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심


                                                                    이 상 훈

"혜정이 너는 뭐가 제일 무서워?"

"귀신이 제일 무서워요."

"안나 너는 뭐가 제일 무서워?"

"돈이요."

"갑승이는?"

"사람요."

"그래? 세미는?"

"아빠요."

"현진이는?"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는 거요."

"나한테 한번 물어봐 줄래?"

"선생님은 뭐가 제일 무서운데요?"

마치 합창하듯이 물었다.

"무관심."

아이들이 조용했다.

"아무도 자기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고 생각해 보렴. 얼마나 무서울까? 차라리 나를 미워하거나 때려주기라도 하면 그것은 어떻든 관심이거든. 하지만 오든 말든, 있든 없든 관심이 없을 때 그것은 정말 견디기 힘들지 않을까? 내가 혹시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내가 그렇게 취급당하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 생각해 보도록 하자."

사실 너무 힘들게 하면 그렇게 바뀔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너무 속을 드러내는 것 같아서 하지 못했다. 계속 속을 썩이는 아이들에게는 부모도 '두 손 들었다'는 이야기는 더 이상 관심을 가지지 않겠다는 선언이 아니겠는가? 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오래간만에 청소구역을 바꾸어 본다. 교실 청소를 하는 아이들이 제일 고생이 심하다. 어떻게든 하지 않을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 동안 유리창을 맡거나 복도, 거울 등을 맡아서 거의 청소를 하지 않고 놀았던 아이들에게 이제 청소를 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기존에 하던 곳을 다시 하지 않도록 하고, 화장실 청소도 따로 맡겼다.

화영이와 예슬이가 기꺼이 화장실 청소를 하겠다고 나섰다. 둘이 친하니까 서로 협조하면서 할 것이다. 그 동안 복도 청소를 다혜와 함께 맡으면서 거의 청소를 하지 않다시피 한 예슬이가 화장실 청소를 어떻게 할지 걱정이 되었지만 화장실 담당 선생님이신 장선생님이 워낙 깔끔하게 일을 하시는 분이라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칠판도 두 명을 배정하여 항상 깨끗한 칠판을 유지하도록 했고, 특별실 청소도 다 바꾸었다. 여기까지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배정을 하고, 창문은 그 동안 말없이 묵묵히 교실 청소를 해온 아이들에게 내가 임의대로 배정했다. 또 그럭저럭 청소 시간을 때우려고 마음을 먹었던 아이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나도 창문을 하나 맡았다. 교실 청소에는 평소에 청소를 잘 하지 않던 아이들을 모두 배치했다. 교실 청소에 배정된 혜정이는 착한 경진이가 그 동안 교실 청소를 혼자 다 했다면서 자기가 평소에 열심히 하지 않았던 것을 간접적으로 고백했다. 나머지 아이들이 그 만큼 평소에 청소를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였다.

드디어 청소 시간이 되었다. 나는 내가 맡은 유리창을 환하게 닦았다. 지나가는 아이들이 모두들 "선생님이 유리창을 닦으시네요. 와 깨끗하다."하면서 저마다 한 마디씩 하면서 지나간다. 교실을 얼핏 들여다보았더니 혜정이가 경진이와 함께 땀을 흘리며 청소를 열심히 하고 있었고, 이제는 더 이상 빠져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던지 세미도 다혜도, 윤희도 열심히 돕고 있었다. 자기에게 일이 주어지면 할 수 있는 아이들이고 하는 아이들이다. 역시 무관심할 수 없는 아이들이다.


  벌써 10년이 다 되어 가는 이야기다. 그때 청소를 하던 아이가 대학을 졸업하고 작년부터 교단에 서는 아이가 있으니까. 그때 청소를 하지 않던 그 아이가 지금은 청소를 시키는 교사로 서서 아이들을 어떻게 지도하고 있을까? 참 궁금하다.

  요즘은 담임들이 하나같이 청소구역을 지정해 준다. 교실도 더 세분화하여 복도 쪽 책상은 누가 누가 담당하고,  운동장 쪽 책상은 누가 누가 담당하고, 가운데는 누가 할 것인가를 결정한다. 다시 그 아이들 가운데 빗자루질은 누가 할 것이며, 걸레질은 누가하고, 책상 옮기는 일은 누가 하라는 식으로 더욱더 세분화하여 지정해주지 않으면 아이들은 스스로 할 줄을 모른다. 자기가 맡은 것만 한다.

  혹시 어떤 아이가 화장실이 급하여 책상을 옮기지 못하고 있으면 아무도 책상을 옮기지 않는다. 빗자루를 담당한 아이는 빗자루만 들고 서 있다.

  “너는 왜 청소를 안 하고 서 있어?”

  “책상을 안 옮겨 줘요.”

  “네가 좀 옮기면 안 돼?”

  “저는 빗자루 담당이에요.”

  틀린 말은 아니지만 어이가 없다. 요즘 아이들은 남의 일을 도와 가며 할 줄을 모른다. 자기가 맡은 일도 잘 하지 않지만, 자기가 맡지 않은 일은 막무가내다.

  한 동안 내가 함께 청소를 하면 할 수 없다는 듯 옆에서 하곤 했는데 이제는 내가 있든 없든 도망가는 아이들은 도망을 가고 하는 아이들만 한다.

  언제부턴가 그런 아이들에게 차츰 무관심해지기 시작했다. 저희들끼리 어떻게든 청소를 하고 난 후에 종례를 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어떻게든 청소를 했다. 물론 열심히 하는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이 있지만 자기들끼리 조정을 해가면서 하는 것을 보면서 가끔은 무관심한 것이 아이들에게 약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요즘 가정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무관심이 약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지나칠 정도로 아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부모가 스스로 할 줄 아는 게 없는 아이들을 양산하고 있다. 청소는 말할 것도 없고, 무엇을 하고 살 것인지 자기 나름대로 꿈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 적다.

 학교의 주입식 교육으로 아이들은 입만 벌리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학원은 더욱더 말할 것도 없다. 그렇게 보내는 시간이 학교에서 예닐곱 시간, 학원에서 서너 시간, 합치면 하루에 평균 열 시간 정도를 그렇게 보낸다.

  무엇이든 스스로 할 시간을 다 빼앗겨버린 아이들은 이제 스스로 서 있는 것조차 힘들어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부모들은 이제 아이들에게 조금 무관심해져야 한다. 스스로 하는 것을 천천히 지켜볼 줄 아는 인내가 필요하다. 학교는 학교 대로 무관심을 배워야 한다. 아이들이 스스로 일어서는 것을 도와주어야 한다. 어쩌면 지식을 머리에 넣는 일보다 스스로 일어서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강한 아이가 되는 지름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