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疏通의 시 

           -느티나무 동인들의 시를 읽고 

 

                                                                                               박 찬 선

느티나무문학회는 상주의 유일한 시동인이자 여성들로만 구성된 모임이다. 1998년 9월,여성만이 가질 수 있는 시의 각도를 가져보자는 취지에서 모임을 결성하고 동인 이름을 느티나무로 정했다.느티나무와 여성,다소 생소한 느낌이 들지만 그들의 주장은 당당하다.

 첫째,경계 없는 정신과 스스로의 긴장을 의미한다.느티나무는 동수나무로서 마을 앞 들고나는 곳에 서 있다.따라서 마을 안 사람과 바깥 세상,곧 세상과 사람의 만남 그 접점으로 한곳에 안주치 않고 시적 긴장과 경계를 넘나드는 정신이다.

 둘째,수령을 자랑하는 나무다.나이 들수록 아름다워지는 느티나무처럼 한 편의 작품을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세월 속에 숙성시키고 공을 들여야 한다.자기 갱신의 동력으로 시의 길은 현재이며 미래라는 것이다.

셋째,우주적 모태성을 지녔다.느티나무의 남성적 이미지 저편에는 여성성이 담겨 있다.아기자기하게 뻗은 가지,뭇 새들이며 다람쥐 같은 작은 짐승들의 방이 되어주고 까치집 서너 채 앉혀주는 마음이 어머니의 본성임에랴.대지의 기운을 품고 하늘을 우러르는 건실한 본성을 지녔다.이러한 느티나무가 지닌 덕성을 본 삼아 동인의 이름을 느티나무로 하고 느티나무의 문학을 펼치고 있다.

 『양은 주전자』2010 느티나무시 제7집이 나왔다.동인으로는 김이숙,김주애,김춘자,박순덕,이미령,황구하 여섯 사람.‘04년 첫 시집을 낸 이후 매년 한 권씩 거르지 않고 펴냈다.시에 대한 열정과 결집의 소산이다. 

 동인들은 한 그루 느티나무처럼 개성이 뚜렷한 독자적인 시세계를 구축하고 있다.상주의 안에서 바깥세상과 소통의 메시지를 보여주고 있다.


김이숙:일상에서 늘 접하는 현실 소재를 바탕으로 한 시의 천착으로 존재의 근원을 생각케 한다.말하자면 시의 집을 짓고 있는 셈이다.그의 예리한 촉수에는 걸리지 않는 것이 없다.세상 모든 움직임이 떨림으로 오는 끝없는 메시지,그 떨림에서 시는 태어나는 것이다.여인으로 의인화된 목련부터 새에게 먹히고 바람에 흔들리는겨우살이,서른 아홉의 죽음을 노래한 작별,세상에 피지 않는 꽃은 없노라는 무화과에서,특히 스토킹-거미에서 집의 실체를 떠올리게 한다. 


저기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다 

매일 아침 걷어내도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같은 자리에 집을 짓고 안전한 은신처에 숨어 있다 

자동차를 타고 달릴 때마다 늘 따라오는 여섯 개의 눈 

거센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꽉 붙들고 놓지 않는다 

왼쪽 백미러를 접으면 그의 집도 함께 접힌다  

                            「스토킹-거미」 전문


김주애:깊은 사유의 빛은 시의 골격을 튼튼하게 하고 현실감을 솟구치게 한다.어머니가 가꾸시는 텃밭에는 한 알 한 알 목 메이지 않는 것이 없는 텃밭」,철창 속에 갇혀서 마지막 가는 길의 닭을 노래한 부리,길 잃은 것들을 기다리는 거미,국졸,마흔 다섯 노총각의 모과나무의 실재성이 나는 발바닥에 가시를 품고 산다에서 그 깊이를 더해줌을 본다.그의 상황인식은 가시를 품고 사는 근원적인 아픔에서 온다.


 어디서 찔렸는지 걸을 때마다 발바닥이 아프다 바늘로 조심스럽게 후벼보지만 도무지 보이지가 않는다 후벼팔수록 상처는 커져갈 뿐이다 더 깊숙이 숨어서 걸을 때마다 온몸 가시 돋게 한다 핏물이 고여 더는 손 쓸 수 없다 

                   「나는 발바닥에 가시를 품고 산다」 첫연


김춘자: 어려운 농촌생활의 풍정을 따스하면서도 예리한 시선으로 여과 없이 담아낸 시들이 매우 사실적이다.구제역으로 끌고 간다는 왕눈이식구,구름 한장이라도 덮어주고 싶은 양계장의무거운 하루」를 통해 고통 받는 짐승들과 내장 들어낸 돌산,신음소리 들려오는 환경파괴의 현장과,하루 일당 육만원에 매인 병든최씨,관절이 쑤셔 뼈주사를 맞아야 하는 등 굽은 할매들을 노래한비오기전에를 통해 어려운 농촌의 현실이 아프게 다가온다. 


서른에 과부 된 어머니/ 앞날 캄캄해 피었습니다// 사남매 키우고/ 뒤돌아보니 서러워 피었습니다// 칠십 고개 건너/ 아직도 못다 핀 꽃 있어 피었습니다// 가시처럼 품은 세월/ 이제는 시절도 없이 피었습니다//

                              사계절 장미 전문


박순덕:사물에 대한 사랑과 연민의 정이 듬뿍 담긴 시가 정갈하다.테마공원기공식날 꽃 같은 하얀 장갑 주워온 어머니와 삽 한 자루 주워온 아버지의땅」,농협 빚 눈덩이처럼 늘자 밥 삼아 술만 마신 영철이」를 만나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솟고 우리 아들 학교갔다 돌아올 때 다 되어서 밥을 안쳐야 겠다는「뽕나무」,사남매 배 안 곯리려 허드렛일 마다 않는 어머니의「고추」,「피자 한 판」에서 부모의 따뜻한 사랑이 녹아든다.그 속에는 순하게 웃는 순박한 사랑도 있다.


낙동면 구잠리/매화가 꽃이불을/펴고 있다//(중략) 좋지요 꽃이//뒤돌아보니/수더분한 한옥에서/허리 굽은 아버지와/늙은 아들이/모내기 흙을 치며 말한다/나그네에게/공으로 꽃구경 시켜준 부자가/순하게 웃는다//담으려고만 애쓰는 내게//                         「매화가 부른다」 일부  


이미령: 사물의 내면을 꿰뚫어보는 눈이 깊다.따라서 시의 앉을 자리와 시의 모습을 그려내는 힘을 지닌 시인이다.유년의 애틋한 정감이 담긴 양은주전자와 감꽃 닮으신 엄마,늦가을 남장사 감잎 지는 소리 들으러 함께 가자는 감잎 편지가 있고 군에 입대한 아들 사랑의 우두커니가 있는가 하면 박스 줍는 노파의 무덤덤한 눈빛 속에서 엿물처럼 녹아든 절망을 본다는유월,어느 날 오후가 있다.그런가 하면 압축된 시의 꽃이 있다. 


바위 같은 어둠을 뚫고 올라


그토록 눈부시게 부서지기 위하여 천 년의 기다림을 간직한 별


흩어진 별 조각은 가슴에 지워지지 않는 꽃이 되었다. 

                                    「폭죽2」전문


황구하: 시적 사유의 심원성과 명징성이 조화를 이루어 정제된 시의 묘미를 보여준다.태초의 여름 분화구인 맨드라미,한 계절을 굶주리고도 여자는 배가 부른 박태기나무,노란 전조등 일제히 켠 개나리,밥 먹자 불쑥 숟가락을 내미는민들레-이런 꽃과 꽃나무에 대한 경이로운 유추와 상상력으로 시의 즐거움을 보탠다.그런가 하면 세심洗心의 자세로 수심결修心訣의 정갈한 경지를 보여주는 돌도 오래 살면 법문이 되는돌거북과 마음을 끌고 가는물에 뜬 달이 있다.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를 보여주는 게시가 있다. 


남장사 상수리나무 큰 그늘 

넘치고 넘쳐나 물소리에 닿는다  

(중략) 

저토록 두껍고 딱딱한 외피를 두르고 

태초의 물너울을 키우고 있다니 


천 년 목숨 지켜낸 남장사 

상수리나무숲 바다로 가는 물결을 본다 

                    「바다로 가는 나무」 일부  


 이상으로 느티나무 시인들의 작품을 일별해 보았다.양은 주전자에는 오늘의 상주가 있다.느티나무처럼 식물성의 향기가 있다.더구나 주로 남자들만 문회文會를 열어온 역대 상주문학에서 열림의 평등과 자유를 확인한 것은 아주 큰 높임이다.

 이 글은 극히 단편적이요 피상적일 수 있다.왜냐하면 어느 한 시인에 대한 집중이 아니요 모두에 대한 나열이기 때문이다.하지만 동인들의 면면을 읽음으로써 그들이 지향코자 하는 시의 길과 시 세계가 감지되지 않겠는가.

 소와 포도와 곶감과 오이가 귀하고 값지고 아름다운 상주에서 시는 과연 무엇인가? 시는 과연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시(문학)가 있어야 할 당위성과 나아갈 길을 느티나무시는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시는 안과 밖의 소통이다.느티나무시가 거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