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        


   하재영


킬힐을 신고 있다


당신 혓바닥에 고인 침을

무릎 꿇고

듬뿍 받으며

직립을 꿈꾼다


세상의 고요 한 묶음

봉분처럼

조근조근 끌어안고

식탁 위 낮은 말씀으로

당신과 나의 목을 칭칭 동여맨다


우주다

둥근 우리다




여우가 사는 내 고향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머리를 향한다

내가 살아온 6시 방향은

당신 그림자로 꽃향기가 머물렀다

어디까지 가야 할까

자동차가 달리는 넓은 길옆으로

제비꽃, 닭의장풀, 쑥부쟁이

그리고 강을 만드는 지류들이

참나무처럼

소나무처럼 머리를 빗었다

정겨운 이름 하나 둘 퇴색하여

노을 속으로 흩어지는 저녁

종종 1시 방향으로 머문 기억은

이빨 빠진 유년의 황톳길을 돋게 했다

산 너머 보이지 않는 하늘과 땅 사이

꽃을 피우려 뿌리를 내렸던 속도로

굵은 사전을 뒤적거리며

펜을 잡고 써내려간 문장 속 명사들이

터널로 들어간 고속열차처럼 보이지 않는다

똥수칸 문짝 뚫린 구멍으로 드러난

푸른 하늘

종이비행기 날다 내려앉는 6시 방향으로

팔딱팔딱 재주를 넘고 있는 내 고향

길고 긴 꼬리 달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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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영


  1957년 충북 청원 출생. 1988년 《충청일보》신춘문예 동화 당선, 1990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1992년 계몽아동문학상 장편소년소설 당선, 동화집 『안경낀 향나무』,『할아버지의 비밀』, 시집 『별빛의 길을 닦는 나무들』 7feeli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