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도박장, 사기 매매를 전문으로 하는 부동산 사무실, 주방장과 서빙이 툭하면 눈과 배가 맞아 사고를 치는 식당주인, 개 교배 전문가의 세계, 바텐더를 하는 여성...  

하나같이  보통이 넘는, 혹은 보통이 못되는 인물들이다. 이런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소설집 '불온한 식탁'을 낸 사람은 내가 개인적으로 잘 아는(부산작가회의와 부산소설가협회 모임에서 함께 어울린) 나여경 작가다. 

나여경 작가, 하면 떠올리게 되는 게 소처럼 끔벅거리는 크고 예쁜 눈. 누가 봐도 그 미모에 입을 대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나여경 작가의 소설적 자장이 어떤 색깔일까, 살짝 궁금했던 건 내가 나작가처럼 예쁜 여자로 살아보지 못한 때문이다. 이거 농담이 아니다.  

으~쨌든, 단편 몇 편을 뜨문뜨문 읽으며 간만 봤던 그녀의 소설세계를 지대로, 통째로 맛봐주겠다는 불온한 마음으로 책을 펼쳐들었더랬다. 빈약한 체력으로 격무에 시달려 12시 되기 전에 잠에 빠져드는 게 요즘 내 라이프스타일인데. 책을 펼쳐든 이날  나는 7편의 소설을 다 읽어치웠다. 더미의 변명, 금요일의 썸머타임, 돈크라이, 태풍을 기르는 방법, 정오의 붉은 꽃, 쥐의 성(成), 즐거운 인생까지 읽고나니, 새벽 3시. 놀랐다기보다 어안이 벙벙했다.  

아니, 이 예쁜 여자가! 예뻐도 예쁜척 안하고 일희일비 하지 않는 덤덤한 성격에 주변을 두루 살피는 성정까지 갖춘 이 참한 여성작가가 우째 이리 어두운 시공간의 삶을 속속들이 알 수 있었더란 말인가! 하는 경외감과 의구심과 약간의 배신감이 밀려왔다. 부러움 내지 질투심은 물론이고... 아무튼.

내게는 이 소설집에 나오는 인물들이 낯설다. 새로워서 낯선 게 아니라-뉴스나 영화 속에서 종종 등장하는 게 이런 인물들이니까- 이 인물들이 사는 방식이 낯설고, 이들이 취하는 태도, 이들이 속해있는 공간의 분위기, 리듬, 감성이 낯설다. 불온하다기보다는 불안한 이들의 일상이 낯설다. 불안한 삶, 불안한 시간을 사는 인물들은 원래 그 존재 자체가 낯선 법이다. 

낯설어서 멀찌감치 떨어져 무관심한 예의로 외면했던 인물들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여경 작가의 손에서 반죽이 되어 내 앞의 '불온한 식탁'에 올라왔고, 덕분에 작가를 아는 독자의 행운으로 나는 불온한 독서를 했다.

솔직히 인정할 밖에 없어 하는 말인데, 나여경 작가, 대단하오! 그리고 축하하오! 식탁을 맛나게 비우고 내놓는 점수는 별 네 개 반. 다섯 개 다 주기에는 내가 좀 예쁜여자한테는 박한 편이라 ㅎㅎ  

  

 

아참, 게다가 이 특이한 소설속 인물들의 행동을 묘사하는 이 박진감 넘치는 표현이라니!

 

곰이 뜬 건 그때였다. 멀리서 헤드라이트 빛이 보였다. 곰이다, 외치는 함성과 급히 뛰는 구둣발 소리, 냄새를 맡은 우리 애들이 대문을 걸어 잠그는 소리가 뒤섞여 들렸다. 나는 집 뒤로 달렸다. 예상대로 비상문이 열리고 범털 형님이 호위를 받으며 뛰어나왔다. 우선 범털 형님을 차에 태워 보낸 후 다른 보살들을 위해 비상문을 열었다. 이미 마당으로 진입한 두 명의 곰이 보였다. 어쩔 수 없이 그들과 맞설 수밖에 없었다. 나를 보자 순간 멈칫하던 한 명의 곰이 먼저 주먹을 날렸다. 급히 고개를 옆으로 피하며 발을 올려 곰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짧은 신음과 함께 중심을 잃은 곰을 발로 차 넘어뜨렸다. 몸을 돌려 뛰려는 내 등으로 불구덩이 쏟아진 듯 통증이 느껴졌다. 곰이 내 등을 향해 내려친 각목이 반 토막 나며 멀리 튀어 달아났다. 몸을 낮췄다가 나를 향해 다가오는 곰의 복부를 구둣발로 찍었으나 헛발질이었다. 중심을 잃고 쓰러진 내게 곰이 다가왔다. 급한 대로 돌을 주워 던졌다. 이마를 움켜진 곰의 손가락 사이로 흐르는 피가 보였다. 
-「더미의 변명」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