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한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눈에 선연할 정도로 잘 그려진 소설이다. 영하 80도의 날씨, 자신도 모르게 몸이 점점 얼어붙어 간다. 형체도 없는 추위와 처절하게 사투를 벌였으나 결국 그는 자연 앞에 오만했던 자신을 깨닫고 무릎 꿇는다.

작가 잭 런던(1876~1916)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출생, 가난하게 자라며 막노동과 광부, 선원 등 여러 가지로 생계를 꾸렸다. 그의 소설들은 대부분 그 경험이 극대화되어 나온 산물들로 독특한 그의 소설 세계를 이루고 있다.

 

 

불 지피기

 

 

 

잭 런던

 

 

동이 텄을 때, 날은 추웠고 하늘은 잿빛이었다. 사나이가 유콘 강 가의 주도로를 벗어나 흙으로 된 높은 기슭에 올랐을 때는 지독하게 춥고 잿빛도 더했다. 그가 오른 곳에는 사람이 다니지 않아 자국이 뚜렷하지 않은 길이 울창한 전나무 숲을 뚫고 동쪽으로 나 있었다. 가파른 기슭을 올라왔기 때문에 사나이는 꼭대기에서 숨을 돌리려고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행동을 변명이라도 하듯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아홉시였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으나 해는 보이지 않았고 나올 기색도 없었다. 맑은 날씨였지만 사물의 위에는 아침을 어둡게 하는 미묘한 우울함 같은 것이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관보자기처럼 덮여 있었다. 그렇다고 사나이가 걱정을 한 것은 아니었다. 해가 없는 것에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해를 본 지도 며칠이 지났다. 그는 며칠이 더 지나야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둥근 해가 그나마 정남쪽 하늘 끝에 잠깐 보일 것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해는 그렇게 잠깐 보이다가 곧 시야에서 사라질 것이다.

사나이는 자기가 온 길을 힐끗 돌아다보았다. 폭이 1마일이나 되는 유콘 강이 3피트 정도의 얼음 밑으로 흐르고 있었다. 얼음 위에는 얼음 두께 정도의 눈이 쌓여 있었다. 눈은 순백색이었고, 빙결기의 얼음이 엉겨 있는 곳에서는 물결 모양을 이루고 있었다. 북쪽이건 남쪽이건 눈에 보이는 것은 흰색뿐이었으며, 예외라면 머리카락같이 가느다랗고 검은 선이 꼬불꼬불 이어져 있다는 점이었다. 이 선은 전나무로 뒤덮인 섬 부근에서 시작하여 남쪽까지 이어지고, 저 너머 북쪽으로도 이어지는데 북쪽 끝에 있는 전나무로 뒤덮인 또 하나의 섬 뒤편에서 끝이 났다. 이 머리카락 같은 검은 선은 길이었다. 이 길은 바로 주도로로, 남쪽으로 500마일 가면 칠쿠트 고개를 지나 다이어를 거쳐 바다로 이어지고, 북쪽으로 70마일 가면 도손에, 거기서 1000마일 정도 더 가면 눌래토에 도달하게 되며, 1500마일 정도 더 가면 종국에는 베링 해의 세인트 마이클에 도달하게 된다.

하지만 신비롭게 멀리 뻗어 있어 머리카락같이 가늘어 보이는 길, 해가 없는 하늘, 엄청난 추위, 그 어느 것도 사나이에게는 아무런 느낌을 주지 못했다. 그가 이러한 것들에 익숙하기 때문은 아니었다. 사실 이번 겨울도 그가 맞는 첫 번째 겨울이었다. 이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상상력의 결핍이었다. 그는 세상일에 재빠르고 빈틈이 없었다. 하지만 그저 세상일의 겉에 대해서만 그렇지 그것의 깊은 뜻에 대해서는 무지하였다. 화씨로 마이너스 50도의 온도이니, 물이 어는 온도인 32도에서부터 따지면 영하 80도 정도가 되는 셈이다. 이런 기온을 불편할 정도의 추위를 나타내는 것으로만 받아들였을 뿐, 어떤 한계 내의 열과 추위에서만 살 수 있는 온혈동물로서의 자신의 나약함과 인간 전체의 나약함에 대해 생각하지 못했고, 더 나아가 영생불멸이라는 추측의 차원이라든가 우주에서의 인간의 위치 등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에게 마이너스 50도라는 기온은 그저 고통스러운 동상을 뜻했다. 또 마이너스 50도란 그것에 대비하여 장갑을 끼고, 귀마개를 하고, 모카 신이라는 따뜻한 신을 신고, 두꺼운 양말을 신는 것을 의미하였다. 그것이 마이너스 50도였다. 이런 것말고 그 이상의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그에게 도무지 들지 않았다.

몸을 돌려 길을 계속 가다가 그는 얼마나 추운지 알아보기 위해 침을 뱉었다. 침이 날카롭게 파열음을 내며 얼어붙어 그를 놀라게 했다. 다시 침을 뱉었다. 그러자 채 눈에 떨어지기도 전에 침이 공중에서 얼어붙었다. 마이너스 50도에서는 침이 눈 위에서 얼어붙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공중에서 얼어붙는 것이었다. 마이너스 50도 이하는 분명했지만 정확히 얼마나 추운지는 몰랐다. 그러나 기온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헨더슨 수로의 왼쪽 갈래로 가는 길이었는데, 그곳에는 동료들이 이미 와 있을 것이다. 그가 우회로를 따라가는 동안 동료들은 인디언 수로 지방으로부터 산을 넘어 그곳에 이미 도착해 있을 것이다. 그가 우회로를 따라가는 이유는 봄에 유콘 강 기슭에 있는 섬들에서 통나무배를 내어갈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이다. 여섯시까지는 도착하리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물론 약간 어두워진 다음이겠지만, 먼저 온 동료들이 불을 지피고 따뜻한 저녁밥을 준비해 놓을 것이다. 점심 얘기를 하자면, 그는 재킷 밑으로 불룩 나온 꾸러미를 손으로 눌러 보았다. 점심꾸러미는 손수건으로 싸서 셔츠 안에 넣어 직접 살에 닿도록 하였다. 이렇게 하는 것이 비스켓빵을 얼지 않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비스켓빵으로 점심을 할 생각을 하고는 기분이 좋아져서 혼자 웃음을 지었다. 비스켓빵을 잘라 가른 후 베이컨 기름에 푹 적시고 그 안에 큼직한 베이컨 한 조각을 튀겨 놓은 것이 그가 먹을 점심이었다.

그는 큼직한 전나무가 빽빽이 들어서 있는 곳으로 접어들었다. 길이 잘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 눈 썰매가 지나간 후로 1피트의 눈이 왔던 것이다. 썰매 없이 홀가분하게 다니니까 기분이 좋았다. 사실 그가 갖고 있는 것이라곤 손수건에 싼 점심뿐이었다. 하지만 추위에 놀랐다. 장갑 낀 손으로 감각 없는 코와 광대뼈를 문지르면서, 정말 추운 날씨라고 생각했다. 구레나룻이 무성하긴 했지만, 그 정도로 튀어나온 광대뼈와 차가운 대기에 돌출해 있는 얼얼한 코를 보호할 수는 없었다.

사나이의 뒤에는 그 지방 고유의 에스키모 개인 늑대개 한 마리가 따라오고 있었는데, 잿빛 털로 뒤덮여 있고, 사촌격인 야생 늑대와 겉으로나 기질로나 거의 다르지 않았다. 개도 이 혹한에 기가 꺾여 있었다. 개는 지금이 길을 나설 때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인간의 판단보다는 개의 본능이 더 정확했다. 사실을 말하자면 기온은 그저 50도를 밑돌 정도가 아니었다. 60도를 밑돌 때보다도 더 추웠고 70도를 밑돌 때보다도 더 추웠다. 실제로는 기온이 마이너스 75도였다. 물이 어는 온도가 32도니, 마이너스 75도란 영하 107도인 셈이다. 개가 온도 따위에 대해서 알 리 없고, 아마 인간만큼 분명하게 머릿속으로 혹한을 의식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짐승에게는 본능이란 게 있었다. 그래서 개는 뚜렷하지는 않지만 위협적인 공포를 느꼈고, 이 공포 때문에 개는 사나이가 조금이라도 여느 때와 다른 몸짓을 하게 되면 사나이에게 무언가를 묻는 듯한 눈초리를 보냈다. 마치 사나이가 야영하거나 어딘가에 피할 곳을 찾아 불을 피우기를 기대하는 것 같았다. 개는 불이란 것을 알고 있었고, 지금 불이 필요했다. 그것도 아니면 눈 속에 굴을 파고 들어가 바깥공기를 피해 웅크리고 있기를 바랐다.

개의 입김이 얼어붙어 털 위에 고운 서리처럼 달려 있었는데, 얼어붙은 입김 때문에 개의 뺨이며 주둥이, 눈썹 부분이 특히 하얗게 보였다. 사나이의 붉은 턱수염과 콧수염에도 마찬가지로 서리가 내렸는데 개의 것보다 더 단단했다. 이렇듯 쌓이는 모든 것은 고드름처럼 얼어붙었고, 고드름은 사나이가 따뜻한 입김을 내뿜을 때마다 점점 길어졌다. 사나이는 담배를 씹고 있었는데, 고드름 끝이 입을 막고 있어서 담배즙을 뱉어도 턱에 달라붙었다. 그 결과 턱 수염은 호박처럼 누렇고 단다하게 굳었고, 점점 길어만 갔다. 그가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수염은 유리같이 작은 조각으로 부서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나이는 달라붙어 있는 것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것은 이 지방에서라면 흡연자가 물어야 할 벌금 같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두 번 정도 이 같은 갑작스런 추위에 외출을 한 적이 있었다. 그의 기억으로는 그때도 이렇게까지 춥지는 않았다. 당시 식스티 마일이란 곳에 있던 알콜 온도계로 기온이 각각 마이너스 50도와 마이너스 55도였다.

그는 굴곡 없이 펼쳐져 있는 숲을 따라 몇 마일을 더 가다가 넓고 평평한 지역을 지난 후, 가파른 기슭을 따라 작은 수로의 언 바닥으로 내려갔다. 헨더슨 수로였다. 사나이는 이 수로가 물길이 갈라진 곳으로부터 10마일 떨어진 곳임을 알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열 시였다. 한 시간에 4마일을 걷고 있으니 열두시 반이면 물길이 갈라지는 곳까지 갈 수 있을 것으로 계산했다. 그곳에 가서 점심을 먹으며 도착을 축하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사나이가 수로바닥을 따라 힘차게 나아갈 때, 개가 사나이의 발 뒤꿈치에 다시 바짝 달라붙었는데, 기가 죽어 꼬리를 내린 상태였다. 앞서 지나간 썰매가 낸 길이 분명히 보였지만, 썰매를 끄는 개들이 낸 자국 위로 눈이 12인치나 덮여 있었다. 지난 한 달 동안 아무도 이 적막한 수로로 지나가지 않았던 것이다. 사나이는 차분하게 계속 걸었다. 그는 별 생각이 들지 않았다. 특히 지금은 물길이 갈라지는 곳에서 점심을 먹고 여섯시에는 동료들과 함께 야영할 수 있을리라는 생각 이외에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말을 건넬 사람도 없었고, 누가 있었다고 해도 입에 붙은 길쭉한 얼음조각 때문에 대화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단조로이 담배만 계속 씹었고, 호박색 턱수염은 계속 길어만 갔다.

날이 이렇게 지독하게 추운 것은 난생 처음이라는 생각이 이따금 반복해서 들었다. 걸어가면서도 그는 장갑 낀 손등으로 광대뼈와 코를 문질렀다. 이따금씩 손을 바꾸어가며 이 행동을 기계적으로 했다. 그러나 아무리 문질러도 그가 동작을 멈추면 광대뼈는 얼어 감각이 없었고, 그 다음에는 코끝이 무감각해졌다. 뺨이 이미 동상에 걸린 것은 분명했다. 이 사실을 알았을 때 그는 매서운 날씨면 버드가 끼고 다니던 가죽 코마개를 준비하지 못한 것을 뼈아프게 후회했다. 하지만 결국 별 문제는 아니었다. 뺨의 동상 정도가 무슨 대수란 말인가? 약간 아프긴 했지만 그 정도뿐이지 결코 심각하지는 않았다.

사나이는 마음속으로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지만, 그의 눈만은 날카로웠다. 그 눈으로 그는 강의 변화를 세심히 봐 두었다. 강이 어느 쪽으로 굽고 휘어 있는지, 벌채한 나무가 어디에 쌓여 있는지 등등을 봐두었던 것이다. 또한 발을 어디다 디뎌야 할지 항상 주의하며 걸었다. 한번은 강이 굽은 곳을 돌아오다가 갑자기 놀란 말처럼 겁을 집어먹고 자기가 걸어온 곳을 피하여 길을 따라 몇 걸음 뒷걸음질한 적도 있었다. 그가 알기로는 수로 바닥까지 완전히 얼어붙기 때문에 극지방의 겨울 강에는 물 한 방울도 있을 수 없다. 하지만 또 그가 아는 바로는 여기저기 강 언덕에서 솟아나오는 샘이 있어 거기서 나온 물이 눈 밑으로나 강바닥 얼음 위로 흐른다는 것이다. 아무리 추운 날이라 해도 이 샘들마저 얼게 할 수는 없다는 사실과 더불어 그런 곳에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 샘들은 함정과 같아서 3인치에서 3피트 정도의 눈 아래 물웅덩이를 숨기고 있었다. 때로는 반 인치 정도의 얼음이 샘에 살짝 덮여 있고, 그 위에 다시 눈이 덮여 있기도 했다. 때로는 물과 살얼음이 교대로 덮여 있어서, 누군가가 이 얼음에 빠지면 계속해서 얼음이 깨져 어떨 때는 허리까지 물에 젖기도 한다.

그가 그처럼 겁을 먹고 뒷걸음질 쳤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눈으로 덮여 있는 살얼음이 발 아래 쪽에서 깨지는 소리가 들렸던 것이다. 이 정도 추운 날씨에 발이 젖는다는 것은 난처하고도 위험한 일이었다. 적어도 시간을 지체하게 될 터인데 그 이유는 발길을 멈추고 불을 지핀 후 그 불을 쬐며 양말을 벗어 신과 함께 말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똑바로 서서 수로의 바닥과 기슭을 잘 살펴보고는 물이 수로 오른쪽에서부터 흘러나온다고 생각했다. 코와 뺨을 비벼 대면서 잠시 생각을 하다가 그는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기며 또 옮길 때마다 바닥이 괜찮은지 확인하며 강 왼쪽으로 피해갔다. 일단 위험을 벗어나자, 담배를 새로 꺼내 씹으며 시간당 4마일의 속도로 걸음을 계속했다.

다음 두 시간 동안 걸으며 비슷한 함정을 몇 번 만났다. 대개는 보이지 않는 물웅덩이 위에 덮인 눈이 타원형으로 푹 꺼져 있어서 위험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겨우 위기를 모면한 적도 한번 더 있었다. 그리고 위험할 것 같아 개를 먼저 보내본 적도 있었다. 처음에는 가지 않으려 했다. 개는 계속 버티다가 사나이가 밀어내자 재빨리 눈 덭인 멀쩡한 바닥을 계속 건너갔다. 갑자기 얼음이 깨지고 한쪽 다리가 물에 빠지자 다른 쪽 다리로 빠져나왔다. 개의 앞발과 뒷발 모두가 물에 젖자 이내 몸에 묻은 물이 얼어버렸다. 개는 다리에 붙은 얼음을 연신 혀로 핥아내더니 눈위에 주저앉아서는 발가락 사이에 생긴 얼음을 물어뜯어내기 시작했다. 개에게는 본능적인 일이었다. 발가락에 얼음이 남게 되면 발이 아프게 될 것이다. 개가 이 사실을 알지는 못했다. 개는 그저 생명의 저 깊은 곳에서 내리는 신비한 급명에 따르고 있었다. 개와는 달리 사람은 이같은 문제를 보고 판단을 내린 연후에야 알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윽고 사나이는 오른손 장갑을 벗고 얼음조각 떼는 일을 도와 주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손가락이 노출된 지 1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손가락에 갑자기 감각이 없어진다는 사실이었다. 사나이는 장갑을 서둘러 끼고는 손으로 가슴팍을 세게 내리쳤다.

열두시가 되자 날은 하루중 가장 밝았다. 그럼에도 겨울 해는 저 멀리 남쪽을 운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수평선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수평선과 헨더슨 수로 사이에 땅이 불거져 나와 있는데, 지금 사나이는 정오의 맑은 하늘 아래 그림자도 없이 수로 바닥을 걷고 있는 것이다. 1분도 틀리지 않고 열두시가 되자 그는 강이 갈라지는 곳에 도착했다. 제때에 도착하여 기뻤다. 이런 식으로 계속 가면 여섯시까지는 동료들과 틀림없이 만날 수 있으리라. 그는 재킷과 셔츠의 단추를 풀고 점심을 꺼냈다. 점심을 꺼내는 데 15초 정도 걸렸는데, 그 짧은 순간에도 노출된 손가락들이 얼어 무감각해졌다. 장갑을 끼지 않고 손가락을 다리에다 대고 열두어 번 내리쳤다. 그러고는 점심을 먹으려고 눈 덮인 나무토막에 앉았다. 손가락을 발에 내리쳤을 때 따라오는 통증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알고는 놀랐다. 여태 점심용 비스켓빵을 한입도 먹지 못한 상태였다. 손가락을 계속 친 후 장갑을 끼우는 동안, 점심을 먹기 위해 다른 한 손의 장갑을 벗었다. 한 입 먹으려 했으나 입 주변에 언 얼음 때문에 힘들었다. 불을 지펴 몸을 녹일 생각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사나이는 자신의 어리석음에 웃음지었다. 그런데 웃는 동안에도 밖에 노출된 손가락이 얼얼해 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가 나무토막에 앉았을 때 처음 발가락에 온 통증도 이미 사라지고 있음도 알았다. 발가락에 피가 도는지, 아니면 마비되었는지 궁금했다. 신발 안에서 발가락을 움직여 보고서야 마비되었다고 판단했다.

서둘러 장갑을 끼고 일어섰다. 조금 겁이 났다. 그는 쑤시는 듯한 고통이 발에 느껴질 때까지 쿵쿵 발을 굴렸다. 확실히 추운 날씨라고 그는 생각했다. 설퍼 수로 쪽에서 온 노인이 이 지방엔 때때로 무시무시한 추위가 온다고 했는데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런데 당시에 그는 노인을 비웃지 않았던가! 이는 아무도 세상일에 대해서 지나치게 확신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분명한 사실이다. 추웠다. 정말로 추웠기 때문에 그는 온기가 느껴질 때까지 팔을 두드리고 발을 쿵쿵 구르면서 큰 걸음으로 이리저리 거닐었다. 그러고 나서 성냥을 꺼내 불을 피우기 시작했다.

지난 봄 홍수로 퇴적된 숱한 마른 가지가 있는 덤불 속에서 그는 불을 지필 만한 나뭇가지를 찾아냈다. 작은 불씨를 살려서 곧 불꽃이 활활 타오르며 소리를 내자 그는 자신의 얼굴을 불 가에 가까이하여 얼음을 녹이고 비스켓빵을 먹었다. 이때만은 주변의 추위도 물러선 듯했다. 개는 불에 데지 않을 만큼 떨어졌지만 몸이 따뜻할 정도로 불 가로 와서 몸을 쭉 뻗으며 만족해했다.

요기를 때우자 사나이는 파이프에 담배를 채워서 편안하게 담배를 피웠다. 그러고 나서 장갑을 끼고 모자에 달린 귀덮개를 귀밑까지 꼭 눌러 쓴 다음, 물길이 갈라지는 곳으로 오르는 수로 길을 따라갔다. 개는 아쉬웠는지 불을 되돌아보았다. 이 사나이는 추위에 대해 몰랐다. 그의 조상들 모두 분명히 영하 107도 정도의 굉장한 추위를 알 리 없었다. 그러나 개는 알았고 그 개의 모든 조상들도 알아서 이 개도 물려받은 지식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이렇게 무섭게 추운 날 돌아다닌다는 것이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런 때는 그저 눈 속에 굴을 파고 편안하게 누워서, 이같은 추위를 내려보낸 저 바깥쪽 세계인 하늘의 표면으로부터 드리워진 구름이 걷히기를 기다리는 것이 상책이었다. 그러나 개와 사나이 사이에는 어떠한 깊은 교류도 없었다. 개는 사나이의 노예였으며, 그동안 개가 사나이로부터 받은 유일한 애무는 채찍과 그 채찍을 때리기 전의 사나이의 음성뿐이었다.

그는 담배를 씹으며 계속 새로 생겨난 호박색 수염을 움찔거렸다. 또다시 내쉰 입김이 어느새 입수염, 눈썹, 그리고 속눈썹을 흰 성에로 덮어버렸다. 헨더슨 수로 왼편 길에는 별로 샘이 없는 모양인지 반 시간동안 그는 그 어떤 샘이 있을 만한 징후를 보지 못했다.

그는 화가 나서 “빌어 먹을.”하고 중얼거렸다. 그는 여섯시에는 캠프에 도착하여 동료들과 함께 있기를 바랐었다. 그러나 불을 지펴서 신을 불에 말려야 하는데, 그렇게 하면 한 시간쯤은 늦어질 것 같았다. 이렇게 추운 날씨에는 반드시 치러야 하는 일이란 것쯤은 그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발길을 돌려 둑으로 올라갔다. 둑 위에는 몇 그루의 작은 전나무 둘레에 홍수 때 쌓인 마루나무가 덤불로 엉켜 있었다. 대부분 작고 마른 나뭇가지들이었는데, 제법 두꺼운 나무토막과 잔가지들도 있었고, 가늘고 마른 지난해의 풀도 많았다. 그는 눈 위에 나온 큰 가지를 몇 개 꺾었다. 그래야만 막 타기 시작한 불꽃이 녹은 눈 때문에 꺼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그는 주머니 속에서 자작나무 껍질을 조금 꺼내서 성냥불을 붙여 불을 피웠다. 이렇게 하는 것이 종이보다는 더 잘 탔다. 받침돌을 놓고 그는 몇 단의 마른 풀과 자잘한 마른 나뭇가지들을 지펴서 약한 불을 돋우었다.

위험을 절실히 느끼면서도 그는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불을 피웠다. 점점 불꽃이 커지자 그는 좀더 큰 나뭇가지들을 불 속에 넣었다. 눈 속에 몸을 웅크리고 덤불숲 속에서 엉켜있는 작은 가지들을 빼내서는 불 속에 넣었다. 실수해서는 안된다. 마이너스 75도 이하에서 발이 젖었을 때는 단 한 번에 불을 피워야 한다. 만약 발이 젖지 않았고 불 피우는 데 실패했다면 반 마일 정도를 달리며 혈액순환은 할 수 있지만, 마이너스 75도에서는 젖고 얼어붙은 발로는 아무리 뛴들 피를 다시 돌릴 수는 없다. 아무리 빨리 달려본들 젖은 발은 점점 더 꽁꽁 얼어붙는 것이다.

그는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설퍼 수로 쪽에서 온 경험 많은 노인이 작년에 그것에 대해 그에게 이야기해 준 적이 있는데, 그는 지금 그 교훈에 대해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이미 두 발의 감각은 완전히 사라졌다. 불을 피우기 위해 그는 장갑을 빼야 했기 때문에 손가락도 빠르게 마비되어 갔다. 한 시간에 4마일 정도의 속도로 걸을 때 그의 심장은 피를 몸과 손발 구석구석까지 뿜어보냈다. 그러나 멈추자마자 심장의 고동도 약해졌다. 말하자면, 우주 공간의 한기가 무방비 상태로 있던 이 지구라는 위성의 끄트머리 부분을 내리쳤던 것이다. 그리고 사나이는 마침 그 위성의 끄트머리 부분에 있었기 때문에 한기가 내리칠 때 따라오는 엄청난 충격에 뒤로 물러났던 것이다. 몸속의 피는 옆에 있는 개처럼 살아있지만, 또한 그 개처럼 이 무시무시한 추위 앞에서 자신을 숨기고 보호하려 했다. 그가 1시간에 4마일의 속도로 걸을 때는 그는 피가 싫어하든 좋아하든 상관없이 표면 쪽으로 밀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뒤쪽으로 물러나 몸속 깊숙한 곳에 가라앉아 있는 것이다. 손발이 제일 먼저 이 사실을 느끼게 되었다. 그의 손발은 아직 얼어버린 것은 아니었으나, 젖은 발은 점점 빠른 속도로 얼어가고 있었고, 노출된 손가락도 역시 점점 빠른 속도로 무감각해져 갔다. 코와 뺨은 벌써 얼고 있었다. 온몸의 피부는 혈색을 잃은 채 얼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목숨은 안전했다. 그저 발가락과 코와 뺨 정도가 혹한에 노출되었던 것일 뿐, 이제 불이 활활 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는 손가락 굵기 정도의 잔 나뭇가지를 불에 던져 넣었다. 1분 정도 지난 다음에는 손목 굵기 정도의 나뭇가지를 불길 위에 얹을 수 있게 되었고, 그는 젖은 신발을 벗어서 그것이 마르는 동안 맨발을 불에 쬘 수 있었다. 물론 처음에는 눈으로 발을 비빈 후에 불을 쬐었다. 불은 잘 탔다. 이제 안전하다. 설퍼 수로 쪽에서 온 노인의 충고를 기억하고는 미소지었다. 이 노인은 아무도 마이너스 50도 이하의 기온에서는 클론다이크 지방을 혼자 여행해서는 안 된다는 철칙을 매우 진지하게 세워 놓았던 것이다. 그래, 그가 사고를 당하기도 했는데 여기 살아있다. 혼자이지만 목숨을 건진 것이다. 저 노인네들 가운데 적어도 몇몇은 여자 같은 겁쟁이라고 생각했다. 남자라면 겁을 내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그는 멀쩡했다. 정말 사나이 대장부라면 혼자서 여행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는 뺨과 코가 금방 얼어가고 있는 걸 알고는 놀랐다. 그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은 그의 손가락이 순식간에 마비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정말 손가락이 마비되었다. 그래서 그는 손가락을 움직여 잔 나뭇가지를 잡을 수 없었다. 손가락은 마치 그의 몸뚱어리와 떨어져 따로 노는 것 같았다. 잔가지를 잡았을 때 자기가 정말 그것을 집었는지 알 수 없어서 눈으로 보고 확인해야 했다. 그와 그의 손가락 사이를 이어주는 줄들이 상당히 느슨해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 모든 것은 별 문제가 아니었다. 불은 딱딱 소리를 내며 타고 있었고, 춤추는 듯한 불꽃은 생명을 약속하는 듯했다. 그는 가죽 신발의 끈을 풀기 시작했다. 신발은 얼음으로 덮여 있었고 무릎 절반까지 올라오는 두툼한 독일제 양말은 철판 같았다. 가죽 신발의 끈은 대화재에 뒤틀리고 마디진 철근 같았다. 잡시 동안 그는 마비된 손가락으로 잡아당겨 보고는, 그렇게 하는 것이 소용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칼집에서 칼을 뺐다.

그러나 그가 신발끈을 자르기 전에 일이 벌어졌다. 자신의 잘못 아니면 실수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전나무 밑에서 불을 피우지 말았어야 했다. 나무가 없는 빈터에 불을 피웠어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숲에서 잔가지를 끌어다가 불에 직접 던지는 것이 훨씬 쉬웠다. 그가 나무 아래서 불을 피웠는데, 그 나무는 그 큰 가지 위에 눈을 이고 있었다. 몇 주일 동안 바람 한 점 불지 않았기 때문에 눈이 잔뜩 쌓여 있었다. 잔가지를 끌어 모을 때마다 진동이 생겨 약간씩 나무가 흔들렸다. 그의 입장에서 본다면 아주 미세한 진동이었지만, 문제를 일으키기에 충분한 진동이었다. 저 높이 있는 나뭇가지에서 눈이 쏟아져 내렸다. 이 눈이 그 아래쪽의 나뭇가지에 떨어졌고 그 여파로 거기에 있던 눈도 또 쏟아져 내렸다. 이러한 과정이 계속되었고 결국에는 나무 전체로 퍼지게 되었다. 이윽고 눈사태처럼 커지면서 아무런 예고도 없이 이 사나이와 불을 덮쳐 버렸다. 그리하여 불은 꺼지고 말았다. 불이 타던 자리는 갓 떨어진 무질서한 눈으로 덮이게 되었다.

그는 아찔했다. 마치 자신에게 사형 선고가 내려진 것 같았다. 잠깐 동안 앉아서 불이 타던 자리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러자 마음이 가라앉았다. 아마도 설퍼 수로 쪽에서 온 노인의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길동무가 있었더라면 지금처럼 위험에 빠지지는 않았을 텐데. 길동무가 불을 피워줄 수도 있었을 텐데. 하지만 불을 다시 지피는 것은 그 자신의 일이었다. 두 번째도 실패해서는 안 된다. 성공한다 해도 발가락 몇 개는 거의 틀림없이 잃게 될 것이다. 지금쯤은 그의 두 발이 몹쓸 정도로 얼었을 터이고, 두 번째 불이 준비되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이 거릴 것이다.

이런 생각들을 했지만, 앉아서 생각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런 생각들이 그의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동안 그는 내내 바쁘게 움직였다. 불을 피울 자리를 마련했는데, 이번에는 믿을 수 없는 나무들이 불을 꺼뜨리지 않도록 빈터에 자리를 마련하였다. 그리고 홍수 때 떠 내려와 쌓인 마른풀과 잔가지들은 긁어모았다. 그는 손가락을 모아 풀과 가지를 끌어올 수는 없었으나 어쨌든 한 움큼은 모을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많은 양의 썩은 가지와 새파란 이끼 조각을 구했다. 이런 것들은 쓸모없는 것이긴 했지만, 그 정도 모으는 게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심지어 불길이 세어지면 나중에 쓰기 위해 꽤 큰 나뭇가지들까지 한아름 모으는 등 그는 체계적으로 일을 했다. 그가 이런 일을 하는 동안 개는 앉아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개의 두 눈에는 무언가를 바라는 듯한 기색이 보였다. 개가 보기에 이 사나이는 불을 제공하는 사람이었지만, 불은 좀처럼 제공되지 않았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사나이는 주머니를 뒤져 두 번째로 자작나무 껍질을 찾았다. 나무 껍질이 주머니 속에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비록 손가락으로 느낄 수는 없었으나, 손으로 더듬자 껍질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는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꼭 쥘 수가 없었다. 그의 의식 속에는 자기의 두 발이 순간순간 얼고 있다는 생각이 줄곧 들었다. 이 생각 때문에 놀라 주저앉을 듯했지만,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를 쓴 결과 마음의 평정을 찾았다. 이빨을 사용하여 장갑을 끼고 두 팔을 앞뒤로 휘두르고 두 손으로 있는 힘을 다해 양 옆구리를 때렸다. 앉아서도 이런 행동을 했고 서서도 했다. 개는 줄곧 눈 위에 앉아 있었다. 늑대의 털 같은 꼬리로 앞발을 따뜻하게 감싸서 덮고 있었고, 늑대 같은 뾰족한 귀는 사람을 뚫어지게 쳐다볼 때 앞쪽으로 쫑긋 내밀었다. 자신은 팔과 손으로 때리고 흔들고 있는데, 자연의 옷을 입어 따뜻하고 안전한 개를 쳐다보니 한없는 부러움이 솟아났다.

얼마 후 그는 두드린 손가락에 감각이 돌아왔음을 아득하게 알려주는 최초의 신호를 의식했다. 처음에는 약간 따끔거리다가 점점 더해져 마침내는 참기 어려울 정도로 쑤시는 통증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사나이는 이 통증을 만족스럽게 반겼다. 그는 오른 손의 장갑을 벗고 자작나무 껍질을 앞으로 가져왔다. 노출된 손가락은 이내 다시 감각을 잃어가고 있었다. 다음으로 그는 황을 입힌 성냥더미를 꺼냈다. 그러나 엄청난 추위 때문에 손가락은 이내 무감각해졌다. 성냥 하나를 끄집어내려다가 오히려 성냥 모두가 떨어졌다. 성냥을 집으려 했으나 실패했다. 감각을 잃은 손가락으로는 만질 수도 잡을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나이는 매우 조심스러웠다. 얼어 오는 발, 코, 뺨 따위 생각은 집어치우고 온 정신을 성냥에만 기울였다. 촉각 대신 시각을 사용하여 주시하였다. 성냥 더미 양쪽에 자기 손가락들이 있는 것을 보고, 그는 주먹을 쥐었다. 말하자면 주먹을 쥐려고 애썼다. 하지만 손가락 신경이 작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손가락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는 장갑을 끼고 성냥 더미를 무릎 안쪽으로 움켜넣었다. 상당한 양의 눈이 따라왔다. 그러나 더 어떻게 잘할 수는 없었다.

좀더 애를 쓴 후에야 사나이는 겨우 성냥 더미를 장갑 낀 손바닥의 끄트머리 쪽에 놓을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해서 성냥을 입에까지 옮겼다. 입을 억지로 열려고 하자 얼음이 딱딱거리며 깨졌다. 아래턱을 안으로 당기고, 윗입술을 틀어 비키게 하고, 윗이빨로 성냥 더미를 비벼서 성냥 하나를 집는 데 성공했으나 그 성냥을 무릎 위쪽에 떨어뜨렸다. 이것도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집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방법이 하나 생겼다. 성냥을 이빨로 집어서 다리에 대고 그었다. 스무 번을 시도한 후에야 겨우 성냥에 불을 붙일 수 있었다. 불이 붙은 성냥을 이빨로 물어 자작나무 껍질에 대었다. 하지만 유황이 타면서 나는 연기가 콧구멍을 통해 폐로 들어가자 그는 발작적으로 기침을 하게 되었고, 불 붙은 성냥은 눈 속으로 떨어져 꺼지고 말았다.

성냥이 꺼진 후 찾아온 낙심을 애써 참으며 사나이는 설퍼 수로 쪽에서 살던 노인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노인 말로는 마이너스 50도 이하에서는 적어도 둘이 길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두 손을 서로 쳤다. 하지만 별 감각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갑자기 이빨을 써서 장갑을 벗고 두 손을 노출시켰다. 그러곤 양 손바닥 아랫부분을 써서 성냥 더미를 잡았다. 두 팔의 근육이 얼지 않았기 때문에 손바닥 아랫부분으로 성냥을 꼭 누를 수 있었다. 성냥 더미를 발에 대고 그었다. 일흔 개의 성냥에 동시에 불이 붙어올랐다. 바람이 없어 성냥이 꺼지지 않았다. 숨막히게 하는 성냥 냄새를 피하려고 머리를 한쪽으로 기울이고는 불붙은 성냥 더미를 자작나무 껍질에 갖다 대었다. 이 과정에서 손에 감각이 되살아옴을 느꼈다. 그런데 실은 살이 타고 있었던 것이다. 타는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살갗 저 아래에서 살이 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감각은 고통이 되었고, 고통은 점점 심해갔다. 그래도 그는 성냥불을 나무 껍질에 엉성하게 갖다대면서 살이 타는 고통을 참았다. 나무껍질에는 불이 쉽게 붙지 않았다. 왜냐하면 타들어가는 자신의 두 손이 중간을 가로막고 대부분의 성냥불을 빼앗아갔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되자 양손을 홱 떼어버렸다. 불타는 성냥은 피시식 하며 눈속으로 떨어졌지만, 자작나무 껍질에는 불이 붙었다. 마른 풀과 아주 작은 나뭇가지를 불 위에 놓기 시작했다. 두 손바닥 아랫부분으로 들어올려야 했기 때문에 땔감을 집어서 고를 수가 없었다. 작고 썩은 나뭇조각들이나 새파란 이끼가 나뭇가지에 달라붙어 있을 때는 이발을 사용하여 되도록 잘 뜯어내었다. 사나이는 조심스럽지만 둔한 동작으로 불을 간수했다. 불은 생명을 뜻하기 때문에 꺼지지 않게 해야 했다. 몸 표면에 피가 없어 그는 오한이 났고, 그래서 동작이 더욱 둔해졌다. 꽤 큰 새파란 이끼 덩어리가 작은 불 바로 위로 떨어졌다. 손가락으로 이끼를 꺼내려고 했으나, 몸이 떨렸기 때문에 이끼에서 벗어났고, 그 결과 그나마 작은 불 한가운데를 헤집어놓고 말았다. 타던 풀과 작은 가지가 이리저리 흩어졌다. 다시 이것들을 집어 모으려고 했으나 아무리 애를 써도 나뭇가지들은 다시 모을 가망이 없을 정도로 산산이 흩어졌다. 하나씩 연기를 피식 내고는 나뭇가지의 불이 꺼졌다. 불을 제공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주변을 느낌 없이 둘러보다가 그는 꺼진 불의 잔해 맞은편 눈 위에 앉아있는 개를 보았다. 개는 안절부절못하고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앞발을 교대로 살짝 들어올리고 그때마다 무언가를 바라는 듯, 몸의 무게 중심을 열심히 앞뒤로 움직였다.

개를 보자 야만적인 생각이 들었다. 눈보라를 만났을 때 소를 죽여서는 그 사체 안에 기어들어가 목숨을 구한 사람의 이야기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개를 죽여서 따뜻한 몸 안에 손을 묻으면 손의 감각을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고 나면 새로 불을 피울 수도 있을 것이다. 자기 쪽으로 오라고 개에게 말했다. 하지만 남자의 음성에는 개를 겁먹게 하는 이상한 공포가 섞여 있었다. 개는 한 번도 주인의 그런 말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개가 보기에 무언가가 잘못되었다. 의심 많은 개의 본성이 위험을 감지하게 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위험인지는 몰라도, 개의 머릿속 어딘가에서 주인에 대한 공포심이 어떤 식으로든 일어났다. 사나이의 말소리에 개는 두 귀를 내리고는 웅크린 동작과 앞발을 번갈아 드는 동작을 더욱 눈에 띄게 했다. 그러나 개는 사람 쪽으로 가려 하지 않았다. 사나이는 두 손과 두 무릎을 딛고 개 쪽으로 기어갔다. 이상스러운 자세 때문에 개는 다시 의심이 들었고, 그래서 슬그머니 옆걸음질로 피했다.

사나이는 잠시 동안 눈 위에 앉아 마음의 평정을 찾으려 애썼다. 자신의 이빨을 사용하여 장갑을 끼고는 일어섰다. 자기가 정말로 서 있는지를 확인하려고 우선 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왜냐하면 두 발에 감각이 없어서 공중에 떠 있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사람이 곧바로 서자 개는 의심을 덜었다. 사나이가 채찍 소리 비슷하게 명령조로 말하자 개는 예전처럼 복종하여 그에게 다가왔다. 개가 손이 닿는 거리 안으로 오자, 사나이는 자제력을 잃었다. 그는 두 팔을 개에게 재빨리 뻗쳤다. 그러나 두 손으로 물건을 잡을 수 없다는 사실과, 손가락을 굽힐 수도 없고, 손가락에는 아무런 느낌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정말로 놀랐다. 손과 손가락이 얼었고 점점 더 얼어들어 간다는 사실을 깜빡 잊고 있었던 것이다. 이 모든 일이 순식간에 벌어졌고, 그는 개가 도망가기 전에 두 팔로 개의 몸을 감싸 안았다. 그가 눈 위에 앉아 개를 두 팔로 잡고 있는 동안 개는 으르렁대고 낑낑대고 몸부림쳤다.

그러나 개의 몸통을 두 손으로 잡고 앉아 있는 것 이외에 사나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없었다. 개를 죽일 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죽일 방도가 없었던 것이다. 무력한 두 손으로는 칼집에서 칼을 빼서 손에 쥘 수도 없었고 개의 목을 조를 수도 없었다. 그가 개를 놓아주자 개는 꼬리를 다리 사이에 감추고 계속 짖어대면서 미친 듯이 튀어 달아났다. 마흔 걸음쯤 물러나서는 멈춘 다음 두 귀를 쫑긋 앞으로 세우고 호기심을 갖고 사나이를 관찰하였다.

사나이는 손이 어디 있는지 확인하려고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손이 팔 끝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다. 손의 소재를 알기 위해 눈을 사용해야 한다는 사실이 참 이상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팔을 앞뒤로 휘두르기 시작했고 장갑 낀 두 손으로 허리를 치기 시작했다. 이러한 동작을 5분간 격렬하게 했고, 그러자 그의 심장은 몸의 표면까지 피를 공급했기 때문에 몸이 떨리는 것은 그쳤다. 하지만 손의 감각이 살아나지는 않았다. 느낌으로는 두 손이 두 팔의 끝에 묵직하게 달려 있는 것이었으나 그 느낌을 실제로 확인할 수는 없었다.

희미하긴 했으나 죽음에 대한 중압적인 공포가 사나이에게 다가왔다. 이번 일이 단순히 손가락과 발가락이 언다든지 혹은 손발을 잃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죽을 가능성이 높은 생사의 문제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공포감을 더욱 커져 갔다. 그러자 그는 힘이 빠졌다. 방향을 틀어 수로 바닥을 넘어 오래된 희미한 길을 따라 뛰었다. 개가 합세하여 그를 따랐다. 평생 몰랐던 공포를 느끼며, 아무런 의도도 없이 맹목적으로 뛰었다. 눈길을 가르며 허우적거리며 달리다가, 천천히 주위의 사물들에 시선을 주기 시작했다. 수로의 기슭들, 오랜 목재더미, 잎사귀 없는 백양나무들과 하늘이 보였다. 그렇게 달린 덕분에 기분은 한결 좋아졌다. 오한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 계속 달리면 두 발도 녹으리라. 오랫동안 달리다 보면 야영지에 있는 동료들도 보이리라. 틀림없이 손가락과 발가락 몇 개, 얼굴 중 일부는 잃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곳에 도착하면 동료들이 그를 돌보아주고 몸의 나머지 부분은 구해 주리라. 그런데 이와 동시에 자기는 결코 동료들이 있는 야영지에 가지 못하리라는 생각 - 그의 몸이 너무 얼어서 곧 뻣뻣하게 굳어 죽을 것이라는 생각 - 이 들었다. 이런 생각을 뒷전으로 밀쳐보냄으로써 마음 속에 두지 않으려 했다. 때때로 이런 생각이 스스로 밀치고 나와서 자신을 바깥 세상에 알리려 했지만 그는 그 생각을 다시 밀쳐넣고 다른 생각을 하였다.

두 발이 너무 얼어서 달리다가 땅을 쳐서 몸의 무게를 받을 때에도 느낄 수 없는 정도인데도 그가 달릴 수 있다는 사실은 너무 신기하였다. 땅 표면 위를 스치듯 지나가는 것 같았고 땅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 같았다. 어디선가 날개 달린 머큐리신의 그림을 본 적이 있는데 아마도 그 신이 땅을 스치며 다닐 때 지금의 자기가 느끼는 것과 같은 기분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야영장과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뛰어간다는 그의 생각은 한 가지가 잘못되었다. 그는 인내력이 부족했던 것이다. 몇 번을 넘어지고 결국에는 뒤뚱거리다 맥없이 넘어졌다. 일어나려 했지만 일어날 수 없었다. 앉아서 쉬어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다음부터는 그냥 걸어서 계속 가리라고 마음 먹었다. 그가 앉아서 숨을 되찾았을 때 자신이 꽤 따뜻하고 편안하다는 것을 알았다. 떨고 있지 않았고 심지어는 따뜻한 불이 그의 가슴과 몸통에 들어온 것 같았다. 그런데도 코와 뺨을 만졌을 때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뛰었다고 해서 코와 뺨이 녹은 것은 아니었다. 또한 손과 발도 풀리지 않았다. 이윽고 그에게는 얼어붙은 몸의 부위가 점점 늘어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이런 생각을 억눌러 잊어버리고 다른 생각을 하려고 했다. 왜냐하면 이 생각을 하면 고통스런 느낌이 든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 고통스런 느낌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생각은 없어지지 않고 끝까지 남아 마침내는 완전히 언 자기 몸을 생각하게끔 했다. 견딜 수 없어서 그는 길을 따라 다시금 미친 듯이 뛰었다. 일단 속력을 낮추어 걸었다. 그러나 몸이 점점 얼어온다는 생각 때문에 다시 또 뛰기 시작했다.

그런데 줄곧 개가 바짝 뒤에서 함께 뛰었다. 그가 두 번째 넘어졌을 때 개는 그의 앞에 앉아서 이상스러울 정도로 열심히 그를 쳐다보았다. 따뜻하고 안전한 개를 보자 그는 화가 났다. 개에게 욕을 퍼붓자 마침내는 개가 두 귀를 내리고 사나이를 달래는 듯하였다. 이번에는 그에게 오한이 좀더 빨리 닥쳤다. 동상과의 싸움에 지고 있는 중이었다. 동상은 사방에서 그의 몸으로 기어들고 있었다. 이런 생각 때문에 몸을 달렸지만, 100피트 정도 달리고는 멈추었다. 그러고는 비틀거리다가 앞으로 곤두박질쳤다. 최후의 고통이었다. 숨을 제대로 쉬고 자제력을 회복했을 때, 그는 앉아서 죽음을 당당하게 맞이하리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 생각은 다른 식으로 다가왔다. 그에게 떠오른 것은 다름아니라 목이 날아간 채 뛰어 돌아다니는 닭처럼, 바보 같은 자신의 모습이었다. 글쎄, 어쨌든 얼어죽을 수밖에 없으니 그 사실을 점잖게 받아들여야 마땅하리라. 이렇듯 새로 찾은 마음의 평화와 함께 처음으로 희미한 졸음이 다가왔다. 그의 생각으로는, 자다가 죽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마취당하는 것과 같지 않을까. 얼어 죽는 것이 사람들 생각처럼 나쁘지는 않았다. 더 험하게 죽는 방법도 많지 않은가.

그는 다음 날 동료들이 자신의 시체를 발견하는 것을 머릿속으로 그려 보았다. 그러자 갑자기 그를 찾아 길을 따라온 동료들과 함께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또한 여전히 그들과 함께 굽은 길을 따라가다가 눈속에 누워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더 이상 동료들과 같은 세계에 속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미 제 몸에서 빠져나와 동료들과 함께 눈속에 누워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정말로 춥다고 생각했다. 알래스카를 떠나 본토로 돌아가면 사람들에게 정말 추운 것이 어떤 것인지 말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이 생각을 하다가 이윽고 설퍼 수로 쪽에서 온 노인의 모습을 생각하게 되었다. 이제 노인의 모습이 꽤 선명하게 보였다. 노인은 따뜻하고 편안한 곳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노인장 말씀이 옳았소. 당신 말씀이 옳았던 것이오.” 사나이는 노인에게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사나이는 평생 맛본 가운데 가장 편안하고 달콤한 잠에 빠져들었다. 개는 그를 쳐다보면서 앉아 기다렸다. 짧은 낮이 거의 끝나면서, 긴 황혼이 서서히 다가왔다. 개가 보기에는 불을 피울 기미 같은 건 없었다. 게다가 개의 경험으로도 눈속에 이렇듯 앉아서 불을 지피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황혼이 짙어지자 불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억제할 수 없어, 개는 앞발을 높이 쳐들기도 하고 흔들어대기도 하면서 작은 소리로 낑낑댔다. 그러고는 주인한테 꾸지람을 들을 것으로 예상했는지 두 귀를 내렸다. 하지만 주인은 꼼짝하지 않았다. 잠시 후 개는 큰 소리로 낑낑댔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른 후에 사람 곁으로 바짝 기어들어가 죽음의 냄새를 맡았다. 이 냄새 때문에 개는 털을 꼿꼿이 세우고는 물러났다. 개는 얼마동안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가 차가운 하늘에 높이 솟아 반짝이며 밝게 빛나는 별들 아래서 길게 울부짖었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자기가 아는 야영장 방향의 길을 따라 걸어갔다. 음식과 불을 마련해줄 다른 인간들이 있는 곳으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