 들고 동전을 집어넣는 동작을 나는 유리창 너머로 모두 지켜보았다. 집에서 걸레질이라도 하다가 나온 참이었는지 그녀는 허름한 차림새를 하고 있었다.

저예요. 네네. 어떻게 되었다구 하던가요……어머. 낳았어요? 그래, 뭣이죠. 아들?……네엣? 아니, 낳았는데……에그머니나. 저를 어째……

여자는 울상을 짓고 있었다.

또 사산이라니……세상에……두 번씩이나……세상에.

수화기를 걸고 여자가 나오기 전에 나는 급히 시선을 거둬들였다. 여자는 고개를 떨군 채 힘없는 걸음으로 왔던 길을 되돌아가고 있었다. 그녀의 발뒤꿈치에서 슬리퍼가 혓바닥을 날름대며 끌려가고 있었다.

다시 시계를 확인했다. 세 시가 조금 넘은 시각. 그래도 너는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전화박스 곁에 우체통이 서 있었다. 전신을 빨간 색으로 칠한 그것의 빛깔이 까닭 모를 위기감을 주었다. 접선, 문득 그런 불쾌한 단어가 떠올랐으므로 나는 무심결에 좌우를 휘둘러보았다. 무슨 스파이극 혹은 범죄극에서나 쓰여지는 그 고약한 어휘에 대해 왠지 강렬한 적개심이 치밀어 올랐다. 대신에 <만남>이라는 지극히 정감 어린 말을 쓰고 싶었다. 그렇다. 나는 지금 친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내가 이 전화박스를 표시점으로 하고 너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누군가는 서슴없이 그런 불쾌한 어휘로 서술해 버릴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나는 또한 시인해야만 했다.

자꾸만 솜털처럼 일어나는 기분 나쁜 예감을 털어내려고 애쓰며 담배를 피워 물었다. 아파트 단지 내를 연결하는 길로 이따금 택시가 나가고 들어오고 했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많이 눈에 띄지 않았다. 출근시간이 지났기도 했으려니와 어제부터 갑자기 기온이 떨어진 늦가을 날씨 탓도 있으리라. 사과궤짝을 거꾸로 엎어놓은 듯한 시멘트 건물들이 끝간데가 보이지 않도록 사방으로 이어져 나가 있었고 그 너머로 잿빛 하늘이 묵직하게 걸려 있었다. 한결같이 분홍색 페인트를 덕지덕지 개어 바른 채 규칙적으로 늘어서 있는 그 균일한 구도 속에서, 그리고 건물 측면마다에 씌어져 있는 숫자들과, 저마다 똑같이 유지하고 있는 건물 모서리의 칼로 자른 듯한 대담한 각도에 대해서 나는 까닭 모를 심한 혐오감과 반발을 느끼며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바로 그 순간 너는 나타났던 것이다. 처음에 나는 너를 알아보지 못할 뻔했다. 의외에도 정문 쪽에서 나타난 너는 참으로 이상한 차림새를 하고 있었다. 꾹꾹 눌러 쓰고 있는 차양의 넓은 모자는 시골 국민학교 운동회를 연상케 했고, 짙은 검정색의 잠바는 H건설회사라는 글자가 노랑 색으로 가슴팍에 뚜렷이 박혀 있었다. 세상의 의심스런 눈초리부터 벗어나기 위해 너는 어디선가 그 모자와 유니폼을 구해 걸치고 이렇게 나온 것이리라. 하지만 그런 차림새는 오히려 어색함을 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런 몇 가지의 소도구들이 너를 너답지 않게 위장시키기에는 좀 빈약한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나와 주었구나. 많이 기다렸니.

아니.

너는 다가와 어깨를 툭 쳤다. 그건 너의 오랜 버릇이었다. 하지만 예전처럼 호들갑을 떨지도 않았고 내 어깨에 와 닿는 충격도 훨씬 미미했다. 무엇보다 너는 불안한 시선을 연신 좌우로 날려보내고 있었다. 모든 것이 예전 그대로인 듯했지만 사실은 어느 것이나 모조리 달라져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숨길 수가 없었다. 우리 둘 사이에 존재하고 있는 그 분명한 변화가 나는 서글펐다.

대관절 어디서 오는 거냐. 이 근처 어디인가보지 그 집이?

나는 네 얼굴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여전히 남아 있는 불안함으로 나는 조바심을 하고 있었다.

벌써 잊었니. 그런 얘긴 묻지 않는 게 너나 나를 위해서 좋은 일이야. 모르는 게 속 편하니까…….

짜아식.

내가 어색한 웃음을 흘렸고 애매하게 네가 따라 웃었다. 웃자란 보리밭처럼 무성한 구레나룻 사이에서 내비치는 치아가 유난히 하얗게 빛났다. 넌 거의 수염을 깎지 않는 모양이었다. 처음 네가 나타났던 날, 내가 물었을 때 너는 조금이라도 얼굴이 달라 보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수염을 그냥 두기로 했노라고 대답했었다.

우리는 아파트 단지 정문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걸으면서 나는 우리가 이용할 몇차시간표에 대해 설명했다. M시로 가는 열차는 시내에선 매일 세 차례뿐이었지만, 가까운 S읍에서는 비교적 자주 있었다. 서울에서 M시로 다니는 열차들이 S읍을 경유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시내에서 M시를 왕복하는 버스는 거의 매 십 분 간격으로 운행되고 있었으나 암만해도 그보다는 안전한 열차를 택하기로 했다고 너는 어제 전화로 내게 말했었다.

좋아. S읍으로 가는 거야.

마침내 네가 결정을 했다.

거기서라면 마침 한 시간 후에 완행열차가 있어. 하지만 정작 S읍까지 가는 게 문젠데……

괜찮아. 택시로 가면 돼. 돈은 내게 있으니까 염려 말고.

넌 선선히 대답했다. 우리는 정문에 다다랐다. 경비실 안에서 경비원인 듯한 두 사내가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너는 앞장서서 성큼성큼 걷고 있었다. 몇 가지 궁금한 것들이 있었으나 그냥 묻지 않기로 했다. 네 말마따나 모르는 것이 피차 좋을지도 모르니까. 어쨌든 넌 비밀투성이였다. 아직도 나는 네가 기거하고 있는 집조차도 정확히 모르고 있는 형편이었다. 전화를 걸어오는 건 언제나 네쪽이었고 어제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밤 열 시가 막 지날 즈음이었다.

M시로 가는 열차편 좀 알아봐 줘. 너랑 같이 동행하고 싶은데 그래 주겠니? 단도직입적으로 너는 그렇게 말했다. 이 날은 강의가 있었다. 몇 과목은 이 날 종강할 것이라고 했다. 아마 대학에서의 마지막 강의가 될 터였다. 하지만 그까짓 강의쯤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보다 나는 M시에로의 위험한 나들이의 이유에 대해서, 또 왜 하필 나와의 동행을 네가 요구하는 것인지에 대하여 퍽 궁금했다. 그러나 그 문제 역시 입을 다물어 두기로 하자. 어차피 동행할 거라면 차차 알게 되겠지.

정문 앞에서 택시를 탔다. 마흔 살쯤 되어 보이는 운전수는 S읍까지는 시외요금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오백 원을 깎은 액수로 합의를 보았다. 차는 종합운동장을 끼고 난 고가도로의 오르막길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잠시 우리는 침묵했다. 멀리 산이 보였다. 산의 거대한 몸체가 언제나처럼 도시를 품에 안은 채 묵묵히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우직한 선머슴 같은 산의 무릎에서 이 도시 사람들은 옹기종기 모여들어 살고 있었고, 우리 둘 역시 거기서 나고 자라 온 것이었다. 하지만 산은 이젠 어느덧 짙은 남빛 슬픔의 빛깔로 음울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차장 너머 멀리 산등성이를 바라보며 문득 너와 나를 떼어놓았던 지난 일 년 반의 시간과 그 마디 끊긴 시간의 한쪽 끝을 저마다 손가락에 감아쥐고 다시 되돌아온 지금의 우리 둘을 생각했다. 그래. 우리는 어쨌든 다시 만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예전의 우리가 아님을 서로가 깨닫고 있었다. 전장으로부터 돌아온 귀환병들처럼 우리는 여전히 우리였으나, 또한 우리는 더이상 우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실로 까마득하게 오랜 세월같이 여겨지는 일종의 진공상태와도 같았다. 너와 나 사이에는 거대한 협곡이 밑도 끝도 가늠하기 어려운 깊은 아가리를 벌린 채 존재하고 있었고, 그 양쪽 벼랑 끝에 마주서서 우리는 이 순간 아찔한 절망감과 당혹감으로 서로를 응시하고 있었다.

곁에서 어깨를 바싹 붙이고 앉아 있는 네 옆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좀체로 지워지지 않고 있는 그 서먹한 느낌이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온 것인지를 따져 보려 했다. 그러나 이내 너의 짙은 구레나룻과 부어 오른 듯 생기 잃은 뺨, 그리고 무심한 척하고 있었으나 사실은 끊임없이 불안해하고 있는 너의 눈빛 속에서 나는 쉽사리 서글픔을 읽어내고 말았다. 무엇보다 네가 깊숙이 눌러 쓰고 있는 그 우스꽝스런 모자와 검정잠바와 잠바에 쓰인 H건설회사라는 생소한 글자에게서 나는 우리들의 단절된 시간을 절박하게 확인했다. 내가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어쩌면 그것 때문인지도 몰랐다. 예전엔 그처럼 당당하고 활기에 넘치던 너에게서 내가 읽어야 할 것은 결코 그따위 애잔한 아픔이나 서글픔이어서는 안 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건 분명한 사실이었고 우린 어쩔 수 없이 시인해야만 했다. 그런 모든 변화들을 배태하게 만든 것이 과연 무엇인가를 냉정하게 돌이켜 생각해 보기에는 그 여름 이후 아직 우리들의 망가져 버린 의식은 회복되어 있지 못한 상태였다.

요즘은 손님이 많은 편인가요?

문득 네가 운전수에게 묻고 있었다.

어이구. 말도 마슈, 기름값은 내릴 줄 모르고, 또 얼마 전에 택시가 이 백 대나 새로 더 나왔답니다.

사람 수효에 비해 차가 많은 편이라서 신통치가 않다고 그는 대답했다. 너는 이런저런 얘기를 끄집어내어 그와 주고받았다. 그런 네 음성이 어딘가 조금은 과장되어 있는 듯했다. 아마 너는 불안함을 감추기 위해 입을 열었을 것이다. 그리고 보니, 운전수는 이따금 앞거울을 곁눈질하며 우리들을 살펴보곤 했다. 어쩌면 그것이 운전수들의 단순한 버릇이었는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 때문에 너는 퍽 조바심을 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벌써 일 년 반이 지난 일이다. 하루하루를 입에 풀칠하기에 바쁜 사람들이 이처럼 어설픈 소도구로 변장하고 나선 네 얼굴을 쉽사리 포스터 속의 사진과 일치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기야 또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았다. 며칠 전에 너를 돌고개 근처에서 목격했다는 이야기를 학교에서 우연히 들은 적이 있었다. 마침 문학부 앞 벤치에 앉아 있던 나는 가슴이 철렁해서 돌아다보았는데, 그 말을 하고 있는 녀석은 전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어쩌면 너도 그 녀석을 모를 것이다. 그렇듯 정작 자신은 모르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전혀 예기치 못한 장소에서 언제든지 확인되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가장 두려운 일일 것이었다.

차는 광천동 공단 앞을 지나 S읍으로 가는 길을 마악 접어들고 있었다. 하늘은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고 길게 뻗은 아스팔트 도로가 한층 칙칙한 빛깔을 하고 있었다. 이내 국군병원이 좌측으로 스쳐 지나갔고 차는 언덕을 넘어섰다. 거기서부터는 시외였다. 길 양쪽의 집들이 차츰 뜸해져 갔고 저만치 들판이 보이기 시작했다. 차가 속력을 내고 있었다.

네가 처음으로 나타난 것은 일 주일 전이었다. 그날 저녁 식구들과 함께 TV 앞에 앉아 있다가 나는 그 전화를 받았었다. 뜻밖에도 K였다. 그는 나보다 먼저 졸업해서 고시공부를 하고 있는 참이었다.

웬일이냐. 전화를 다 걸구.

그냥…… 뭐 좀 보여줄 게 있어서 그래. 지금 우리집으로 와.

느이 집으로?

잠시 의아해하던 나는 문득 긴장하고 말았다. 어딘가 들떠 있는 듯한 K의 음성에서 언뜻 짚이는 게 있었다. 택시를 타고 K의 자취방으로 향했다. 외등도 없는 컴컴한 골목을 걸어들어가며 난 줄곧 흥분해 있었다. 일 년 반 동안의 길지 않은 시간이 너를 만나러 가는 내 가슴을 그처럼 어지럽게 휘저어 놓을 수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정말 생각해 보면 그간 우리는 너무 오래 살아 버린 모양이었다. 그 몇 번의 계절이 바뀌었던 일 년 반 동안에 겨우 스물 일곱 살 동갑나기인 우리는 터무니없이 늙어 버린 것이었다. 내 직감은 맞았다. K가 대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시간 전에 네가 불쑥 나타났다는 것이었다.

반갑다.

네가 맨 처음 내뱉은 말이었다. 우리는 손을 꽈악 움켜쥐고 한순간 게걸스레 서로를 응시했었다. 너와 내가 맨 먼저 나눈 인사는 그것뿐이었다. 신파극에서처럼 와락 얼싸안고 포옹을 할 수도 있었다. 혹은 눈에 물기가 핑그르르 돌만큼 오래 굶주려 왔던 우정의 재회를 감격적인 장면으로 그럴 듯하게 그려내는 것도 그런 대로 좋았으리라. 죽은 줄만 알았던 친구와의 극적인 해후였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기이할만치 우리는 말을 절약하고 있었고, 나는 자꾸만 끊어지는 호흡을 정돈하려 애를 써야 했다.

몸이 부쩍 늘었구나.

글쎄 말이다. 맨날 먹고 자고 하다 보니까 이렇게 하마같이 살만 쪄버렸어. 허허.

정말 너는 네 말마따나 하마가 되어 있었다. 원래 몸집이 크긴 했지만 전에는 그처럼 비대하다 싶을 정도는 아니었다. 두부같이 물렁하게 느껴지는 군살과 얇은 셔츠를 들추고 나온 불룩한 배를 보고 있으려니 너무 의외라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상상하고 있던 네 모습은 초웨한 얼굴과 비쩍 말라 버린 몸뚱이 쪽에 보다 가까왔었다. 그렇지만 사실 그건 당연한 현상인지도 모른다. 한여름에조차 창문을 마음놓고 열기 힘든 불안 속에서 날마다 방구석에 갇혀만 지냈을 터이므로 운동부족일 것은 뻔한 이치였다. 그러고 보니 그건 살이 아니라 부어 오른 것이라고 해야 옳을 대단히 불균형적인 건강상태라는 사실을 나는 곧 깨달았다.

덕분에 방구석에서 책만 봤겠구나. 짜식. 무식한 티를 많이 벗었겠는데.

응. 그럭저럭. 하지만 그까짓 책…… 봐서 뭘하겠니.

나는 예전에 하듯, 우리들 사이의 농지거리를 해묵은 약속처럼 꺼내어 억지로 맞추어 보려 했으나, 그것마저 잘 되지 않고 말았다. 잠시 침묵이 끼어들었다. 무언가가 자꾸만 우리를 서먹하게 만들고 있었다. 죄스러움과 쑥스러움, 꺼림칙함과 불편함…… 그런 대단히 혼탁하게 엉크러진 감정들이 너와 나, 그리고 K를 에워싼 채 견디기 어려운 끈끈한 막을 형성하고 있었다. 도대체 무엇 때문이었을까. 하고픈 말은 산더미 같았는데 정작 나는 겉배운 외국어처럼 서툴게 더듬고만 있었으니……. 하기야 네가 떠난 뒤, 남은 우리가 보내야 했던 몇 개의 계절을 지금 와서 얘기한들 뭘하랴. 강의실의 빈 의자들을 자꾸만 외면하려고 애쓰며 우리가 비운 그 숱한 술잔과 천지 같은 넋두리와 악취 풍기는 갖가지 절망의 몸짓들을 어떻게 전해 줄 수 있을 것이냐.

살아 있을 거라고 믿었어. 고생이 많았겠구나.

뭐 그럭저럭…… 죽지 않으니까 살게 되더라. 허허.

우리는 동시에 웃었다. 그리고 자신의 것과 똑같은 상대방의 어설픈 웃음을 확인하는 고통스러움을 참아내야 했다. 역시 끊어진 실 마디는 이어지지 못하고 말았다. 다시 아까보다 훨씬 더 선명해져 오는 서먹함을 나누어 지니며 우리는 침묵했고 또한 소리 없이 저마다 우리는 절망하고 있었다. 그 서먹함은 마치도 내가 상상하고 있던 말라깽이인 너의 모습과 하마같이 부어 오른 지금의 네 모습과의 사이에서 드러나는 차이만큼이나 나를 당혹시키고 있는 것이었다. 한순간, 나는 네 얼굴에 떠오르고 있는 짙은 피로의 흔적을 지켜보다가 불현듯 몸을 떨고 말았다. 그토록 절망적인 피곤함을 네게서 확인하게 될 줄은 미처 몰랐던 것이다. 그 어떤 유랑자의 눈빛도 그처럼 짙게 드리워진 피곤을 지니지는 못할 것 같았다. 쉬고 싶어. 그렇게 얘기하고 있는 듯한 얼굴로 너는 내 앞에 앉아 있었다.

그래. 이렇듯 피곤에 지친 모습으로 너는 다시 고향을 찾아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고향은 이미 너를 따뜻하게 맞아줄 수 없는 이방인의 동네로 변해 있었다. 이 도시의 골목길과 구멍가게 하나하나까지도 모두 훤하게 외우고 있을 만큼 너는 여전히 고향에 익숙해져 있었지만 이제 이 도시는 더이상 예전의 너를 기억해 주지 않고 있었다. 바로 그 까닭에 너는 이렇듯 고향에 돌아와서까지도 어둠에 몸을 숨긴 채 밤에만 박쥐처럼 기어나와야 하고, 또 다른 사람을 시켜 친구를 불러내도록 해야 하는 것이었다. 택시는 긴 콘크리트 다리 위를 통과하고 있었다. 다리 아래로 빈약한 강줄기가 저만치 늦가을의 퇴색한 들녘을 구불구불 기어나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담배연기를 내보내지 위해 유리문을 반쯤 열었다. 바람은 무서운 기세로 달려들어왔다. 비행장을 옆에 낀 곧고 넓은 도로에서 운전수는 꽤 속력을 내고 있었다.

역전 광장은 한산한 편이었다. 여기저기 현수막과 안내판 따위가 세워져 있는 광장을 우리는 가로질러 가야 했다. 역사 왼쪽에 파출소가 보였고 여행장병 안내소라고 씌어진 간판을 지나 대합실로 들어섰다.

나는 천정 바로 밑에 비스듬히 붙어 있는 시간표를 확인했다. 역시 삼십 분 후에 M시행 완행이 있었다. 문제는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였다. 돌아다보니 너는 저만치 구석진 곳에서 서성거리고 있었으나, 나는 네가 내심 안절부절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불안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퀴퀴한 냄새로 가득한 대합실 안에서 유난히 우리들만 이물질처럼 다른 사람들 속에서 두드러져 보이는 것만 같은 어리석은 조바심이 일었다. 교실 하나 크기 정도의 대합실 안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거기엔 의자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알고 보니 그것들은 모두 옥외 광장에 놓여 있었다. 아마 건물이 비좁은 탓인 듯했는데, 쌀쌀한 날씨에 쫓겨 사람들은 대부분 대합실로 들어와 무료히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 눈치였다.

어떻게 할까. 우리는 잠시 망설였다. 근처에 다방이 있긴 했으나 네가 반대했고, 그렇다고 무모하게시리 번잡한 대합실에 오래 머물러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우리는 밖으로 나가 광장의 벤치에 앉기로 했다. 긴 나무의자가 열 두어 개쯤 나란히 놓여 있었다. 우리는 귀퉁이를 차지했다.

한동안 우리는 담배만 피웠다. 가까운 공중변소로부터 지린내가 흐물흐물 풍겨 나왔다. 대부분이 시골사람들인 남녀들은 눅진한 암모니아 내음을 옷에 묻히며 번갈아 드나들고 있었다. 맞은편 의자엔 젊은 패거리들이 모여 앉아 있었다. 계집애들이 둘 끼여 있었고 나머지 셋은 입영영장을 기다리고 있을 또래의 사내들이었다. 하나같이 건달기가 몸에 밴 사내녀석들의 얼굴은 불쾌하니 달아올라 있었고 계집애들은 멋대로 히히덕거렸다. 어쩌면 같은 패거리 가운데 하나였을 어떤 사내의 결혼식에나 참석하고 돌아가는 길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땅콩이며 오징어 따위를 어수선하게 늘어놓고 낄낄대며 먹고 있는 그들의 주위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이 나는 차라리 부러웠다.

대합실 건물의 외벽에 갖가지 벽보가 어지러이 붙어 있는 게 보였다. 불조심. 자연보호. <속은 인생 어제까지, 밝은 인생 오늘부터>라고 적힌 방첩포스터, 그리고 그 옆으로 하사관 모집광고와 지명수배자들의 사진도 나란히 붙어 있었다. 이십 칠 세. 신장 백 칠십 오 센티미터. 미남형에 호리호리한 체격. 그 아래에 고등학교 교복 차림의 네 사진도 틀림없이 끼여 있을 것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지금 바로 내 곁에 앉아 있는 우스꽝스런 차림의, 얼핏 보면 사십대쯤으로나 뵈는 더부룩한 구레나룻의 뚱뚱한 사내를 나는 새삼스레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사진 속에 앳된 소년의 모습을 떠올리며 혼자 쿡쿡 웃고 말았다. 너는 무심한 표정을 내게 돌리고 있었다.

왜 그래.

아냐, 그냥. 흐흐흐. 네 사진 본 적이 있니?

어디……?

내가 턱끝으로 벽보를 가리키며 웃었고, 잠시 그쪽으로 눈길을 주고 있던 너는 고개를 저었다.

임마, 너 그 치들한테 고맙다고 해야겠더구나. 몸이 후리후리한 미남형이란다. 너더러. 으흐흐흐.

그래?

비로소 너는 조금 웃었다. 그러더니 이내 낮게 한숨을 깔아 내쉬며 허공에 시선을 던지는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후회를 씹으며 발끝에다가 시선을 박았다. 온몸이 모래 속에 묻힌 듯 꺼끌꺼끌한 느낌에 커다랗게 고함이라도 내질렀으면 하는 심정이었다.

지난 일 년 반 동안 우리는 어디에서고 네 얼굴과 마주쳐야만 했었다. 극장이나 다방, 식당, 대합실, 술집, 당구장…… 그 어디를 가나 너는 줄곧 우리를 따라다니며 끈질기게 괴롭히는 것이었다. 지난 봄, 졸업여행을 갔던 제주도 어느 여관의 방안에까지 쫓아들어온 교복차림의 너 때문에 그날 밤 우리는 녹초가 되도록 술을 퍼마셨고 엉망으로 추태를 떨어야 했다. 하지만 차라리 그때가 더 우리에겐 마음 편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엄지손가락만큼 작은 사진 속에 너를 가두어 놓고 나서 이따금 낡은 앨범을 펼치듯 적당한 양의 감상과 자기합리화를 취향껏 덧칠해 가면서 너를 들여다볼 수 있었을 동안만은 그래도 너는 우리들에겐 여전히 기억 속의 이름으로서만 존재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네가 다만 과거의 기억 속에서 머물러 있어 주는 한, 그래도 우리는 술에 취하면 잠들 수가 있었고, 가끔은 아픈 상채기를 손톱으로 할퀴어대면 저주 섞인 넋두리를 퍼부어 대다가도 그것이 끝나면 사실은 더 많은 일상의 권태와 망각 속으로 쉽사리 몸을 던져 넣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우리들은 피곤했었다. 너무나 피곤하고 힘겨웠으므로 우리는 차라리 잠들어 버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마비된 의식과 교살 당한 영혼의 희뿌연 혼돈의 나락을 향해 까마득히 침몰해 가도록 내버려두고 싶었다. 그래. 모두들 가라앉고 있었다. 저마다 탈색된 눈빛으로 심연의 저편으로 어느덧 차츰차츰 가라앉아 가고 있는 참이었다. 잠들어라. 깊이깊이 잠들어라. 영영 깨어나지 않을 잠 속으로 투신하라. 깊이깊이. 오래오래……. 어디선가 감미로운 음악처럼 그렇게 끊임없이 귓전에 불어오는 소리. 소리. 소리. 그 불경한 주문을 들으며 우리는 침하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저마다 그 감미로운 속삭임을 이렇게 은밀히 서로서로 따라서 되뇌인다. 잊어라. 잊어버려라. 옛날은 옛날일 뿐. 기억은 기억일 뿐. 보다 새롭고 싱싱한 내일을 위해 악몽은 흔적조차 남기지 말고 지워 버려라. 깨끗이. 완벽하게…….

아아. 그런데 하필 이 순간에 네가 나타난 것이다. 그 불쾌하고 섬뜩한 악몽의 흔적을 우리의 졸리운 뇌리로부터 감히 곡괭이질해내기 위한 하나의 음모로서, 그리고 그 악몽의 명백한 증거물로서 네가 나타난 것이다. 기억하라. 기억하라. 기억하라. 어거지를 쓰듯, 우리의 이 몽롱한 최면의 당밀분을 함부로 휘저어 희석시키려는 당돌하고 무모한 음모와 함께 너는 어쩌면 우리들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공모하여 억지로 너를 가두어 놓기를 원했을지도 모르는 저 네모난 사진 속으로부터 돌연히 뛰쳐나와 지금 이 순간 우리 앞에 분명한 실체로 서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너는 이제 다시금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통증을 불러일으키게 하고 있었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왔다. 빵봉지며 낡은 휴지조각들이 발밑을 굴러 지나갔다. 너는 그새 몇 개의 담배를 연거푸 피워 물었고 나는 자꾸 시계만 들여다보았다. 저쪽에서 히허덕대며 장난질을 하고 있던 술 취한 젊은 녀석 중의 하나가 토하려는 시늉으로 왝왝 소리를 내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자라에서 일어났다.

개찰이 시작되고 있었다. 내가 앞서서 개찰구를 나섰다. 우리는 각자 표를 따로 지니고 있었다. 그러기를 네가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만일의 경우에는…… 하고 넌 말했다. 그러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는 않았다. 기차는 아직 보이지 않았다. 화단 귀퉁이의 벽돌 위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화단엔 말라붙은 사루비아가 드문드문 꽂혀 있었다. 반대편 플랫폼에 멈추어 있는 열차 안에서 승객들이 무심한 눈길로 이쪽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 너머로 하늘은 한층 짙은 잿빛으로 무겁게 걸려 있었다.

미안하다. 자꾸 심부름 시켜서…….

문득 네가 말했다.

미안하긴. 짜식. 새삼스럽잖아.

나는 건성으로 웃음을 흘리다가 갑자기 내가 했던 말을 다시 입안에 집어넣고서 우둑우둑 씹어 삼키고 싶은 심정이었다. 대관절 왜 이럴까. 어째서 오늘은 너와 나누는 말들이 이렇듯 모조리 이상스런 꼴로 변해 버리기만 하는 것일까.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애매하게 피해를 입을지도 모른다는 걸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아. 지금껏 거처를 옴길 때마다 늘 그랬어.

손가락으로 성냥개비를 분지르며 너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한줌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 속에는 녹슨 쇠붙이 내음과 비릿한 석탄 냄새가 스며 있었다. 커다란 등을 구부린 채 앉아 있는 네 모습은 마치도 야단을 맞고 난 어린애 같았다. 피해라고…… 대관절 누가 피해를 주는 쪽이고 누가 당하는 쪽이란 말인가. 고향에 돌아와서까지 이렇듯 숨어다녀야 하는 너는 누구며 태연한 얼굴로 아무렇지도 않게 세상을 활보할 수 있는 나는 또 누구이냐. 결코 장난스럽지 않은 표정으로 그런 식의 말을 나누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나는 불현듯 지독한 거부감을 느꼈다. 정말이지 너와 나는 한 번도 그런 식의 거북한 대화를 나눈 적이 전에는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우리들을 예전의 우리일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결국 나는 아까와 똑같은 의문을 반복하고 있었다.

기차가 플랫폼으로 들어왔다. 우리는 맨 뒷칸으로 올랐다. 생각보다 빈 자리가 많았다. 구석진 창 쪽을 택해 우리는 마주보고 있었다. 퍽 낡고 지저분한 인상을 주는 객차였다. 푸른색 천으로 씌워진 의자는 쿠션이 거의 없이 팍팍했고 군데군데 엉겨붙은 껌 자국이 남아 있었다.

예정된 시각보다 오 분 늦게 완행열차는 출발했다. 시커멓게 석탄 가루를 뒤집어쓴 역 건물과 주변의 낮은 함석 지붕들이 서서히 뒤로 밀려나가기 시작했다. 역 근처의 모든 집들은 한결같이 지저분하고 우중층한 빛깔을 띠고 있었다. 나는 멀리 시가지 너머로 어둡게 내려앉아 가고 있는 잿빛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비가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가지를 벗어나자 열차는 점점 빠르게 진동을 시작했고 이내 탁 트인 벌판이 차창 밖으로 펼쳐졌다. 이따금 늦은벼를 배고 있는 농부들의 모습이 보였다. 경운기에 가득히 볏단이 실려 논길을 지나가기도 했고, 지붕에 빨간 고추가 널린 외딴 농가의 마당에서는 갓난애를 업은 계집아이들이 고무줄을 넘고 있었다.

그제서야 나는 약간 마음이 느긋해지는 느낌이었다. 너는 비스듬히 모자를 위로 올려 쓴 채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그때 난 문득 네 이마를 스치고 지나가는 음울한 그늘을 보았다. 그것은 예의 그 피곤함이었다. 넌 여전히 그 짙고 어두운 피곤함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금방이라도 후두둑 무너져내릴 것만 같이 지쳐 있는 네 눈빛이 새삼스레 가슴을 후벼냈다. 그 동안 내가 서울에서 이집저집으로 거쳐를 옮겨 다닌 것만도 자그만치 열 네 차례였어. 때로는 하룻밤만에 쫓겨나다시피 한 적도 있었으니깐…… 정말이지 너무 지쳤어. 더는 이렇게 살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해. 어떤 날은 에라, 될 대로 되라지 하고 벌떡 뛰쳐나가 버리고 싶은 생각까지도 들어. 그렇게 너는 며칠 전 내게 말했었다.

제복 차림의 승무원이 유리문을 밀고 나타났다. 그는 우리 쪽을 힐끔 쳐다보았을 뿐 곧 지나쳐 버렸다. 어깨에 두른 붉은 헝겊에는 <공안>이라고 씌여져 있었다. 우리는 무심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황황히 고개를 돌려 버렸다.

네가 여기에 내려와 있다는 사실을 순임이는 알고 있니?

내 물음에 너는 한동안 입을 다문 채 창밖을 내다보고만 있었다.

아니…….

이윽고 너는 시선을 돌리지 않고 고개만 한 번 흔들었다.

어째서…… 누구보다도 가장 걱정하고 있을 텐데.

그리고 싶었는데…… 서로를 위해서 아예 참기로 했다. 역시 모르는 것이 약이니까 말야.

너는 담배를 꺼내 물고 있었다. 아마 네 추측대로 순임이 역시 방문을 받았을 것이리라. 알고 있을 거요. 솔직하게 대답해 주시오. 그는 지금 어디에 있읍니까. 순임은 그때 무어라고 대답했을까. 몰라요. 아무것도. 아마 그녀도 나처럼 그렇게 대답했으리라. 모릅니다. 내가 그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몰라요. 정말 모른다니까요. 아벨을 흙 속에 묻어 놓고 돌아와 피묻은 두 손바닥을 뒤로 감추며 부인하는 카인처럼 그녀는 고개를 흔들었을는지도 모른다. 그래. 우리는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차라리 우리에겐 훨씬 편리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네 말마따나 모르는 것이 약이라니까. 어쨌든 그들 앞에 섰을 때 나는 허리를 곧추세우고 다리에 힘을 주려 애쓰면서도 왠지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대답할 수 있었다. 몰라요. 모릅니다. 너의 행방을 모른다는 사실이 마치 결단코 침해받아서는 아니 될 무슨 엄청난 진리이기라도 하다는 듯이, 그리고 그 사실이 부당하게 의심받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억울해하고 통분해야 마땅하다는 듯이 나는 제법 완강하게 부인했었다. 명백한 무지는 때로 인간을 용감하게 만들기도 하는 법이다. 과연 그랬다. 그때 난 나답지 않게 용감할 수 있었다. 결국 그들은 아무 소득도 없이 나를 돌려보내야 했다. 믿어 보겠소. 하지만, 다음에 또 만날 기회가 있을 테니까. 돌아서는 등뒤에서 사내가 그렇게 말했었다.

지금도 그 학교에서 근무하고 있겠지?

누구 말야.

순임이.

아마 그럴 거야. 지난봄에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 후로는 나도 아직 만나지 못했다만…….

네가 다시 차창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었다. 그 날 나는 서점에서 책을 고르고 있는 그녀와 마주쳤다. 몰라보게 얼굴이 안되어 보여 안타까왔다. 바다가 보이는 시골 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다는 순임은 어떻게 지내느냐는 물음에 그저 그렇죠 뭐, 라고만 대답하며 쓸쓸히 웃었다. 그래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재미있다고 했다. 자취방에서 혼자 무료할 때면 시집을 읽곤 해요. 그러다가 가끔은 눈물을 쏟곤 하는 부끄러운 버릇이 생겨 버렸다며 그녀는 시집 하나를 골라들고 총총히 돌아섰다. 유난히 가날퍼 뵈는 그녀의 뒷모습이 인파 속으로 묻혀 가는 것을 지켜보다가 그제서야 나는 정작 너에 대한 얘기를 한마디도 주고받지 못하고 헤어져 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어머니께는 연락드렸니.

아니. 하지만 얼마 전에 이모님댁으로 대신에 전화를 했었으니까 알고 계실 거야. 물론 고향에 와 있다는 얘긴 안 했어. 이모는 그냥 울기만 하시더구나…… 너는 담배연기를 차창 밖으로 불어날리며 말했다. 들판을 질러 나 있는 황톳길을 시골아이들이 줄지어 달리고 있었다. 언젠가 내가 찾아갔을 때 네 어머니는 마침 꽃밭에 물을 뿌려 주고 계셨다. 얼마 전부터 성당에 나가기 시작했노라시며 내게도 그러는 게 어떻겠느냐고 물으셨다. 네가 지내던 방은 아직 치우지 않은 채 그대로 남겨져 있었다. 책장에 꽂힌 책들과 벽에 걸린 옷, 책상 위에 놓인 네 영어사전까지도 예전과 똑같았다. 그 녀석은 쉽사리 죽지 않는다. 어디엔가 꼭 살아 있으리라고 난 믿구 있어. 오랜 가뭄으로 희뜩희뜩 말라 가는 화초에 물을 뿌려 주시며 어머니는 그렇게 말씀하시던 것이었다.

조그만 시골역을 지나 기차는 M시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때로는 역사(驛舍)조차 없는 간이역에서 한참씩 정차하곤 했으므로 과연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역에 닿을 때마다 사람들이 오르고 내리느라 왁자지껄했다. 이윽고 창밖으로 뿌연 흙빛 강줄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영산강이었다. 헐벗은 들녘을 구불구불 돌아 흐르는 강기슭엔 어디에나 반쯤 진흙을 뒤집어쓴 갈대가 껑충하니 늘어서 있었고 탁한 강물은 흐르기를 멈추어 버린 듯 맥이 빠져 있어 보였다.

우리는 꽤 오래 침묵하고 있었다. 그 침묵의 틈바구니에서 가끔씩 입을 열어 보곤 했지만 어느 것도 우리를 한데 묶어 놓지 못하고 이내 끊어져 버리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그렇게 토막난 언어의 파편들을 어떻게 처치해야 할지를 몰라 쩔쩔매었다. 나는 너와 함께 마지막으로 연습했던 그 연극에 대해서 얘기했다. 석 달 동안이나 라면으로 허기를 채워 가며 빈 강당에서 추운 겨울밤을 보냈던 우리들은 끝내 막을 올릴 수 없다는 통고를 받았을 때 부둥켜안고 울고 싶었었다. 공연을 이틀 앞둔 그날, 세트 설치까지 모두 끝난 무대 위에서 우리는 막걸리를 받아다 놓고 목이 터져라 뽕짝을 불렀다. 어느 순간 벌떡 일어난 너는 무대 위로 뿌르르 쫓아나가더니 무대장치를 난폭하게 때려부수기 시작했다. 벌겋게 술이 올라 우리는 말없이 네가 하는 짓을 지켜보고 있었다. 정말이지 그것은 또 하나의 처절한 연극만 같았다. 그 외에도 나는 학교에 대해 얘기해 주었다. 우리들의 은사와 친구들에 대해서, 분필가루와 먼지 냄새가 배어 있는 강의실과 잔디밭과 등나무 벤치에 대해서, 그리고 유난히도 비가 오지 않았던 지난해 여름 어느 날, 말라붙은 도서관 앞 연못 속에서 흙반죽 위로 길게 자국을 남기며 뜨거운 여름 한낮을 배로 북북 기어다니던 금부어들과 그놈들의 지겨운 헐떡거림에 대해서 나는 이야기했다.

이제 난 고향이…… 싫어졌어.

마침내 나는 그렇게 말했다. 그건 사실이었다. 나는 두려워지고 있었다. 거리에 나서면 누구의 이마에나 음습하게 드리워져 있는 악몽 같은 기억의 그림자를 읽을 수 있었고, 그 때문에 전혀 모르는 사람들조차도 한결같이 낯익게만 느껴지는 얼굴들뿐이었다. 나는 그들의 얼굴에서 형언하기 어려운 짙은 피곤함을 보았다. 어쩌다 마주치면 사람들은 문둥이처럼 오그라진 가슴을 숨기고 저마다 실실 눈길을 피해 갈 뿐 어느덧 모두들 이제는 차라리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기를 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은 잠이었다. 나는 고향의 그 혼곤한 잠이 싫다고, 무덤처럼 무겁게 내리누르는 한낮의 수면이 두려워졌다고 네게 얘기했다.

너, 은유를 쓰는 그 버릇은 여전하구나.

내 얼굴을 찬찬히 건너다보고 있다가 네가 소리없이 웃었다. 예전에도 너는 늘 내가 은유법을 너무 자주 쓰는 버릇이 문제라며 비꼬듯 말하곤 했었다. 현명해. 너는 분명히…… 하지만 가끔은 지나치게 현명하다는 것이 결점이 되는 경우도 있거든. 예를 들면, 눈은 크지만 입이 너무 작은 사람처럼 말이야. 임마. 입을 크게 키워라. 그러지 않을 바엔 차라리 눈을 작게 뜨든지. 그것이 아마도 앞으로 네가 세상을 무난하게 살아가는 방법일지도 모르잖아. 언젠가 그렇듯 네가 해준 말을 나는 아직도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별안간 시야가 캄캄해져 버렸다. 천정의 전구가 눈을 부릅떴고 한동안 쿨쿨거리는 쇠바퀴의 진동만 객실 안을 가득히 채우고 있었다. 터널로 들어선 것이었다. 물밑으로 까마득히 가라앉고 있는 듯한 어지러움증으로 문득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나는 무엇엔가 쫓기는 것 같은 조급함을 느끼며 맞은편에서 흐릿하니 지워져 가고 있는 네 모습을 눈으로 더듬었다.

왜 돌아왔느냐. 무엇 때문에 그 잊어버리고 싶은 어둠속으로부터 너는 이렇게 뛰쳐나온 것이냐. 제발 이대로 내버려 두어 다오. 우린 자고 싶다. 이 평온한 잠에서 더는 깨어나지 않고 오래오래 누워 있고 싶다. 물론 우리는 너를 사랑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너는 우리의 사랑을 나눠 지니고 있으며, 앞으로도 역시 너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항문 위쪽 뭉툭하게 잘린 꼬리뼈의 흔적처럼 우리들의 아이들에게까지도 오래도록 남겨지게 되리라. 하지만 제사(祭祀)는 이미 끝났다고 믿고 싶은 걸 어찌하랴. 이제 새삼스럽게 제단으로부터 치워져 버린 순결한 짐승의 가죽, 아니 그놈의 핏자욱 하나 털 한 오라기조차도 감히 보여주려 하지 말아 다오. 제식은 끝났으니까.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되돌려주신 그 전능하고 자애롭기 그지없으신 신으로부터 이제 우리는 안식과 평온과 권태의 밤을 그 제사에 대한 당연한 보답으로 받아 누려야 할 차례이므로, 제발 이제는 그냥 내버려 다오. 우리는 피곤하다. 너무도 피곤하여 다만 자고 싶다. 자고 싶다.

눈앞이 다시 환해졌다. 천정의 전등이 이내 꺼졌다. 터널을 벗어나기까지의 짧은 순간에 나는 그렇듯 어둠 속에서 너에 대한 은밀한 배신을 혼자 재빨리 해치워 버리고 말았다. 한동안 나는 너를 쳐다보기가 두려웠다. 무엇 때문인지 스스로도 분간키 어려운 온갖 감정들이 엉망으로 헝클어지고 엉켜져서 마치 커다란 갱엿 한 덩이를 목구멍으로 삼키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것은 어쩌면 무엇인가에 대한 죄스러움과 분노, 그리고 혹시는 내 자신에게 느끼는 혐오감과 연민 혹은 서글픔 같은 것일 수도 있었다. 어둠이 터널 속으로 빨려들 듯 사라져 버리고 난 후에도 한참이나 나는 그런 혼돈 속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차창 너머로 멀리 구불구불 휘어져 흐르는 사행천의 모습이 다시 보이고 있었다. 너는 여전히 내 앞에 말없이 앉아 있을 뿐이었다.

열차가 속도를 늦추기 시작했다. 오밀조밀한 기와지붕들이 나타났다. 그 위로 곤충의 더듬이 같은 무수한 TV 안테나들이 삐죽삐죽 돋아나 있었다. Y시였다. 거기서 종착역인 M시까지는 삼십여 분 남짓 걸리는 거리였다. 승객들이 선반에서 짐을 끌어내릴 차비를 하고 있었다. Y역에서는 팔 분 가량 정차하겠노라는 안내방송이 들렸다. 우리는 그 동안 잠시 풀어 두었던 긴장감을 일깨우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땅거미가 서서히 내려앉기 시작했다. 우리는 차창 밖으로 사람들이 오르내리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이윽고 기차가 플랫폼을 떠났다. 하나 둘 수은등이 커지고 있는 역사를 뒤로 밀어내며 나는 자꾸만 가슴 한 귀퉁이가 조금씩 조금씩 허물어져내리는 듯한 느낌에 손가락을 뚝뚝 꺾었다. 쓸쓸했다. 참으로 견딜 수 없도록 쓸쓸한 저녁이었다. 기차는 마악 시의 외곽을 벗어나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듯 하늘은 어두웠고 차창 밖 거리마다 사람들은 집을 향해 바쁜 걸음을 옮기고 있는 참이었다. 철로 옆 작은 길로 자전거를 탄 사람이 무심히 지나갔고 조무라기 아이들이 뭐라 소리를 지르며 이쪽을 보고 손을 흔들어 주었다.

모두가 한결같이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언덕에 굴 껍질처럼 다닥다닥 맞붙어 있는 지붕들이 어둠 속에서 차츰 제각기의 윤곽을 허물고 한 덩어리가 되어 갈 무렵이면 사람들은 저마다 집을 찾아 골목을 돌아오고, 부엌에선 식구들을 맞기 위해 밥상을 차리는 아낙네들의 손길이 분주할 것이었다. 집집의 창문마다 하나 둘 나팔꽃으로 피어나기 시작하는 불빛의 송이송이를 헤아리다 말고 나는 몇 번이나 마주앉은 네 얼굴을 우울하게 훔쳐보곤 했다. 그러다가 문득 목구멍을 치밀어 오르는 까닭 모를 서글픔으로 황급히 너를 외면하며 나는 차창 밖으로 눈길을 던지고 말았다.

열 네 번. 그 일 년 반 동안 끊임없이 거처를 옮겨다녀야 했었을 너의 피곤한 여정이 가슴을 아프게 했다. 결국 넌 이렇게 돌아왔다. 스무 일곱 해가 되도록 너를 키워 준 고향으로 다시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고향은 너를 받아 주지 않았다. 그 까닭에 지금 너는 추방당한 이교도처럼 고향의 변두리를 숨어 헤매고 있는 것이리라.

기어코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성긴 빗발이 유리창에 부딪치며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유리창을 닫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손바닥을 내밀어 떨어지는 빗방울을 받아 보았다. 빗물의 차가운 감촉이 부드럽게 손에 느껴졌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느닷없이 기차가 급정거를 했고 우리는 모두 의자로부터 몸이 퉁겨나올 듯한 세찬 충격을 받았다. 기차는 얼마쯤을 더 미끄러져 나아가다가 정지했다.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사고다. 사람이 치었어!

어디야, 어디.

승객들은 드륵드륵 창문을 밀어올리며 밖으로 머리통을 뽑아내고 있었다. 더러는 벌떡 일어나 출입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기도 했다.

아이구머. 웬 아주머니가 차에 치었능가 본디.

아니여. 남자 같구마이.

살아 있읍니까, 아직?

보나마나 죽颋겠지라우. 원 저런. 피 좀 보랑께라우, 피.

저마다 한마디씩 떠들어대는 통에 차안은 온통 법석이었다. 나도 고개를 내밀고 차 안쪽을 살펴보았다. 사고가 난 지점은 건널목 부근인 듯하였다. 승무원인 듯한 제복차람의 사내들 몇이 한데 모여 당황한 손짓을 해가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고, 그 주위엔 수많은 구경꾼들이 반원을 이루며 웅성거리고 있었다. 차에 치였다는 사람의 형체는 이쪽에선 보이지 않았다. 그 부근은 시의 변두리쯤으로 여겨졌다. 낮고 초라한 지붕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퍽 가난한 동네 같았다. 나는 다시 의자에 앉으며 젖은 머리를 손으로 털었다. 사고가 났나 봐. 내가 뻔한 설명을 해주었을 때 너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을 뿐이었다.

비는 여전히 줄기차게 쏟아져내렸다. 그 속에서 기차는 한참을 멈추어 있었다. 이윽고 밖에 나갔던 사람들이 저마다 옷자락에 빗물을 묻힌 채 객실 안으로 들어왔다. 이내 <덜컹>하고 기차가 시동을 걸었다.

자살했다는 것이 참말이랍디여?

웬걸요. 자살이 아니라 사고라던데요. 차단기조차 없는 건널목으로 여자가 빗속에서 급히 뛰어오느라고 미처 기차를 못 본 모양이예요.

집이 바로 근처래여. 돼지를 키움서 살아가는 아주 곤란한 여자라둥만.

어참, 징한 꼴도 다 봤그마이. 그 자리서 즉사를 했드라고이. 쯧쯧.

돼지밥을 받아서 이고 오는 참이었나 봐요. 바께스에서 쏟아진 밥알 같은 것들이 사방에 널려 있었어요. 안되었지 뭡니까, 참.

기차에 치여 죽으면 보상도 한푼 못 받는다든디. 개죽음했구만, 개죽음.

기차가 쿵쾅거리며 달리고 있었다. 어느덧 시가지를 완전히 벗어나 어둠이 짙게 깔린 들녘으로 나와 있었다. 우리는 오랫동안 먹빛 차창의 어둠을 응시한 채 말없이 앉아 있었다.

두두두두두……

더욱 굵어진 빗방울이 세차게 유리창을 두드릴 때마다 발사음 같은 요란한 소리가 났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조금 전 사고지점을 기차가 느린 속도로 지나쳤을 때 우리는 우연하게도 언뜻 가마니에 덮여 있는 그 시체를 보았던 것이다. 그 식어 버린 살덩이가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 우리는 하얗게 질린 서로의 얼굴을 마주 쳐다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짧은 순간에 상대방의 얼굴로 떠오르는 자신의 것과 똑같은 그 악몽의 흔적을 확인하자마자 약속이나 한 듯 황급히 서로 외면해 버리고 말았다.

눈을 감은 채 나는 환상처럼 얼핏 스쳐 지나가 버린 그 음울한 영상을 뇌리에서 지우려고 애를 썼다. 몸을 반쯤 가린 가마니와 그 밑으로 흘러 고였을 진한 먹물과 벗겨져 나간 신발 한 짝, 그리고 건널목의 가로등 불빛에 훤히 드러나 보이던 하얀 밥찌꺼기며 이그러져 나뒹굴고 있던 바께스. 그리고 숱한 구경꾼들. 구경꾼들……. 그것들은 순간, 너와 내가 그토록 안간힘을 써 가며 간신히 덮어두고 있었던 그 악몽의 이부자리 한 자락을 잡아채어 매몰차게 벗겨내고 말았다. 그리고 그 이부자리 속에서 기어코 우리의 수치스런 알몸은 드러나 버린 것이었다. 그것은 섬짓한 윤간의 기억이었다. 안 돼. 안 돼. 나는 세차게 고개를 흔들어 버렸다.

두두…… 두두두두.

빗방울이 미친 듯 유리차을 두드리고 있었다.

불현듯 시야가 부옇게 흐려져 왔다. 나는 얼른 네 얼굴을 훔쳐보았다. 모자를 눌러쓴 채 너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황황히 손등으로 눈물을 지웠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그렇듯 실없이 눈물을 흘리는 부끄러운 버릇을 얻어 버린 것이었다. 술에 취해서도 찔끔대고 깊은 밤 악몽을 꾸고 나서도 찔끔거렸다. 무심히 오가는 행인들 틈에 끼여 낯익은 거리를 지날 때나 눈부신 봄날의 햇살을 밟으며 후미진 골목을 허청허청 걷다가도 핑 까닭없는 눈물이 고여 오곤 했다. 하지만 넌 울지 않는다. 네가 우는 모습을 한 번도 아직 본 적이 없다. 바로 그것이 너와 내가 다른 점일지도 모른다. 쉽사리 올 줄을 아는 나는 또한 등을 돌려야 할 적절한 순간을 포착하는 현명함도 쉽사리 터득하여 그것을 부적처럼 지니고 다닐 줄도 알았다. 하지만 너는 좀처럼 울지 않는 바보스런 녀서이므로 모두들 햇볕 속을 활보하고 있는 이 땅에서 아직도 네 이름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리라.

밖은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 빗발은 그치지 않고 쏟아져내렸다. 차안의 환한 불빛이 유리창에 달라붙었다가 미끄러지곤 하는 물방울들을 샅샅이 비추어내고 있었다. 끊임없이 덜컹거리는 바퀴소리만 규칙적인 진동을 전해 올 뿐 객실은 마치 무덤 속처럼 조용했다.

야, 한잔하지 않을래? 청승맞게 이러구 있지 말구.

문득 너는 지나가는 판매원을 불러 소주와 오징어 한 마리를 집어드는 것이었다. 그래도 괜찮을까 싶어 내가 쳐다보았다.

염려 마라. 이 정도로는 취하지 않을 테니까.

오랜만에 대하는 너의 밝은 웃음을 내심 놀라와하며 나는 순순히 잔을 받았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참으로 오래간만에 술을 나누는 셈이었다. 일 년 반 우리는 그 잃어버린 시간을 위해서, 그리고 이 기묘하고 쓸쓸하기만 한 우리들의 재회를 위하여 함께 건배했다.

너, 아까 그랬었지. 고향이 이젠 두려워졌다고…….

내 잔을 채워 주며 네가 말했다. 나는 말없이 네 두 눈을 들여다보았다.

나 역시 처음엔 그런 생각을 했어. 이 집 저 집 문등이처럼 옮겨다니면서 객지에서 해매던 시절이 차라리 덜 괴로웠던 것도 같았고…… 하지만, 결코 그 때문에 떠나려는 것은 아니야. 난 다시 돌아온다. 아마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난 그걸 믿어.

떠난다고……?

응. 그러고 보니 이번이 꼭 열 다섯번째가 되는 셈이던가. 허허.

별안간 머리가 텅 비어 오는 듯한 느낌에 나는 멍청하게 네 얼굴을 바라보았다. 뜻모를 웃음이 너의 입가에 떠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기이하게도 내게는 어떤 알 수 없는 안도감을 느끼게 하는 그런 웃음이었다.

글쎄, 이건 더럽게 감상적인 얘기 같다만 왠지 이번만은 혼자 떠나기가 싫었어. 고향에서까지 내쫓기는 것 같은 처량한 신세가 되고 싶지는 않았거든. 그래서 너더러 동행해 달라고 부탁했던 거야. 미안하다. 허허. 하지만 M시에 닿기만 하면 너의 임무는 다 마친 셈이니까 안심해라. 자, 한 잔씩만 더 하자.

네가 부어 주는 술잔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나는 좀처럼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두 가닥의 레일을 따라 쿵쾅거리며 기차가 흔들릴 때마다 잔 속의 술이 위태롭게 출렁거리고 있었다. 목구멍으로 무언가가 뜨겁게 치밀어 오르는 것 같아 나는 입술을 깨물어야 했다.

M시에 도착한 것은 여덟 시가 훨씬 지나서였다. 우리는 승객들이 어느 정도 내려간 다음에야 차에서 내렸다. 수문을 향해 물살이 쓸리듯 사람들이 바삐 플랫폼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너는 또 아까처럼 내게 먼저 나가라고 말했다. 나는 순순히 응했다. 개찰구를 향해 걸으며 슬쩍 뒤돌아보니 낯선 사람들 틈에 묻힌 채 네 커다란 몸집이 천천히 뒤따라오고 있었다. 너와 나를 떼어놓고 있는 그 멀지 않은 거리의 의미를 나는 다시 한 번 고통스럽게 확인했다.

우리는 역 광장에 섰다. 빗발이 아까보다 더 굵어져 있었다. 저만치 거리를 질주해 가는 차량의 불빛이 어지러웠다. 비닐우산 한 개를 사서 함께 썼다.

이젠 여기서 그만 헤어지는 게 좋을 것 같다. 고맙다. 공연히 나 때문에 고생이 많았어. 그러나저러나 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려면 막차 시간에 늦지 않으려나 모르겠다.

그건 염려 마라. 시간은 충분해.

네가 내민 손을 나는 잡았다. 불현듯 어쩌면 너를 앞으로 영영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불길한 예감 때문에 나도 모르게 손아귀에 안타깝게 힘을 주고 있었다.

뭔가…… 뭔가 말야.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지 않을까. 하지만…… 난 그걸 아직도 모르겠어.

그런 나를 너는 한동안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었다.

글쎄. 그렇지만 누구도 그걸 가르쳐 줄 수는 없겠지. 자기 몫의 삶을 결정하는 건 오직 자기 스르로일 뿐일 테니까 말야. 어쨌든 모든 게 잘 될 거야. 무엇보다도 넌 현명하잖니.

나는 말없이 네 손을 놓아주었다. 한동안 손바닥에 너의 체온이 남아 있었다. 우산을 쓰고 가라고 했지만 너는 억지로 그것을 내 손에 쥐어 주며 말하는 것이었다.

난 괜찮아. 갈 길은 나보다도 네가 더 멀잖아.

너는 등을 돌려 빗속으로 뛰어나갔다. 이내 네 뒷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네가 서 있던 자리는 어느새 짙은 어둠으로 채워져 있을 뿐이었다. 어디로 갔을까. 너는 또 어디로 스며들어가 버린 것일까. 나는 네가 억지로 떠맡겨 놓고 간 그 허약하고 초라하기 이를 데 없는 싸구려 비닐우산으로 간신히 몸을 가리운 채, 네가 비워 두고 사라져 버린 그 막막한 어둠의 공간을 지켜보며 혼자서 오랫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어쩌면 이제 그 빈자리는 남아 있는 내가 채워야 할 몫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나는 그제서야 조금씩 깨닫고 있었다.

이윽고 나는 돌아서서 역을 향해 휘적휘적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네 말대로 이제부터 내가 혼자 돌아가야 할 길은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