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을 통한 시적 진실 드러내기와 감추기 / 권형하


 문학이 삶의 표현을 통하여 내밀한 감동을 전해준다는 점에서 허구이다. 시도 시인의 체험이나 감정을 치밀하게 재구성한다는 측면에서 시적 허구이다. 환언한다면 시인은 삶 속에서 유추된 세계를 통해 또 다른 진실을 만들어내어 치밀하게 재구성했다는 측면에서 보면 시는 시적 진실을 전해주는 양식이 된다. 그러므로 시인은 현재의 삶 속에서 유추된 세계를 통하여 또 다른  진실한 삶의 방법이나 생의 해법을 제시해주어야 한다. 이렇게 될 때, 시인이 만들어낸 시적 진실은 어떤 역사적 사실이거나 현실적인 일들보다 생동감 있는 진실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

 근간에 읽은 김영남의 시 ⌜적요한 풍경⌟은 이러한 시적 진실을 드러내기에 값하는 작품으로 읽었다. 김영남 시인의 등단 작품인 ⌜정동진 역⌟(1997년 세계일보 당선작) 후반부에서는,


 "해안선을 잡아놓고 끓이는 라면집과/ 파도를 의자에 앉혀놓고/잔을 주고받  기 좋은 소주집이 있다./그리고 밤이 되면/ 외로운 방들 위에 영롱한 불빛   을 다는/아름다운 천장도 볼 수 있다./ 강릉에서 20분, 7번 국도를 따라가    면/ 바닷바람에 철로 쪽으로 휘어진 소나무 한 그루와/ 푸른 깃발로 열차    를 세우는 역사(驛舍),/ 같은 그녀를 만날 수 있다."


라고 한 재미있는 표현이 나온다. 이처럼 시를 쓰는 시인은 화자를 통해서 말해야지 시 속에 뛰어들어서는 안 된다. 만약 시인이 시 속으로 뛰어든다면 시는 있었던 사실만을 그리는 것만 되었지, 삶의 진실이거나 생의 가치들이 시적 장치를 통해서 융숭하게 드러내지는 못할 것이다.

 김영남의 시 ⌜적요한 풍경⌟은 시적 화자를 통해서 상상력을 증폭시켜 나가고 시상을 확대해서 개진해 나가고 있다. 그러면 김영남의 시 ⌜적요한 풍경⌟을 통해 고적한 산촌 풍경을 시적 상상력으로 배가시킨 작품을 읽어보자.


 적요한 풍경 / 김영남


이런 곳에서 이조백자 하나를 만난 것은 순전히 행운이다.


백자에는 한옥 다섯 채와 허물어진 돌담길, 팽나무 한 그루를 동네 한가운데 앉혔다.


마을 앞개울도 한옥 뒤란의 대숲을 통째로 빼앗아 흐른다. 그리도 그 집들은 그걸 돌려달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싸운 다음에야 확인할 수 있는 평화, 개울물도 저희들끼리 부딪치고 엉켜 싸울지라도 넘어진 것들을 일으켜 세워 아랫마을로 향한다.


갑자기 장끼 한 마리가 논두렁 위로 날아간다. 백자가 파삭 깨져버린다. 깨지는 순간은 언제나 처연하다. 아니 찬연하다. 누구의 눈부셨던 시절로 나타나 어리둥절해 한다.


그런 풍경을 다독거리기나 하려는 듯 남정네와 아낙이 소를 몰고 느릿느릿 간다.


깨진 백자도 황소 울음소리에 아물어 한 번 깊어진다.


 위 시는  도서출판 <작가>에서 출간한 ⌜2010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시⌟에 실린 작품이다. ⌜적요한 풍경⌟은 전체가 6연 줄시로 되어 있고 각 연마다 관념적인 풍경들을 구체적인 이미지로 제시하여 화자의 정서가 증폭되고 있다. <이조백자>로 환유된 시적 대상은 ‘푸른 하늘’의 비유이다. 그리고 <깨진 푸른 하늘>이 다시 아물어 붙는 것은, 다시 찾아낸 정신적 세계가 완성되는 심도 깊은 시적 경지를 보여준다.

 1연에서 3연까지가 풍경의 외면이라면 4연에서 6연까지는 풍경의 배면(背面)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풍경의 외면을 통해서 화자가 도달하고자 하는 정신적 경지인 내면을 ‘하늘’로 나타내고 있다.

 즉 ‘깨진 백자가 황소 울음소리에 한 번 아물어 간다’ 것은 외물을 통한 내면화하여 시적 경지를 잘 드러낸 표현이다. 그러므로 김영남의 시 ⌜적요한 풍경⌟은 고적한 산골 풍경만을 그린 시가 아니다. 외려 시적 상상력을 확장해 나가고, 적용하여, 자칫 관념적 풍경을 구체적인 이미지 제시로 정서가 내면화가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시적 장치로는 1-3연이 시적 드러내기라면, 4-6연은 시적 감추기로 잘 조화된 작품이다.